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94)화 (294/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94화

부스럭부스럭.

차 안에서 퀭한 얼굴로 옷을 갈아입는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들 잠이 덜 깬 얼굴로 옷을 입다 말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지호가 상의 지퍼 단추에 손을 올린 채 시트에 엎어졌다.

“으어…….”

“아이고, 허리야.”

나도 허리를 두드렸다.

“힘들어 죽겄네. 바지는 쉬었다 갈아입자.”

“네에…….”

동생들이 내 말에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상의만 돌림픽용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채 콩벌레처럼 몸을 앞으로 웅크렸다.

세팅된 헤어와 메이크업을 망치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러곤 정신을 잃었다.

“얘들아.”

“흐어이… 삼겹살…….”

“얘들아. 일어나.”

“흐읍. 저 안 잤… 헛…허요. 형.”

입가의 침을 훔치는 내 모습에 원석이 형이 웃었다.

10초 만에 다시 잠이 든 우리를 흔들어 깨우던 매니저 형이 짠하다는 듯 초콜릿을 건넸다.

초췌한 얼굴로 초콜릿을 우물거리던 우리가 달콤한 맛에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몇 시에 잤는데 그래? 다른 날은 몰라도 어제는 일찍 자라고 우리가 그랬잖아.”

“저희 한 시 반이요…….”

“일찍 잤네?”

“일찍 자서 더 그런가 봐요.”

돌림픽을 하루 앞두고 나름 컨디션을 좋게 만들겠답시고 일찍 잔 것이 패착이었다.

피로라는 녀석은 참으로 오묘해서, 계속 피곤이 누적된 상태라면 할 만한데. 중간에 이렇게 한 번씩 풀어주면 더 피곤해진다.

1.5리터 생수병을 거꾸로 든 것 같다고 할까. 한 번 마개가 열리면 콸콸콸 쏟아져 내리는 듯한 느낌.

온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원석이 형. 저는 이번에 중요한 교훈을 하나 깨달았어요.”

“음, 뭔데?”

“앞으론 절대 콘서트랑 앨범 준비를 같이 하지 않을 거예요.”

상대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러곤 먹을거리를 좀 사오겠다며 차에서 내렸다.

그 동안 우리는 바지를 손에 든 채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아, 바지 갈아입기 귀찮아.”

“저두요…….”

“그냥 이대로 들어갈까여? 아무도 모를 거 같은데.”

“…….”

빨간색 반바지를 입은 막내가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다 같이 비척비척 연보라색 체육복 바지로 갈아입었다.

최근 콘서트 안무 연습의 여파 때문인지 뻐근한 다리 근육이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흐어이…….”

“흐어….”

“유후.”

중간에 섞여 들어온 함정 때문에 다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비명을 질러대는 우리와 달리 병원에서 공식 인정 받은 상위 0.1% 몸의 주인은 멀쩡했다.

한참 웃고 나니 몸이 좀 풀리는 것 같다.

옷을 다 갈아입고 몸을 정돈한 다음 셀프캠을 들었다. 화면 속에 메이크업을 마친 다섯 얼굴이 보였다.

은회색 머리에 헤어밴드를 한 내 얼굴 옆으로 졸개들이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돌림픽에 왔다.”

“그렇다.”

중현이가 웅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이제 차에서 내린다.”

“가서 활 쏘고 뛴다.”

“리혁이 형은 아무것도 안 한다.”

“69점은 조용히 한다.”

동생들이 한 마디씩 하고는 다시 내게 순서가 돌아왔다. 내가 진지하게 말했다.

“오늘 양궁 우승한다.”

“좋다.”

“그럼 우린 얹혀간다.”

화면 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표정들이 벌써부터 날로 먹으려고 결심을 굳힌 듯했다.

마음 속이 마구니로 가득해 보이는 동생들을 보며 눈을 가늘게 뜰 때.

빗으로 머리 끝을 샵샵 정돈하던 리혁이가 물었다.

“그런데 우리 왜 이 말투로 하는 거예요. 대체?”

“그러네.”

셀프캠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네, 저희는 지금 고양시에 있는 실내체육관 앞 주차장에 도착했고요. 이제 촬영장 입장을 앞두고 있어요.”

“안 다치고 열심히 하고 오겠습니다.”

“다 같이 화이팅 할까요?”

힘차게 화이팅을 한 후에 셀프캠을 매니저 형들에게 건네주고는 차에서 내렸다.

아침이라 그런지 공기가 선선하다.

서로에게 웃는 연습을 몇 번 정도 하고는, 표정이 좋다는 OK 사인을 보내주었다.

“둘, 셋!”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경기장 밖에서 ENG 카메라를 들고 있는 카메라맨에게 그룹명을 외치며 인사를 했다.

배정 받은 대기실로 향하는 동안 마주치는 아이돌과도 인사를 나눴다.

“이번에 사간 대박이라고 해서 봤는데, 진짜 재밌던데요.”

“사간 잘 봤어요. 8번님 화이팅!”

“요새도 1팀 분들이랑은 연락하고 지내요?”

다들 사간에 대해 언급을 하는 모습에 ‘오오’ 하며 감탄했다.

주로 연습실과 회사에만 머무르던 터라 느끼지 못했던 파급력을 느낀다고 할까.

“오!”

훤칠한 키를 지닌, 와일드의 멤버 백경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성큼성큼 걸어왔다.

“이번에 사간 진짜 재미있게 봤어요. 설 때 봤는데도 이렇게 또 보니까 신기하다.”

“오! 뉴블랙이다!”

와일드의 다른 멤버 우산, 정군도 합류해서 우리를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심지어 나와 함께 신토끼에서 녹화를 했던 우산도 날 마치 뭔가 특이한 존재처럼 바라보고 있다.

멤버들 특유의 외모 때문에 ‘빅 독(big dog)’이라는 팀명으로 데뷔할 뻔했다는 에피소드를 들었는데.

도베르만을 닮은 우산을 비롯해서 대형견들에게 둘러싸인 느낌이었다.

“그거, 그거, 원반으로 부메랑 어떻게 한 거예요?”

“저도 일부러 한 게 아니라서요. 그게 스냅을 잘 퉁기면 돼요. 슝보다는 이렇게 슉슉 하는 느낌으로요.”

“오오, 슉슉…….”

셋이 동시에 내 포즈를 따라하는 모습에 웃었다.

사간이 진짜 흥하긴 했구나.

같은 아이돌도 방송 내용에 대해서 훤히 알고 있는 걸 보면.

보면서 엄청 신기했다는 얼굴로 질문을 하는 와일드 멤버들과 웃으며 대화를 나눌 때.

우산이 불쑥 손을 내밀었다.

“참, 잠깐 악수 좀 한 번…….”

왜 갑자기 악수를 청하나 했더니 중현이에게 하는 말이었다.

중현이가 푸근한 얼굴로 손을 맞잡았다.

우산이 중현이의 악력을 체험하고는 ‘오오, 과연’ 하는 표정에 웃음을 터뜨렸다.

이따가 녹화할 때 또 얘기하자는 말을 하며 헤어진 후.

“사람들이 절 신기해 하고 있어요. 형.”

“그럴 만하지.”

내가 수긍했다.

“같이 사는 우리도 네가 신기한걸.”

“우주 형 몸치 괴담과 함께 뉴블랙 5대 미스터리 중 하나잖아여.”

그런 우리의 반응에 중현이가 흐뭇해 했다.

일요일 날 했던 ‘사나이가 간다’ 3부의 여파인지 스탭들까지 우리를 보고 신기해 하고 있었다.

특히나 중현이는 3부 마지막에 나온 병원에서의 검진으로 관심을 끌고 있었다.

지난 돌림픽에서 중현이와 호형호제를 하기로 했던 틴스피릿의 연후는 직접 대기실에 행차해 우리 애의 팔을 더듬어보고는 ‘와, 존나 신기해’ 라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 존나 신기한 아해야.”

“네. 형.”

60미터 달리기를 앞두고 대기실에서 스트레칭을 하는 곰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안 다치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막 죽을 힘을 다해 뛰어야겠다, 이러면 안 돼.”

“네. 그럴게요.”

신발끈이 양쪽이 대칭되도록 열심히 묶고 있던 리혁이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흠흠, 제가 지난번에 달리기 은메달 땄다고 해서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형. 뭐, 그냥 편하게 뛰고 와요.”

“응. 알았어.”

산비탈에서 굴러도 산비탈이 무너질 것 같은 우리 애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비주와 리혁이가 달라붙어서 잔소리를 하는 동안 입장을 앞두고 옷매무새를 다듬을 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에 우리와 매니저, 스타일리스트들이 고개를 돌렸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캐주얼 정장을 멋들어지게 입은 중년 남자가 매니저와 5인조 보이그룹을 대동하고 들어왔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지만, 보자마자 누군지 알고 있었다.

“어, 이사님?”

“오랜만이구나. 우주야.”

내가 TJ에 입사했던 시절에 이사였고, 지금은 숨 엔터를 이끌고 있는 조동완 대표이사였다.

그가 우리 스탭들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명함을 돌렸다.

그리고.

“안녕하세요, 에이플비입니다!”

5인조 아이돌도 활기차게 인사했다.

기쁨 가득한 네 얼굴 속으로 어딘가 슬퍼 보이는 자화상 같은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촉촉한 군 후임이었다.

보자마자 웃음이 터질 뻔한 걸 참았다.

“아무래도 직접 인사를 오는 게 예의 같아서.”

조동완 대표가 내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은성이가 ‘사나이가 간다’에 나가기로 됐어.”

“정말요?”

끼얏호.

“사간의 도준기 피디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우주 네가 은성이를 엄청 열심히 영업했다고 하더라고. 아무리 친한 후임이라고 해도, 그렇게까지 해주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아니에요. 은성이가 그만큼 예능감이 좋은 친구여서 제가 마음 놓고 추천할 수 있었어요.”

“그렇지? 은성이가 사고뭉치여도 예능감 하난 좋으니까. 하하!”

“하하하!”

“핫핫핫!”

나와 조동완 대표가 허공을 향해 핫핫핫 하며 같이 웃었다.

곁에 있는 동생들이 웃는 날 바라보며 눈빛으로 말했다.

‘저 분이 오해하시는 건데.’

‘우주 형은 그냥 저 분이 군대 가는 걸 원했던 건데.’

내가 설레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은성이는 군대 가나요? 군대?”

“해병대 아니면 해경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우와우으…어이구, 고생하겠네요.”

나도 모르게 ‘예스!’ 하면서 주먹을 쥘 뻔했다.

고생이라는 말에 조 대표가 손사래를 쳤다.

“고생이라니. 신인 아이돌이 예능 하나 출연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 그렇지. 은성아?”

억지로 엄마 손에 끌려온 아이처럼 딴청을 피우고 있던 은성이가 내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곤 심호흡을 깊게 하더니 입가를 파르르르 떨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슨브늠…….”

“음? 안 들리는데?”

“아, 진짜 너무너무 감사하다구요!”

격한 감사 인사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조동완 대표도 못 말린다는 듯 웃었다.

“지금 사간이 엄청 핫한데, 다들 들어가려고 눈에 불을 키고 있을 때 잘 들어갔지.”

“잘 돼서 다행이에요.”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태현이가 사간 제작진에게 나를 적극 추천했던 게 어떤 마음이었는지 이해가 간다고 할까.

이 바닥에서 기회를 잡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이었다. 데뷔 초의 쌩신인 때 예능 하나 잡히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으니까.

그걸 아는지 나를 바라보는 은성이의 눈빛이 1초에 한 번씩 바뀌었다.

‘고마워요.’

‘아니다. 이건 안 고마워!’

‘고마워요, 형…….’

‘아니야!’

그런 다채로운 눈빛에 따스한 미소로 응수할 뿐이었다.

잘 가라. 해병대.

부들부들 떨었다가 고마워했다가를 반복하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후임을 내버려둘 때.

조 대표가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

“이런, 내가 시간을 너무 많이 뺏었네.”

“아, 아니에요.”

“아무튼 감사 인사도 할 겸, 조금이나마 사례를 하려고 이렇게 찾아왔어.”

에이플비의 매니저가 우리 멤버들과 스탭들에게 상자를 내밀었다.

“오…….”

스탭들이 먹을 간식거리와 음료와 함께 대기 시간에 쓸 담요 같은 것이 들어있는 상자였다.

센스 있게 구비된 선물상자에 다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넬 때, 내게 따로 다가온 조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정말 고맙다.”

“아니에요.”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필요한 일이 생기면 도우마.”

“네. 그런 일이 생기면 말씀 드릴게요.”

소원권 하나를 건네주고 떠나는 램프의 요정처럼 싱긋 웃던 중년인이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는 나섰다.

TJ 엔터 시절부터 느끼긴 했지만 정말 비즈니스를 잘하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저희도 가보겠습니다. 선배님.”

에이플비의 멤버들도 쭈뼛쭈뼛 우리에게 인사를 하고는 그들의 뒤를 따라 나섰다.

그 끝에서 은성이가 발랄하게 인사했다.

“이따 봐요. 선배님들!”

“네. 그래요!”

“제가 이따 재미있는 이야기를 엄청 들려드릴게요. 약속~?”

“약속!”

우리 애들에게 눈 윙크를 하던 은성이가 이번에는 내 쪽에 고개를 홱 돌리고는 사무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이따 뵙겠습니다.”

온도차를 뚜렷하게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 인사를 하는 듯했는데, 그저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은성아.”

“네?”

“형광색 유니폼 입고, 그런 말 해봐야 하나도 안 무서워.”

“에잇!”

그러곤 누구보다 조심스럽게 문을 꼬옥 닫는 누군가의 모습에 우리 스탭들이 웃음이 터졌다.

* * *

이번 추석 돌림픽은 8개 팀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무지개처럼 8개 색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우리는 그중에서 8번째인 보라색 유니폼의 ‘우리를 보라’ 팀이었다.

같은 팀원으로는 DNS 미디어의 걸그룹 라비앙로즈, 신인 보이그룹 아이리스 등이 있었다.

“이번엔 우리 다른 팀이네.”

어두운 통로 안.

입장을 준비하는 동안 진홍색 유니폼을 멋들어지게 차려 입은 4인조 걸그룹이 아쉬운 표정으로 우리에게 말했다.

“같은 팀 하고 싶었거든.”

스칼렛의 리더, 아라가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우승해서 대표님한테 고기 얻어 먹어야 하는데…….”

“근데 이번에 저희 두 종목 밖에 안 나가요. 누나.”

내가 웃으며 답했다.

“어차피 별로 도움은 안 될 거예요.”

“아, 맞다. 콘서트 한다고 했지. 축하해!”

“축하해!”

흥겹게 춤을 추면서 콘서트를 축하해주는 회사 선배 그룹에게 우리도 어깨춤으로 답해주었다.

주변에서 ‘레몬 애들은 흥이 넘치는구나…’ 하며 웃을 때.

목을 뚝뚝 꺾던 스칼렛의 리나가 조곤조곤 말했다.

“원래 이번에도 너희랑 우리가 같이 L팀으로 될 뻔했는데.”

“그런데 왜…?”

“밸런스가 안 맞는다는 말이 많았대.”

“…….”

어쩐지 이상하다 했다.

다른 소속사들은 대부분 소속사 그룹끼리 뭉쳐 있었는데, 몇몇 회사와 우리는 따로 떨어져 있었으니까.

밸런스 문제 때문에 떨어진 거구나.

그런 말을 하던 스칼렛 멤버들이 입장을 앞두고 결연한 눈빛을 주고 받았다.

“그럼 기왕 이렇게 된 거, 우승은 우리가 한다.”

“가자, 언니.”

고기에 대한 열망으로 활활 타오르던 스칼렛이 선두 그룹으로서 입장을 시작했다.

우리가 ‘고기 먹어, 많이 먹어’ 하며 응원해 주었다.

그 동안 스칼렛과 함께 ‘빨강최강’ 팀에 속한 보이그룹이 우리 앞을 스쳐갔다.

스트릿 보이즈였다.

동생들끼리 꺄르륵 웃는 가운데 한조와 내가 시선을 피했다. 서로 헛기침을 하면서.

“아… 안녕.”

“안녕.”

스트릿 보이즈 측에서 ‘꺄악!’ 하며 익룡 소리를 냈고 우리 동생들도 ‘으아아’ 하며 닭살이 돋았다는 듯 팔을 쓰다듬었다.

“으아, 개어색해!”

“그러게, 왜 다음에 만날 때 반말하자고 한 거예요?”

“…….”

그때는 까먹고 있었다.

“돌림픽에서 바로 만날 줄은 몰랐지…….”

“은근히 바보라니까여. 이 형들.”

“너한테 바보 소리 듣고 싶진 않아. 지호야.”

그나저나 진짜 어색하네.

스칼렛과는 그래도 이제 동갑내기인 리나나 나보다 어린 데이지와는 편하게 말을 하게 됐는데.

정작 교류가 많았던 한조와 반말을 하자니 뭔가 어색하다.

“아, 안녕. 우주구나.”

“하, 한조야.”

“우, 우리 반말할까?”

나와 한조를 따라하며 꺄르륵 대는 동생들을 무시했다.

그 동안 눈앞으로 에이플비와 함께 ‘파랑을 일으키자’ 팀에 속한 틴스피릿이 불량한 걸음으로 걸어나갔다.

“…….”

‘내 앞길을 막지 마라, 이것들아’하는 표정으로 걷는 거친 10대들의 모습에 다들 비켜주었다.

어제 해외 투어를 마치고 귀국했다고 하던가.

콘서트가 끝나자마자 바로 불려온 셈이니 어지간히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3초 후.

불만 가득한 틴스피릿의 걸음걸이가 유순해지면서 동시에 굽어져 있던 허리가 쭉 펴졌다.

어느 반전 영화 마지막에서 절름발이가 뚜벅뚜벅 걷는 걸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표정도 순진무구한 미소년으로 변해 있었다.

“…….”

볼 때마다 신기한 광경이었다.

뒤이어 남색 유니폼을 입은 7번째 팀까지 입장한 후, 우리의 입장 순서가 됐다.

선배 그룹이 깃발을 들고 앞서 나가고 우리가 뒤따라가면서 경기장 안으로 진입했다.

“와아아아!”

가운데 위치한 커다란 전광판에 우리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어 나오고 있었다.

중계를 맡은 예능인 MC들의 목소리가 울렸다.

-네, 8번째 팀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보라’ 팀이죠. 라비앙로즈, 그리고 뉴블랙이 들어오고 있네요.

-강력한 다크 호스들이 포진한 팀이네요.

-우주 씨, 중계석에 손 한 번 흔들어주세요!

중계석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곤 수플레들이 앉아 있는 좌석을 향해 또 손을 흔들었다.

지난번 설 때와 비교했을 때, 거의 두 배로 확장된 구역에 수플레들이 달봉이를 흔들고 있었다.

뭔가 뿌듯한 기분에 손을 열심히 흔들었다.

우리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자, 수플레들이 주섬주섬 응원봉을 반짝이는 빨강색으로 바꾸었다.

포즈를 보아하니 두근거리는 심장을 표현한 것 같았다.

이윽고 카메라가 그 광경을 전광판에 담자 파도타기까지 하는 팬들을 보며 웃었다.

그렇게 입장을 마치고, 곧바로 개막식 전 행사인 60미터 달리기가 진행됐다.

“그럼 다녀올게요.”

남자 예선 시작을 앞두고 중현이가 일어났다. 우리가 잘하고 오라며 ‘화이팅’ 해 주었다.

스타팅 라인에 중현이가 서는 동안 리혁이가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그냥 내가 뛰는 게 나았을 것 같은데.”

“응?”

“아무래도 단거리는 내가 더 빠르잖아요. 중현이 형은 단거리 스타일은 아니어서…….”

그건 그랬다.

얍삽하게 빠르게 달리는 건 리혁이 전문이지 중현이는 뭔가 조금 더 지구력이 필요한 쪽에 어울리는 이미지라서.

남들 다 긴장한 얼굴로 마른침을 삼키며 몸을 푸는 동안, 순둥한 얼굴로 계속 우리에게 손을 흔드는 중현이가 보였다.

그 옆에서 연신 심호흡을 하는 LB를 바라보고 있을 때, 곁에 있던 스트릿 보이즈가 말해주었다.

“이번에 리혁이 안 나온다고, 나무가 아주 기세등등해요.”

“맞아.”

“이번 우승은 자기일 거라고 호언장담하고 다녔어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결연한 의지를 빛내는 LB를 바라보았다.

하긴 저기도 엄청 빠르긴 하지.

하지만 그 옆에는 작년도에 1등을 거둔 소울식스의 케일럽도 있었다.

LB와 케일럽이 서로를 곁눈질로 바라보며 자세를 잡을 때, 유유자적하던 중현이도 가볍게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뿌우- 하는 소리와 함께 달리기가 시작됐다.

“와아아아……!”

경기장 좌석에 앉은 팬들이 응원도구를 흔들고 비명을 지르는 동안, 우리는 눈을 멀뚱멀뚱 떴다.

“…….”

“…….”

눈을 비볐다.

“빠르네.”

“제일 빠르네요.”

남들이 죽을 힘을 다해 달리는 동안, 혼자 평온한 얼굴로 파바바밧 달리는 애가 있었다.

탄력이 어찌나 좋은지 다리에 스프링이 달린 거 같다.

푱푱푱 할 때마다 거의 몇 미터를 점프하는 듯한 착시가 벌어진다고 할까.

남들 다 헉헉거릴 때, 평온한 얼굴로 1등 선을 끊은 중현이가 코를 긁적거렸다.

비주가 멍하니 전광판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돌림픽 신기록이래요.”

“어…….”

다들 전광판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거릴 때. 중현이가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어처구니 없는 웃음을 흘릴 때.

리혁이가 ‘말도 안 돼’ 하는 허망한 얼굴로 기록을 바라보았다. 지금 LB와 케일럽이 짓고 있는 표정과 똑같았다.

“아니, 어떻게…….”

그리고 그런 리혁이에게 지호가 해맑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형은 일본어도 뺏기고, 달리기도 뺏겼네여.”

“…….”

리혁이가 부들부들 떠는 모습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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