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00화
불꽃놀이의 sing along 버전.
데뷔 싱글의 마지막 수록곡이자, 불꽃놀이를 따라 부르기 쉽게 편곡한 노래였다.
‘그거구나.’
수플레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sing along 버전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곡이었다.
데뷔 쇼케이스에서 음향 사고가 터졌을 때 불렀던 노래.
하승주의 뮤직카페 출연과 함께 뉴블랙을 ‘실력파 신인’으로 인식시켰던 계기 중 하나였다.
‘좋다…….’
Something부터 시작해 데뷔 때부터 함께 했던 수플레들은 뭉클함을 느꼈다.
특히 데뷔 팬 쇼케이스에 참가했던 관객은 더더욱.
200명이란 키워드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덜덜 떨었던 멤버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와아아아아—
커다란 함성에 짜릿함이 느껴졌다.
한때 200명이었던 관객은 5천여 명이 되어 응원봉을 흔들고 있었다.
‘커졌네.’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뉴블랙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더 커져 있었다.
희미하고 작았던 조각별이 환하게 빛나는 별로 변한 걸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응원봉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과 무대의 환한 조명.
빛의 물결 속에서 짓는 멤버들의 미소가 초창기부터 그들을 보아온 수플레들의 눈에 콱 박혀 왔다.
뉴블랙을 처음부터 지켜봤던 사람들 모두가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중에는 관계자들도 있었다.
“실장님, 우세요?”
“울기는. 내가 왜 우냐.”
안경을 들고는 손수건으로 눈을 콕콕 찍던 윤석환 실장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우리 애들이 콘서트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그래. 특히…….”
“우주를 오래 보셨죠?”
윤 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TJ 엔터 시절에서부터 오랜 기간 보아 왔던 사이였다.
데뷔조에서 방출되었던 때도 직접 우주를 배웅해 주었던 인물이 바로 그였다.
지금 무대 중앙에 서 있는 뉴블랙의 리더를 바라보고 있자니 각별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다들 마찬가지야. 우주도 오래 봤지만, 비주나 중현이, 리혁이, 지호도 연습생 시절부터 봐 왔으니까.”
늦게 들어온 스칼렛이 먼저 데뷔했을 때, 남자 연습생들을 다독여 주기 위해 연습실을 찾았던 기억이 있었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왜 노래는 쟤네가 부르는데, 내 가슴이 붕 뜨는지 모르겠다.”
“저도 그래요. 실장님.”
“저, 저도…….”
가장 늦게 들어왔지만, 가장 많이 눈물을 쏟아 내는 도원석의 모습에 스탭들이 웃었다.
한편, 바쁘게 복도를 뛰어다니던 스탭들도 멈춰 서서 마지막 무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홍보팀 직원도, 스타일리스트도, 공연장에 따라온 보컬과 댄스 트레이너도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 코찔찔이들이 콘서트도 다 하네.”
“그러게요.”
“애들 웃는 거 봐. 세상 너무 행복해 보인다.”
전광판에 비치는 하얀 얼굴들은 그 누구보다 행복하고 밝게 웃고 있었다.
오늘 공연 하나를 위해 두어 달 전부터 밤잠을 설쳐 가며 준비했던 것을 알기에, 함께 준비해 왔던 그들도 기특하고 대견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그건 멤버들과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온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이구…….’
‘firework-’하며 멤버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손자를 보며 김덕순 여사가 미소를 지었다.
연말평가인지 뭐시긴지 이후로 손자의 공연을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지금까지는 TV로만 노래를 접했으니까.
‘TV로 보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긴 다르구만.’
이렇게 피부가 찌릿찌릿할 만큼 좋은 노래를 들었던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딸과 사위가 서울에서 공연을 할 때가 마지막이었던가.
그만큼 손자는 잘했다.
우주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또는 객석에서 환호성이 나올 때마다 뺨을 씰룩이며 좋아하는 그녀였다.
‘기특해 죽겄네.’
세상 일이란 건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군산으로 돌아온 손자가 ‘나 이제 아이돌 같은 건 그만하려구. 백반집 후계자가 될 거야~’하며 웃는 바람에 억장이 무너졌던 것도 엊그제 같았는데.
식당 일을 도우면서도 중간중간 TV 속 음악 방송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손자였다.
꿈을 포기한 손자 때문에 가슴이 시큰했던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한두 명도 아니고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니.
요것을 3일이나 한다고 했던가.
그녀의 고집스러운 입가가 조금씩 풀어졌다.
이제야 손자의 연예계 활동에 대한 근심이나 불안이 하나둘 사라져 가는 느낌이었다.
‘그려. 앞으로도 잘될 거여.’
객석 하나하나 아이 컨택을 하며 미소를 짓는 우주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다른 가족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우리 막내가 원래 저렇게 노력하는 애가 아닌데, 엄청 열심히 했구만…….’
‘아이, 몰라! 다 귀찮아~’ 하던 막내아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어느 가족도 있었고.
‘어이구. 저거 약해 빠져 가지고 농사도 못 짓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노래하는 재주는 있구만.’
집안 최고의 약골이 랩으로 환호를 받는 모습에 뿌듯하게 웃는 대가족도 있고.
‘형, 진짜 기분 좋아 보인다.’
집에서 늘 어른스럽게만 웃던 사람이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에 따스함을 느끼는 가족도 있었다.
“…….”
그리고 말없이 누군가를 바라보며 묘한 표정을 짓는 이들도 있었고.
‘어떡해. 우리 오빠 노래 너무 잘해…….’
잔뜩 콩깍지가 씌어서 메인 보컬에게 열심히 손을 흔들다가.
‘근데 우주 오빠가 제일 잘생겼다.’
뉴블랙의 리더에게도 열심히 손을 흔드는 누군가의 여동생도 있었다.
관계자들과 가족들이 뉴블랙의 데뷔 이전을 떠올리며 대견해하고, 오래 지켜봐 온 팬들이 뭉클해하는 동안.
불꽃놀이의 sing along 무대가 이어졌다.
본래의 불꽃놀이보다 느긋한 템포로 편곡한 터라 자연스럽게 객석에서 떼창이 흘러나왔다.
저길 봐 우리의 불꽃이야
(Firework)
밤하늘을 수놓는 우리의 모습을
잔잔한 기타 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수천 명이 부르는 노래가 울려 퍼졌다.
바다와 같은 새파란 조명 아래서 핸드 마이크를 든 뉴블랙 멤버들이 나직하게 노래를 불렀다.
메인 보컬의 시원하고 부드럽게 올라가는 고음에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졌다.
Like a firework
보여 주는 거야
Like a firework
너와 나의 색깔을
돌출무대 곳곳을 돌아다니며 스탠딩석에 선 관객들, 2층에 있는 관객들과 눈을 마주치며 웃는 멤버들이었다.
2절의 전주가 흘러나오는 동안 밴드 세션의 기타리스트가 내는 하모니카 소리가 섞여 들어왔다.
멤버들이 느릿하게 손을 흔들 때, 마침내 팬들이 기다렸던 물건도 무대 위로 올라왔다.
바로 1미터짜리 대형 응원봉이었다.
왕봉이를 둔기처럼 든 중현이 느릿하게 봉을 흔드는 모습에 곳곳에서 웃음과 환호가 나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2절 후렴구.
방금까지 스탠딩과 객석을 향해 노래를 부르던 멤버들이 허공을 향해 마이크를 쭉 뻗었다.
저길 봐 우리의 불꽃이야-
팬들의 떼창이 텅 빈 공연장을 울렸다.
지호가 귀에 손을 올리며 더 크게 해 달라는 듯 눈웃음을 짓고. 비주가 활짝 웃으며 ‘다 같이!’ 하며 외쳤다.
좌우로 돌아다니던 우주와 리혁도 손뼉을 치며 관객을 독려했다.
왕봉이를 높이 든 중현도 흥겹게 리듬을 타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렇게 팬들의 떼창이 후렴구에 다다를 때쯤, 멤버들이 다시 마이크를 붙잡았다.
팬들의 떼창과 가수의 노래가 하나 되어 울려 퍼졌다.
Like a firework
보여 주는 거야-
그동안 곳곳으로 퍼져 있었던 멤버들이 무대 돌출무대 정가운데로 모이기 시작했다.
가사가 이어질 때마다 한 명씩.
가운데 있는 우주를 중심으로 멤버들이 박자를 맞춰 가며 차례차례로 모이고 있었다.
그 순서에 담긴 의미를 깨달은 일부가 탄성을 질렀다.
‘회사에 들어온 순서구나.’
처음 들어온 멤버부터 마지막으로 들어온 우주까지의 그 순서를 보여 주는 듯한 연출이었다.
그것을 역순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우주가 들어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멤버들이 우주에게 찾아왔다는 듯.
그렇게 모인 멤버들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Like a firework
너와 나의 색깔을-
3절이 흘러나오는 동안 ‘감사합니다!’ 하며 말하거나 손을 흔드는 멤버들이었다.
“와아아아아—!”
‘봄의 시작과 겨울의 끝을 함께’라는 슬로건을 흔들며 수플레들이 소리를 질렀다.
‘진짜 오길 잘했어.’
가슴을 꽉 채우는 듯한 충만함에 수플레들이 환한 미소를 지을 때쯤.
무대 장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색색의 종이 가루가 반딧불이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땀에 젖은 멤버들이 환하게 웃으며 외쳤다.
-감사합니다!
-사, 사… 제가 아껴요!
두 번은 못 하겠다는 듯 사랑해요 대신 ‘아껴요!’ 하는 리혁의 모습에 멤버들이 웃기 시작했다.
우주가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둘, 셋.
-감사합니다!
불꽃놀이의 Instrumental이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동안 멤버들이 손을 잡고 객석을 향해 허리를 꾸벅 숙였다.
-더 열심히 할게여~!
-저는 얘보다 더요!
-그럼 전 중현이보다 더 열심히 할게요!
웃음이 나온 것도 잠시.
이어지는 작별 인사에 수플레들도 큰 소리로 화답했다.
뉴블랙의 데뷔 후 첫 번째 콘서트가 마무리되어 가는 순간이었다.
* * *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했어!”
박수를 쳐주는 스탭들에게 우리가 꾸벅하며 인사했다.
그러곤 우리끼리 꺄르륵 웃었다.
“야, 잘했다! 잘했어!”
“형도 정말 고생 많았어요. 노래 편곡하는 것도 그렇고…….”
“사진 찍자! 사진!”
우리끼리 모여서 ‘콘서트 1일 차’를 의미하듯 검지를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개운했다.
충만함이라고 할까. 그 동안 쌓였던 피로와 근심 걱정이 싹 날아가 있었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고. 막 그렇다.
운동을 막 끝마쳤을 때처럼 가슴이 흥분하듯 들썩였다.
다들 앞으로 서너 시간은 더 방방 뛸 수 있을 것 같이 상기되어 있는 상태였다.
“중현아. 키자. 그거 켜.”
“잠시만요.”
중현이가 왕봉이를 반짝이 모드로 만들었다.
점멸하는 불빛 속에서 어깨동무를 한 우리가 방방 뛰는 모습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자자, 내일도 콘서트 있으니까 진정하고. 얘들아.”
석환 형의 말에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흥분에 들뜬 우리가 각자 2리터짜리 생수병으로 목을 축일 때, 바깥이 소란스러워지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엄마아아-! 누나아아아아—!”
“아빠도 왔다. 지호야.”
땀에 젖은 막내가 세상 행복한 강아지처럼 누나들과 엄마에게 다다다 달려가 안겼다.
아버님이 끼려고 하다가 밀려나서 슬퍼하셨다.
“아부지!”
“엄마, 오셨어요?”
“할머니이이이이이이이이—!”
다들 가족 상봉을 하는 동안 빛의 속도로 덕순, 오 마이 덕순에게 달려갔다.
할머니의 얼굴이 둔, 둔, 둔, 하고 가까워지는 동안 내 가슴도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할머니!”
“아이구, 어휴. 땀 냄새!”
아. 그러네.
물러나서 양손으로 할머니의 어깨를 쏘옥 붙잡았다.
“나 어땠어요?”
“엄청 잘하더만. 이렇게 잘할 거였는데 뭐 그리 맨날 전화혀서 할매, 할매 내 가슴이 이상혀요, 그랬냐.”
“헤헷.”
할머니한테 칭찬 받았다.
“귓구멍에서 피나는 줄 알았어. 머리 넘길 때마다 니 팬들이 으악새처럼 으악으아악 하고 그래 가지고.”
“그럴 만했지?”
“그려.”
다른 날이라면 리혁이처럼 새침하게 굴었을 텐데, 콘서트라서 그런지 김덕순 여사도 들떠 보였다.
역시 내가 자랑스럽고, 좋고 예쁘고 그런 모양이었다.
할머니랑 둘이 들떠서 ‘아까, 그때그때’, ‘아, 그때?’ 하며 콘서트의 각 순간을 회고할 때.
뭔가가 눈에 띄었다.
“그런데 할머니.”
“왜?”
“손에 든 건 다 뭐야…? 뭘 그렇게 많이 싸 왔어?”
뭔가 가득 담긴 꾸러미를 들고 있는 할머니였다.
“니 팬들이 준 겨.”
“우리 팬들이……?”
“가만히 앉아 있는데 주변에서 와서 할머니 허리 아프시죠, 하면서 요만한 방석도 하나 주고.”
“오호-”
“다 착하드라. 그니까 니 팬들한테 잘혀.”
나이가 많은 우리 할머니를 배려해서인지 수플레들이 여기저기서 나눔을 해 준 모양이었다.
덕분에 엄청 편하게 관람을 했다나.
이름 모를 수플레들에게 고마움을…….
“그런데 니 팬들이 다 나를 안다고, 할매 유명하다고 그러던데.”
“…….”
“고것에 관해 너 잠깐 나랑 얘기 좀 혀 보자.”
고마움이 훨훨 날아갔다.
여태까지 대체 자기 이름을 얼마나 팔고 다닌 거냐며 할머니의 다다다 잔소리가 이어졌다.
“으아아…….”
‘미안해요. 미안’ 하면서 결심했다.
난 오늘 할머니에게 진실을 알려 주었던 38번 구역의 검은 티셔츠와 노란 티셔츠 듀오를 찾고야 말 것이다.
다행히 할머니의 잔소리가 길어질 때쯤 구원투수가 등장했다.
“나도 왔어.”
“잘 오셨어요. 이모님!”
우리 할머니의 백반집에서 일하는 숙자 이모에게 다가가서 팔짱을 끼고는 붙임성 좋게 인사를 건넸다.
숙자 이모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손녀들도 내가 뉴블랙 콘서트 간다고 그러니까 엄청 부러워하고 그러더라.”
“그래요?”
“잉, 학교에서 유명한 가수라고. 사진 꼭 찍어 오라고 하더라.”
그래서 같이 사진도 찍고. 할머니와 투샷으로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핫핫핫! 우주도 오랜만이구나.”
다른 가족들과도 오랜만에 만나는 거라 인사를 나누면서, 가족 합동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 동안 비주가 내게 슥 붙었다.
“어때요?”
“글쎄, 분위기가 썩 나쁘지 않은 거 같기는 한데…….”
내가 속닥거렸다.
“정확히 무슨 내용이 오가는지는 모르겠어.”
“으흠…….”
우리가 바라보는 곳에는 리혁이가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입 모양을 읽으려면 얼마든 읽을 수 있지만, 이건 프라이버시에 관한 일이라서.
그때 지호가 나와 비주 사이에 고개를 내밀었다.
“연기 경력자인 제가 봤을 때는 다들 표정이 냉랭해 보여도, 부끄러워하고 있는 거 같아여.”
“그건 나도 알겠다. 아버님 귀가 빛나잖아.”
리혁이와 덤덤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아버님의 귀가 발그레하게 변해 있었다.
중현이가 지호 위에 고개를 얹었다.
“전 대화가 다 들리는데.”
“그래?”
“리혁이 사생활이라 안 들으려고 인이어를 꼈어요.”
“장하구나. 우리 뎅이.”
인이어 낀 양쪽 귀를 자랑하는 풍뎅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동안 우리가 넷이 모여서 수군대니, 멀찍이서 대화를 나누고 있던 리혁이네 가족의 고개가 돌아갔다.
사사삭-
다들 놀라운 회피 능력을 보여 주었다.
내 뒤에 일렬로 서서.
“…….”
“…….”
머쓱하게 웃으며 내가 고개를 꾸벅 숙이자, 리혁이가 나한테 오라는 듯 손짓을 해 보였다.
‘나?’
끄덕끄덕.
내 뒤에 있는 녀석들이 고개를 스윽 내밀고 ‘나도?’ 하는 듯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끄덕! 끄덕덕덕!
짜증스러운 끄덕거림에 우리가 쭈뼛거리며 다가갔다.
“둘, 셋!”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아앗, 이게 아닌데. 안녕하세요. 아버님, 어머님. 우주입니다.”
직업병처럼 나온 인사를 얼버무리는 내 모습에 아버님과 어머님이 미소를 보였다.
리혁이를 반반씩 나눠 놓은 듯한 얼굴의 부모님이었다.
회사 CEO처럼 옷을 근사하게 입은 어머님과 학구적인 얼굴의 아버님이 다소 대비될 뿐.
“미국에서 사업을 하신다고요?”
“맞아.”
정말로 미국에서 사업을 하고 계신다고 해서 신기했다.
아버님은 경남에 있는 모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시고, 어머님은 미국에서 딸과 함께 사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관계도가 어떻게 되는 걸까.
두 분이 같이 서 있기는 하는데, 그 떨어져 있는 한 뼘이 엄청나게 멀어 보였다.
“좋아 보이는구나.”
“네. 아빠도요.”
리혁이에게 어색하게 웃던 아버님이 우리를 보고 말했다.
“리혁이한테 지난번에 이메일로 이야기 들었던 거 같은데. 만나서 반가워요.”
“아, 네. 저희도 영광… 입니다.”
“그래요. 별명이 대길인 우주 씨, 맞나?”
우리 이름을 부르시긴 하는데 벼락치기로 공부를 해 오신 듯한 느낌이었다.
아들이 뉴블랙이란 그룹에서 활동을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는데, 우리에 대해선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할까.
사실 큰 관심이 없으신 듯했다.
아버님이 어색한 대화를 마무리할 때쯤, 어머님이 끼어들었다.
“그동안 리혁이한테 전화로만 이야기를 들었는데, 다들 너무 예쁘게들 생겼네.”
“감사합니다.”
‘저도 제가 사랑스러워여’ 하는 자기애 넘치는 우리 막내의 대사에 어머님이 웃었다.
“리혁이가 한국에서 혼자 지낸다고 해서 걱정이 됐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그동안 못 오고 있었어요.”
어머님이 아들과 똑 닮은 냉랭한 미소를 보였다.
“일일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바로 공항으로 가야 해서. 시간이 없어서 준비했어요.”
핸드백에서 ‘To. 우주 of 뉴블랙’이라고 되어 있는 편지를 네 통 꺼내는 어머님이었다.
리혁이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고 우리는 웃음을 터뜨리면서 편지를 받았다.
어머님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미국에서 산 지가 오래돼서 요즘 한국의 예절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편지를 주고 그러면 너무 오래된 사람 같은가?”
“아니에요. 그것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에요.”
우리가 손사래를 치며 편지 빌런에 대한 설명을 해 주자, 그제야 ‘아하’하는 어머님이었다.
어머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리혁이에게도 편지를 내밀었다.
“여기.”
“어, 고마워요. 저도.”
모자가 어색하게 편지를 교환하는 광경에.
“……어, 나도.”
아버님까지 리혁이에게 편지를 내미는 모습에 웃음을 삼켰다.
가족끼리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기 위해 물러나던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떤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괜찮은 거 같지?”
“그런 것 같아요.”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언젠가 리혁이로부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일단은 쟤가 웃으면서 좋아하고 있으니까.
“자, 사진 촬영 하겠습니다!”
“네!”
저마다 가족들과 함께 카메라 앞에 섰다.
첫 콘서트를 기념하기 위해 단체 가족사진을 찍기 위함이었다.
사진 기사가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동안 김덕순 여사의 뒤에서 포옹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가족들이 둘러싼 가운데 멤버들이 중앙에 모였다.
“……너무 좋다.”
사진 촬영을 하는 동안 리혁이가 상기된 얼굴로 속삭였다.
“내일도 오늘 같았으면 좋겠어요.”
“그러게.”
우리도 그러기를 바라며 미소를 지었다.
여러 의미로.
* * *
-어제 콘에서 리혁이가 사랑한다고 해줘서 아직도 감동ㅠㅠㅠㅠㅠㅠㅠ
-진짜 우리 애옹이ㅠㅠㅠㅠㅠ
-리혁이가 1일차에서 사랑한다고 해줬다고 해서 지금 헐레벌떡 일어나서 귀 씻는중
-나도 귀 씻고 간다
-오늘도 그럼 사랑한다고 해주는 거겠지?
-1일 1사랑 소취
-에이ㅎㅎㅎ 설마 리혁이가 1일차 관객들한테만 사랑한다 해주고 우린 안해주겠어~?
-안 될수도..?
-[속보] N모 그룹 콘서트 형평성 논란, 멤버 서모씨 ‘1일차 팬들만 사랑한다’ 밝혀.. 우모씨는 대만으로 도주
-비켜봐 나도 사랑 받을거야
-우리집 뽀삐한테 못 받은 사랑 리혁이한테 받을래 (주먹)
2일 차 리허설을 앞둔 대기실.
“…….”
태블릿을 보다가 양손으로 얼굴을 덮는 누군가의 모습에 막내가 얄밉게 흉내를 냈다.
“내일도 오늘 같았으면 좋겠어요~ 오홍홍~”
“…….”
우주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끼어들었다.
“리혁아. 기억해.”
“…….”
“콘서트는 3일이야.”
누군가 ‘어떻게 해, 으아아’ 하는 동안 나머지 셋이 깔깔 웃으며 ‘콘서트는 3일~’ 하며 합창했다.
우주가 ‘덕순아’의 가사를 흥얼대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사~랑도 삼세번이야~”
“아이, 조용히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