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21화
극장에서 웃음이 흘러나오는 동안.
스크린에서는 에티켓 요정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저기 있다!
-날 구해 주러 왔구나!
‘와아아!’ 하며 상봉하는 요정들에게 아이가 ‘나는?’ 하는 얼굴로 올려다 본다.
그제야 요정들이 말했다.
-우리가 좌석까지 안내해 줄게!
이내 흘림체로 떠오르는 ‘에티켓 요정들의 관람 매너 안내!’ 제목.
요정들이 아이의 손을 잡고 극장에 입장했다.
어린이를 좌석까지 안내하기 위해 좌석 사이에서 성큼성큼 길을 트는 덩치 요정.
-길은 넓게 가야지.
그 과정에서 좌석을 건드리면서 앞좌석 사람이 팝콘 통에 얼굴을 박을 뻔했다.
‘삐익-!’ 하는 소리와 함께 졸개들을 바라보던 요정들의 우두머리가 화면을 향해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X’ 팻말을 들었다.
[앞 좌석을 걷어차면 안 돼요~]
사람들이 황당한 얼굴로 웃었다.
‘네 부하들이잖아. 요정아…….’
‘뻔뻔한 거 봐.’
그리고 흩어져서 아이의 좌석을 찾기 위해 전화 통화를 하는 요정들.
-거기야?
-아닌데! 더 찾아 봐!
-찾았뜨아아아!
우주가 다시 ‘X’자를 들었다.
[매너모드는 기본!]
[극장에선 소곤소곤 대화하기~]
아이의 자리를 찾아 준 요정들이 ‘재미있게 봐!’ 하며 쩌렁쩌렁 외칠 때.
요정 중 하나가 다급하게 외쳤다.
[경찰이다! 튀어!]
호루라기를 불며 추격하는 경찰과 도망치는 멤버들.
처음 나왔던 제목이 화면 위로 다시 떠오른다.
‘에티켓 요정들의 관람 매너 안내’에서 ‘에티켓’에 빨간 줄이 슥슥 그어지고 ‘비매너’로 바뀌었다.
도주하던 요정들이 환한 미소로 외쳤다.
[함께 만드는 극장 에티켓!]
[이 캠페인은 뉴블랙이 함께합… 아! 같이 가요!]
숨을 헉헉대던 리혁을 마지막으로 뉴블랙 멤버들이 흩어진다. 그리고 페이드아웃 되는 화면과 함께.
극장의 비상 대피로 안내가 떠올랐다.
사람들이 눈을 깜빡거렸다.
‘뭐지. 대피로가 아니라 도주로를 보는 듯한 이 느낌은.’
‘눈에 확 들어오네.’
‘이렇게 도주로, 아니 비상구를 집중해서 본 건 처음이야.’
절묘한 편집에 저도 모르게 비상 도주로가 어딘지 살피는 관객들이었다.
이내 스크린이 암전되고.
‘빰빰빰~ 빰! 빠바바바밤!’ 하는 소리와 함께 지구본이 쾅쾅! 하며 돌기 시작하자 그제야 사람들이 ‘아’ 했다.
‘아. 나 영화 보러 왔지.’
‘노스탤지어, 노스탤지어 보러 왔다.’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는 관객들이었다.
고작 40초짜리 캠페인이었지만 언제나 ‘꺄하핫!’ 하는 강렬한 잔상을 남기는 뉴블랙이었다.
* * *
핸디캠을 손에 든 채 동생들에게 물었다.
“오늘 무엇을 한다?”
“영화관 일일 알바를 한다~”
“어떻게 한다?”
“잘한다~!”
동생들과 ‘요요요!’ 하면서 방방 뛰었다.
지켜보던 석환 형이 본사 직원 분에게 ‘원래 저럽니다’ 하고 말하는 게 보였다.
핸디캠에다 대고 말했다.
“네, 오늘은 저희가 영화관 일일 알바를 하러 왔습니다. 짠!”
“짜잔!”
다 같이 ‘짠!’ 하며 물러서면서 뒤에 서 있는 직원을 소개하자, 직원분이 부끄럽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네, 소개 부탁드릴게요.”
“저는 용산 지점에서 일하고 있는 김수희라고 합니다.”
“와아아아!”
우리가 물었다.
“좋아하는 노래는?”
“뉴블랙의 나인…….”
“와. 이런 우연의 일치가.”
누가 봐도 짜고 친 티가 나는 발연기에 상대가 웃으며 물었다.
“일단 유니폼은 다 입으신 거죠?”
“네!”
“복장에 빠뜨린 것 없는지 확인 부탁드릴게요.”
극장 아르바이트생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우리가 서로를 둘러보며 OK 사인을 그렸다.
오늘 스케줄은 깜짝 일일 아르바이트.
에티켓 영상을 찍는 김에 새롭게 출시된 뉴블랙 팝콘 콤보도 홍보할 겸해서 수락한 일정이었다.
“일단 매표소에서부터…….”
오리엔테이션처럼 테이블에 둘러앉아 알바분이 설명해 주는 노하우를 들었다.
수첩을 꺼내 중요한 팁 등도 메모하고.
그 동안 민기 형이 핸디캠으로 미튜브에 올라갈 영상을 찍었다.
“엇!”
지호가 놀란 표정으로 손으로 입을 가리자 알바분이 물었다.
“갑자기 왜……?”
“아. 미튜브 썸네일에 쓸 표정 지은 거예여. 이런 어그로가 하나씩은 들어가야 돼서여.”
“그게 조회수가 차이가 나나요?”
“네. 아무래도.”
‘뉴블랙, 영화관 알바 체험!’보다는 ‘영화관에 숨겨진 오싹한 비밀 5가지’ 이런 게 더 조회수가 높다고 하니 상대가 바로 납득했다.
“이 정도면 다 된 거 같고요. 이따가도 혹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시면 바로 물어보셔도 돼요.”
“네. 감사합니다.”
메모를 다시 한번 훑으며 강조했던 사항들을 머릿속에 쏙쏙 집어넣는 한편.
동생들과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기 전에 본사 PR팀 관계자 분에게 인사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저분…….”
리혁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속삭였다.
“우리를 쳐다보시는 게 왠지 그런 거 같지 않아요? 곁눈질 하고.”
“그러게. 좀.”
PR팀 직원이 우리를 쳐다보는 시선이라고 할까. 거기서 무언가가 느껴졌다.
비주가 ‘음’ 하며 미간을 좁혔다.
“아무래도 느낌이 그런 거 같아요.”
“그치?”
“맞아여. 저두 그래여. 딱 느낌이…….”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석환 형과 대화 중인 PR팀 직원에게 다가갔다.
내가 웃으며 꾸벅했다.
“오늘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어, 아니에요.”
“저희를 불러 주신 만큼 오늘 빠릿빠릿하게 일하고 갈게요~”
‘맡겨만 주세요’ 하니 상대가 웃었다.
석환 형이 로드 매니저들에게 가서 대화하는 동안 동생들이 내게 시선을 보냈다.
‘물어봐요. 얼른.’
‘오키.’
내가 헛기침을 하고는 물었다.
“저, 담당자님…….”
“네?”
“물어볼 게 하나 있는데요.”
다섯이서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니, 상대가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물어볼 거요…?”
우리의 에티켓 영상을 기획했다는 직원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0619?”
“……!”
뉴블랙 데뷔일.
멈칫한 상대가 눈을 크게 뜨더니, 손으로 입을 가리고 우리에게 속삭였다.
“0718.”
“……!”
수플레 탄생일이었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을 하자, 상대가 민망하다는 듯 물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티 나요?”
“아뇨. 그건 아닌데 저희가 알아보는 표정이 있어요. 숨길 수 없는…….”
“앗.”
“왜냐하면 우주 형이 할머님 보고 똑같은 표정 짓거든여. 이렇게.”
지호가 가슴에 손을 올린 채 눈을 빛내며 ‘덕순~’ 하자 상대가 작은 웃음을 흘렸다.
비주가 물었다.
“그럼 혹시 저희가 섭외된 게…….”
“아, 그건 아니에요. 뮤직카페 방송 나오고 나서 팀장님이 저 웃, 아니 저 친구들 꼭 데려와야 한다고 해서.”
방금 ‘웃’ 뭐라고 하려고 한 것 같은데.
왠지 모르게 뒷말이 짐작이 갔지만, 모른 척하는 담당자님을 위해 우리도 같이 모른 척했다.
그러곤 셀카 촬영을 함께 했다.
같이 찍은 사진을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이에게 우리도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아까 웃 다음에 뭐라고 하셨던 거예요?”
“…….”
“분명 웃이라고 들은 거 같은데.”
상대가 전화를 들었다.
“엇, 전화가.”
“안 울리네요.”
“걸어야 할 데가 떠올라서요!”
“어디 가세요? 아니, 웃긴 애들 아니라고 얼른 말씀을 해 주셔야…!”
아련하게 멀어지는 담당자님에게 애타게 외치는 동안 석환 형이 다급하게 다가왔다.
“뭐야. 너희 또 뭘 했길래 저 사람이 저렇게 도망쳐?”
“별일 아니에요.”
중현이가 손을 저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저희가 웃기냐고 물었거든요.”
“…….”
“그랬더니 저렇게 떠나신 거예요.”
전후 맥락이 생략된 참신한 설명에 석환 형이 못 들은 걸로 하겠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날 바라봤다.
어떻게 설명을 할까 생각하며 서두를 읊을 때.
“저분이 수플레인데…….”
“아. 그렇구나.”
“……?”
“이해했어.”
바로 납득했다는 듯 표정을 짓는 매니저를 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뭐지.
대체 저 사람의 머릿속에 우리와 수플레들의 이미지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잠시 진심으로 궁금했다.
* * *
매표소 앞.
1시간가량 진행된 일일 알바를 끝낸 우리가 사람들 앞에 모여 꾸벅 하며 인사를 했다.
“지금까지 뉴블랙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와아아아!”
빙 둘러싼 사람들이 손뼉을 쳤다. 그 동안에도 사방에서 핸드폰 카메라가 촬영 중이었다.
“뭐야. 뭐야. 뉴블랙 왔어?”
“야. 대박, 여기 지금 뉴블랙 온 거 같은데… 아니아니, 지금은 이제 떠나는 타이밍 같음.”
“단추가 쟤야? 쟤?”
방금 도착했는지 웅성거리는 커플들, 전화를 붙잡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리혁이를 보며 ‘단추!’ 하는 사람들.
알바 시작할 때만 해도 깜짝 방문으로 온 거라 한산했는데.
-어어어어! 대박.
-사진 찍어도 돼요?
SNS에 올라온 사진 때문인지, 1시간 만에 사람이 이만큼 몰려 버렸다.
어찌나 시끄러운지 고막이 따끔따끔하다.
뒤에 선 극장 알바생들이 기가 빨린다는 표정을 짓는 동안, 우리가 생글생글 웃으며 대포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플래시도 번쩍거렸다.
“지나갈게요!”
매니저들을 따라 가는 동안에도 사람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구경했다.
뮤직카페에 대한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영화관 알바는 왜 한대?”
“그거 아냐? 매너모드 그걸로 뭐 찍었다고 아까 누가 말하는 거 들었는데. 극장에 뭐 나온대.”
“우주가 쟤구나. 뮤카에서 쟤네가 뭐라고 했더라? 노래 깎는 노인?”
불현듯 들린 대화에 동생들을 째려보자, 다들 모른 척했다.
뮤카에서 작곡 등에 대해 많이 보여 줘서 그런지 날 쳐다보는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 중에서 진정으로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어머, 쟤 걔잖아. 단추.”
“저렇게 얄쌍한데 어떻게 단추를 터뜨렸지? 신기하다. 난 숨만 쉬어도 되는데.”
“이름 뭐였지. 추리혁?”
리혁이가 지나갈 때마다 수군수군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프랑스의 노트르담 소설에 빗대어 수플레들이 요즘 ‘뮤직카페의 단추’라고 부르는 리혁이었다.
평소 때였으면 얼굴이 벌게져서 ‘얼른 망해라, 이 세상’ 하고 있었을 텐데, 리혁이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걸었다.
“후훗.”
오늘따라 굉장히 거만한 표정.
‘저저… 파데 발랐다고 건방져진 거 보소.’
‘옷을 목까지 싸맸네.’
파운데이션으로 벌건 얼굴을 완벽히 감췄다고 생각하는 듯 여유롭게 웃는 리혁이었다.
사람들의 감탄에 리혁이의 입꼬리가 웃을 준비를 했다.
“귀…….”
“귀만 빨갛네. 파데 커버력 봐. 저거 어디 건지 물어보고 싶다.”
“파데 어디 거 써요!”
“야, 그렇게 크게 물으면 어떡해.”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리혁이가 양손으로 귀를 가린 채 도망치기 시작했다.
우리도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뮤직카페가 방영된 후.
에티켓 영상을 비롯해 노스탤지어의 추가 홍보를 위한 일정을 소화했다.
그리고 우리 실장님이 센스 있게 미리 잡아 놓은 라디오 쇼 등에도 출연해서 노래를 불렀다.
-이번에 즉흥 작곡이 큰 화제가 되었죠?
-네. 맞습니다. 이번에 뮤직카페가 나가고 저희가 간만에 또 실검에 올랐거든요.
-실검에 워낙 자주 오르잖아요. 제가 뉴블랙을 본 것만 세 번은 되거든요. 그래도 감흥이 남다른가요?
-넹, 이번엔 저희가 멋진 걸로 화제가 된 거라서여.
-예? 예에…….
‘음? 으으음’ 하는 DJ의 반응이 웃음 포인트였던지 그날 보이는 라디오의 움짤도 돌아다녔다.
-와. 진짜 곡을 면발처럼 뽑네요. 인정합니다.
그래도 확실히 이번에 ‘작곡’이나 ‘프로듀싱’ 측면에 있어서는 꽤 인정을 받은 듯했다.
라디오 DJ들이나 방송인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도 그렇고.
뮤직카페의 영향 덕분인지 차트에 ‘불꽃놀이’가 갑자기 80위권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역주행이라고 할 것까진 아니었지만 그만큼 이번 방송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았다는 증거였다.
매니저도 온라인 반응을 종합해서 알려 주었다.
“홍보팀에서 외부 기관에 데이터 분석을 의뢰했는데, 너희 이미지가 확실히 바뀌긴 한 거 같아.”
“그래?”
“기존 이미지에 ‘음악’, ‘작곡’ 같은 키워드가 추가된 걸로.”
원했던 대로 180도 변신! 이런 건 못했지만, 우리의 음악적인 부분이 받아들여졌다니 다행이었다.
물론 뮤직카페 하나로만 얻어낸 화제성은 아니었다.
거기서 나온 우리의 방송 분량이 화제가 되도록 만들어준 주인공이 따로 있었으니까.
바로 노스탤지어의 OST ‘Thousand Dreams’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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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주차까지만 해도 반응이 좋은 편이었다가 3주차가 되면서 미국 내에서 반응이 확 터진 모양이었다.
같은 시기에 개봉한 액션 블록버스터보다 예산은 더 많이 썼는데, 정작 성적은 생각만큼 안 나와서 걱정하고 있었다고 들었는데.
한국에서의 흥행 돌풍이나 반응이 미국 쪽 온라인에 이야기가 돌면서 입소문이 퍼졌다는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그런 영화의 좋은 성적 덕에 우리에게도 축하할 만한 일이 하나 생긴 터였다.
70. (new) Thousand Dreams - The New Black
영화의 인기와 함께 우리의 OST가 미국 내 빌보드 차트에 올랐다는 소식이었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진짜 얼떨떨했다.
영화 인기가 좋아서 올라갈 것 같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진짜로 올라갈 줄은 몰라서.
‘Falling Stars’로 49위에 진입한 루퍼트도 우리에게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기분 진짜 이상하네여.”
“그니까. 이 기분을 뭐라고 해야 될지를 모르겠다.”
우리가 타이틀로 낸 노래는 아니었지만, 작업에 참여했던 결과가 이렇게 나오니 뭉클했다.
다만 그와 별개로 전반적으로 현실감이 없긴 했다.
이런 식으로 이름을 올리게 될 거라고 전혀 예상을 못하고 있어서.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너희가 그냥 외국 영화에서 팬서비스로 깔 음악을 만드는데, 그게 OST가 돼서 미국 차트에 올라’ 라고 하면 나도 안 믿었을 테니까.
그것도 OST 차트와 메인 차트 등에서.
“뭔가 혼란스러운데여.”
“일단 기뻐할까?”
그래서 일단 기뻐하기로 했다.
“예이!”
“우리 OST가 세계에 스멀스멀 퍼지고 있다아!”
“OST 듣고 어서 유입되어라!”
실제로 OST를 듣고 가수가 궁금해서 검색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었지만 그래도 기뻤다.
좋은 게 좋은 일이었다.
미국 쪽 차트에 오른 후부터 국내 언론들의 보도량도 늘어나기 시작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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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국가대표가 해외 대회에서 어떤 성적을 거두었는지 쓰는 듯한 논조의 기사들이 많았다.
인터뷰 요청도 엄청 들어오고.
평소 자주 인터뷰를 하던 오 기자님을 비롯해서 몇몇 기자분들과 간단한 소감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9시 뉴스 ‘문화 섹션’에서 이런 우리의 OST 성적에 관한 기사를 쓰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우리보다 주변에서 반응이 더 컸다.
어지간하면 날 안 부르려고 하던 A&R팀에서도 한 번 사무실로 오라고 할 만큼.
“우주야.”
“네.”
“이것 좀 봐라.”
직원들이 꽉 찬 메일함을 보여 주었다.
“이게 뭔가요?”
“너한테 의뢰 들어온 것들.”
“전부 다요?”
“거의 다 너한테 온 거야. 뮤직카페 작곡 나온 뒤에도 왕창 오더니, OST 얘기 나오곤 더 많이 들어왔다.”
드라마 OST를 비롯해서 다른 가수들의 곡에 대한 의뢰까지 있었다.
작곡돌로 홍보될 때부터 이런저런 의뢰가 들어오긴 했지만, 이번처럼 본격적으로 일복이 터진 건 처음이었다.
참여해서 곡 만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팀장님.”
“왜. 왜 그러는데.”
A&R 팀장님에게 물었다.
“저, 이거 다 해도 돼요?”
“프로듀싱 팀으로도 이거 다 커버 못할 거 같은데. 내 체력이 못 버텨. 우주야. 체력이.”
“저는 괜찮아요.”
“‘네 체력’ 말고 ‘내 체력’ 우주야…….”
‘우리 죽어’ 같은 이야기를 하는 A&R팀 직원들이었다.
다 하려고 하지 마고 심사숙고해서 이 중에서 몇 가지만 고르라고 하는 말이 돌아왔다.
“이번에 미국 쪽 차트에 오른 것도 그렇고, 사람들한테 작곡 이미지를 심어 주는데 성공했잖아.”
“네.”
“신중하게 골라서 작업하자. 지금처럼 이미지 잡은 뒤에 자칫해서 살짝이라도 삐끗하면 여기저기서 물어뜯으려고 난리도 아닐 테니까.”
그 말에 공감했다.
잘 되면 잘 될수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니꼽게 바라보는 이들이 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웃으며 답했다.
“대신에 저희가 잘하면 그만큼 또 플러스가 되잖아요.”
“그건 그렇지.”
“저희도 다음 작업에 대한 부담이 좀 크긴 한데… 요즘에는 즐기려고 생각하는 중이에요.”
나를 어딘가 짠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팀장님이었다.
그 동안 조심스럽게 데스크 위의 서류들을 몽땅 집을 때였다.
텁.
팀장님의 두툼한 손을 비롯해서 A&R팀 직원들이 동시에 내 손목을 잡았다.
“우주야.”
“네.”
“위에 몇 개만 가져가. 몇 개만.”
“네…….”
“다 들고 가면 무거워. 잘못하다가 손목이라도 삐면 어떡해. 넌 몸이 재산인 직업이야.”
다른 직원들도 동의했다.
“그래. 가끔은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지.”
“자, 어서 손에 힘 풀고.”
강아지가 입에 뼈다귀 폭탄을 문 것처럼 나를 구슬려서 서류를 가져가는 직원들이었다.
어쩐지 혼자 오라더니.
다음에는 꼭 중현이를 데리고 와야겠다고 입맛을 다실 때였다.
“맞다. 너희 필리핀이랑 인도네시아 가지 않나? 내일인가?”
“아뇨. 모레에요. 내일은 국내 프로모션 행사 스케줄만 진행하고.”
“프로모션?”
“네. 저희가 광고가 또 들어왔거든요.”
내가 내일 있을 행사에 대해서 말해주자 A&R팀 사람들이 뺨을 씰룩거리기 시작했다.
* * *
백화점 실내 행사장.
구경하는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진행을 맡은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잡고 미소를 지었다.
-네, 요즘 장안의 화제죠. 방송에 나올 때마다 그 화려한 꽃미모를 자랑하는 미남들인데요.
아나운서가 말했다.
-오늘 신제품 파운데이션 출시 행사를 위해 찾아 주신 분들입니다. 그럼 다 함께 맞이해 볼까요? 뉴블랙입니다!
사람들이 ‘우와’ 하는 가운데 정장을 입은 미남 5인조가 꽃바구니를 들고 등장했다.
그러곤 자체적으로 꽃길을 만들며 입장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