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33화
관객들의 시선이 무대에 집중됐다.
-어서 와.
루퍼트 딘이 두 팔을 벌리고 반겼다.
마찬가지로 환하게 웃으며 반기는 벨라 페이지까지.
두 배우와 포옹을 하거나 가볍게 악수를 나누며 미소를 짓던 5인조가 저마다 품에 든 의자를 내려놓았다.
루퍼트 딘이 물었다.
-내 의자는?
어딘가 살짝 억울한 표정.
그 말에 다섯 명이 동시에 어깨를 으쓱했다. 합이 척척 맞는 꽁트에 관객들이 웃음을 흘렸다.
-안 주던데.
좌측 끝에 앉아있던 미남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조명을 반사하며 은은히 빛나는 눈과 입.
미남은 어딜 가나 세계 공통이라고, 미국 관객들의 눈에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미모였다.
여성 관객들의 눈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귀엽게 생긴 애들이네.’
‘가운데 어깨 넓은 애 진짜 내 취향.’
‘너무 깡마르긴 했는데…….’
지금 입고 있는 얄쌍한 수트 바지마저도 헐렁해 보일 만큼 마른 가수들이었다.
그러는 동안 관객들의 머릿속이 분주하게 돌아갔다.
지금 등장한 5인조의 정체를 추리하기 위해서였다.
‘머리색이 알록달록한데 K팝 가수인가?’
‘가수 이름은 알고 왔는데, 누군지는 잘 모르겠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맨 좌측에 앉아 있던 리더가 마이크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참 아름다운 밤이죠?
같은 동네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미국식 영어에 친근함이 느껴졌다.
-아마도 우리가 누군지 많이들 궁금할 거예요. 그래서 어떤 식으로 소개를 해야 기억에 오래 남을지 고민하면서 인터넷을 검색했어요.
그가 웃으며 스마트폰을 들어 보였다.
-그랬더니 ‘Book guys’가 나오더라고요.
‘책 걔네’라는 너무나 정확한 요약에 멤버들이 먼 산을 아련히 바라봤고,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마이크를 든 리더도 같이 웃으면서 말했다.
-맞습니다. 그게 우리예요.
단체로 ‘우리는 book guys’ 하는 인사에 관객들이 또 한 번 웃었다.
콘서트 현장을 촬영하는 팀이 관객들이 웃는 모습을 여러 가지 샷으로 담는 가운데.
가수의 재치 있는 멘트가 이어졌다.
-어차피 우리가 지금 이름을 말해줘도 공연이 끝날 때쯤 되면 까먹을 거 다 알아요.
그러면서 상황극을 하듯이 가운데 앉아 있는 이에게 질문했다.
-야, 아까 ‘Thousand Dreams’ 부른 가수 기억해? 그 5명 말이야.
-어…….
사나운 인상을 가진 멤버가 곰돌이처럼 눈을 꿈뻑꿈뻑 뜨면서 되묻는 연기를 했다.
-Book guys 말하는 거지?
객석에서 웃음소리가 크게 났다.
머릿속에 빤히 그려지는 상황이라 관객들도 웃으면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리더가 ‘보셨죠?’ 하듯 말했다.
-그래서 우리 이름을 마지막에 내려가기 전에 소개하려고요.
-그 순간 되면 우리 이름을 기억하게 될 것.
맨 오른쪽 끝에 앉아 있는 앳된 멤버의 자신감 가득한 호언장담에 관객들이 미소를 지었다.
서서히 스며들듯이 낯선 가수에 대한 호기심이 호감 쪽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백스테이지에서도 편안함이 감돌았다.
외국의 가수가 깜짝 게스트로 등장한 만큼 혹시 돌발 상황은 없을지 내심 긴장하던 스태프들이었다.
“저 친구들 잘하네요.”
“잘하네.”
ID 카드를 목에 걸고 있는 스탭들이 저마다 옆에 있는 사람들과 시선을 교환하며 끄덕였다.
무대만 잘해줘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공연을 하기 전부터 능숙한 토크로 관객들을 쥐락펴락하고 있었다.
그것도 ‘한밤의 우아한 파티’라는 라이브 콘서트의 컨셉에 딱 맞는 분위기로.
한편, 그 속에서 유일하게 웃지 못하는 한 명이 있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뉴블랙이 올라가기 전에 힘을 내라고 격려했던 현장 스탭, 안톤은 당황한 상태였다.
이름도 못 들어본 신인 가수.
그렇게 생각했는데 무대에서 관객들을 대하는 매너나 솜씨가 오늘 무대에 올라간 사람 중에 제일 뛰어났다.
‘프로 가수 같네.’
그러고 보니 저 뉴블랙이 리허설을 할 때 자신이 현장에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참 스탭이 그를 불렀다.
“안톤!”
“갑니다!”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에도 머릿속 한편에 ‘어떻게 된 거지?’ 하며 의구심이 들 때.
무대 위에서 능청맞게 관객들의 흥을 돋우던 우주가 비어 있는 건반의 자리에 앉았다.
그러곤 손바닥을 부딪혀서 시선을 모았다.
-노래를 듣기 전에 부탁 한 가지 드릴게요.
그의 검지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일 때.
손끝이 우아하게 피아노 건반으로 내려가 건반 하나를 눌렀다.
얇고 가느다란 하나의 음.
건반에 놓인 마이크에 그의 입이 가까워졌다.
-상상을 해 주세요.
이어서 한 손으로 부드럽게 멜로디를 연주하면서 목소리가 나긋하게 이어졌다.
-꿈이 풍선처럼 하늘로 두둥실 떠오른다고 상상을 해 주세요. 말 그대로 천 개의 꿈이 날아오르듯이.
귓가를 간질이는 건반의 선율과 함께 그 옆에 일렬로 앉아 있던 네 멤버가 마이크를 들었다.
거기에 건반을 연주하는 리더의 목소리까지.
다섯 개의 목소리가 하나의 화음이 되어 공연장을 울렸다.
그렇게 이어지던 멜로디의 변주는 점점 관객들에게 익숙한 것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파란색과 노란색이 섞인 조명이 무대를 본격적으로 비췄다.
동시에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던 라이브 밴드의 현악기와 드럼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 뮤지컬 영화에 나왔던 ‘Thousand Dreams’로 변모했다.
관객들의 머릿속에 노스탤지어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주인공이 외국어 서적 코너에 가서 노래를 들었던 그 장면.
예상되는 첫 번째 가사를 떠올릴 때, 우측에 앉아 있던 새하얀 얼굴의 멤버가 마이크를 들었다.
우리에겐 보여 줄 스토리도
주인공도 없지
하지만 꿈은 가득하다네
가사 뒷부분으로 갈수록 고음을 부드럽게 올리는 보컬.
그 잔상이 공연장에 메아리처럼 은은하게 남기도 전에 객석에서 저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
무의식적인 탄성이라 순식간에 공연장의 사운드에 묻혔지만 관객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다르다.’
‘극장에서 듣는 거랑 또 다르네.’
라이브로 들어도 얼마나 좋겠나, 하고 생각하던 관객들의 생각이 180도로 바뀌었다.
그 동안 노래가 이어졌다.
붉은 머리카락의 멤버가 부드러운 미성으로 귓가를 촉촉이 적시기도 하고.
묵직한 목소리의 인물이 가사를 읊조리기도 하고.
앳된 인상의 멤버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미소로 시선을 끌어모으기도 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조율하듯 건반을 연주하며 상쾌하게 노래하는 리더까지.
‘와아…….’
오늘 자리에 참석했던 뮤지컬 배우들이 뽐냈던 무대와는 또 다른 느낌의 공연이었다.
같이 신이 난다고 할까.
잔잔하게 시작했던 멜로디는 어느새 유쾌하게 변해서 관객들의 구두코가 바닥을 통통 두드리게 만들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수백 개의 말과
수천 개의 꿈
그리고 허름한 서가
노래가 이어질 때마다 영화 장면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마법에 걸린 도서관.
평소에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 소설책이나 과학책과는 다르게 허름한 구석에 있는 외국어 서적 코너.
그들 역시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 하지만 여건이 너무나 열악했다.
책에 담긴 것이라고는, 공부할 때 빼고는 딱히 관심을 가지지 않는 다른 나라의 언어들이었으니까.
가진 꿈은 많지만 이룰 수 없는 처지.
허나 그에 슬퍼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것을 유쾌하게 노래하는 책들이었다.
그리고 점차 진지해지는 곡의 분위기.
꿈을 손에 쥘 수 있다면
그것을 잡아
하늘로 날려 보내게
저마다 품고 있는 꿈.
아무리 예쁘고 좋은 꿈이라 해도, 손에 쥐고 놓칠까 봐 전전긍긍하지 말라는 내용의 가사였다.
꿈은 자신의 일부일 뿐인데. 스스로 그 꿈의 일부가 되지 말라는.
다섯 가수가 합창하듯 불렀다.
저 높은 하늘로
부드럽게 놓아줘
꿈은 별이 되어
저마다의 밤하늘을 밝혀 줄지니
대신 그 꿈을 목적지가 아닌 나침반으로 삼으라고 작중의 주인공에게 조언을 해 주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메인 보컬이 이끄는 ‘Thousand Dreams’의 후렴구가 힘차게 울려 퍼졌다.
망망대해에서
천 가지의 꿈이
천 가지의 별이 되어
그대의 항해를 도와줄 테니
뮤지컬 넘버 특유의 벅차오르는 멜로디와 함께 목소리들이 공기를 쩌렁쩌렁 울렸다.
그러는 동안 천여 명의 관객들은 1절의 마무리에 작게 박수를 쳤다.
저마다 노래의 가사가 주는 의미를 다양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극장에서나 혹은 이어폰으로 듣는 것과 다르게 실제 현장에서 듣는 라이브는 그 느낌이 완벽하게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1절이 지나고.
2절까지 끝난 후.
“와아아아아—!”
관객들의 박수가 쏟아지는 가운데, 자리에서 일어난 5인조가 생긋 웃으며 무대 인사를 했다.
-지금까지 뉴블랙이었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깔끔하게 손을 흔들고 내려가는 멤버들.
여전히 남아 있는 공연의 여운과 함께 ‘뉴블랙’이란 키워드가 귀에 박히듯이 들어왔다.
처음에 호언장담했던 대로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한 이름이었다.
‘뉴블랙…….’
백스테이지로 향하는 그들의 모습을 찍던 카메라가 박수를 치는 관객들을 담았다.
그러는 동안 무대 아래서 기다리고 있던 현장 스탭, 안톤은 눈을 멀뚱멀뚱 떴다.
‘무슨 팔로워가…….’
스마트폰에 떠오른 뉴블랙 SNS 계정의 팔로워 수에 저도 모르게 마른침이 나왔다.
그리고 지금 있는 라이브홀과 비교도 안 될 만큼 커다란 공연장에서 찍은 사진들까지.
한국에서 엄청 유명한 가수라는 건 분명했다.
직접 공연하는 동영상을 본 것은 아니지만, 퍼포먼스나 무대 매너가 절대 신인 가수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우리 무대 어땠어요?”
뉴블랙 멤버들이 내려오면서 그에게 환한 미소를 지을 때, 안톤은 어디에라도 들어가 숨고 싶은 기분을 느꼈다.
* * *
라이브 콘서트 다음 날.
우리는 LA에 모인 미국의 수플레들과 함께 팬미팅을 성료했다.
「오늘 여기까지 와 줘서 정말 고마워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해외 투어가 끝나면 그러하듯 다 같이 국기 앞에 모여서 팬들과 셀카를 찍었다.
팬미팅과 콘서트 사이의 규모라고 할까.
아시아권보다 큰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리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숫자였다.
그리고 열기도 대단했다.
“아아아아악……!”
떠나지 말라고 손짓하는 팬들에게 우리도 아쉬움 가득한 손짓을 해야 할 만큼.
내려오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그 열기에 얼굴이 발갛게 상기됐다.
“석환 형.”
“응?”
“팬미팅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라며.”
“음, 그 뭐, 너희는 아무리 작은 무대라도 최선을 다하니까…….”
우리의 타박에 석환 형이 시선을 피하며 웃었다.
“그게 생각보다 너희 팬이 몰려서 객석을 조금 늘린다는 게…….”
쌀을 한 컵만 푸려고 했는데, 쌀포대가 와르르르 무너지는 것처럼 됐다는 이야기에 웃었다.
그리고 이 정도 규모면 내년에는 본격적으로 콘서트를 추진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어딜 가든지 현지 관계자들이 너희 보고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기는 하다만.”
매니저가 웃으며 말했다.
“열기가 심상치 않다고 하더라. 내년에는 본격적으로 다른 지역에서도 콘서트를 추진해도 될 거 같다던데.”
“오오……!”
“이번 팬미팅은 다른 주에서 비행기 타고 온 사람도 많다더라.”
“오오…?”
내가 물었다.
“비행기를 타고 온다고? 왜?”
“그야… 차로 못 오니까?”
“잠깐만. 그럼 우리가 만약에 여기서 투어를 돌면…….”
“비행기를 타야지.”
내가 슬프게 ‘오오…’ 하며 고개를 떨구자, 동생들이 ‘오옹…’ 하며 내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그러다가 그냥 웃었다.
그런 문제야 나중에 걱정할 일이고, 일단은 현지 반응이 좋다는 데서 만족하기로 했다.
“모두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라이브 콘서트와 미국 팬미팅을 함께 한 모든 스탭들에게 감사인사를 하고는.
“라이브 콘서트?”
“끝났다!”
동생들이 주먹을 쥐고 답했다.
“팬미팅?”
“끝났다!”
“인터뷰 스케줄?”
“그것도.”
이번에는 다 같이 외쳤다.
“끝났다!”
“우리 그럼 이제 뭐 한다?”
“놀고먹는다!”
‘와아아아’ 하고는 곧바로 호텔로 돌아갔다.
내년이면 고3이 될 우리 막둥이가 나잇값을 못하고 흥분해서 침대를 방방 뛰었다.
“우리 그거 해여. 베개 싸움!”
“어휴, 뭔 베개 싸움을…… 하자!”
“아악!”
처음에는 신이 나서 시작을 했다가.
“나님 참전.”
소림사의 고수처럼 양손에 든 베개를 붕붕 돌리는 괴물 때문에 모든 것이 끝났다.
안에 든 게 솜이 아니라 볼트랑 너트 같았다.
“중현아, 형이다. 형이야아아악!”
“아악! 김중현… 너 앞으로 내가 볶음밥에 당근만 넣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늘 하는 생각이지만 저 형은 꽃으로 때려도 아플 거 같아요.”
피겨 선수가 회전을 하듯이 몸을 팽이처럼 붕붕 돌리는 누군가에게 우리가 모두 쓰러졌다.
그런 우리의 모습에 매니저 형들만 미튜브에 올릴 영상이 늘었다며 물개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어쨌거나 5분 만에 베개 싸움 대신에 베개 들고 춤추기로 장르를 바꿔서 놀았다.
베개 저글링을 하며 탭 댄스를 춘 내가 동생들의 몰표로 우승을 거둔 후.
곧바로 뻗어서 잠 들었다.
“진짜 날씨 좋다.”
“그러니까여. 놀 맛 나는 거 같아여.”
곧 출국을 앞두고 주어진 휴식.
예상을 웃도는 따스한 날씨와 햇볕에 절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비주가 말했다.
“날씨도 날씨인데. 알아보는 사람들이 없어서 좋은 거 같아요.”
“그것도 있네.”
“한국에서는 우리가 뭐 할 때마다 알아보는 분들이 나와서 민망하고 그랬잖아요.”
“맞아여. 골목에서 춤도 맘대로 못 추고.”
우리 모두 동의했다.
길을 걸을 때마다 사람들이 알아보는 건 좋았지만, 그것 때문에 행동에 제약이 생겼다고 할까.
예전처럼 골목에서 춤을 추면서 놀 수도 없고.
우리끼리 대화를 할 때마다 근처 테이블 사람들이 막 웃음을 터뜨리는 통에 점잖게 대화를 해야 했다.
그랬기에 기분이 좋았다.
“모두가 우리를 모르는 곳…….”
동생들과 이것저것 해 보자며 신이 나서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놀이동산, 식사 등으로 이어진 그날의 휴식 일정을 시작했다.
리혁이가 시간대별로 만든 타임 테이블에 따라 다 같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오랜만이야!」
「치치퐁!」
첫 번째는 노스탤지어의 주연 배우인 루퍼트 딘과의 간단한 식사 자리였다.
한국에서 프로모션 행사를 하면서 친해진 친구였다.
「내 매니저가 그러는데 여기가 한식 관련 식당 중에서는 제일 유명하대. 갈비가 맛있다고.」
「갈비……!」
말로만 듣던 LA 갈비에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루퍼트를 따라 입장하자 가게 안이 술렁거렸다.
갈색 머리카락 아래로 보이는 섬세한 예술가 같은 인상의 미청년이라는 것도 있지만, 아마 현재 할리우드에서 잘나가는 배우 중 하나이기 때문일 터였다.
곳곳에서 수군대는 시선에 우리가 뿌듯함을 느꼈다.
‘아무도 우리를 모른다.’
‘완벽한 제3자……!’
그렇게 뿌듯한 표정으로 메뉴판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음……?”
처음에는 루퍼트 쪽을 흘깃거리며 다가오던 종업원이 우리를 발견하고 흠칫했다.
그러더니 눈을 깜빡거렸다.
“뉴블랙?”
“……예?”
우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바라보자, 한국인 유학생으로 보이는 종업원이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엇, 네. 안녕하세요. 근데 저희를 어떻게…….”
“저 한국 사람이에요.”
한국 사람이니 당연히 안다는 논리 전개에 잠시 당황했다가 이내 웃으며 인사했다.
한식을 메인으로 하는 식당이니 한국 유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놀라운 건 아니었다.
한국어로 이루어지는 대화에 루퍼트가 빙그레 웃었다.
「완전 유명인이네. 너희.」
「아니야. 여기에 우연찮게 한국 사람이 있어서 그래.」
…라고 일축했지만.
이내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를 깨달았다.
동생들과 방문한 놀이동산에서도 우리 놀이기구 차례가 될 때까지 기다릴 때도.
어느 신혼부부가 지나가다가 손을 흔들었다.
“어? 안녕하세요.”
“…….”
“여기 왜 있어요?”
상점들이 모인 거리에서 쇼핑을 할 때도 가족 관광객이.
“어, 뉴블랙……!”
“…….”
“맞죠?”
할리우드 거리를 방문하거나 곳곳의 명소들을 돌 때마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꼭 인사를 하곤 했다.
어디에서 우리를 봤냐고 할 때마다 ‘TV에서요’, ‘미튜브’ 라고 대답하는 한국 사람들이었다.
일정을 끝마칠 무렵 우리는 빼앗긴 자유에 허망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여긴 뭔 한국인이 이렇게 많아…….”
세계 어딜 가든 한국인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 * *
비슷한 시각. 한국.
여러 커뮤니티 해외 연예인 정보 게시판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루퍼트 딘 오늘자 파파라치샷]
최근 노스탤지어에서 연기력을 한창 증명한 10대 배우.
그 이름값에 걸맞게 조회수가 쭉쭉 올라갔다.
이내 사진을 본 이들은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뭐야ㅋㅋㅋㅋ 뉴블랙은 왜 또 저기 있어?
-또블랙;
-어쩐지 오늘 하룻동안 얘네 얼굴 못 봐서 이상하긴 했음
-니가 뉴블랙을 못 보면 뉴블랙이 널 찾아올 것이다
-하와이안셔츠ㅋㅋㅋㅋㅋㅋ 옆에서 고개 푹 숙이는 애들이 멤버들 맞지??
-고개 숙여서 못알아봄
-해외 파파라치 샷에 한국 연예인 나오는건 또 처음본다 진짜ㅋㅋㅋㅋ
하와이안 셔츠에 할아버지 선글라스를 낀 채 외국 배우의 옆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 우주였다.
그리고 다른 커뮤니티나 SNS도 마찬가지였다.
@Dayoung.227
(굉장히 얼떨떨한 표정의 뉴블랙과 환하게 웃는 관광객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
미국 LA 여행을 왔다가 한국인을 발견해서 엇!! 했는데 뉴블랙이었다~~ㅎㅎ
너무 반가워서 사진도 같이 찍음~
우주 님에게 너무 잘생겼다고 해주니 갑자기 껄껄 웃으며 나와 남편에게 악수를 청해왔다 (왜 했는지는 나도 잘 모름..)
곳곳에 LA에서 뉴블랙을 보았다는 목격담과 함께 같이 찍은 인증샷이 올라오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인지도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뉴블랙은 우리 집 개도 알아볼 것 같다는 반응이 한국의 인터넷에서 공감을 얻고 있을 때.
같은 시각.
태평양 건너편 미국의 온라인에서는 다른 게 화제가 되고 있었다.
‘음? 뭐지?’
미튜브의 인기 동영상에 떠오른 낯선 썸네일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
바로 노스탤지어의 영화사 측이 올린 라이브 콘서트의 영상이었다.
처음에는 그 관심이 미미했다가 이내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한 라이브 클립.
[“Thousand Dreams” Performed by The New Black]
미튜브를 보고 있던 사람들의 손가락이 동영상을 누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