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26화
얼떨떨했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쏘옥.
박수 치는 손을 은근슬쩍 내리자, 주변에 서 있던 다른 가수들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
태연한 얼굴을 하고는 걸어갔다.
무대 정중앙에 서 있는 남녀 MC가 태연자약하게 걸어오는 내 모습을 보고는 웃음을 꾹 눌렀다.
혼자서 무대 위를 뚜벅뚜벅 걷는 동안 성우 분의 소개 멘트가 들렸다.
-뉴블랙의 우주 씨는 올 한 해 다양한 활동으로 그 이름을 알렸습니다. K팝, 드라마 OST, 영화 OST 등으로 대중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으며, 더 나아가 세계적으로…….
위인전에 나올 법한 멘트에 살짝 민망함을 느끼며 시상자들 앞으로 다가갔다.
그들이 건네는 유리 트로피를 받아들었다.
박수 소리와 수플레들의 환호로 귀가 먹먹한 가운데, 그들이 큰 소리로 외치듯 말했다.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유리 트로피에 적힌 ‘올해의 Song Writer상 : 우주’라고 되어 있는 문구를 흘깃 내려다보았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안녕하세요. 뉴블랙의 우주입니다.
스탠딩 마이크에서 내뱉은 한 마디가 체조경기장의 빵빵한 스피커를 타고 웅웅 울렸다.
-방금 보셨다시피, 제가 이 상을 받을 거라고 전혀 예상을 못하고 있었어요.
머쓱한 미소를 짓자, 가수석과 객석에서 동시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트로피를 조심스럽게 감싸 쥐고 말을 이었다.
-우선 이렇게 상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보통 이런 상은 업계에서 경험이 많으신 대선배 작곡가 분들이 받으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제가 이렇게 받아도 될지 모르겠어요.
‘아니야아아!’ 하는 어느 수플레의 외침에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이 상은 심사위원 분들께서 아마 저 혼자 받으라고 주시는 게 아니라 ‘팀 뉴블랙’을 대표해서 받으라고 주신 상 같아요. 지금까지 곡 작업에 참여한 모든 사람을 대표해서요.
동생들이 있는 가수석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물개 박수를 치는 녀석들에게 미소를 지었다.
-요즘 들어서 오롯이 저 혼자 해낼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걸 느끼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작곡에 관해서는 더더욱. 매일 ‘내가 이게 부족하구나’ 실감하는 거 같아요.
자식이 상을 탄 것처럼 가슴에 손을 올린 채 뭉클한 표정을 짓는 비주의 모습에 웃음이 나올 뻔했다.
-이 자리를 빌려 지금까지 저와 함께 작업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어요. 우리 동생들 밤에 잠도 못 자고, 밤새 일해 줘서 고맙고.
전광판에서 ‘고생했지…’ 하며 누구보다 아련한 표정을 짓는 막내를 보며 웃었다.
그러곤 스탠딩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댔다.
-지호는 잠 많이 잤잖아.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부들부들하는 막내의 모습과 함께 옆에서 좋아서 웃는 리혁이의 모습이 흘러나왔다.
같이 웃던 내가 카메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지금 이 시간에 TV를 보고 있을 우리 레몬 엔터 식구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고마워요. 여러분.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앞으로도 평생 함께 작업해요. 우리.
훈훈한 마무리 멘트에 객석에서 열렬한 박수가 쏟아졌다.
* * *
같은 시각.
서울 강남구에 있는 모 호프집.
“…….”
맥주를 나르던 알바생은 기묘한 침묵으로 가득한 테이블들을 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이 분위기는 대체 뭐지.’
마치 미국 증시가 대폭락했다는 소식을 들은 개미 투자자들 같은 표정이었다.
허망하고 공허한 표정.
한 무리의 사람들이 대형 TV를 바라보며 촉촉한 눈을 하고 있었다. 알바생의 고개가 돌아갔다.
‘망고 차트 어워드?’
매년 가수들이 상을 받는 시상식이 중계 중이었다.
뉴블랙의 우주가 무슨 상에 대한 소감을 끝내며 그 수려한 미모를 뽐낸 채 걷고 있었다.
주르륵-
속이 콱 막힌다는 듯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던 한 남자의 입가에서 맥주가 줄줄 흘러내렸다.
“저, 손님. 옷에 다 흘러…….”
“크아!”
맥주잔을 탕! 내려놓은 남자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말했다.
“한 잔… 한 잔 더 주세요.”
“엇, 네.”
알바생이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며 맥주를 더 가지러 가는 동안, 테이블에서 앓는 소리가 났다.
“아이고오…….”
“큰일났네. 우주 쟤가 평생이라고 하면 진짜 평생이잖아요. 쟤는 기약이 없는 앤데.”
“우주야. 우리한테 대체 와 이라노… 와 이라노…….”
슬퍼하는 A&R팀 직원들과 프로듀싱팀 직원들이었다.
술기운에 얼굴이 붉어진 서필근 대리가 가슴을 팡팡 쳤다.
“아니, 나는 쟤가 좀 건방져졌으면 좋겠어요!”
“맞아!”
“그냥 ‘나 천재다! 내가 최고다!’ 이런 마인드로 살아야지. 왜 쓸데없이 겸손하냐고!”
“그것도 진심으로 겸손해! 짜증나!”
주취자들의 아우성이 빗발쳤다.
빈말이라면 차라리 나을 텐데. 진심으로 매번 ‘저 많이 부족해요’ 하는 뉴블랙의 리더에게 울화통이 치밀었다.
이내 ‘으아아!’ 하던 이들이 치킨 다리를 뜯으며 흐느꼈다.
“혼자 좀 하라고. 혼자…….”
“왜 맨날 인터뷰나 여기저기에 부족하다고, 같이 해야 한다고 하고 다니냐고.”
“자식이 1조 원을 버는데 나한테 용돈 받아가는 느낌이야…….”
능력이라도 부족하면 모르겠는데, 혼자 힘으론 절대 못하겠다며 그들을 끌어들이는 뉴블랙의 리더였다.
화면 속에서 걸스온탑의 무대에 포인트 안무를 따라하며 흥얼대는 뉴블랙의 모습이 나왔다.
“그래도 또 보면 기특하고 이쁘고…….”
“우주, 내 새꾸…….”
“우리 둘리, 호이호이 길만 걷자.”
다들 촉촉한 눈으로 애정을 드러낼 때.
“여보세요.”
A&R팀장이 취기를 싹 날린 얼굴로 전화를 받으러 나갔다. ‘대표님’ 하며 입모양으로 말하며.
그리고 다시 돌아왔을 때.
“2차 장소 확정이다.”
“어디요?”
“소고기집. 대표님이 몇 백 나와도 괜찮으니까 마음껏 먹으라고 하신다.”
“……!”
“우주가 대표님한테 A&R팀이랑 프로듀싱팀 덕분에 올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고 대표님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를 했다더라.”
직원들이 미소를 지었다.
해외 투어와 더불어 올해 레몬 엔터의 모든 아티스트 중에서 가장 큰 매출을 기록한 뉴블랙이었다.
그 덕에 회사 창립 이후 역대 최고 매출까지.
이 성장세대로 가면 내년에는 레몬 엔터의 모든 탑 배우들과 스칼렛을 합친 것보다 뉴블랙이 더 매출이 높을 거라는 말이 심심찮게 회사 내부에서 돌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 까닭에 이제는 뉴블랙 멤버들이 말 한 마디를 할 때도 무게감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잠재력 있는 신인이었다면 이제는 회사를 지탱하는 기둥으로서.
박규호 대표의 판단에는 그런 아티스트의 발언이 주효했을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었다.
작곡에 참여한 직원들을 잘 챙겨 달라고 에둘러 부탁한 우주의 발언이.
“와서 따로 치하라도 하고 싶은데, 일정이 안 되신다고. 대신 나를 통해서 올해 고생 많았다고 전달 부탁한다고 하시더라.”
박 대표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생들 했어’ 하는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만 같다.
“그리고 우리.”
“……?”
“연말 보너스 엄청 나올 거 같다.”
그 순간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진 직장인들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때.
“…….”
술이 가장 많이 들어가 있었던 서필근 대리와 프로듀싱팀의 나상윤 PD가 자리에서 비척비척 일어났다.
그러더니 TV 화면 속 우주에게 손을 척 올렸다.
“충성.”
자리에 있던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 * *
현장 진행 스탭에게 트로피를 건네준 후.
자리에 돌아와 주먹을 쥐었다 피었다 하기를 반복했다. 작곡가 상의 여운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축하해여. 형.”
지호가 웃으며 속삭였다.
“그렇지만 거기서 그렇게 얘기를 해 버리면 사람들이 다 제가 맨날 자러 간 줄 알 거 아니에여.”
“맨날 자러 갔잖아.”
“……흥.”
말문이 막혔는지 콧김을 뿜는 막내의 등을 토닥거렸다. 그러곤 고맙다고 말해 주었다.
비주가 입을 가리고 말했다.
“잘했어요. 형. 우리 내년에도 이 상 또 받으러 와요.”
“그래. 그러자.”
중현이와 리혁이도 내가 작곡가 상을 받은 것이 기쁜지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기 일처럼 설레 하는 동생들에게 웃는 한편, 옆자리에서도 축하한다는 듯 웃는 태현이와 눈이 마주쳤다.
‘곡…….’
하며 자기 자신을 톡톡 치며 ‘알지?’ 하는 표정을 보냈다.
어딘가에서 직캠을 찍고 있을 수도 있어서 감사의 의미로 꾸벅하고 답례 인사를 보냈다.
그러고는 이어지는 무대들을 즐겼다.
올해 신인상을 수상한 에노티와 하이컬러의 무대도 있고, 특별상을 수상한 세레니티의 무대도 있었다.
“너너너~”
“끝내버릴 거야~”
그때마다 포인트 안무를 따라하며 노래를 흥얼거려서 그런지, 전광판에 모습이 자주 잡혔다.
“…….”
발랄하게 ‘츄츄’ 하는 안무를 하다가 전광판에 잡혔을 때 근엄하게 변하는 우리 모습에 주변에서 웃었다.
생수병을 마이크 삼아 랩을 따라하던 우리 막내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생수를 따는 모습에 우리도 옆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1부와 2부의 무대를 즐길 때.
“축하드립니다! 뉴블랙!”
2부가 시작되고 나서는 올해 가수 중에서 Top 10에 선정되어서 상을 받았다.
“수플레!”
와아아아악! 해 주는 수플레들을 부르며 짧은 수상소감을 이어 나갔다.
고요한 체조 경기장에 우리 한 마디가 퍼져 나갈 때마다 물결처럼 크게 응원해 주는 팬들이었다.
조명이 우리를 환하게 비추는 까닭에 객석의 얼굴들을 일일이 볼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우리처럼 뭉클한 기분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작년도 시상식에 와서 Top 10 선배님들을 보고, 정말 우리도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꿈이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정말로 뭉클했다.
오늘따라 평소와 다르게 꿈결 같은 시간이 이어지는 것만 같다고 할까.
작곡가 상과 올해의 Top 10.
그리고 뮤직 비디오상이라든가, 댄스 그룹 부문, 인기상 등에도 후보 VCR에 우리의 이름이 꼭 끼어 있었다.
“…….”
뿌듯하고 기뻤다.
정말로 올라왔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빠져나가지 않고 계속해서 엔돌핀처럼 돌았다.
그리고 그 사이.
“뉴블랙-!”
“네.”
“내려와서 준비하실게요.”
2부에서 우리의 무대를 할 시간도 돌아왔다.
* * *
암전된 무대.
장치가 세팅되는 소리만이 어렴풋이 들리는 곳에서 관객들이 흥미로운 시선을 보냈다.
이제 뉴블랙의 무대였다.
어두운 무대에서 뉴블랙으로 추정되는 실루엣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와아아아아악!”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터져 나오는 환호성에 자리에 참석한 이들이 눈을 크게 떴다.
‘뭐야.’
‘얘네는 오프 동원력이 미친 건가. 아니면 진짜로 이만큼 큰 건가?’
범상치 않은 환호의 크기에 약간 주춤하게 되는 느낌이었다.
전광판에 뉴블랙이 잡힐 때마다 나오는 환호성.
그리고 약한 밝기에도 왠지 모르게 눈뽕을 자극하는 응원봉들이 어둠 속에 한둘이 아니었다.
‘이미지의 괴리가…….’
예전에 알던 뉴블랙과 달라서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와 자꾸만 충돌을 하고 있었다.
전에는 뉴블랙 하면 ‘대중성 좋은 아이돌’ 정도였는데.
지금까지 떴다고 말만 들었지, 실제로 어워드에서 그 화력을 체감하니 묘한 기분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대형 기획사도 아니고, 중소 기획사에서 내보낸 신인이 1년 만에 이렇게까지 올라왔다는 거니까.
그 성장세에 저도 모르게 감탄이 나올 때.
“와아아아아아!”
다시 한번 귀청이 찢어질 듯한 비명과 함께 무대가 밝아 오르기 시작했다.
척 보기에도 돈 깨나 들었다 싶은 세트.
마치 전시가 끝난 박물관처럼 조각상들에게 천이 씌워져 있었다. 그 사이를 오가며 춤을 추는 댄서들.
첫 번째 천이 걷히고.
뉴블랙의 우주가 전광판을 가득 채운 단독샷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잔잔한 전주.
관객들 모두가 알고 있는 ‘바람꽃’의 한 소절을 부르며 움직이는 리드보컬이었다.
‘우와…….’
화려해 보이는 메이크업이 시선을 확 끌었다.
회색 머리 아래 발간 눈가의 글리터가 반짝거리며 그곳에 시선을 뺏기는 동안 우주가 움직였다.
댄서들 속에서도 돋보이는 춤선이었다.
단정하면서도 여유롭게 이어지는 동작으로 우주가 곳곳에 늘어서 있는 조각상에게 다가갔다.
‘우와.’
‘저거 못하면 존나 숙연인데…….’
자칫하면 민망한 분위기가 십상인 평범한 독무인데, 느낌을 잘 살리는 리드보컬이었다.
하나하나 생명력을 불어넣듯이 톡 칠 때마다 천이 스르륵 흘러 사라지면서 멤버들이 나타났다.
이내 완전체가 된 뉴블랙이 본격적으로 바람꽃의 무대를 시작했다.
올려다볼 필요도
돌아설 필요도 없이
메인보컬의 맑은 목소리가 체조경기장의 공기를 파아란 빛으로 가득 물들이는 듯했다.
‘현장에서 들으니까 대박 좋다.’
‘얘네 무대 잘하네.’
의상마다 소매에 끈이 달려 있는데, 그들이 가볍게 춤을 추며 움직일 때마다 천이 살랑였다.
마치 뉴블랙의 주변으로 꽃들이 하늘에 날아다니듯이.
어느새 댄서들이 물결처럼 빠져나갔지만, 그 5명으로도 허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무대 동선이 움직일 때마다 마치 파동이 일듯이 뭔가를 뿜어내는 듯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이래서 떴구나.’
저절로 납득이 갔다.
음악방송의 정면 카메라만 봤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생동감과 속도감이 느껴졌다.
바람꽃처럼 잔잔한 노래에도 무대 동선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거의 나는 듯한 움직임.
뒤에 있던 멤버가 체감상 전속력으로 느껴질 만큼 빠른 속도로 다가와 노래를 부르고 넘어가는 식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진짜로 감탄한 부분은 따로 있었다.
‘내가 노래 가사를 다 알고 있네.’
‘이거 얘네 노래였지.’
바로 모두가 가사를 알고 있는 바람꽃이었다.
상반기 내내 음원차트 최상위권에 위치해서, 아침에 100위 차트를 랜덤으로 틀 때마다 나왔던 노래.
그 노래를 부른 가수가 누구였는지 새삼스럽게 상기할 때.
“와아아아아!”
바람꽃이 끝나고 새로운 무대가 이어졌다.
잠시간의 암전 후.
잔잔하면서도 트렌디한 바람꽃의 전주가 끝나자마자 새롭게 이어지는 곡이었다.
It’s nine nine nine-
현재 시각 9시.
절묘한 타이밍에 재생되는 노래의 전주에 곳곳에서 환호성이 쏟아졌다.
현재 차트에 머물러 있는 곡 중에서 가장 핫한 노래.
‘Nine’이었다.
“와아아아아아!”
삽시간에 클럽 분위기로 바뀌어서 신나게 방방 뛰는 관객들.
무대 위에서는 뉴블랙이 올라가 있는 대형 리프트가 허공으로 상승하는 중이었다.
-자, 여러분 다 같이!
객석에서 다양한 응원봉이 흔들리는 가운데.
신나게 흥을 돋우는 멤버들의 모습과 더불어 가수석에서 어깨를 흔드는 가수들의 모습이 전광판에 흘러나왔다.
다 같이 즐기는 분위기였다.
다른 아이돌의 노래는 잘 몰라도 이건 안다, 하는 반응을 보여 주듯 신나게 노는 관객들이었다.
축제처럼 흥겹게 변한 분위기 속에서 리프트가 다시 서서히 내려오고.
메인 댄서의 주도 하에 군무가 펼쳐질 때마다 무대의 불꽃이 치솟아 올랐다.
더 뜨겁게 타올라
오늘도 빛나게-
하이라이트에 이르러 ‘파앙’ 하며 터지는 축포에 다시 한번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마치 올해의 가수가 등장한 것처럼 뜨거운 반응이었다.
* * *
무대를 끝내고 나니 그제야 긴장이 좀 풀어지는 느낌이다.
“후우…….”
가수석에 앉아서 동생들과 생수병만 말없이 벌컥벌컥 들이켰다.
여전히 숨이 가쁘지만 기뻤다.
전에는 ‘너희 무대 잘하는구나’ 하는 격려의 박수였다면, 이번에는 다른 의미의 박수였으니까.
무대 호응이 작년과 압도적으로 달랐다.
아마도 모두가 아는 노래여서 그런 듯했는데, 다른 아이돌 팬들이 환호해 준 덕에 공연을 하는 내내 컨디션이 최고조였다.
“저 하늘의 끝까지~”
“우린 손을 놓지 않기~”
그 덕분인지 우리에 이어서 틴스피릿과 TNT가 공연을 하는 동안에도 열심히 응원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20분간 올해의 주인공처럼 TNT가 마무리를 했을 때.
마침내 대상 시상이 시작됐다.
-네, 올해 최고의 성적을 거둔 가수들에게만 주어지는 영예로운 대상을 시상할 차례인데요.
MC를 맡은 배우 유백한이 시상자를 소개했다.
-시상은 트로트 가수 백상교 님과 모델 한소라 님이 함께 해 주시겠습니다.
드레스를 입은 배우와 정장을 입은 중년 가수가 문을 통과해서 나타났다.
두 시상자가 인사를 한 후.
-영예로운 대상. 그 첫 번째 상을 시상할 텐데요. 바로 올해의 노래 상입니다.
-정말 쟁쟁한 후보들이 많은 한 해였죠?
-오늘 어떤 가수가 과연 이 상을 탈지… 정말 기대가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백상교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후보들을 만나 보실까요?
-Let’s play!
남녀의 호응에 맞추어 전광판에 후보가 흘러나왔다.
-차우현의 ‘바람에 떠나와’
뮤직 비디오와 함께 익숙한 발라드곡이 체조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작은 환호.
이어서 다른 MV에 익숙한 얼굴들이 나왔다.
-TNT의 ‘Glory’
어마어마한 함성이 경기장을 휩쓸었다.
TNT가 올해 하반기에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노래였다. 월간 차트 1위였나.
그리고.
-뉴블랙의 바람꽃.
비주가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는 뮤비의 한 장면과 함께 흘러나오는 우리 노래였다.
수플레들의 함성과 함께 우리가 침을 삼켰다.
대상.
올해의 노래상.
손바닥이 축축할 정도로 땀이 배어나왔다. 서로를 바라보던 우리가 심호흡을 하면서 기다렸다.
괜히 바지에 손바닥을 문지르고.
그 짧은 10초 동안 침을 수십 번은 삼켰다.
“…….”
긴장되어서 가슴이 뛰는 소리가 내 귓가에 쾅쾅 울리고, 왠지 모를 오한을 느낄 때.
숨을 쉴 때마다 숨이 잘게 떨려 나올 때였다.
-2015 망고 차트 어워드. 그 영예로운, 올해의 노래 상의 주인공은?
모든 게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백상교 선생님이 주섬주섬 봉투를 뜯어서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을 꺼내더니 미소를 지었다.
-네. 축하드립니다.
입술이 천천히 움직이는 게 보였다.
-뉴블랙의 바람꽃!
바로 그 순간.
온몸의 긴장이 탁 풀리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동생들과 내가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귓가에 한 발짝 늦게 들려오는 수플레들의 환호성과 함께.
우리는 서로를 얼싸안으며 울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