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07화
“푸하하하하!”
웃음소리가 가득한 가운데 내가 폴짝 일어났다. 그러곤 카메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보셨나요. 여러분? 이게 바로 낙법입니다!”
카메라 뒤편에 있는 작가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흐느끼듯이 웃는 MC들과 동생들을 향해 내가 물었다.
“왜들 그러시는 거죠? 낙법 시범을 보여 준 건데.”
“아니.”
메인 MC 방문수가 큐 카드로 얼굴을 부채질하며 물었다.
“랜덤 플레이 댄스를 하다가 낙법이 왜 나와?”
“그냥 댄스만 하면 심심하기 때문에 저희가 미리 합을 맞춰 왔습니다.”
“아, 중현이가 튕겨 내면 날아가서 낙법을 하기로?”
“그런 거죠.”
그렇게 말하며 눈을 찡긋하자, 보조 MC들이 동생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사실인가요?”
중현이가 눈을 동글동글하게 뜨고 답했다.
“예?”
누가 봐도 완전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에 다들 박장대소를 했다.
그 동안 비주가 내게 속삭였다.
‘형, 괜찮아요?’
‘괜찮아.’
‘손 줘 봐요.’
바닥을 짚었을 때 혹여 손목이라도 다치진 않았을지, 내 손목을 잡고 세심하게 살피는 눈이 보였다.
그렇게 요모조모 내 상태를 확인한 후.
“으하하핫!”
곧장 웃음 대열에 합류하는 비주였다.
일말의 걱정조차 날린 채 편안한 얼굴로 키득거리는 우리 애를 보며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너도 뉴블랙이지.
보조MC인 송송이 그걸 캐치했는지 물었다.
“와, 근데 우애가 진짜 좋네요.”
“네?”
“방금 비주 씨가 우주 씨 손목 붙잡고 걱정하는 거 봤거든요.”
“아.”
방문수가 물었다.
“그럼 비주가 평소에 뉴블랙의 엄마 역할이구만.”
“네.”
“우주 손목은 왜 살핀 거야? 걱정돼서?”
“맞아요.”
비주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다치면 연습을 못하거든요.”
“…….”
“연습은 하루만 쉬어도 감이 확 떨어져서…….”
감동적인 말을 기대하고 있던 내가 멍한 표정을 짓자 동생들이 키득거렸다.
MC들이 감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걱정이 그 걱정이 아니었네. 그런 심오한 뜻이…….”
“근로자를 걱정하는 마음이구나.”
“이런 거 보면 평소에 연습을 엄청 하나 봐요? 특히 비주 씨가.”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연습을 멈추질 않아요. 놀 때도 그래요. 밖에 나가면 오락실에서 펌프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댄스 게임하면서 놀거든요. 그 리모컨으로 하는 거 있잖아요.”
“맞아요. 저 그거 너무 좋아해요.”
“그런데 혼자 하는 건 싫어해서 저희가 꼭 뒤에서 박수를 쳐 주거나 같이 해야 돼요.”
동생들이 다 같이 동감을 표하자 비주가 억울하다는 듯 MC들에게 손사래를 쳤다.
“어, 아닌데. 그때 다들 재미있다고 했어요!”
“흐음.”
방문수가 턱을 매만지더니 우리를 바라보았다.
“멤버들 표정들을 보니까 아닌 거 같은데?”
“맞아여.”
막내가 울적한 얼굴로 답했다.
“저번에 혼자 하겠다고 해서 우왕 했는데, 거실에서 막 울적한 얼굴로 춤을 춰서 어쩔 수 없었거든여.”
“우주 형이 군대 얘기할 때랑 비슷해요.”
“잠깐만, 뭐?”
“제가 여기서 제일 마음이 강한 사람인데, 이 형만 보면 좀 약해져요.”
동생들의 거침없는 폭로에 비주와 내가 슬픈 표정을 짓자 MC들이 웃으면서 몰아갔다.
“뉴블랙하면 칼군무다, 가요계에 그런 공식이 있는데 그 일등공신이 비주 씨였네요.”
“그런데 왜 혼자 하는 건 싫어하는 거예요?”
비주가 어색하게 웃으며 우물쭈물 답했다.
“그게, 혼자 하면 좀 외로워서…….”
“같이 하면 덜 외롭나요?”
“네. 아무래도요. 뭐든지 같이 하면 되게 기분 좋고, 즐거워서 더 신이 나는 거 같아요.”
그러고는 환하게 웃었다.
눈을 빛내며 봄꽃처럼 따사롭게 웃는 우리 애의 모습에 보조 MC인 송송이 납득했다.
“왜들 마음이 약해지는지 알겠네요.”
“저도 지금 약해지고 있어요.”
“피디님, 여기서 비주가 웃을 때 꽃 CG랑 감동 BGM 쫙 부탁합니다.”
우리가 항의했다.
“아니, 당하는 건 저희인데 MC님들이 감동하면 어떡해요?”
“맞아여!”
“감동은 MC분들이 하고 고통은 우리가 받네요.”
‘워워’ 하며 성난 민심을 진정시키던 MC 방문수가 여전히 웃고 있는 비주에게 물었다.
“멤버들의 원성이 자자한데, 앞으로 좀 어떻게 달라질 의향이 있나요?”
“네, 그럼 앞으로 멤버들과 협의를….”
“형. 합의라고 해요. 합의.”
리혁이의 말에 주변에 있는 어른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비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 그럼 합의를 해서…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비주 근처에서 방방 뛰며 환호했다.
“와아아아!”
“해방이다아아아!”
“자유의 몸이다아앗!”
두 팔을 쫙 벌리고 눈을 감은 채 ‘자유의 몸’을 표현하는 중현이의 모습에 다들 웃었다.
같이 웃음을 터뜨리던 MC들이 그때 멈칫했다.
“잠깐, 근데 어쩌다가 얘기가 여기까지 왔죠?”
“멤버들 원성, 그 전에 연습량 얘기, 그리고 또 그 앞에 우주 손목에서… 랜덤 플레이 댄스!”
“아. 우리 랜덤 플레이 댄스 시간이었네.”
“그러네요.”
우리도 같이 ‘그러네’ 하면서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웃었다.
방문수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피디님, 우리 녹화 시간 괜찮은 거 맞죠? 생각보다 길어질 수도 있을 거 같은데.”
“벌써 많이 갔습니다.”
“어, 진짜다.”
그가 손목시계를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진짜 홀린 듯이 시간이 훅 가네.”
“저희도 그래요.”
“야. 너희 때문에 이렇게 된 거잖아! 한 마디 할 때마다 옆에서 바람 잡아 가지고.”
“흐하핫!”
이것들이! 하는 MC의 예능용 리액션에 우리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방문수가 빠르게 교통정리를 했다.
“자, 그럼 다시 진행해야겠네요. 지금 시간이 상당히 촉박합니다. 자칫하면 2부 연장 각이거든요.”
“우와아아아!”
“우와아 하지 마세요! 피디만 행복하지 우린 퇴근이 늦어져!”
“어머머.”
매번 색다른 리액션에 두 MC가 고개를 돌리고 끅끅거렸고, 방문수가 혀를 내둘렀다.
“어후, 정신없어, 진짜. 지금 보다시피 30분 만에 급속도로 친해졌는데요. 벌써부터 후회가 되네요.”
카메라를 향해 우리가 쌍으로 엄지를 들고 ‘유후’ 하며 웃어 주었다.
그때 두 MC가 말했다.
“그런데 이 모습 어디선가 본 거 같은데, 이 녹화 시간을 홀린 듯이 가게 만드는… 아!”
“……?”
“뉴블랙이 레몬 엔터 소속이죠? 스칼렛 후배 그룹이구나.”
“어쩐지.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신기하네. 이게 끼가 막 대를 이어서 전수되고 그러나?”
듣자하니 올해 초에 출연했던 우리의 선배 그룹이 스튜디오를 한바탕 뒤집어 놓은 듯했다.
레몬 엔터라고 하니 급격하게 납득하는 표정이라 웃음이 나왔다.
“자, 다시 랜덤 플레이 댄스로 돌아오죠!”
방문수가 룰을 설명했다.
“간단합니다. 랜덤으로 나오는 타이틀곡에 맞춰서 안무를 추면 되는데요. 더블 타이틀인 Flower Dance까지 해서 총 5곡이죠?”
“네, 맞습니다.”
“총 기회는 3번 주어지고요. 실패하면 벌칙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MC들이 으스스하게 웃었다.
“일단 오늘의 상품을 보여 주실까요?”
마스크를 쓴 스탭이 상자를 가져오더니 보자기를 싸악 하고 걷어 냈다.
그 순간 영롱한 광채가 쏟아졌다.
“우와아…….”
넋을 놓은 우리의 귓가로 MC들의 깐족거림이 들렸다.
“네, 왔습니다~ 왔어요~ 마블링 가득한 쇠고기가 왔습니다~”
“전국 한우 협회 분들로부터 협찬 받은 1++ 급 횡성 한우 특수부위 모듬 세트입니다. 다 같이 외쳐요.”
“고마워요! 한우 협회!”
손을 뻗으며 마지막 말을 같이 하는 동안에도 우리의 시선은 고기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지호는 벌써부터 군침이 고인 표정이었다.
“스읍… 그러니까 저게 상품인 건가여?”
“네? 그, 그렇죠.”
“지호 씨 눈에서 불꽃이 튀네.”
“저희가 맛있는 것만 보면 승부욕이 활활 타올라서여.”
내 옆에서 한우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중현이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때 리혁이가 물었다.
“잠깐만요. 그럼 오늘의 벌칙은…….”
“맞습니다. 여러분이 3번 안에 랜덤 플레이 댄스를 성공시킨다면 우리 스탭이 소고기를 구워 줄 겁니다.”
그가 씩 웃었다.
“대신에 실패하면 그때는 저희만 먹습니다.”
“옆에서 구경하시면 돼요~”
중현이가 허망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팔을 털썩 떨어뜨렸다.
우리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옆에서 고기 냄새가 모락모락 올라오고 MC들이 젓가락을 흔들어 대는데 우리는 지켜볼 수밖에 없는 무력한 상황이라니.
얼마나 허망한 기분일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꿀꺽.
침을 삼킨 지호가 우리를 돌아보았고, 우리도 진지한 눈으로 그 눈빛에 응해 주었다.
‘성공.’
‘반드시 성공.’
‘100퍼센트 성공.’
리혁이가 말했다.
“그런데 혹시 3번의 기회 동안 성공 못하고 실…….”
‘실패’를 입에 올리려는 모습에 우리가 손사래를 쳤다.
“야야야! 부정 탄다.”
“우린 반드시 성공이야. 리혁아.”
“맞아여. 실패하면 중현이 형이 떼찌떼찌 해줄 거예여. 형은 떼 한 번에 죽을걸여.”
고기에 대한 열망으로 눈이 세모꼴로 변한 중현이의 모습에 리혁이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몸을 푸는 우리에게 MC들이 물었다.
“그럼 다들 준비되셨나요?”
“일단 연습 게임을 요청하고 싶습니다.”
“딱 세 번 드리겠습니다.”
곧바로 노래가 흘러나오면서 우리가 연습에 돌입했다.
“아이쿠!”
“우주 형, 리혁이 형 그쪽으로 굴러가여!”
“중현아, 또 튕겼냐!”
첫 시도부터 중현이와 동선이 부딪힌 리혁이가 데굴데굴 굴러갔다.
“아프니?”
“아프면 청춘이지.”
“아흐흐… 웃기지 말고 일으켜 줘요!”
우리가 리혁이를 일으켜 주는 동안 MC들이 웃으며 물었다.
“어렵죠?”
“네, 생각보다 진짜 어렵네요.”
진짜 그랬다.
방송국에서 리허설 무대를 볼 때마다 ‘와, 저 분들 진짜 연습 빡세게 해오셨네’ 하며 감탄이 나오는 팀들이 있다.
그런 팀들도 랜덤 플레이 댄스만 하면 서로 부딪히고 그러던데.
이제야 왜 그런지 이해가 갔다.
“이게 제 동작만 하는 건 쉬운데, 벌스마다 동선을 맞추는 게 어렵네요.”
“맞아요. 가만히 서서 제 것만 하면 쉬운데, 이게 다들 움직이는 방향이 다르니까.”
예를 들어서 Flower Dance에는 다 같이 정가운데로 모이는 안무가 있다.
나의 경우에는 우측에 있다가 중현이와 함께 좌측으로, 즉 센터를 향해 움직이는 건데.
문제는 랜덤 플레이로 앞에서 불꽃놀이를 할 때 좌측에 있으면 나도 좌측으로 몸이 향했다.
방문수가 큐 카드를 팔랑거리며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아이돌 대부분이 이 랜덤 플레이 댄스만 오면 어려워해요. 왜냐. 나도 모르게 동선 따라서 몸이 자동으로 움직이거든.”
우리가 공감했다.
“진짜 생각보다 어려운데.”
“그니까요. 연습 엄청 해서 쉬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연습을 해 놔서 더 어려운 거 같아요.”
“근데 우리 어떻게 할까여?”
동생들이 나와 비주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으음… 동작이야 다들 완벽하니 문제가 없고.”
“동선이 문제예요.”
“동선 꼬이는 게 문제인데.”
나와 비주가 잠시 상의를 하고는 곧바로 전략을 바꿨다.
“다들 안무마다 센터 기억하지?”
“넹.”
“센터인 사람이 적당히 신호를 주면 그 사람에게 모이도록 하자.”
그렇게 합의하고는 곧바로 2차 연습에 들어갔다.
확실히 리혁이를 고정시켜 두고 모이기로 한 것보다는 훨씬 더 나은 전략이었다.
문제는.
짝짝짝!
센터로 가면서 근엄하게 박수 세 번을 치는 중현이었다.
MC들이 끼어들었다.
“푸하하하!”
“아니, 박수를 왜 치는 거야? 미리 말했지만 랜덤 플레이 댄스에서 이런 수신호 안 됩니다.”
살그머니 신호를 보내랬더니 대놓고 산꼭대기에서 우와아악 외치는 듯한 리액션이었다.
“우리 어린이들!”
내가 모이라고 손을 까딱이자 얼굴들이 원형으로 모여들었다.
MC들이 ‘고기에 진심이야’ 하는 드립이 들렸다.
“눈으로 하자. 눈으로.”
“네.”
무대에서도 대강 눈짓으로 마이크 문제나 기타 의사소통을 한 경험이 있기에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확실히 연습이 반복될수록 더 좋아졌다.
“아까 리혁이 파트에서 둘이 조금 늦게 들어왔어요. 살짝씩 반 박자 빠르게 부탁할게요.”
“넵.”
“그리고 김중현, 넌 발동작 약하게. 여기 바닥 약해.”
스튜디오 바닥까지 고려해서 안무를 코칭해 주는 우리 메인 댄서 덕에 실력이 금세 좋아졌다.
우리를 바라보던 MC 방문수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곤란한데. 너무 잘하는데.”
“그니깐요. 지난번에 TNT가 신인 중에서 뉴블랙 춤이 제일 어렵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기회를 많이 줬는데…….”
“이러면 조정이 필요한데.”
살짝 배어나온 땀을 닦으며 우리가 와글와글 외쳤다.
“조정이라니요. 그냥 잘하는데 페널티라니 억울합니다!”
“저희 그냥 이대로 할게여!”
하지만 너무 연습 기회를 많이 줬다며 저쪽에서 호락호락하게 넘어가 주지 않았다.
이대로 가면 심심할 듯해서 방송 재미를 만들려는 듯했다.
곧바로 교실 책상을 두고 협상장이 펼쳐졌다.
“지금 너무 완벽한데, 배속 댄스 추가합시다.”
“그러면 그건 랜덤 말고 곡 하나 정해서… 저희 중에 비주만 하는 걸로 어떤가요?”
“에이.”
방문수가 눈을 가늘게 떴다.
“방금 비주가 춤추는 걸 내가 봤는데. 오징어보다 더 유연하던데, 이대로 받을 순 없지.”
“그럼 저와 비주를 세트로 드릴게요. 햄버거만 있으면 심심하잖아요. 제가 감자튀김처럼 옆에서 같이 할게요.”
“…….”
“대신에 0.5배속이든 1.4배속이든 상관없어요.”
“뭐지.”
방문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다른 팀이라면 0.5배속이나 그런 댄스 한다고 하면 바로 오케이인데, 뉴블랙은 불안하네. 왠지 할 거 같아.”
“아니에요. 저희 불안해요.”
우리가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 * *
방문수가 ‘아닌 것 같은데’ 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 나 불안한데. 얘네 너무 잘해.”
다른 MC들이 말했다.
“저두요.”
“세 번 안에 반드시 성공할 거 같은데요? 이러면 고기를 독차지할 수가 없는데.”
뉴블랙 멤버들이 ‘아자아자 화이팅!’ 하는 동안 카메라 앞에 선 그들이 흥을 돋웠다.
“방금도 연습 때 장난 아니었거든요!”
보조MC인 우진이 큐 카드를 바짓단에 톡톡 튕기며 말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안무가 저런데… 진짜 잘하네.’
보기만 해도 아찔한 안무로 가득한 뉴블랙의 타이틀 곡이었다.
그나마 보컬색이 더 강한 ‘불꽃놀이’나 ‘바람꽃’도 그다지 쉽다고 말할 수 없는 곡이었다.
노래를 부르는 와중에도 손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미리 영상을 보고 오긴 했지만 그 정도로 디테일한 동작이 많은지는 그도 처음 알았다.
-그게 다 안무예요?
-네.
-그걸 다 해요?
-네.
너무나 당연한 표정으로 곧바로 랜덤 플레이 댄스를 하는 이들의 모습에 감탄이 나왔다.
‘여기도 연습량이 진짜 많구나.’
이 기세로 간다면 올 연말 안에 보이그룹 Top 3 안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거라고 말이 많던데.
그 저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실감하는 우진이었다.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화이팅!”
뉴블랙 멤버들이 박수를 치고는 서로를 향해 ‘고!’ ‘기!’ ‘사!’ ‘랑!’ ‘해…’ 하며 응원구호를 주고받았다.
이윽고 노래가 시작됐다.
“오, 시작이 좋아.”
“불꽃놀이네요.”
몸이 자동으로 움직이듯 다섯이 물 흐르듯이 움직였다.
센터를 차지한 지호가 윙크를 하며 청량한 목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듯 불렀다.
랜덤 플레이 댄스에 더해 여유롭게 노래까지 같이 부르는 모습이었다.
“바뀌었네.”
“마스커레이드!”
혹시라도 생길 틈을 노리기 위해 그들이 눈을 집중했다.
하지만 흠결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매스 게임을 하듯이 다섯의 대형이 곧바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 움직임을 주도하는 건 메인 댄서였다.
“와…….”
그 감탄사는 천장에 달린 부감 카메라로 촬영된 장면을 지켜보던 스탭들에게서 나왔다.
흩어진 다섯이 하나로 뭉치는데 보인 모습도 모습이지만.
위에서 지켜볼 때, 독보적인 움직임의 인물이 있었다.
메인 댄서인 비주가 나긋한 걸음으로 원래 있던 위치에서 정해진 포지션으로 이동했다.
“거의 원래 있던 안무 같은데?”
동작 하나하나가 끊기지 않고 연결되어서 마치 보고 있다 보면 진짜 그 자체가 완결된 안무 같았다.
그리고 리드댄서인 우주가 나섰다.
“여기는 얘네 둘이 중심을 잡아 주는구나.”
“잘하네…….”
메인과 리드 둘이 기둥처럼 노래가 바뀌자마자, 포지션을 딱 잡아 주고 나면 멤버들이 바로 자리를 잡았다.
스탭들 뒤에서 바라보던 피디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거 직캠도 있지?”
“네.”
“잘 찍어둬. 간만에 레전드 한 번 또 나오겠네.”
화면 속에서 카메라를 향해 씩 웃는 회색 머리의 멤버를 보며 그가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한편 랜덤 플레이 댄스가 이어지면서.
“아아아아!”
“안 돼!”
“거의 성공인데 이거?”
‘아악!’ 하며 리액션을 넣는 MC들과 달리 스탭들은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느슨히 풀었다.
‘뭔가 편한 느낌.’
‘은근히 여유롭게 보게 되네.’
보통 이런 미션을 진행하면 자기도 모르게 같이 긴장해서 ‘어어’ 하며 보는 편인데.
오늘은 달랐다.
숨 가쁘게 바뀌는 안무 도중에도 카메라를 바라보며 여유롭게 표정연기까지 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공연하는 사람이 위축되지 않고 편히 하니 바라보는 사람도 편하게 즐길 수 있었다.
중간에 가사까지 같이 따라 부르던 댄스가 끝나고.
“아직 성공은 아니에요!”
“맞습니다! 비주 씨와 우주 씨의 배속 댄스가 남아 있어요.”
싱긋 웃으면서 0.5배속과 1.5배속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춤을 추는 이들을 보며 MC들이 눈을 깜빡거렸다.
작가들도 감탄했다.
“영상으로 볼 때도 잘한다, 잘한다 했는데 확실히 눈으로 보니까 더 좋네.”
“그니까요. 너무 잘한다.”
“근데 왜 저렇게 잘한데요?”
“사전조사할 때 보니까 평소에 0.5배속으로도 많이 연습한데. 동작 세심하게 본다고.”
그걸 증명하듯 ‘너무 잘하는데? 사기 당했네!’하는 이들에게 보여주겠다는 듯 다른 멤버들도 뒤에서 백업을 해 주었다.
그 모습에 한 작가가 말했다.
“그런데 진짜 무대하는 것만 보면 다른 사람들 같…….”
그리고 그 순간.
단 한 번에 모든 것을 성공시켜낸 뉴블랙 멤버들이 카메라를 향해 엔딩 미소를 짓더니.
“고기이이이이!”
“쩌희! 고기! 고기 주세요!”
“한우! 내 한우 어디 있어?”
딱따구리가 부리를 찍듯이 MC들에게 달려가서 다다다 쏘아대는 뉴블랙 멤버들이었다.
귀신이 본모습을 드러내듯 3초 전까지의 요정들이었던 이의 표정이 요괴로 둔갑해 있었다.
“……갑자기 정감 넘치네.”
“우리 조카 보는 거 같아. 걔 7살인데.”
“내 딸내미인줄.”
이내 핫하하 웃던 그들은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오디오 감독님?”
“끄어어…….”
헤드폰으로 ‘와아악!’ 하며 끝없이 올라가는 뉴블랙의 데시벨을 듣는 오디오 감독이 괴로워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