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17)화 (317/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17화

PBS 공개홀.

큐시트를 뒤적거리던 음악 감독이 마이크를 들었다.

-뉴블랙. 마무리 리허설 한 번 갈게요.

“예!”

의욕 가득한 대답과 함께 뉴블랙 멤버들이 무대 위에 섰다.

곧이어 시작된 리허설.

그들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무대 아래서 작가들이 수첩을 들고 있었다.

카메라에 대한 시선 처리라든가. 방송 녹화에 들어가기 전에 보완해야 할 점을 적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

이 자리에서 지금 펜을 움직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작가들이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자기는 뭐 적었어?”

“아뇨. 딱히 피드백할 게 없는 거 같아서…….”

“나도 그래. 뭐 딱 집을 만한 게 없네.”

전혀 흠 잡을 것 없는 무대에 누군가 말했다.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되게 이것저것 지적했던 거 같은데. 그때가 작년 봄이었나?”

“진짜 쑥쑥 컸네.”

“시골 강아지 같지 않아요? 설에 애기 백구였는데 추석에 가면 어른이 되어 있더라구요.”

우스갯소리에 작가들이 웃었다.

어쨌거나 시선 처리부터 무대 매너까지 완벽한 보이그룹 덕에 그들의 일은 한결 수월해져 있었다.

“진짜 잘하네요. 근데.”

객석과 카메라를 향해 부드럽게 시선 처리를 하면서 미소를 짓는 리혁이 눈에 들어왔다.

메인작가가 말했다.

“얘들 콘서트 해서 그럴걸? 아이돌 애들 단독 콘서트 한 번 하고 나면 무대 실력이 확 늘더라.”

“명곡단 때부터 잘하기로 유명하긴 했잖아요.”

“사실 처음 나왔을 때부터 얘네는 잘했어요. 지금 와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카메라를 향해 능청맞게 검지로 잔망을 부리는 막내의 모습과 작년의 기억이 겹쳤다.

잘 된 다음에 그럴 줄 알았다, 하는 게 아니라 정말 그때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얘네는 뜬다.’

매주 난다 긴다하는 실력파 가수들을 접하다 보면 퍼포먼스에 대해서 보는 눈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까닭에 ‘저 팀 뭔가 범상치 않다’고 생각하던 팀은 언젠가 꼭 떠서 돌아오곤 했다.

뉴블랙이 바로 그중 하나였다.

“근데 이렇게 빨리 뜰 줄은 몰랐어요. 아까 오면서 봤어요? 밖에 얘네 팬들 엄청 대기 타고 있던데.”

“난 또 다른 프로에서 TNT라도 녹화 있는 줄 알았지. 그게 얘네 팬들이었어?”

“네.”

“대단하네…….”

그들이 혀를 내둘렀다.

병아리를 보면서 ‘다음에는 얘가 닭이 되어 있겠지?’ 하고 있었는데 큼지막한 타조가 ‘하이’ 하고 돌아온 느낌이었다.

무지막지한 성장세였다.

거기다가 최근에는 ‘Thousand Dreams’라는 뮤지컬 영화 OST로 큰 화제를 일으키기까지.

-다음 곡도 한 번 더 가볼게요. 천 개의 꿈.

“네!”

뉴블랙이 노스탤지어의 OST를 리허설하는 동안 작가들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좋다.”

공개홀을 울리는 우주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고막이 힐링되는 기분이었다.

“하 MC님 좀 봐요. 눈 감고 있어요.”

객석에 앉아 있는 뿔테 안경의 남자가 눈을 감고 있었다.

무대에 있어서 깐깐하기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하승주가 눈을 감고 고개를 까딱였다.

입가에는 누가 봐도 대만족인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노래 이거 엄청 좋다. 영화도 재미있으려나?”

“친구가 보고 왔는데 대박이래요. 꼭 보라고. 저 시간 나면 주말에 보러 가려구요.”

“표도 별로 없던데. 입소문 타서.”

곧 300만을 찍을 거라는 유명 뮤지컬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 후.

서로를 향해 노래를 부르는 비주와 중현, 그리고 뉴블랙의 멤버들을 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뭔가 거리감이 확 드네.’

외적인 성장세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한결 더 올라온 실력 때문일까.

이번 사전 인터뷰 때만 해도 귀엽게만 보이던 뉴블랙 멤버들에게서 왠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질 때.

“고생하셨습니다!”

차분하게 무대를 내려온 5인조가 진지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딘가 심각한 분위기.

멤버들이 리더의 얼굴을 응시했다.

뭔가 무대에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라도 생긴 건가 하고 추측할 때, 우주가 심호흡을 했다.

그러곤 주머니에서 빠르게 손을 뺐다.

“초콜렛 띱!”

“띱!”

“띠입!”

작가들이 눈을 깜빡거렸다.

초콜릿을 토옥, 토옥 끊어서 건네주는 우주에게 리혁이 논리적인 말투로 말했다.

“띱의 유래를 알려줄 테니까 나도 좀 줘요.”

“이미 알아여~”

“리혁이는 맨 마지막에 받아.”

“흐하핫!”

그러곤 ‘작가님들한테 가서 피드백 받자~’ 하며 발랄하게 걸어오는 뉴블랙 멤버들이었다.

매니저에게 어떤 상자를 건네받은 우주가 밀무역을 하는 상인처럼 작가들에게 소곤거렸다.

“혹시 당 충전을 원하시는 분 계시나요.”

작가들이 웃음을 터뜨리며 다 같이 손을 들었다.

“이거 드셔 보세요. 말레이시아에서 사 온 건데.”

“어머, 고마워.”

“보시면 알겠지만 여기 표면에 쌍둥이 빌딩도 새겨져 있어요. 신기하죠?”

이내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며 신이 난 모습에 작가들이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여전히 한결 같은 뉴블랙이었다.

*   *   *

오랜만에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하니 기분이 좋았다.

“이야! 뉴블랙 핫하다~ 핫해!”

“핫해~ 핫해!”

우리 대기실에 놀러온 개그맨 김철과 흥겹게 춤을 추며 어울려 놀았다.

PBS 명곡단 때 사전 MC로 활약한 분이었는데 그 당시 녹화를 하면서 꽤 친해진 터였다.

다채로운 농담으로 우리를 웃기던 김철이 사인지를 내밀었다.

“우리 인기 아이돌들, 사인 좀 부탁합시다.”

“네!”

종이에 둘러 모인 우리가 마커펜을 들었다.

“우주 너는 우주선 사인이 나날이 발전하네. 내년 되면 로켓 발사 기지도 세우겠다, 야.”

“그죠? 이젠 우주선 그리는데 3초예요.”

“3초?”

“보실래요.”

진짜로 3초 만에 우주선 그림을 완성하자 상대가 리스펙 한다는 표정으로 엄지를 들었다.

사인지를 건네받은 김철이 주먹을 내밀며 유쾌하게 웃었다.

“자, 그럼 오늘도 대박 나시고! 화이팅!”

“감사합니다!”

“나중에 또 봐요~”

그가 사인지를 챙겨들고 나섰다.

사전 MC로서 녹화 전에 방청객들의 흥을 돋워야 하는데, 퀴즈 경품으로 우리 사인을 쓰려는 모양이었다.

6시 40분인 시계를 보던 막내가 말했다.

“이제 방청객들 입장 다 끝났겠네여.”

“응.”

고개를 끄덕이며 TV에 시선을 돌렸다.

예전에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몰랐는데, 녹화 시간대가 비슷한 경연 프로에 한 달 가까이 출연하니 대강의 타임라인이 그려졌다.

이 시간에는 제작진이 뭘 하고, 지금 현장은 대충 이러겠구나 하는.

-자, 아주 희귀하게 구한 희귀템입니다. 희귀템.

약장수처럼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야’ 하면서 흥을 돋우는 사전 MC의 모습이 방송국 TV에 나왔다.

현장을 담는 카메라의 중계였다.

-초 특급 한정판, 뉴블랙 사인입니다! 이게 왜 한정판이냐. 여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비주가 감탄하면서 말했다.

“형, 저 되게 우리 사인 사고 싶어졌어요.”

“나도 그래.”

“내가 쓴 건데 왜 내가 사고 싶지.”

말솜씨에 홀리다가 나도 모르게 홈쇼핑처럼 ‘재고 있나요?’ 하며 전화를 걸 뻔했다.

그 동안 옆방에서 달칵거리는 소리가 났다.

저벅저벅 하는 발걸음 소리를 들어보니, 조유리 밴드가 녹화를 위해 공개홀로 이동하는 듯했다.

이윽고 본 녹화가 시작되고.

-오늘 음악인 특집에 걸맞는 분들입니다.

MC인 하승주가 소개를 했다.

-최근 음원 차트계의 강자로 새롭게 떠오른 밴드죠. 예전에 홍대에서도 이분들 모르면 간첩이다, 하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뮤직 카페에는 두 번째 방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조유리 밴드!’ 하는 멘트와 함께 관객들이 박수를 쳤다.

TV 속에서 조유리 밴드의 공연이 이어졌다.

“오, 베이스 소리… 노래 좋다.”

“명곡단 때도 그랬는데, 저분들 여전히 잘하시네여.”

“이렇게 보니까 되게 오랜만 같네요.”

유명 인디밴드답게 여전히 대단한 실력이었다.

명곡단 때, 첫 인상이 안 좋아서 껄끄러운 사이였지만 이제는 딱히 신경이 안 쓰이기도 하고.

오히려 저기가 더 껄끄러워했다.

아까 출연진들에게 인사를 하러 들렀는데, 굉장히 어색하게 웃으면서 우리 인사를 받았던 이들이었다.

-와아아아!

현장 호응도 좋았다.

우리가 나온 후에 명곡단 2기에서 여러 활약으로 인기가 많아졌다고 하던데, 확실히 그런 듯했다.

TV 속에서 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웃었다.

“오백 원~ 오백 원~”

중간중간 목을 풀기도 하고, 생수로 목을 계속해서 적셨다.

녹화 시간은 3시간가량.

그리고 오늘의 출연진은 우리와 조유리 밴드, 그리고 발라드 가수인 더 문이었다.

기계적으로 계산해도 1시간씩 정도.

그런 까닭에 최소 9시까지 두 시간 동안 대기를 해야 하는 터였다.

눈으로는 TV를 보면서 머릿속으로 음악 프로에서 해야 될 말, 하면 좋은 말 등을 떠올렸다.

“화음 잘 맞춰요. 내가 신호 줄 테니까.”

“알았어.”

“그리고, 이 파트에서 형들 미세하게 살짝 빠르게 부르는데. 몸을 빠르게 움직인다고 노래도 빨라지면 안 돼요.”

중간중간 우리 메인보컬로부터 음처리에 대해 신신당부를 듣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을 때우는 동안.

“뉴블랙 분들!”

발라드 가수인 ‘더 문’의 토크가 슬슬 끝나갈 무렵, FD가 우리를 찾아와서 불렀다.

“준비할게요!”

“네!”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번쩍 일어났다.

매니저 형들과 백 스테이지로 이동하면서 우리끼리 손을 모았다.

“No more 흑역사.”

“오늘은 웃긴 거 금지예여. 금지.”

“멋짐 뿜뿜쓰.”

다시 한 번 굳게 다짐을 했지만 이번에는 매니저 형들이 웃으며 만류했다.

“그냥 하고 와.”

“…….”

“우리가 봤을 때는 이미 텄어.”

“그런 말하지 마요. 형.”

내가 고개를 저으며 단언했다.

“오늘은 웃음기 쫙 빼고 할 거예요.”

*   *   *

「하승주의 뮤직카페 - 335회 방영분」

발라드 가수 더 문의 무대가 끝난 후.

신사처럼 멋들어지게 수트를 차려 입은 중년 MC, 하승주가 마이크를 쥔다.

[다음 모셔볼 분은 저희가 이번에 정말 어렵게 섭외를 했어요. 요즘에 스케줄 바쁘기로 유명하거든요.]

방청석으로 카메라가 돌아간다.

‘누구지?’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과 자기들끼리 소곤거리는 커플의 모습이 스쳐가고.

[이 그룹에 대해 말하자면 정말 멤버 하나하나가 개성이 뚜렷한 팀이에요. 비주얼도 유명하지만 그 이상의 실력을 보유한 ‘남자 아이돌’인데… 나왔다 하면 음원 차트를 휩쓰는 분들이죠.]

누군지 알았다는 듯 입에 양손을 모으고 환호하는 젊은 관객들의 모습이 나온 후.

중년 관객들이 ‘누구? 아’ 하며 자녀의 귓속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손목시계를 바라보던 하승주가 웃으며 물었다.

[지금이 몇 시죠, 여러분?]

[9시!]

[9시에 딱 듣기 좋은 노래죠? 뉴블랙의 ‘나인’ 무대 감상하시겠습니다!]

환호와 박수가 쏟아지는 가운데, 무대로 포커스가 옮겨갔다.

*   *   *

암전된 무대가 밝아 오르고.

관객들이 손뼉을 치며 환호를 보냈다.

“와아아아아-!”

무대에 와인색 조명이 쏟아지고.

캐주얼 정장을 단정하게 입은 뉴블랙이 피아노 근처에 앉아 있었다.

바텐더처럼 정장 조끼를 걸친 메인보컬이 가운데 있고, 멤버들이 그 옆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피아노 앞에 앉은 리더.

쭉 뻗어 나오는 길쭉하고 새하얀 손에 관객들의 시선이 모였다.

‘뭐지?’

젊은 관객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분명 첫 무대가 ‘Nine’이라고 들었는데, 그들이 상상하고 있던 것과는 영 다른 무대 분위기였다.

이윽고 느릿하고 잔잔한 피아노 연주가 시작됐다.

‘음?’

비 오는 날 재즈 카페에서 나올 듯한 연주였다.

건반 위에서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나인’의 멜로디가 감성 가득한 재즈로 바뀌어 나왔다.

바로 그 순간.

귀 뒤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던 메인보컬이 눈을 감고 ‘워어어’ 하며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관객들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좋다.’

지금 시간에 딱 듣기 좋은 멜로디.

피아노 연주가 심화되는 동안, 멤버들이 하나둘 화음을 보탰다.

관객들이 박자에 맞춰 손뼉을 치는 동안 메인보컬의 목소리가 더욱 깊어져갔다.

그리고.

“오…….”

성량을 높여가며 고음으로 올라가는 애드립에 어느 방청객이 ‘오’ 하며 입 모양을 그릴 때.

착.

우주가 그랜드 피아노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무대 분위기가 180도로 바뀌기 시작했다.

츠츠츠츠-

드럼 소리에 이어서 흘러나오는 유쾌한 재즈 멜로디.

공개홀을 감돌던 그간의 긴장감이 싹 사라지고, 경쾌한 박수 소리가 그 자리를 채웠다.

스탠딩 마이크에서 마이크를 뺀 우주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다른 멤버들도 환히 웃으며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뉴블랙입니다!

라이브 밴드가 ‘Nine’의 재즈 버전을 연주하는 동안 멤버들이 머리 위로 손뼉을 치며 흥을 돋웠다.

-자! 다 같이!

뉴블랙의 서브보컬이 눈을 찡긋하고.

중년 관객들이 엄마 미소로 박수를 치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그 동안 젊은 관객들은 신기한 기분을 느꼈다.

‘희한하네. 느낌은 다른데…….’

힙합 색이 강했던 곡이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변신했는데.

여전히 Nine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하다는 듯 귀를 기울이는 방청객들의 얼굴이 카메라에 잡히는 동안.

사이드에 빠져서 뉴블랙의 무대를 감상하던 인물이 미소를 지었다.

‘편곡 잘했네.’

MC인 하승주가 가운데서 마이크를 들고 관객들에게 손짓하는 우주를 바라보았다.

‘영리하게 편곡했어.’

대부분의 방청객이 젊은 층이긴 하지만, 중간중간 섞여 있는 중년층도 심심치 않게 많았다.

그런 이들에게 Nine처럼 전자음 색이 강한 노래를 했다간 큰 호응을 받기 힘들 터였다.

손뼉은 쳐주지만 ‘이건 뭐지’ 하는 느낌으로.

거기다 젊은 방청객들도 프로그램 특성상 아이돌 노래를 선호하는 취향은 아닐 터였다.

대개는 그런 까닭에 잔잔한 노래를 들고 오거나 커버 곡을 하는데.

1회성 출연을 위해 타이틀곡을 아예 다른 버전으로 편곡해 온 아이돌 그룹의 정성에 미소가 나왔다.

‘근데 괜찮으려나.’

노래를 들을 수록 의외의 인물들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편곡의 얼개를 굉장히 잘 짜놓긴 했지만, 저걸 혼자서 다 할 수는 없을 터였다.

실무적인 부분에 대해선 주변의 도움을 구했을 텐데.

하승주가 중얼거렸다.

“저거 사람 꽤나 갈아 넣었겠는데…….”

지금쯤 쓰러져 있을 레몬 엔터의 프로듀싱 팀을 향해 그가 잠시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   *   *

“뮤직 카페에 온 걸 환영해요. 우리 뉴블랙.”

“감사합니다.”

청중을 향해 ‘둘셋’ 하며 인사말을 건네자 공개홀을 쩌렁쩌렁 울리는 박수가 돌아왔다.

뿔테 안경을 쓴 MC가 객석을 보며 말했다.

“정말 인기가 대단하네요. 방금도 정말 대단한 무대였어요.”

“아유, 아닙니다.”

“‘나인’이라고 해서 저도 일렉트로 풍을 기대하고 있었거든요. 재즈가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능청맞게 놀라는 MC에게 내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저희가 오늘 뮤직카페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무대예요.”

“편곡을 직접 하신 거라고 들었는데.”

“네, 맞아요.”

‘오오’ 하며 감탄해 주는 관객들의 소리에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하승주가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들이 보시기에는 잘생긴 한 무리의 청년들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뉴블랙이 음악적으로도 굉장히 할 이야기가 많은 그룹이거든요.”

“맞아여!”

“저희 음악적으로 할 이야기가 막 이만해요!”

동생들이 ‘엄청 큼’ 하며 손을 크게 벌리자 사람들이 웃었다. MC가 우리에게 물었다.

“먼저 그 전에 소감을 물어야 할 텐데. 두 번째로 나오니까 어떠세요?”

“어, 많이 떨려요.”

내가 마이크를 잡고 관객들을 바라보았다.

“저희가 처음 나왔을 때가 데뷔 전이었거든요.”

“그죠.”

“그때 기억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오늘따라 머리도 백짓장이 된 거 같고. 할 말도 잘 생각이 안 나네요.”

“그래서 머리가 지금 잿빛인 건가요?”

“네. 좀 더 하얘졌죠?”

내가 회백색 머리카락을 톡톡 두드리자 방청객들이 크게 웃었다.

자신의 드립을 재치 있게 받아주어서 그런지, MC의 두 눈동자에서 호의와 만족감이 읽혔다.

내가 말을 이었다.

“네, 아무튼 정말 꼭 다시 나오고 싶었던 방송인 만큼 저희가 정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네. 그래 보이네요. 기타도 들고 나오고.”

“맞습니다.”

내가 의자 뒤에 있는 기타 케이스를 흘깃 보며 말했다.

“저희가 그간 ‘너무 친근하다’, ‘노래 부를 때 웃긴다’ 하는 말을 들어왔는데 오늘 제대로 이미지 변신을 하고 가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방청객들의 웃음과 함께 하승주가 부드럽게 웃으며 타박했다.

“아니, 이미지 변신을 하고 갈 거라고 예고하는 그룹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그래서 저희가 한 번 최초가 되어 보려고…….”

매니저 형들이 무대 아래에서 엄지를 들어 보이는 동안 동생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 곁에서 푸근한 돌덩이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중현이 때문에 방청객들이 웃음을 흘린 것도 잠시.

잠깐의 스몰토크를 끝내고, 첫 무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첫 번째 무대부터 정말 강렬했는데요. 재즈 풍이었죠?”

“네. 맞아요.”

“편곡도 편곡이지만 멤버 분들의 보컬 솜씨가 정말 기가 막히더라고요. 특히 리혁 씨가 처음에 애드립으로 고음이 ‘어어어~’ 올라갈 때. 여러분들도 그랬죠?”

방청객들이 ‘네’ 하고 답했다.

한 명의 음악인으로서 너무 좋았다는 듯 그가 말했다.

“너무 파워풀하고 멋있더라고요. 그 보이스가.”

“어엇…….”

“칭찬에 부끄러워하는 건 여전히 똑같네요.”

우리가 수긍했다.

“칭찬에 정말 민감한 친구라서.”

“1급수에 사는 가재 같은 아이에요. 칭찬 한 방울만 떨어지면 견디지를 못해서…….”

“아, 아니에요. 그런 거.”

새빨간 얼굴이 답했다.

“조명이 뜨거워서 그래요. 저 칭찬 한 마디에 귀가 벌게지고, 얼굴이 벌게지는 사람 아니에요.”

“정말 잘 익은 홍시 같네요.”

“…….”

얼굴을 가리려고 리혁이가 콩벌레처럼 몸을 오므리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쯤에서 놀리는 것을 멈춘 하승주가 물었다.

“기왕 말 나온 김에 아까 그 파트 다시 들어볼 수 있을까요?”

“어떤 파트요?”

“허우워어어 하는 파트와 나인의 후렴구요.”

“네.”

“여러분, 박수로 응원해 주세요!”

살짝 민망한 얼굴로 일어나던 리혁이가 머리를 살짝 흔들었다.

그러곤 바로 감정을 잡고, 무반주로 부르기 시작했다.

정장 조끼 위로 머리카락이 조명에 반짝이고, 리혁이가 숨을 크게 부풀리고 있을 때.

“음?”

중현이가 내 옆에서 ‘어’ 하는 소리를 내며 리혁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리혁이가 아까 했던 ‘Nine’의 후렴을 부를 때.

파앙- 팡-

우리 메인보컬의 빠방한 복식호흡에 잠겨 있던 조끼 단추들이 핑! 핑! 하며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저게 터지네.

마치 수압을 이기지 못한 잠수함 문의 나사들이 폭발하는 듯한 광경이었다.

“…….”

리혁이가 바닥에 투둑투둑 떨어진 단추들을 보며 벙 찐 표정을 짓는 동안.

단추와 함께 공개홀도 폭발했다.

MC와 방청객들이 바닥에 데굴데굴 굴러떨어질 만큼 박장대소를 하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우리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시청률을 터뜨리려고 왔는데, 정작 터진 건 단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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