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91화
좋다.
노래를 듣자마자 감탄이 일었다.
“와…….”
뭐라고 말하려고 하는 지호를 리혁이가 텁 막았다. 입이 막힌 막내가 눈으로 감정을 표현했다.
‘대박 좋은데여?’
듣다 보면 머릿속으로 이미지가 그려질 만큼 근사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곡이었다.
은하수가 비치는 호수에서 조각배를 타고 있는데, 물 아래로 환상적으로 빛나는 물고기들이 지나가며 빛의 물결을 만들어 내는 느낌이었다.
귓가로 음이 스며들 때마다 색색의 물보라가 일었다.
‘좋다.’
‘좋네요. 형.’
감탄한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명곡이 그렇게 많다는 원작의 넘버들을 제치고 메인 타이틀로 정해질 만했다.
이윽고 의문이 들어간 자리에 기대감이 떠올랐다.
뜬다.
이건 백 퍼센트 뜬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콩닥콩닥거린다.
동아줄이 하나 떨어져서 허겁지겁 잡았는데 끝에서 지호가 황금을 들고 ‘얼른 오세여!’ 하는 것 같았다.
고음을 빵 터뜨리는 남자 보컬의 후렴구에 우리가 ‘크’ 하며 좋아할 때.
노래가 흘러나올 때마다 흐물흐물해져 가는 인물이 있었다.
“…….”
실시간으로 창백해지고 있는 리혁이었다.
쉽사리 부를 엄두가 안 나는 노래가 지금 들리는 ‘Falling Stars’였다.
“…….”
1초에 한 번씩 머리를 쓸어 넘기는 리혁이의 모습에 우리가 등을 토닥여 주었다.
노래가 끝나고 배급사 직원들이 물었다.
“어떠세요?”
우리가 환하게 웃었다.
“대박 좋은데여. 저 듣다가 소름 쫙 돋았어여.”
“처음에는 원작에 없는 오리지널 넘버라고 해서 걱정했는데, 이 정도면 메인 타이틀을 할 만하네요.”
“왜 감독님이 리혁이를 골랐는지 알 것 같아요. 나이대도 그렇고, 음색이 잘 어울려요.”
마지막 말에 직원들도 공감했다.
배급사 기획 피디가 웃으며 말했다.
“저희도 깜짝 놀랐다니까요. 리혁 씨를 콕 찝어서 언급을 하시기에 궁금했는데, 듣자마자 ‘아, 한국 버전은 리혁 씨가 불러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맞아요. 진짜 리혁이랑 음색이 비슷해요. 미국 리혁이 느낌.”
중현이의 미국 리혁이 드립에 사람들이 웃었다.
리혁이는 사람들의 칭찬에 머쓱하게 웃으면서도, 어딘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원곡은 누가 불렀나요?”
“주인공을 맡은 루퍼트 딘이 직접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대요.”
“루퍼트 딘이요?”
루퍼트 딘이라면 최근에 할리우드에서 뜨고 있는 20대 배우였다.
나도 얼굴을 알고 있을 만큼.
헌데 배우가 보여 주기에는 너무나 전문적인 가창력이라 우리가 의문을 품을 때, 기획 피디가 말해주었다.
“모계가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성악가 집안이래요. 배우 본인도 6살 때부터 브로드웨이에서 단역부터 커리어를 쌓아 왔다고 하고.”
어쩐지 노래 중간중간 기교라든가, 음을 처리하는 방식 등의 디테일에 있어서 꽤나 전문적이다 싶었다.
의문이 해결된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배급사 측에서는 본격적으로 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커버 영상은 저희가 업무를 총괄하되 미국 측에서 최종 컨펌을 해주는 형식으로 갈 거예요.”
“한국판 음원 출시에 대한 얘기도 있습니까?”
석환 형의 질문에 우리가 귀를 쫑긋 기울였다. 그쪽에서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 부분에 대해서 공감대가 있었어요. 수익 분배가 빡빡하긴 할 텐데 음원 출시 관련해선 문제가 없을 거예요.”
“잘됐네요.”
이번 일을 잘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커버 영상을 잘 찍어서 한국어 버전에 대한 수요가 생기면 우리에게도 이득이 되는 거니까.
우리 실장님이 배급사 직원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절차라든가, 수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가벼운 이야기들이지만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에는 돈이 가득했다.
하하 웃는데 서로 ‘얼마?’, ‘먼저 제시요’, ‘ㄴㄴ 님 먼저’ 하는 줄다리기 같은 대화들이었다.
“분위기가 좋네요.”
흐뭇하게 웃는 중현이에게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렇게 우리 매니저가 배급사 직원들로부터 하나씩 좋은 조건을 쏙쏙 빼내오는 동안 테이블 한구석에서 필담으로 가벼운 회의를 나누었다.
오기 전부터 준비한 질문거리들 중 보완해야 할 것을 찾기 위함이었다.
“그럼 그렇게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실장님.”
“감사합니다.”
“가수 담당이라고 들었는데, 이쪽 업계도 빠삭하시네요,”
“회사에 배우 담당하는 분들이 많아서 귀동냥으로 들은 게 조금 있었습니다.”
기획 피디가 차분하게 대답하는 석환 형에게 묘한 시선을 던질 때.
“저희도 몇 가지 여쭤도 될까요?”
“네. 그럼요.”
필요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간단한 곡을 써내기 위해 해당 장면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노래가 들어갈 구간 길이에 대해 문의하고.
커버 영상을 찍게 될 ‘Falling Stars’의 편곡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편곡을 해도 된다고요?”
“네. 제작사 측에서 일정 선에 있어서는 편곡을 해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곡을 완전히 바꾸는 게 아닌 이상은.”
“오, 정말 좋네요.”
상대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편곡 등은 허락하지 않을 거라고 지레짐작하고 있었는데, 리혁이에게 딱 맞는 깔맞춤 곡으로 바꿔 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기획 피디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바람꽃이나 뉴블랙 곡들이 대부분 우주 씨가 쓴 거라고 했죠? 명곡단에서 편곡하는 걸 봤는데.”
우리 애들이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우주 형이 다 썼어요.”
“저희는 이번에도 얹혀갈 계획이에여.”
다시 한 번 결심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이 녀석들을 갈아 넣기로.
하하 웃던 기획팀 직원들이 말했다.
“짧은 소절이라지만 기대가 되네요. 어떤 게 나올지.”
“나도 기대된다. 저 바람꽃 진짜 좋아하거든요. 지금도 출근할 때 들으면서 와요.”
“명곡단에서 편곡해서 불렀던 인생도 좋았는데.”
우리 노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말을 기분 좋게 들었다.
이럴 때 보면 곡이 대중적으로 반응을 얻었다는 게 실감이 났다.
가요계와는 거리가 먼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뉴블랙의 노래를 알고 있었으니까.
“참, 작업 시간은 어느 정도 드리면 될까요? 2주?”
“일주일이면 될 것 같아요.”
“……?”
“주축이 될 멜로디는 이미 만들어서요.”
“벌써요?”
“네. 메인 타이틀인 Falling Stars와도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동생들이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나는 ‘오기 전부터 만들어왔구나’ 하며 감탄하는 직원들에게 어색하게 웃는 중이었다.
미리 준비한 거 아니었는데.
방금 Falling Stars를 들으면서 떠올린 멜로디였지만 굳이 정정하지는 않았다.
직원들이 호기심을 보였다.
“기대되네요.”
“네, 아마 마음에 드실 거예요.”
웃으며 답했다.
내가 듣기에도 딱 좋다 싶은 멜로디였으니까.
저쪽에서 요구하는 장면에 어울리는, 반짝이는 요정들이 통통 튀어다니는 듯한 발랄한 느낌의.
* * *
회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곡을 만들었다.
원래는 계획대로 한두 소절만 만들려고 했는데, 가지에서 이파리가 피어나듯이 아이디어가 하나씩 샘솟았다.
그래서.
“아예 곡을 하나 썼다고요?”
“응.”
동생들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어느 부분을 잘라내서 보내 주면 좋을지, 듣고 나서 한 번 말해 줄래?”
“음…….”
노래를 들려주었더니 다들 고개를 갸우뚱했다.
의문스럽게 바라보는 나에게 비주가 답했다.
“다 좋아서 어느 부분을 잘라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래?”
“네, 이 부분이 어울릴까 싶다가도 저 부분이 더 어울릴 거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다른 동생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음… 여덟 쪽으로 나뉜 피자 느낌이에요. 어느 쪽을 고르든 맛있을 거 같은데. 아, 피자 먹고 싶다.”
“형이 피자 젤리 사 줄게.”
한편, 중현이의 비유에 모두가 공감했다.
노래를 들은 A&R팀은 물론이고, 강 감독님도 턱을 쓰다듬으며 난색을 표했다.
-여기서 뭐 하나 잘라내기가 뭐한 걸.
“그런가요?”
-그냥 잘라내지 말고 그 상태로 완성을 시킨 다음에 보내보는 건 어때? 그게 더 나을 거 같은데. 나도 음감으로서 애매한 상황일 때는 제작사 판단에 맡겨 버리거든.
그래서 일단 완성한 뒤에 정하기로 결정했다.
아무래도 보안을 지켜야 할 사안이기에 마무리 작업은 외부 작곡가들 대신 A&R팀이 합류했다.
“이 부분 편곡을 좀 부탁드릴게요.”
“어느 부분?”
“여기서부터 여기까지요.”
“……오호, 처음부터 끝까지구나. 우주야.”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입가를 부들부들 떠는 직원들이었다.
“작업 다 끝나면 고기 사 드릴게요.”
“한우? 육우?”
“당연히 한우죠.”
고기로 꾀어내서 작업을 맡겼다.
“그런데 왜 ‘사나이가 간다’ 1부를 틀어놓고 작업하세요?”
“이걸 보면 좀 힐링이 돼서. 비 오는 ASMR처럼 듣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지거든.”
“…….”
“어우, 좋다.”
내가 ‘흐얽끅!’ 하면서 레펠에서 내려오거나 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걸 보며 좋아하는 A&R팀 작곡가들이었다.
뭐. 행복해하시는데 좋은 거겠지…….
초콜릿 공장의 움파룸파족처럼 직원들이 곡을 뚝딱뚝딱 하는 동안, 우리는 본업에 집중했다.
OST도 중요하긴 했지만 엄연히 말해서 우선순위 아래에 있는 프로젝트였다.
좋은 반응을 얻는다고 해서 갑자기 기적처럼 ‘와! 할리우드랑 빌보드 진출! 뿅!’ 되는 것도 아니고.
미국 진출을 본격적으로 계획했다면 모를까.
아직 한국에서 정상에 오르지 못한 우리에게는 최우선적인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잘 되면 좋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정도.
중요한 건 본업이기에 OST 작업의 뒷부분은 직원들에게 맡기고, 다가올 콘서트와 앨범 준비에 매진했다.
“허억… 허억…….”
“어으, 죽겠어여.”
“사람의 몸은 왜 이리 질긴 걸까요. 쓰러지고 싶은데 왜 안 쓰러지는 거지…….”
우리 메인댄서의 지도 아래 지옥 같은 안무 연습이 이어졌다.
왜 안무가 하나 같이 다 이따위인 거냐고 울부짖는 리혁이의 말에 아무도 반박하지 못했다.
안무마다 유의해야 할 포인트가 있었다.
“이건 허리 조심해야 되고요. 이건 무릎 조심, 이건 목 조심…….”
“나인은 어때, 비주야?”
“음…… 전신?”
“…….”
콘서트의 중심이 될 메인 타이틀곡들의 안무가 하나 같이 빡센 것들투성이었다.
“이걸 하루에 다 해야 한다니…….”
거기다 세트 리스트에 들어간 앨범 수록곡 가사 암기까지 포함하니 말 그대로 첩첩산중이었다.
악몽을 꾸고도 일어날 체력이 없어서 허우적대기만 할 뿐.
시간이 갈수록 점점 초췌해지는 게 느껴졌다.
“대체 과거의 우리는 무슨 생각으로 일을 벌인 걸까.”
“그니까요.”
콘서트, 앨범, 미튜브랑 Y앱에 올라갈 컨텐츠, 거기에 더해 좋다고 넙죽 받아온 OST까지.
“돌림픽도 있어여.”
“…….”
동생들과 함께 과거의 우리를 성토하면서 동시에 편한 마음으로 임하기로 했다.
“에헤헤헤! 연습이다!”
“헤헤헤! 춤!”
“우린 우리가 아닌 거예여! 그니까 피곤해도 제가 피곤한 게 아닌 거져.”
“그러네! 우와아아!”
쉴 때마다 정줄을 놓고 회사 복도를 발랄하게 뛰어다니는 우리를 보며 대표님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머리를 매만지시곤 했다.
그런 식으로 피로와 스트레스를 분출하고 나면 다시 집중해서 일을 하곤 했다.
힘들긴 하지만 견딜 수 있었다.
에베레스트를 오르고 있는데 이제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느끼는 기분과 비슷했다.
지금 우리를 괴롭히는 이 눈보라만 뚫고, 몇 걸음만 더 가면 새하얗게 빛나는 정상이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근데 산을 올라가면 그 다음에 내려와야 되잖아요.”
“…….”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아요?”
어쨌든 그런 기분이 우리 모두를 사로잡고 있었기에 일을 수월하게 해 나갈 수 있었다.
지난 앨범만 해도 ‘아, 이번 앨범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많았는데 이번 경우에는 그런 걱정도 덜했다.
우리 스스로 이제는 확신이 들었으니까.
그런 까닭에 감정적인 동요도 덜했다.
“형들! 형들! 이거 봐여.”
“뭔데?”
“틴스피릿이 우리랑 비슷한 때에 리패키지 앨범으로 컴백한데여.”
“허어…….”
원래는 10월 초 정도로 예상한 틴스피릿의 컴백이 8월 말로 앞당겨졌다는 소식에 다 같이 기겁했다.
다른 의미로.
“틴스피릿 선배님들도 스케줄 미쳤구나.”
“해외투어 끝나고 바로 컴백하는 거야. 그러면?”
“댓글 보니까 한국 입국하고 바로 다음 날이 돌림픽 녹화래요.”
기사 사진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틴스피릿의 뒤로 ‘아 존나 힘드네…’ 하는 말풍선이 보이는 듯했다.
마지막 콘서트가 LA 쪽이라고 하던데. 시차 적응도 안 된 상황에서 돌림픽에 나와야 하는 거였다.
저 정도 급인 보이그룹도 돌림픽의 마수는 피할 수 없다는 사실에 웃음이 나오는 한편, 우리 처지에 대한 감사함을 느꼈다.
“우리 정도면 꽤 널널한 거였네…….”
우리 정도면 나쁘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작년 11월 때처럼 TNT의 컴백 연기 소식에 가슴이 철렁했던 때와는 달랐다.
틴스피릿의 컴백과 겹친다는 소식에도 차분하게 반응할 뿐.
만나면 우리가 이긴다, 진다는 차원을 떠나 틴스피릿은 틴스피릿이고 뉴블랙은 뉴블랙이다 하는 기분이었다.
어떤 경우든 우리가 묻힐 일은 없을 테니까.
노래에 대한 확신도 있긴 했지만, 무엇보다 등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는 수플레들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주 사간에서 특공대원들 때문에 코평수 벌렁이는 짤.gif
-귀여워.. 난 왜 이런게 좋지..
-깔깔깔
-파도 파도 흑역사는 끝이 없어여~~
-파파흑
-우리 우주 평생 흑길만 걷자!! (주먹x2)
…가끔 내부의 적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팬들 덕에 불안함이 많이 희석된 건 사실이었다.
조별로 월말평가를 준비할 때, 같은 팀에 잘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느꼈던 든든함과 비슷했다.
그리고 그런 우리의 팀원들을 위해 우리는 그동안 준비해 왔던 것을 꺼내 들었다.
“야야, 누가 왕봉이 꺼내래. 넣어 둬.”
“…….”
중현이가 시무룩하게 왕봉이를 구석에 두고는 달팽이를 들었다.
“달봉이요. 이 사람아.”
“아. 맞다.”
헛기침을 하고는 동생들을 둘러보았다.
“준비됐어?”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8월 1일.
지금까지 준비해 왔던 Y앱의 첫 라이브 방송을 할 시간이었다.
* * *
저녁 7시.
덜컹이는 지하철, 사람이 하나둘 빠지기 시작하는 도서관, 야경이 보이는 버스 창가자리 등.
전국 각지에 있는 수플레들의 눈이 반짝였다.
[whY-App]
깜짝 라이브 시작!
뉴블랙과 함께하는 퇴근길 라디오~!
진동과 함께 울리는 알림을 눌러보았다.
그간 SNS 라이브 방송만 한 터라 다소 낯선 인터페이스에 이질감을 느끼고 있을 때.
화면 속에 뉴블랙 멤버들이 등장했다.
‘오, 진짜 라디오다……!’
레몬 엔터에서 신경을 쓴 것인지, 멤버들이 앉아 있는 세트는 라디오 스튜디오와 똑같았다.
헤드폰을 낀 우주가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반쯤 곱게 넘긴 회색 머리카락에 시선을 뺏길 때, 듣기 좋은 목소리가 각지에 흩어진 팬들의 이어폰에 흘러나왔다.
[어떤 막내가 늦잠을 자서 아침 연습을 뺀 것에 대해서 변명을 했대요.]
[전날 밤하늘을 보는데 너무 예뻐서, 구경하다 늦게 잤어여.]
싱긋 웃으며 따라하는 비주의 대사에 옆에 있는 지호가 눈을 째려보고 있었다.
우주가 말을 이었다.
[참으로 감상적인 이야기죠? 그 말을 듣고 그간 너무 이성적으로만 살고, 감성적인 면이 부족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연습이 먼저죠.]
[그래요. 감성보다는 연습이 먼저예요. 그죠. 지호 씨?]
[녜…….]
막내가 시무룩하게 ‘네…’ 하는 동안 형들이 깔깔 박수 치며 웃었다.
우주가 다시 마이크를 켰다.
[물론, 이것은 가상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오전에 일어난 일이 아니구요. 어쨌거나 그만큼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는 의미죠.]
그러곤 말을 이었다.
[오늘 하루 고생한 당신을 위해 뉴블랙이 함께합니다. 첫 곡이죠. 수고했어 오늘도.]
노래가 나올 타이밍이라 수플레들이 귀를 기울일 때.
우주가 손을 움직여 테이블에 있는 미니건반을 뚠딴딴 두드렸다. 그와 동시에 리혁이 노래를 불렀다.
수플레들이 웃으며 댓글을 적었다.
-수작업ㅋㅋㅋㅋㅋㅋㅋ
-여러분은 지금 가내수공업처럼 라디오를 하는 아이돌을 보고 계십니다
-리혁이 노래 좋다ㅠㅠㅠㅠㅠ
-엇ㅋㅋㅋㅋ 댓글 읽는 중인거구나 리혁이 귀 벌게졌긔
-귀귀귀귀 베이베베이베
-역시 스리혁이다.. 즈 으려운 상황에서도 목소리 컨츄롤이 증말 대단하다. 그래서 우리 누뷰렉에도 돔연습실이 필요하다, 그릏게 말씀드릴 수 잇겠으요
실시간으로 보이는 댓글을 잠시 끈 리혁에게 다른 멤버들이 태블릿을 들이밀었다.
노래가 끝나고 뉴블랙 멤버들이 카메라를 보고 인사했다.
[두울~ 셋!]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와아아!]
자기도 모르게 화면을 향해 ‘우와’ 하며 손을 흔들던 수플레들이 주변 시선에 손을 오므리고 내렸다.
[손을 흔들어서 창피했다는 분들이 있네요. 괜찮아요. 여러분. 그 정도는 금세 잊힐 거예요. 제가 잘 압니다.]
[인정하는 부분이에여. 누가 창피함을 묻거든 고개를 들어 우주를 보라, 이런 말이 있거든여.]
수플레들이 웃었다.
그 뒤로 실제 라디오와 비슷한 방식으로 라이브 방송이 진행됐다.
[우주오빠나랑소풍가자 님, 저희 지금 라디오 스튜디오 대여해서 진행 중이에요. 카메라 뒤에 매니저 형들 있어요. 네, 소풍 잘 다녀오시고요. 저는 일 때문에 못 가요…….]
[스 님이시군요. 라디오 개국 축하한다니 감사합니다.]
[귓뷁밝밝 님, 오우. 아이 라이크 유어 네임.]
그렇게 라디오 코너처럼 ‘뉴블랙에게 물어봐. 근황 토크!’ 코너가 이어졌다.
질문이 쏟아지는 가운데, 화면을 쭉 읽던 비주가 뭔가를 발견했다.
[어! 신곡에 대한 질문이 많네요. 신곡 스포?]
[스포 뭔지 알아여. 형? 스포?]
[스포일러! 맞지?]
그러곤 카메라를 향해 자랑스럽게 웃는 비주였다.
‘나 이런 사람이야’ 하며 뿌듯해 하는 비주의 모습에 다른 멤버들이 박수를 치며 웃었다.
DJ석에 앉은 우주가 말했다.
[음… 신곡 스포라… 원래는 안 되는데.]
[1초 어때요?]
[오. 1초 좋다. 그럼 저희 비주가 1초 동안 안무 스포를 해 드리겠습니다.]
이내 화면 뒤에 있는 매니저가 ‘OK’ 사인을 보낸 모양이었다.
이윽고 1초 안무 스포를 하기 위해 비주가 나왔다.
멤버들이 기대감 어린 얼굴로 1초 스포일러를 기대하고 있을 때, 비주가 스윽 동작을 취할 때였다.
[아니.]
[비주 형! 그 파트……!]
[야! 야! 막아! 저거!]
중요한 파트인 것인지 멤버들의 엉덩이가 들썩였다. 우주가 다급한 얼굴로 중현을 불렀다.
비주가 춤을 추려고 할 때.
중현이 날렵한 몸을 날렸다. 부리부리한 눈썹이 휘날릴 만큼 빠른 속도에 수플레들이 감탄하는 동안.
이윽고 이어진 상황에 다들 눈을 깜빡거렸다.
[……?]
화면 안에 있는 뉴블랙과.
‘……?’
화면 밖에 있는 수플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중현이 비주를 하늘 위로 들어서 카메라 앵글 바깥으로 치웠다.
‘어, 사라졌어.’
다들 벙찐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정적이 흐른 채팅창 위로 누군가의 댓글이 하나 떠올랐다,
지금의 각도를 떠올리게 만드는 한 장면 때문이었다.
-라이온킹..?
이윽고 화면 안팎으로 모두의 웃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