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02화
처음은 부정의 단계였다.
“아닌데?”
“이게 이럴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이렇게까지 빠르게 오를 리가 없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직전 컴백 곡이었던 바람꽃보다 훨씬 더 좋은 성적이었으니까.
그리고.
“작년에 마커 때도 잘나왔다고 떠들썩 했는데, 그때 24시간에 50만 뷰 아니었어?”
“그랬던 거 같은데여.”
검색해 보니 ‘100만 뷰를 찍는데 48시간밖에 안 걸리다니, 너 참 대단한 신인이구나?’ 하는 뉘앙스의 기사들이 나왔다.
그때보다 4배나 더 빠른 속도였다.
“…….”
올해 상반기에 가장 많은 뷰를 자랑했던 TNT의 ‘Kingdom’ 뮤비도 7시간에 150만 뷰였던가.
태현이 일당이 톡으로 링크를 보내줘서 알고 있었다. 빨리 감탄하라고 재촉했었지.
“우리가 11시간 만에 백만 뷰…….”
몽롱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기분이 좋았다. 평소와 다르게 리혁이가 예쁘고 기특하게 보이고.
망둥이 같은 막둥이도 귀엽게 보이고.
이렇게 단시간에 100만 뷰씩이나 나온다는 사실에 마냥 행복할 따름이었다.
“우와, 댓글도 엄청 많아요.”
비주의 말에 우리가 태블릿 PC 앞에 모였다.
“영어가 엄청 많네여.”
“영어 천지구나. 형, 이거 해석 가능해요?”
“번역을 눌러, 중현아.”
중현이가 ‘번역 보기’를 누르곤 읽었다.
“Woojoo는 방화범, 내 마음에 불을 질렀어.”
“푸핫!”
동생들이 깔깔 웃었고 나도 머쓱하게 웃었다.
그러곤 다른 번역 보기를 누르곤, 중현이에게 음성 재생을 부탁했다.
“저 블루가이의 다리를 봐. 저 다리는 내 인생보다 길어.”
“푸하하!”
“그리고 얼굴은 내 미래보다 밝지, 라는데요.”
리혁이가 민망해 하는 동안, 우리는 외국 사람들이 달아준 댓글을 읽었다.
웃긴 게 진짜 많았다.
‘나, 여기 잠들다 (1987-2015)’도 있고, ‘비둘기는 들어가. 이제부터 평화의 상징은 뉴블랙이야’ 하는 재치있는 댓글도 있고.
‘Woojoo의 춤은 우리나라 경제보다 안정적이다.’하는 댓글도 있었다.
보면서 동생들이랑 한참을 웃었다.
“…….”
어떤 댓글들을 보기 전까지는.
-슬슬 혼란스러워지는데. 미튜브가 추천해주는 뉴블랙의 영상을 보았어. 얘네는 본업이 뭐야? 한국의 코미디언? 가수? 배우?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어.
┖당연히 가수지. 무슨 소리야?
┖추천 영상에 있는 이상한 것들을 보고 와.
┖보고 왔어. 미안. 내 생각이 짧았어. 나도 너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해.
다급하게 추천영상으로 넘어갔다.
-‘덕순아’ 전국노래자랑 remix. 3시간
-사과를 오랫동안 보관하는 법 (어렵지 않아요~)
-선인장 키우기 10일차
-세종대왕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사실 3가지
-[수플레TV] 왕지호가 사랑스러운 막내인 이유
공용 태블릿에 담긴 각자의 취향에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추천 목록 하단을 바라보며 아까 그 댓글이 무슨 말인지를 깨달았다.
“역사 탐험대가 왜 여기 있어……?”
“와. 썸네일 역동적인 거 봐여. 중현이 형이랑 대길이랑 박진감 넘치게 싸우고 있어여.”
“와우. 진짜네.”
“……와우고 뭐고 지금 큰 일 난 거 같은데요.”
리혁이가 진지하게 말했다.
“전세계에 퍼진 사람들이 우리의 이… 이런 걸 보는 거잖아요.”
“…….”
나인의 뮤비가 110만뷰를 돌파한 그 시각, 우리는 숙소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 * *
오후 5시가 되었을 무렵에는 조회수가 더 올라 있었다.
-뉴블랙 ‘Nine’ MV 일 냈다… 17시간 만에 ‘200만뷰’ 돌파
-‘Nine’ 200만뷰 돌파, “뉴블랙 인기 후끈하네”
-뉴블랙 공식 SNS에 인증샷 올려 “전혀 예상 못해.. 정말 감사하다”
얼떨떨할 정도로 빠른 증가세였다.
“이대로면 이번 주가 지나기 전에 1000만 뷰를 찍을 수 있을지도 몰라.”
“흐어…….”
“미리 축하해. 얘들아. 너희 뮤비 대박 났어.”
홍 대리님을 비롯해 다른 홍보팀 직원들이 ‘축하한다’ 하며 인사를 건넸다.
내가 침을 꿀꺽 삼켰다.
“저희가 지금 그 정도로 대박이 난 건가요?”
“아니.”
“역시…….”
“그 이상이지.”
홍 대리님이 엑셀 자료를 스윽 훑더니 말했다.
“이 추세면 무조건 올해 가장 많이 본 K팝 뮤비 10위 안쪽에 들어갈걸?”
“흐어…….”
“내 예상으로는 최소 4위 정도는 할 거 같아.”
“저희가요?”
상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보다 더 오를 수도 있고. 지금도 입소문을 타고 쭉쭉 퍼지는 중이라서… 해외 팬들 유입이 엄청 많은 거 같아.”
“마스커레이드 때처럼요?”
“그때보다 더하지. 그때는 한 스푼, 두 스푼이었다면 지금은… 쌀 한 포대가 터진 정도?”
리혁이와 중현이의 아침식사 장면이 떠올랐다.
마스커레이드 때가 시리얼을 조금씩 덜어내듯 돌돌돌 하는 느낌이라면 나인은 와르르 하면서 시리얼이 쏟아지는 느낌인 듯했다.
추세가 심상치 않았다.
뮤비 한 번으로 갑자기 글로벌 슈퍼스타! 이런 건 아니지만 고무적인 일이었다.
바다 너머에서 이 정도로 큰 반응이 왔던 건 처음이라서.
“와…….”
연습실에 돌아와서도 얼떨떨한 기분을 느꼈다.
상상이 잘 안 간다.
전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의 성공이라서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흐음…….”
노트북에 세계 지도를 띄워놓고 보았다.
“그러니까 여기서도 우리 뮤비를 보고, 저기서도 우리 뮤비를 보고 있다는 거네여.”
“그렇지.”
“뭔가 수플레가 세계로 퍼져나가는 느낌이네여.”
종말 영화 도입부에서 붉은 그래픽이 세계 지도를 뒤덮듯 어떤 환각이 보였다.
지도 위로 우후죽순으로 솟아난 빵들이 ‘하이!’ 하며 방방 뛰는 모습이.
내가 핸드폰을 들었다.
“뭐해요?”
“뮤비 감독님한테 감사 메시지 보내야지.”
장문으로 문자를 작성하는 내 모습에 막내가 동참했다.
“저도 보낼래여.”
“조금 시간 차 두고 보내자. 다 같이 한꺼번에 보내면 좀 그렇잖아.”
“넹.”
문자를 보내고 얼마 안 가서 축하한다며, 자기도 잘 돼서 기분이 좋다는 감독님의 답이 돌아왔다.
그 동안 다른 메시지들도 쌓이고 있었다.
100만 뷰 돌파까지는 그래도 잠잠했는데, 200만 뷰가 돌파하고 나서부터 소식이 퍼졌는지 지인들의 연락이 잦았다.
장소원 선배도 축하한다고 전화를 걸고, 태현이도 축하의 메시지와 함께 기프티콘을 보내주었다.
도준기 [우주야]
도준기 [우리 찐하고 뜨거운 해외 파병 콜..?]
‘사나이가 간다’ 피디님의 연락은 나중에 답하기로 했다.
은성 [글로벌 슈스 행님 축하합니다]
은성 [이제 해외 가시나염?]
나 [ㅇㅇ]
나 [형은 갈게 너는 각개]
군대 가서 각개전투 열심히 하라고 안부를 전해주니 어떻게 사람이 그러냐며 거친 말이 돌아왔다.
한조 [ㅎㅎ 축하해]
어색한 반말로 축하해주는 한조에게도 수줍은 이모티콘으로 답해주었다.
동생들도 지인들에게 답을 해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들 답장은 끝났어?”
“네.”
고개를 끄덕이는 동생들에게 내가 웃으며 말했다.
“음원 공개하기 전까지 연습 좀 더 하자.”
목요일에 있을 컴백 무대를 앞두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Nine’의 안무를 연습했다.
뮤비 조회수는 조회수고, 음방은 음방이다.
특히나 이번에는 콘서트의 피로와 해외 투어 일정을 고려해 음방이 2주라서 짧았다.
무대 개수가 적은 만큼 하나하나 더 디테일에 신경을 쏟고 싶었다.
“콘서트에서 손동작을 살짝 바꾸면서 해봤는데, 이렇게 했을 때가 반응이 더 좋더라고요.”
메인 댄서의 가르침 아래 안무의 자잘한 손짓, 발짓 등을 살짝 수정했다.
누가 보면 ‘뭐가 달라진 건데?’ 할 만한 차이였지만 우리에게는 큰 차이였다.
“허억… 허억!”
강도 높은 동작을 수십 번 반복한 후, 가뜩이나 방전된 체력이 0으로 되어버린 두루미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눈물을 머금은 눈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 소원이 하나 있어요.”
“뭔데.”
쪼그려 앉은 내 눈에 처량맞은 얼굴이 들어왔다.
“이제 중현이 형 끝났으니까 다음 앨범은 나잖아요. 파란색.”
“그렇지.”
“……다음 앨범 컨셉은 제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해줘요.”
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글쎄. 네가 원하는 방향대로 갔으면 우리 3집 타이틀은 바람꽃이 아니라 암흑물질이 됐을걸.”
“제목에 대한 권리는 포기할게요.”
“춤이 힘들어서 그래?”
“…….”
“그래. 말 안 해도 알아. 내가 그 기분 잘 알지.”
내 딴에는 위로로 꺼낸 말인데, 너 같은 춤 괴물이 뭘 아냐며 카악! 하는 통에 잠시 진정시켜줘야 했다.
구석에서 댄스 브레이크 연습을 하던 비주가 다가와 쪼그렸다.
“음? 형. 리혁이 왜 그래요?”
“춤이 힘들대.”
“리혁아. 춤이 힘들어?”
비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바닥에 엎어진 리혁이를 토닥였다.
“못해도 괜찮아. 연습하면 돼.”
“…….”
“이번에 나인도 처음에 못할 것 같다고 했지만 봐봐. 지금 엄청 잘하게 됐지? 연습하면 다 해결 돼.”
“으아아악!”
트라우마가 왔다는 듯 바닥에서 구르는 모습에 비주가 눈을 깜빡이자 내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자자, 막판이야. 리혁아. 힘을 내자.”
“흐어어…….”
“이번 활동 잘 끝내고 나면 다음에는 네가 원하는 대로 시원하게 보컬 곡으로 가 보자.”
“정말이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지호가 ‘오’ 하며 말했다.
“저거 그건데, 우주 형이 저 돈까스 사준다고 해놓고 치과 갔을 때 저 표정이었어여.”
“…….”
“어, 나는 제육볶음이었는데.”
눈치 없는 두 녀석의 증언에 리혁이가 눈을 가늘게 뜨자, 내가 헛기침을 하며 외면했다.
그러곤 다시 연습을 했다.
입으로는 못한다 못한다 하지만 정작 연습에 들어가니 눈에 불을 키고 하는 우리 애였다.
힘들어서 서 있을 체력도 없는 애가 바들바들 떨면서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기특하다고 할까.
이번 나인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여준 인물 중 하나가 바로 리혁이었다.
춤이 엄청 늘었지.
본인이 그 동안 엄청 혼자 연구를 했던지, 예전에는 춤을 막연히 잘 추려고 노력했다면 이제는 본인의 특징을 잘 살리고 있었다.
무게감 있고 정석적인 춤을 보이는 나와 화려하고 유연한 춤을 보여주는 비주 사이에서 본인이 돋보일 방법을 찾아낸 듯하다고 할까.
딱딱했던 춤 동작을 팝 댄스처럼 몸에 각을 살린 동작으로 바꾸고, 부족한 부분은 막내에게서 배운 표정 연기로 메운 듯했다.
“……흐어억.”
뭐. 체력이 약한 게 흠이긴 하지만.
몸을 유연하게 풀거나 목 동작 등을 까딱까딱하는 다른 멤버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리혁이뿐만 아니라 다들 실력이 늘어 있었다.
여기에 콘서트라는 실전 경험까지 더해지니 연습하는 동작 하나하나에 자신감이 살아 있었다.
지금까지는 두드러지지 않았던 각자의 특색이 퍼포먼스에 반영되는 게 눈에 들어온다고 할까.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하는 동생들을 보며 웃었다.
늘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걱정스러웠는데, 이제는 걱정을 덜어도 될 것 같다.
거울 앞에 선 지호가 진지한 얼굴로 웨이브를 부드럽게 타는 모습을 보며 뿌듯해할 때.
몸을 돌린 막내가 씩 웃으며 내게 웨이브를 보여줬다.
“어때여. 형. 피라루쿠 춤이에여. 물고기 같져?”
“…….”
“흐하핫! 중현이 형, 따로 하지 말고 같이 해여!”
쓰러진 리혁이를 둘러싸고 아마존의 민물고기 춤을 추는 동생들을 보며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어쩌면, 아직은 이른 걸 수도…….
* * *
저녁 6시가 되기 전.
레몬 엔터의 휴게실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안녕.”
뉴블랙의 살가운 인사에 웃는 이들은 바로 이번 ‘Neon Black’에 참여한 작곡가들이었다.
“얼른 와서 드세요.”
“오?”
휴게실에 도착하니 이런저런 먹을거리가 잔뜩 널려 있었다.
나무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먹던 A&R팀 직원들이 그들에게 얼른 가까이 오라는 듯했다.
“우리 애들이 시켜준 거예요.”
고개를 돌리자 뉴블랙 멤버들이 미소를 지으며 ‘맛나게 드세용~’하며 말했다.
나상윤이 물었다.
“너희는 안 먹어?”
“저희 지금 다이어트 중이어서… 뭐든 컴백하고 나서 먹으려고요. 일단 드세요.”
“고마워.”
다이어트 중이라면 음식 냄새만 맡아도 짜증이 날 터인데, 싱그럽게 웃으며 음식을 권하는 모습에 고마움을 느꼈다.
“얼른 오세요!”
A&R팀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나무젓가락을 내밀었다.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지 뉴블랙과 레몬 엔터의 직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음원 공개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가?’
조금 있으면 공개될 ‘Neon Black’의 타이틀과 수록곡을 떠올리던 이들의 생각이 이내 어느 지점에서 멈췄다.
“아, 맞다. 뮤비 대박 났다며.”
솔트맨이라는 예명을 쓰는 작곡가 유창석이 음식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축하해. 얘들아.”
“감사합니다!”
“맞아. 나인 반응 장난 아니던데, 나 아까 올라오면서 본 기사에 이번 주에만 천만 뷰 넘길 거 같다던데. 진짜야?”
“네.”
기쁘게 웃는 멤버들을 보며 다들 ‘오오’ 했다.
음원이 과연 어떤 성적을 거둘지는 모르지만, 뮤비 조회수만 따지면 초대박이었다.
지금까지 해외 반응이 있긴 해도 엄청 크지 않았던 뉴블랙이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해야 하나.
그럴 만했다.
‘진짜 멋있게 뽑긴 했지.’
화려한 네온 사인과 야경, 그 속에서 펼쳐지는 군무는 SF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Nine’의 작업에 참여했던 이들이 뿌듯함을 느꼈다.
그렇게 뮤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작곡가들은 분주하게 젓가락을 놀렸다.
‘너무 맛있다.’
‘이거 보쌈 집 어디지? 업체명 알아놔야지.’
‘원래 컵라면 먹으려고 했는데.’
그때 옆에 있던 A&R팀의 서필근 대리가 말했다.
“너무 많이 드시진 마세요. 우주가 이따가 요 앞에 소고기 집에서 쏘기로 했거든요.”
“허어…….”
소고기란 말에 눈이 몽롱해지는 젊은 작곡가들이었다.
행복한 미소를 띤 이들이 젓가락을 느릿느릿 움직이자,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이윽고.
저녁 6시를 앞두고 노트북 앞에 모인 멤버들을 중심으로 작곡가들과 직원들이 모였다.
“자, 올라옵니다! 올라옵니다!”
“올… 올라왔다아!”
연신 마른침을 삼키는 멤버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긴장을 풀어주는 직원들이었다.
리혁이 달달다달달 떨리는 손가락으로 창을 끈 후.
우주가 안정적인 떨림을 자랑하며 새 창을 띄웠다.
“와아아!”
새로운 앨범이 나온 것을 축하하며 다들 손뼉을 쳤다.
앨범 커버로 ‘N’이라고 된 초록색 네온 사인이 있고, 수록곡이 주루룩 나열 되어 있었다.
‘……올라왔구나.’
자축하는 이들 사이에 낀 작곡가들은 살짝 멍한 기분을 느꼈다.
이번처럼 제대로 앨범 작업에 참여해보는 건 처음이었다.
프로젝트에 지원하기 전까지 여기 있는 작곡가들 대부분이 제대로 된 일을 맡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막판에 이름이 빠지는 것도 부지기수고, 기껏 다 해놓은 일을 선배 작곡가라는 사람들이 채가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뉴블랙과 함께 한 작업은 의미가 깊었다.
좋은 환경에서 제대로 일도 할 수 있고, 지금처럼 공로도 인정받을 수 있고, 그 과정도…….
‘힘드시죠? 제가 작업실에 매트리스를 들여놨어요.’
‘즐거우신가요? 제가 특공대 다녀와서 깨달은 건데, 저만 즐거우면 안 되더라고요. 어때요? 이 멜로디 신나지 않나요?’
‘난 있잖아~ 작업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 하늘 땅 만큼~’
역경도 있긴 했지만…….
어쨌거나 그 모든 역경을 뚫고 마침내 앨범을 발매했다.
수록곡마다 ‘작곡, 작사, 편곡’ 등에 실린 자신의 이름을 보며 뿌듯하게 웃을 때.
멤버들이 그들에게 다가와 말했다.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아니, 뭐… 아직 차트에 뭐 제대로 든 것도 아닌데…….”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죠. 이번에 정말 저희와 작업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고맙다며 일일이 인사하는 멤버들의 모습에 묘한 기분이 느껴졌다.
이윽고.
“5분 차트에 1위로 진입했어요!”
“허어!”
“얘들아아아아!”
다들 얼싸안고 기뻐했다.
3위인 틴스피릿의 ‘Feel So Good’과 2위인 차우현의 ‘호우주의보’ 위로 1위에 뉴블랙의 ‘Nine’이 있었다.
그 속에서 작곡가들도 함께 기뻐했다.
‘좋다…….’
이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가 좋다고 해야 하나.
그대로 7시 차트까지 1위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성적에 모두가 들떠 있었다.
다 같이 고깃집으로 향할 준비를 하는 동안 우주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참, 혹시 뭐 좀 여쭤봐도 될까요?”
“음……?”
“저희 앨범 끝나고 나서 새롭게 들어가시는 프로젝트가 있나 해서…….”
작곡가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내 그들의 발가락이 꼼지락거렸다.
‘없는데.’
‘명절 때 취업했냐고 묻는 느낌…….’
‘있을 리가.’
실력은 있지만 아직 연차도 비교적 낮고, 경험도 적은 이들을 불러주는 곳은 적었다.
그들이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할 때.
“혹시 저희와 계속 일해보실 생각은 없나요?”
“여기서?”
“네, 제가 얼마 전에 이사님과 이야기를 나눴거든요. 다들 너무 잘해주시고 합도 잘 맞아서 계속 함께 일하고 싶다고 하니까…….”
우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프로듀싱팀을 신설하는 것도 좋겠다고 하셨거든요.”
솔깃하다.
“A&R팀 분들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시고요. 그런데 의향도 안 묻고 제 말씀을 드릴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미리 이렇게 여쭤 보려고 해요. 의향이 있으신지.”
“프로듀싱팀 직원으로……?”
“네, 자세한 건 팀장님이랑 이야기를 나누셔야 하겠지만.”
작곡가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내 그들의 의견을 들은 우주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사라지자 작곡가들이 감췄던 설렘을 드러냈다.
“우리 그럼 여기서 더 일하는 건가? 더?”
“지금 이 조건으로 일하게만 해줘도 좋을 거 같은데, 우주 얘기 들어보니 더 좋은 거 같죠?”
“지원하길 잘했다. 진짜.”
하지만 작곡가들은 알지 못했다.
그들이 행복한 얼굴로 웅성거리는 동안 뒤에서 A&R팀 직원들과 멤버들이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는 것을.
‘데려왔다. 노비.’
‘잘했다. 도비.’
모두가 즐겁게 웃는 분위기 속에서 레몬 엔터의 A&R팀 산하에 프로듀싱 팀이 신설되는 순간이었다.
* * *
같은 시각.
강남구의 어느 골목길이 왁자지껄한 웃음으로 채워지고.
근처 건물 꼭대기 층에서 어느 대머리 중년인이 기쁨의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각지의 수플레가 ‘서, 성공했다!’ 하며 기뻐할 때.
유일하게 웃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다.
“조떼따…….”
다닥다닥 붙어서 핸드폰으로 차트를 확인하던 미소년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야. 우리 어떡하냐. 개망한 듯.”
“이 형들 존나 센 형들이었구나.”
“어떻게 매번 음원이 이렇게 터지냐.”
“그치. 우리 속도 터지고.”
“……근데 어떻게 이기지, 이거? 이 형들 나왔다 하면 대중 픽인데.”
뉴블랙과 1위 경쟁을 앞두고 틴스피릿 멤버들이 근심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