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23)화 (323/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23화

마무리 동작으로 ‘Nine’의 무대를 끝냈을 때.

“와아아아!”

객석 맨 뒷자리에서 울려 퍼지는 수플레들의 환호와 함께 박수 소리가 섞여 들렸다.

짝짝짝-

앞선 축하 무대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우렁찬 박수 소리였다.

전국 박수치기 대회의 참가자처럼 연예인들이 손뼉을 파파팟 부딪히고 있었다.

거의 128bpm 정도.

“……?”

백스테이지로 내려온 후에도 얼떨떨했다.

머리에 맺힌 땀을 털어 내던 막내가 물었다.

“아까 태현 선배님이 반응 없을 거라고, 각오하라고 하지 않았어여?”

“어. 그랬지…….”

자기네가 몇 년 전에 엄청 민망했다고 했지.

당시 국내에선 원탑이었고, 중국과 다른 아시아에서도 빵 터진 시기였는데도 반응이 저조했다나.

그런데 이 반응은 도대체 뭘까.

무슨 차이가 있었는지 고민할 때.

“……?”

다시 극장으로 들어왔을 때, 우리에게 새초롬하게 따봉을 날리는 원로 가수가 보였다.

자랑스러운 손자들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

그리고 그 옆에서 눈치를 보며 같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이들을 보는 순간.

“아.”

무슨 상황인지 바로 납득했다.

‘선생님이었구나.’

‘짬의 힘으로…….’

‘대표님이 박수 칠 때 A&R팀이 박수 치는 거랑 같구나.’

명곡단 때도 느꼈지만 노재현 선생님이 가요계에서 어떤 위상인지 다시 한번 체험하는 계기였다.

그 옆에 앉아 있는 트로트계의 대선배, 백상교 선생님이 쩔쩔 매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하긴.

지금이야 건강 때문에 은퇴하시긴 했지만, 노재현 선생님이 콘서트를 한다고 하면 관객들이 구름떼처럼 모일 거라는 말도 많이 들었던 터였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귀엽다는 듯 바라보는 선생님에게 꾸벅하고는 동생들과 뿌듯한 미소를 교환했다.

이것의 인맥의 맛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

자리로 돌아오니 TNT 멤버들이 어딘가 억울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슬그머니 나왔다.

다른 축하무대 장비가 세팅되는 동안 내가 태현이의 귀에다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축하무대 민망하다면서.”

“…….”

“아이고. 우리 태현이가 그때 많이 민망했구나.”

살살 약을 올리니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그러곤 나를 스윽 돌아보며 부들부들한 미소를 손으로 가렸다.

“……국무총리 표창은 이런 축하무대 안 한다.”

웃음을 꾹 참는 내게 ‘두고 보자’ 하는 눈빛이 돌아왔다.

그 동안 다른 축하 무대가 이어졌다.

판소리와 국악을 트렌디하게 만든 공연이 시작되고.

개그맨 서지형 씨와 동료들이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몸 개그를 선보인 꽁트까지 끝난 후.

남녀 MC가 마이크를 들었다.

-네, 2015년! 대한민국과 한류에 있어서 가장 뜨거웠던 한 해가 아닐까 싶은데요.

-오늘의 영예로운 수상자들을 망라한 VCR을 먼저 감상하시겠습니다.

우리가 손뼉을 치는 동안 VCR이 흘러나왔다.

오늘 문화 훈장을 받기로 되어 있는 원로배우 신인상 선생님의 가족 드라마 연기부터 시작해서.

드라마 속의 한 장면. 콘서트의 한 장면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활동하는 장면이 슥슥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와아아악!

TNT의 해외 투어 장면, 중국 인터뷰에서의 모습 등이 나오면서 격한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극장이 폭발하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큰 소리.

내 옆에 앉은 서노을 선배가 화들짝 놀라더니 ‘아이고’ 하며 목을 주물주물했다.

앞에 있는 8인조의 어깨가 으쓱으쓱할 때.

‘형.’

비주가 속삭였다.

‘이제 우리 나올 거 같아요.’

‘오.’

문화 훈장, 대통령, 국무총리, 문체부 표창 순으로 이어지고. 또 거기서도 연차 순으로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우리 순서가 됐을 때.

[2015년, 히트곡과 함께 다양한 예능 활동과 SNS로 한류를 알리는데 기여한 뉴블랙!]

뒤에서 수플레들이 함성을 지르려고 숨을 ‘흐읍’하는 소리와 함께 함성이 들렸다.

-와아아아!

우리의 주요 활동이 흘러나왔다.

가장 먼저 조선시대 포졸 옷을 입은 채 추격전을 하는 우리 모습…이 왜 나와.

뭐야. 저게 왜 나와.

보부상 옷을 입은 중현이가 짚신으로 바닥을 팟팟팟! 박차며 도망치고 있었다.

-아아아…….

시작은 창대했으나 마무리로 ‘아아아’하며 힘없이 스러지는 환호에 장내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VCR이 재생되는 메인 전광판 옆에, Y앱으로 생중계 중인 화면에 배우들이 입을 가리고 웃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서노을도 깔깔 웃으며 만성피로가 풀린다는 표정이었다.

거기에 내 앞에서 실시간으로 꿈틀대는 8인조 아이돌까지.

“…….”

화면 속에 누구보다 통쾌하다는 듯 박장대소하는 한태현의 모습이 흘러나왔다.

*   *   *

다행스럽게도 역사 탐험대는 짧게 흘러나왔다.

그저 임팩트가 강했을 뿐.

우리가 Nine과 바람꽃을 부르는 장면이 더 비중 있게 나왔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어째 역사 탐험대를 더 기억할 듯했다.

“…….”

한국 대중문화사의 산증인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이런 식으로 신고식을 하다니.

동생들과 처량한 표정으로 서로 머리를 맞댔다가.

카메라가 우리를 잡으려고 하는 탓에 곧바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푸흡.”

“풉.”

앞자리에서 키득거리는 8개의 머리통이 얄미울 뿐.

VCR이 끝나면서 박수가 이어진 후.

다시 엄숙해진 분위기 속에서 시상이 진행됐다.

-뉴블랙. 이하 내용은 위와 같습니다.

문체부 표창 수상자들이 단체로 올라온 무대에서 표창장과 꽃 한 송이를 받았다.

소감 시간도 30초 정도라서 간단하게 소감을 말하고.

이어서 TNT와 다른 국무총리 표창장 수상자들이 나와서 상장을 받아 가고.

시간이 물 흐르듯 빠르게 흘러갔다.

-이 자리까지 오는데 참 오래 걸렸네요. 하필이면 이름이 신인상이라서 매번 너는 신인상은 언제 타냐는 소리만 들었는데…….

객석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문화 훈장을 받은 대배우의 재치 있는 소감을 마지막으로 시상식은 끝을 맞이했다.

하나둘 떠나는 가운데 우리는 노재현 선생님에게 달려갔다.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노재현 선생님.”

“어흠, 내가 뭘…….”

지팡이를 짚은 채 새침하게 웃는 원로 가수에게 우리가 으슥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덕에 저희가 인맥의 위대함을 깨달았어요.”

“흠흠…….”

“정말 존경합니다.”

“저희가 사랑해여~”

검지로 뿅 하며 애교를 부리는 우리 막둥이의 모습에 노재현 쌤이 큰 웃음을 터뜨렸다.

간만에 사진도 찍고 근황을 공유할 때.

“에고, 내 정신 좀 보게. 이럴 때가 아니라 자네들을 소개시켜 줘야지.”

“엇, 안 그러서도…….”

“이리 와 봐. 여기 다 내 쫄따구들이야.”

근처에 있던 백상교 선생님이 ‘쫄따구라니요’ 하며 웃었다.

활기찬 기세로 주변의 가수들에게 우리를 소개시켜 주는 선생님이었다.

“안녕하세요. 백상교 선생님. 제가 정말 팬입니다.”

“그래?”

트로트 가수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우리 손녀딸이 아주 너희들 팬이더만. 테레비에 너희만 나오면 이렇게 앉아 가지고 과자 까먹으면서.”

“어어, 귀엽네요…….”

“올해 스물하나야.”

“그렇군요.”

잠시 웃음기 가득한 말을 주고받을 때, 중현이가 말했다.

“저희 부모님이 선생님 팬인데 혹시 사인해 주실 수 있나요?”

“아유, 좋지.”

“엇, 그럼 저도… ‘To 러블리 덕순’으로 부탁 드려도 될까요?”

“아예 영상으로 찍어 줄게.”

‘사랑하는 김덕순님. 손자 참 잘 키우셨습니다’ 하는 영상 메시지를 찍어 주시는 팬서비스에 감동하는 한편.

음악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정말 팬이에요. 명곡단에서 편곡할 때, 선생님 앨범에서 모티브를 얻은 게 여럿 있거든요.”

“그래?”

“네, ‘덕순아’ 편곡할 때도 그렇고.”

내가 이야기를 이어갈수록 상대의 눈에 즐거움이 감돌았다.

그 덕분인지.

“저희가 나중에 앨범 작업할 때, 혹시 시간 되신다면…….”

“아. 니들이 요새 그거구나. 음악다방에서 작곡한 애들.”

노재현 선생님이 헛기침하며 말했다.

“요새는 뮤직카페다. 상교야.”

“그래요?”

“모를 수도 있지. 나처럼 이렇게 젊은 애들이랑 이렇게 소통을 하는 게 아니면…….”

중년 트로트 가수가 픽 웃더니 우리에게 말했다.

“연락해. 번호 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젊은 애들이랑 일도 해 보겠네, 하며 좋아하는 분의 모습에 노재현 선생님이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우리에게 속삭였다.

“이 자리에서 필요한 놈들 있으면 다 찍어 봐. 내가 잡아 줄게.”

“감사합니다. 쌤.”

내가 속삭였다.

“그럼 저분부터…….”

자기가 하는 것만 아니면 된다며 싱글벙글 웃으며 여러 가수들을 소개시켜 주는 선생님이었다.

이내 흐뭇한 대화들이 이어졌다.

“작업? 아. 좋지, 좋지.”

“아이돌이랑 작업해본 적은 없는데. 내가 필요하긴 하니? 좋기는 하다만…….”

“꼭 하자. 꼭.”

다들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해 보고 싶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몇몇은 그런 질문을 하기도 했다.

“빈말이 아니고 진짜로 해 보고 싶어서 그래?”

“그럼요.”

우리가 환하게 웃었다.

언젠가 함께 작업하기로 약속한 이들의 면면을 목록에 적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여러모로 귀중한 시간이었다.

인맥의 폭이 한 차례 확 넓어지는 듯하다고 할까.

노재현 선생님이 소개해 주는 유명한 기성 가수 분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스크린에만 출연하는 영화배우들이나 평소 얼굴 보기 힘든 예술계 분들과도 안면을 트고.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다음 스케줄 장소로 이동하려고 할 때였다.

“표창장 줘 봐요. 나 기념사진 찍게.”

“저는 꽃 들고 찍을래여.”

아까 받은 부상들을 들고 좋아하는 동생들과 극장을 나서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잡았다.

“음?”

“나야.”

몸을 돌리니 머쓱하게 웃는 구선웅이 보였다.

“잠깐 시간 되냐?”

“되긴 하는데. 스케줄 바쁘다며. 안 갔어?”

“요즘은 거의 다 개인 스케줄이잖아. 난 요즘 믹테 작업 빼면 뭐 하는 일이 없어 가지고.”

“아아.”

TNT의 리더가 내게 작은 상자를 하나 내밀었다.

“…이건 뭐야?”

“우리가 사비 모아서 산 선물.”

조심스럽게 상자를 받아들고 쳐다보니 열어 봐도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와…….”

손목시계였다.

시계의 디자인을 보며 내가 몽롱한 표정이 되자 상대가 흐뭇하게 웃었다.

“마음에 드냐?”

“나 진짜 잘 쓸게.”

“좋아할 거 같긴 하더라.”

상자를 챙기면서 물었다.

“너무 예쁘다. 그런데 이건 왜 주는 거야?”

“음.”

구선웅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내가 말주변이 없어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이번에 이걸 축하하는 의미로?”

“……?”

“연습생 때 애들끼리 얘기하고 그랬잖아. 다 같이 큰 상 받는 자리에 함께 섰으면 좋겠다고. 뭐, 지금은 상황이 좀 달라지긴 했지만.”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그리고 뭐 다들, 연습생 때 너한테 어느 정도 도움을 받기도 했고. 이러저러… 아. 모르겠다. 애들이 어떻게 말하라고 코칭했는데 까먹었어. 그냥 받아라.”

“왜 갑자기 급전개여.”

“까먹었어.”

축하한다고 하는 이에게 내가 웃으며 끄덕였다.

“고마워. 형.”

“승제도 축하한다고 전해 달라더라.”

“아. 그냥 만나서 얘기하지.”

“걔가 원체 좀 그런 거 가리잖아. 여전히 네 얘기만 나오면 미안해하더라.”

“미안할 거 없는데…….”

본인이 밀고 들어온 것도 아니고.

내가 데뷔조에서 빠지고 난 후에 들어와서 그런지 나를 어려워하는 듯했다.

엄청 착했는데 요즘도 여전한 모양이다.

“아무튼 너랑 나랑도 그렇게 친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좋다. 이렇게라도 잘 돼서.”

“그러게. 나도 이렇게 같은 자리에 오니까 좋다.”

“좋네.”

훈훈한 미소를 짓던 이가 말했다.

“우주야.”

“응?”

“그리고 하나 더 있는데…….”

뭐라고 말을 떼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이의 모습에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

“형.”

“어?”

“형은 일곱 번째야.”

“…….”

상대가 허망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 그렇게 늦었냐?”

“응. 다른 애들이 다 선착순으로 곡 달라고 하고 갔지.”

“아씨, 빨리 말할 걸……!”

울상을 짓는 이의 모습에 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가볍게 하이파이브를 하고 손을 흔들었다.

“다음 달에 망고 어워드 때 봅시다.”

“…그래.”

인사를 하면서 돌아오자 문 옆에서 미어캣처럼 바라보고 있던 동생들이 고개를 쏙쏙 내밀었다.

“뭐예여. 뭐 받았어여?”

“TNT 선배님들한테 선물 받은 거예요?”

“응.”

궁금해하는 동생들에게 내가 상자를 열어서 보여 주었다.

“짜잔.”

“…….”

“앞으로 이거 차고 다니려고.”

그리고 그 순간.

동생들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   *   *

[이거 누가 줬냐 ㅅㅂ]

(시상식 다음 행사 스케줄, 우주가 핑크색 꽃무늬로 가득한 플라스틱 시계를 차며 싱글벙글 웃고 있다.)

누구야.. 이건 용서 불가능이야

-7살짜리가 할 법한 시계를..

-오늘 그래서 홈마들 얼빡샷 대잔치였구만.. 그런 거였어

-ㅋㅋㅋㅋㅋㅋㅋㅋ지호 옆에서 거슬려 하는거 봐

-솔직히 이건 인간의 미적 기준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거슬려 할 수밖에 없어

-누가 선물해준 거임??? 진짜 우주 취향저격이네

-그건 모르겠고 내눈이 저격당한 느낌

-저거 디자인이 거지같아서 그렇지 꽤 비싼 시계래.. 플라스틱이 아니고 신소재라던데

-농담 아니고 진심 문방구에서 파는 마법소녀 변신 시계같아

-흐린눈하려는데 흐린눈이 안되네

*   *   *

“우주야.”

“네…….”

“지금 보고 있지? 팬들 반응?”

태블릿 PC를 훑으며 말했다.

“네…….”

“그런고로 이건 공식 스케줄에선 안 돼. 비공식 스케줄에서만 차도록 하자.”

나를 향해 인자한 미소를 짓는 스타일리스트 김 실장님에게 손목시계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래도 솔직히 예쁘지 않나요?”

“…….”

“마음을 넓혀 보세요. 예뻐 보일 수도 있어요.”

최대한 애처로운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대기실에 있는 다른 스탭들에게 고개를 돌려서 ‘동의?’ 하자 다들 한마음 한뜻이 되어 X자를 그렸다.

지호가 보기만 해도 갑갑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풀게.”

손목에서 시계를 푸니 그제야 속이 시원해졌다는 듯 광고짤을 따라하는 막내였다.

그래도 시계는 봐야 하니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시간만 보겠다고 합의를 봤다.

“얘들아. 리허설 하러 가자.”

“네!”

오전 9시.

오늘의 행사는 창원 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K팝 페스티벌이었다.

한국의 K팝 가수들 공연과 함께 본선에 진출한 각국 커버 댄스팀도 참가하는 행사였다.

“어, 원힛 분들도 왔겠네요.”

“연습 잘 했으려나?”

우리가 말레이시아에서 마스커레이드의 안무를 알려주었던 댄스팀 ‘one hit’도 오늘 참가할 예정이었다.

쌀쌀한 야외 행사장으로 나가는 동안 멀찍이서 걸어오던 미소년들과 마주했다.

“아. 존나 춥다.”

자기들끼리 ‘존추’ 하던 틴스피릿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인사했다.

“안냐세요.”

“안녕하세요.”

“저기 무대 위 조오온나 춥고 미끄러워요.”

몸을 으슬으슬 떨던 이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맞다. 이따 MC 잘 보세… 음?”

연후가 내가 손에 들고 있던 핑크색 시계를 보며 말했다.

“뭐예요. 그 이상한 시계는? 바닥에서 주웠어요?”

“TNT가 줬어요.”

“존나 멋있는 시계였네요.”

상대가 엄지를 척 들었다.

잇몸이 만개한 억지 미소를 지으며 ‘조뗄 뻔했네…’하는 연후의 모습에 다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틴스피릿 멤버들이 어휴 하며 그에게 욕을 퍼부으며 사라지는 동안.

“…….”

머쓱한 표정으로 옆에서 걷던 원석이 형에게 시계를 건네는 내 모습에 동생들이 키득거렸다.

웃음소리를 무시하며 스테이지 위로 올라갔다.

무대가 어떤 형태로 돌출되어 있는지, 객석의 시선은 어떤 식으로 향할지 살펴보고 있을 때.

“꺄아아악!”

익룡 소리 같은 환호가 우리를 마주했다.

무대 바로 앞에서 구경 중인 스무 명가량의 외국인들이었다.

「뉴블랙이다! 와, 진짜 뉴블랙이야!」

「우와……!」

「여기 본다. 여기 보고 있어!」

오늘 대회에 참가하는 커버 팀들인 모양이었다.

동남아, 유럽, 남미, 아프리카 등 다양한 구성원으로 모여 있는 K팝 팬들에게 우리가 손을 흔들었다.

“하이!”

“어디서 왔어요?”

중현이가 근엄하게 손을 흔들자 대성통곡하는 이들도 나왔다.

이름표를 단 채 드라이 리허설을 하는 동안 ‘Nine’의 가사를 열정적으로 따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리허설이 끝난 후 잠시 내려가니 소동이 일었다.

“끼야아아악!”

해외 팬들에게 영업을 하려고 내려왔는데 영업이 되어 있었다.

‘나인 나인 나인’ 해 주니 아프리카에서 온 팀이 거의 브레이크 댄스에 가까운 춤을 선보였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PBS 시사교양국에서 나왔다는 다큐 팀이 찍고 있었다.

내가 예전에 출연했던 의인 다큐 팀이라 낯이 익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카메라 감독님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니 그쪽에서 ‘오?’ 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 동안 우리 메인 댄서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one hit 분들 본 사람 없어요?」

「one hit이요?」

「오늘 대회에 나온다고 들었는데…….」

누군가 우물쭈물 말했다.

「지금 연습 중일 거예요.」

「연습이요?」

다들 리허설 구경하러 나와 있는데 혼자 따로 연습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의문을 품을 때였다.

리혁이가 속삭였다.

“그런데 말이에요.”

“응?”

“아까부터 느끼는 건데, 저 사람들 왠지 모르게 다 비주 형한테서 물러나고 있지 않아요?”

“음……?”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그거 민속춤 재미있어요?」

비주가 한 발짝 뗄 때마다, 마치 계단 오르기를 하듯 한 발짝 물러나는 해외 팬들이었다.

말레이시아 팀은 안 보이고.

왠지 모르게 이 사람들이 비주를 무서워하고.

무슨 일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어 의문을 품을 뿐이었다.

*   *   *

저녁.

화려한 레이저 쇼와 함께 K팝 페스티벌이 개막했다.

-2015년 창원 K팝 페스티벌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와아아아!”

백상중 아나운서가 메인 MC였고, 라비앙로즈의 백유진과 내가 오늘의 보조 MC였다.

-안녕하세요. 라비앙로즈 백유진입니다.

-반갑습니다. 뉴블랙 우주입니다.

내 이름에 이르러서 순간적으로 운동장이 쩌렁쩌렁 울릴 만큼 데시벨이 올라갔다.

영어로 안내 멘트를 하고, 오늘 있을 행사에 대한 소개가 이어진 후.

-네, 20개국 참가자들로 구성된 오프닝 무대!

-그럼 지금 바로 만나 보실까요?

오프닝 무대의 VCR이 흘러나오면서 MC석의 조명이 꺼졌다.

다 같이 마이크를 끄고 내린 후, 큐 카드를 확인하던 백상중이 물었다.

“아까 오면서 들었는데, 저기 커버 팀 중에서 너희가 만나서 춤 가르쳐 준 팀 있다면서?”

“네.”

각국의 커버 댄스팀이 하나하나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진짜구나. 어디야?”

“말레이시아 분들인데요. 이따 보시면 알겠지만 저기서 제일 따스한 인상…….”

“저기 나오네.”

주인공이 등장하듯이 리프트를 타고 마지막 국가의 팀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말레이시아의 ‘one hit’.

“따스하다는 팀이 저 팀?”

“…….”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들 안 그랬는데.

우승은 우리가 해야겠다는 듯 독기 어린 눈빛으로 올라오는 4인조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뭔가 잘못된 것을 만들어 낸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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