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87)화 (287/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87화

“오케이, 수고했어요!”

“고생하셨습니다!”

나인의 뮤비 촬영은 순조롭게 끝났다.

물론 완전히 끝은 아니었다.

네온사인 가득한 사이버 펑크 느낌을 내기 위해 부산에서 현장 촬영도 해야 하고, 텅 빈 지하철과 역사에서 찍어야 할 장면도 남아 있었다.

지금 찍은 건 CG를 입히게 될 세트장 촬영.

후반 작업이 들어가야 본격적인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을 테지만 예감이 몹시 좋았다.

“흐음, 이번 뮤비라…….”

중현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혀 감이 안 오는데요.”

“대, 대박이다!”

“중현이 형이 모른다고 했어여. 우리 뮤비 이번에 완전 초대박 터지나 봐여.”

예감빌런의 말에 우리는 피곤함도 잊고 방방 뛰었다.

왜 그게 예감이 좋은 거냐는 뮤비 제작진의 물음에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아아, 완전 꽝이구나?”

“아니에요. 저 예감 좋아요.”

중현이가 나름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항변했지만 우리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물었다.

“중현아. 지금 바깥 날씨가 어떨 것 같니? 너의 감을 말해 봐.”

“엄청 좋을 듯한 느낌이요.”

“…….”

내가 고개를 돌려서 물었다.

“우리 우산 챙겨왔나?”

“아뇨. 올 때 화창했잖아요. 기상청에서도 오늘 날씨 좋다고 했는데.”

우리가 웅성거리는 동안 뮤비 조연출이 그게 말이 되냐며 웃었다.

그러곤 바깥 날씨를 확인하기 위해 세트장 건물 바깥으로 나갔다가 돌아왔다.

물에 빠졌다가 건져진 나무토막 같다.

“허억… 허억…….”

물에 잔뜩 젖은 스탭이 말했다.

“비, 비가 엄청 쏟아져요. 나간 것도 아닌데 바람 한 번에 이렇게 됐어요.”

“…….”

“뭔 소나기가…….”

그 말에 뮤비 감독님이 ‘오……’ 하며 눈을 크게 떴다.

미국 유학파 출신이라 자기는 미신 같은 거 안 믿는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

우리가 ‘보셨죠?’ 하는 가운데 뮤비 제작진이 주섬주섬 지갑을 꺼내기 시작했다.

“나 이거 로또 산 건데 좀 봐주라.”

“얘가 내 동생이랑 결혼하려는 남자인데 관상이 어때? 감이 안 좋아?”

“이거 오늘 샀는데, 상한가까지 오를까?”

무속인을 앞에 둔 사람들처럼 경건하게 물어보는 모습들에 우리가 웃으며 말했다.

“저희도 해 보려고 했는데, 욕심을 부리면 안 되더라고요.”

“복권 20장 날렸어여.”

예전에 ‘복권 당첨돼서 숙소 이전하자!’ 하는 불순한 의도를 품고 도전한 적이 있었는데 전부 실패했다.

우리의 경험담을 말하자 다들 키득거리며 웃었다.

바깥에서 비가 건물을 후두둑 때려대는 가운데 급작스런 소나기에 모두가 세트장에 발이 묶였다.

감독님이 다시 한 번 촬영본이나 보자고 말했다.

“중현이에 따르면 이번 뮤비가 잘 될 것 같다고 했지?”

“네.”

“그런데 우리 생각에도 그래. 이거… 뭔가 있거든.”

다시 한번 촬영본이 재생됐다.

내가 춤을 출 때마다 뒤에서 뭐가 번쩍거리는 것 같은지 동생들이 그 파트에서 뺨을 씰룩거렸다.

감독님이 CG용 초록색 스크린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부분에 도시 배경이 합성이 될 거거든. 이런 식으로 레퍼런스가 들어가게 될 거야.”

화면에 이런저런 이미지가 떠올랐다.

푸른색과 자주색 빛 형광등이 도시를 어딘가 신비로운 분위기로 만들고 있다.

우리가 눈을 크게 뜨고 감탄했다.

“합성하면 진짜 예쁘겠네요.”

“예쁜 정도가 아니라 근사할걸.”

감독님이 씩 웃었다.

“진짜 잘 뽑힐 거야. 너희 안무랑 노래도 이런 근미래의 분위기랑 정말 잘 어울려서.”

“그래요?”

“믿어 봐. 내가 뮤비만 10년을 찍었는데.”

잘 될 것 같다는 전문가의 확언에 우리끼리 설렌 눈빛을 교환했다.

우리 뒤에 선 회사 사람들도 그린 스크린 앞에 선 우리와 사이버펑크 배경을 교차하며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독님이 껄껄 웃으며 물었다.

“너희 외국에도 팬들 있지?”

“네. 있어요.”

“이번 뮤비를 보면 엄청 좋아할 거야. 북미나 유럽 쪽이 이런 이미지를 엄청 좋아하거든.”

“……그런가요?”

동생들과 회사 사람들이 다 같이 서로를 바라보았지만, 전원 한국에서 살아온 한국인이었다.

촬영본을 보면서 대강의 예상 가는 퀄리티에 ‘오’ 하지만, 특별하게 해외 팬에게 더 와 닿을 만한 감성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해외 거주자였던 사람이 말하니 그런가 할 뿐.

“외국 팬들도 좋지만, 기왕이면 한국 팬들이 좋아할 만한 느낌으로 부탁드립니다. 감독님.”

“그 부분을 제일 우선에 두고 있죠. 당연히.”

석환 형이 넉살 좋게 웃으며 집어내자 그쪽에서도 웃으며 답했다.

그렇게 뮤비에 대한 대화를 이어 나가는 동안 우리는 뮤직비디오를 반복해서 바라보았다.

혹시 보완할 점은 없는지 보기 위함이었다.

콘티에 적힌 내용과 비교하면서 머릿속으로 내용을 그려 가며 비디오를 따라갔다.

“흐음…….”

감독님 말대로 이미지가 들어가면 굉장히 멋진 느낌으로 뽑힐 것 같기는 한데.

어딘가 살짝 심심한 느낌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화려함이 100인 느낌이라고 할까.

처음에는 자극이 강해서 ‘오오’ 하겠지만 이대로 3절까지 확 터뜨릴 만한 동력이 나올지 약간 의문이었다.

그냥 내버려 둬도 나쁘지 않은데 뭔가 화려하면서도 심심한 느낌.

아마 비슷한 배경이 반복되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뭔가 하나 추가되면 좋을 텐데.

우리끼리 톡으로 한참 동안 고민을 하면서 그 부분에 관해 논의를 하고 있을 때.

바깥에서 빗소리가 들려왔다.

‘이거다!’

‘이거네여.’

전구에 불이 들어온 듯 다 같이 환하게 웃었다.

곧바로 의견 합의를 본 우리는 감독님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 보았다.

“감독님.”

“…응?”

“이 부분에서요. 저희 비를 좀 맞아 보는 건 어떨까요?”

“오.”

감독님이 호기심이 동한 얼굴로 마우스를 몇 번 딸깍이고는 우리에게 어느 지점이냐고 물었다.

우리가 콘티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던 감독님이 눈을 크게 떴다.

“……괜찮은데?”

“괜찮죠?”

“아니, 괜찮은 게 아니라 진짜 좋은 아이디어네.”

감독님의 답에 우리가 환하게 웃었다.

그러곤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린 서로를 향해 칭찬하듯 미소를 지었다.

정말 우리가 생각해도 근사한 아이디어였다.

*   *   *

부산.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한적한 골목에 살수차가 비를 뿜어대고 있었다.

쏴아아.

현장 통제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잠시 멈춰 서서 신기하다는 듯 구경했다.

‘영화라도 찍나? 카메라 엄청 많다.’

‘저렇게 하니까 진짜 비가 오는 거 같네.’

‘누구지? 연예인 누구 온 거지?’

구경을 하고 싶었지만 골목 깊숙한 곳에서 촬영이 이루어지는지, 바깥에는 스탭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멀찍이 지미집 카메라가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 정도만 눈에 들어왔다.

‘누구지?’

‘엇, 나온다.’

살수차의 물이 멈추고 스탭들 사이로 움직이는 것들이 보였다.

‘담요……?’

담요를 뒤집어쓴 채 종종걸음으로 움직이는 5인조가 보였다.

얼굴만 드러낸 채 머리부터 발끝까지 커다란 담요로 둘러싸고 있었는데, 조그마한 얼굴이 보였다.

‘오……!’

멀찍이서 지켜보는데도 주변이 환해지는 듯한 미모….

“흐헤헤취!”

“흐취취!”

…의 재채기 요정들이었다.

‘히히힉힉’ 하며 재채기를 할락 말락 하는 앳된 얼굴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오는 기분.

서로 다른 느낌의 외양을 지닌 담요 괴물들을 본 사람들은 이내 그들이 누군지 알아챘다.

환한 촬영용 조명 아래 물기 어린 얼굴들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뉴블랙이다.’

‘뉴블랙이네. 신기하다.’

TV에서 접했던 인물들이 눈앞에서 살아서….

“으히취!”

재채기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구경을 하고 있을 때 듬직한 담요 괴물이 몸을 휙 돌렸다.

검은 담요 아래로 드러난 근엄한 표정.

먼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는지 나머지 넷에게 다가가 무어라 말한다.

“…….”

넷의 표정이 싹 변하더니 담요를 내려 어깨에 걸쳤다.

그러곤 머리를 털면서 우아하게 자기들끼리 보온병을 돌리며 차를 홀짝이기 시작했다.

행인들이 감탄했다.

‘이미지 관리하는구나.’

‘이미 실패한 것 같은데…….’

뉴블랙 멤버들이 ‘음?’ 하는 느낌으로 고개를 들더니 행인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하려는 모양인데 다섯 명이 동시에 기계적으로 움직여서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다.

천적을 발견한 미어캣들의 행동처럼 보일 뿐.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는 뉴블랙에게 행인들도 같이 와아아 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잘생겼다.’

물기가 남아있긴 했지만 알록달록한 머리색의 멤버들의 이목구비가 훤하게 들어왔다.

특히 가운데서 뜨끈한 캔 음료를 마시며 발을 동동거리는 회색빛 머리의 멤버에게 절로 시선이 집중됐다.

대강 두르고 있는 담요조차 망토처럼 보였다.

현장을 지켜보고 있던 이들 중 하나가 스마트폰 위로 폰을 톡톡 두드렸다.

[현직 부산 사람인데 지금 아이돌 보고있습니다]

뉴블랙 애들 뮤비 찍는 거 같아서 구경하고 있는데..

엄청 잘생겼네요

회색 머리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자꾸 눈길이 갑니다

반짝이는 할아버지 같네요

-반짝이는 할아버지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걔 우주 아닌가요

-뉴블랙 애들 중에 유독 외모 말 나오면 우주

-뭐야.. 뉴블랙 나만 몰라요? 왜 다들 이름까지 알아;

-요즘 노래 들으면 모를 수 없음

-대체 근데 반짝이는할아버지는 어디서 나온거예요;;

-[작성자] 표현이 좀 어려운데 물에 젖은 회색머리랑 눈이 반짝반짝이고 있어요

작성자가 열심히 지금 느끼는 감상에 대해 표현을 하려고 애썼지만, 사람들은 이미 반짝이는 할아버지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내 해당 글은 캡처 되어 아이돌 커뮤니티와 뉴블랙의 팬들이 모인 사이트로 퍼져 나갔다.

수플레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ㅋㅋㅋㅋㅋㅋ반짝이는 할아버지 뭔데

-칭찬인가 욕인가

-나도 보고 싶다 반짝이는 할아버지

-우주 머리 회색으로 했구나 잘했어

-어 나 부산인데ㅠㅠㅠ 왜 못 봄

-올라오는 목격담보니까 궁금해진다.. 대체 이번 뮤비 컨셉이 뭐지

-살수차까지 동원해서 찍었으면.. 와 규호가 이번에 진짜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구나

-뉴블랙에 대해선 누구보다 진심인 남자 킹규호

-규호는 뉴블에 대해선 누구보다 진심임. 그 진심이 대체로 마음에 들지 않을 뿐..

-근데 돌림픽도 있고 콘서트도 얼마 안 남앗는데 비 내리는 씬 촬영은 개오바 아닌가??

-ㅇㅇ 인정

한편 비가 내리는 씬에 대해서 누구보다 가장 격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빗속에서 울부짖으며 촬영 중인 뉴블랙이었다.

“훌륭한 아이디어는 개뿔!”

“으아아아아!”

“비 맞자고 처음에 제안한 사람 누구야아악! 아악! 코에 물 들어갔어요!”

“깜독님! 쌀수차, 쌀수차! 줄여 주세여!”

수조 촬영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채 빗속에서 허우적대며 절규하는 뉴블랙 멤버들.

그들이 괴로워하는 동안 모니터를 바라보던 감독이 광소를 터뜨렸다.

‘대박이다. 이건 대박이야!’

뉴블랙이 괴로워할수록 더욱 멋들어진 장면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   *   *

『 뉴블랙 ‘Nine’ (Official MV) 』의 한 장면.

비가 내리는 도시의 골목.

뿌연 물기가 화려한 네온사인의 불빛을 반사해서 오묘하고 신비로운 광경을 만들어 낸다.

빛으로 자아낸 그림 같은 광경.

그 속에서 도망에 지친 네 청년들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소리 없이 하늘을 향해 절규하고 있다.

잠시 뮤트 되듯 작아지는 음악.

누군가의 발걸음이 클로즈업 된다.

후드티를 입은 채 걸어오고 있는 뉴블랙의 래퍼의 뒷모습.

지친 네 명의 시선이 향하고, 래퍼가 조용히 걸어와 후드를 벗는다.

동시에 뻗어지는 손.

조용해졌던 음악이 다시 볼륨을 높여 가면서 강렬한 트랩 비트 속 래퍼의 파트가 흘러나온다.

그 동작을 따라서 세차게 내리던 비가 그 상태로 멈추더니 이내 한 방울씩 서서히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한다.

동시에 멤버들의 화음이 하나씩 더해지고 분위기가 고조되는 동안.

화면이 전환되어 뮤비의 스토리 파트에서 댄스 파트로 넘어가 3절의 하이라이트 안무가 흘러나온다.

이미 맞은 비는 잊어버려

중요한 건 지금이니까

후회는 나중에 하자고

잔뜩 독기 서린 표정으로 군무를 소화하는 뉴블랙 멤버들이었다.

*   *   *

후회스럽다.

“우리는 왜 빗속에서 뛰어댕기는 장면을 찍자고 했는가.”

“우리는 왜 바보 같은 짓을 늘 반복하는가.”

“하필이면 제안을 다 같이 해서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릴 수 없는가.”

담요 괴물들끼리 진지하게 토론을 하는 가운데, 새하얀 가오나시가 입을 열었다.

“사람은 지난 일에서 교훈을 얻는다던데, 수중 촬영을 했는데도 왜 우리는 전혀 교훈을 얻.”

“얻?”

“얻. 얻…….”

재채기를 하려는 리혁이에게 내가 티슈를 건네주었다.

지호가 옆에서 리혁이를 따라하며 ‘얻, 얻, 얻빤 강남스…’ 하며 놀리다가 리혁이의 재채기에 얼굴을 맞았다.

담요를 두른 채 뒹굴거리는 동생들을 바라보며 나와 비주가 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아, 진짜 추위가 안 가시네.”

“저 뼛속까지 물이 들어간 기분이에요. 형.”

그러곤 옆에서 우물우물 곤약 젤리를 먹는 중현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넌 괜찮니?”

“네.”

“그래 보이네.”

나머지가 ‘춥다, 추워’ 하며 오들거리는 동안 혼자 젤리를 오물거리는 우리 애였다.

‘아픔?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하는 느낌.

중현이를 아프게 할 수 있는 건 오래된 김밥 같은 상한 음식밖에 없었다.

비주가 말했다.

“그것도 굉장히 많이 상해야 돼요. 형.”

“그래?”

“어지간한 걸로는 쟤를 쓰러뜨릴 수 없거든요. 학교에서도 남들 다 식중독으로 시름시름 앓을 때, 혼자 매점에서 막 룰루랄라 다니고 그랬어요.”

“룰루랄라까지는 아니지.”

중현이가 반박했다.

“룰루 정도.”

“아냐. 랄라에 더 가까웠어.”

“룰루라니까.”

“랄라야.”

양자 간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양쪽에서 몸과 말로 투닥이는 것을 느끼며 소파 가운데 드러누웠다.

뒹굴거리는 두 막내 담요괴물을 밀어내니 바닥에서 뒹굴거렸다.

오늘은 일요일.

어제 부산 로케이션 촬영을 마치고 하루 쉬는 날이었다.

비를 많이 맞아서 그런지 온몸에 살짝 몸살 기운이 남아 있었다.

다들 이마에 쿨링 시트를 하나씩 붙이고 괜찮다고 아득아득 우기며 회사에 출근했는데 우리 상태를 슥 보던 트레이너 쌤이 돌아가라고 했다.

오늘 하루는 푹 쉬라는 권고에 결국 숙소에서 뒹굴뒹굴하고 있는 중이었다.

TV 채널로는 TBC를 고정한 채 핸드폰을 뒤적거렸다.

-대세 이어가나? “뉴블랙” 9월 초 컴백, 8월말 콘서트

-뉴블랙, 첫 단독콘서트 핸드볼 경기장 개최

-뉴블랙 미니 3집 ‘Neon Black’으로 돌아온다…“기대감 고조”

회사 홍보팀에서 보도 물량을 넉넉하게 뿌렸는지, 아니면 우리의 인지도가 높아져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기사가 진짜 많다.

거의 똑같은 타이틀로 수백 개는 되는 듯한 느낌.

우리의 네 번째 앨범이자, 미니 앨범으로서는 세 번째 앨범인 ‘Neon Black’에 대한 기사 내용이 복사, 붙여넣기처럼 되어 있다.

네온이 그리스어로 ‘neos’, 즉 영어로는 ‘new’를 의미해서 붙여진 원소라고 하던데.

쉽게 말해서 뉴블랙이었다.

조회수가 높은 기사들마다 댓글에 ‘뉴블랙 화이팅!’ 하고 돌아다니는 수플레들을 보며 웃었다.

이따 팬카페에 글을 남길 때 쓸 셀카를 찍으려 카메라 어플을 켜려다가.

“…….”

다시 껐다.

머리가 개판이네.

헤어 쌤들의 손을 거치면 멋지게 변하지만 그냥 있는 상태로는 볏짚단 같은 회색 머리였다.

푸석푸석하게 변한 회색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슬픈 웃음을 흘릴 때.

“뭐 봐여?”

“우리 기사.”

“오호.”

고개를 슥 들이밀던 막내가 오, 하더니 자기 폰인 마냥 기사를 누르기 시작했다.

“어, 우리 사간 기사도 있어여.”

“그러네.”

‘사간 출연하는 뉴블랙 곧 컴백함’하는 기사였다.

댓글이 와글와글 달려 있었는데 누르진 않았다. 예능 관련 기사 댓글은 가끔 보다가 내상을 입는 경우가 있어서.

“이건 이따가 본방 나오고 나면 보자.”

“그래여.”

어차피 곧 본방이 시작할 시간이기도 하고.

오늘은 나와 중현이가 출연했던 ‘사나이가 간다 - 경찰특공대 특집’ 1회가 방영되는 날이었다.

이상하게 나오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할 때.

화면이 반짝거렸다.

한태현 [해투 중이라 본방 못 봄]

한태현 [vod로 봐주겠음ㅋ]

나 [투어나 돌아]

한태현 [님이 구르는 건 놓칠 수 없어요 ~.~]

한태현 [한빈이랑 같이 보기로 함]

나 [유령선처럼 영원히 해외나 돌아라]

해적 영화에 나온 유령선과 오징어 선장 짤을 보내주며 ‘너야’ 하니 격렬한 답장이 돌아왔다.

나 [참]

나 [피디님한테 너 다시 부르라고 적극 추천함]

한태현 [야]

신상 출시된 뉴블랙 이모티콘으로 놀려주니 약이 바짝 오른 답장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좌충우돌 군대 뿌잉뿌잉하는 느낌의 ‘사나이가 간다’ 오프닝이 흘러나오는 동안 잡담을 나눴다.

사간 본방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지인들의 연락이 잦다.

은성이놈 [병장님~]

은성이놈 [깔깔깔 군대 또 나오신다규 들었습니당]

은성이놈 [그것이 참트루~?]

나 [이럴 시간에 연습이나 더 해라]

나 [마인드가 안 됐어]

은성이놈 [듣보라서 스케줄이 없어요ㅠ]

손가락을 멈칫했다. 이럴 땐 뭐라고 답장을 해줘야 하지.

…하다가 좋은 생각이 났다.

나 [곧 생길 거야]

은성이놈 [?]

나 [곧.. 너를 위한 스케줄이 다가올 것이다]

나 [너만을 위한..]

도 피디님이 너에게 마수를 뻗을 것이다, 하는 말을 생략해서 보냈더니 뭐냐고 궁금해서 난리를 쳤다.

귀찮아서 답장은 안 했다.

나중에 방송 보면 알겠지. 뭐.

여기저기서 오는 메시지에 답장을 간략하게 하면서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동생들이랑 저녁으로 먹을 삶은 고구마를 하나씩 들고 TV를 바라보았다.

“아, 배고파.”

“왜 이렇게 음식 광고가 많이 나오져? 음식 맛있게 먹는 사람들 나올 때마다 화가 나여.”

“이건 고구마가 아니다. 감자다.”

TV 속에서 나오는 치킨, 피자 광고들을 보면서 몸을 부르르 떨고 있을 때.

“……어?”

전혀 예상치 못한 게 흘러나왔다.

“우리다.”

“우리네요.”

올리브 하우스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군침 나는 스테이크의 비주얼.

비주가 포크로 콕 찍고는 그 스테이크를 한 입 먹으며 향을 즐기는 그런 장면이었다.

화면 속 비주가 ‘으으음~’하자 우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

“…….”

괜히 눈총을 받은 비주가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나는 잘못 없어. 저건 TV 속 나야.”

“…….”

이내 뉴블랙 미니미들까지 ‘고기!’ 하면서 귀엽게 먹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마지막으로 유니폼을 입은 채 ‘올리브 하우스로 오세요!’ 하며 약을 올리는 우리까지.

“진짜 얄밉다.”

“한 대 때려주고 싶어여.”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지호야. 손을 들어서 너를 쳐.”

우리끼리 과거의 자신에 대해서 얄밉다고 흉을 보는 동안, 다른 광고가 흘러나오고 나서.

“……또 우리야?”

한 타임에 두 개나 들어가 있었다.

광고주가 뉴블랙이 출연한다고 이 시간을 콕 찝은 것 같기는 한데, 이번에는 렌즈 광고였다.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며 활짝 웃는 모습과 TV에 비친 고구마 먹는 담요 귀신들이 대비됐다.

“이번에는 학식을 먹네.”

“맛있겠다. 학식…….”

“저거 맛있었지.”

학식을 야무지게 먹는 다섯 대학생 컨셉의 우리를 보며 삶은 고구마를 울적하게 먹을 때였다.

“어, 시작한다. 시작한다.”

화면이 꺼지며 ‘사나이가 간다’의 본방송이 시작됐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