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19화
우리가 한 소절씩 부를 때마다 객석에서 웃음이 나왔다.
내가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고마워요
그 덕에 작곡해요
이 노래
그러곤 다음 소절을 리혁이에게 건넸다.
기억할게요
오늘의 벨소리
기대할게요
내일의 무음모드
에티켓 송이 되어 버린 노래에 공개홀이 웃음바다가 됐다.
건반을 연주하다 고개를 슥 돌리자, 깔깔 웃는 객석 한가운데서 해당 커플이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러곤 이내 자기들도 웃겼던지 마구 웃기 시작했다.
마이크를 든 비주가 허밍하듯 노래를 불렀다.
커플이신가요
가족이신가요
혹시 몰라 여쭤요
남자분이 ‘커플이요’ 하고 입모양으로 답했다.
그러자 우리 막내가 신이 나서 마이크를 들었다.
예쁜 사랑하세요 (예쁜 사랑-)
그리고 기억해요
세 글자 뉴.블.랙.
내가 건반을 스타카토처럼 톡톡 치자 동생들이 ‘뉴’, ‘블’, ‘랙’ 하며 화음을 넣었다.
그러곤 곡을 마무리하듯이 건반 위에 손가락을 촤르륵 하고는 연주를 마무리했다.
-와아아-!
우리가 일어서서 무대 인사처럼 하자 방청객들이 내는 환호의 데시벨이 더욱 올라갔다.
방금의 즉흥작곡에 대해 인정을 해 주는 분위기였다.
무대 한편에 물러서서 구경하고 있던 하승주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다가왔다.
“대박인데? 그렇죠. 여러분?”
-네!
“사실 방금 전까지 뉴블랙이 즉석에서 작곡을 한다고 했을 때도 여러분의 시선이 이랬거든요.”
하승주가 팔짱을 끼며 ‘흠’ 하는 시늉을 했다.
“어차피 방송이니 다 짜고 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신 분들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이건….”
그가 기쁜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간만에 명장면이 나왔네요.”
“감사합니다.”
“예상치 못한 순간이라서 너무 좋았어요. 벨소리로 즉흥작곡. 아까 그분들 어디 계시죠?”
해당 커플이 수줍은 얼굴로 손을 들었다.
MC가 씩 웃으며 말했다.
“두 분의 벨소리 덕에 뮤카에 간만에 재미있는 장면이 나왔네요. 이따 그냥 가지 마시고요. 이쪽에 오셔서 제작진들에게 선물 받아 가세요.”
둘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기뻐하는 동안, 사람들이 ‘오오’ 하며 박수를 쳐 주었다.
방청객 커플에게 배려를 한 MC가 내게 살짝 눈짓을 보냈다.
내가 바로 마이크를 들었다.
“맞아요. 이것도 인연인데, 이따가 저희랑 인증샷도 같이 찍어요.”
“덕분에 곡 만들었어여!”
“말레이시아에서 사 온 초콜릿 좀 드릴게요.”
양손을 흔들며 고마움을 표현하는 우리에게 해당 커플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표정을 보아하니 오늘 일을 꽤 오랫동안 추억으로 간직할 듯했다.
중현이가 그들에게 근엄한 손가락 하트를 보내자, 방청객들이 웃었다.
MC가 공개홀의 시계를 흘깃거리며 말했다.
“이제는 정말 뉴블랙을 보내 줄 시간이네요.”
“갈 때가 됐네요.”
우리가 동의하듯 말했다.
시도 때도 없이 웃겼던 우리 탓에 관객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우왕’ 하며 눈을 반짝이고 있었지만 상당히 늦은 시간이었다.
팔짱을 낀 중년 남자 한 분이 꾸벅꾸벅 조는 게 보였다.
“가기 전에 우주 씨가 대표로 소감 좀 말하고 갈까요?”
“오늘 이렇게 멋진 시간을 만들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내가 물었다.
“저희가 이미지 변신을 하려고 나왔거든요.”
“우주 씨. 그건 포기하세요.”
“…어떠신가요? 저희 이미지가 처음과는 좀 많이 달라졌죠?”
방청객들이 이구동성으로 ‘네!’ 하고 답했고.
백스테이지에 있는 매니저 형들은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동생들이 흐뭇하게 웃고, 나도 미소를 지었다.
“네. 오늘 목격하신 그 달라진 이미지, 주변 분들에게 많이 알려 주세요!”
“부탁해여!”
“정말 떨면서 나왔는데, 호응 많이 해 주셔서 감사해요.”
비주의 말에 와아아 하던 관객들이 멈칫하면서 ‘그게 떤 거라고?’ 하는 표정을 지었다.
MC도 안경을 슥슥 닦고는 다시 썼다.
호응해 줘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객석 중간중간 보이는 수플레들을 향해서도 웃음을 보였다.
‘고마워요.’
뜻이 전해지길 바라며 눈을 마주쳤다.
뉴블랙 슬로건을 든 팬들 말고도 일반인인 척하고 있던 이들이 움찔하며 눈을 크게 떴다.
처음엔 놀랐다가 이내 활짝 웃는 얼굴들에 뿌듯했다.
“자, 그럼 마지막 무대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네.”
내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요즘 90년대 노래들이 다시 유행하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마지막 곡으로 80년대와 90년대의 유행곡 메들리를 준비했습니다.”
“기대되네요.”
하승주가 관객들에게 ‘지금까지 뮤직카페였습니다’ 하는 인사를 보낸 후.
“감사합니다!”
우리의 인사와 함께 전주가 흘러나왔다.
신나는 색소폰 소리와 경쾌한 드럼 소리.
이 시간대에 가장 피곤할 연령대의 관객들을 고려한 선곡이었다.
현대적으로 편곡된 80년대 명곡의 멜로디에 꾸벅꾸벅 졸던 중년 남자 분의 눈이 번쩍 떠졌다.
짝- 짝-
리듬감 있는 박수 소리.
지금까지의 무대를 다소 담담한 표정으로 관람하던 중년 관객들이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맞춰 우리도 안무를 췄다.
객석을 향해 ‘up up’ 하는 손짓으로 흥을 돋우던 지호가 무대가 돌출된 쪽으로 걸어갔다.
네온이 불타는 거리-
밤 10시.
점멸하는 초록색 조명 속에서 방청객들이 신나는 함성으로 호응했다.
성공적인 마무리였다.
* * *
여의도 PBS 방송국.
쌀쌀한 가을밤의 날씨에 방청객들이 외투를 오므렸다.
“택시 부를 만한 데 있나?”
“야, 우리 버스 몇 번 타야 돼?”
“배고프다. 집 가서 치킨 먹을까?”
지도 어플을 들여다보며 미간을 찌푸리거나, 가로수 앞에 서서 지나가는 택시를 두리번거리는 사람들.
저마다 집으로 향하는 차량에 오른 후.
오늘 방청한 프로그램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 진짜 웃기지 않았어?”
“푸하하! 나 아직도 생각나. 그거 단추.”
“아까 벨소리 커플 끝나고 따로 불려 가던데. 사진 찍었겠지? 완전 계 탔네.”
지하철이든, 버스든, 택시든.
‘뮤직카페’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의 핸드폰에는 저마다 ‘뉴블랙’이 적힌 검색창이 떠 있었다.
‘신기하네.’
원래 알던 얼굴이었지만 프로필을 다시 보니 뭔가 느낌이 달랐다.
요즘 잘나가는 아이돌 느낌이었는데.
“아까 보고 나니까 좀 다르게 보인다.”
“그러게.”
“얘네 다 실물 대박이긴 하더라. 잘생겨서 떴나.”
“이런 얼굴로 이상한 짓을 해서 뜬 거 아닐까.”
“설득력 있네.”
“근데 진짜 다른 사람처럼 보이긴 하네.”
정확히 그게 무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상상했던 거랑 다르다고 해야 되나.”
“내 말이.”
뉴블랙이 음악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거나 실력을 보여 줄 때마다 굉장히 낯설게 느끼던 터였다.
특히 우주가 즉흥으로 벨소리를 가지고 작곡했던 부분은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순발력도 그렇고, 거기서 어떻게 그런 식으로 대처하지?’
‘진짜 작곡 제대로 하는구나.’
‘정말 음악을 하는 애들이구나’ 하며 살짝 바뀌었던 인식이 즉흥작곡으로 확 바뀌었다고 할까.
누가 듣기에도 좋았던 즉흥곡.
방송이 다 쇼겠거니 하며 냉소적으로 바라보던 이들도 이건 진짜구나 하는 생각을 품었다.
한편 연관 검색어로 떠오른 ‘선명주’를 눌러보고는 납득하는 이들도 있었다.
“엄청 유명했어.”
“진짜?”
“90년대에 미국 가서 피아노 치고 그랬다니까. 맨날 뉴스에 나오고. 어머, 그럼 아까 걔가 그 사람 아들이래?”
일부가 부모님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듣는 동안.
오늘 녹화 때 보았던 장면들을 떠올리는 방청객들의 머릿속에서 ‘뉴블랙’이란 덩어리가 변하기 시작했다.
아이돌 그룹과 싱어송라이터, 그리고 예능인 사이.
어느 쪽으로도 분류하기 힘든 제3의 카테고리로서 ‘뉴블랙’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세 꼭짓점 한 가운데 있는 듯한 위치였다.
뉴블랙 멤버들이 그것을 알았다면 ‘이미지 변신 성공!’ 하며 기뻐했겠지만…….
‘왜 단추만 떠오르지.’
‘협찬이라고 주웠던 애가 비주였나.’
‘단추 미사일…….’
가장 임팩트가 있던 것은 다름 아닌 단추였다.
그와 더불어 오늘 목격한 온갖 웃음 폭탄들이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했다.
‘……굳이 분류하자면 예능인에 가깝나.’
‘아이돌’이란 단어에서 ‘돌’이 맨 앞으로 나오며 어순이 바뀔락 말락하고 있었다.
이래저래 뭐라고 분류해야 될지 모르겠는 보이그룹.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오늘 진짜 재미있었어.”
당첨되어서 별 생각 없이 온 사람들도 진심으로 재미있게 봤다는 것이었다.
야심한 밤.
곳곳의 손가락들이 뉴블랙에 관한 기사나 동영상의 조회수를 올려 주고 있었다.
* * *
뮤직카페 녹화 다음 날.
“예이!”
우리에게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얘들아아아아!”
“피디님드으으으을!”
“1위다아아!”
우리와 얼싸안고 방방 뛰는 프로듀싱팀 PD들의 손에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
망고 실시간 차트 창.
지금 우리가 핸드폰으로 보고 있던 것과 동일한 화면이었다.
1위. 뉴블랙 - Thousand Dreams (영화 ‘노스탤지어’ OST)
2위에 오른 Falling Stars와 함께 실시간 차트 100 안에 진입한 두 개의 OST였다.
지금은 수플레들 덕에 순위가 좋은 것이라 아마 시간이 지나면 Falling Stars가 더 위로 올라올 터였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곡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Thousand Dreams’가 엄청나게 밀리는 건 아니었다.
약간의 차이 정도.
거기다 노스탤지어가 전 세계적으로 흥행을 하는 덕분에 해외 성적에 대한 예상 추이도 좋았다.
“국내에서 400만도 금방 찍을 거라면서? 해외에서 인기가 장난 아니라고 하던데.”
“네. 맞아요.”
내가 웃으며 답했다.
“얼마 전에 루퍼트랑 영상통화 잠깐 했는데, 미국에서 노스탤지어가 지금 대박을 터뜨렸대요.”
“아. 그 치치퐁?”
“……아픈 기억은 잊어 주세요.”
먼 곳을 보며 아련히 말하자, 프로듀싱팀 직원들이 웃으며 말했다.
“참, 너희 이거 봤어? 영어로 된 사이트들 돌아다니는데, 노스탤지어 OST 평론이 엄청 많더라.”
“그래요?”
“위에 있는 별 다섯 개들 위주로 봐봐.”
나상윤 PD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잔뜩 신이 나 있어서 그런지 화면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여기.”
“오오.”
중현이가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이며 본문을 읽더니 말했다.
“하나도 모르겠어요.”
이내 해외 평론가들로부터 나온 ‘Thousand Dreams’의 호평을 읽어 내리며 미소를 지었다.
프로듀싱팀 직원들이 흥분한 듯 ‘어때’ 하며 말했다.
“반응 엄청 좋은 것 같지?”
왜들 이렇게 흥분해 있던 건가 의문을 품었더니, 솔트맨 PD의 설명이 들려 왔다.
“이게 빌보드 차트에 들어갈 거 같다고 하더라고.”
“정말요?”
“속단하긴 이르지만 Falling Stars 다음으로 인기가 많아서. 그런 얘기 나오고 있다더라.”
“오오……!”
자신들이 작업에 참여한 곡이 해외의 유명 차트에 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일까.
다들 몹시 흥분해 있는 듯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잠시 들뜬 미소를 교환했다.
“대박이다. 영화 덕에 들어가는 거긴 하지만 좋네여.”
“그러게. 미국의 망고 차트…….”
“그럼 미리 축하할까요. 오늘 뿌링클 순살?”
“뿌링클 좋지.”
그런 대화를 나누는 우리의 모습에 직원들이 웃었다.
“의외로 차분하네. 방방 뛸 줄 알았는데.”
“네, 지금은 이 정도?”
까치발로 콩콩하자 그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덤덤한 반응을 보이는 중이었다.
기분이 좋긴 하지만 예전에 ‘썸씽’으로 음원을 낼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우리 앨범으로 들어간 거였다면 막 소리를 지르고 눈물 나고 그랬을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미국 영화 OST라는 특성 때문인 듯했다.
‘영화’에 방점이 찍혀 있었으니까.
물론 국내에서는 ‘할리우드 영화에 뉴블랙 노래가 OST로 실렸구나!’ 하며 관심을 보여 주고 있지만.
OST가 큰 성공을 거둔다 해서 그 모든 게 오롯이 가수에 대한 관심으로 치환되지 않을 거라는 걸 콜라보 음원 때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나상윤 PD가 동의했다.
“그렇긴 하지. 영화 OST가 잘 됐다고 가수까지 빵 뜨고 그런 건 아니니까.”
“맞아요.”
물론 잘 되면야 엄청 좋은 일이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게 최선이었다.
“그래서 조금 차분하게 받아들이려구요.”
“좋은 생각이네.”
“네. 만약에 이번에 잘 된다면 해외에 저희 이름을 알린다, 하는 정도의 의미로 생각하려고 해요.”
프로듀싱팀 직원들도 동의하듯 말했다.
“우리가 너무 들떠 있긴 했네. 영화 OST로 설레발을 치기보다는 네 말대로 차분하게 생각해야 되는데.”
“흐흣.”
“우주야?”
“아, 아니에요. 아무것도…흐흐흣!”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와서 입가를 가렸다.
프로듀싱팀 직원들이 눈을 가늘게 떴다.
“너 지금 웃고 있지. 선우주.”
“아뇨?”
“어허. 그 손 내려 봐.”
내가 손을 입가에 올린 채 고개를 젓는 동안, 동생들이 한심하다는 눈으로 나를 타박했다.
“차분하자면서 어째 제일 신난 거 같아요?”
“맞아여. 방금은 해외에 이름을 알린다, 하는 의미 정도로 담담하게 받아들인담서여.”
“어유, 저 좋아하는 거 봐.”
…라고 입가에 손을 올린 3인조가 나를 흉보고 있었다.
그 옆에서 곰 한 마리가 동글동글한 눈으로 ‘뿌링클 누가 쏠 거예요?’ 하며 묻고 있었다.
프로듀싱팀 직원들이 말했다.
“너희 다 같이 손 내려 봐.”
“…….”
“제일 늦게 내린 사람이 치킨 쏘는 거야. 하나 둘 셋!”
다 같이 손을 내린 그 순간.
반짝반짝.
환하게 잇몸웃음을 보이고 있는 다섯 명의 얼굴이 드러났다.
“아이구, 솔직하지 못한 것들.”
“하핫!”
내가 끄덕이며 답했다.
“사실 좋네요. 엄청… 흐흐흣!”
“흐하하핫!”
‘헤헷’ 하며 동생들을 바라보자 녀서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헤헤헷’하고 답해 주었다.
이내 다 같이 푼수처럼 웃기 시작했다.
“흐하하하!”
역시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 하는 마음가짐으로 하나 된 우리였다.
그리고.
“그럼 뿌링클 시킬까요?”
중현이가 핸드폰을 든 채 설레는 얼굴로 물었다.
* * *
우리의 예상대로 ‘Thousand Dreams’는 얼마 안 가 2위로 내려왔다.
그러곤 순위를 쭉 유지했다.
뮤지컬 영화 최초로 천만을 돌파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 노스탤지어의 인기를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한편, OST의 인기는 국내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노스탤지어’, 영화 흥행과 함께 OST도 인기
-뉴블랙 ‘Thousand Dreams’, 해외에서도 통했다 ‘15개국 음원 차트 진입’
-주간 차트에만 4곡 ‘뉴블랙’, 이젠 ‘음원깡패’ 아닌 ‘음원두목’ 수준
호주, 벨기에, 캐나다, 네덜란드 등의 음원차트에서 ‘Thousand Dreams’가 좋은 성적을 거뒀다는 소식이 속속 들려왔다.
주로 노스탤지어가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 곳들이었는데.
우리의 목소리가 전혀 예상 못한 나라에 퍼져 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어쨌거나 그런 해외의 호평에 국내 언론을 비롯해 미디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우리에게는 그걸 체감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Good evening, Hong Kong!”
“大家好!”
“สวัสดีครับ !”
홍콩에 이어서 대만, 태국의 콘서트가 줄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바쁘게 흘러갔다.
특히 처음 방문하는 태국에서는 프로모션을 위해 며칠간 머무르며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음악 프로에도 나가고. 사인회도 하고.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은 건 태국 관광청의 협조를 받아 진행한 현지 방송 녹화였다.
태국 관광지에서 동물들을 만나고 오는 내용.
꼬챙이에 닭을 꿰어서 호수에 사는 악어들의 밥도 주고.
“흐아아아악!”
“리혁이 형, 진정해여! 저 악어는 형한테 관심이 없다구여!”
“모, 몰라! 쟤가 내 닭을 물었단 말야!”
악어 공포에 비명을 내지르는 으악새 한 마리 덕에 방송 분량을 톡톡히 뽑기도 했다.
“어휴. 리혁이 쟤는 뭘 저런 걸로 무서워하냐.”
“그니까여. 겁쟁이.”
“리혁아~ 악어가 그렇게 무서웠어?”
여러모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바로 다음 코너가 되기 전까지는.
“근데 다음이… 뭐, 뭐요?”
“통역사님이 그러는데, 호랑이랑 투 샷 찍기래요.”
“…….”
“저기 호랑이 팔뚝 봐여. 투 샷이 아니라 원 샷으로 죽을 거 같은데여. 우리.”
결국 중현이만 찍기로 했다.
우리 래퍼가 호랑이와 찐한 우정의 단군 화보를 찍는 동안, 다 같이 뭉쳐서 오들오들 떨었다.
“그래도 이렇게 멀리서 보니까 덜 무서운 거 같지 않나여?”
“그러게. 떡 하나만 주면 안 잡아먹지~ 이런 느낌으로…….”
으르르르-
“흐아아악!”
“…….”
영화에서 볼 때는 ‘흐하하하, 호랑이네!’ 했는데, 실제로 들으니 소름이 쫙 돋았다.
내 뒤에 숨은 세 녀석을 보며 현지 가이드가 훈훈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대로 갔다간 태국 사람들에게 ‘뉴블랙이란 녀석들, 겁쟁이군’ 하는 이미지가 될 듯해서 사육사의 몸짓과 표정 등을 관찰했다.
그러곤 따라하면서 대범한 척을 했더니.
으르르-
거대한 고양이과 동물이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다.
“어머, 우주 씨. 사육사 분이 그러는데 호랑이 친구가 우주 씨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대요.”
“…….”
“호감에 가까운 반응이라고, 신기해하는데요?”
동생들이 얼른 사진을 찍으라고 등을 떠밀었다.
못된 것들. 낭떠러지에 매달린 사람의 손등 위에서 스카이 콩콩을 할 놈들이었다.
사진은 그럴싸하게 나왔다.
내 등에 얼굴을 슥 부비는 호랑이와 무르팍에 손을 올린 채 정자세로 앉아 있는 나.
공식 SNS에 올라온 후.
여러 커뮤니티에 ‘호 병장과 선 이병.jpg’라는 제목으로 퍼져 나가 여러모로 고통을 겪었다.
어쨌거나, 3개국을 도는 해외 투어의 두 번째 일정을 마무리하고는 인천행 비행기에 올랐다.
“우주야.”
“응?”
‘우주 - 동물이랑 붙여놓으면 재미있음’ 하는 업무 일지를 쓰던 석환 형이 내게 물었다.
“한국 돌아가면 괜찮은 거 맞지?”
“뭐가?”
“뮤직카페 본 방송 말이야.”
“아하.”
매니저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민기랑 원석이한테 대충 내용은 들었는데, 영 안심이 안 돼서.”
“너무 걱정하지 마.”
“…….”
“이번에 제대로 이미지 변신을 하고 왔거든.”
호언장담을 하는 내 모습에 석환 형의 눈동자에 무수한 말들이 맺혔다가 사라지는 게 보였다.
“그, 아니다…….”
“뭔데.”
모든 것을 초탈한 사람처럼 자애로운 미소를 짓는 매니저였다.
막내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근데 본방 어떻게 나올까여.”
“그러게, 단추가 어떤 식으로 터지려나.”
“파앙- 하고 그래픽 들어가지 않을까여.”
주변 승객들을 의식하던 리혁이가 우리에게 꼬깃꼬깃한 쪽지를 하나씩 건넸다.
각각 ‘ㅗ’가 그려진 메모였다.
간만에 출연한 음악 프로그램이라서 그런가.
시청자들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해 하는 가운데, 비행기가 막 인천에 도착했을 때였다.
“……어?”
문자 메시지를 보던 석환 형이 우리에게 말했다.
“얘들아.”
“응?”
“너희 상 받으러 오라는데?”
“상……?”
전혀 예상 못한 이야기에 우리가 눈을 깜빡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