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30)화 (330/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30화

“자, 하나 둘 셋.”

내 구호에 맞추어 동생들이 입을 열었다.

손뼉을 짝짝 치면서 시작한 노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리혁이 체기 뚫어 줘서 감사합니다~”

“…….”

우리 애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가운데, 비주와 내가 화음을 넣었다.

‘축하합니다’를 개사한 노래였다.

자리에 참석해 있던 여덟 명의 수험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와아아아-!”

“뭐가 와아야, 이 인간들아!”

“우아아아아!”

다 같이 박수를 치며 마무리를 했다.

떠들썩한 웃음으로 가득한 곳에서 내가 말했다.

“여기 계신 분들이 수능 날 리혁이 체기를 뚫어 주셨다고 들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진짜 감사해여. 만약에 그대로 체해서 시험 망쳤으면, 돌아와서 저희한테 짜증 왕창 부렸을 거거든여.”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생각만 해도 끔찍.”

중현이가 ‘호러블’ 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 동안 웃고 있는 수험생들에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감사의 의미로 이렇게 초청을 했어요. 오늘 드시고 싶은 거 다 시켜 드시면 돼요.”

막내가 중요한 게 있다는 듯 외쳤다.

“하와이안 피자 빼고!”

“아. 하와이안은 빼고요.”

음식점 안에 웃음이 감돌았다.

강남의 모 피자 프랜차이즈.

손님이 적은 시간대에 가게를 통째로 빌려서 수능 날 리혁이의 체기를 뚫어 준 의인들을 초대했다.

원래는 더 비싼 음식을 사주려고 했는데, 다들 부담스럽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그냥 피자나 치킨 류를 사달라고.

“맛있어요?”

“네, 네…….”

“많이 먹어요. 콜라 리필해달라고 할까요?”

맞은편에서 피자를 먹는 수험생들에게 말을 거는데, 그때마다 다들 굉장히 부담스러워했다.

비주가 웃으면서 내 옆구리를 톡 찔렀다.

“형, 다들 체하겠어요.”

“나는 그냥 얘기를 하려고 한 건데…….”

맞은편의 고3 학생들이 어색하게 웃었다.

낯을 가려서 그런지 나와 동생들을 굉장히 어색해하는 눈치였다.

비주가 속삭였다.

“형, 그게 아니고 지금 되게 아들 친구들이랑 친해지고 싶어 하는 아빠 표정이에요.”

“…….”

너무 인자한 미소를 지었던 게 문제였던 모양이었다.

말없이 포테이토 피자를 쏙 들어서 베어 물자 옆에 있던 막내가 큽 하면서 비웃었다.

머쓱하게 피자를 먹으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그때마다 반응이 돌아왔다.

“…….”

다들 내 얼굴을 흠칫하며 힐끔거리다가 피자 토핑을 떨어뜨리기 일쑤였다.

“제가 좀 부담스러운가요…?”

“아뇨. 그게 아니고…….”

학생 중 하나가 말했다.

“진짜 잘생기셔서…….”

“어머, 감사합니다.”

“방송에서 본 거랑 느낌이 너무 달라요.”

“그죠? 지금 느끼신 걸 주변 학생들에게 열심히 퍼뜨려 주세요.”

“저는여? 저는?”

막내가 고개를 쑥 들이밀었다.

대답을 하던 학생이 ‘오’ 하다가 옆에 있는 나와 번갈아 보더니 ‘흐음’으로 변했다.

“잘생겼어요.”

“아, 뭐예여. 나 흥 깨졌어.”

‘흥’ 하고 투덜대는 막내에게 내가 ‘에베베베’ 하며 놀리자 웃음이 감돌았다.

분위기가 금세 편해졌다.

처음에는 우리를 어색해하다가 이내 하찮은 모습에 친근함을 느낀 모양이었다.

그때부터 대화의 물꼬가 트였다.

“그날 많이 체한 거 같은데, 시험은 잘 봤어요?”

“아.”

누군가의 물음에 리혁이가 티슈로 입가를 슥슥 닦고 답했다.

“아뇨. 엄청 잘 본 줄 알았는데,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별로…….”

“아아…….”

공감한다는 표정을 짓는 수험생들에게 리혁이의 말이 이어졌다.

“수학은 공부를 안 해서 망쳤지만, 다행히 국어랑 영어는 1등급 나오긴 했어요.”

급격한 침묵이 감돌았다.

리혁이가 ‘아’ 하며 웃었다.

“한국사도요.”

“되게 잘 보셨구나…….”

“스케줄 때마다 틈틈이 공부를 했더니 괜찮게 봤나 봐요.”

피자를 먹고 있던 수험생들이 어딘가 자괴감 가득한 표정으로 웃었다.

‘쟤가 저럴 동안 나는…’ 하는 느낌이었다.

“아, 맞다.”

수험생 중 하나가 책가방을 쭉 열며 말했다.

“저 한국사 요약 볼 때, 그 역사탐험대 사이트에서 준 자료로 했는데.”

“정말요?”

“네, 역사 쌤이 이게 EBS 것보다 더 나은 거 같다고, 학년 전체에 쫙 뽑아서 돌렸어요.”

“크으.”

뿌듯했다.

이내 리혁이가 홍조 가득한 얼굴로 역사탐험대 요약집에 친필 사인을 하는 모습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대화 주제가 거기에 이르자 우리가 질문을 꺼냈다.

“요새 학교에서 누가 인기예요?”

“어.”

“티엔티? 틴스피릿?”

우리의 물음에 그들이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더니 답했다.

“뉴블랙이요.”

“……?”

“저희 학교에서 인기 진짜 많아요. 쉬는 시간에 나인 춤 따라하는 애들도 있고.”

“오…….”

“아이돌 좋아하는 여자애들 보면 틴스피릿이 더 많은데… 노래는 뉴블랙 노래를 더 많이 듣는 거 같아요.”

신기해하는 우리 모습에 그들이 ‘알고 묻는 줄 알았는데…’ 하며 중얼거렸다.

그러곤 아마 내년에 수련회 같은 데서 장기자랑하면 ‘나인’이 엄청 나올 거 같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동생들을 획 돌아보았다.

“얘들아.”

“형…….”

“우리 성공했다……!”

우리끼리 손을 맞잡고 감격해하는 모습에 콜라를 마시고 있던 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인기조사 이야기가 나온 후.

“저, 근데 그 사간에서 특공대 간 거요. 진짜 말 안 해주고 막 데려가는 거예요?”

“예능 같은 거는 어떻게 찍어요?”

연예계나 방송 현장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들에게 우리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되게 신기한지 피자를 먹는 와중에도 ‘오오’ 하는 반응이었다.

즐겁게 대화를 하는 가운데 겸사겸사 미리 준비했던 질문도 꺼냈다.

“요즘은 어떤 음악을 많이 들어요?”

“음악이요?”

“네. 주변에서 이것 많이 듣는 거 같다든가. 아니면 뭐가 인기가 있는 거 같다든가.”

“요새는 노스탤 OST요.”

그거 말고 다른 거를 물으니 ‘나인이요’ 하는 대답이 나왔다.

결국 우리 노래를 빼고, 요즘 인기 있는 노래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의견을 들었다.

소중한 기회였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관계자인 터라 일반 대중의 의견을 듣기 힘드니까.

A&R팀과 프로듀싱 팀은 업계에서 오래 활동한 고인물이라 취향이 독특하고.

매니저들이나 스탭들은 음방 활동을 함께 하기에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노래들까지도 빠삭한 사람들이라 대중이라 말하기 힘들었다.

“일렉트로닉 느낌이 들어간 곡을 많이 듣나 보네요.”

“네. 들으면 신나서.”

스파게티를 돌돌 말며 먹던 이에게 물었다.

“그럼 요새 ‘이런 노래’ 듣고 싶다. 그런 거 있어요?”

“으음…….”

수험생들이 고민하다가 말했다.

“약간 잔잔한 노래?”

“요새 차트 들어보면 다 뚠뚠빵빵 하는 클럽 노래 아니면 발라드 OST 그런 느낌이긴 해서.”

“잔잔하다가 빵 터지는 노래 같은 거?”

잔잔한 곡이라.

아무래도 댄스 곡 위주인 아이돌 활동에 반영하기에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할 때.

누군가의 말이 귓가에 선명히 들어왔다.

“겨울이라 그런지, 겨울 노래 듣고 싶어요.”

“음?”

턱을 괴고 있던 손을 풀고 물었다.

“겨울 노래요?”

“네. 겨울이니까.”

“겨울에 나오는 사랑 송 같은 거 말하는 건가요? 막 이 겨울이 오면 네 생각 나~ 이런 거.”

“아뇨.”

상대가 단호하게 말했다.

“사랑 노래 말고 그냥 겨울 느낌 나는 노래요.”

‘사랑 노래 짱 싫음’하는 반응에 다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나저나 겨울 시즌 송이라.

좋은 아이디어였다.

우리끼리 방 안에서 회의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것도 새롭고 좋다고 할까.

그 뒤로 이런저런 이야기로 수다를 떨고는 피자 가게를 나섰다.

쌀쌀한 11월 날씨.

패딩과 코트를 여미는 이들에게 우리가 매니저 형들에게 건네받은 봉투를 내밀었다.

“이건 저희가 준비한 선물이에요.”

“우와. 감사합니다.”

“추운데 다들 잘 들어가요. 대학 입학원서 쓸 때도 다들 대박 나시길 기원할게요.”

“감사합니다!”

그들에게 손을 흔들며 떠나려고 할 때였다.

누군가 물었다.

“이거 페북에 올려도 돼요?”

“음…….”

괜찮을 것 같았지만, 일단 매니저 형들에게 시선을 돌리니 OK 사인이 떨어졌다.

웃으며 답했다.

“네. 돼요.”

“감사합니다! 저 학교 가서 자랑하려고요.”

“홍보 잘 부탁드릴게요.”

얌전하게 좋아하는 학생들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   *   *

곧이어 자리에 참석했던 수험생들의 SNS에 뉴블랙과 찍은 인증샷 등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선물로 받은 만년필과 담요, 에코백 등도 올라오고.

SNS 등에 전체공개로 된 게시물은 곧바로 수플레들의 관심을 끌었고, 여러 커뮤니티에도 퍼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진짜 선물 상태 뭐임

-담요ㅋㅋㅋㅋ 저거 어케 쓰냐고

-절대 못 쓰지ㅋㅋㅋㅋㅋㅋ

-선물이 아니라 선빵을 날린 수준인데

-저거 근데 겁나 따뜻해보이긴 하다

-근데 만년필 저거 비싼 거 아님?? ㄷㄷㄷ

-쟤네 버는 거에 비하면 뭐 푼돈일듯ㅎ

‘반도의 흔한 은혜 갚는 아이돌.jpg’ 등으로 커뮤니티에 글이 퍼지고 있을 때.

연예부 기자들도 재빨리 기사를 옮기고 있었다.

-뉴블랙, 수능날 멤버 도와준 수험생과 만났다..“훈훈하네”

-“감사합니다” 뉴블랙, 리혁 체기 뚫어준 학생들에게 선물 세례

-‘팬서비스도 A급 아이돌’ 뉴블랙의 수험생 만남 “화제”

수능 날의 해프닝이 훈훈한 미담이 되어 인터넷에 이야기가 도는 동안.

뉴블랙 멤버들이 얌전하다고 생각했던 고3 학생들은 저마다 홍보 활동을 하는 중이었다.

어느 고등학교 복도.

“푸흡!”

“존나 웃겨, 쟤 뭐야?”

“쟤 3반에 웃긴 애 아닌가?”

뉴블랙 멤버들의 얼굴이 러시모어 산처럼 프린팅된 담요를 몸에 두르고 위풍당당하게 걷는 학생이 있었다.

옆에서 화장실을 함께 가는 중이던 친구들이 한숨을 쉬었다.

“그거 좀 벗으라고!”

“지나갈 때마다 다른 반 애들이 존나 비웃네. 야, 벗어.”

“노노.”

당사자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안 들림블랙.”

“뭔 거지같은 말투냐고. 그건 또.”

“이제부터 말끝에 뉴블랙 붙이기로 했블랙.”

“…….”

“가끔은 뉴.”

‘뀨’ 하듯 ‘뉴’ 하는 수험생.

화장실 앞에 다다른 학생이 이내 왕처럼 망토를 벗어서 접더니 친구에게 내밀었다.

친구가 인상을 썼다.

“또 뭐, 이 새꺄.”

“이곳은 불결한 곳. 들고 대기해블랙.”

“…….”

“아아아악! 내 소중한 담요!”

이내 친구에게 멱살을 잡혀서 괴로워하는 수험생이었다.

한편, 선물을 받은 다른 학교의 학생들도 비슷했다.

학교가 끝나고 고3 학생들이 모인 PC방.

“야. 아이디 바꾸라고!”

“내 맘임.”

“아. 진짜. 너 ‘뉴블랙 오빠들 지구뿌셔’ 그거 그대로 가면 나 친구 삭제한다. 진짜임.”

“……지는 ‘네가 가라 하와와’면서.”

이내 ‘뉴블랙 오져요’ 하는 닉네임으로 바꾼 고3 학생이 팀전으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적군을 제거할 때마다 그의 손가락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님 뉴블랙 아심?

-개오짐

-잘 모름? 그니까 나한테 죽지ㅋㅋㅋㅋㅋ

곧바로 날아오는 욕설에 후훗 웃는 수험생.

곳곳에서 광기 어린 방법으로 뉴블랙의 인지도를 넓혀주고 있는 수능 끝난 고3들이었다.

*   *   *

수능 날 있었던 고3 학생들과의 만남은 꽤 여러 곳에 퍼진 듯했다.

한태현 [저 잠시 실례하겠읍니다.]

한태현 [뉴블랙 담요를 사려고 하는데 얼마인지요?]

한태현 [4명 공동구매 될런지요,, 총총]

주변에서 우리 멤버들의 얼굴이 들어간 담요를 탐내고 있었다.

내 얼굴 프린팅 된 담요도 파냐고 묻는 한모 씨에게 재고가 없다고 하니 슬퍼했다.

그래서 뉴블랙 로고가 들어간 냄비 받침을 주기로 했다.

한편.

우리에게 광고가 들어올 뻔했다는 이야기가 들었다.

“소화제 광고?”

“응.”

우리 실장님이 말했다.

“리혁이 먹은 음료 얘기가 퍼져서 그런지. 빠르게 온라인 바이럴에 쓸 거를 하나 찍자고 이야기가 오더라고.”

“그런데?”

“너희 단가를 잘 모르더라고. 짧게 하면 싸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나 봐.”

“……?”

“거기 담당자가 정확한 광고 단가를 듣더니 그 다음부터 연락이 없더라.”

“아앗.”

광고주가 튀었다는 이야기에 웃음을 흘렸다.

연이은 히트곡과 더불어 예능 인지도로 몸값이 엄청나게 오른 덕분에 어지간한 광고주들은 도망을 치고 있었다.

콘서트 즈음만 해도 ‘네고 좀 해 볼까~’ 하고 찔러보는 회사들이라도 있었는데.

요즘은 정말 메이저한 곳에서만 들어오는 것 같다.

아니면 지금처럼 ‘뉴블랙! 우리랑 함께 해…흐아악!’ 하며 도망치는 광고주들이거나.

“뭐, 최근에 면세점이랑도 이야기가 오가고 있으니까.”

“오오.”

한류 스타들만 섭외된다는 면세점 홍보 모델에 위촉할지를 두고 물밑 협상 중이란 이야기에 감탄이 나왔다.

매니저가 웃으며 말했다.

“요새 너희한테 들어오는 광고나 행사들 보면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정말.”

“앞으로도 더 두근두근하게 해 줄게.”

우리의 말에 상대가 웃었다.

매니저로부터 11월에 있을 북미와 남미 해외 팬미팅에 대한 설명을 간략하게 들은 후 작업실로 향했다.

“자, 어서 상석에 앉아라.”

리혁이를 작업실 상석에 앉혔다.

다음 앨범의 주인공으로 한 만큼 이번에는 리혁이의 의견이 가장 중요했다.

“뭐, 미리 생각한 거 있어?”

“음…….”

우리가 말했다.

“춤 안 추는 거 안 됨.”

“고음 겁나 쩌는 노래 부르자고 하는 거 안 돼여.”

“랩 없이 노래만 하는 거 안 됨.”

“…아니. 내 의견이 제일 중요하다면서요. 이 사람들아.”

황당해 하는 표정을 짓는 리혁이에게 우리가 웃으며 손을 저었다.

“농담이야. 농담.”

“…….”

“그래서 뭐 하고 싶은 게 있어?”

리혁이가 뉴블랙 에코백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서 건넸다.

‘다음 타이틀곡 기획안’이라고 되어 있는 14 페이지짜리 A4 용지였다.

한 번 읽어보라는 말에 우리가 꼼꼼히 살피며 말했다.

“이야, 춤추기 싫다는 말을 여러 다른 표현으로 14페이지나 썼구만.”

“이 정도면 리스펙 해줘야 하는 거 아닐까요.”

“춤이 그렇게 힘들어. 리혁아?”

비주의 질문에 리혁이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시선을 피했다.

“아니, 뭐 그렇게 힘든 건 아닌데.”

메인보컬이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솔직히 지금까지 우리가 보컬을 제대로 선보일 기회가 없었잖아요. 명곡단에서 보여주긴 했지만, 엄연히 그건 다른 선배 가수님들의 곡이었고요.”

“그랬지.”

“이번에는 제대로 보컬을 한 번 보여 주는 게 어떨까 싶어요.”

“바람꽃으로 했잖아?”

내 물음에 상대가 진지하게 물었다.

“망고 들어가 봐요. 바람꽃도 댄스곡으로 분류되어 있어요.”

“댄스곡이긴 하지.”

처음에는 보컬 곡으로 기획하긴 했지만 바람꽃은 트렌디한 팝송에 가까운 노래였다.

솔직히, 보컬과 댄스 중에 뭐가 더 비중이 크냐고 하면 댄스가 더 큰.

아이돌로서의 타이틀곡이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했다.

“보컬 곡으로 가면 수플레들이 별로 안 좋아할걸. 특히 발라드 느낌으로 가면.”

“그건 나도 알아요.”

우리의 음악적인 색깔과 발라드는 그리 어울리는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솔직히 미공개한 곡 중에 좋은 게 엄청 많잖아요. 지금 하드에만 수십 개가 있고.”

“아, 맞아. 아까운 곡 되게 많은데.”

비주가 동조했다.

내 작업실 컴퓨터에 들어 있는 미공개 곡들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좋긴 한데 아이돌 노래라고 하기에는 애매해서, 일단 하드에 보관하고 있는 것들.

내가 수긍하고는 물었다.

“그런 곡들을 손봐서 내놓자는 거지?”

“네. 발라드가 아니라 우리 보컬 색을 살릴 수 있는, 그리고…….”

녀석이 말했다.

“얼마 전에 나 도와준 수험생들이랑 만나서 얘기했을 때, 그런 이야기 들었잖아요.”

“아. 겨울 노래.”

“시즌 송 느낌으로 내어놓아도 좋을 거 같고. 또, 우리가 뮤카로 아티스트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은 했으니까.”

뮤직 카페에서 대중들에게 ‘쟤네 음악하는 애들’ 하는 이미지를 보여 준 김에 다음 곡으로 굳혀보자는 이야기 같았다.

“으음…….”

내가 고민할 때, 막내가 물었다.

“근데 그런 곡으로 타이틀곡 해버리면 좀 그렇지 않아여? 일단 우리는 아이돌 활동이 먼저잖아여.”

그 말도 맞았다.

리혁이가 말하는 보컬 곡의 의도도 좋긴 했지만, 다음 앨범을 그런 구성으로 하기엔 무리가 컸다.

잠깐 이벤트성으로 한다면 모를까.

한두 푼도 아니고 억대의 예산이 들어가는 앨범을 도박수로 만들 수는 없었다.

리혁이가 말했다.

“디지털 싱글은 어때요? 컴백은 봄이니까 그 사이 겨울에 한 곡 시범 삼아 내놓는 식으로.”

디지털 싱글.

실물로 나오는 앨범 대신에 온라인으로만 음원을 발표하면 어떠냐는 의견이었다.

거기 앨범 커버를 파란색으로 하고. 내년 봄에 컴백할 앨범은 나를 위주로 한 보라색으로.

“나도 그 생각을 하긴 했는데…….”

작업실 선반에 놓인 우리 앨범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저기 무지개에 색이 비잖아.”

“…….”

“수플레들이 열심히 모으고 있는데. 빨노초 한 다음에 갑자기 보 하면 이상할 거 같지 않아?”

“그러네여. 수집하다가 갑자기 빈정 확 상할 듯.”

막내의 말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고민이 깊어지긴 했다.

“아이디어가 좋긴 한데…….”

우리만의 특색 있는 음악으로 겨울철에 디지털 싱글을 내보는 것 어떠냐는 이야기.

내년 초의 일본 투어 때문에 어차피 컴백은 아무리 빨라도 봄이었다.

그 사이의 공백을 채울 겸, 디지털 싱글을 내놓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색깔로서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는데 여기서 중간에 비는 것도 좀 이상하고.

“이건 조 이사님이랑 얘기를 해 봐야겠다.”

요새는 우리가 프로듀싱을 다 하는 터라 어지간한 선에서는 다 나와 부서들 간에 협의로 끝나지만.

이렇게 고민이 되는 사안에서는 총 프로듀서인 조규환 이사님에게 묻는 게 좋을 듯했다.

“일단 조 이사님이랑 이야기를 하고 나서.”

내가 다이어리를 펼치며 말했다.

“우리끼리만 아이디어 회의를 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게 나을 거 같아.”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A&R팀 통해서 같이 일할 사람들을 좀 불러볼까?”

동생들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 의견을 전달 받은 A&R팀 직원들도 이내 행복한 표정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   *   *

그로부터 얼마 후.

각지에 흩어져 있는 핸드폰들에 전화가 걸려오고 있었다.

“오.”

“오호…….”

“어머.”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용건에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미소를 짓는 이들이었다.

“아유. 좋죠.”

“미팅은 언제로 잡을 건데요?”

“음. 잠시만요. 스케줄표 보고.”

원로 가수 노재현을 통해 뉴블랙을 소개 받은 이들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진짜로 같이 작업 하고 싶나 보네.’

‘오, 좋다.’

요즘 아이돌 중에서 음악으로 가장 잘 나가는 보이그룹이 앨범 참여 요청을 하고 있었다.

한 발 걸치면 인지도 등이나 커리어에 있어서 좋은 상황.

그리고 그런 사람들 중에는.

“하 엠씨님, 표정이 왜 그래요? 좋은 일 있으세요?”

“별일 아니에요.”

누구보다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 작곡가이자 뮤직 카페의 진행자인 하승주가 있었다.

‘재미있겠는데?’

지난번에 본 뉴블랙의 즉흥작곡을 떠올리며, 음악인은 잔뜩 기대감에 부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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