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15)화 (315/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15화

“뮤직 카페.”

“뮤카?”

“응. 하승주의 뮤직 카페.”

우리 실장님이 ‘너희 이미지를 세탁할 기회다!’ 하며 가져온 기회는 익숙한 방송이었다.

“뮤카 이름 오랜만에 듣네.”

“그러게여. 장소원 선배랑 작년 봄에 나가지 않았어여? 와, 근데 이러니까 진짜 오래된 거 같다.”

막내의 말에 동감했다.

작년 초 썸씽으로 활동할 때 나가서 노래를 부르고 온 기억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내가 물었다.

“그런데 이걸로 이미지 세탁을 하자는 건 무슨 뜻이야?”

“너희가 좀… 그런 이미지가 강하잖아.”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닌데.”

내 말에 동생들이 동의했다.

“맞아여. 실장님. 그 정도는 아니에요.”

“저도 왕지호 말에 동의해요.”

“맞아. 맞아.”

“실장님 말에 서운하네요.”

원성이 자자해지자 두 손을 들어 우리를 진정시키던 석환 형이 말했다.

“물론 그 정도까지가 아닌 거야 알지. 그냥 따로 표현하기 힘들어서 그런 표현을 쓴 것뿐.”

“알았어여. 저희 화 풀림~”

피식 웃던 상대가 헛기침을 했다.

“흠흠, 아무튼 뮤카 쪽에서 급하게 섭외 요청이 들어왔어. 노스탤지어 OST 때문에 큰 관심을 가지는 거 같더라고.”

“오호.”

“그 회차 특집의 주인공 격으로 다뤄 줄 테니까 한 번 나오는 게 어떠냐고 얘기가 들어왔어.”

“주인공이라면?”

“너희가 장소원 씨랑 나왔던 게 10분 남짓한 분량이었나? 이번에는 그보다 더 많이.”

좋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확인할 게 몇 가지가 있었다. 다들 생각이 비슷했는지 리혁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노스탤지어 건이면 OST를 불러달라고 요청할 거 같은데, 이거 영화사 측이랑은 얘기가 된 건가요?”

“거기서 OK했지. 영화가 개봉한 이후기도 하고, 방송이 나갈 때쯤이면 OST 음원도 출시되어 있을 테니까.”

가장 중요한 문제도 해결이 되어 있었다.

그쪽에서 요구하는 대강의 무대라든가, 토크 내용 등에 대해서 질문을 하며 얼개를 잡은 후.

비주가 물었다.

“그런데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자고 하셨는데, 이걸로 어떻게 하시겠다는 건가요?”

“아.”

석환 형이 우리를 둘러보더니 답했다.

“너희가 아이돌 팬들이면 몰라도 일반 대중들에게는 예능 이미지가 강하잖아.”

“그런 이미지가 강한가?”

잠시 동생들을 둘러보았다.

순하고 덕하게 생긴 눈망울과 초등학생들에게 패배하는 유순한 우리의 모습.

보통 사람들과 다를 게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내 시선이 중현이에게 가서 멎었다.

“…….”

갑자기 ‘예능 이미지’가 뭔지 이해가 됐다.

그리고 중현이도 동생들을 둘러보며 ‘예능 이미지?’ 하다가 내 얼굴에 눈이 딱 멈추었다.

“…….”

끄덕.

내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납득.”

끄덕끄덕.

중현이도 명쾌해졌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도 납득했어요.”

“솔직히 말해서, 저 둘이 우리 이미지를 기묘하게 만들어낸 원흉이죠. 그래프 그리면 90퍼센트 정도 나올걸요.”

“거기서 9퍼센트가 형인 건 알져?”

“…….”

입을 비죽이는 리혁이를 바라보던 막내가 비주에게 시선을 던졌다.

“비주 형~”

“응. 우린 노멀 피플즈-”

둘이 팔을 합쳐서 큰 하트를 만드는 동안 리혁이가 ‘복수형은 피플이에요’ 했다.

정상인 콤비라며 좋아하는 둘을 보며 웃었다.

자막이 있다면 저 위에다가 화살표로 ‘자칭 정상인들’하고 붙여 주고 싶다.

“글쎄다. 너희 다섯 다 유의미한 차이는 못 느끼겠는데…….”

5분 걸릴 이야기도 15분으로 만든다며 감탄하던 우리 매니저가 설명을 시작했다.

“아무튼 너희 예능 이미지가 강한 게 살짝 독이 되고 있거든.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건 좋지만.”

“그게 안 좋나?”

“너무… 과하게 다가가 버려서.”

“…….”

“그, 나쁜 건 아니니까 그렇게 시무룩해 할 필요는 없고.”

“네…….”

상대가 안경을 고쳐 쓰며 웃었다.

“연예인으로서 대중에게 친근하게 느껴지고, 호감 가는 이미지인 건 좋은 일이야. 너희한테 광고가 쏟아지듯 들어오는 것도 바로 그런 대중성 때문인 거고.”

“호오.”

“다른 그룹이 정말 얻고 싶어하는 대중성을 너희는 꽤 얻었지.”

대중에게 호감도 높은 그룹이 되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가끔씩 ‘어떤 아이돌에게 호감이 가십니까?’ 이런 류의 설문조사 뉴스가 올라오면 거기 우리 이름이 보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요즘은 길거리를 나가도 사람들이 다 우리를 알아봤다.

아이돌 팬들뿐만 아니라 정말 어르신들이나 유치원생들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놀라기도 하고.

“하지만 이게 아티스트적인 면에서는 꼭 좋은 것만은 아니거든.”

“그렇지.”

그 부분에 대해서 우리도 크게 공감을 했다.

“우리나라는 신비주의로 일관할수록 아티스트적인 면모를 더 쳐주는 분위기라. 대중성 좋은 가수나 배우들의 퍼포먼스가 평가절하 당하는 부분이 상당히 있거든.”

“맞아. 우리도 요새 그걸 걱정하고 있긴 했어.”

공연을 하면 멋있고 신비롭고 해야 하는데, TV에서 자주 접할수록 그런 신비함이 사라지는 건 사실이니까.

예능 출연이 잦은 배우들이 연기로 힘들어하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예능 이미지가 강해서 사람들이 배역에 몰입을 못하니까.

우리도 최근 예능 이미지가 강한 탓에 가수로서의 이미지가 묻히는 건 아닐까 걱정하긴 하던 터였다.

“그래서 이번 뮤카 출연으로 어느 정도 그런 예능 이미지를 조금 희석해 보자는 거지.”

“가능하려나.”

“일단 해 봐서 나쁠 건 없잖아.”

매니저가 힘 있게 말했다.

“지금이 최적의 기회야. 노스탤지어가 입소문 타고 엄청 잘 되고 있는 거 알지?”

이러다 천만까지 가는 거 아니냐는 말이 벌써 나올 만큼 노스탤지어의 국내 오프닝 성적이 좋았다.

국내 배급사 측에서 벌써 추가 이벤트를 기획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고.

“아마 방송이 나가면 개봉 2주차나 3주차일 테고. 그때까지 영화 성적이 좋으면 최고의 상황에 방송이 나가는 거지.”

“오. 그러네여.”

막내가 핸드폰으로 캘린더를 살피고는 말했다.

“저희가 해외 나가 있을 때 방송에 나가는 거네여? 아무 방송에도 안 나갈 때.”

“응. 그거야.”

매니저의 계획은 간단했다.

노스탤지어가 입소문을 타고 흥행이 최대로 잘 되는 시기.

사람들이 다들 OST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때쯤에 ‘우리의 OST 제작 비하인드’ 등이 담긴 방송이 나가는 거다.

“특히 우주 너는 작곡에 대한 이미지를 최대한 어필할 수 있고. 뮤지컬 넘버는 아이돌 노래와는 또 이미지가 다르니까.”

맞는 말이었다.

아무리 리얼리티나 이런저런 방송을 통해 사람들에게 ‘제가 쓴 곡이에요!’ 해도 잘 안 믿어줘서.

‘설마, 다른 사람이 해 줬겠지’하는 인식 때문인 듯했다.

하지만 대중음악과 장르가 다른 음악이라면 이야기가 다를 터였다.

“진짜 좋은 기회기는 하네.”

“괜찮지?”

“응. 잘만 되면…….”

잘만 된다면야 바랄 것 없는 상황이었다.

시청자들이 보고 나서 ‘아, 뉴블랙 애들이 음악도 좀 하나 보다’ 하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 수도 있고.

문제는.

“그걸로 여태까지 쌓아올린 공든 탑이 희석될까?”

“…….”

동생들이 내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전 솔직히 어렵다고 봐요.”

“으음… 쉽지 않을 거 같은데.”

“이미지 세탁이라고 하셨잖아여. 저는 세탁기가 달달달 하다가 파앙 하고 터질 거 같아여.”

“우주 형이랑 제가 또 뭘 할 수도 있고요.”

우리 매니저가 허공을 바라보며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   *   *

뮤카 출연은 곧장 이루어졌다.

제작진 측에서 우리 출연을 몹시나 기다리고 있었는지 출연이 성사되자마자 기사가 나왔다.

첫 해외 투어 출국을 위해 공항으로 향할 때였다.

-‘OST 화제’ 뉴블랙 뮤직카페 출연 “Thousand Dreams 부른다”

-[단독] 뉴블랙, 조유리 밴드, ‘뮤카’ 음악인 특집 출연

-뉴블랙, ‘뮤카’ 출연...‘노스탤지어 OST’ 제작비화 밝힌다

작년 초와는 천지차이로 다른 상황이라 신기함을 느꼈다.

전에는 조 이사님이 MC인 하승주에게 ‘님, 우리 애들 출연 좀…’ 하며 사정해서 겨우 나갔는데.

반대로 이번에는 저쪽에서 나와 달라고 했으니까.

물론 작년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크게 뜨기도 했지만, 영화 OST로 인한 관심 덕분이었다.

“조유리 밴드랑 또 만나네요.”

태블릿을 톡톡 두드리던 리혁이에게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걱정은 안 해요. 그냥 껄끄러워서.”

“우리보다 거기가 더 껄끄러울걸.”

“그건 또 그러네요.”

워낙에 강약약강인 분들이라 걱정은 안 됐다.

인천공항에 거의 다 왔다는 내비 안내에 차량 안에서 열심히 스트레칭을 했다.

“어우, 삭신이야…….”

목을 90도 가까이로 부드럽게 꺾던 비주가 이를 드러냈다.

“형, 저 이빨에 뭐 낀 거 없어요?”

“잠시만.”

나도 90도로 꺾어서 보고 말했다.

“없네.”

“다행이다. 저번에 싱가폴 다녀왔을 때 기사 사진에 김 나와서 너무 민망했어요.”

말 나온 김에 다 같이 ‘이이이’ 하면서 이를 드러내면서 입에 낀 건 없는지 확인했다.

비하인드 캠을 찍던 민기 형이 다급하게 촬영을 중단했다.

“다 왔네.”

차량이 점점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인천공항 3층.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차창 너머로 빼곡히 모여 있는 기자들과 팬들이 보였다.

“…….”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혀 왔다.

평화적으로 지나갈 만한 방법이 도저히 없어 보였다. 대포 카메라만 수십 대는 넘고.

누가 오는지 궁금해서 몰려든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최소 백 명은 되어 보였다.

“잠시만 얘들아. 경호업체 측이랑 연락 중이니까 상황 통제된 뒤에 내리자.”

안에서 경호업체 직원들이 지나갈 루트를 확보한 후.

그제야 차에서 몸을 이끌고 내렸다.

스르륵-

얼마 전 회사에서 바꿔준 새 차량의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있었다.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끼고 발을 바닥에 내리기도 전에.

“와아아아악!”

모여 있는 이들 사이에서 비명과 비슷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선글라스를 써서 다행이지, 플래시에 눈을 잔뜩 찡그릴 뻔했다.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여유 있게 웃는 것도 잠시뿐.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혼비백산한 상황이 펼쳐졌다.

“아! 아!”

어깨가 다가오는 인파에 부딪혔는지 리혁이가 눈물을 찔끔할 만큼.

중현이가 비주와 리혁이 뒤에서 거대한 석상처럼 감싸고 있는데도 그랬다.

“지나갈게요! 지나갈게요!”

“……!”

갑자기 눈앞에 누가 확 들이닥쳐서 날 붙잡으려고 해서 깜짝 놀랐다.

경호업체 직원이 바로 붙잡아서 떨쳐내 주었지만 반사적으로 몸이 움찔했다.

정신이 하나도 없네.

내가 사람에 밀리는 건지 걷고 있는 건지 분간이 안 갔다. 셔츠 안 등짝에서 식은땀이 줄줄 났다.

일본으로 출국했을 때보다 더한 상황이었다.

“…….”

처음에는 선글라스도 벗고 맨 얼굴로 다녔는데, 금세 마스크까지 착용을 하게 됐다.

이 와중에 표정관리까지 할 자신은 없어서.

왼쪽을 돌아보면 카메라고, 오른쪽을 바라보면 카메라고.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 놔서 다행이지, 안 그랬다면 사생들이 전화를 걸어서 계속 울렸을 거다.

입국 게이트를 넘어가서 겨우 소란이 조금 진정됐을 때.

“지호야. 핸드폰 가져가.”

“어?”

지호가 주머니를 더듬다가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뜰 때, 원석이 형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아까 사생이 달려들어서 밀칠 때 떨어졌더라.”

“와. 진짜 놀랐는데. 고마워여. 형.”

“정신이 하나도 없지?”

땀범벅인 얼굴로 씩 웃는데 너무 힘들어 보였다. 핸드폰을 줍다가 손이 밟혔는지 손등이 벌겋다.

“형 괜찮아요?”

“응, 괜찮아.”

“아이고. 아이고…….”

우리가 손을 붙잡고 우는 소리를 내니 상대가 웃었다.

요모조모 살폈지만 다행히 다치지는 않은 듯했다.

학창시절 학교 계단에서 데굴데굴했을 때도 무사한 통뼈라며, 걱정 말라는 말을 했지만 우리 입장에선 미안할 따름이었다.

“저희가 비행기 살 만큼 성공할게요. 형.”

“그래.”

다행히 출국장으로 나간 다음부터는 제법 한산했다.

늘 보던 사생들만 있고.

소리 지르거나 말을 거는 이들은 무시하면서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처음에는 무서웠는데, TNT의 한모 씨의 조언대로 점점 적응해서 무뎌지는 것도 있는 모양이다.

“그런 것치고는 되게 오들오들 떨고 있는데요. 형.”

“비행기 때문에 긴장해서 그래.”

중현이에게 눈을 슥 흘겼다.

대강 실시간으로 올라가고 있는 기사 사진들을 슬쩍 확인하고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우리가 모여 앉고, 매니저 형들과 스타일리스트 등의 스탭들이 빙 둘러싸 있는 구조였다.

창가 쪽 가운데 자리에 앉아서 심호흡을 했다.

그러곤 하나씩 계산을 하기 시작하자 리혁이가 급격히 호기심을 보였다.

“뭐 해요. 숫자 세요?”

“아니. 이번에 갈 곳들.”

“아.”

손가락으로 접으며 말했다.

“홍콩, 대만, 싱가포르,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포함해서 호주, 미국, 브라질, 칠레 등이 끼어 있었다.

10월부터 연말까지 첫 해외 투어에 낀 나라들이었다.

일본은 별도로 내년 초에 다녀올 예정이고.

“비행기만 최소 열다섯 번은 타겠는데…….”

“아니에요.”

“오, 그래?”

더 적게 타나? 하고 웃는 나에게 상대가 말했다.

“곱하기 2해야죠. 왕복인데.”

“…….”

“왜 그렇게 너무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데요. 본인이 잘못 세 놓고.”

“…….”

“초콜릿 줄게요. 이거 먹고 화해해요.”

바로 승낙했다.

내 등받이 위에서 막내가 얼굴을 쏘옥 내밀었다.

“저두 먹을래여. 와… 은박지 주는 거 봐.”

“흐하하!”

내 긴장을 풀어주려고 하는 듯 근처에서 재잘재잘 떠들어대는 동생들이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고마울 따름이었다.

중현이가 긴장을 풀어주는 진정혈이라면서 내 팔을 눌러주는 동안, 유리창 밖을 바라보았다.

관제탑이 보였다.

사간 녹화 때 저기 위에서 비행기들을 내려다보았던 기억들을 상기했다.

지금처럼 커다랗고 웅웅거리는 기계가 아니라 그때 그 앙증맞게 보였던 비행기들의 크기를.

그걸 생각하면서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던 그 순간.

내 뒤에서 중현이의 얼굴이 달덩이처럼 스르륵 떠오르기 시작했다.

푸근한 얼굴이 물었다.

“형, 저 이러니까 되게 해 뜨는 거 같지 않나요.”

“…….”

“이건 햇빛.”

“…….”

얼굴 옆으로 손을 들어서 반짝반짝 하는 녀석의 모습에 벙 쪘다.

리혁이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돌아보자 ‘어어’ 하며 안 된다는 듯 말했다.

“해는 맨눈으로 보면 안 돼요. 형.”

“중현아.”

“네.”

“저물어라.”

“네…….”

얼굴을 내리고 시무룩하게 벨트를 하는 녀석을 보며 실소를 흘렸다.

그래도 그 덕분인지 비행기가 이륙할 때도 평소보다 느끼는 두려움이 덜했다.

원래 떠올리려고 했던 관제탑에서의 풍경 대신.

누군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이건 일식’ 했던 게 떠올랐다는 게 문제였지만…….

*   *   *

우리의 해외 투어.

첫 번째 행선지는 바로 말레이시아였다.

이번 콘서트 투어의 경우에는 해외 프로모션을 함께 겸하고 있어서, 콘서트 외에도 간단한 일정들이 있었다.

하루 정도 더 늘려서 현지 방송과 작게 녹화를 한다든가. 잡지 인터뷰를 한다거나.

해외에 우리 이름을 알릴 예정이었는데.

“뭐지.”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공항 직원들이 VIP가 이동하는 통로로 안내를 해 주었다.

석환 형이 말했다.

“밖에 인파가 모여 있어서 그렇대.”

“아하.”

“최근에 이 정도로 사람 많은 건 처음이라고 하더라.”

태어나서 VIP 시설을 이용해 보는 건 처음이라 신기했다.

밖에 나와서 미리 대기하던 차량에 올라탈 때도, 우리가 유리창 안에서 모습을 보일 때부터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악!”

반짝반짝하는 플래카드들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보, 봉달이가 왜 이렇게 많아.”

“달팽이요. 달팽이.”

순간적으로 말이 헛나올 만큼 많은 달봉이의 물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멀찍이 보안요원들이 지키는 가운데 ‘뉴블랙!’ 하며 우리를 반겨 주는 말레이시아 팬들이 보였다.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자 비명이 터져 나온다.

우리 손에 볼륨을 키우는 스위치라도 달린 건가 의심이 들 만큼.

“와, 저 소름 돋았어여.”

“나도.”

“순간 헷갈렸다니까요. 여기 처음 와보는 데인데.”

차량에 탑승한 후에도 다 같이 상기된 얼굴로 떠들었다. 그러곤 멀어지는 공항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름 알리려 왔는데 이름이 알려져 있네…….”

“근데 우리를 어떻게 알져?”

“그러게.”

태어나서 처음 와보는 낯선 나라에서 수플레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반겨 주고 있었다.

“그게, 너희가 미튜브에서 만든 영상들이 말레이시아에서 꽤 유명한가 봐.”

“미튜브 영상이라면?”

“그, 알잖아. 그것들.”

우리가 ‘설마?’ 하는 얼굴로 묻자, 상대가 ‘그렇다’ 하듯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런 거였구나.”

석환 형이 현지 에이전트의 말을 옮겨 주었다.

“언어가 다른 나라의 입장이라 그런지, 말로 웃기는 거보다 몸으로 웃기는 게 많았던 게 중요한 셀링 포인트였다고 하던데.”

“그러네. 솔직히 나 같아도 썸네일에서 가수가 외발자전거 타고 있으면 일단 누를 테니까.”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창밖을 아련하게 바라보았다.

“우리 이미지 세탁 가능할까여?”

“그러게…….”

“이미지가 국내에 한정된 게 아니었구만….”

세계적으로 형성된 이미지를 어찌 바꿀지 고민하는 동안 차량이 호텔로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리허설 사이에 낀 일정은 뭐야?”

“이따 댄스 팀 방문해서 잠깐 춤 알려주는 정도.”

“오늘이구나.”

10월 말 창원에서 열리는 ‘K팝 페스티벌’ 본선에 참가하는 말레이시아 커버 댄스 팀.

우리가 방문해서 안무에 대한 팁들을 알려줄 예정이었다.

현지 에이전트가 말을 전해줬는지 전화 통화를 마친 석환 형이 웃었다.

“거기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라는데. 뉴블랙이랑 같이 춤을 춰 볼 수 있다고 들떴대.”

“그래요?”

“다 너희 팬이라서 설레나 봐. 방방 뛰고 있대.”

“그렇구나.”

우리가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비주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너무 재미있을 거 같아요. 같이 연습하고 그러면 거기서 엄청 좋아하겠죠?”

“그러게. 진짜 설렌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수플레들을 떠올리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빤히 바라보는 인물이 있었다.

“…….”

“왜 그래. 형?”

“아냐. 아무것도…….”

상대가 시선을 외면했다.

‘탈덕할 수도…’ 하는 중얼거림이 어렴풋하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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