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10)화 (310/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10화

굉장히 찝찝한 감각이었다.

끈적거리는 시선이 내 몸에 착 달라붙었다가 주르륵 흘러내리는 느낌이라고 할까.

잠시 객석을 두리번거리려고 할 때.

“왜 그러세요. 오빠?”

맞은편에 앉아 있는 수플레의 물음에 정신을 차리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게요.”

“……?”

“어떤 우주선을 그릴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UFO로 할지, 아니면 로켓으로 할지.”

우주정거장을 슥슥 그려 주는 내 모습에 수플레가 손뼉을 치며 웃었다.

“이게 무슨 우주 정거장이에요, 오빠. 버스 정류장 앞에 우주선이 서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특별한 거죠. 원앤온리.”

“엇. 그건 좋다.”

이내 사인을 받아든 수플레가 비주에게 넘어갔다.

비주가 팬이 건네준 새침데기 머리띠를 끼고 ‘흥’ 하는 동안, 다시금 주변을 둘러보았다.

옆에서는 평화롭게 사인회가 이루어지고 있고.

객석에서는 대포 렌즈 카메라들과 내게 손을 흔들어 주는 수플레들로 가득했다.

눈가에 브이를 집게발처럼 톡톡거리며 미소를 짓는 동안 생각에 잠겼다.

기분 탓인가.

방금 전에 굉장히 쎄했던 감각이 사라져 있었다.

사생 중에서도 스토커 같은 부류가 우리를 쳐다볼 때 느끼는 찝찝한 감각이라고 할까.

몸에 닿기만 해도 기분이 불쾌해지는 끈끈이주걱 같은 느낌이었다.

“왜 그래?”

이상 징후를 눈치챘는지 내 뒤에 서 있던 민기 형이 마스크를 쓴 채로 물었다.

내가 입을 가리고 속삭였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혹시 사생이라도 보여?”

“아뇨.”

“현장에서 조금이라도 쎄한 게 느껴지면 바로 얘기해 줘. 내가 조치할게.”

“고마워요. 형.”

객석에서 궁금해 하는 수플레들에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동안 다시금 내 앞에 팬이 넘어왔다.

“안녕하세요!”

잠깐의 기분 탓이겠거니 하고 넘겼다.

콘서트 뒤로 쉬지 않고 음방을 뛰면서 피로가 누적돼서 그런 거겠지. 뭐.

팬사인회 장소에서 문제가 될 만한 일이라고 해 봐야 가끔 사생이 출입 금지를 먹어서 난동을 부리는 정도인데.

그런 부분이야 회사 차원에서 블랙리스트로 잘 관리하고 있었다.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

“어디서 왔어요? Where are you from?”

히잡을 쓰고 있는 수플레가 웃으며 한국어로 답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왔어요.”

“Selamat Malam(안녕하세요).”

인도네시아 어로 된 인사말을 건네자 상대가 뺨이 발그레지며 꺄르륵 웃었다.

바람꽃 때부터인가, 팬사인회에 찾아오는 해외 팬들이 늘었다.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서 대화를 하는 동안 팬과 눈을 마주쳤다.

어쩜 이리 반짝반짝하는지.

팬사인회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었다.

바로 맞은편에서 나를 향해 빛나는 눈을 마주한다는 건, 경험하지 않고서는 모르는 행복이다.

“멀리서도 응원해 줘서 고마워요.”

‘이동하실게요’ 하는 매니저의 권유에 못내 아쉬워하는 얼굴로 손을 흔드는 팬이었다.

다시금 내 앞이 비어 있는 동안 기지개를 쭉쭉 켜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통 팬사인회라면 쭉쭉 막힘없이 흘러들어 와야 하는데, 오늘따라 내 앞이 비는 일이 잦았다.

“으하하하하!”

바로 우리 막내 때문이었다.

오늘따라 기분이 업 됐는지 신이 나서 수플레들과 폭풍수다를 떠는 중이었다.

“지, 지호야. 나 넘어갈게.”

“엇 안 되는데. 아직 얘기 다 안 끝났잖아여, 우리.”

“그.”

“10초만 더여.”

매니저도 아니고 팬이 먼저 ‘넘어가야 되는 거 아냐?’ 걱정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음방도 끝나고 시간도 넉넉해서 그런지, 팬매니저 분들도 평소보다 여유로운 분위기였다.

사인회 분위기도 엄청 좋고.

“음?”

근처에 있는 중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편해 보이는 후드티를 입고 앉아 있는 남자 팬에게 하는 말이었다.

“목욕탕 갔다 왔어요?”

우리들이 흠칫했다.

‘아니, 저저…….’

‘패션이 프리하다고 말을 저렇게 하면…….’

‘이따 잔소리 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남자 팬이 ‘옴마?’ 하며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그거 어떻게 알았어요. 형?”

“으음, 전반적으로 느낌이.”

“대박이다. 진짜.”

진짜 목욕탕 다녀온 거였어?

푸근한 미소를 짓는 중현이와 ‘대박’ 하는 팬을 번갈아 보면서 벙 찐 얼굴을 짓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우리도 웃었다.

지호가 객석을 향해 부리는 시도 때도 없는 애교에 수플레들이 어딘가 초췌한 얼굴로 답하고.

리혁이가 아까 그 팬을 향해 ‘봐요. 보석반지. 여기.’ 하며 구슬픈 얼굴로 손가락을 흔들고.

자꾸 점심 메뉴 뭐 먹었는지 맞추는 중현이 때문에 수플레들이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자기 옷을 들어서 킁킁하고.

팬이 선물로 준 부침개 뒤집개를 손에 들고 요정 대모처럼 ‘얍!’ 하는 비주에게 내가 로켓단처럼 당하는 시늉을 할 때.

“안녕하세요.”

내 맞은편 의자에 스르륵 앉기 시작한 사람과 눈을 마주쳤다.

피하시네.

고개를 스윽 깔며 어색하게 웃는 상대에게 내가 웃으며 물었다.

“이름이 뭐예요?”

금세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눌 수가 있었다.

상대도 웃으면서 뭐라고 말을 하고 나도 상대에게 드립을 치며 웃었다.

그 동안 수상쩍은 구석이 눈에 들어왔다.

“목걸이 예쁘시네요.”

“그래?”

나랑 대화를 할 때마다 목을 쓸어 넘기듯이 매만지고.

“많이 더우신가 보네요. 제 손풍기 드릴까요?”

“응. 고마워.”

살짝 당황한 얼굴로 손풍기를 받아드는 상대에게 싱긋 미소를 지었다.

콧잔등과 머리 옆 턱선을 따라 미약한 땀방울이 눈에 띈다.

테이블 아래로 내려온 양손을 바짓단에 슥슥 문지르기도 하고.

표정은 태연하지만 무의식적인 행동들이 불안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도 안 좋은 느낌의 불안을.

“우주선 어떻게 그려드릴까요?”

“네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면 될 것 같아.’

“그럼 UFO로 그려드릴게요.”

꺼림칙한 느낌에 긴장을 늦추지 않았는데 사인을 하는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부스럭부스럭.

바닥에 내려놓은 봉지를 뒤적거리던 상대가 뭔가를 꺼내들었다.

“이거 선물로 준비해 온 건데.”

“우와. 펭귄 인형이네요. 황제펭귄.”

“불꽃놀이 때 1위 공약으로 펭귄 코스프레 했었잖아. 그래서 선물해 주려고.”

“고마워요. 잘 쓸게요.”

내 뒤에 서 있던 민기 형이 손을 뻗어서 인형을 테이블 뒤에 늘어서 있는 종이 박스에 넣었다.

이내 비주에게 넘어간 팬이 사인을 받고 내려갔을 때.

“형.”

민기 형을 불러서 속삭였다.

“방금 펭귄 인형이요.”

“응.”

“팬분들 눈에 안 띄게 그것 좀 확인해 주세요.”

“알았어.”

민기 형이 곧바로 박스를 보더니 ‘다 찼네’ 하면서 원석이 형에게 박스를 바꾸자고 말했다.

매니저들이 박스를 들고 움직였다.

돌아가는 공기가 살짝 묘해졌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수플레들이 눈을 깜빡거릴 때.

우리 막내에게 시선을 주었다.

‘난동.’

‘넹.’

수플레가 건네준 물고기 인형을 하늘 위로 번쩍 든 막내가 활짝 웃으며 외쳤다.

“리혁이 형!”

“……?”

“드디어 형의 친구가 왔어여!”

“야!”

팬사인회 장소가 웃음으로 뒤덮였다.

그 동안, 팬들에게 안 보이는 출입구 쪽에서 내용물을 확인하던 매니저들이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   *   *

“둘셋!”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뉴블랙이었습니다!”

연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수플레들에게 손을 흔들던 우리가 내려왔다.

“보석반지—!”

“푸하하!”

“내 보석반지를 봐요. 이 보석반지를 보란 말이야.”

‘으어어’ 하면서 애처로운 얼굴로 보석반지를 흔드는 모습에 해당 팬이 다시 한번 또 웃었다.

“다시는 드립에 실패하지 않을 거예요.”

리혁이의 굳은 다짐에 웃은 것도 잠시.

매니저 형들이 곧바로 누군가를 검거하러 가는 광경에 머리를 쓸어 넘기던 비주가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형? 아까 그 펭귄인형 때문에 그런 거예요?”

“응.”

“저두 궁금했는데 뭔 일이에여?”

분위기를 보아하니 다들 예의주시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보통 제가 얘기를 하면, 막 다들 ‘어멋, 지호 얼굴’ 하면서 눈이 동그래져서 절 쳐다보거든여. 근데 그분은 제가 얘기를 해도 약간 정신이 딴 데 팔려서 ‘응? 응…’ 이러시더라구여.”

“내 역사 드립에 안 웃어준 사람이라 기억하고 있었는데.”

“아. 그 혼자 밥 안 먹고 온 분?”

저마다 이상한 포인트에서 눈치를 챈 우리 애들의 모습에 따스한 미소를 지을 때.

“거기 있었구나.”

우리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던 원석이 형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을 수가 있었다.

“우주가 수상하다고 해서 그 인형을 까 봤거든. 안에 뭐가 들어 있는 것만 같아서.”

“그런데요?”

“안에서 무선 카메라가 나왔어. 초소형 카메라.”

“…….”

중현이가 잠시 밥맛이 사라졌다는 표정을 지었다.

비주가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본인은 아니라고,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기는 하는데. 일단 경찰을 불러서 조치하려고 해. 특별한 피해가 없으니 아마 큰 조치를 취하기는 어렵겠지만…….”

“와. 진짜 그거 집에 들여놨다가 큰일날 뻔했네여.”

무선으로 송신되는 몰카에 우리 모습이 찍혔을 거라고 생각하니,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일단은 지금 스탭들이 다 달라붙어서 감시 중이고. 신원도 블랙리스트에 등록하려고.”

“알려 줘서 고마워요. 형.”

“대기실에서 잠시 쉬고 있어. 일 마무리 되면 돌아올게.”

이 형이 또 이렇게까지 화가 난 건 처음 보네.

성난 들소처럼 복도를 쿵쿵거리는 걷는 상대의 뒷모습을 보고는 우리도 다른 스탭과 함께 대기실로 돌아갔다.

가슴이 벌렁벌렁하긴 한데 다행히 오래는 안 갔다.

전해 들어서 그런지 어딘가 현실감이 적기도 하고. 소파에 털썩 앉은 리혁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냥 이제부터 팬사인회 선물도 안 받는 식으로 바꿔야겠네요.”

“그렇지.”

“옛날에 TNT 선배님들도 이런 일 있지 않았어여?”

TNT 멤버 중에서도 예전에 팬사인회에서 받은 음료수를 먹다가 응급실까지 갔던 사건이 있었다.

그 안에 약을 타서.

선웅이 형이 만나는 사람마다 ‘너 독 먹어 봤냐’ 하며 아련한 표정으로 말해서 알고 있었다.

“그럼 선물은 안 받는 쪽으로…….”

비주가 못내 아쉬운 얼굴로 답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선물이나 조공 금지를 정책으로 걸고 있긴 한데, 팬사인회 등에서 모자라든가 머리띠같이 소소한 물건들은 받고 있었다.

서로 재미있게 하려고.

그런데 이런 일이 있는 이상 앞으로 선물을 받기는 힘들 터였다.

당장 지금까지 숙소에 가져다 놓은 인형부터 확인해야 할 상황이었으니까.

“너희는 어때. 괜찮아?”

“네. 뭐.”

리혁이가 말했다.

“사생이 직접 찾아오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예상하긴 했어요.”

“제일 놀란 얼굴인데.”

“워, 원래 내 피부는 하얘요.”

하얗게 질린 리혁이를 보며 웃었다.

그래도 다들 엄청 놀란 표정은 아닌 듯했다. 일단 나부터가 그리 놀란 편이 아니었으니까.

요즘은 비행기 안까지도 따라붙고.

아예 차까지 끌고 우리 차량 꽁무니에 따라붙는 이들도 생겨난 덕에 이 정도 일에는 끄떡도 없었다.

그저 다른 부분이 걱정될 뿐.

“팬들 후기는 어때요? 아무 말 없죠?”

스마트폰을 뒤적거렸다.

검색을 해 보았지만 ‘중현이 목욕탕 드립’, ‘리혁이_친구_생겼다’ 같은 해시태그 등만 보일 뿐이었다.

“다들 모르는 거 같은데.”

“내일도 사인회 있는데 어떡하죠? 만약 선물 금지로 정해진다면 다음 앨범 사인회 때부터 부탁드려야 할 거 같죠?”

“그렇게 하자. 기왕이면 모르게.”

가수 생활을 하면서 배운 게 있다면, 안 좋은 일에 대해서는 팬들이 모르는 게 최고라는 거다.

우리는 이미지로 먹고 사는 직업이라서.

‘뉴블랙’하면 팬들에게 ‘기분 좋음, 행복’ 같은 키워드가 떠올라야지. ‘걱정, 논란’ 같은 부정적인 키워드가 연상되면 곤란하다.

연예인들이 자기 잘못이 아닌데도 사건 사고로 이미지 타격을 입는 게 바로 이런 연상작용 때문이니까.

그러니 언제나 좋은 느낌이 들고,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리혁이가 말했다.

“그래도 큰일 날 뻔했는데 잘 찾았네요. 잘했어요.”

“맞아여. 탐지견인 줄.”

“우주가 아니다. 견이다.”

중현이의 성대모사에 다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씩 웃던 우리 곰이 주먹을 내밀었다.

“잘했어요. 형.”

“그래.”

화기애애한 미소를 띠던 내가 주먹을 내밀었다.

그리고.

“중현아.”

“네?”

“힘 빼.”

“…….”

“더 빼. 더.”

“…….”

시무룩한 얼굴이 주먹을 소심하게 오므렸다.

*   *   *

사인회에서 몰카 인형을 건네려고 했던 사람에 대해서는 공식 스케줄 참가 금지 조치가 취해졌다고 들었다.

법적인 조치는 크게 어려울 거라나.

대강 어찌 처리됐는지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뒷일은 우리가 마무리할 테니까. 너희는 신경 쓰지 말고 저녁 식사 스케줄이나 잘 마무리하고 와.

“예이.”

-인증샷 꼭 잘 찍어 오고.

석환 형의 당부에 알았다고 답했다.

우리가 찾아온 곳은 합정역 인근에 있는 맛집이었다.

“Hi!”

음식점 계단을 지나 2층에 도착하자, 먼저 도착한 이들이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존 에드워즈 감독과 주연배우인 루퍼트 딘, 벨라 페이지를 비롯한 노스탤지어의 주요 스탭들이었다.

열려 있는 방문을 통해 보이는 얼굴들에 주변 손님들이 신기해하는 얼굴로 수군거렸다.

“저거 오늘 들어온 그 국뽕… 감독 아니야?”

“아, 그 아리랑 부른 사람?”

그리고 이내 우리를 발견한 손님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노블랙!”

“예, 안녕하세요. 노블랙입니다~”

인사하는 할아버지께 인사도 꾸벅하고. 술이 들어가 얼굴이 불콰하게 물든 중년 아저씨가 우릴 알아봤다.

“나인 나인?”

“맞습니다. 나인! 나인, 나인~”

‘고기, 고기, 고기 맛있게 드세요’ 하며 나인의 후렴구를 변형해서 부르는 우리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방문을 스르륵 탁 닫고 들어오는 우리 모습에 노스탤지어의 존 에드워즈 감독이 말했다.

“슈퍼스타 같네.”

“아유, 아니에요.”

우리가 손사래를 칠 때, 벨라 페이지가 젓가락으로 방금 닫힌 방문 너머를 가리켰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누구예요?”

“누구요?”

“지금 따라온 사람들 말이에요. 마스크 쓰고 카메라 들고 다니는 사람들.”

“음…….”

사생을 뭐라고 설명하기가 난감해서 ‘파파라치’라고 설명하니 배우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급격히 따뜻해졌다.

‘너도 겪는구나?’ 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만나서 반가워요. 우주라고 합니다.”

처음 보는 이들과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하는 동안 우리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된다. 된다.’

‘말이 통한다……!’

클레이를 열심히 부려, 아니 클레이와 열정적인 대화를 하기 위해 공부한 영어가 효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가끔 알아듣기 어려운 문장은 통역사님이 말씀해 주긴 했지만, 대부분의 대화는 막힘없이 잘 통했다.

“클레이가 못 와서 아쉽다고 대신 안부를 전해달라던데. 정말 아쉽다고 강조까지 했어.”

“상상이 가네요.”

양손으로 인용하듯 따옴표를 그리는 감독의 말에 우리가 웃었다.

감독이 옆에 앉은 루퍼트 딘에게 말했다.

“루퍼트, 왜 이렇게 말이 없어? 뉴블랙을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했잖아.”

“음, 네…….”

상대가 우리에게 겸연쩍은 얼굴로 ‘Hi’ 하고 인사했다.

낯가림을 하는 모습에 벨라 페이지가 ‘얘 왜 이래?’ 하는 표정으로 백김치를 집었다.

“만나서 음악 얘기 엄청 할 거라면서?”

“할 거야.”

“얘가 노래가 너무 좋다면서, 작곡한 사람을 꼭 만나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댔거든요.”

“내가 언제?”

같이 영화를 찍으면서 친해진 것인지 남매처럼 티격대는 둘을 보며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퍼트 딘이 나를 흘깃 보더니 흠흠 하며 인사했다.

“노래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정말 노래를 들으면서, 아 이 사람은 노래에 대해서…….”

“저도 예전에 영화 본 적 있었는데 정말 연기를 잘…….”

“아…….”

“음…….”

칭찬 파티를 하다가 서로 민망해하는 모습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오히려 주변에서 이렇게 말을 하니 편하게 말하기가 어색한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주변에 서 있는 우리 스탭들이 6mm 카메라를 통해서 찍었다.

감독님이 물었다.

“이게 미튜브에 올라간다고 했지?”

“네, 맞아요.”

오늘 만남은 한국을 방문한 이들에게 우리가 식사 대접을 하는 것도 있지만 영화 홍보의 목적도 있었다.

구독자만 200만을 훌쩍 넘긴 우리 채널을 통해 영화 홍보를 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우리대로 해외 스타와 새로운 컨텐츠를 찍고, 저쪽에서는 홍보효과를 누리는 윈윈이었다.

“이게 한국말로는 ‘꽃등심’이라고 하고요. 이건 특수 부위인데…….”

“오호. 꽃등심.”

“드실 때 이 상추에 싸서…….”

리혁이가 음식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동안 그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관심을 보였다.

의외로 다들 젓가락질이 능숙했다.

존 에드워즈 감독이 금세 구워진 고기를 한 조각 집어먹으며 물었다.

“그런데 누가 더 오기로 했나…?”

“예?”

“아니. 고기 양이 너무 많은 것 같은데…….”

“아, 저희가 먹을 거예요!”

수북한 고기 양을 보고 질겁한 서양인들에게 우리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걸?’ 하는 표정에 우리가 ‘이걸’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중현이가 말했다.

“저희가 보여 줄게요.”

“보여 주지 마요. 이런 거.”

리혁이가 만류하는 모습에 웃을 때였다.

고기가 구워지고 있는 동안 내가 존 에드워즈 감독에게 물었다.

“시사회는 잘 끝내고 오셨어요?”

“분위기가 뜨거웠지. 내가 레드카펫에서 큰절을 하고 왔거든.”

“…….”

“상영관에서 무대 인사까지만 진행하고 온 건데. 아마 지금쯤 다들 영화를 보는 중일 거야.”

뭔가를 떠올리던 감독님이 유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쯤이면 딱 그 시간이겠군.”

“그 시간이요?”

“극장에서 네가 만든 ‘Thousand Dreams’가 나올 시간.”

*   *   *

영등포의 모 쇼핑몰 6층.

500석 가까운 자리가 관객으로 가득한 가운데, 노스탤지어의 시사회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우와…….’

몽환적인 배경과 환상적인 색으로 가득한 영화의 영상미에 감탄이 나오고.

‘대박이다.’

근사하게 편곡된 원작 뮤지컬의 넘버까지.

시간이 가는 게 아쉽고 초조하게 느껴질 만큼 재미있는 전반부였다.

-터덜터덜.

거대한 스크린 속에서 지친 얼굴의 주인공이 발걸음을 옮기다 거대한 서가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

하늘 높이 솟아있는 녹슨 명패의 글자와 함께 ‘외국어 서적 코너’라는 자막이 흘러나왔다.

몇몇 관객들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아, 여기가 바로…….’

‘뉴블랙 걔네 노래가 잠깐 나온다고 했었나?’

‘안 어울릴 거 같은데.’

노스탤지어 제작진의 내한과 함께 인터넷을 한창 시끌시끌 달궜던 주제였다.

지금까지의 영화에 대만족한 관객들이 ‘제발 분위기 깨지만 마라’ 하며 되뇌일 때.

스크린 속에서 바닥에 널브러진 책더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