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03화
비어 있던 사무실 문 앞에 ‘프로듀싱 팀’이라는 팻말이 걸렸다.
“우와아아!”
“레몬 엔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우리가 ‘축하합니다~’ 하는 노래를 부르며 흥겹게 춤을 추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A&R팀 직원들은 손뼉을 치며 꺄르륵 웃고.
작곡가들은 ‘프로듀싱 팀’이라는 팻말을 바라보며 감회가 새롭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리 회사에 들어온 걸 환영해요.”
박규호 대표님이 인자한 미소로 작곡가들을 맞이했다.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하며 악수가 오가는 동안 우리가 화동처럼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조만간 식사 한 번 하자는 이야기가 오간 후.
작곡가들과 이야기를 마친 대표님이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
아. 깜짝아.
어찌나 빨리 걸어오시는지, 공포영화 속 고교생 귀신처럼 뚠! 뚠! 뚠! 하며 얼굴이 가까워졌다.
동시에 인자하게 웃던 대표님의 입꼬리가 자본주의 미소로 바뀌기 시작했다.
내 얼굴만 봐도 행복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우주야!”
덥석.
대표님이 내 손을 꼬옥 붙잡았다.
“……네?”
“이번에 앨범 작업하느라 정말 고생 많았다. 아이구, 이거 봐봐. 얼굴이 반쪽이 됐네. 보약 먹어야겠어.”
“괜찮아요, 대표님. 저 홍삼 먹고 있어서…….”
“홍삼 가지고 되나. 우리 집에 얼마 전에 녹용이 들어왔는데 그것 좀 달여다 줘야겠다.”
그러더니 다른 멤버들에게도 ‘반쪽이 되었구나!’ 하는 대표님이었다.
지호의 얼굴을 양손으로 찐빵처럼 누르며 ‘반쪽이네!’ 하며 탄식하던 대표님이 중현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래. 중현이도 반…….”
“…….”
푸근하게 웃는 바위 같은 얼굴에 대표님의 동공이 흔들렸다.
“얼굴이…….”
“네.”
“팔… 팔십삼 퍼센트 정도 되었구나.”
“맞아요. 대표님.”
너무 건강한 우리 애 앞에서 멈칫한 것도 잠시.
고생 많았다면서 우리 손을 붙잡고 눈을 글썽거리는 대표님이었다.
“콘서트 준비하느라 다들 고생 많았어. 굿즈 사진 촬영하는 것도 힘이 들었을 텐데…….”
우리끼리 눈빛을 주고받았다.
‘콘서트가 대박이 났구나.’
‘굿즈도 불티나게 팔렸고.’
대표님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시더니 정수리도 닦으셨다.
조 이사님이 뒤에서 ‘크흠’하는 동안 우리는 필사적으로 다른 생각을 했다.
“다들 프로듀싱에 참여했다고 하던데, 정말 잘해줬어. 앨범 수록곡에 자작곡도 꽤 많다며.”
“네, 중현이랑 비주 자작곡이 들어갔어요.”
“다들 고생이 많았구나…….”
다시 한 번 눈빛을 교환했다.
‘지금 앨범이 엄청 잘 팔리고 있구나.’
‘음원도 잘 되고 있네.’
한 줄기 눈물을 주르륵 흘리던 대표님이 내 손을 붙잡았다.
“우리 우주가 늘 작곡하느라 고생이 많은 것 같아서… 이렇게 프로듀싱 팀을 신설하게 됐어.”
“네. 알고 있어요.”
내가 웃으며 답했다.
스칼렛에도 작사작곡이 가능한 데이지가 있지만 그쪽은 믹스테이프나 수록곡 트랙 하나 정도 비중이었다.
그래서 A&R팀 직원들이 짬을 내어 도와주면 되는 수준이었다.
반면 나는 타이틀부터 시작해 직접 작곡한 곡이 하도 많은 탓에 손이 많이 필요했다.
프로듀싱 팀이 신설된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나의 곡 작업을 도와주기 위함이라고 할까.
“그래서 하는 말인데…….”
대표님이 진지하게 물었다.
“다들 더 필요한 건 없니?”
“필요한 거요?”
“연습할 때나 작업할 때나. 애로사항이 있으면 다 말해 봐. 연습실 리모델링도 되고…….”
나갈 돈에 대해서 이미 결심하고 오신 듯 대표님의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머릿속에선 이미 억이 깨지는 중이신 듯했다.
“음, 필요한 거라…….”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자, 대표님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현재로선 없는 거 같아요.”
“휴우…….”
손떨림이 뚝 멈추셨다.
“하하. 그렇구나.”
“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뮤직 비디오도 고예산으로 찍고.
4대 기획사 급으로 앨범 만들 때 돈을 턱턱 투척해 주시는 대표님에게 더 바랄 게 뭐가 있을까.
정산이야 TNT 애들이 놀랄 정도로 잘 받고 있고.
그런데도 더 필요한 게 없냐고 묻는 대표님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언제든지 말하려무나.”
그러곤 작곡가들과 대화 중인 본부장님과 조 이사님을 향해 사라지셨다.
그 뒷모습을 보며 내가 중얼거렸다.
“……우리가 잘 되긴 했구나.”
“그냥 잘 된 게 아니고 대박 터진 거죠.”
“그것도 초대박.”
회사에서의 달라진 입지가 실감이 난다.
대표님이 좋으신 분이긴 하지만, 엄연히 수익을 가장 중요시하는 사업가였다.
지금처럼 이렇게 멤버 하나를 위해 프로듀싱 팀을 하나 뚝딱 신설하고, 뮤비 하나에 몇 억을 투척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수익을 올려 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잘 안 되고 있었으면 어림도 없지.
“뭐. 그만큼 더 열심히 하면 되지.”
“맞아여.”
잠시 묘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우리를 이렇게 밀어주기로 결정했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하면 될 뿐이다.
동생들과 웃으면서 작곡가들에게 향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피디님들.”
“그래. 우리도.”
작곡가들이 웃으며 답했다.
신설된 프로듀싱 팀 직원들의 호칭은 프로듀서를 줄인 PD로 정한 터였다.
“기분이 좋기도 한데 미묘하네.”
나상윤 PD가 뒤통수를 긁적였다.
“자리를 얻기는 했는데 막상 당분간 일할 거리가 없다고 하니까. 뭔가 살짝 민망하기도 하고.”
“맞아. 들어오고 나서 바로 일해야 될 줄 알았는데.”
“밥값을 할 기회가 없네.”
스칼렛도 우리도 당분간 새 앨범이 없다 보니 머쓱한 모양이었다.
물론 외부에서 프로젝트를 따 와서 작업하겠지만, 지금 회사 내에서 할 일은 별로 없었다.
겨울에 나올 윤찬혁 선배님의 솔로 앨범 정도.
우리가 웃으며 답했다.
“솔직히 거의 한 달 넘게 제대로 잠도 못 주무셨잖아요. 고생하셨는데 여유롭게 보내셔야죠.”
“그런가.”
“네, 당연하죠.”
나상윤 PD가 웃으며 답했다.
“그래도 필요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말해 줘.”
“네.”
내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런데 당분간은 없을 거예요.”
“하하, 그래?”
“네, 필요한 일을 모두 끝내 버려서. 새 일이 생기지 않는 이상에는…….”
내 말에 프로듀싱 팀 직원이 된 작곡가들이 행복한 웃음을 흘렸다.
말은 그러지만 당분간 여유롭게 지낼 수 있다고 하니 생각만 해도 기쁘고 설레는 모양이었다.
“하하하!”
“핫핫!”
다 함께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 * *
미국 LA 할리우드.
거대한 믹싱 콘솔과 녹음 장비로 가득한 스튜디오에 몇몇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흐음…….”
뮤지컬 영화 ‘노스탤지어’의 감독을 맡은 존 에드워즈가 노래를 들으며 턱을 매만졌다.
“멈춰 봐.”
오디오 스탭이 정지를 누르자, 에드워즈 감독이 옆 사람에게 물었다.
“새라, 당신 의견은 어때? 이 곡 말이야.”
“나쁘지는 않은데, 글로벌 버전에 삽입하기에는 별로네요.”
“동감이야.”
음악 감독 새라 블룸의 말에 에드워즈 감독이 리스트에 있는 피아니스트 하시모토 겐지의 이름에 두 줄을 쫙쫙 쳤다.
“루퍼트, 너도?”
“네.”
갈색 머리의 파란 눈의 미청년, 주연 배우 루퍼트 딘이 대답했다.
“전주가 쓸데없이 웅장한 거 같아요. 내용물은 별것 없는데 잔뜩 겉멋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오케이.”
세 명의 의견 일치에 곡이 리스트에서 빠졌다.
“그럼 이건 일본에서 개봉하는 극장판 버전에만 삽입을 하고… 나머지를 들어 보도록 하지.”
총괄 감독과 음악 감독, 주연 배우가 한 자리에 앉은 가운데 곡을 선별하는 작업이 펼쳐졌다.
지금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은 영화 속 한 장면에 삽입될 노래였다.
마법에 의해 살아난 책들이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도서관, 그곳의 외국서적 코너에서 등장하는 노래였다.
-넌 누구니?
-여기는 왜 왔어?
-이국적인 것을 보고 싶어서 왔어? 만약 그런 거라면 제대로 찾아왔군!
요정처럼 주인공 주위를 빙글빙글 돌던 책들이 외국어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었다.
세계 영화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들에서는 저마다 각국의 말로 노래가 나갈 예정이었다.
일종의 팬 서비스였다.
한편 미국과 그 외 국가들에는 ‘인터내셔널 버전’이라는 별도 버전을 내보낼 계획이었다.
그리고 해당 버전에 실릴 노래를 고르는 것이 바로 지금 그들이 하는 일이었다.
“흐음…….”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미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 통용될 만한 분위기의 곡을 찾고 싶은데 그에 들어맞는 게 별로 없었다.
대부분 그 나라의 색채가 진하게 묻어나온다고 할까.
짧은 장면 하나에 들어갈 노래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뮤지컬 영화인만큼 미세한 사운드 하나하나에 공을 들이고 있는 노스탤지어의 제작진이었다.
‘어떡하지…….’
남아 있는 노래의 목록은 점점 줄어 가고 있는데 마땅한 후보군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다른 말없이 물이나 음료를 들이키며 마지막 곡을 기다릴 때.
“마지막 곡입니다. 이건 한국에서 보낸 거예요.”
“한국?”
“더 뉴 블랙이라는 가수가 보냈어요.”
“아아.”
에드워즈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달에 화상 미팅을 하면서 얼굴을 봤던 K팝 가수였다.
“한국이면 주요 국가 중 하나잖아. 왜 이걸 마지막으로 미뤘어?”
“좀 길어서요.”
“길다고?”
“네, 두 가지 버전을 보냈는데… 하나는 하이라이트 파트고, 하나는 3분이 넘는 풀 버전이에요.”
“……?”
“마음에 드는 부분을 골라 쓰라던데요.”
3분이 넘는 풀 버전을 보냈다는 말에 주연 배우와 음악 감독이 미간을 좁혔다.
허나 얼마 안 가 고개를 끄덕였다.
특이하긴 했지만 나쁜 일은 아니었다. 그들이 마음대로 잘라 내서 써도 되는 거니까.
“일단 들어보자고.”
에드워즈 감독의 말에 노래가 재생됐다.
그리고.
“…….”
“…….”
정확히 3초.
구부정하게 있던 그들의 허리가 쭉 펴지고, 흐리멍텅했던 눈이 번쩍 뜨이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거다……!’
에드워즈 감독이 침을 꿀꺽 삼켰다.
한국판에 실릴 노래긴 하지만 국제 상영 버전에도 실을 만한 노래가 나타난 것이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에도 잘 어울리는 완벽한 곡이.
‘요정이 톡톡 튀는 거 같군.’
주인공을 둘러싼 책들이 요정처럼 꺄르르 하며 노래를 부르듯이 예쁜 분위기의 곡이었다.
그들이 수십 번 가까이 반복해서 본 장면과도 어울렸다.
‘대단해.’
루퍼트 딘이 감탄했다.
‘영화 장면에 대해선 말로만 설명을 들었을 텐데, 대체 어떻게 이 정도로 딱 맞게 만든 거지?’
태평양 건너에 있을 사람이 상상만으로 이렇게 잘 맞는 노래를 만들었다니.
별이 가득한 은하수 아래 펼쳐진 요정들이 뛰노는 나무 같은 노래였다.
‘궁금하다. 어떤 사람이지?’
주연 배우가 호기심을 보였다.
‘이런 노래를 만들어낸 사람은 누군지 몰라도 대가가 분명해. 이따 검색이라도 해 봐야지.’
머릿속에서 아름다운 성품을 자랑하는 예술가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루퍼트였다.
물론 그가 말하는 대가는 같은 시각 한국에서 멤버들과 만두만두만두 하며 노는 중이었다.
“다들 어때?”
노래가 끝나고 감독이 묻자, 만장일치로 찬성이 나왔다.
“이걸로 하죠.”
“마지막에 마지막이 되서야 이런 노래가 나왔네요. 이거 아닌 다른 노래는 상상이 안 가는 것 같아요.”
“동감이야.”
세 사람이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십 개의 곡을 듣고 나서야 마침내 적임자를 찾아냈다.
하지만 금세 새로운 난관에 봉착했다.
“잘라서 쓰는 건 어렵지 않아.”
에드워즈 감독이 말했다.
“필요한 부분만 딱 잘라내어서 쓰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이 전체 버전을 듣고 나니…….”
“버리기가 너무 아깝죠?”
“맞아. 처음에는 왜 3분이 넘는 노래를 보냈나 의아했는데, 이건 그럴 수밖에 없어.”
음악 감독인 새라 블룸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운드가 정말 근사해요. 엔지니어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깎았다고 해야 하나. 사람 꽤 여럿 잡았을 거예요.”
그것은 사실이었다.
“아무튼 전체 버전을 살려보자는 의견에는 나도 동의해요, 존.”
“저도 같은 생각이고요.”
합의가 이뤄진 후.
이내 풀 버전을 어떻게 하면 잘 살려 볼 수 있을지 세 사람의 회의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수 시간이 넘는 회의가 끝났을 때.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
존 에드워즈 감독이 떠올린 아이디어에 나머지 둘이 ‘오’ 하면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좋은 아이디어였다.
구체적인 계획이 세워진 후, 존 에드워즈 감독이 미소를 지으며 손바닥을 비볐다.
“자, 그럼 한국에 연락을 해 볼까?”
* * *
프로듀싱 팀 직원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는 중이었다.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에……?”
“네.”
“우주, 네가 만든 노래가 거의 풀 버전으로 쓰인다고?”
“네. 잘 됐죠?”
우주가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듀싱 팀 직원들도 기쁜 표정으로 외쳤다.
“축하해!”
“어우, 잘 됐다. 우주야!”
“감사합니다.”
칭찬이 민망한지 우주가 머쓱하게 웃었다. 그러곤 헛기침을 했다.
“흠흠…….”
고조된 분위기가 잠잠해지자 우주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몇 가지를 좀 바꿔야 해요.”
“뭔데?”
“가사를 영어로 바꿔 달라고 하더라고요. 한국어 판 말고 국제 버전에 실을 걸로요.”
“오, 그렇구나.”
“그런데 가사를 바꾸면 톤이 달라져서 또 새롭게 조정을 해야 되거든요.”
“…….”
촉이 느껴졌다.
이것은 일이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나가는 문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 지옥의 수문장처럼 팔짱을 낀 중현이 들어왔고.
그 앞에 앉은 올망졸망한 세 졸개는 세 개의 머리를 지닌 케르베로스처럼 보였다.
“일단 간략히 말씀을 드리자면…….”
우주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일이 없는 줄 알았는데요.”
“…….”
“있었습니다.”
참으로 멋진 요약이었다.
앨범 작업과 콘서트 편곡 작업 등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어느 오후.
‘일복이 터졌구나.’
‘하하하하!’
‘난 행복해. 행복한 거야.’
프로듀싱 팀의 PD들은 천장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 * *
프로듀싱 팀에게 새롭게 일거리를 맡긴 후.
“흐어…….”
‘Nine’의 뮤직 비디오는 4일차인 목요일 오전, 700만 뷰를 훌쩍 넘겼다.
프리징이라고 하던가.
갑자기 조회수가 급상승하면 미튜브 측에서 ‘이 자식 뭐지?’ 하며 잠시 조회수를 정지시킨다던데.
나인의 뮤비에 그런 프리징이 몇 번이나 걸렸다고 들었다.
해외 팬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돌면서 조회수가 몇 번이나 급상승을 거듭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몇 시간 전만 해도 분명 400만이었던 게 갑자기 500만이 되곤 했다.
“아직도 안 믿기네.”
“진짜 이거 실장님이 하는 거 아닐까여?”
막내가 윤석환 배후설을 제기했다.
“알고 보면 이 화면은 가짜고. 실장님이 사무실에서 우리 기분 좋으라고 숫자 타이핑하는 걸 수도 있어여.”
“그럼 프리징은?”
“실장님도 쉬셔야져.”
택도 없지만 어딘가 설득력 있는 지호의 가설에 매니저 형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도 같이 웃는 가운데 중현이는 솔깃한 눈치였다.
“자, 그럼 내릴 준비합시다.”
내 말에 동생들이 안전벨트를 하나씩 풀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원석이 형이 내린 가운데, 환하게 웃는 우리들에게 카메라 셔터가 날아들었다.
“안녕하세요!”
우리를 향한 수십 개의 카메라 렌즈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마스크를 내린 몇몇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고, 핸드폰 카메라 쪽을 향해서도 웃으며 인사했다.
“비주야!”
중간에 혼자 허둥지둥해서 딴 길로 향할 뻔한 우리 애를 붙잡고 학부모처럼 데려가니 여기저기서 웃음이 나왔다.
핸드볼 경기장에서도 진짜 중현이나 나나 다른 애들이 엄청 고생했지.
비주는 아직도 콘서트를 앞두고 자기 머리색이 빨강이 된 이유가 찾기 쉬워서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유리로 된 문을 통과하며 동생들과 바보처럼 웃었다.
“어째 가면 갈수록 카메라가 더 많아지는 거 같아요?”
“그러게.”
지금 이곳은 상암동에 있는 K-Net 사옥.
음악방송 첫 컴백을 앞두고 복도를 걸어가는 발걸음은 몹시도 가벼웠다.
“안녕하세요!”
지나가는 이들에게 꾸벅 인사할 때마다 피곤에 찌든 방송국 스탭들이 잠시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
그리고 전혀 예상 못한 일도 있었다.
‘저 사람이 웃네…….’
‘웃어 주기도 하는구나.’
평소 K-net에 오면 인상을 찌푸리며 반기던 스탭이 웃으면서 ‘안녕’ 하며 지나갔다.
바람꽃 때도 ‘뭐 어쩌라고’ 하는 표정으로 인사를 받아주던 사람이었는데.
아마 이번에도 연타석으로 홈런을 쳐서 생긴 일인 듯했다.
월요일에 출시한 ‘Nine’의 음원은 현재 3일 연속으로 일간 차트 1위를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실시간 차트에도 1위에 머물러 있고.
바깥세상에서 우리 노래가 어떻게 나오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오는 동안에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나인을 들은 터였다.
-답답한 가슴을 뻥 뚫리게 해 주는 시원한 노래입니다. 뉴블랙의 신곡, 나인입니다!
라디오에서 들었던 멘트를 떠올리는 동안 우리는 스탭들과 함께 커다란 대기실에 짐을 풀었다.
“우와, 더 커졌어.”
“우리 여기서 안무 연습해도 되겠는데?”
“넓어서 좋다. 야.”
널찍한 대기실에서 농담을 하며 짐을 푸는 스탭들을 보며 우리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스타일리스트들이 행거에 무대 의상을 거는 동안 우리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이따 무대 사전녹화도 있지만 그 전에 컨텐츠 촬영이 있기 때문이었다.
K-Net에서 하는 음악방송은 무대 외에도 이런저런 미니 게임 같은 컨텐츠가 많았다.
오늘의 컨텐츠는 다른 가수와 노래를 바꿔 부르며 서로의 곡에 대해 알아가는 코너였다.
“흠흠…….”
목청을 가다듬고 동생들에게 물었다.
“갈까?”
“네.”
“긴장하지 말자.”
다들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몇 분 뒤에 만날 무서운 사람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콩닥콩닥하다.
우리 같은 쫄보들에게는 무섭게 느껴지는 언행을 일삼는 질풍노도의 무법 청소년들.
문 몇 개를 지나 다른 대기실 앞에 붙은 ‘Teen Spirit 님’이라고 적힌 종이를 바라보았다.
똑똑.
-누구세요?
거친 말투에 내가 근엄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저희예요…. 뉴블랙…….”
뒤에 선 동생들이 음소거로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이내 문이 벌컥 열리고, 뚱한 얼굴의 미소년들이 나타났다.
공권력과 학교, 사회 등등에 대한 불만 가득한 표정에 우리가 살짝 움츠러들 때.
“…….”
침묵이 흐른 것도 잠시.
“어서 오세요.”
“…….”
“기다리고 있었어요.”
반짝반짝.
뚱한 얼굴들이 동시에 잇몸웃음을 지으면서 하얀 치아가 반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