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32화
다 같이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동네 마트 규모의 널찍하고 허름한 벽돌 건물.
그 위에는 분명히 클레이 타일러가 운영하는 스튜디오의 간판이 걸려 있었다.
“맞는데.”
맞게 찾아온 거 같은데.
“혹시 오늘 휴일인가?”
“아뇨. 오기 전에 클레이랑 메시지도 주고받았잖아요. 평일 아무 때나 찾아오라고.”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미리 갈 거라고 메시지를 보낸 터였다.
상대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너희와 만날 날이 오기를!’ 하며 되게 웃음 가득한 답장이었는데.
“문이 닫혀 있네.”
중현이가 조심스럽게 문손잡이를 잡아 당겼다.
달칵달칵.
잠겨 있는 문을 몇 번 정도 잡아보던 중현이가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잠겨 있어요.”
“깨달음이 참 빠르구나. 중현아.”
타지에서 느끼는 휑한 바람이 우리를 스쳐갔다.
그러곤 시선을 교환했다.
미리 언제 간다고 고지까지 했는데 문이 잠겨 있다는 것은 단 한 가지를 의미했다.
‘튀었구나!’
‘튀었네.’
‘도망 잘 치네.’
도망치는 솜씨가 리혁이 급이었다.
문이 잠긴 댄스 스튜디오를 바라보던 내가 옆에서 폰을 들고 있는 원석이 형에게 물었다.
“형, 여기 주소는 맞죠?”
“응.”
“아. 그럼 맞는데…….”
“지금 전화를 걸고는 있는데, 안 받는 거 같아.”
진짜 우리가 온다고 해서 도망을 친 건가?
그만큼 피하고 싶었던 기피 인물이 된 건가 싶어서 억울했다.
“아니, 우리가 뭘 했…….”
“그러니ㄲ…….”
라고 말을 하고 있는 동안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장면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녹초가 된 안무가와 그 딸의 얼굴.
그리고 그 앞에서 발랄하게 웃으며 즐거워하는 우리.
“너무 심했나.”
“그랬던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우리는 지금까지 한 마디도 없던 이의 표정을 곁눈질했다.
“…….”
바로 우리 메인댄서였다.
늘상 그러하듯이 생글생글 웃고는 있는데 눈웃음을 짓는 눈꼬리가 축 쳐져 있다.
선물이 담긴 봉투를 든 손도 힘이 없고.
굉장히 속상한데, 자기가 속상한 티를 내면 다른 멤버들이 신경을 쓸까 봐 웃는 표정이었다.
“오늘 무슨 사정이 있나 보네요. 다음에 와요.”
웃으면서 어서 가자고 하는 비주의 모습에 오히려 우리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기분 완전 상했네.’
‘저거 혼자 놀 때 표정…….’
아이를 데리고 장난감 가게에 왔는데 문이 닫았을 때의 부모 심정 같았다.
얘 여기 온다고 엄청 들떴는데.
오는 동안 클레이한테 춤 이거이거 물어봐야지, 하며 스마트폰으로 신이 나서 보여 줬던 비주의 표정이 떠올랐다.
“가요. 형.”
“그래.”
일단은 뭐 별 수가 있나.
내가 비주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결연하게 말했다.
“시간도 엄청 남는데, 거기나 가자.”
“거기요?”
“힌트 줄게. 디로 시작해.”
비주가 ‘?’ 하는 가운데 중현이가 답했다.
“디지몬 월드?”
“디즈니랜드. 중현아, 거기는 갈 수 있긴 해?”
황당한 대답에 웃음이 터졌다.
그 동안 기뻐하는 비주에게 우리가 말했다.
“어차피 한 번 가려고 했잖아. 구경하고 오자.”
“맞아여. 우리 꿈과 희망의 세계로 가서 놀아여. 형.”
비주가 눈을 크게 떴다.
“다 같이?”
“예. 갑니다… 가요…….”
우리의 시선에 못 이긴 리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이라도 풀 겸 놀이공원에 가자는 제안에 금세 환한 미소로 되돌아오는 비주였다.
그렇게 다시 차량으로 돌아갈 때.
“……어?”
거리에서 이어폰을 낀 채 둠칫둠칫 걸어오던 미국 사람과 마주했다.
후드 티에 패셔너블한 바지.
우리를 바라보고 눈을 휘둥그레 뜨는 여자였다. 먼저 입을 연 건 우리였다.
“조이?”
“…….”
“조이 타일러?”
상대가 고개를 푹 숙였다.
‘아닌데여, 조이 아닌데여’ 하는 듯한 동작이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조이!」
「어… 오랜만이야!」
상대의 뺨이 파르르 떨리며 올라갔다.
우리가 다가가서 ‘우와아’ 하고 반기자 조이 타일러가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이 근방에는 무슨 일로?」
「서프라이즈 방문이야.」
「정말 서프라이즈긴 하네…….」
「클레이한테 우리가 LA에 도착하면 갈 거라고 말했는데 얘기 못 들었어?」
조이 타일러의 눈빛에서 읽을 수 있었다.
못 들었구나.
「어쩐지.」
그녀가 납득했다는 얼굴로 말했다.
「아빠가 스튜디오 소속 댄서들한테 깜짝 손님이 있다면서 모두 모여 달라고 했거든.」
「오오.」
「너희였구나.」
그 한 마디에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 같아 웃음이 흘러 나왔다.
동시에 비주의 표정도 서서히 더 밝아졌다.
“그럼 우리 디즈니랜드 못 가여? 지금 누나들한테 기념품 뭐 가지고 싶냐고 톡 보냈는데.”
“못 가요?”
“나중에 가자. 나중에.”
우리 막내와 래퍼만 시무룩한 얼굴을 할 뿐이었다.
그 동안 조이 타일러가 길을 안내했다.
「여기는 얼마 전에 닫았어.」
「아.」
「예전에 받은 주소로 왔구나. 새롭게 입주한 건물은 여기에서 한 블록 정도 떨어져 있는데.」
이윽고 새로운 건물이 드러났다.
앞선 스튜디오와 마찬가지로 단층이긴 하지만 훨씬 더 깔끔하고 비싸 보이는 건물이었다.
「너희와 바람꽃 작업을 하고 나서 K팝 회사들로부터의 의뢰가 엄청 늘어났거든.」
우리 덕에 더 좋은 곳으로 이사했다는 이야기에 잠시 웃음이 나왔다.
드르륵.
이윽고 새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간 우리 앞에 어마어마하게 널찍한 연습실이 드러났다.
“우와아…….”
안에서 몸을 풀고 있던 댄서들이 ‘쟤넨 누구지?’ 하는 시선을 보내는 동안.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Hey!”
“클레이!”
근사한 정장을 입은 늘씬한 체형의 남자가 두 팔을 벌리며 다가왔다.
서로 간에 가볍게 주먹과 어깨를 부딪히는 시간을 가졌다.
그중에서도 ‘B!’ 하면서 특히 반기는 모습에 비주가 환하게 웃었다.
클레이가 중현이가 내민 주먹에 조심스럽게 손을 맞대고는 어깨를 살짝만 댔다.
「클레이한테 주려고 선물 가져왔어요.」
「선물?」
전부터 관심을 보였던 한국 전통 문화와 관련된 선물 세트를 건네주니 상대의 입이 귀에 걸렸다.
그리고 한국어로 ‘클레이 타일러’, ‘조이 타일러’ 하는 글자가 적힌 티셔츠를 보며 껄껄 웃는 그였다.
「이리로 와 봐. 내 댄스 스튜디오가 궁금하다고 그랬지? 우리 스튜디오 사람들을 소개시켜 줄게.」
그러고는 박수를 짝짝- 치며 댄서들을 불러모았다.
호기심이 담긴 ‘쟤네는 누구지?’ 하며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이 댄스 스튜디오의 주인이 이만큼 반기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클레이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일단 이 친구들은, 내가 본 사람들 중에서도 춤에 대한 재능이 어마어마한 친구들이야.」
실력에 대한 칭찬을 하니 뭔가 신기해하는 듯하다고 할까.
「춤에 대한 열정도 어마어마하게 대단하지. 오늘 댄스 스튜디오에 온 것도 다양한 춤을 견식하고 싶어서일 거야. 맞지?」
그런 의도도 없었던 것은 아니기에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누군가 물었다.
「낯이 익은 거 같은데, 다들 누구예요?」
클레이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얘네가 바로 뉴블랙이야.」
「…….」
「뮤비로 봤던 얼굴들이 기억나려고 하지?」
그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자, 그럼 다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 보자고.」
그러면서 ‘여기는 호르헤…’ 이런 식으로 하나씩 소개를 시켜 주었다.
대체 우리 이야기가 어떻게 돌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딘가 두려운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댄서들이었다.
그렇게 인사를 마친 후.
「그럼 나는 구경만 해야겠군.」
우리가 고개를 돌리자 클레이가 너무나 행복한 얼굴로 말했다.
「이따가 점심식사 때, 너희를 좋은 식당을 데려가려고 정장을 입었거든. 춤을 못 추겠네.」
그제야 이 낯선 미국인의 표정이 왜 익숙하게 느껴지는지 깨달았다.
훈장 받을 때였나.
끝나고 노재현 선생님이 다른 유명 가수 분들을 소개시켜 주면서 지었던 미소와 비슷했다.
「하하! 하하하!」
오늘의 클레이는 행복해 보였다.
* * *
댄서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뉴블랙이라니.’
클레이 타일러를 물에 젖은 걸레처럼 만들어낸 이들이 도착해 있었다.
‘이래서 다 모이라고 했구나!’
그들을 불러 모은 댄스 스튜디오의 대표가 얄미워서 미칠 지경이었지만, 이미 후회는 늦은 터였다.
허나 두려움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클레이 타일러가 벽장 속 괴물처럼 무서워하는 이국의 보이밴드.
“반가워요!”
꺄르륵 웃으며 다가오는 5인조.
일단은 어색하게 웃는 얼굴로 맞이하는 댄서들이었다.
클레이의 주도 하에 어딘가 워크샵처럼 진행된 분위기에 뉴블랙이 연습실 중앙에 섰다.
‘춤을 잘 추게 생긴 얼굴들은 아닌데.’
예쁘게만 생긴 얼굴들이었다.
몸도 엄청 호리호리해서 저 몸으로 힘이 나올까 하는 의문이 들 때.
“오오…….”
5인조 멤버가 ‘Nine’의 춤 일부를 보여주는 모습에 그들이 눈을 크게 떴다.
쪼그려 앉아 있던 이들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잘 춘다.
비트가 엄청나게 빠른데도 동작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유기적으로 딱딱 진행되고 있었다.
“Wow.”
이 정도로 각이 잘 맞는 칼군무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하루종일 춤 연습을 해야 나올 퀄리티.
척 보기에도 엄두가 안 나올 연습량에 저도 모르게 압도되는 분위기였다.
격려의 박수를 준비하던 댄서들이 나인의 안무가 끝나자 놀라움의 박수를 쳤다.
누군가 농담처럼 물었다.
“하루 종일 춤만 춰요?”
“아뇨.”
묵직한 인상의 멤버가 진지하게 답했다.
“하루에 열네 시간 정도.”
“…….”
“가끔은 열다섯 시간?”
옆에 서 있던 리더가 그를 툭 치며 말했다.
“농담이야. 중현아.”
“아. 하하하!”
갑자기 호탕하게 웃는 래퍼의 모습에 댄서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왠지 모르게 친근했다.
이내 뉴블랙의 멤버들에게 춤에 대한 칭찬이 오간 후 그들 중 일부가 춤을 보여주었다.
“오오…….”
몸을 딱 틀어서 움직일 때마다 뉴블랙 멤버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하지만 댄서들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뭐지.’
‘내가 원래 이랬나?’
분명히 오늘과 똑같은 춤을 추고 있는데 어째 만족스럽지 못한 느낌이었다.
이내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뉴블랙의 정중앙에서 화려하게 독무를 추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었다.
‘B라고 했나.’
클레이 타일러가 매번 얘기했던 그 멤버였다.
붉게 물든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흩날리며 손을 허공으로 유려하게 뻗을 때마다 탄성이 나온다.
고작 스무 살을 조금 넘겼다고 믿기 힘들 만큼, 춤에서 그 연습한 세월이 느껴지는 솜씨.
이 자리에 있는 프로 댄서들 중에서도 몇몇을 제외하면 저것보다 더 잘 출 수 있다고 말하기 힘들 실력이었다.
‘가수 중에서도 이 정도로 춤을 잘 추는 사람은 잘 못 봤는데…….’
특히나 시선을 끄는 방식에 있어서는 이 자리의 그 누구보다 재능이 뛰어나 보였다.
손끝과 발끝을 튕길 때마다 잔상이 남는 느낌.
“어때요?”
B의 말에 댄서들이 멈칫하다가 물었다.
“그건 어떤 식으로 한 거야? 방금 손으로 꽃? 비슷한 모양을 형상화한 거 말이야.”
“세 번째 파트에서 했던 거 보여줄 수 있어?”
“희한하네. 뭔지는 모르겠는데 기억에 남고.”
어느새 친근하게 변한 태도였다.
시선을 끄는 비결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비주가 답했다.
“우리는 보이그룹이라서 노래도 하고 춤도 춰야 하거든요. 그래서 춤이나 노래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보다 더 잘할 수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연구하고 있어요.”
“기술?”
“예를 들면 이렇게 제가 시선을 저쪽으로 돌리고. 손끝을 가슴 부근으로 이렇게 올리면…….”
새하얀 목에 시선이 갔다.
그 동안 뉴블랙 메인댄서의 목이 부드럽게 움직이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턱끝으로 모았다.
그리고 거기에 맺히는 부드러운 미소.
댄서들이 수긍했다.
카메라 등 누군가의 시선 앞에서 돋보이는 방법에 대해서는 그들보다 뉴블랙이 더 전문가였다.
“조금 더 알려줄 수 있을까?”
이내 다른 멤버들까지 가세해서 표정이라든가, 이런저런 좋은 팁을 알려주는 한편.
“최근에 미국에서 유행하는 춤이 있다는데 그거 볼 수 있어요?”
“이거 발끝 모으는 거요.”
“어, 그 부분이요. 거기서 웨이브 탈 때 근육 어디를 집중적으로 써요?”
뉴블랙 멤버들도 댄서들에게 질문거리를 던졌다.
서로가 서로에게 질문을 하고, 이런저런 좋은 팁을 얻어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댄서들은 감탄이 나왔다.
‘뭐야. 또 달라졌네.’
습득력이 얼마나 좋은지 한두 번 알려 주자마자 곧바로 개선이 되는 아이돌이었다.
그중에서도 B와 함께 독보적인 인물은…….
“브레이크 댄스 가능한가요?”
그간 미튜브로만 외국 댄서들의 춤을 봤다며, 자꾸 보여 달라고 하는 뉴블랙의 리더였다.
“흐음, 동영상에선 그걸 잘 못 봤는데. 이걸 이렇게…….”
“그거 잘못하다 다치….”
“되네요.”
만류하던 댄서들도 그때마다 눈을 깜빡였다.
무슨 동작을 보여 줄 때마다 그걸 완벽하게 카피하는 미친 재능의 인물이 있었다.
왠지 모르게 밑천이 털리는 기분이 들었지만, 댄서들의 기분은 최고조였다.
‘뭔가 알찬 기분이야.’
서로 간에 팁을 교환할 때마다 뭔가 얻어가는 게 느껴지는 교류였다.
뉴블랙은 춤에 대해서 보완할 부분을 가져가고, 댄서들은 무대에서 관객의 시선을 이동시키는 테크닉을 배우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그렇게 두 시간 가량의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 후.
“오늘 너무 재미있었어요!”
“우리도 마찬가지야.”
양쪽이 아쉬움 가득한 눈으로 손을 맞잡고 이별했다.
그때 B가 말했다.
“연락처 받아가도 돼요? 나중에 그럴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일할 일이 생기면…….”
“당연히 좋지!”
댄서들이 환하게 웃었다.
‘클레이도 참 과장이 심했네.’
이렇게 훈훈하고 따스한 사람들인데, 그간 클레이 때문에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 미소에 맞은편에 선 뉴블랙이 선한 미소를 지었다.
“……?”
흠칫.
왠지 모르게 순간 사악한 표정이 지나간 것 같아서 멈칫했지만 이내 댄서들이 웃었다.
‘잘못 봤나 보네.’
그렇게 양측이서 나중에 또 보면 좋겠다며 화기애애한 미소를 교환할 때.
“그래. 어서 교환해라.”
벽 근처에 바퀴벌레처럼 붙어서 구경하던 클레이가 환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어서 연락처를 교환해라. 교환해…….”
그 뒤에 선 딸, 조이 타일러가 한심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 * *
댄스 스튜디오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우리는 타일러 부녀와 함께 LA에 있는 유명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헤어졌다.
해산물 전문점이었는데 진짜 맛있는 곳이어서, 나중에 김덕순 여사와 미국에 오게 될 일이 생기면 꼭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양도 많아서 중현이가 1인분을 보고 그렇게 환하게 웃는 건 처음 봤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저 미국에서 살까 봐요.”
중현이가 테이블에 놓인 간식거리를 보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내게 봉지를 내밀었다.
“이거 봐요. 형.”
“흐어.”
“젤리 진짜 많죠. 여기 사람들은 저처럼 배 터지게 먹는 걸 좋아하나 봐요.”
젤리의 홍수 속에서 행복해하는 중현이를 보며 우리가 웃음을 흘렸다.
그러면서 목을 풀었다.
“아아. 오백 원. 오백 원…….”
대기실에 우리가 ‘오백 원…’ 하며 염불처럼 중얼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 스탭들이 꼼꼼하게 메이크업을 해 주는 동안, 복도를 지나가던 외국인들이 오백 원 소리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지나갔다.
그때 외국인 스탭 하나가 석환 형에게 뭐라고 묻자 석환 형이 입가를 꾹 말았다.
“뭐래?”
“너희 지금 암송하고 있는 경전이 어느 종교 건지 물어봐도 되냐던데.”
“어……?”
“엄청 마음이 편해 보인다고.”
외국에서 온 애들이 평화로운 얼굴로 ‘오백 원, 오백 원~’ 하며 중얼대고 있으니 궁금했던 모양이다.
내가 동생들에게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오해를 피하게 바꾸자.”
이내 ‘원 달러… 원 달러…’ 하자 우리 스탭들이 뒤집어져서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가 화음을 맞추며 목을 풀었다.
“원 달러~ 천백 원~”
‘환율 하이~ 하이’ 하며 후렴구를 만들어 내자 메이크업을 해주던 쌤들이 손을 멈추고 웃음을 터뜨렸다.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목을 풀고는 리허설까지 잘 진행했다.
LA에 도착한 둘째 날.
오늘의 일정은 대략 천여 명의 관객이 모인 극장에서 있는 ‘노스탤지어 라이브 콘서트’였다.
영화의 출연진들이 ‘노스탤지어’의 OST를 불러주는 무대.
“음흠흠.”
대기시간이 길기에 계속해서 흥얼대며 목을 풀거나 물을 마시며 목을 축였다.
우리의 무대는 대략 5분가량.
마지막에 Falling Stars를 부르기 전에 깜짝 게스트로 등장해서 Thousand Dreams를 부를 예정이었다.
“얘들아. 저쪽에서 그러는데 슬슬 나와서 대기해 달래.”
“넵.”
동생들과 대기실을 벗어나 백스테이지 쪽으로 향했다.
나름대로 살짝 긴장된다.
어느 나라에서든지 간에, 다른 나라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는 건 설레면서도 떨린다고 할까.
백스테이지에서 심호흡을 하며 몸을 푸는 것을 오해했는지 헤드셋을 낀 미국인 스탭이 웃으며 물었다.
「이렇게 큰 무대에 서니까 떨리죠?」
「네?」
우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상대가 재잘거렸다.
「백 명도 아니고, 천 명 앞에서 공연이라니. 이렇게 큰 공연은 아마 처음일 텐데. 너무 긴장하지 말아요.」
우리가 웃으며 고맙다고 말을 해주자 스탭이 ‘화이팅’ 하듯 엄지를 들어 보였다.
비슷한 또래 같은데 푸근하게 웃어 주는 모습이 ‘나는야 경험 없는 신인 가수를 독려하는 현장 스탭’ 같은 미소였다.
고맙긴 한데 슬그머니 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고마워요.」
우리가 웃으며 답했다.
「응원해 준 덕분에 공연이 잘 될 거 같네요.」
* * *
같은 시각.
무대에서는 노스탤지어의 주연 배우, 루퍼트 딘과 벨라 페이지가 정장을 입은 채 토크하는 중이었다.
“이제 대망의 마지막 무대가 남았네요.”
“Falling Stars, 모두 기대 되나요?”
영화판의 오리지널이자 현재 빌보드에서 가장 핫한 노래 중 하나.
Falling Stars의 언급에 관객들은 ‘와아아!’ 하는 한편, 의아함을 느꼈다.
‘Thousand Dreams는 안 하나?’
그것 역시 영화판 오리지널 노래로서 최근에 미튜브나 라디오 등에서 엄청 나왔으니까.
그런 의문을 품을 때, 벨라 페이지가 마이크를 든 손을 멈칫하며 말했다.
“잠깐.”
“음?”
“우리 뭔가 하나를 빼먹은 거 같은데.”
“뭘 빼먹었어? 아!”
루퍼트 딘이 말했다.
“Ever After? 아니면 The Reason?”
“아니.”
벨라 페이지가 답답하다는 듯 금발을 쓸어 넘겼다.
“Thousand Dreams 말이야.”
“아…….”
루퍼트 딘이 능청맞게 대답을 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걸 빼먹었네. 근데 그거 우리가 부른 게 아닌데…….”
“한 번 불러보지, 뭐.”
이내 그들의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라이브 밴드가 센스 있게 연주를 시작했다.
그에 맞춰 마이크를 든 남녀 듀엣.
“우워어…….”
“푸하하!”
일부러 음을 이탈하는 척하며 못 부르는 모습에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몇 번이고 반복하지만 워낙 어려운 노래라 실패하는 둘.
루퍼트 딘이 말했다.
“이거 우리가 부르기는 어려울 거 같은데.”
“나도 동감이야.”
“확실히 어떤 노래는 원곡자가 불러야…….”
그 말에 관객들이 상황을 눈치채고는 환호성을 질렀다.
상황극으로 흥을 돋운 두 배우가 이내 웃으며 연출 스탭들을 향해 마이크를 들었다.
“네?”
루퍼트 딘이 눈을 크게 뜨고 묻는다.
“여기에 원곡을 부른 가수가 왔다고요? 정말?”
“그럼 얼른 무대로 올라오라고 해요!”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
“와아아!”
라이브 밴드가 잔잔한 음악을 연주하는 가운데, 백스테이지에서 올라오는 5인조에게 조명이 비추어졌다.
환호하던 관객들이 잠시 멈칫했다.
‘근데 이름이 뭐였더라.’
‘외국 가수인가?’
관객들이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보내는 동안 5인조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장했다.
낯선 땅의 관객들에게 뉴블랙이 처음으로 소개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