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86)화 (286/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86화

“직업이요?”

“예, 아무래도 힘을 좀 쓰는 분야에 계셔야 할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를테면 운동이라든가.”

의사가 물었다.

“혹시 운동하신 적 있어요?”

“초등학교 때 야구부요.”

“아니, 그걸 왜 그만두셨어요?”

“제가 개인 행동하는 걸 좋아해서 단체 생활에는 잘 안 맞았었어요. 감독님이 떠나지 말라고 붙잡긴 하셨는데.”

“아아…….”

깊은 탄식을 하는 의사에게 물었다.

“왜 그러세요?”

“야구를 하셨더라면 지금쯤 TV 중계에서 유니폼 입은 모습으로 나오셨을 거예요. 몸 상태만 따지면 드래프트에서도 지명 1순위는 되지 않았을까…….”

“농사는 어떤가요?”

중현이의 진지한 질문에 의사가 고개를 저었다.

“농사를 폄하하는 말처럼 들릴 순 있겠지만… 이런 몸을 농사에만 할애하는 건 국가적인 낭비가 아닌가.”

“그 정도인가요?”

“어느 종목이든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어디를 가든 TV에 나오게 됐을 거예요. 농사를 지어도 어머나 세상에 그런 일이 같은 프로에 나왔을 거고.”

머릿속에 자동적으로 ‘청년 농부 김씨의 수상한 비밀은…?’ 하는 특집 한 편이 뚝딱 완성됐다.

농촌 공터에 쌓이는 수수께끼의 바위들.

리혁이가 가서 ‘이건… 백제 시대 양식!’ 하고 놀라는 동안, 잠복한 카메라가 비밀을 밝혀낸다.

밀짚모자를 쓴 훈남 농부 ‘김중현, ♂, 21세’가 밤마다 공터에 심심풀이로 바위를 옮겨 놓는 장면.

생각해 보니 진짜 잘 어울리네.

우리 모두 의사의 말에 공감을 표했다.

“저희끼리도 매번 말하곤 해요. 중현이는 태릉에 갔어야 한다고.”

“이 형이 딱밤으로 페트병을 부수는데, 팬들이 저희 보고 에… 오버한다고 안 믿어 줘여.”

“책장 밑에 뭐가 들어가면 책장을 들어 버리는 사람이에요.”

우리의 증언에 의사가 그럼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설명을 시작했다.

“여기를 보면 아시겠지만….”

“어, 어디요? 잠시만요.”

의자 두 개에 겹쳐 앉은 우리가 다리를 밀어 바퀴를 움직였다.

드르륵. 드륵.

다섯 쌍의 다리가 거미처럼 영차영차 움직이며 다가오는 모습에 의사는 차분히 기다렸고.

간호사와 제작진이 뺨을 씰룩이며 입술을 오므렸다.

“저희 들을 준비 끝났어요.”

“네. 보시다시피 김중현 씨의 근육은 일반인보다 월등히 뛰어난 편입니다.”

“오오…….”

하나도 모르겠다.

“쉽게 말해서 남들보다 근육의 질이 월등히 좋다고 할까요. 거의 만 명에 한 명 꼴로 나올까 말까 한 케이스인데, 아마… 지금 체중이 어느 정도라고 하셨죠?”

“66인데 감량 중이라 64정도까지 줄일 거예요.”

“64요? 그 키에?”

잠시 상대가 ‘정상 생활이 가능한가?’ 하는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평균 체중 60이라는 말에 뒤에 서 있는 간호사 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어째 분위기가 중현이의 특이한 체질보다 우리 체중을 더 신기해하는 느낌이다.

그들에게 중현이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살아 보니까 살아지더라고요.”

“오…….”

명언에 감탄하던 의사가 헛기침을 하고는 설명을 이어 갔다.

“어쨌든 현재 체중에서 낼 수 있는 힘의 한계치까지 낼 수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당연히 단련에 단련을 거듭한 운동선수들은 못 이기겠지만, 같은 체급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일 거예요.”

“역시…….”

우리가 그럴 줄 알았다며 납득하고 있을 때, 리혁이가 질문했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예.”

“제가 스포츠 의학책을 뒤적인 적이 있거든요. 거기서 근육의 질적인 차이는 미미하다고, 결국에 단면적이나 신경 기억에 의해 힘이 결정된다고.”

“그렇죠.”

“근육이 다 같은 근육 아닌가요? 왜 이 형 근육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잘한다, 잘한다’ 하며 리혁이에게 응원을 열심히 보냈다.

그 말에 자극이 됐는지 의사가 중지로 안경을 고쳐 썼다.

그러곤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흐음… 그 부분에 대해서도 설명이 가능합니다만, 방송에 나가기에는 아무래도 어렵기도 하고.”

“그래도 듣고 싶어요.”

우리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희도 한번 들어 볼래요.”

“도전!”

“저희 과학 좋아하거든요.”

눈을 빛내는 우리의 열정에 의사가 흐뭇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럼…….”

*   *   *

『 TBC ‘사나이가 간다’ 3부 - 쿠키 영상 』

둥그런 바퀴 의자 두 개에 다섯 명이 겹쳐 앉아 있는 가운데, 의사의 열정적인 설명이 이어진다.

의사 : 일단 호르몬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할 텐데요. 호르몬에 대해선 알고 계시죠?

지호 : 환경 호르몬…?

비주 : 2차 성징…?

의사 : (막막)

이내 리혁이 설명을 알아들으면서 ‘이 녀석은 낫군’ 하며 의사의 설명이 리혁에게 집중된다.

[▶▶ 3배속]

빨리 감기로 표시된 자막과 함께 의사의 설명과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리혁의 모습이 나온다.

마치 학부생과 교수 같은 모습.

열심히 필기까지 하는 열정에 신이 난 의사가 중얼중얼 빠르게 설명을 이어 간다.

그동안 다른 멤버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힌다.

뉴블랙 : (꿈뻑꿈뻑)

처음에는 활짝 웃으며 설명을 듣지만 1분이 지나자 다들 입만 웃기 시작했고.

1분이 더 지나자 뺨을 파르르 떤다.

거기서 3분이 더 경과하자, 뉴블랙 멤버들이 앉은 채로 서서히 좁혀지는 눈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BGM으로 나오는 브람스의 ‘자장가.’

오르골에서 나오는 자장가 소리가 배경음을 채우는 가운데 뉴블랙 멤버들이 눈을 부릅뜨고 웃고 있다.

그동안 리혁과 의사가 영혼의 의기투합을 하고 있었다.

의사 : 마지막으로…….

온 힘을 다해 웃던 뉴블랙 멤버들이 마지막 설명이라고 생각했는지 박수를 친다.

우주 : 워오~ 대박 신기해.

지호 : 중현이 형의 몸은 그런 성분으로 이루어진 거였군요!

비주 : 그런 거였군요!

하지만 설명은 끝이 아니었다.

헛기침을 한 의사가 교장 선생님의 훈화처럼 ‘마지막으로’ 하는 설명을 이어 갔다.

뉴블랙 멤버들이 슬픈 미소를 지으며 경청했다.

의사 : 미국에 데니스 로저스라는 사람이 있는데, 아마 그분과 중현 씨가 비슷한 케이스가 아닐까 싶네요.

뉴블랙 : 오. 로저스 선배님.

열의를 가지고 듣던 뉴블랙 멤버들은 이어지는 의학적 설명에 다시 감기는 눈을 부릅뜨며 멈춰 세웠다.

비주의 멍한 얼굴 위로 70년대의 명곡이 브금으로 흘러나온다.

나는 그런 거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뉴블랙 멤버들의 졸음 가득한 얼굴이 교차 편집되고 마지막으로는 그냥 멀뚱멀뚱한 중현이 나왔다.

설명이 모두 끝나고 리혁과 의사가 악수를 나누는 가운데 다들 물개 박수를 친다.

방을 나오는 얼굴들에게 카메라가 다가간다.

‘Q. 어떠셨나요?’ 라는 질문에 뉴블랙 멤버들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흔들었다.

우주 : 정말 알고 싶었던 정보였어요! 유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치?

나머지 : 와아아!

리혁 : 제대로 듣긴 했나요?

나머지 : 와아아!

무시하고 다 같이 ‘중현이 몸 최고!’ 하며 화이팅을 외치는 장면으로 쿠키 영상이 끝났다.

*   *   *

중현이의 몸에 대한 비밀을 밝혀낸 후.

우리는 새로운 앨범에 걸맞은 스타일링을 하기 위해서 평소 가던 헤어숍에 방문했다.

그리고 그간 오매불망 기다리던 소식도 들었다.

“우와……!”

헤어숍 소파에서 뒹굴거리다가 홍보팀이 보내준 링크를 보고 흥분했다.

공식 SNS에 게재된 콘서트 오픈 안내.

태블릿 PC 화면에 한가득 떠오른 포스터를 보며 우리끼리 손뼉을 마주치며 기뻐했다.

“대박인데?”

“포스터부터 진짜 예쁘지 않아여? 헐, 좋아요 벌써 엄청 붙었다. 나도 얼른 좋아요 찍어야지.”

“형. 이거 실물 나오면 작업실이랑 연습실이랑 숙소랑 회사 라운지에 하나씩 거는 거 어때요?”

비주가 그런 말을 할 만큼 화면에 떠오른 포스터가 정말 예뻤다.

미국식 레트로 감성의 포스터였다.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등 원색에 가까운 색감으로 가득한 놀이동산이 뒤에서 화려하게 빛나고.

그 앞에 우리가 놀러 온 것처럼 서 있었다.

“우와…….”

단순히 화면 속에 있는 포스터를 본 것임에도 벌써부터 심장이 쿵쾅거렸다.

데뷔하기 전에 들뜨고 긴장됐던 그때보다 어쩌면 더.

아마도 5,000여 명이라는 한 회차 관객 수 때문인 것 같다.

아직도 상상이 안 간다.

올림픽 공원에 5천 명이나 되는 수플레들이 우리를 보러 축제처럼 모여든다는 게. 다들 김봉달을 하나씩 든 채, 굿즈를 수령하고 손목에 종이 팔찌를 감는다는 것이.

“상상이 안 가요? 쇼케이스 때 뵀던 2천 명에 2.5를 곱하면 되는 거잖아요.”

“너 같은 어류는 모른다. 이 따스한 감각.”

“알거든요.”

당연히 알고 있었다.

지금 태블릿 PC가 덜덜덜 진동하는 건 바로 그걸 든 누군가 다리를 떨기 때문이었으니까.

물끄러미 바라보자 에어컨 때문이라는 변명이 들려왔다.

“안 틀어져 있는데여~?”

“…….”

“안 틀었는데에에~?”

“……!”

얄밉게 얼굴까지 들이미는 막내의 도발에 전쟁이 발발했다.

서로에게 솜방망이 펀치를 휘두르는 모습에 형들이 따스한 미소를 보냈다.

“어쩜 저렇게 타격감이 1도 없어 보일까.”

“심지어 안 피하는데 서로 스치지도 않아요. 형.”

“그러게. 쟤네한테 맞는 거보다 종이에 베이는 게 더 아프겠다.”

동생들을 보며 고개를 젓다가 화면에 가득한 수플레들의 반응을 열심히 모니터링 했다.

“음… 근데 반응이 반반이네.”

“그러게요.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우리 생각이랑은 좀 다른가 봐요.”

수플레들이 마냥 방방 뛰고 기뻐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은 않았다.

좋아하는 반응이 대부분이긴 한데.

회사에서 너무 혹사시키는 게 아니냐는 반응이 꽤 보였다.

가뜩이나 바쁜 스케줄에 콘서트, 거기다 앨범 준비까지 겹치니 우리의 건강이 우려된다는 모양이었다.

당연히 할 만한 걱정이란 생각이 들긴 했다.

거의 작년 연말 무대 수준으로 바쁜 일정이었으니까.

걱정 가득한 팬들을 보며 미안함을 느꼈다.

“우린 괜찮은데…….”

“그럼 저희 괜찮음의 의미로 셀카 한 장?”

동생들과 활짝 웃으며 다 같이 ‘쁘이!’ 하고 있는 셀카를 올렸더니 댓글이 하나 달렸다.

-규호가 지켜보는 중이라면 당근을 흔들어 주세요

-당근이 없다면 리혁이라도..

옆에서 당근 색깔이 된 우리 애와 댓글을 매치시키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첫 콘서트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동안 하나둘 준비가 된 동생들이 숍 의자에 앉기 시작했다.

다들 설레는 표정이다.

이번에는 색을 좀 넣기로 해서 저마다 색이 다양했다.

비주는 와인색으로, 중현이는 다크 브라운으로, 리혁이는 블루 블랙. 막내는 저번에 비주가 했던 금발로 가고.

나는…….

“쌤.”

“응?”

의자에 앉은 채 내 머리를 꼼꼼히 다듬고 있는 헤어숍 쌤에게 내가 질문했다.

“이거 많이 아픈가요?”

“응.”

“그럼 안 되는데.”

“우주, 네가 굉장히 색을 빼기 어려운 머리거든. 남들 탈색 한두 번 할 때 넌 세 번 해야 돼.”

“…….”

애쉬 그레이라고 했던가.

화려한 꽃무늬 느낌의 머리색으로 가고 싶다고 했는데 A&R팀 직원들의 극렬한 반대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노래를 그렇게 잘 뽑아 놓고 굳이 스스로의 앞길에 재를 뿌리냐는 듯했다.

지금 하려는 머리색이 잿빛인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다.

솔직히 꽃처럼 화사한 핑크색이 더 예쁜 걸.

“그죠. 쌤?”

“…….”

헤어 쌤이 못 들은 척하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차트에 있는 유명 곡들 위주로 재생을 하는지 숍에선 바람꽃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음 앨범을 준비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바람꽃은 여전히 차트 5위에 머물러 있었다.

전 앨범 타이틀을 너무 역대급으로 뽑아 놓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살짝 불안함을 느낄 때.

“우주 씨. 기분이 어떠신가요?”

“좋네요.”

캠코더를 들이대는 민기 형에게 가운을 입은 채 어깨춤을 춰 보였다.

“근데 그건 어디 올릴 거예요?”

“이거 너희 미튜브 앨범 제작기.”

“아하. 미튜브 여러분! 반가워요!”

“우주야…….”

헤어 쌤의 간곡한 눈빛에 내가 점잖게 앉았다. 민기 형이 웃으며 내게 질문했다.

“어때. 안 아파?”

“네. 뭐, 이 정도쯤은…….”

하며 거만을 떨던 나에게 헤어 쌤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직 두피에 탈색 약 안 발랐는데.”

“…….”

얼마 안 가 진정한 고통이 시작됐다.

몇 번의 탈색이 이어지는 동안 온몸을 파르르 떠는 나를 보며 동생들이 비웃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머리가 꼭 한겨울에 얼어붙은 강에 장시간 빠져 있는 느낌이다.

“으이이으아아…….”

“아프져? 저 염색할 때 그렇게 자기는 탈색 없이도 염색했다고 비웃고 그러더니.”

“으이이이! 으이!”

내가 가운 아래로 손을 내밀어서 휘휘 저었지만 막내가 꺄르르 웃었다.

비주가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팬들을 위해서 참아요. 형.”

“으이이!”

“음? 팬들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고요?”

“아으이! 말 걸지 마!”

아파 죽겠다고!

*   *   *

뮤비 촬영장.

콘크리트 색의 우중충한 도시 배경과 CG용 그린 스크린 앞에 소품이 세팅되고 있다.

긴장된 몸을 쭉쭉 푸는 동안 동생들과 함께 핸드폰에 모였다.

“짜잔!”

-아이, 깜짝아!

영상통화 속에서 우리 할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넌 어찌 된 게 머리가 하루 새에 파뿌리가 됐냐?

“멋있지?”

-뭐 어느 색이 안 어울리겠냐마는… 네 얼굴 좀 치워 봐봐. 다른 머스마들도 좀 보게.

“흥.”

고개를 옆으로 쏙 빼서 내 얼굴을 화면 절반에 나오게 한 다음, 다른 동생들을 담았다.

-더.

“…….”

내가 비켜주자 동생들이 ‘짜잔’하고 외쳤다.

“할머니, 안녕하세여!”

“저희 어때요?”

-아이구! 알록달록 정신이 하나도 없네.

알록달록 변한 동생들의 머리를 보며 우리 할머니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지호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어때여? 이러니까 불량 청소년 같고 그러져? 이번 컨셉이 그런 느낌이거든여.”

-날라리가 언제부터 머리색으로 정해졌디야?

“아니에여?”

‘염색=날라리’ 이론을 주장하는 동생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희 이제 잘 놀아 보이고 그러지 않나요?”

“클럽을 막 봉지처럼 흔들면 거기서 퉁 튕겨 나올 거 같은 느낌인데.”

“머리색이 확 튀잖아요.”

우리 할머니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이걸 뭐 어떻게 설명을 해 줘야 하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너희들은 그…….

“네?”

-그쪽은 그냥 포기혀….

‘7살짜리가 반항하는 거 같어…’ 하는 말에 동생들과 내가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아닌데. 그런 거 아닌데.

할머니와 통화를 하는 내내 우리의 모습에 대해 설득했지만 전혀 동의해 주지 않았다.

-늙어 봐. 쌈닭처럼 생긴 것보다 순하게 생긴 게 좋은 겨.

“……그런가.”

-그려.

“그려?”

못내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화제를 바꿔서 8월 말에 있을 콘서트와 가족들이 앉을 티켓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니 엄청 좋아했다.

벌써부터 뺨이 발그레 해져서 ‘이쁘게 입고 가면 되나?’ 하며 설레는 우리 김덕순 여사의 모습에 미소가 절로 그려졌다.

“할머니, 그런데 우리 말이야. 진짜 이렇게 입으니까…….”

-아이구, 찌개 탄다! 타!

띠록.

“…….”

“되게 다급하게 끊으시네여.”

“우리가 좀 질리게 하긴 했지…….”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던 우리가 촬영장 구석에 있는 거울에 비춰 보았다.

“가죽 재킷도 있고.”

“불량해 보이는 느낌의 후드 티도 있어여.”

“심지어 바지도 살짝 찢어져 있는데.”

아무리 봐도 불량 청소년 1부터 5까지 골고루 분포된 모습이었다.

지나가던 석환 형이 뼈를 때리고 갔다.

“너희 기본 표정이 너무 순해.”

“…….”

“그 표정으로는 초등학생도 겁을 안 먹을걸. 메이크업이랑 무대 연기로 커버 해야지.”

그런 이유로 평소보다 화장에 좀 더 공을 들였다.

분장실 의자에 앉은 우리가 메이크업 쌤들에게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얘는 확실히 노는 애다. 그런 느낌으로 부탁 드려요.”

끄덕하는 쌤들에게 우리가 고개를 마주 끄덕했다.

혼신의 힘을 다한 메이크업 덕에 다행히 우리는 나름대로 봐줄 만한 얼굴로 변할 수 있었다.

카메라를 든 원석이 형에게 물었다.

“어때요. 저… 잘 놀 것처럼 생겼죠?”

“음. 응.”

“음응은 뭔데요. 형. 정확히 말해 봐요.”

‘어…’ 하며 눈을 데굴데굴 굴리던 상대가 조심스레 답했다.

“전교 1등이 수능 끝나고 일탈하는 느낌…….”

“아니. 다들 왜 그러는 거예요?”

우리가 아우성을 치며 반발하자 매니저들과 스탭들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농담이라며 웃는 사람들에게 눈을 흘기고는 뮤비 촬영에 들어갔다.

걱정했던 것에 비해서 본 촬영은 몹시 순조로웠다.

“오케이. 표정 좋고!”

다들 평소 이미지랑 안 어울린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촬영본을 보니 걱정이 무색할 만큼 잘 찍혔다.

스탭들에게 어떠냐는 듯 바라보자 다들 웃고 있었다.

“……다 알고들 놀리셨네.”

괜히 지레 걱정하는 우리를 놀린 듯했다.

한편, 확실히 따로 준비한 표정 연기와 안무가 합쳐지니 그럴싸했다.

모니터 앞에 모인 우리가 각자의 얼굴이 클로즈업 될 때마다 움찔거리며 쫄 정도였으니까.

“대박, 저 방금 중현이 형 표정 넘 무서웠어여.”

“나도 내가 무섭다.”

“우주 형이 손 뻗을 때 진짜 움찔했어.”

차가운 회색빛 배경과 빛나는 네온사인 아래 춤추는 우리 모습이 진짜 거칠어 보여서 좋았다.

뮤비 감독님도 동의했다.

“다들 컨셉을 잘 살렸는데? 진짜 도망자처럼 나왔네.”

“네.”

우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뮤직비디오 컨셉은 소위 말하는 사이버 펑크 배경에서 우리가 도망치는 스토리였다.

배경은 리혁이의 제안대로 SF 속 디스토피아.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아래 우리가 숨어드는 장면이나 뒷골목과 옥상에서 춤을 추는 장면들이 중심이었다.

어딜 가든 초록색 네온이 가득했다.

이번 앨범의 컬러인 초록색을 어떻게 하면 살리지, 하고 A&R팀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가 나온 대안이었다.

결과적으로 미래 지향적인 사운드와도 잘 어울리는 선택 같다.

“그런데… 우주가 진짜 표정을 잘 살렸다.”

스탭 중 하나가 감탄했다는 듯 화면 정중앙에서 안무를 추고 있는 나를 가리켰다.

헤어밴드 밑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내 표정을.

“진짜 뮤비 느낌을 잘 살렸는데.”

“그져? 저도 아까부터 그 생각하고 있었어여. 우주 형 표정 연기가 언제 이렇게 늘었지?”

“형. 이것도 미튜브 보고 연습한 거예요?”

동생들의 물음에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럼…….”

내가 어색하게 웃음으로 때우자, 이내 동생들이 다시 한번 뮤비에서 거만하게 웃고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기를 3초.

“아……!”

“아…….”

멤버들의 입에서 동시에 ‘아!’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맞죠?’ 하며 바라보는 녀석들의 눈이 질문을 하는 것 같다.

‘그분들?’

‘그분들.’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가운데 동생들이 화면을 보며 다시 한번 감탄했다.

내가 표정 연기를 할 때 레퍼런스로 삼은 인물들이 누군지 깨달았기 때문일 터였다.

바로 어느 그룹이 평상시 짓고 다니는 표정들과 느낌이 유사했으니까.

겉보기에는 완전 다르지만 뭔가 주는 느낌은 비슷한.

“형 뒤에 뭔가 보이네여.”

“오, 진짜.”

“거대한 글자가 보이는 거 같아요. 존…….”

내가 손짓할 때마다 뒤편에서 ‘존나’가 번쩍번쩍 하는 것 같다는 말에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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