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13)화 (313/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13화

눈앞이 캄캄하다.

화면 속에서 자신만만하게 ‘치치퐁’의 유래를 설명하는 루퍼트 딘의 모습에 헛웃음을 흘렸다.

“아니, 쟤는 단어를 골라도…….”

“찌찌뽕이 그만큼 인상 깊었던 거 아닐까요.”

중현이가 그렇게 답을 하는 동안 화면 속 토크쇼에서는 쇼호스트가 ‘치치퐁’ 하며 발음 연습을 하고 있었다.

-발음이 재미있는데요. 치치퐁.

-그렇죠? 요즘 들어서 중독 됐다니까요.

루퍼트 딘이 씩 웃으며 하얀 이를 드러냈다.

-요즘 들어 에이전트와 주변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중이에요.

“그러지 마라.”

-여러분도 기억해 주세요. 치치퐁.

“아!”

방청객들을 향해 능글 맞은 미소로 ‘치치퐁’ 하는 모습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우린 웃을 수 없었다.

한국의 ‘찌찌뽕’이 미국 토크쇼 생방송을 통해 북미 전역에 들불처럼 번지는 듯한 광경이었다.

리혁이가 말했다.

“괜찮아요. 아직 누가 퍼뜨렸는지 루퍼트가 말을 안 했어요.”

“그래여? 근데 우리가 이런 말 하면 바로 들통나던데.”

그리고 그 순간.

-그나저나 ‘치치퐁’이라니 이건 누구에게서 배운 건가요?

-뉴블랙이요.

-뉴블랙?

-한국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인데, 아까 말한 밴드예요. 그중에서 ‘우주’라는 친구로부터 배웠어요.

망했다. 완전 망했다.

사람들이 ‘치치퐁을 퍼뜨린 놈이 네놈이냐?’ 하며 손가락질을 하며 비웃을 듯한 느낌이었다.

다른 단어면 모르겠는데 찌찌뽕이라니. 창피하다.

“아. 어떡하냐.”

내가 머리를 쓸어 넘겼다.

“나 망한 거 같은데.”

“틴스피릿 선배들 표현에 따르면 ‘조졌다’인 건가요.”

“중현아.”

“조용히 있을게요. 형.”

입에다 락앤락 뚜껑을 닫는 시늉을 하는 중현이를 보며 고개를 젓다가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토크쇼 채널이 홍보용으로 올린 영상 클립이었다.

“아직 조회수가 낮네.”

나를 보며 키득거리는 동생들에게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진정해. 얘들아.”

“음?”

비주가 눈을 깜빡이며 웃었다.

“저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진정하는 중이에요. 형.”

“조회수가 낮아. 이대로 묻힐 수 있어.”

“과연 그럴까여?”

내가 정신승리를 시도하려고 하자 막내가 에베베하듯 얼굴을 쏙 들이밀었다.

내 손가락이 딱밤을 날리려고 하고, 막내가 맞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달칵-

…하며 연습실의 문이 열렸다.

“하이!”

손에 핫도그를 든 4인조 걸그룹, 스칼렛이 잠시 놀러왔다는 듯 얼굴을 쏙 내밀었다.

하얀 찹쌀떡 같은 얼굴이 두리번거리다 나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었다.

“저기 있다!”

“나윤아. 그거 하자. 그거.”

“잠깐만, 언니. 나 감정 좀 잡고.”

데이지가 진지한 표정으로 핫도그를 내게 겨눴다. 그러곤 마법 주문을 외우듯 말했다.

“치치퐁.”

“…….”

“꺄하하하하!”

나머지도 배를 잡고 깔깔거리고는 ‘빠이!’ 하며 문을 닫고 나갔다.

남은 것은 아련한 핫도그 냄새.

“푸하하하!”

그리고 바닥에서 뒹굴거리며 배를 잡고 웃는 동생들이었다.

나도 어이가 없어서 웃다가 중얼거리듯 물었다.

“뭐야. 저긴 또 어떻게 알아?”

“그야 당연히 알져. 제가 보내줬는데.”

“…….”

멈칫하던 내가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누구누구한테 보냈는데?”

“음, 별로 안 보냈어여.”

막내가 눈을 올려뜨며 명단을 기억해냈다.

“실장님이랑 매니저 형들, 저 누나들이랑 학교 친구들, A&R팀, 프로듀싱팀 정도?”

“…….”

“거기에 지인들이랑 홍보팀 분들 정도… 으아아아악!”

“야! 그럼 다 보낸 거잖아!”

*   *   *

그날 저녁.

-루퍼트 딘, K팝 열혈 마니아 인증 “뉴블랙의 Nine 좋아해”

-美 토크쇼서 한국어 실력 자랑한 루퍼트 딘, “치치퐁”

-“치치퐁이라고 들어 봤나?”.. ‘노스탤지어’ 배우의 한국어 사랑

미국의 배우가 토크쇼에서 잠시 흥얼거린 ‘Nine’과 ‘치치퐁’이 담긴 영상은 한국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한글 자막이 달린 해당 영상이 우후죽순으로 업로드 되고.

인기 있는 동영상 리스트에도 올라오면서 사람들의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치겟다 진짜

-00:47 00:58 치치퐁 할 때마다 내 얼굴이 화끈화끈ㅋㅋ 아오

-대체 뉴블랙은 뭘 가르쳐준거냐고ㅋㅋㅋ

-여러분은 지금 찌찌뽕이 미국 전역으로 알려지는 광경을 보고 계십니다.

-뭐지.. 펄럭해야 되는 건가?

-주모 : (장사 개시해야 하는건가 고민 중)

-외국 유명한 배우가 한국노래 좋다고 말할 때까지만 해도 개뿌듯했는데 치치퐁 하나에 다 날아갔다

-찌찌뽕 파트에서는 국뽕의 반댓말이 하나 필요할 거 같은데., 뭔가 그 반대의 수치가 올라가는거같아

-중국이나 일본애들 보통 외국에 한국거 소개되면 자기네 거라고 하는데 너무 조용함ㅋㅋㅋㅋㅋㅋㅋ

-나 같아도 찌찌뽕은 안 가져가..

이윽고 동영상 캡처들을 하나로 이어붙인 짤들이 곳곳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SNS 등의 유머 페이지에 올라오고, 각종 커뮤니티에도 시시각각 업로드가 되었다.

대부분 미튜브 댓글창과 비슷한 반응이었다.

실시간 검색어에 루퍼트 딘, 뉴블랙, 나인 등이 오르고, ‘찌찌뽕’이 급상승 검색어에 오를 때.

이 모든 일에 초연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구오빠들 좋아할때는 실검에 오르면 가슴이 철렁했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편안하지

-실검에 올라도 이 흔들리지 않은 편안함

-이건 마치.. 뉴블랙

-이제는 울 애들이 규호한테 모발 기부했다는 소식 정도는 떠야 놀랄 거 같음ㅋㅋㅋㅋ

-남들 릴레이댄스할 때 사람 날리고 낙법하는 울 애들ㅠㅠㅠㅠ

-너무 무섭게 들리잖아ㅋㅋㅋㅋㅋㅋㅋㅋ

-다른 돌이 뿌셔뿌셔 때 중현이는 돌을 부숴

-근디 이걸로 영업 어케해야 되징..

-1년 전의 나에게 니 최애 영업에 할리우드 배우의 찌찌뽕이 들어간다고 하면 도랏냐고 햇을것

이내 루퍼트 딘의 SNS 인증샷과 비주의 홍대 직캠 등을 가지고 이런저런 궁리를 하는 수플레들이었다.

한편.

추석을 앞두고 명절 영화로 무엇을 볼지 고민하던 이들에게 ‘치치퐁’은 해답지를 던져 주었다.

-노스탤지어 함 봐봐야겟음

-국뽕 마케팅 너무 과해서 싫어했는데 저정도로 애프터서비스까지 해주면ㅋㅋㅋㅋㅋ

-손익분기점까지만 볼 것이다

-뮤지컬 영화 취향 아닌데 의리로 봄ㅋㅋㅋㅋ

감독의 내한 이후 쭉 올랐다가 정체되었던 예매율이 다시 한 번 상승하는 순간이었다.

예매율 38.6%

굵직한 한국 영화들이 기다리는 추석 극장관.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뮤지컬의 영화가 예매율 1위를 차지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

개봉을 앞둔 다른 영화들의 제작사나 배급사, 홍보 대행사로선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개봉을 앞둔 어느 영화의 배급사 사무실에 침묵이 흘렀다.

“……보통 일이 아닌데. 저거 뭐냐, 영화 퀄리티도 좋다면서?”

“기세가 장난 아니에요. 지금 뉴블랙 토크쇼 얘기 나온 것 때문에 또 실검에 올라와서.”

“아이고…….”

누군가 말했다.

“우리도 진즉에 뉴블랙을 홍보 쪽으로 썼어야 됐나. 작년에 애니메이션 입소문 잘 탔잖아.”

“글쎄요. 6개월 전이면 몰라도…….”

“팀장님, 지금 얘네 통신사 광고 나오는 애들이에요. 지금 예산으로 절대 못 불러요.”

“비싸 봐야 뭐 얼마나, 흐어억…….”

이내 누군가 데이터베이스에서 찾아낸 아이돌 페이에 식겁하는 직원들이었다.

“비쌀 수밖에 없죠. 남자 아이돌 중에 대중성만 따지면 얘네가 최고 갑일 걸요? 이미지도 호감이고.”

“우리 부모님도 알긴 알더라.”

보이그룹의 팬 동원력에 유명 걸그룹 같은 대중성이 합쳐졌다는 이야기에 페이가 절로 납득이 갔다.

영화계에 폭풍처럼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뮤지컬 영화에 관계자들이 긴장할 때.

“대박이다……!”

“입소문까지 잘 타면 반응 확 오겠는데요?”

‘노스탤지어’의 배급을 담당한 영화사 ‘숲’에서는 벌써부터 축배를 들 분위기였다.

외국에서는 개봉 전부터 관심을 끌어 모을 만큼 원작이 인지도 있는 영화였지만, 한국에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기에 큰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았던 영화였다.

그런 노스탤지어가 갑자기 예매율 1위라는 소식이 들리니 심장이 콩닥콩닥할 수밖에.

“일단, 홍보 대행사에도 지금 연락하고. 아는 기자들 있으면 인맥 좀 동원해 보자고.”

설레는 얼굴로 일하던 배급사 직원들이었다.

모든 게 완벽했다.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저기, 그런데.”

“음?”

“보도 자료를 돌린다고 치면 뭐라고 쓰죠. ‘찌찌뽕의 힘’이라고 써야 되나?”

“…….”

기사 타이틀에 들어갈 단어 선택을 두고 그들의 머릿속에 고뇌가 스쳐지나갔다.

*   *   *

9월의 마지막 주 주말.

추석을 앞두고 우리는 한복으로 옷을 갈아 입었다.

“둘 셋!”

“절 받으세요~!”

다 같이 웃으면서 핸드폰 카메라를 향해 큰절을 올렸다.

찰푸닥.

지호가 머리에 쓴 도련님 모자가 엎어지고, 비주가 쓴 선비 갓이 훌러덩 떨어지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바닥에 엎어진 바퀴벌레들처럼 꿈틀대며 키득거리던 우리가 일어났다.

“편집하고 다시 가야 되나?”

“그냥 가여.”

“오히려 멀쩡하면 수플레들이 서운해할걸요.”

카메라 뒤에서 촬영하던 홍 대리님이 손으로 OK 사인을 그렸다.

내가 웃으며 멘트를 했다.

“민족 대명절 추석이~”

“다가왔습니다아!”

“날이 많이 추워졌죠? 옷도 따뜻하게 입고 다니시고, 모쪼록 모든 분에게 행복한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 같이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하면서 미리 준비한 ‘나인’의 명절 버전 안무를 추었다.

우리 나름의 추석 축하 무대였다.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중간에 애드립을 섞었다.

“이보게, 한양이 어디yo.”

조선시대 명의 옷을 입은 중현이가 약첩 봉투를 휘두르는 바람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풍물패 옷을 입은 리혁이가 머리를 휘두르며 막내를 끈으로 촙촙 공격하고.

비단옷을 입은 한량 선비인 내가 부채를 목도리 도마뱀의 갈기처럼 파르르 흔들며 춤을 추자 동생들을 꺄르륵 거렸다.

“와아아~!”

마지막에 다 같이 꾸벅 인사를 하며 ‘추석 잘 보내세요!’ 하는 멘트를 날렸다.

“에고, 힘들다.”

“그냥 인사만 할 걸 그랬나 봐여.”

잠시 동생들과 바닥에 쭈그려 앉아서 쉬었다.

“고생하셨어요!”

“너희도.”

카메라를 챙겨 떠나는 홍 대리님에게 인사하고는 의상을 다시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벌써 내일이면 추석이네여.”

“그러게.”

“시간 엄청 빠르긴 하네요. 저는 작년 추석이 엊그제 같은데.”

중현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에 우리 뭐 했지?”

“그때 가족들이랑 주세한 보지 않았어요? 그때 되게 분위기 좋았는데.”

말을 들으니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지호네 아버님이 통째로 고깃집을 빌려서, 거기서 주세한 1부를 보면서 외식을 했지.

“……나만 그런가. 되게 감개무량하지 않아?”

“저두요.”

“그때 인터넷에서 쟤 누구냐, 이런 댓글 뜰 때마다 다들 박수 치고 그랬잖아요.”

요즘처럼 다들 우리 얼굴을 보고 ‘뉴블랙이구나!’ 하며 알아보는 상황과 대조하니 신기했다.

이게 1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니.

잠시 누운 채로 서로를 바라보며 웃….

“아아……!”

“아, 담 왔어.”

격하게 춤을 춘 것 때문인지 단체로 목에 담이 와서 인상을 찡그리다가 다 같이 웃었다.

리혁이가 말했다.

“그냥 상황 자체가 좋네요.”

그 말대로였다.

콘서트도 하고. 사람들이 우리 노래를 이렇게 들어주고, 인지도가 생겼다는 사실이 기뻤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더 멀기는 하지만 지금 이루고 있는 것만으로도 작년 이 맘때에 상상도 못했던 결과였으니까.

유일한 단점이라면.

“할머니를 못 봐서 아쉽긴 한데…….”

“어젯밤에 한 시간 동안 통화했잖아여.”

“아냐. 실물로 봐야 돼.”

동생들이 웃었다.

이번 추석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각자의 가족들과 만날 수 없다는 거였다.

원래는 해외 투어를 앞두고, 저마다 본가에 가서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는데 변수가 좀 많이 생겼다.

수플레들이 늘어나면서 비례해서 사생도 엄청 늘어난 바람에 회사 차원에서 고민을 하는 중이었다.

요즘 들어 갑자기 차 앞에 뛰어들거나 고속도로까지 따라오는 미행 차량들까지 생겨서.

회사에서도 이런 상황은 처음 겪는 터였다.

그래서 각자 명절을 맞이해 흩어졌을 때 생길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서울에 있기로 했다.

당장 TNT만 해도 우리처럼 2년차에 확 뜨고 나서 명절 때 이런저런 사건이 많았으니까.

우리도 매일 매일 모르는 얼굴들이 숙소 근처에서 늘어나는 걸 목격한 터라 그에 동의했다.

안정이 될 때까지는 일단 사리는 게 좋다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자, 스케줄 준비하러 갑시다.”

손뼉을 치며 동생들을 일으켜 세웠다.

“느아아아…….”

저질 체력에 힘들어하는 우리 메인 보컬에게는 만원 짜리의 세종대왕님을 보여주며 일으켜 세웠다.

흐물흐물대는 동생들을 챙기며 회사에서 샵으로 이동했다.

이번에 본가를 방문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추석의 빼곡한 스케줄 때문이었다.

“안녕하세요. 미래경제신문 구독자 여러분.”

“치치퐁! 뉴블랙입니다!

추석맞이 인사를 부탁하는 여러 기업체들에게 보낼 인사 영상도 찍고.

라디오에 방문해서 1시간 가량 토크를 주고 받기도 했다.

그리고 그 외에도 명절 특집과 다양한 프로그램 등에 패널로 나가기로 되어 있었다.

-요새 정말 핫한 분들을 모셔볼 차례인데요.

우리가 재작년에 연말평가를 했던 태화고등학교 대강당.

백스테이지에서 무대 의상을 입은 채 대기했다.

전국 고등학생들 중에서도 퀴즈에 일가견이 있다 하는 학생들로 선발한 총상금 2000만 원의 퀴즈쇼였다.

“내가 여길 나왔어야 하는데…….”

리혁이가 백스테이지 밖에 있을 학생들이 부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동안 바깥에서 함성 소리가 커져갔다.

-이분들에 대한 힌트를 드리자면 숫자 9… 와. 함성이 대단하네요!

-그럼 더 지체하지 말고 바로 모셔 볼까요?

인터컴을 낀 FD가 올라가라는 듯 손짓을 했다.

-바로 뉴블랙입니다!

무대 의상을 입은 우리가 무대 위에 오르자, 강당 바닥에 앉아 있던 200명의 학생으로부터 함성이 쏟아졌다.

각양각색의 교복을 입은 이들에게서 같은 표정이 떠올랐다.

“와아아아—!”

무대 위에서 ‘Nine’을 신나게 부를 때마다 같이 후렴구에서 ‘Nine’ 하며 호응해 주는 학생들이었다.

‘형.’

‘오케이.’

매니저 형들과 시선을 교환했다.

미리 방송국 측과 협의한 대로 무대에서 강당 바닥으로 내려오자 비명이 터져 나왔다.

펜스처럼 쭉 둘러싼 학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한편, 우리를 찍는 핸드폰을 스윽 가져왔다.

그러곤 노래를 부르며 셀카를 함께 찍었다.

“와아아아-!”

그런 셀카 이벤트를 진행하고는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가 나인의 후렴구를 불렀다.

“허억, 안녕하세요!”

숨을 몰아쉬고는 마이크를 잡고 무대에서 인사를 올렸다.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와아아아!”

“정말 이렇게 호응을 잘해주실 줄은 몰랐는데 너무너무 감사해요. 공연 잘 보셨나요?”

“네에에!”

지호가 마이크를 들었다.

“여기 올라오기 전부터 리혁이 형이 ‘고교 퀴즈왕’ 출연자 분들 너무 부럽다고, 자기도 이런 퀴즈쇼에 서 보고 싶다고 했거든여.”

“맞아요. 정말 부러워요.”

리혁이가 말했다.

“제가 이런 퀴즈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준비를 했어요.”

비주가 말을 이어 받았다.

TV쇼 ‘고교 퀴즈왕’에는 이런 식으로 회차마다 축하 공연과 함께 연예인이 퀴즈를 내고 가는 코너가 있었다.

가끔 넌센스를 준비하기도 하고, 고난이도의 문제를 내기도 했다.

학생들이 긴장한 얼굴로 앉아서 마커펜을 들을 때, 리혁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말 재미 있는 퀴즈를 준비했어요.”

중현이가 마이크를 잡고 큐 카드를 읽었다.

“분야는 ‘국어’입니다. 다음은 노천명 시인의 시 중 첫 소절인데요. ‘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다음 중 이 시의 제목은 과연 무엇일까요?”

내가 답지를 불렀다.

“1번 코끼리, 2번 기린, 3번 사슴, 4번 용.”

잠깐의 고민이 스쳐가는 게 보였다.

그래도 이 정도면 굉장히 쉽지 않나 생각하고 있을 때.

“정답은 3번! 사슴입니다!”

“…….”

“와아아…?”

몇 명 빼고는 안 틀렸겠지, 생각을 했는데 86명이 2번을 든 채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그들의 눈이 말하는 것 같다.

‘쉽다며?’

‘기린? 왜 기린이 아닌건데?’

‘내가 탈락이야?’

봉기를 앞둔 민초들을 바라보는 탐관오리가 된 기분이었다.

우리 퀴즈에 재미있겠다며 승낙했던 피디님도 탈락자가 너무 많은지 당황한 표정이었다.

작가님이 스케치북으로 쓴 표현에 내가 웃으며 말했다.

“네, 이건 연습문제였고요.”

“아아…….”

“설마 이렇게 헷갈리는 문제를 냈을까요.”

그걸 낸 죄인의 귀가 벌게졌다.

능청맞게 상황 수습을 하는 내 모습에 동생들이 감탄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학생들도 안도했다는 듯 웃었다.

“국어 퀴즈로 몸이 풀렸다면 본 문제로 들어가 볼까요? 진짜 문제는 바로 사슴에 관한 퀴즈입니다.”

*   *   *

대부분이 맞출 만한 문제를 다시 낸 후.

“야. 내가 어렵다고 했잖아.”

“피디님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 했잖아요. 거기 다 퀴즈왕이니 이 정도는 쉬울 거라고.”

“진짜 아까 저 겁나 긴장했다니까여.”

고난이도 퀴즈를 낸 누군가를 타박하며 다음 스케줄 장소로 이동했다.

추석 전날.

오늘의 마지막 스케줄은 어느 작은 극장관에서 수플레들과 함께 막 개봉한 ‘노스탤지어’를 관람하는 홍보 행사였다.

“어, 저기 있다!”

“저기 팬분들 모여 있는 거 같아여!”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데, 영화관 바깥에 모여 있는 수플레들이 보였다.

복장은 각양각색이지만 저마다 손에 들고 있는 달봉이로 그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인사할까?”

그리고 매니저 형들의 허락을 구해 차창을 내리려고 할 때.

“…….”

“…….”

달봉이를 든 채 단체로 괴상한 춤을 추며 꺄르륵 하는 수플레들의 모습이 보였다.

시선을 슥 외면했다.

백미러로 민기 형의 웃는 눈이 보였다.

“인사한다며?”

“……이따가, 이따가 인사할 거예요.”

덩실덩실 춤을 추는 수플레들의 모습이 멀어졌다.

“뭔가 우리가 잘못한 듯한 느낌이네여.”

“…….”

그간 우리 행동에 대해 반성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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