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95)화 (295/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95화

“저 왔어요.”

남자 예선이 끝나고 돌아온 중현이를 우리가 버선발로 마중 나갔다.

“크, 우리 달리기 1등이 오셨다.”

“김중현. 잘했어.”

“중현이 형, 진짜 잘했어여. 다리 주물러 줄까여? 바닥에 담요도 깔아 뒀어여.”

칭찬을 들으며 흡족해하던 중현이가 이내 의아하단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왜 제 칭찬을 하는데 리혁이를 바라보고 해요?”

“그럴 일이 있어.”

리혁이는 여전히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팬들에게 안 보이도록 입을 가린 녀석이 말했다.

“진짜, 이 인간들. 내가 어쩌다 이런 사람들이랑 같은 팀이 돼서…….”

“그럼 옆에 한조네로 갈래?”

“차라리 그쪽이…….”

리혁이가 고개를 돌릴 때.

“흐악!”

LB가 바닥에서 구르고 있었다.

‘3등했잖아! 3등!’ 하고 외치고 있지만, 팀원들이 통나무처럼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불태우자! 이거 불태워!”

한조까지 광기에 차서 눈을 희번덕대고 있었다.

멤버에게 격한 애정을 드러내는 상대측의 모습에 리혁이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여기가 낫지?”

“…….”

“맞아여. 적어도 우리는 말로 괴롭히잖아여.”

“자랑이 풍년이다. 왕지… 아, 비주 형! 자꾸 괜찮을 거라고 속삭이지 좀 마요! 저 괜찮다니까요!”

옆에 쭈그려 앉아서 리혁이 귀에다 뭘 속삭이나 했더니만.

비주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토닥였다.

“달리기 같은 건 못해도 괜찮아. 리혁아. 다른 걸 찾아보면 돼.”

“아으, 형이 제일 미워요…….”

“음? 왜……?”

리혁이가 앓는 소리를 내며 엎어지자, 비주가 두 손을 입에 모으고 ‘괜찮아~~’ 하고 속삭였다.

대답할 기운도 없다는 듯 꿍얼대는 소리가 돌아왔다.

“내 오늘의 수모를 꼭 기억할 거예요.”

쓰러진 두루미가 입을 나풀나풀거렸다.

“언젠가 눈 내리는 추운 겨울에 와서 리혁아, 그때 놀려서 미안했어 하면 안 받아주고, 그 자리에서 바로 문을 쾅 닫아 버릴 거예요.”

“그렇게 불쌍한 지호는 거리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당…….”

“야, 그럼 내가 쓰레기가 되잖아!”

리혁이가 ‘아오’ 하는 동안 우리가 키득거렸다. 그러곤 살짝 토라진 녀석을 달래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제는 금세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오오…….”

민기 형으로부터 건네받은 슬로건을 요모조모 살폈다.

수플레들이 준비했다고 하는데, 검은 바탕에 굵고 하얀 궁서체로 ‘잘했어’가 쓰여 있고 반대편에는 ‘괜찮아’ 라고 쓰인 응원 도구였다.

“우와. 아이디어 좋다.”

“범용성이 좋은데요. 여기저기 써먹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지금 써 봐요. 형.”

비주의 말에 따라 우리가 몸을 틀었다.

팬석을 향해 ‘잘했어’를 흔들자, 수플레들이 꺄르륵 하더니 ‘잘했어’를 흔들어주었다.

한편, 우리가 수플레들과 텔레파시를 주고받는 동안 남자 60미터 달리기 예선이 이어졌다.

“저기 봐여. 은성 님도 달리기 나왔어여.”

“……은성이가?”

고개를 돌아보니 세 번째 레인에 서 있는 은성이가 여유로운 얼굴로 다리를 학처럼 쭉쭉 폈다.

그런 뒤에 바로 아파했다.

“의외네.”

“왜여? 저분 운동 못해여?”

“아니. 잘하는데 몸 쓰는 거 엄청 귀찮아하거든.”

“…….”

“나는 쟤가 아이돌이 된 게 아직도 신기해.”

눈치는 빠른데 눈치를 안 보고, 몸도 잘 쓰는데 몸 쓰는 거 싫어하는 애가 바로 쟤였다.

화면 속에서 ‘케빈’이라는 이름표를 단 채 윙크하는 녀석이 나올 때.

카메라가 나를 비췄다.

지난 신토끼 방송 2부 때 ‘군대즈’라는 별칭으로 엮였던 관계를 의식한 듯했다.

바로 표정을 바꿨다.

군 후임의 애교에 떨떠름한 표정을 짓던 내가 0.1초 만에 활짝 웃으며 ‘화이팅’ 하자 객석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멀찍이 중계석에서 MC들까지 웃는 걸 보니 뭔가 드립을 치는 모양이다.

머쓱하게 웃을 때, 멀찍이 은성이를 구경하던 지호가 내게 속삭였다.

“근데 저분도 잘생기긴 한 거 같아여.”

“그치?”

알멩이가 이상하지, 껍데기는 괜찮은 애였다.

“잘생겨서 노래 빡시게 연습 안 했어도 일단 오디션에서 붙여 줬을 거 같은데.”

“…….”

“그건 모르져. 저분?”

“응. 모를 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행복한 메인 보컬로 살게 해 주자는 내 말에 지호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이스크림 100개를 공물로 바치라고 요구했다.

중현이에게 던져 버리곤 달리기 예선을 관람했다.

“와아아……!”

시작 소리에 맞춰 보이그룹 멤버들이 일제히 달음박질을 쳤다.

하지만 1등을 거둔 건 은성이가 아니었다.

170 정도 되는 키에 엄청나게 빠른 스피드를 자랑하는 신예가 있었으니, SNH 엔터에서 올해 새롭게 내보낸 보이그룹 ‘에노티’의 멤버였다.

“쟤네가 에노티구나.”

“저 사람들도 알아요. 형?”

비주의 물음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경쟁 오디션 프로였던가? 거기서 나온 ‘V’라는 곡이 차트에 들었거든.”

“아아…….”

“컨셉이랑 노래 좋더라.”

‘도도’라는 이름표가 붙은 보라색 머리의 멤버가 팀원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방방 뛰는 게 보였다.

한편 ‘아…’ 하던 은성이는 ‘데헷 2등’ 하며 둥기둥가 걸어와서는 멤버들에게 브이를 했다. 멤버들이 훈훈한 얼굴로 녀석의 등을 세차게 두드려 주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희비가 교차하는 현장을 바라보던 내가 나직하게 말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많네.”

“그러네여.”

못 보던 얼굴들이 많았다.

지난 설에는 14년도 데뷔 그룹 중에서도 일부만 참여했다면, 이번에는 신인 그룹이 대거 참여해 있었다.

특히 아직 데뷔를 안 한 그룹들이 유니폼을 입고 올망졸망 앉아 있는 모습을 보자니 기분이 묘하다.

새로 들어오는 1학년을 보면서 2학년이 된 기분을 실감할 때와 비슷한 감정이라고 할까.

“그나저나…….”

그런 신인그룹들이 우리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느껴지는 시선에 동생들과 내가 고개를 모으고 속닥거렸다.

“우리를 쳐다보는 것 같지?”

“나도 그 생각했는데. 아까부터 힐끔힐끔하더라고요.”

“조금 부담스러운 거 같아요.”

우리가 움직일 때마다 힐끔 바라보는 시선들이 따라붙었다.

갈라파고스 거북을 처음 발견한 탐험대처럼 신기한 생명체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저 사람들이 뉴블랙……!’ 하는 느낌.

신기한 선배님들! 하듯 바라보는 시선에 우리의 어깨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기대에 부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내가 제일 먼저 허리를 쭉 폈다.

구부정한 자세로 킬킬대던 우리가 허리를 쭉 펴고 자세를 곧게 하자, 스트릿 보이즈가 코웃음을 쳤다.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며 어깨동무를 했다.

“하하하하.”

짐짓 훈훈한 미소를 짓자, 우리와 같은 색 유니폼을 입고 있는 아이리스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수플레들에게도 핫핫 하면서 손을 흔들 때.

“…….”

어딘가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화사하게 웃고 있던 미소년들.

틴스피릿 멤버들이 공감 간다는 눈빛을 보냈다.

치얼스 하듯이 물병을 들어 보이던 리더 휘연이 입모양으로 말했다.

‘알아요.’

우리도 리혁이의 손을 들어 화답했다.

“왜 내 손을 드는 건데요?”

“와인색이라서.”

“…….”

리혁이가 고양이였다면 방금 우리는 가상의 발톱에 찰과상을 잔뜩 입었을 것이다.

실제로는 체육복 소매로 파바밧 얻어맞았을 뿐.

팡팡팡-

사방으로 일어나는 먼지에 본인이 역으로 ‘어우푸풋!’ 하는 동안 여자 60미터 달리기 결승도 끝났다.

중계진이 경기장 스피커에 연결된 마이크를 들었다.

-비디오 판독 결과가 나왔네요! 라비앙로즈의 주현을 제치고 블링크의 다름이 1위를 가져왔습니다.

“와아아아……!”

우리와 데뷔 동기인 KM 엔터의 블링크가 60미터 달리기에서 1위를 차지한 모양이었다.

금메달을 목에 건 다름이 기쁜 표정으로 인터뷰를 하는 동안 제작진이 손짓했다.

남자 달리기 결승 주자들이 일어나는 가운데 중현이도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또 다녀올게요.”

우리 모두 응원의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잘했어’ 슬로건에서 ‘ㅆ어’를 손으로 가린 ‘잘해’를 열심히 흔들어 주었다.

*   *   *

“네, 남자 60미터 달리기 결승입니다.”

“1번 레인에 에이스의 페일, 2번 레인에 데이드림의 준.”

전광판에 아이돌 멤버들이 나올 때마다 중계진이 호명했다.

다양한 색의 유니폼을 입은 아이돌이 카메라에 브이를 하거나 윙크를 하며 잔망을 부렸다.

팬들의 환호성이 커지고 잠잠해지기를 반복할 때, 6번 레인의 누군가가 화면에 나타났다.

“네, 6번 레인에 뉴블랙의 중현입니다.”

미남 운동선수처럼 생긴 인물이 진지한 표정으로 검지를 반대로 들어 보였다.

손동작에 흠칫하던 팬들이 이내 ‘잘해’ 라고 된 슬로건을 흔들자, 곰 같은 얼굴이 푸근하게 웃었다.

마찬가지로 흠칫했던 중계진도 너스레를 떨었다.

“…어우, 깜짝아. 욕하는 줄 알았어요.”

“중지가 아니라 검지였네요. 1등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일까요?”

“왠지 내가 1등은 못하더라도 여기서 한 명은 데리고 가겠다, 그런 것처럼 보이는데요.”

중계석에서 방송용 드립이 오가는 동안, 메인 MC를 맡은 아나운서 백상중이 옆에 앉은 해설위원에게 물었다.

“해설위원님은 이번 남자 결승을 어떻게 보십니까?”

“음…….”

중년인이 답했다.

“높은 확률로 뉴블랙의 중현 군이 1등을 할 것이라 봅니다.”

“그렇게 판단하신 이유가 있나요?”

“보통 스포츠에서는 체급이 같으면 기술과 경험이 승패를 좌우합니다. 쉽게 말해서 달리기도 여러 번 달려본 놈이 잘하고, 잘 달릴 줄 아는 놈이 더 잘한다는 것이지요.”

“중현 군이 그 두 경우에 해당되나요?”

“전혀 아닙니다.”

해설위원이 고개를 저었다.

“중현 군의 동작은 중장거리에 좀 더 적합하거든요. 다른 선수들이 100미터 달리기를 할 때, 혼자서 마라톤 뛰고 있는 거예요. 조금 비효율적이지요.”

“그런데 왜……?”

“중현 군에게는 기술과 경험을 뛰어넘는 장점이 하나 있습니다.”

“……?”

해설위원이 주먹을 들어 보였다.

“힘이 흐벌나게 좋습니다.”

“해설위원님, 방송에서 그런 비표준어는 좀…….”

“달리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멀찍이 아래서 몸을 풀고 있는 중현을 보는 해설위원의 눈이 열정으로 반짝거렸다.

“힘이 징허게 좋습니다. 남들 1메다 뛸 때, 이따 보세요, 혼자 3메다 뛰거든요. 봐요. 제자리에서 콩콩 뛰며 몸을 푸는데도 혼자 가제트 형사처럼 뛰지 않습니까?”

“그, 그렇군요.”

“이번 사나이가 간다에서 볼 때 어찌나 아깝던지. 어유, 저저… 20년 전에 만났으면 데려다가 씨름 유망주로 키우는 건데. 저 얼굴에 저 몸이면……!”

사심을 잔뜩 드러내는 씨름 출신 해설위원의 대사에 MC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윽고 촬영 장비 세팅이 끝나자 주자들이 심호흡을 했다.

“후우…….”

아이돌 멤버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손바닥에 식은땀이 배어 나오고, 팬석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이 의식됐다.

‘잘해야 하는데.’

‘2등이라도 어떻게 좀…….’

하지만 1등을 꿈꾸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바로 6번 레인에 있는 존재 때문이었다.

‘쟤를 어떻게 이겨.’

남들이 긴장한 얼굴로 심호흡을 할 때, 귀를 후비적거리는 대길이 친구였다.

긴장감이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는 평온한 얼굴.

저 온화한 스님 같은 얼굴로 축지법을 펼쳤던 아까의 기억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꿈은 2등.’

그런 주자들을 바라보며 응원하던 팬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다치지만 마라.’

‘대길이 친구랑 부딪히지만 않으면 돼.’

‘제발, 무사하게 해 주세요.’

체격만 따지면 더 큰 아이돌도 있지만, 사간의 이미지 때문인지 오토바이 사이에 낀 트럭처럼 보이는 중현이었다.

이윽고 출발 신호가 울렸다.

모두가 이를 악물고 달리는데 홀로 평온한 얼굴로 팟팟팟 뛰는 누군가의 모습에 팬들이 감탄사를 흘렸다.

“와…….”

F1의 자동차처럼 슈우우웅- 하며 앞을 스쳐 가는데 마치 가상의 바람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 속도를 따라 목을 급하게 돌리던 어느 아이돌 팬이 담을 호소했다.

‘개빨라…….’

‘특공대에서 병원 가라고 할 만했네.’

‘쟤가 그 태릉을 버리고 온 인재…….’

2등과 3등이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을 때 여유롭게 거리를 벌리는 중현이었다.

어찌나 빠른지 레일을 따라 촬영 중이던 카메라도 추월했다.

카메라 감독이 ‘……?’ 하는 순간, 중현은 이미 1등으로 결승선을 끊고 있었다.

골을 넣은 축구선수처럼 검지를 흔들며 세레모니를 하자 뉴블랙 멤버들과 수플레들이 ‘와악!’ 하며 소리를 질렀다.

2등과 3등으로 들어온 아이돌 멤버들이 허벅지를 짚은 채 헉헉대다가, 먼저 들어온 중현에게 리스펙한다는 듯 엄지를 들어 보였다.

중현과 다른 주자들이 서로 어깨를 두드리며 고생했다는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바로 인터뷰가 이어졌다.

-1등 소감이 어떤가요?

-우선 이 영광을 같은 팀 멤버인 리혁이에게 돌리겠습니다.

-리혁 씨에게요?

-네.

어딘가 감동한 표정을 짓는 리혁과 뒤에서 ‘잘했어!’를 신명나게 흔드는 뉴블랙이 보였다.

뒤에선 9명의 스트릿 보이즈가 댄서로 백업을 해 주고 있었다.

-리혁 씨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나요?

-아뇨. 리혁이가 저에게 해 준 건 아무것도 없지만…….

다소 엉뚱한 대답에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왠지 모르게 리혁이에게 영광을 돌려야 할 것 같은 기분이어서요. 지난 설에 리혁이가 단거리 은메달을 땄거든요.

-아하. 멤버를 대신해 목표를 이룬 거군요.

-오. 그러네요.

거기까진 생각 못했다는 듯 수긍하던 중현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금메달을 들어 보였다.

그러곤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리혁아, 나는 금메달이야.

어딘가 놀리는 듯한 어조에 객석에 있는 아이돌 팬들이 깔깔 웃었다.

전광판 화면도 전환됐다.

바닥에 앉아서 이마에 손을 올리고 있는 서리혁과 그를 둘러싸고 ‘괜찮아’를 흔들어 주는 뉴블랙 멤버들.

그리고 뒤에서 흥겹게 안무를 추는 스트릿 보이즈 멤버들이었다.

*   *   *

60미터 달리기가 끝난 후, 개막식이 진행됐다.

-선서.

2세대 아이돌 선배들이 연단 위에 서서 선서를 읊었다.

각 그룹별 대표 멤버들이 나와서 ‘오늘 안 다치고 대유잼 방송을 만들겠음’ 하는 내용을 말했다.

-이상으로 선서를 마칩니다.

선서가 안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야속하게도 선배 가수들이 연단에서 내려왔다.

제작진이 내게 올라오라며 손짓했다.

“…….”

동생들을 돌아보았다.

‘화이팅.’

‘얼른 올라가여. 얼른.’

리혁이가 고소하다는 미소를 지으며 ‘얼른 가요’ 하며 턱짓을 했다.

한조도 두 손을 모으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스트릿 보이즈가 키득거리는 동안, 타조처럼 우뚝 솟은 은성이의 머리도 날 비웃고 있었다.

-다음으로 준비 운동 시간입니다. 안 다치려면 정확한 동작으로 체조를 해야겠죠? 시범으로는 뉴블랙의 우주 군이 함께~ 하겠습니다!

“와아아!”

주변에서 ‘우우우~’ 하면서 손뼉을 쳐 주었다. 다들 자기 일이 아니라고 좋아하고 있었다.

잠시 현실을 부정하던 나는 웃으며 연단으로 걸어 올라갔다.

방송국에서 ‘뉴블랙, 분량 많이 줄게. 와!’ 했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 분량이 내가 원했던 게 아니어서 문제지.

“흠흠.”

연단 위에 올라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간의 인기를 어떻게든 뽑아 먹자는 생각이었는지, 나는 오늘 준비 운동의 조교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분량을 얻어서 좋긴 한데, 은근히 민망하다.

밑으로는 8가지 색의 유니폼을 입은 동료 아이돌들이 올려다보며 눈을 반짝이고, 객석에선 수플레들이 ‘괜찮아’ 슬로건을 흔들었다.

댄서 2인이 내 뒤로 올라오는 동안 마이크를 들고 유쾌한 미소를 지었다.

“네, 지금부터 준비운동을 시작하겠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잘해야지.

카메라와 더불어 경기장 전체에서 쏟아지는 시선을 느끼며, 국민 체조 메들리를 들었다.

내가 동작을 보일 때마다 댄서들이 같이해 주었다.

“자, 목 운동~”

동작을 바꿀 때마다 연단 아래 서 있는 아이돌 멤버들이 ‘으어어’ 하며 몸을 풀었다.

스트레칭을 할 때마다 근육이 쭉쭉 풀리는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아이구…’ 하는 소리가 마이크에 새어 나갈 뻔한 것을 참아야 할 만큼.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5분 동안 체조를 함께해 준 댄서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연단에서 호다닥 내려왔다.

다른 아이돌들이 작게 손뼉을 쳐 주며 웃었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자 동생들이 반겨 주었다.

“잘했어여. 형.”

“형, 근데 표정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스트레칭 할 때마다 형이 제일 시원해 해서…….”

“내가 그랬어?”

“반짝이는 할아버지 같았어여.”

그랬구나, 하며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뭐. 이제는 그런 걸로 민망하고 그러지도 않았다. 어련히 방송에 나가겠지 할 뿐.

나를 아는 사람들이 키득거리며 놀려도 한참 뒤에나 걱정할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할 때.

-다음으로는 축하 공연이 있겠습니다.

큐시트 상으로 단순히 ‘축하 공연’이라고 되어 있는 칸이 떠올랐다.

누가 오려나.

참여 가수가 누군지 써 있지는 않았던 터라 다들 호기심 넘치는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동안 MC의 멘트가 경기장에 울렸다.

-비록 오늘 ‘아이돌 운동회’에 참석하지는 않지만, 후배 가수들을 위해 먼 걸음을 달려온 분들인데요. 큰 박수로 맞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팬들과 가수들이 박수를 치자, 경기장의 조명이 살짝 어두워지면서 전주가 흘러나왔다.

88년도 올림픽 주제가인 ‘손에 손잡고’였다.

이내 경기장 출입구에서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걸어 나왔다.

“오, 저분…….”

발라드 가수 더 문이었다.

특유의 독특한 창법으로 ‘손에 손잡고’의 첫 소절을 부르는 동안 뒷소절을 이어받을 인물들도 나타났다.

주로 TV 화면으로만 접한 분들이었다.

중간에 지금은 은퇴한 1세대 아이돌 선배들도 있었는데,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 신기했다.

축하 공연을 위해 참석해 준 7명의 가수들이 한 자리로 모일 때.

팬석에서 ‘오오’ 하는 큰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어딘가 불길한 예감에 고개를 돌린 나는 서편 출입구를 통해 나타난 두 인물을 발견했다.

“아.”

스케줄 때문에 이번 돌림픽에 불참했던 TNT.

TNT의 한태현과 장한별이 듀엣으로 노래를 하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

찡긋.

나와 눈이 마주친 두 녀석이 동시에 눈을 찡긋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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