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06)화 (306/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06화

“울었네.”

“안 울었어.”

내 대답에 석환 형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곤 우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으음’ 했다.

“아무리 봐도 울고 온 얼굴인데, 너희.”

“울었다니.”

내가 동생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우리 안 울었지?”

“……저희 안 울었어요. 실장님.”

“떡볶이가 너무 매워서 그래여. 약매 시키려고 했는데, 실수로 핵매를 시켜서.”

“저 안 우는 거 아시잖아요.”

차례대로 눈이 퉁퉁 부은 춤 붕어, 막내 붕어, 그리고 피라루쿠의 대답이 이어졌다.

붕어들을 바라보며 피식 웃는 석환 형에게 말했다.

“중현이 봐. 중현이를 보면 우리가 울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어.”

“중현이…?”

이윽고 고개를 돌린 우리 실장님이 말문이 막힌 표정을 지었다.

“…….”

“왜 그러세요, 실장님?”

“한 시간 사이에 더 건강해져서 돌아왔구나. 중현아.”

적당한 눈물은 안구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하던데.

중현이의 눈은 평소보다 더 맑고 또랑또랑해져 있었다.

헛기침을 하며 다시 우리에게 시선을 돌리던 석환 형이 픽 웃었다.

“이따가 스케줄 가야 하는데 눈이 그렇게 부어 있으면 어떡하냐.”

“라디오라서 괜찮아.”

“보이는 라디오 아니었어?”

“각도를 잘 조절하면 돼. 이렇게 하면 카메라에 되게 적게 운 것처럼 비치거든.”

내가 훗 웃으며 각도를 잡자 매니저와 조무래기들이 날 바라보았다.

“누가 봐도 대성통곡하고 왔는데여.”

“진짜 슬퍼 보인다.”

“이거 찍어서 저장해도 돼요, 형?”

“…….”

기왕 이리 된 거 폰카를 든 비주에게 우수에 찬 표정으로 포즈를 잡아 주었다.

“대사도 해 줘여. 슬픈 대사.”

바닷가를 바라보듯 아련한 표정을 짓고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11만 장.”

동생들의 눈이 촉촉해지자 석환 형이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 동안 같이 웃은 후 석환 형이 말을 꺼냈다.

“나도 어제 연락 받고 눈물이 핑 돌긴 하더라. 나도 이런데 너희는 오죽하겠냐.”

상대가 노트북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게 끝이 아닌 건 알지? 우리 예측으로는 초동 기간에 팔린 물량의 세 배가 올해 나갈 걸로 예상하고 있거든.”

“흐어…….”

우리가 서로를 돌아보았다.

“세 배면 30만 장이 넘는 거네.”

“일단 예측치로는.”

“허이구, 이게 뭔 일이여.”

동생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뭘 그렇게들 놀라. 올 봄에 나온 미니2집도 벌써 20만 장을 넘겼는데.”

“벌써?”

“이것도 아마 20만 장 후반대로 기록될 거 같고.”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내어놓은 예측치기는 했지만, 그간의 판매량을 고려하면 들어맞을 가능성이 높았다.

최소치로 잡아도 합계 50만 장이라니.

“대단한 거지. 다 합치면 바로 아래 있는 하이퍼와도 꽤 격차가 나거든.”

하이퍼라면 내가 연습생이던 09년도 즈음 KM 엔터에서 데뷔한 보이그룹이다.

대상도 몇 번이나 타기도 했고.

파워, 강렬, 섹시 등의 화려하고 강한 안무로 유명한 보이그룹이었다.

그런 선배님들보다 앨범을 더 많이 팔았다고 하니…….

“좋긴 한데, 뭔가 이래도 되나 싶은 느낌이긴 하네.”

“저두여. 하이퍼 선배님들 초등학교 때부터 본 거 같은데…….”

복권 당첨이 연공서열로 정해지지 않듯이 성공과 데뷔 연차는 큰 연관성이 없다는 건 안다.

하지만 연습생 때부터 우러러 보던 선배 가수들 위에 우리 이름이 있으니 뭔가 민망한 느낌이다.

에이스, 데이드림, 데일라잇 등등.

월말평가 곡으로 했거나, 핸드폰 플레이리스트에 들어 있었던 가수들이다.

빠르게 찾아온 성공이 기쁘긴 했지만, 진짜 우리가 이 분들보다 앨범을 많이 팔았다고? 하며 얼떨떨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무슨 생각?”

비주가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는 모르는 세계 어딘가에 왕국이 있는 거 아닐까요. 거기 있는 수플레 대왕님이 국민들에게 뉴블랙의 앨범을 사라고 그러는 거예요.”

비주의 합리적인 가설에 우리가 박수를 치며 웃었다.

하지만 멍한 건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정신이 어찌나 안 깨는지 누가 좀 나를 때려 줬으면 좋겠다. 중현이는 빼고.

‘정신을 차려 보니 인기 아이돌’ 이런 제목으로 나온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어쨌거나 좋은 일이긴 해. 종합적인 지표에 있어서도 틴스피릿 바로 다음이라는 거니까.”

석환 형이 말을 이었다.

“문제는 내년까지 펼쳐질 일인데.”

“인터넷 선을 또 뽑아놔야겠네.”

“연말까지 아이돌 커뮤니티나 SNS가 아비규환일 거야. 벌써부터 근거 없는 루머를 퍼뜨리는 애들도 많고.”

이사님이 변호사와 상담하면서 별도 법적 조치를 준비하는 중이라는 말이 이어졌다.

“너희가 당하면 당했지. 남한테 못 되게 구는 게 말이나 되니. 초등학생도 못 이기는데.”

이것은 칭찬인가 욕인가.

“당분간 조심해.”

“네.”

“남이 잘나가면 배가 아픈 사람이 많은 게 세상 이치야. 잘 되면 잘 될수록 이상한 것들이 꼬일 거고. 알아서 잘하겠지만, 행동이나 처신에 있어서 아예 여지를 주지 말고.”

“넵. 알겠습니다.”

몇 번이고 신신당부를 하던 이가 우리에게 물었다.

“참, 너희 틴스피릿이랑은 사이 괜찮아?”

“틴스피릿?”

“TNT 팬들이야 저번에 그 어디냐, 우주 네가 신토끼 나온 뒤로 많이 누그러진 편이거든.”

마스커레이드 때부터 우리에게 악플을 주구장창 달던 TNT의 일부 팬들이 그때 이후로 좀 잠잠했다.

아마 TNT 멤버들과 내가 보였던 모습 때문인 듯했다.

“지금은 틴스피릿 팬들이 제일 난리거든. 어떻게 틴스피릿 바로 다음이냐, 말이 되냐. 뭐 그런 거지.”

“아.”

“거긴 연령대가 어려서 정말… 뭐라고 설명을 해야 되지. 댓글이나 이런저런 게 종합적으로… 거친 편이야.”

“그건 아는데. 틴스피릿은 갑자기 왜?”

“거기 멤버랑 혹시 사이는 괜찮은가 해서. TNT야 다행히 너희들이 사석에서 사이가 좋아서 다행인데…….”

혹여 틴스피릿 멤버 중 하나가 우리에 대해 말이라도 이상하게 할까 걱정하는 듯했다.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그건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

“우리가 착각하는 걸 수도 있는데, 왠지 그쪽에서 우리를 좀 좋게 생각하는 거 같아.”

“그래……?”

눈이 가늘어지는 게 전혀 안 믿는 눈치였다.

“희한하네. 걔네가 누구를 마음에 들어하고 그러는 애들이 아닌데… 뭐. 정말 그렇다면 다행이고.”

“걱정거리는 좀 해결된 거야?”

“어느 정도는.”

상대가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말했다.

“그럼 앨범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기획안들이 우리에게 날아들었다.

“너희 이번에 방송이랑 광고 스케줄 관련해서 얘기를 좀 해 보자.”

“음?”

우리가 서류 뭉치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하자 석환 형이 물었다.

“왜 그래?”

“기획안이 좀 적어진 거 같아서.”

예전에는 중현이가 양손으로 잡아야 할 정도였다면 지금은 리혁이가 한 손으로 잡아도 될 정도였다.

앨범은 분명 그 어느 때보다 잘 되고 있다는데, 그에 반비례하는 기획안의 양에 의구심을 품을 때.

“왜 얇아졌겠어.”

매니저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부터는 큰 곳 위주로 나가야 하니까 그런 거지.”

*   *   *

매니저의 말대로 앨범은 순항 중이었다.

발매 후 일주일이 지나고 각국의 앨범 차트에도 이름을 올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뉴블랙, 美 빌보드 앨범 차트 ‘보이 그룹 중 4번째 진입’

-뉴블랙, 빌보드 200차트 ‘118위’ 기록 ‘TNT 턱밑까지 따라왔다’

-초동 ‘12만장’ 뉴블랙, TNT와 틴스피릿 위협하는 신흥 음반 강자

미국 내에서 판매량이 꽤 있었던 것인지 빌보드 200이란 차트에 우리 앨범이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개 ‘빌보드 들어갔지롱!’ 하면 나오는 월드 앨범 차트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최근 들어서 한 해에 서너 번 정도만 K팝 가수가 들었다는 소식이 들리는 200 차트에 이름이 올랐다나.

한태현 [(이모티콘)]

한태현 [인기 아이도루 ㅊㅋㅊㅋ 우리 늙은이가 이만큼 자라났다니]

한태현 [나 울어]

장한별 [지금 옆에 있는데 겁나 웃는 중]

코찔찔이들이 단체로 축하 인사를 건네 왔다.

지한빈 [내가 키웠다 선우주 진짜]

석지훈 [ㄴㄴ 내가 키움]

장한별 [무슨 소리. 이 구역의 우주맘은 나다]

한태현 [내가 키웠지 사실 선우주 아니고 한우주임]

한태현 [그런 의미에서 한우?]

나 [니들 양심 어디 갔냐]

누가 누굴 키워 냈다는 건지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앨범이 잘됐다고 진심 어린 축하인사를 보내주는 연습생 동창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가수와 반대로….

“오늘도 전화선 뽑아 놓으셨나요?”

“……응.”

홍보팀에 갈 때마다 직원들이 이마를 짚거나 초췌한 얼굴로 팩스 전원을 꺼놓고 있었다.

앨범이 잘 되면서 나온 기사들이 문제였다.

기자들이 조회수를 올리겠다고 기사마다 TNT와 틴스피릿이란 키워드를 끼워 넣는 바람에…….

인터넷도 폭발 중이고.

홍보팀도 같이 터지는 중이다.

너희들이 잘된 건 알겠는데 왜 남의 가수를 끌어들여서 기분 나쁘게 하냐는 이유인 듯했다.

“그냥 홍역 한 번 치르는 셈 쳐야지. 뭐.”

홍 대리님이 말했다.

“다행히 대중들 사이에서는 별 반응이 없는 것 같으니까, 너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네, 그럴게요.”

갑자기 욕을 바가지로 먹긴 했지만, 일반 대중들은 ‘뭐가 시끄러운 갑네’ 하고 넘긴다는 듯했다.

사실 크게 걱정은 안 됐다.

마음 고생할 수플레들이 걱정스러울 뿐.

“이럴 때가 되게 애매하네요.”

“뭐가?”

팬카페를 들여다보던 리혁이가 말했다.

“지금이야 지나가는 해프닝 수준이지만… 앞으로 이것보다 더 큰 일이 생길 때, 오히려 밝게 웃는 사진을 올리고 우린 아무렇지도 않아요!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평소와 다르게 조용히 있어야 하는 건지를 모르겠어요.”

“그치. 그걸 잘 모르겠어.”

“생각 없이 웃고 그러면 눈치가 없는 것 같고. 반대로 조용히 있으면 걱정이 될 거 같고.”

데뷔하고 나서 활동이 조금씩 길어질수록 이런저런 고민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었다.

특히나 팬들이 기하급수적으로 규모가 늘어나 있어서.

예전에는 소규모의 동아리에서 빵들과 우왕 한다면, 지금은 콜로세움에서 빵들이 우와아아 하는 느낌이었다.

새롭게 어떤 관계를 이어 나가야 할지는 쉽게 답이 나올 문제는 아니었다.

경험이 쌓일수록 하나씩 터득하겠거니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할까.

“형들, 형들 이거 봐여.”

“뭔데?”

“우리 그 천만 뷰 기념해서 올린 영상 있잖아여.”

막내가 동영상을 틀어 주었다.

“아, 이거 올라왔구나.”

“우리 진짜 정신없긴 한가 봐요. 이것도 깜빡하고 있었네.”

꾸러기 복장을 입은 우리와 똑같은 복장을 입은 9세 어린이들이 같이 춤을 추고 있었다.

-자, 따라해 보아요! 고기 고기 고기!

-고기 고기 고기!

고기송에 맞춰서 9세들과 20세들이 율동을 추고 있었다.

멜빵 바지를 입은 리혁이가 벌건 얼굴로 ‘고기~~~’ 하며 고음을 내고 있었다.

그러곤 칼군무 율동에 동참했다.

“이게 오늘 한국에서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본 영상 중 하나래여.”

“푸하하!”

이내 미튜브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서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ㅋㅋㅋㅋㅋ왜 애들이 더 성숙한 건데 ㅋㅋㅋ 표정 봐

-9세 : (근엄) / 20세 : (발랄)

-야 어른이들이 더 신났다

-나인이 근데 중독성 개쩔긴하는구나ㅋㅋㅋ 고기고기고기 당분간 계속 생각날듯

-노래방에서 텐션 올릴 때 부르면 좋을 듯

-얘네 낯가리는 애들이라며ㅋㅋㅋㅋ

-여러분은 지금 사상 최초 칼군무 율동을 하는 5인조 아이돌을 보고 계십니다

-가사까지 완벽하게 다 개사해서 연습한거 봐. 정말 하나하나 진심이구나ㅋㅋㅋㅋ

-원곡인줄

-뭔가 난장판인데 동선이 있네 ㄷㄷㄷ 내 자취방인줄

“푸하하!”

댓글을 쭉 내렸다가 올라온 우리는 한 지점에서 웃음기를 뚝 거뒀다.

수플레가 단 것으로 보이는 한 댓글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얘들아. 이거 원곡이지?

┕합리적인 의심 인정합니다

┕ㅇㅇ 나두. 이게 더 원곡 같은데 ㅋㅋㅋ

┕에이ㅋㅋㅋ 설마 원곡이 이거겠.. 거니 하고 달던 나는 뉴블랙이 외발자전거를 타는 영상을 보고 왔읍니다.

┕사운드가 묘하게 다름. 편곡을 했다기 보다는 아예 다른 곡 느낌

추천수가 가장 많은 그 댓글에 우리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다들 눈치 진짜 빠르네.”

“어떻게 할까요. 형?”

“중현아. 주먹 풀고 말해. 주먹에 힘 빼고. 댓글이라도 때릴 거니?”

그때 막내가 나섰다.

“얍삽하게 신고라도 해 볼까여?”

“사유는?”

“희롱 또는 괴롭힘…?”

“누구에 대한 희롱인데.”

“저의 마음?”

눈을 찡긋하며 ‘알지?’ 하는 막내의 모습에 내가 중현이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중현아. 쟤 좀 데려가라.”

“네. 형.”

데려가서 간지럼을 태우는 중현이와 꺄하학 하는 막내를 보고는 따뜻하게 웃었다.

수플레들의 추리로 가득한 원곡 댓글을 보며 뜨끔해하는 것도 잠시.

“도착했어. 얘들아.”

오늘의 스케줄 장소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바로 상암동의 K-Net 사옥이었다.

*   *   *

오늘의 녹화는 바로 K-Net에서 진행하는 아이돌 프로그램인 ‘쇼쇼쇼! 아이돌 고등학교’였다.

매 회차마다 아이돌 한 팀을 불러서 소개하고 게임도 하는.

일전에 출연했던 HBS의 ‘아이돌쇼’처럼 아이돌 팬들을 타깃으로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우리 뉴블랙이 왔네! 와하하핫!”

통통한 너구리를 닮은 인상의 예능인 방문수가 촬영장에 도착한 우리를 함박웃음으로 반겨 주었다.

“아이고, 반가워라! 우리 포옹도 한 번?”

“좋죠. 어떻게 할까요?”

학익진처럼 포위 대형으로 포옹을 준비하는 우리 모습에 상대가 큰 웃음을 터뜨렸다.

같이 활짝 웃는 우리에게 방문수가 물었다.

“이게 얼마 만이더라. 지난 3월에 봤던가?”

“한 5개월? 그쯤 된 거 같아요.”

“그때도 무대에서 반짝반짝해서 뜨겠다 싶었는데, 진짜 빵 터져서 돌아왔네.”

이분과는 명곡단에서 여러 번 안면을 튼 사이였다.

명곡단 패널로 나와서 ‘뉴블랙! 마이 갓! 지저스!’ 하며 기립박수도 쳐 주시고 그랬는데.

거기서도 ‘우리 프로 좀 나와 줘!’ 했던 기억이 있었다.

“뉴블랙 나오는 거 기다리겠다고 벌써부터 밑에서 대포들 진 치고 있더라. 잘 좀 부탁한다고 난리도 아니었어.”

“네, 정말 잘 부탁드립니다.”

“기대해.”

방문수가 씩 웃으며 제작진에게 다가갔다.

그 동안 우리는 학교 교실과 비슷한 스튜디오를 둘러보았다.

“우리 교복 CF 찍었을 때랑 비슷한 느낌이네요.”

“여기 진짜 와 보고 싶었는데.”

약칭 ‘아이돌고’는 꽤 유명한 프로그램이다.

작년에 새롭게 런칭한 ‘아이돌쇼’와 지금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지만, 아이돌 소개 프로의 원조라고 할까.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시청자들에게도 화제성이 좋고.

음방과 함께 데뷔하고 나서 한 번쯤은 나가 보고 싶었던 방송 중 하나였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급하게 뛰어 들어오는 두 남녀에게도 인사했다.

메인 MC와 함께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보조 남녀 MC인 우진과 송송이었다.

이윽고 촬영 준비가 끝난 후.

“녹화 시작합니다!”

FD가 슬레이트를 탁! 치고 난 다음에 빠지자, 십여 개의 카메라와 마주한 MC들이 교실에서 수다를 떨었다.

한 주간 가요계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짧게 단신처럼 지나는 리뷰 코너였다.

“네, 그리고 앨범 소식인데요. 뉴블랙의 미니 3집이 이번에 빌보드 200차트에 들었다고 합니다!”

“참 좋은 소식이네요. 그리고 얼마 전 틴스피릿의 유기견 봉사활동이 화제가 됐죠. 영상 보실까요?”

“오우, 지금 저 바닥에서 소형견들한테 둘러싸여서 맞는 사람이 휘연 씨인가요? 웃고 있네요.”

그 웃음이 그 웃음이 아닌 것 같긴 한데.

촬영장 구석에 있는 우리가 머쓱하게 웃는 모습을 카메라가 찍는 중이었다.

방문수가 큐 카드를 흘깃 바라보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자, 이제 오늘의 특급 신입생을 모셔 볼 차례인데요.”

“지금 핫스타 중 하나죠.”

“문수 쌤이 진짜 팬이라고, 피디님한테 매번 이분들 좀 섭외해 달라고 했던 분들이죠.”

방문수가 우리를 향해 손짓하며 외쳤다.

“자체 조사 결과 초등학생들이 뽑은 존경하는 아이돌 1위를 차지한 뉴블랙입니다!”

BGM으로 초등학교 입학 노래가 나왔다.

예능인들의 박수 속에서 우리가 ‘랄랄라!’ 하면서 폴짝폴짝 뛰면서 입장을 했다.

“둘 셋!”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카메라를 향해 꾸벅 인사를 한 후, 웃는 낯으로 우리를 바라보던 세 예능인을 바라보았다.

“노래 진짜 좋던데. 이번에. 나인 나인 나인~”

“나인~”

우리 노래를 구수하게 불러주는 MC들의 노래에 맞춰서 우리도 같이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지난주에 데일라잇의 유 씨가 나인 안무가 너무 좋다고, 한 번 추고 갔거든.”

“대박. 영광이네요.”

“다이어트 중인데 나인이 살 빠지는데 최고라고 하더라고. 일주일만 해도 9키로가 빠질 거라던데.”

우리가 박수를 치며 웃었다.

별것 아닌 드립에도 깔깔 웃어 주는 우리 모습에 MC들이 몹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진짜 리액션이 풍부하네. 뉴블랙.”

“저희가 좀 웃음이 많아서…….”

“역시. 괜히 방송국 피디님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에 뽑히는 게 아니라니까. 바람만 지나가도 웃네. 제작진에게 리액션 컷을 무한 뷔페처럼 주고 있어.”

그 말대로 피디님이 흐뭇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잠시 그룹명의 유래에 대한 뻥을 치는 시간을 가진 후.

“아이돌고에서 빠질 수 없는 시간이죠. 1교시 체육시간! 바로 랜덤 플레이 댄스입니다.”

“오오오… 저 이거 진짜 하고 싶었어요!”

흥분해서 목소리를 크게 높인 우리 메인 댄서의 대사에 다들 웃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눈이 초롱초롱했다.

“엄청 신났네.”

“희한하네. 이쯤 되면 걱정하고 그래야 하는데. 실패하면 벌칙 있는 거 알죠?”

“우린 봐주고 그러지 않아요.”

짓궂게 웃는 MC들에게 막내가 신이 나서 말했다.

“괜찮아여. 실패를 안 하면 되는 거 아닐까여?”

“맞아.”

“저희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절대 없습니다.”

자랑스럽게 말하는 우리의 모습에 방문수가 물었다.

“자신감이 대단하네.”

“네. 저희가 다른 건 몰라도 연습량 하나는 많다고 자부하기 때문에, 어떤 노래가 나와도 자신 있습니다.”

“노래가 몸에 익어 있다?”

“노래만 들으면 몸이 거의 자동으로 움직입니다.”

내 말에 동생들도 한 마디씩 덧붙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문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다들 말은 그렇게 합니다. 나는 다른 아이돌과는 다르다.”

“정말이에요. 저희.”

“과연 그 말이 진짜일지, 한 번 지켜보겠습니다.”

일단 처음 해 보는 것이기에 연습게임을 한 번 해 보기로 했다.

방송용으로 과장된 드립을 치긴 했지만, 사실 자신 있기는 했다.

연습을 그만큼이나 했는데 설마 그렇게 어렵고 힘들까.

“일단 얘기했던 대로 리혁이를 중심으로 이동하자.”

“넵.”

동선이 우왕좌왕할 수 있으니 리혁이를 기준으로 삼자는 내 전략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다 같이 손을 모았다.

“하나, 둘, 셋, 고기!”

이윽고 무대 대형으로 선 우리가 진지한 눈빛을 교환했다.

‘잘하자.’

‘이번에 대박 분량 가지고 간다.’

심호흡을 하며 제작진의 시작을 기다릴 때.

첫 곡인 마스커레이드의 2절 파트가 흘러나왔다.

“오호.”

“일사불란하네.”

리혁이를 중심으로 우리가 동선을 맞춰서 바로바로 이동했다.

첫 곡부터 우왕좌왕 없이 성공을 거둔 것에 대해 뿌듯하게 웃을 때.

‘어어……?’

‘어라.’

노래가 계속해서 바뀌면서 혼선이 왔다.

이게 그 파트에 대해서 몸이 반응하긴 하는데, 새롭게 무대 동선을 맞추는 게 어려웠다.

멀리 클레이가 환영처럼 ‘어렵지?’ 하며 웃는 것 같다.

“어어! 야! 비켜!”

“으악!”

금세 난장판이 된 우리가 여기저기서 부딪히고 그럴 때, 내가 동생들에게 외쳤다.

“얘들아, 다들 침착… 흐아악!”

뭔가 거대한 것이 빠르게 치고 들어오면서 나를 퉁- 하고 튕겨 냈다.

거의 1미터를 붕 날아간 느낌.

슬로우 모션처럼 중현이가 눈을 깜빡이면서 ‘왜 날라가유?’ 하는 듯한 표정으로 손을 뻗고.

지호가 ‘혀어엉!’ 하며 드라마 주인공처럼 외치고.

리혁이가 나를 붙잡으러 오다가 엎어지고, 비주가 ‘안 돼애애!’ 하고 있을 때였다.

촙.

음?

정신을 차려 보니 중현이에게 튕겨 나온 내가 바닥에 낙법으로 착지해 있었다.

바닥에 엎드린 채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는 제작진들과 MC들, 카메라들과 눈이 마주쳤다.

“…….”

다들 눈을 깜빡거리고 있던 그 순간, 예능인 방문수의 감탄했다는 듯 말했다.

“이야. 다른 그룹이랑 확실히 다르긴 다르네.”

이어 제작진 사이에서 왁자지껄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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