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99)화 (299/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99화

장내에 앉아 있던 팬들은 저도 모르게 몸을 들썩였다.

‘우주가 랩을 해……?’

다른 멤버들이 ‘랩 해 봐여, 랩’ 할 때마다 쑥스럽다는 듯 고개를 젓던 우주가 아닌가.

-여러분, 제가 보컬인데 랩을 어떻게 하나요?

라이브 방송을 할 때도 팬들이 ‘랩 보고 싶어’해도 못한다며 그런 요청을 외면하곤 했다.

그런 까닭에 자연스럽게 ‘못해서 그런 거구나’ 하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헌데 지금 눈앞에서 우주가 랩을 하고 있었다.

회백색 머리칼 아래서 생동감 넘치게 움직이는 입술만 아니었다면, 중현이 대신 불러 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전혀 예상하지 못한 광경이었고 새로웠다.

“와아아아아아—!”

응원봉을 흔드는 손이 격해졌다.

다른 그룹의 랩라인 멤버들이 그러하듯 우주는 가사에 맞는 손동작을 보였다.

홀로 커다란 무대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할 만큼 자연스러운 시선 처리와 몸짓에 절로 이목이 집중됐다.

‘진짜 잘하네.’

‘뭔가 기만당했는데 좋다…….’

‘우주 랩길만 걷자.’

자기 아이돌이 무엇을 해도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 애가 최고’ 필터를 빼고 봐도 잘했다.

동시에 중현과 랩 스타일 차이가 보인다고 할까.

뉴블랙의 래퍼가 중저음의 목소리로 리듬감 있게 두드리는 스타일이라고 한다면, 리더는 더 낮은 저음으로 한 방씩 팡 때리는 느낌이었다.

보컬과는 완전히 다른 랩 목소리가 낯설기도 했지만 잘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홀로 조명을 독차지한 채 무대를 휘젓는 우주를 보며 수플레들이 미소를 지었다.

‘이래서 애들이 얄미워하는 거구나.’

리얼리티나 라이브에서 ‘저저, 저 할아버지 또 뺏어가려고 한다’ 하면서 경계하는 멤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전광판 속 우주가 코를 찡긋하며 웃었다.

Out of time, out of luck

풀리지 않을지도 몰라

반복되는 시간 위에 올라

어느새 무거워졌겠지 Ay

‘Ay’하며 나직하게 읊조리던 우주가 무대로 돌아오는 막내에게 바톤을 터치했다.

등을 맞댄 채 리더가 빙글 돌아가자, 리볼버 권총의 탄창처럼 서브 보컬이 나타났다.

빈티지한 점퍼를 입은 금발 소년이 한 손으로 몸을 쓸어내리며 웨이브를 타자 행복한 비명이 쏟아졌다.

이젠 버릴 시간이야

손에 든 건 버려 Set you free

모든 걸 가로지를 때까지

잠시

음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매혹적인 미소를 짓는 뉴블랙의 서브 보컬이었다.

‘Nine’은 지금까지 있었던 뉴블랙의 타이틀곡과는 다소 이질적인 곡이었다.

청량하거나, 유혹적이거나, 따스했던 그간의 타이틀과 다르게 신나게 뛰어다니는 노래였다.

미래 지향적인 전자음을 듣다 보면 클럽에서 나올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적 댄스 감각을 자극하는 리듬에 스탠딩에 선 수플레들이 응원봉을 흔들며 방방 뛰었다.

스트레스가 풀리는 듯했다.

톡톡 튀는 물방울처럼 스탠딩석이 출렁이는 모습에 사이드에 빠져 있는 멤버들이 행복한 미소를 짓는 게 보였다.

‘이번 타이틀곡 진짜 대박이다.’

‘너무 좋아.’

처음 들었는데도 귀에 딱딱 박히는 멜로디였다.

여기서 한 번 더 들으면 그때는 알아서 자체 응원법까지 넣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리고 무엇보다 뉴블랙의 색채가 고스란히 살아 있다는 게 좋았다.

리스너를 향한 따스한 메시지라고 할까.

바람꽃이 ‘힘들져? 제가 보고 있어여’하며 위로하는 노래라면, 나인은 ‘힘들어? 오늘은 나가서 놀자!’하는 가사였다.

반복된 일상 속에서 유달리 운도 없고, 일진이 사나운 하루가 있다.

그런 날에는 나쁜 기억일랑 훨훨 털어내고 시끌시끌하게 놀자는 내용이었다.

그런 의도에 걸맞게 수플레들도 생각을 비우고 노래를 향해 환호했다.

“와아아아아—!”

무대 위에서 지호와 우주가 거리를 벌렸다.

동시에 우아하게 진입한 메인댄서가 중심을 잡아 주면서 춤선이 확 살아났다.

와인색 머리칼을 흩날리며 묘한 미소를 짓는 비주.

반짝이는 재킷을 반쯤 벗었다가 다시 걸치며 몸을 유연하게 튕기는 동작에 객석이 들썩였다.

한편 메인댄서가 두 멤버를 이끌고 걸어 나오면서 안무 대형이 바뀌기 시작했다.

삼각편대처럼 서 있던 이들의 옆에 리혁과 중현이 서고.

검은 후드를 걸친 댄서들이 붙어서 3, 5, 7 하는 식으로 마침내 9명이 되었을 때.

메인 보컬의 고음과 함께 노래가 후렴구에서 빵 터졌다.

“와아아아아아—!”

무대용 불꽃이 치솟는 동안 새파란 조명 아래 군무가 펼쳐졌다.

가운데 선 래퍼를 중심으로 멤버들이 손으로 허공을 세차게 후려치는 듯한 안무였다.

강한 반동을 이용해 몸을 흔들던 중현이 마이크를 잡고 후렴구를 불렀다.

반복되는 ‘Nine Nine Nine’에 맞춰 수플레들도 소리를 지르며 그간 쌓인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렇게 1절이 끝나고 2절의 초반부가 흘러나오자 팬들은 숨을 골랐다.

‘노래 미쳤네, 진짜.’

‘안무 개잘짠 거 같은데. 누가 만든 거지? 클레이랑은 또 다른 느낌인데.’

‘다 톡톡 튀네.’

바로 메인댄서인 비주가 짠 것에 남미 유명 안무가의 손길이 더해진 결과물이었다.

한 방울씩 떨어뜨려서 만드는 커피처럼 안무가의 피땀이 들어간 듯한 춤에 감탄이 나올 때.

몇몇 수플레들은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뭔가 다른데…….’

‘느낌이 살짝 다른데. 좋은 쪽으로.’

‘뭐지?’

뉴블랙의 퍼포먼스를 보는데 평소와 다르게 느껴졌다.

구도는 비슷한데 그림체가 달라진 듯하다고 할까. 같은 화가의 전기 작품만 보다가 후기 작품을 보는 것 같았다.

이내 그 이유를 깨달은 이들이 탄성을 터뜨렸다.

‘아……!’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서늘한 표정으로 안무를 소화하고 있는 메인 보컬이 있었다.

리혁이 바로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가 포함된 안무 동선이 전에 비해서 한결 유기적으로 딱딱 연결된다고 할까.

이전에는 상대적으로 춤이 부족한 메인 보컬을 배려하기 위해 정해진 동선이 있었다.

다른 멤버나 댄서들이 뒤에서 받쳐 주는 동안 천천히 걸어가며 후렴구 직전의 고음을 부른다거나, 클로즈업 샷을 대비해 주로 상체를 이용한 춤 동작을 한다든가.

어딜 내놔도 못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다른 멤버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춤 실력 때문이었다.

똑같이 움직이면 혼자 튀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 하나 없이 메인 보컬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다. 하나의 찰흙 덩어리처럼 유기적인 연결 동작의 한 축을 당당히 맡고 있었다.

까리하게 어깨를 돌리는 동작에 시선을 빼앗겼다.

‘늘었구나.’

‘바람꽃 때보다도 더 늘었네.’

무대 사이드로 빠지는 리혁에게 시선이 갔다.

검푸른 머리칼에 집업 후드티를 걸친 메인 보컬이 머리 위로 손뼉을 치며 관객들에게 박수를 유도하고 있었다.

지금 수준이 될 때까지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을지 짐작이 안 간다는 생각과 함께 뭉클함이 느껴졌다.

-자, 이제 다 같이!

2절 후렴구 전에 외치는 우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편 달라진 것은 리혁뿐만이 아니었다.

땀을 흘리며 신나게 몸을 흔들어대는 멤버마다 달라진 점이 눈에 띄었다.

각자 잘하던 표정연기, 랩, 댄스 등의 특기도 더 늘어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부분들이 보완되어 있었다.

춤을 정석적으로만 추던 우주의 안무에 춤선을 예쁘게 만들어 주는 잔동작이 들어가고.

보컬 쪽은 별로 하지 않던 중현이 보컬도 하고.

바람꽃 때보다 체격이 더 좋아진 막내의 춤선이 파워풀하게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메인 보컬과 함께 두드러지는 변화를 보이는 인물이 있었으니.

더 뜨겁게 타올라

오늘도 빛나게-

리드 보컬인 우주의 자리를 위협할 만큼 성장한 보컬 실력을 보여주는 뉴블랙의 메인댄서였다.

정신없이 몸을 흔드는 와중에도 힘 들이지 않고 사뿐하게 고음을 올리는 모습에 탄성이 쏟아졌다.

혼자 다른 경지를 보여 주는 춤과 함께.

3절 도입부에서 허리를 뒤로 부드럽게 꺾은 채 고음을 내던 메인댄서가 중심부에 섰다.

동시에 그간 차근차근 스택을 쌓아올리던 음악이 터졌다.

파아아앙-!

무대 장치가 쏘아올린 금박이 사방으로 비산하는 동안,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수십 명의 댄서들과 함께 멤버들이 점프를 하고는 발을 굴렀다.

웨이브를 타며 몸을 흔드는 메인댄서와 그를 백업해 주는 멤버들과 댄서들이 강한 파도처럼 움직이고.

“와아아아아아—!”

수플레들은 내일이 없는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첫 콘서트에서 선공개된 ‘Nine’의 첫 무대는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   *   *

고막이 터지는 것 같다.

인이어를 끼고 있는데도 팬들의 함성이 그걸 뚫고 들어왔다.

그 속에서 우린 숨을 헐떡댔다.

“허억… 허어…….”

“흐어어….”

“흐이…… 후우, 후우.”

숨소리가 어찌나 큰지 마이크를 든 손을 아래로 내리고 있는데도 소리가 잡혔다.

댄서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무대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잘했다.’

‘잘했어.’

처음으로 공개하는 곡인 만큼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한 터였다.

원래는 토크 타임이 있을 예정이 아니었는데, 안무가 워낙 빡센 탓에 강제로 멘트를 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지금은 아무 멘트도 할 수 없을 만큼 숨이 가쁘다는 거지만.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서 마이크를 든 손이 축축해졌다.

생수병을 벌컥벌컥 들이켠 내가 허벅지를 부여잡고 헉헉대는 동생들에게 턱짓을 했다.

“어흐 아흐 해흐하해하(얼른 아무 멘트나 해라.)”

막둥이가 땀을 훔치며 손을 저었다.

“허흐 해허. 허흐(형이 해여. 형이).”

“하 호해허. 호해(나 못해요. 못해).”

리혁이는 아예 죽으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수플레들이 오디오를 메워 주고 있었다.

“와아아아아아—!”

이윽고 그나마 체력이 남아도는 중현이가 마이크를 쥐었다.

“어땠어요, 여러분. 좋았나요?”

“네에에—!”

“얼만큼요?”

대강 ‘많이이!’하는 듯한 함성이 돌아왔다.

우리 래퍼가 흐뭇하게 웃었다.

“정말 이거 만드느라 다 같이 날밤 샜거든요. 우주 형이랑 저랑 웅웅- 하는 사운드 하나 가지고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그랬어요. 완벽한 곡을 만들고 싶어서.”

녀석이 웃으며 말했다.

“마음에 드셨다니 정말 다행이에요.”

“네. 정말 다행이에요.”

내가 마이크를 잡고는 반짝이는 불빛들을 향해 말했다.

“엄청 긴장했거든요. 여러분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어서.”

“마음에 드신 거 맞져?”

막내의 말에 다시 한 번 응원봉이 흔들렸다.

동생들과 함께 멘트를 하는 동안, 조명감독님이 센스 있게 조명을 살짝 밝혀주었다.

스탠딩석과 객석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한눈에 들어왔다.

다들 상기되어 보였다.

여전히 ‘Nine’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흥분 가득한 눈빛과 표정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됐다.

성공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직 뮤비고 음원이고 공개도 안 된 상태에서 처음 듣는 노래가 이 정도 반응을 이끌어 냈다면 말 다한 거지.

만족을 넘어 대만족한 팬들의 얼굴에 그제야 동생들과 편한 웃음을 교환했다.

‘정말 고생했다. 얘들아.’

‘진짜 잘했어요. 형.’

그렇게 팬들과 멘트를 주고받던 우리는 몇몇 선공개곡 무대를 하고 내려왔다.

이제 남은 건 앵콜 무대.

“메이크업! 메이크업!”

“지나갈게요!”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객석에 있는 팬들이 백조들이 노니는 호수처럼 한 편의 우아한 쇼를 보는 동안 무대 아래는 아수라장과 다름없었다.

앵콜용으로 준비한 VCR이 상영되는 동안 이런저런 장면에 수플레들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 동안 우리는 정신없이 옷을 갈아입는 중이었다.

체면이고 뭐고 차릴 겨를도 없었다.

촉박한 시간 동안 스탭들이 옷을 갈아입는 우리의 땀을 닦아 주고, 메이크업을 수정해 주었다.

그렇게 통풍이 잘 되는 널널한 검은 티셔츠로 갈아입었을 때.

“올라갈게요!”

“네!”

‘화이팅!’ 하며 주먹을 들어주는 석환 형과 매니저 형들에게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VCR이 끝나고 새카맣게 암전된 무대.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응원봉만 보일 때, 앵콜 첫 곡으로 준비한 미니 1집의 ‘꽃불’을 부르기 시작할 때.

“……?”

조명이 밝아 오르는 순간이었다.

지호가 감정을 잡고 첫 소절을 부르는 동안 객석이 일시에 하나의 물결처럼 출렁이고 있었다.

스탠딩부터 2층 좌석까지.

펄럭이는 슬로건이 한눈에 들어왔다.

“…….”

‘봄의 시작과 겨울의 끝을 함께’ 라고 되어 있는 이벤트 슬로건의 문구가 펼쳐져 있었다.

하늘색으로 나풀거리는 수천 개의 슬로건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오묘하다.

나름 진지하게 불러야 하는 노래인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온다고 해야 하나.

금세 감정을 다시 잡긴 했지만, 일순간 나온 우리의 현실 웃음에 수플레들이 호응했다.

앵콜 곡들을 부르는 동안 흔들리는 응원봉 속에서 떼창하는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우리가 만든 노래를 같이 불러주는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시간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조금은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머릿속에 둥실둥실 떠다닌다.

동생들과 함께 뿌듯함과 아쉬움이 뒤섞인 얼굴로 마이크를 들었다.

“네, 어떻게…….”

내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 공연 많이 즐거우셨나요?”

“네에!”

“저희도 오늘 너무 즐거웠어요.”

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이렇게 많은 팬분들 앞에서 공연해 보는 게 처음이거든요. 어제 너무 설렜어요.”

“이 형이 제 룸메잖아여. 설레서 잠이 안 온다고 밤새 저한테 계속 말 걸고 그랬어여.”

“지호야. 그런 것까지 말씀드릴 필요는 없어.”

“수플레들도 알 권리가 있잖아여.”

지호의 말에 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동안 비주가 마이크를 잡았다.

“어…….”

마이크를 든 손이 마구 떨리는 것을 보며 웃었다. 비주가 이렇게까지 떠는 건 또 오랜만에 본다.

상냥한 눈매가 벌써부터 잔뜩 촉촉해져 있었다.

“정말 어떻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정말 저희가 흐윽… 어어어 하시면 안 돼요. 저 울어요.”

비주가 다급하게 손사래를 치자 ‘어어-’ 하던 수플레들이 크게 웃었다.

“정말 첫 콘서트라서 되게 얼어 있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호응을 너무 잘해 주셔서 편하게 할 수 있었어요. 언제나 저희가 긴장하고 있을 때마다 이렇게 편하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우리도 공감했다.

아까 리프트가 올라갈 때만 해도 기계 진동에 맞춰 같이 덜덜덜 떨고 있었는데, 지금은 한결 나아져 있었다.

뭘 해도 박수를 쳐 주는 사람들 덕분이었다.

“저는 정말 콘서트를 하는 날이 올까 싶었어여. 세월이 참…….”

늙은 형들이 바라보자 지호가 ‘시간이 참…’ 으로 바꾸었다.

막내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저는 오늘 너무너무 재미있게 한 거 같은데, 여러분도 재미있게 보셨다고 했져?”

“네!”

“그럴 줄 알았어여.”

객석을 향해 환하게 웃던 막내가 마이크를 고쳐 잡고는 진지하게 말했다.

“그리고 이번에 정말 고생해 주신 분들이 너무 많더라구여. 매니저 형들이랑 스타일리스트 누나들, 홍보팀 분들. 밴드 세션, 댄서 형들… 정말 콘서트를 위해 많은 분들이 애써 주셨어여.”

우리가 기특한 눈으로 바라볼 때, 막내가 꾸벅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드문드문 보이는 관계자들을 향해 우리가 꾸벅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중현이가 마이크를 붙잡았다.

“그리고 저희 부모님들이 오늘 오셨어요.”

“저희 가족도!”

우리가 허공을 향해 손을 흔들거나 ‘안녕하세요!’ 하자 조명감독님이 센스 있게 조명을 켜 주었다.

우리 부모님이란 키워드에 수플레들이 환호를 해주는 동안, 2층에서 손을 흔드는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와아아아—!”

‘찌호야! 싸랑한따!’ 하며 달봉이를 흔드는 지호네 아버님과 어머님, 누나들도 보이고.

핵가족들 사이에서 교과서로만 보던 ‘대가족’의 표본을 보여 주는 중현이네 가문도 있었다.

손을 흔드는 비주네 어머님과 가족들.

그리고 새초롬하게 날 바라보며 ‘자… 잘혔어’ 하는 입모양을 만드는 김덕순 여사도 있었다.

우리도 열심히 가족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저희 가족도 있네요.”

리혁이의 말에 따라 고개를 돌리니 정말, 리혁이네 가족도 있었다.

그림에 그린 듯한 서늘한 인상의 남녀와 함께 동생이 방싯방싯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저분들이 리혁이네 부모님이구나.

리혁이가 덤덤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자, 그쪽에서도 살짝 어색하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잠시 가족들에게 인사를 한 후에 조명이 꺼졌다.

가족들과는 이따 해후를 나눌 수 있지만, 일단 이 자리는 팬들과 함께 하는 게 중요하니까.

“가족들도 있고, 수플레들도 있고.”

중현이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제일 잘 보여야 하는 사람들이 온다고 해서 정말 최선을 다해 연습했어요.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자랑스러운 가수이자, 아들이고 손자이면서 조카이고 사촌동생인 사람이 되고 싶어요.”

복잡한 관계도에 우리와 수플레가 박수를 치며 웃었다.

그리고, 우리 메인 보컬이 마이크를 들었다.

“제가 여러분한테 말해 주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이렇게 준비를 해왔거든요.”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낸 리혁이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여기 메모마다 감사인사, 가족, 이렇게 다 체크를 해 놔서 말을 하려고 준비를 했는데…….”

“저희가 해 버렸죠?”

“네. 다 뺏겼네요.”

우리가 다 말해 버린 바람에 김이 샜다는 모양이었다.

살짝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리혁이가 이내 객석을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어… 저는 길게 말하는 것보다 짧게 한 마디 하고 우주 씨에게 넘길게요. 우리 멤버들, 그리고 여러분.”

“……?”

“제가 많이 아끼고 사, 사… 사랑합니다.”

오늘 공연 중에서 그 누구보다 가장 큰 호응을 이끌어내는 우리 피라루쿠였다.

좋긴 한데 뭔가 부끄럽다.

우리끼리 시선을 회피하며 먼 산을 바라보고는 저마다 다시 한번 길게 소감을 말했다.

나 역시도 감사의 말을 전했다.

“오늘 저희와 시간을 함께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덕분에 정말 행복했어요.”

웃으며 말했다.

“첫 콘서트까지 오는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린 거 같아요. 물론 단순히 준비시간으로는 두어 달 남짓한 시간이지만… 그 전부터 콘서트에 대한 꿈을 꿔 온 시간이 있잖아요.”

고개를 끄덕이는 동생들에게 물었다.

“다들 연습기간이 어떻게 돼죠?”

“3년이요.”

“4년.”

저마다 대답이 돌아오는 가운데 내 연습생 기간인 6년까지 합친 내가 말을 꺼냈다.

그러곤 느릿하게 흔들리는 별들을 바라보았다.

“네, 여기까지 오는데 다 합쳐서 20년이란 시간이 걸렸네요. 이 순간을 위해 그만큼 걸어온 거 같아요.”

잠시 조용해진 별들이 폭발하는 듯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나도 같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렇게 긴 시간을 걸어온 것만큼, 앞으로도 더 나아가고 싶어요. 오늘처럼 앞으로도 그 시간을 함께해 주셨으면 해요.”

“감사합니다!”

“저희가 더 성장하고 더 커갈 때까지 함께해 주실 거죠?”

더 성장할 때까지, 그리고 그 끝에 다다를 때까지 가 보고 싶다.

그에 화답하듯 들려오는 수많은 목소리들을 귀에 담으며 동생들과 웃었다.

“다음은 저희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에요.”

곡 소개를 할 필요도 없이 다들 아는 노래였다.

콘서트장을 통해서 어쿠스틱한 기타 소리와 함께 어느 노래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sing along 버전으로 편곡된 우리의 데뷔곡 ‘불꽃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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