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12)화 (312/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12화

찰칵! 찰칵!

사람들이 핸드폰 카메라로 찍는 가운데 은성이가 손가락으로 브이를 해 보였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신인 보이그룹, 에이플비의 케빈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데롱데롱 매달린 채로 영업을 하는 녀석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경호원도 이렇게 미친 애는 처음인지, 당황한 얼굴로 옆구리에 낀 은성이를 보았다가 나를 바라보았다.

“…아는 사람?”

“예, 후배 가수예요.”

“아.”

풀려난 은성이가 경호원에게 ‘죄송합니다’ 하며 꾸벅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러곤 내게 활짝 미소를 지었다.

“우리 병……. 으앗, 카메라!”

“저기 은성아. 병장이면 병장님, 말을 끝까지 해야지.”

“안녕하세요! 선배님들.”

우리를 찍고 있는 카메라를 확인했는지 꾸벅 ‘선배님’하며 인사하는 녀석이었다.

“이 사람은 누구예요?”

내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데롱데롱 매달린 채 광기에 찬 미소를 짓던 사이코에 겁을 먹었던 루퍼트 딘의 목소리였다.

“K팝 가수예요. 군대 시절에는 제 부하였고요.”

“군대…?”

“설명하기에는 사연이 좀 길어요.”

대강 ‘long story…’ 하면서 아련한 표정으로 때우자 상대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동안 맞은편에서 은성이의 눈동자가 빠르게 돌아갔다.

대강의 상황을 빠르게 유추한 녀석이 꺄륵 웃었다.

“갑자기 지나가시길래 너무 반가워서 뛰어왔어요!”

“그렇구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한국 투어 시켜주고 계시는구나.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저는 그럼 이만~”

스르륵 빠져나가려던 은성이에게 비주가 물었다.

“어디 가세요?”

“저희 요 근처에서…….”

그 순간 인파 너머에서 ‘야!’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비켜주자 4명의 아이돌 멤버들이 환장하겠다는 표정으로 뛰어왔다.

“야! 은케빈!”

“이 개빈, 또 어디를…….”

“어?”

우리를 발견했는지 다른 네 명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막내이자 리더인 하루의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은성이가 우리에게 무슨 헛소리는 한 건 아닐지, 앞으로의 미래를 걱정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TNT나 틴스피릿처럼 팬덤이 큰 그룹을 대하는 신인 그룹의 긴장 같은 느낌이라 쓴웃음이 나왔다.

“이리 오세여.”

지호가 활짝 웃으면서 부르자 에이플비의 멤버들이 쭈뼛거리면서 다가왔다.

“어? 이 분들…….”

그 중에 한둘이 벨라 페이지와 루퍼트 딘을 보고 눈을 화등잔만하게 뜨고 있었다.

그러곤 급격히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괜히 이런 자리에 끼었다가 ‘홍보하냐’며 욕을 먹는 건 아닐지 전전긍긍하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들을 부른 건 이유가 있긴 했다.

무대 의상과 홍대라는 키워드를 연결하자마자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알았으니까.

내가 존 에드워즈 감독 일행에게 물었다.

“길거리 공연 보실래요?”

“공연?”

“홍대 거리에서는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공연들이 있거든요.”

오늘 컨텐츠의 목적은 이들에게 한국의 음식과 밤거리, 길거리 간식 등을 소개해주기 위함이었으니까.

흔쾌히 OK 사인이 떨어졌다.

“저기.”

이동하는 동안 하루가 내게 물었다.

“선배님 채널 구독자 수가…….”

“아. 지금 230만 정도예요.”

“…….”

나는 지금 누군가의 얼굴이 하얀색에서 흙색으로 변하는 것을 목격했다.

뭔가 표정이 ‘230만 개의 쌍욕이…’ 하며 근심과 걱정으로 얼룩져 있어 보이기에 내가 툭 치며 속삭였다.

“걱정하지 마요. 자체 컨텐츠라서 회사 직원 분들이 편집점을 잡거든요. 미리 말씀 드릴 테니까.”

“감사합니다.”

“근데 은성이는 왜 저렇게 됐어요?”

2분 만에 외국인들과 친해져서 새로운 하트 표현법을 전수하고 있는 은성이였다.

하루가 물었다.

“저 형이 왜요?”

“변색이 좀 진행된 거 같아서.”

“그게 사나이가 간다 때문에 해경에 다녀왔거든요…….”

“군대 다녀왔구나. 상태는 어때요?”

“정신을 못 차렸어요. 아직.”

“역시.”

햇볕을 엄청 쐤는지 피부가 거뭇거뭇 타 버린 은성이었다.

탄 빵 같다.

원래 피부색으로 돌아올 때까지 꽤 시간이 걸릴 듯하다고 할까.

너무 불쌍했다.

“흐흐흐흣…….”

“예?”

“아뇨. 너무 안타까워서, 흐흣.”

입을 가리고 웃는 내 모습에 하루가 어색하게 웃으며 거리를 벌렸다.

이윽고 앰프가 설치된 공터에 에이플비의 멤버들이 섰다.

관객들이 두세 배 가까이 뛰어서 흥이 났는지 자신들의 곡 ‘A/B’의 안무를 추는 멤버들이었다.

“Wow.”

벨라 페이지가 입가에 손을 모으고는 ‘오오오’ 하며 호응을 해주었다.

루퍼트 딘도 고개를 까딱거리며 감상하고, 존 에드워즈 감독은 우리에게 배운 노래방 어깨 춤을 추었다.

그리고 근처에 있던 사람들도 그런 이들의 호응에 맞춰서 같이 응원을 해 주었다.

루퍼트가 물었다.

“뉴블랙도 저런 노래가 있어요?”

“네. 몇 개 있…….”

그때 커버 곡으로 준비했는지 ‘Nine’의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말을 멈춘 나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에게 웃으며 말했다.

“이게 우리 노래예요.”

“오…….”

“제목은 ‘Nine’이고요.”

나인을 진짜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아아아아!”

안무는 에이플비의 멤버들이 추고 있지만, 노래 때문에 분위기가 길거리 클럽이라고 할까.

우리 멤버들도 꺄르륵 웃으며 손뼉을 칠 때.

내 파트에서 요염한 척을 하며 춤을 추는 은성이의 모습에 내적인 불쾌감을 느꼈다.

‘병장님, 컴 온!’

내게 와서 같이 추자는 듯 손짓하는 모습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와악!’ 하며 호응했다.

잠시 고민했다가 포기했다.

5인 동선에 하나가 끼어들어서 같이 추려면 동선 계산을 잘해야 하는데, 내가 연습은 많이 해도 단번에 그런 걸 해낼 수 있는 재주는 없어서.

다행히 그런 재주를 가진 인물이 내 옆에서 ‘우와아’ 하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비주야.”

“네?”

“은성이가 너랑 같이 춤 추고 싶대.”

“저요? 형이 아니…….”

“얼른 가서 같이 춰 줘! 춤이야. 비주야. 춤.”

‘춤’이란 단어에 간식이란 키워드를 들은 강아지처럼 결연한 표정으로 뛰어드는 우리 메인 댄서였다.

“와아아아아!”

은성이에게 생긋 웃으며 박수를 쳐 주자, 다른 동생들이 나를 보며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못 됐다.’

‘악마다.’

‘보내도 비주 형을 보내는구나.’

활짝 웃으며 무대 대형 안으로 뛰어든 비주의 모습에 주변에서 ‘와악!’ 하는 비명이 튀어 나왔다.

청자켓을 걸친 우리 애가 눈썹이 휘날릴 만큼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서 와요! 선배님!’ 하며 좋아하던 은성이의 얼굴이 탄 빵을 넘어 코코아 가루처럼 변했다.

“늘 느끼는 건데.”

리혁이에게 말했다.

“비주랑 같이 춤 출 때가 제일 힘들더라.”

“그건 나도 그래요.”

다른 둘도 동감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춤을 추는 속도가 빠르다거나 그 유연성을 따라잡는다거나 하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비주랑 같이 추면 그냥 힘들다.

우리가 열심히 돌로 뗀석기를 만들 때 혼자 청동기 들고 ‘재미있죠?’ 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어지간히 열심히 연습을 하지 않고서는 독보적인 춤선 때문에 옆에서 확 비교 당하기 십상이라서 힘들었다.

예전에 합동 무대 할 때도 스트릿 보이즈가 누가 비주 옆에 설 지 가위바위보를 한 일도 있고.

“에궁..”

은성이 옆을 열심히 따라다니며 같이 안무를 추는 비주의 모습에 따스한 미소가 나왔다.

둘의 상반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재미있다!’

‘으아아아……!’

웃고 있는 은성이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쟤는 죽을 맛이고 나는 꿀맛이었다.

이윽고 ‘Nine’의 후렴구가 끝났을 때, 바닥에 털썩 앉아서 숨을 몰아쉬는 은성이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이야! 멋있다!”

열렬하게 박수를 치고는 사뿐한 걸음으로 돌아오는 비주의 등을 토닥토닥 해주었다.

같이 촬영 중이던 노스탤지어 측도 웃으며 말했다.

“에너지가 남다르네요.”

“고기를 그렇게 먹은 이유가 있었구만…….”

“이거 SNS에 포스팅해도 돼요?”

폰카로 촬영했다는 벨라 페이지의 말에 우리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봐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시간 관계상 에이플비 측과는 빠르게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내가 연락하겠다고 손을 전화기 모양으로 만들어 보이자, 은성이가 ‘흥’ 하며 OK와 함께 꾸벅 인사를 했다.

불상이 인사하는 듯한 포즈였다.

“재미있군. 다른 공연도 좀 봐도 되나?”

존 에드워즈 감독의 유쾌한 미소에 내가 답했다.

“네. 이 근처에도 댄스 팀들이 몇몇…….”

“어어? 지금 다 철수하는 데여?”

“이 시간에?”

분명 헤어지기 전에 주변에 길거리 공연하고 있는 팀들에 대한 정보를 매니저에게 부탁한 터였다.

댄스 팀이 한두 곳 정도 더 있다고 들었는데.

요새 ‘나인’의 커버가 유행하는지 대부분 나인을 보여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였다.

“가네.”

우리가 발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마다 바쁘게 철수하는 팀들이었다.

“…….”

“…….”

그리고 우리는 이내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가세요?”

“네? 네…! 저희 가요!”

“가시나요?”

“네!”

에이플비와 함께 했던 무대가 재미있었던지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다니는 우리 메인 댄서 때문이었다.

바닷속에서 천적이 다가오려고 할 때마다 물고기 무리가 싸악- 하며 흩어지듯 다들 떠나고 있었다.

아니면 방금까지 나인을 하고 있던 이들이 갑자기 곡을 바꿔서 다른 곡으로 하거나.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네요.”

뮤지컬 영화 팀에게 웃으며 말했다.

“살짝 허기도 진 것 같은데, 근처 연남동 거리로 가 볼까요? 그곳에 길거리 음식이 많거든요.”

*   *   *

길거리 공연도 보고, 간식도 탐방하고.

간단하게 서울 밤거리 구경을 끝낸 우리는 미리 섭외된 장소로 도착했다.

“아아.”

마이크를 잡고 웃으며 말했다.

“이곳은 여러분들이 아시는 바로 그 노래방입니다.”

“와아아!”

“환영합니다!”

쌍으로 탬버린을 들고 ‘요요요’ 하는 우리 곰의 모습에 벨라 페이지가 깔깔 웃었다.

그러곤 재미있어 보인다면서 하나를 가져가서 자신도 흔들었다.

우리 막내가 첫 곡을 부르기 위해 마이크를 잡고 가운데 섰다. 순한 표정에 다들 호기심을 보일 때.

쾅쾅쾅!

강렬한 전주와 함께 막춤을 추는 막내의 모습에 다들 뒤집어졌다.

그러곤 몸을 젖히고 ‘냐아아아아’ 하는 샤우팅까지.

“푸하하!”

강렬한 표정연기와 마이크를 잡은 지호가 리혁이를 지목했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려~~

“뭐야. 왜 또 난데.”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고, 가사를 궁금해 하는 이들에게 내가 설명을 대강 해주었다.

“워우우우!”

“와아!”

노래를 끝낸 막내가 무대 인사를 하듯이 꾸벅 숙이자 박수가 이어졌다.

그 다음으론 리혁이가 마이크를 잡고 외국의 유명한 발라드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지호가 혀를 끌끌 차며 속삭였다.

“진짜. 제가 분위기 띄워놓을 때마다 발라드 불러여.”

“대신 잘 부르잖아.”

양손을 허공에 느릿하게 흔들면서 대답했다.

자칫하면 축 쳐지기 쉬운 발라드 곡이지만, 우리 애가 불러서 그런지 퀄리티가 남다르다.

루퍼트 딘이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어렸을 때 본 영화가 떠올라요.”

“무슨 영화요?”

“SF 영화인데 거기서 머리에 촉수 6개가 달린 외계인 디바가 노래를 정말 잘 불렀거든요.”

“…….”

“감동적이네요.”

우수에 젖은 파란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이의 모습에 내가 잠시 멈칫했다.

“아하.”

그러곤 해당 영화가 정말 존재하는지 막내에게 물으니 진짜로 있다는 속삭임이 돌아왔다.

“외계인이라. 설득력이 있네요.”

“그런가요.”

옆에서 대화를 듣던 존 에드워즈 감독이 웃다가 재채기를 했다.

“Bless you!”

나와 루퍼트의 입에서 동시에 말이 나왔다.

재채기할 때 쓰는 게 국룰이라는, 영어 쌤한테 배웠던 표현을 썼다며 좋아하고 있을 때.

루퍼트가 웃으며 말했다.

“Jinx.”

“……그건 뭔가요?”

“몰라요? 영어 되게 잘해서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내 상대의 설명이 돌아왔다.

‘jinx’라고 미국에서 같은 말을 썼을 때 쓰는 표현인 듯했다. 곧바로 설명을 알아들은 내가 알려주었다.

“한국에서는 ‘찌찌뽕’이라고 해요.”

“치치뽕.”

“잘했어요. 다시 한 번 해볼까요?”

“치치뽕.”

그럼 ‘반사’ 같은 건 뭐냐고 물어 봐서 내가 ‘무지개 반사’라고 알려주었다.

“Thank you.”

“You’re welcome.”

그러곤 대화가 다시 끊겼다.

만난 지 몇 시간이 됐지만 아직도 어색하다.

상대가 한국에 오기 전부터 ‘나 이거 작곡한 사람 만날래!’ 했다는 이야기를 한 것 때문일까.

다른 멤버들이랑 얘기할 때는 괜찮은데 나랑 이야기할 때 어색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

갈색 머리칼을 쓸어 넘기는 상대를 바라보았다.

어렸을 때 보던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에 나오던 캐릭터처럼 생겼다.

식당에서 음료 뭐 마실래요 하면 ‘늘 마시던 넥타르 한 잔’ 할 거 같다고 할까.

꽃무늬 같은 걸 좋아하는 나와는 취향이 완전 달라 보였다.

중현이가 ‘나는 쇠고랑 찼지, 징역 살았지’ 하는 영어 랩을 따라 부르며 푸근하게 웃는 동안.

“노래라도 한 곡 같이 하실래요?”

“노래요?”

“노래 잘 부른다고 들어서.”

“아, 그런데…….”

상대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답했다.

“조금 유치한 노래를 좋아해서.”

“유치한 노래요?”

갑자기 관심이 동했다.

“어떤 노래인데요?”

*   *   *

5분 후.

@John_Edwards

(‘언더 더 씨’를 열창하는 뉴블랙과 수줍게 부르는 루퍼트 딘의 동영상. 중현이 집게발로 가재 흉내를 내고 있다.)

이것이 한국의 흥. 많이 느끼고 갑니다.

*   *   *

1시간 후.

@Rupert_Thomas_DEAN

(이제는 ‘끼야아아아아아!’ 하며 다 같이 열정적으로 샤우팅을 하며 소리를 지른다. 카메라가 미친듯이 흔들리고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번역] 새로운 친구들. 한국에 오기를 잘했어.

*   *   *

1시간 반의 노래방 탐방은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끝났다.

그리고 노래가 끝났을 때.

“너무 재미있었어!”

“우리도!”

가장 서먹했던 이와 제일 친해져 있었다.

상기된 얼굴로 헤어진 루퍼트 딘은 나중에 미국에 오면 꼭 연락하라는 답을 남기고 떠났다.

밥을 사 주겠다는 이야기에 행복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기다려라. 미국.”

“우리가 밥 먹으러 간다.”

“그런 거 비장하게 말하지 좀 마요…….”

어쨌거나 우리에게도 즐거운 일과였다.

앞선 팬 사인회에서의 사건 때문에 싱숭생숭했던 게 싸악 날아간 듯했다.

노스탤지어 측이 호텔로 돌아가고 다음 날의 DMZ 방문 일정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도 숙소에 도착해서 침대에 있던 인형들을 모두 상자에 담아 매니저 편에 돌려보내곤 곯아 떨어졌다.

그리고 다음 날 매니저 형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얘들아.”

“왜, 왜 그래요? 인형에 뭐가 문제가 있어요?”

“중간에 홍 대리님이 방을 나갔어.”

“네? 왜요?”

스칼렛네 선물이었던가.

죽은 쥐가 상자에 담겨 왔을 때도 덤덤하던 홍 대리님이 방을 나갔을 정도라면…….

우리가 심각한 표정을 지을 때 민기 형이 뽀송뽀송해진 인형들을 돌려주며 말했다.

“인형을 만질 때마다 먼지가 팡팡 터져 나와서. 공기청정기가 미친 듯이 돌아가더라.”

“…….”

“인형 좀 빨아. 얘들아…….”

“아앗.”

웃픈 얼굴로 인형들을 받아들었다.

예전 숙소에서 공간이 없어서 한 방에 몰아서 보관했는데, 먼지가 엄청 뱄던 모양이었다.

리혁이가 옆에서 ‘그러게 내가 진즉에……’ 하며 말을 하기에 다 같이 귀를 닫았다.

외국 사람들과의 특별한 스케줄도 잠시 우리는 다시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는 일상적인 활동으로 돌아왔다.

은성 [저 형 덕분에 실검 탔어요]

은성 [동영상 링크]

홍대에서 있었던 일을 누군가 동영상으로 찍어서 올린 모양인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모양이었다.

실검 10위를 30초간 했다며 좋아하는 녀석을 보며 웃었다.

저녁에는 어제와 같이 팬 사인회가 이어졌다.

회사에서 사인회 선물 금지로 결정이 났지만, 그 적용은 다음 앨범 때부터 하기로 했다.

갑자기 다음 날부터 ‘선물 금지’ 하면 수플레들이 귀신 같이 무엇이 문제였는지 눈치를 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어제의 일을 눈치채는 일은 아무도 없었다.

“오빠. 저 그 노래 너무 좋아요! Falling Stars 커버.”

“그래요?”

수플레들의 관심사는 ‘나인’에 이어서 ‘노스탤지어’로 가 있었다.

한국 시사회가 끝난 시각 올라온 노스탤지어의 메인 OST ‘Falling Stars’는 큰 반향을 얻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영화 개봉도 안 한 터라 입소문이 붙는 중이었지만 점점 반응이 핫하다고 할까. 주연 루퍼트 딘이 부른 버전의 경우에는 벌써 2000만 뷰가 되었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이.

“엣헴. 엣헴.”

하얀 얼굴로 거만한 헛기침을 하는 우리 메인 보컬의 커버 곡이었다.

한국에서의 국뽕 마케팅이 화제가 되어서 그런지, 벌써 조회수가 수백만 뷰에 달하고 있었다.

우리가 참여한 OST 때문에 갑자기 기세등등한 악플러들 때문에 댓글창은 안 보고 있었지만, 조만간 정리되면 댓글을 쭉 훑어보려고 생각 중이었다.

“안녕하세요.”

내 앞에 앉은 팬이 웃으며 말했다.

“저 노스탤지어 시사회 보고 왔어요.”

“그래요? 우리 노래도 들었겠다. 어땠어요?”

“음…….”

“몸으로 표현하기~”

근엄하게 엄지를 들어 보이는 모습에 내가 감동 받아서 우는 시늉을 했다.

둘이 웃음을 주고받았다.

사인으로 대왕 UFO를 그려주면서 물었다.

“어때요? 마음에 들었어요?”

“개봉하면 난리 날 거 같아요. 엄청 대박 느낌? Falling Stars도 지금 장난 아닌데, 전 Thousand Dreams도 되게 좋았어요.”

우리 팬들이라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Thousand Dreams에 대해 높은 만족을 드러내고 있었다.

“고마워요.”

지금 인터넷에서 다른 아이돌 팬에게 계속 욕을 먹는 중이라고 하던데.

마음고생을 하고 있을 수플레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할 뿐이었다.

하지만 마땅히 어떻게 할 방법이 없긴 했다. 그저 영화가 개봉해서 평가가 바뀌기를 기다릴 뿐.

그렇게 곧 다가올 추석과 함께 영화 개봉을 기다릴 때.

“형.”

“음?”

“미국 토크쇼에서 우리 이름이 나왔다던데여?”

“그래?”

기묘한 소식에 막내의 메신저에 도착한 링크를 눌렀다.

파란 도시 그림을 배경으로 앉아있는 토크쇼 세트장에 루퍼트 딘이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쇼 호스트가 물었다.

-그래서 루퍼트, 요즘 들어서 K팝에 빠져 있다고요.

-네, 요즘 뉴블랙의 ‘나인’이라는 곡을 계속해서 듣고 있어요. 중독성이 정말 강하더라고요.

-어떤 가사인가요?

-한국어랑 영어랑 섞여 있는데…….

나인을 흥얼대며 홍보를 해주는 그의 모습에 우리가 훈훈한 미소를 지을 때.

-한국 방문이 꽤 인상 깊었나 보네요.

-네. 정말 즐거웠어요. 카라오케에서도 정말 재미있었거든요.

-신이 나서 방방 뛰었다죠?

-전혀 아닙니다. 전 점잖게 앉아 있었죠.

그의 부정에 자료화면이 나왔다.

으하핫 하며 노래방 소파에서 방방 뛰는 루퍼트의 동영상에 쇼호스트가 ‘정말 점잖군요’ 하자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한국어도 좀 배워 오셨나요? 우리에게 가르쳐줄 만한 표현이 있다면.

-음, 대부분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같은 말이긴 한데… 아, 재미있는 게 하나 있어요.

루퍼트 딘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소파 팔걸이를 두드리며 답했다.

-치치퐁.

-치치퐁? What is that?

급격히 밀려오는 무언가에 나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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