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16)화 (316/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16화

작은 연습실.

말레이시아 여성 커버댄스 팀 ‘one hit’의 멤버들이 리더를 둘러싸고 있었다.

“온대? 진짜로 온대?”

“응.”

리더인 JJ가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씩 웃었다.

“뉴블랙이 온대.”

“와아아아악!”

연습실 안이 순식간에 축제 분위기로 달아올랐다.

‘진짜 뉴블랙이 온다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들떴다.

그들이 안무영상으로만 접했던 유명 K팝 가수가 여기에 온다니.

“안무도 가르쳐 준다고? 그게 진짜야?”

“응. 와서 안무도 봐주겠대. 보고 나서 팁 같은 걸 알려 준다고.”

“오오오오!”

10월 K팝 페스티벌 본선을 앞두고 한창 연습을 하던 그들에겐 천금 같은 기회였다.

멤버인 산드라가 열띤 얼굴로 말했다.

“이럴 때가 아니야. 당장 연습하자.”

“그렇지. 이대로는 부족해.”

곧바로 댄스 팀은 연습에 돌입했다.

자신들끼리 할 때만 해도 ‘괜찮은데?’ 하던 실력이었는데, 막상 원곡자들이 온다고 하니 턱 없이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그들이 벼락치기처럼 연습을 하고 있을 때.

뉴블랙의 현지 에이전트 측이 작은 촬영용 카메라와 함께 도착했다.

“뉴블랙이 오기 전에 간단하게 인터뷰를 진행하려고요.”

“네!”

삼각대에 세팅된 카메라 앞에 댄스팀의 멤버들이 앉아서 인터뷰에 응했다.

“뉴블랙에 대해서 잘 알고 있나요?”

“그럼요. 저희가 커버 댄스를 준비하고 있는 ‘Masquerade’의 곡의 원곡자이기도 하고.”

그들이 앞다투어 답했다.

“K팝을 좋아하면 모를 수가 없어요. 요즘 차트에 나인도 올라와 있잖아요.”

“난 앨범도 샀어요. 이따 사인 받을 거예요.”

“나는 내일 콘서트 가는데.”

티켓팅에 성공했다는 누군가의 말에 다들 부럽다는 시선을 보냈다. 리더인 JJ가 말했다.

“저번에 싱가포르에 갔다고 해서 되게 부러웠는데. 뉴블랙이 말레이시아에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맞아.”

“라이브 댓글에서 맨날 와 달라고 썼어요.”

“그거 너였냐?”

동남아의 K팝 팬들 사이에서 퍼진 인기를 보여 주듯 대답들이 이어지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가 진행됐다.

이윽고 마지막 질문이 나왔다.

“그럼 뉴블랙에서 혹시, 가장 좋아하는 멤버가 있나요?”

“음.”

댄스팀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3초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그들이 타이밍을 맞추듯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비주!”

인터뷰어가 ‘오’ 하며 물었다.

“비주인 이유가 있나요?”

그 질문에 저마다 비슷한 대답을 내어놓았다.

“춤을 잘 춰서 좋아요.”

“우리가 마스커레이드를 고른 것도 비주 직캠을 봤거든요. 그때 정말…….”

“와아- 했지.”

그들은 그때의 충격을 회상했다.

미튜브에 올라온 ‘2014 망고차트어워드 - 뉴블랙 비주 fancam’이라고 되어 있는 제목의 영상.

새빨간 조명 속에서 빠르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누군가의 춤을 본 순간 ‘이건 해야 된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상을 찾아봤는데 그것도 좋았어요. 무대에서 되게 무섭게 나왔는데.”

“현실은 완전 다른 성격이어서 좋아요.”

“맞아. 뉴블랙 멤버들을 다 그런 이유로 좋아해요.”

무대만 봤을 때는 상당히 불안하고 위태롭고, 서늘한 성격일 것 같았는데.

미튜브에 들어가서 검색하니 대만에서 길을 잃으며 ‘흐어엉’ 하는 누군가가 나오고 있었다.

멤버 중 하나가 말했다.

“춤을 추는 입장이라 비주가 제일 좋긴 한데, 솔직히 다 한 번씩 실물을 보고 싶어요.”

“다 보고 싶어. 다들 얼굴이 궁금해.”

“어떡해. 나 벌써부터 울 것 같아.”

이윽고 뉴블랙에게 보내는 한 마디 등을 촬영한 후에 인터뷰가 끝이 났다.

그리고 그로부터 30분 후.

“왔나?”

“온 거 같은데?”

그들이 재빠르게 옷매무새를 점검하고 기다리고 있을 때.

지하를 내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저벅저벅 들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문이 열렸다.

“Apa khabar(안녕하세요)?”

현지인 같은 발음으로 준비 된 인삿말에 잠시 ‘음?’ 하고 있을 때.

“흐어어어……!”

살포시 웃으며 들어오는 뉴블랙 리더의 모습에 그들 모두가 뻣뻣하게 몸이 굳어 버렸다.

이목구비가 어찌나 절묘하게 배치되어 있는지, 쇼핑몰에 전시된 TV 화질보다 선명했다.

그의 입이 부드럽게 호선을 그렸다.

‘뭐야. 뭐야.’

손을 가볍게 흔드는 손짓 하나에 뭔가 사르르 녹아드는 기분을 느낄 때였다.

‘한국 사람들은 이 좋은 걸 보고 살았구나.’

‘눈 부셔!’

‘무슨 후광이…….’

착시현상처럼 너울거리는 후광에 그들이 감탄할 때.

우주가 ‘아’ 하며 매니저에게 뭐라고 부드럽게 말하자, 뒤따라오던 조명의 밝기가 낮춰졌다.

그리고 후광이 사라졌을 때.

“와아…….”

뒤따라오던 멤버들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넘기며 웃는 메인 댄서부터 발랄하게 웃는 뉴블랙의 막내까지.

연습실을 환하게 밝힌 미모에 감탄하던 ‘one hit’ 멤버들의 시선이 다시 우주에게 향했다.

“와아아아—”

감탄사만 나올 뿐이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멤버들의 미모를 본 후에도 여전히 감탄이 나오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척. 척.

병정 인형들처럼 리더의 뒤에 쭉 늘어선 멤버들이 뺨을 씰룩거렸다.

‘음? 뭐지.’

‘되게 뿌듯해 하는 거 같은데.’

‘자랑스러워하는구나.’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쭉 내미는 뉴블랙.

마치 어린 아이가 중학교 다니는 형을 자랑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   *   *

“둘 셋!”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우리가 꾸벅하며 인사하자 그들이 ‘와아아’ 하며 격한 박수로 답했다.

첫 인사만 한국어로 하고, 나머지 대화는 영어로 진행했다.

멤버 대부분이 음악 대학에 다니는 사람들이라서 영어에 친숙하다는 말을 들은 터였다.

“어흐흐흑!”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화는 시작하지 못했다.

우리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이들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어, 울지 마세요.”

“울지 마요. 계속 울면 같이 울 거예요.”

감정이 최대치를 넘었을 때 복받쳐서 나오는 울음이었다.

티슈를 건네주며 자상한 목소리로 달래주었는데 오히려 그것 때문에 더 대성통곡을 했다.

그렇게 울기를 5분.

겨우 울음이 진정되어서 토끼 눈처럼 충혈된 이들을 보며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 진정됐어요?”

“……네.”

쉰 목소리들이 답했다.

리혁이가 티슈를 뽑아서 건네주자 달달 떨리는 손이 받아 갔다. 그러곤 휴지를 조심히 접어서 의자에 올려놓았다.

“휴지는 왜…?”

“간직하려고요. 으흐흑!”

받은 휴지는 고이 모셔둔 채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는 댄스 팀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

짠하면서도 뭉클했다.

말레이시아는 처음으로 방문하는 건데 정말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창원에서 열리는 K팝 페스티벌 본선에 진출하셨다고 들었어요.”

“네.”

“일단 축하해요!”

요즘 말레이시아에서 유행한다는 곡에 축하한다는 영어 가사를 붙여서 불렀다.

거기에 개업 축하인형처럼 춤을 추자, 방금 전까지 울먹였던 이들의 입에서 큰 웃음이 나왔다.

우리가 웃으며 칭찬했다.

“안무도 마스커레이드라고 하지 않았어요? 엄청 어려운 안무인데. 그걸로 본선이면 정말 대단하네요.”

“어엇…….”

“다들 본업이 있을 텐데 엄청 열심히 연습하셨나 봐요오…오오, 또 울면 안 돼요!”

“어어어…….”

그간 열심히 하셨네요 하는 말에 또 우는 이들을 다급하게 말렸다.

비주가 화제를 돌렸다.

“일단 안무를 볼 수 있을까요?”

“네!”

“편하게 추면 돼요. 저희가 평가를 하러 온 것도 아니고, 몇 가지 팁을 알려드리려고 온 거니까요.”

비주가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다.

“편하게. 잘할 수 있죠?”

“네!”

우리가 연습실 한편으로 물러선 가운데 거울 앞에 선 다섯 멤버들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마스커레이드의 안무를 시작했다.

*   *   *

마지막 동작을 마쳤을 때.

‘one hit’의 멤버들의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살 떨린다는 게 이런 거구나.’

‘본선보다 이게 더 떨린다.’

그들이 춤을 출 때마다 연습실 벽에 찰싹 붙어서 매미처럼 지켜보던 뉴블랙이었다.

입은 생글생글 웃고 있지만 눈은 유심히 그들의 안무를 살피는.

안무가 끝나자 뉴블랙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우와아아아!”

“너무 잘한다. 진짜.”

“춤추느라 힘들죠? 고생했어요.”

땀을 닦을 티슈를 건네주면서 잘했다고 다독이는 뉴블랙이었다.

이내 나올 평가를 기다리며 긴장할 때.

“정말 잘했어요.”

비주가 감동했다는 듯 물개박수를 쳤다.

“마스커레이드의 안무 난이도는 정말 까다롭거든요. 쉴 새 없이 움직였다가 멈췄다를 반복해야 돼서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하고.”

“네. 맞아요.”

“여러모로 근력이 많이 요구돼서 저희가 힘들어 했던 곡인데, 순간순간 파워풀하게 힘을 잘 내주셔서 정말 느낌이 잘 살았어요. 특히 공중에서 슥 돌면서 진입하는 파트요.”

조목조목 어느 부분이 좋았는지 집어주는 메인 댄서의 감상에 그들이 뭉클한 기분을 느꼈다.

‘좋다.’

‘원곡자가 잘했다고 해줬어…….’

‘연습한 보람이 있네.’

이어서 다른 뉴블랙 멤버들도 비주에게 동의한다고 말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오늘의 간단한 안무 코칭에 대해서는 비주에게 위임을 한 듯했다.

“그럼 몇 가지 팁을 알려드리기 전에요.”

우아한 걸음으로 다가온 메인 댄서가 스트레칭을 했다.

180도로 다리를 쭉쭉 뻗는 유연성에 감탄하던 그들에게 질문이 날아왔다.

“마스커레이드가 어떤 노래라고 생각하세요?”

“으음.”

“그걸 알아야 전달이 더 쉽거든요.”

그들이 고민을 하다가 답했다.

“매혹? 유혹?”

“가면무도회에서 나오는……?”

“약간 불안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 말에 비주가 미소를 지었다.

“다 맞아요.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포인트가 있어요.”

“포인트?”

“네. 물론 제가 아는 뛰어난 작곡가 분이 ‘리스너가 뭘 느끼든 다 정답이다’라고 하긴 했는데요.”

그 말에 물을 마시던 우주가 콜록거리고 다른 멤버들이 키득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눈을 반짝이던 비주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안무에 있어서는 본래 노래에서 의도한 바가 뭔지가 중요하거든요.”

“오오…….”

“마스커레이드에서는 바로 ‘끌림’이에요.”

“끌림이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끌림이라고 할까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다니는 사회에서 유일하게 가면을 안 쓴 사람 둘이 눈을 마주친 그런 이끌림……?”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될락 말락할 때.

비주가 어떤 느낌인지 보여 주겠다며 리드댄서인 우주를 부르고는 손을 맞댔다.

“이런 느낌이에요.”

비주가 한쪽으로 빙글 돌면서 안무를 추자, 옆에 있던 우주가 붙어 있다가 살짝 거리를 벌렸다.

동시에 그들도 입을 멍하니 벌렸다.

“와아…….”

서로의 몸이 하나의 실로 연결된 듯이 움직였다.

다른 멤버들도 재미있겠다는 얼굴로 끼어들어서 마스커레이드의 안무를 재현했다.

마치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비주가 말했던 ‘끌림’ 이라는 단어가 뭔지 납득이 되는 순간이었다.

“자, 그럼 이제 몇 가지 팁을 알려드릴 텐데요.”

멤버 하나하나에게 아까 어느 파트의 동작이 어떠했는데, 이런 식으로 바꿔보는 건 어떠냐는 조언이 이어졌다.

딱 한 번 본 것임에도 머릿속에 담긴 녹화 비디오를 보며 조언하듯이.

심지어 댄스 팀 멤버들의 동작을 고스란히 재현해서 보여 주는 식이었다.

“자, 그럼 파트 하나씩 저희랑 같이 해 볼까요?”

레슨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실수가 잦은 파트도 ‘그 부분 어렵죠?’ 하면서 공감한다는 듯 가르쳐 주는 뉴블랙 덕분이었다.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저도 그 부분을 가끔 틀리거든요.”

“아닌데. 저 사람 많이 틀려요~!”

투닥대는 막내 라인도 있고.

옆에 와서 석상처럼 근엄한 표정으로 스윽 시범을 보여주고는 씩 웃으며 엄지를 드는 중현도 있었다.

거기에 기술적으로 딱딱 어려운 부분을 짚어 주는 우주까지.

‘신기하다.’

‘보통 춤 잘 추는 사람들은 이런 거 잘 모르는데.’

‘콕 집어서 알려주네.’

대개 춤에 재능 넘치는 사람들이 ‘이걸 왜 못하지?’ 하는데 반해서, 뉴블랙에서 리드 댄서를 차지할 만큼 재능이 충만한데도 일반인들의 고충을 헤아려주는 뉴블랙 리더였다.

자상한 목소리로 ‘이렇게 하면 더 완벽해질 거예요’ 격려하는 뉴블랙 멤버들에게 그들이 고마움을 느낄 때.

“으음.”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이 지적 받은 파트를 한 후에 비주가 사근사근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여기서 이렇게 한 이유가 있어요?”

“어…….”

“아. 뭐라고 하는 게 아니구요.”

그가 꺄르르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정말 궁금해서 여쭤본 거예요. 그렇게 한 이유가 있나 해서.”

“그, 그게…….”

분명 상냥한 목소리인데 어딘가 무서웠다.

춤에 대해 뭔가 막 이글거리는 눈빛이라고 할까.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

‘이 기시감은 뭐지.’

굉장히 익숙한 느낌이었다.

얼굴은 늘 안무 영상에서 접하던 그 비주얼인데, 굉장히 친숙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조곤조곤 말하는데 무섭게 느껴지는.

곰곰이 생각하던 이들이 이윽고 동시에 눈을 크게 떴다.

“……!”

찌릿- 하며 머릿속으로 뭔가 스쳐가는 감각과 함께 비주의 얼굴 위로 다른 사람들의 얼굴이 겹쳐졌다.

‘교, 교수님?’

‘레슨 선생님 얼굴이 왜 저기서 보이지.’

음악대학에 다니는 이들에게 굉장히 친숙한 느낌이었다.

마치 그들이 접하던 교수님처럼 ‘여길 왜 이렇게 했을까~?’ 하는 모습에 침을 꿀꺽 삼켰다.

저도 모르게 ‘네, 선생님’하고 답할 뻔했다.

“자, 다 같이 재미있게 해 볼까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우리 같이 파트 연습해 봐요! 흐하핫!”

“너무 재미있겠다!”

마치 교수님과 그를 따르는 대학원생들처럼 ‘꺄르륵’ 하면서 그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뉴블랙이었다.

그리고.

“헉, 허억…….”

“너무 재미있죠? 그럼 이제 이걸 연결해서 해 볼까요?”

“이걸 연결하라고요?”

“네!”

뉴블랙이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하나도 어렵지 않아요. 저희랑 같이 하면 더 쉽게 느껴질 거예요.”

“…….”

이제 몸이 좀 풀렸다는 듯 재미있어 하는 모습에 그들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얼룩말끼리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거대한 코끼리 떼가 쿵쿵 하며 다가와 ‘놀자아아아’ 하는 것 같았다.

멤버 중 하나인 대니가 침을 삼켰다.

“그, 그런데 바쁜 거 아닌가요.”

“네?”

“말레이시아에서 스케줄이 바쁠 텐데.”

“아, 다른 스케줄도 있긴 한데…….”

막내인 지호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저희가 여러분과 시간을 오래 보내고 싶어서, 일부러 시간을 더 할애했어요!”

그들의 동공이 흔들렸다.

“어, 얼마나?”

“두 시간 정도?”

“…….”

다른 때였다면 ‘우리를 만나는데 두 시간이나!’ 하며 폭풍오열을 하며 감동했겠지만 지금은 간담이 서늘할 뿐.

물론 싫은 건 아니었다.

꿈에서도 만나고 싶었던 이들과 한 공간에서 같이 숨을 쉴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었다.

게다가 코칭을 해줄 때마다 동작이 한결 쉬워졌고.

그런데…….

‘집에 안 가네…….’

최애를 만나서 행복한데, 그 최애가 집에 갈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그것도 같이 연습하기 위해서.

“어흐흑!”

“할 수 있다! 꺄르륵!”

“아으으!”

“재미있다! 화이팅!”

누구보다 진심으로 그들에게 더 좋은 안무를 알려주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

자꾸만 실력이 느는 게 보이는 괴로움.

그리고 어딘가 모를 공포심 사이에서 5인조 수플레가 갈대처럼 서글픈 얼굴로 비척비척 흔들렸다.

“꺄르륵!”

그리고 점점 안무 연습이 이어질수록 ‘one hit’ 멤버들의 눈에 독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이거 성공하면 끝난다니까 꼭 해내고 만다.’

‘내가 더러워서 하고 만다.’

‘손동작 실수 절대 안 해.’

본래 취미로 짧은 시간 동안 준비했던 까닭에, 본선에서 최약체로 꼽혔던 ‘one hit’가 대회의 다크호스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   *   *

@thenewblack.official

(커버 댄스팀 ‘one hit’의 멤버들이 특수부대원처럼 독기 어린 눈으로 서 있고, 그 뒤에 뉴블랙이 교관처럼 껄껄 웃는 사진.)

말레이시아에서의 행복한 시간! 너무너무 재미있었어요.

*   *   *

국내 최대의 아이돌 커뮤니티.

그곳의 베스트 게시판.

[지금 예체능 덕후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는 아이돌 (feat. 뉴블랙)]

(미튜브 영상 링크.)

3분 46초부터 보면 됨. 자막 있음.

이번에 뉴블랙이 해외투어 방문한 말레이시아에서 커버 댄스팀한테 안무 노하우 전수하는 내용이야ㅋㅋㅋ

그런데 영상에 나오는 비주 대사가 예체능인들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중

-아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듣기만 해도 괴롭다 저거

-여기 이렇게 한 이유가 있어?? ㅋㅋㅋㅋ이거 진짜

-‘거기에 블랙을 찍은 이유가 있어?’

-듣기만해도 트라우마 온다

-낯선 아이돌에게서 익숙한 향기가 느껴진다..

-심지어 상냥해

-연결해서 해볼게까지 진짜 대환장ㅋㅋㅋㅋㅋㅋ

-얘 귀엽다 근데

-자기들딴에는 최대한 배려한게 보여서 웃겨

-영상 왤케 웃기냐ㅅㅂㅋㅋㅋㅋ 댄서팀 표정변화 봐

-초반에 순둥했다가 중간에 눈 풀렸다가 마지막에 독기 차는 거 ㄹㅇ 웃김

-미튜브 원본 댓글에서 외국 애들도 영어로 괴로워하는 거 보면 사람 사는거 다 똑같나봄ㅋㅋㅋㅋ

-근데 실력 향상되는 거 보고 감탄함

-ㅇㅇ 진짜 딱딱 찝어주는데 초반 안무랑 후반부 안무 보면 아예 춤선이 다른 사람 같음

-저 정도면 우승후보각인 거 같은데

-역시 레몬 엔터야 사람 개량하는 거 참 잘해

-근데 저 사람들이 진짜로 대회에서 우승하면 그거 대박 아님??ㅋㅋㅋ

-에이ㅋㅋㅋㅋㅋㅋㅋ

*   *   *

해외 투어의 첫 번째 주는 깔끔하게 마무리가 됐다.

말레이시아에서 쇼핑몰 팬사인회와 라디오 방송 출연 등을 하고, 이튿날에는 콘서트를 진행했다.

어둠 속에서 달봉이들이 흔들릴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기도 하고.

“감사합니다!”

마지막 곡인 불꽃놀이를 부를 때 떼창으로 화답해 준 이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국기를 배경으로 다 같이 기념사진도 찍고.

다음 날에는 곧바로 싱가포르 콘서트를 진행했다.

그렇게 바쁘게 돌아가던 스케줄을 마친 우리는 다시 한국으로 입국했다.

바로 ‘하승주의 뮤직카페’를 녹화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반드시.”

PBS 방송국으로 향하는 동안 다 같이 손을 얹으며 결연히 다짐했다.

“이미지를 변신하고 돌아올 것이다.”

끄덕.

굳게 다짐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고, 매니저 형들이 ‘그래, 힘내라’ 하며 주먹을 쥐어줄 때.

“엇.”

손목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불현듯 눈에 띄었다.

5시 25분.

다 같이 눈을 마주치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비주 시~”

“비주 시~”

비주가 양 뺨에 손을 올리며 좋아하는 가운데, 매니저들이 근심 어린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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