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31화
“안녕하세요, 이사님!”
“어서 들어와.”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던 미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티벳 여우를 닮은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우와아.”
우리가 사무실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인테리어가 바뀌었네요.”
오랜만에 방문해서 그런지 인테리어가 싹 바뀌어 있었다.
데스크도 더 고급진 원목 재질로 바뀌고, 책장에도 독특한 장식물들이 가득했다.
원래도 좋아 보였던 장소가 마치 호텔 방처럼 변했다고 할까.
“와, 잠깐 우리 집에 온 줄 알았어여.”
“…….”
“울 아빠 서재 들어가면 이런 느낌인데.”
눈을 깜빡이던 우리가 이내 ‘근데 울 아빠는 책을 안 읽어여’ 하는 막내의 말에 웃었다.
조규환 이사님이 농담조로 말했다.
“이거 다 이번에 너희가 번 돈으로 바꾼 거야.”
“정말요?”
“너희가 돈을 엄청 많이 벌어서.”
픽 웃는 상대에게 나도 웃으며 말했다.
“그럼 더 비싼 걸로 하시지. 제가 예쁜 거 추천해 드릴까요? 꽃이 만개한…….”
“우주야. 일 이야기 하자. 일.”
갑작스럽게 일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하는 모습에 나와 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일단 먼저 앉아.”
우리가 사무실 중앙의 소파에 앉는 동안 조 이사님이 찬장으로 다가가 잔을 꺼냈다.
“리혁이는 차 맞지?”
“엇, 네.”
“일어나지 말고 앉아 있어. 내가 한 잔 타 줄 테니까.”
찻잔에 티백을 넣은 이사님이 손을 부드럽게 놀렸다.
그러면서 사무실 책장을 열었다.
“우와…….”
그냥 나무 합판인 줄 알았는데 냉장고 뚜껑이었다.
비밀 통로를 발견한 초딩들처럼 감탄하는 우리 모습에 상대가 웃음을 흘렸다.
“우주 너는 초코 음료.”
“넵.”
“비주랑 지호는 탄산음료. 중현이는 솔…….”
“맞아요.”
공손하게 소나무 음료를 건네받는 중현이의 모습에 이사님이 멈칫하고 물었다.
“그거 맛있니…?”
“네.”
새끼손가락으로 퉁, 하고 캔을 따는 모습에 ‘중현이니까’ 하며 납득하는 이사님이었다.
이내 리혁이의 차까지 완성된 후.
맞은편에 다리를 꼬고 앉은 이에게 물었다.
“근데 이런 음료수가 어떻게 다 들어 있네요?”
“너희가 좋아하는 걸로 미리 준비해 뒀지. 사무실의 가장 중요한 손님이기도 하고.”
그가 싱긋 웃으며 차를 홀짝였다.
그러곤 주변을 둘러보라는 듯 턱짓을 하며 말했다.
“사실, 인테리어를 바꾼 것도 너희 때문이라.”
“저희 때문이요?”
“너희가 올해 엄청 성공한 것 덕분에 요즘에는 찾아오는 손님들이 예전과는 좀 달라졌어.”
이사님이 말했다.
“엔터 사업은 아무래도 눈에 보이는 게 가장 중요한 분야라.”
“아아.”
“조만간 로비를 비롯해서 전면적으로 인테리어를 바꾸긴 할 거야.”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소속 가수뿐만 아니라 사옥 역시 연예 기획사의 이미지 관리에 해당하는 분야니까.
TJ 엔터가 ‘우리 잘나가요’를 보여주기 위해 청담동 사옥 로비를 호텔처럼 꾸민 것과 같은 이치였다.
회사 손님들이 ‘뉴블랙으로 돈 엄청 벌었다고 하지 않았나?’ 하고 찾아왔는데 사옥이 우중충하면 미심쩍듯이.
“그래서.”
차를 들이켠 상대가 눈을 반개했다.
“이번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서.”
“네.”
꽃무늬 손목시계를 흘깃 바라보고는 물었다.
“그런데 시간 괜찮으시겠어요? 요새 한창 바쁘실 시즌이라고 들었는데.”
“아아. 괜찮아.”
조 이사님이 손을 내저었다.
“뒤에 있는 약속들은 다음으로 미뤘어.”
“…….”
잠시 기분이 묘했다.
이사님의 바쁜 스케줄 때문에 면담을 잡기 어려웠던 과거와 오버랩이 된다고 할까.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다음 앨범 때문에 고민이 되는 사안이 있어서요.”
“흐음.”
“이번에는 아이돌 활동 곡보다는 조금 더 포크 음악이나 인디 팝 느낌의 곡을 생각하고 있거든요.”
“지금까지 앨범에 못 실었던 곡들을 살려 보자는 거구나?”
나에 이어서 리혁이가 말을 꺼냈다.
“네. 저희 정식 컴백이 봄이니까. 그 사이 겨울 시즌에 맞춰서 계절감을 살린 노래로요.”
“좋은 아이디어 같은데 어느 부분이 문제야?”
내가 답했다.
“이걸 정식 앨범으로 하기에는 또 애매한 것 같아서요.”
“아아.”
“곡이야 대중들도 같이 듣는 거지만, 실물 앨범은 엄연히 팬분들을 위한 거잖아요.”
고민이 되는 사안을 말했다.
“디지털로만 출시하자니 그러면 실물 앨범이 조금 꼬이는 것 같고. 그렇다고 앨범으로 내자니 이게 일반적인 아이돌 활동 곡은 또 아니고.”
“무슨 뜻인지 알겠네.”
“이사님 의견은 어떠세요?”
소파 팔걸이를 톡톡 두드리던 상대가 우리에게 물었다.
“너희는?”
“네?”
“너희가 생각하기에는 어떤데? 미리 회의를 했을 거 아니야.”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희는 스페셜 앨범으로요.”
“스페셜 앨범?”
“다른 아이돌 선배님들 보면 가끔 스페셜 앨범 같은 걸 출시하잖아요. 계절을 테마로 한다든가.”
선례가 있긴 했다.
겨울이나 크리스마스를 테마로 한 앨범이라든가. 팬들을 위해 별도로 마련한 앨범이라든가.
가능하다면 그런 식으로 진행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쪽으로 동생들과 의견을 모으긴 했다.
문제는.
“예산도 있고.”
디지털 싱글도 돈이 안 드는 건 아니지만, 실물 앨범은 진짜 돈 잡아먹는 하마라서.
“이게 또 저희 혼자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니까.”
앨범 작업은 엄연히 인력을 갈아 넣는 협동 작업이기에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중요했다.
우리 이야기를 경청하던 이사님이 명쾌하다는 듯 말했다.
“간단하네.”
“네?”
“스페셜 앨범으로 내.”
“…….”
“난 또 무슨 고민거리라고. 스페셜 앨범으로 내고 싶으면 내면 되잖아. 그걸 고민하고 있었어?”
뭐지. 왜 이렇게 쉽게 풀리는 거지.
멀뚱멀뚱 동생들과 시선을 교환했다.
‘뭐냐.’
‘모름쓰.’
‘너무 쉬운데.’
심사숙고조차 없이 흔쾌히 ‘하고 싶은 거 다 해~’ 하는 이를 어리둥절한 눈으로 바라볼 때.
이사님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왜 그러세요?”
“너희가 아직 그걸 모르는구나.”
그러곤 여전히 웃음기 가득한 표정으로 우릴 바라보았다.
“너희가 여태까지 앨범 만들고, 뮤비 찍는 비용을 봐서 그런 걱정을 했던 거 같은데.”
“……?”
“올해 너희가 회사로 벌어준 매출 덕분에 앞으로 앨범 비용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
“네?”
“앨범 제작비는 기별도 안 오는 수준이야.”
살짝 어안이 벙벙했다.
1인분에 7만원짜리 고기를 먹으러 왔는데, 가격표에 ‘7000원이 되었읍니다’ 하는 걸 본 느낌이라고 할까.
기쁘다기보다는 얼떨떨했다.
“저희가요?”
“잠시만.”
이번에 해외 투어 관련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던 거 같긴 한데, 이사님이 노트북을 가져왔다.
그러곤 파일 하나를 보여 주었다.
“자. 너희가 올해 활동한 성과야.”
“…….”
동생들과 함께 모니터의 이런저런 숫자를 바라보았다.
“일십백천만십만백만천만억십억…….”
“다시 세 봐요. 일십백…….”
“다들 바보예요? 쉼표로 보면 되잖아요.”
“아! 조용히 해 봐여. 형. 집중 안 되잖아여.”
그렇게 다 같이 모니터 위의 숫자를 반복해서 셀 때마다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봤지?”
“잠시만요. 한 번 더.”
상반기에도 매출을 엄청 올렸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콘서트와 해외 투어, 굿즈 판매가 있었던 하반기가 ‘나다!’ 하며 어마어마한 포스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사님이 깍지를 낀 손을 무릎에 올렸다.
“이제 알겠지?”
“네.”
“스페셜 앨범으로 일단 진행해 봐. 중간 체크는 계속할 테니까.”
우리가 황망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요즘 더 필요한 건 없고?”
“어…….”
모니터를 보자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했다.
손에 로또 복권이 들린 느낌.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액수가 클지도 모르는 당첨 복권에 나도 모르게 힘이 풀렸다.
“우주 형! 정신 차려여!”
“하하…….”
“비주 형까지 왜 그래요! 행복하게 눈 감지 마요!”
“으헤헷….”
모든 것을 이뤄 낸 사람들처럼 행복하게 웃다가 얼마 안 가 다시 정신을 되찾았다.
그러고는 다 같이 시선을 교환했다.
이사님이 필요한 게 없냐고 했을 때, 한 가지 떠오른 게 있기 때문이었다.
“이사님.”
“응?”
자상하게 웃는 이사님에게 우리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필요한 게 있냐고 말씀하셨잖아요.”
“응.”
“그러면요.”
“뭔데 그래?”
잠시 침묵을 이어가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희 식비 좀 더 써도 돼요?”
“뭐?”
우리 딴에는 진지하게 한 이야기였는데 맞은편에서 커다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상대가 말했다.
“먹어. 다 먹어.”
“정말요? 정말 많이 먹어도 돼요?”
“그래. 많이 먹어.”
“우와아…….”
조 이사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웃었다.
“너희가 먹어봐야 뭐 얼마나 먹겠니.”
* * *
그로부터 얼마 후.
레몬 엔터 사옥에 있는 누군가가 명세서를 살피며 머리를 바들바들 떨었다.
“조 이사.”
“…….”
“조 이사.”
“예…….”
박규호 대표가 촉촉한 눈망울로 물었다.
“애들한테 대체 뭐라고 말을 한 거야?”
“그게…….”
“그게?”
“식대에 부담 가지지 말고. 정말 먹고 싶은 대로 다 먹으라고…….”
대표가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자, 이사의 말이 이어졌다.
“저도 그렇게…….”
“…….”
“인간의 위장이 클 수 있는지 몰랐어요.”
대표실에 침묵이 감돌았다.
그 동안에도 왠지 모르게 귓가에 뉴블랙 멤버들이 꺄르르! 웃으며 꽃밭에서 고기를 구워먹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심지어 명세서에서도 고기 냄새가 진동하는 착각이 일 정도였다.
“정말 양껏 먹었네. 어이구, 양꼬치도 있… 이거 봐. 이 정도면 양 목장을 사겠는데.”
“…….”
“그 와중에 살 안 찌겠다고 음료는 다이어트 콜라 열 박스를 배달했구나. 우리 애들…….”
“…….”
두 남자의 묵직한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얼마 안 가 박규호 대표가 결단을 내렸다.
“스페셜 앨범 하고 싶다고 했지?”
“예.”
“그거… 그거 얼른 진행시키자고.”
닭가슴살은 이렇게 많이 못 먹을 거 아냐, 하는 대표의 처량한 대사에 말없이 끄덕이는 조 이사였다.
바닥에 떨어지는 명세서.
그것이 바로 레몬 엔터가 뉴블랙의 스페셜 앨범 준비에 박차를 가하게 된 이유였다.
* * *
확실히 돈을 많이 벌어 와서 그런 건가.
스페셜 앨범에 대한 준비가 엄청 신속하게 진행됐다.
대표님이 뭐라고 말씀을 하신지 모르겠지만, 일처리가 엄청나게 빨랐다.
그리고.
“하승주 씨도 메인 프로듀서로 참여하는데 긍정적인 반응이고. 백상교 씨나 다른 분들도 긍정적이야.”
이번 앨범에 참가할 사람들의 라인업이 화려했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프로듀싱을 하는 데는 변함이 없긴 하지만, 메인 프로듀서 중 하나로 뮤직카페의 MC를 초빙했다.
최근에는 음악활동을 안 하긴 했지만 캐롤 송이라든가, 각종 유명한 피아노 곡을 작곡하는 등 이번에 ‘겨울’을 테마로 한 스페셜 앨범의 프로듀서로서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진짜 수락하실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함정에 자진, 아니 함정이래. 그렇게 허락하실 줄은 몰랐어여.”
“그니까.”
유명 프로듀서기는 하지만 여태까지 한 번도 아이돌과의 작업은 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음악에 관해서 엄청 까다롭기 때문이라나.
“저는 그게 궁금해요.”
중현이가 말했다.
“그분이랑 형이랑 함께 일하면 어떻게 될지.”
“어떻게 되기는, 좋은 음악이 나오는 거지.”
나도 궁금하긴 했다.
작업방식이라든가 하는 것도 궁합이 맞을지도 궁금하고.
또 검색해 보니 예전에 우리 아빠와도 재즈곡 편곡 등을 하는데 함께 했다고 기사가 있어서.
아빠가 어떤 식으로 작업을 했는지 불현듯 궁금해지기도 했다.
“일단은 주어진 일정부터 먼저 소화합시다.”
지금은 A&R팀과 프로듀싱팀이 우리가 건네준 아이디어 리스트를 기반으로 기획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요리로 비유하면 플레이팅을 어떻게 할지, 메인은 무엇으로 할지, 재료는 또 무엇을 사야 할지 준비하는 상황.
그렇게 회사 분들이 열심히 상차림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또 우리대로 할 일이 있었다.
“Hello!”
“Hi!”
미국 LA 국제공항.
“와아아아아!”
플래카드 등을 들고 기다리고 있던 미국의 수플레들이 수십 명 가량 모여 방방 뛰고 있었다.
공항 내부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쟤네 뭐지?’ 하는 동안 우리는 열심히 팬서비스를 했다.
“안녕하세요!”
소규모로 모인 덕분에 자리에 모인 이들에게 사인을 해 줄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왜 울어요? 울지 마요.」
「어흐흐흑……!」
감정이 복받쳤는지 우리를 보고 우는 팬들을 다독여 주었다.
한글로 어색하게 ‘뉴블랙 대상 수상 축하해.’라고 되어 있는 플래카드에 절로 미소가 나왔다.
매니저들이 미튜브 카메라로 담는 가운데, 한 팬이 우리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나오는데 오래 걸렸어요?」
「지호 때문에 잠깐 딜레이가 있었어요.」
우리 막둥이의 말실수 때문이었다.
입국심사에서 관계를 말하는데 우리를 ‘브라더’라고 해서 심사관이 흠칫한 것 때문이었다.
다행히 오해는 금세 풀렸다.
노스탤지어 OST를 부르면서 ‘우리야’ 하고 인자하게 미소를 지으니, ‘아’ 하며 10대 합창단으로 오해해 주었다.
“…….”
물론 그걸 여기 있는 수플레들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고마워요! 그럼 팬미팅 때 봐요!」
미리 기다리고 있던 수플레들에게 인사하고 차량에 올라탔다.
그러곤 타자마자 널브러졌다.
“흐어어…….”
“형, 괜찮아요?”
“아니…….”
내 인생에서 최고로 길었던 비행이었다.
아무리 잠을 자고, 자도, 또 자도 비행기 안이었다.
제주도까지도 거의 30분이면 가는 비행기가 이렇게 10시간 넘게 걸렸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하다고 할까.
계속해서 긴장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기내식을 먹었던 게 울렁거렸다.
“괜찮아. 비행이 길어서 그렇지. 올 만하네.”
“두통약 챙겨왔는데 줄까요? 지금 눅눅한 파채처럼 됐는데.”
“하나만.”
리혁이에게 건네받은 두통약을 꿀꺽 삼켰다.
다행히 속이 점점 나아졌다.
“우와. 날씨 좋다아…….”
막내가 창을 열고는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LA의 11월 날씨는 한국보다 한 10도 정도는 높았다.
서울에서는 오들오들 떨었는데, 여기에서는 낮이라 그런지 초여름 정도 날씨였다.
가디건 정도 입으면 될 듯한 느낌.
“확실히 날씨도 좋고, 상쾌하긴 하다.”
“뒤에 따라오는 차도 없고요.”
아시아권과 다르게 확실히 우리가 누군지 모르는 나라다 보니, 뒤따라오는 사생도 없었다.
현지 고용인이 차량을 운전하는 가운데, 조수석에 앉은 석환 형이 말했다.
“이번에는 팬미팅이랑 스케줄 몇 개 빼고는 여유 있는 편이니까. 그냥 휴식차 들렀다고 생각해.”
“싫다! 우린 일하고 싶다!”
반항적인 우리 대답에 상대가 웃으면서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길거리에서 버스킹이라도 하든가. 그러면.”
“오호.”
“리혁이는 어머님이 LA에 계시지 않아?”
“네.”
리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이번에 다 같이 저녁 식사 한 번 하자고 집에 놀러 오라고 했어요.”
“오오. 리혁스 홈.”
“제발 부탁이니까, 거기 가서는 이런 이상한 짓은 좀… 하지 마요.”
“괜찮아. 어머님도 우리 이런 거 다 아실 거야.”
“모를 걸요.”
리혁이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딱히 관심이 없어서.”
막내와 내가 눈빛을 교환하고는 화제를 돌렸다.
“우리 그러면 이번에 어디어디 가볼까?”
“할리우드 어때여? 저 거기 미국 배우들이 바닥에 손 지진데 가고 싶어여.”
“손을 지져?”
중현이가 ‘배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네’ 하고 감탄하는, 혼란스러운 대화에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창밖으로 지나가는 이국적인 풍경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한편.
공항에서 챙겨온 관광객용 책자를 펼치며 어디에 갈지를 고민했다.
이번에는 팬미팅과 공연 하나, 그리고 잡지 인터뷰 정도를 빼면 스케줄이 굉장히 여유로운 편이었다.
물론 그중에서 큰 게 하나 있긴 했지만.
“근데 무대에 올라가서 다른 나라 말로 노래 부르려니까 조금 긴장이 되기는 하네요.”
“그러게. 무대 규모도 꽤 되는 것 같던데.”
우리가 게스트로 초청 받은 콘서트.
바로 노스탤지어의 제작사 측에서 준비한 미니 콘서트였다.
OST에 대한 반응이 워낙 좋은 터라 관객들 앞에서 팬서비스 차원으로 영화에 나왔던 노래들을 부른다고 들었다.
우리는 거기에 깜짝 게스트로 등장해서 ‘Thousand Dreams’를 부를 예정이었다.
일정표를 살피던 리혁이가 말했다.
“근데 내일 공연 전에 감독님이 우리 소개시켜 줄 사람도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응. 누군지는 말씀을 안 해주긴 했어.”
존 에드워즈 감독님이 소개시켜 줄 사람이 있다고 말을 했던 터라 궁금하기도 했다.
대체 누구일지.
그런 고민을 하는 동안,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짐을 풀고 곧바로 외출 차림으로 갈아입었다.
“어떡해요. 형.”
비주가 살짝 상기된 뺨으로 말했다.
“저 설레요.”
“그렇게 설레?”
“네. 오랜만에 만나서 같이 춤 얘기도 하고, 그럴 생각을 하니까. 가슴이 막 두근두근하고.”
내가 미소를 지었다.
LA에 도착한 첫날.
우리에게는 그 누구보다 먼저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LA에 오면 놀러 와.’
…라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던 안무가.
“자, 그럼 갈까?”
“고고!”
우리는 곧바로 클레이 타일러가 있다는 댄스 스튜디오로 향했다.
* * *
30분 후.
“닫았네.”
‘Closed’가 걸린 댄스 스튜디오 앞에서 우리가 눈을 끔뻑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