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34)화 (334/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34화

동영상에 나온 것은 어느 5인조의 공연이었다.

‘뉴블랙’이라는 이름의 낯선 가수들이 익숙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어……?’

동영상을 본 미국인들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최근에 미국 내에서 흥행 돌풍을 기록했던 유명한 뮤지컬 영화의 OST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부르는 가수들의 목소리가 익숙했다.

‘라디오에서 나오던 거랑 똑같네.’

얼마 안 가 이 노래의 원곡자가 동영상 속에 있는 5인조 가수라는 것을 깨달았다.

예상했던 비주얼이 아니라 색다르긴 했지만.

이내 성능이 좋지 않은 스피커나 이어폰으로도 노래의 여운이 진하게 몰려 들어왔다.

댓글창에도 호평이 가득했다.

-이 가수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는 건 분명해

-다섯의 목소리가 진짜 아름다워

-와우. 배우들이 웬만한 가수보다 더 잘 부르는걸

┕얘네 가수야, 멍청아

-이 노래 진짜 좋아!!! :D

-뭐야?? 북가이즈 목소리가 이 사람들이었어???? 진짜 몰랐는데.

-미디어는 falling stars 말고 thousand dreams를 조명할 필요가 있어. 다들 아는 이 유명한 노래의 원작자를 아무도 모른다는 게 대체 말이 된다고 생각해?

-처음 시청할 때 : 북 가이즈구나! / 시청한 후 : OK. 뉴블랙. 입력완료.

-재미있는 사실 하나: 맨 왼쪽 사람이 이 곡의 작곡가임! + 좋아요 감사, 뉴블랙 사랑해!!

-그래서 얘네가 누군데 너드들아. 내가 아는 뉴블랙은 교도소 드라마뿐이야

분명히 처음 보는 신인 가수인데 여기저기서 영어로 ‘뉴블랙!’ 하고 있는 댓글들이 보였다.

그에 대해 빨강파랑 반반 원이 그려진 낯선 국기를 썸네일로 한 유저가 설명했다.

-뉴블랙. 미국에 사는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굉장히 유명한 K팝 보이밴드야.

그제야 사람들의 의문이 풀렸다.

K팝.

어떤 장르인지 인지하고 있긴 했지만 직접 듣는 사람은 굉장히 소수인 음악이었다.

그랬기에 ‘Thousand Dreams’의 공연을 본 사람들은 한국의 뮤직카페에서 올린 다른 공연 영상 정도만 볼 뿐이었다.

일부만이 호기심에 한 두어 번 타이틀 무대의 영상들을 눌러보긴 했지만 그것도 오래는 안 갔다.

대부분은 뉴블랙의 다른 공연 영상에 대해 그리 큰 흥미나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다만…….

‘여기는 뭐 하는 곳이지?’

미튜브 영상의 알고리즘을 따라 한두 단계씩 움직인 이들은 공통적으로 신기한 것들을 발견했다.

‘뉴블랙 TV’, ‘뉴블랙 TV2’ 라고 되어 있는 채널들의 재생 목록.

‘피아노 연주 진짜 좋다.’

뉴블랙의 리더가 취미 생활로 앨범의 수록곡을 피아노 곡으로 변환하여 업로드한 영상이 있었다.

심지어 악보까지 무료로 제공이 되고.

가만히 ASMR 용으로 틀어놔도 될 만큼 몽글몽글한 멜로디의 피아노 곡들이 있었다.

‘오늘은 내가 요리사……?’

앞치마를 맨 채 한국의 유명한 요리들의 레시피를 소개하며 요리하는 영상도 있고.

‘파? 파를 키우는 브이로그?’

매일 체육관에 출근할 것처럼 생긴 미남이 순박한 농부 같은 얼굴로 파하하 웃으며 파의 성장을 기록하는 브이로그도 있었다.

‘정리하기 좋은 팁……?’

새하얀 얼굴로 수납장을 펼쳐둔 채 양말을 신묘하게 접는 누군가의 영상도 있었다.

동영상을 본 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나중에 볼 영상으로 등록했다.

‘한국사 69점 극복 프로젝트 1일차? 왜 계속 1일차 밖에 없지?’

책상에 셀프캠을 올려둔 채 공부하는 누군가의 영상.

호감 가는 반듯한 외모와 집중하는 표정이 보기 좋아서 하염없이 쳐다보게 되는 영상이었다.

2주에 한 번씩 ‘오늘부터 1일’ 하며 열심히 공부를 하는 누군가의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1분 하고 ‘포기!’ 하며 환하게 웃거나, 2분 하고 ‘오왕! 큰 누나한테 전화 왔당!’ 하며 포기하는 영상.

그래도 새롭게 올라오는 1일 영상일수록 시간이 길어지는 게 포인트였다.

“…….”

그런 동영상을 홀린 듯이 보고 있을 때.

어떤 이유로 대체 여기까지 흘러들어온 것인지 눈을 깜빡이던 미국의 미튜브 이용자들이 구독을 눌렀다.

‘무슨 종합 채널 같네.’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모든 것을 준비해 놨다는 말이 어울릴 만큼 컨텐츠가 많았다.

분명히 K팝 보이밴드라고 들었는데.

한국의 보이밴드는 아무래도 미국과는 많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미국인들이었다.

‘한국은 가수가 돈을 잘 못 버나?’

진짜 유명한 가수라면 앨범이나 노래 수익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을 텐데.

얼마나 궁하면 이런 부업까지 하나 하는 짠함이 일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뉴블랙의 미튜브를 보면서 어딘가 익숙한 향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꼭 리얼리티 스타 같네.’

미국에서 자신들의 일상을 리얼리티 쇼로 제작해서 유명인이 된 가족들이 떠올랐다.

가족적인 분위기도 그렇고, 자꾸만 보게 되는 것도 그렇고.

차이점이라면 뭔가 5명이 함께 모인 일상을 보면 자극이 없는데도 재미가 있다고 할까.

양팔을 벌린 채 외발자전거를 타는 영상을 보며 훈훈하게 웃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뉴블랙의 미튜브 채널까지 데굴데굴 굴러간 이들이 영상을 보는 한편.

뉴블랙의 무대가 담긴 영상의 조회수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내 그 소식은 한국에도 퍼졌다.

[지금 미국에서 반응 엄청 좋은 뉴블랙 무대]

미튜브의 댓글이나 커뮤니티의 스레드 캡처 등이 영상 링크와 여러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노래 좋다ㅠㅠ 저거 내 최애곡이야

-나는 쟤 우주가 영어로 토크할때 묘하게 국뽕 차오르는 느낌ㅋㅋㅋ 관객들이 되게 좋아하는 거 느껴짐

-저기 쟤네 뭐 흑역사나 실수하는거 없지?? 있으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보려궁

-ㄴㄴ 없음. 뉴블랙이 꼭 그렇게 나가는 것마다 이상한 건 아님. 팬으로서 말하자면 열에 여섯 정도.

-ㅋㅋㅋㅋㅋㅋ60프로자나 그러면

-대박ㅋㅋ 라이브 진짜 잘하긴 하네

-루퍼트 딘이랑 벨라 페이지 사이에 끼어 있으니까 되게 묘하다ㅋㅋ 합성같아ㅋㅋㅋ

대부분 라이브 공연의 퀄리티에 대한 호평과 약간의 뿌듯함을 느낄 때.

부정적으로 깎아내리는 이들도 만만치 않았다.

-미튜브 조회수 하나 올라간 걸로 팬들 작업치네

-폴링 스타면 모르겠는데; 솔직히 저 곡 한국에서나 유명한거임ㅋㅋ 내가 사는 미국 동네에선 저 노래 아무도 모름

-솔직히 빌보드 차트 한국으로 따지면 망고 100이랑 똑같은 거

-또 언플 시작됐쥬?ㅋㅋ

-며칠만 지나도 아무도 기억 못할 텐데~ㅎ

여러 예능에서 차근차근 쌓아올린 대중적 호감도 덕에 안티가 적은 편인 뉴블랙이었지만.

인기에 비례해 물어뜯는 이들의 수도 더 늘어나 있었다.

다들 감탄하거나 노래가 좋다고 하는 댓글창에 난입한 그들이 댓글을 우수수 달 때.

[와아아아-!]

[지금까지 뉴블랙이었습니다!]

미국 여러 곳에서 동영상을 보는 일반인들의 뇌리에는 공연의 마지막 대사가 머물고 있었다.

‘Thousand Dreams’가 주는 여운에 젖어 있을 때 박수갈채 속에서 소개된 가수의 이름.

동영상을 본 사람들에게는 꽤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한 이름이었다.

*   *   *

자유 일정을 마친 우리는 지친 몸을 이끌고 차량에 올라탔다.

“에궁, 삭신이야…….”

“아이고. 이게 노는 것도 습관을 들여야 되는데, 오랜만에 노니까 이것도 힘드네여.”

막내의 말에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만 하고 살다 보니 요즘은 노는 것도 힘들다 싶었다.

“자, 시계방향.”

내 말에 따라 동생들이 손을 들어서 각자 시계 방향에 있는 멤버의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반시계 방향.”

이번에는 반시계로 서로의 어깨를 조물조물 해주고.

각자 품에 안고 있던 쇼핑 봉투나 기념품 상자들을 조심스럽게 정리하고는 기지개를 켰다.

해안 도로를 달리는 가운데 멀찍이 노을이 바다를 붉게 적시고 있었다.

차창 밖에서 들어오는 바람을 즐기고 있을 때, 스마트폰을 검색하던 리혁이가 말했다.

“외교부 자료에서 찾았는데, LA에 거주하는 한인만 거의 60만 명 즈음 된대요.”

“흐어…….”

“거주 인구만 해도 제주도 인구랑 같다네요.”

“어쩐지.”

우리가 납득했다.

“길을 걸어갈 때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뿅 하고 나타나더라.”

“이게 한국에서는 그래도 다 한국 사람이라 묻혔는데. 여기는 외국이라 더 눈에 띄는 거 같아여.”

거주 인구만 해도 그 정도인 상황이니, 관광객까지 더하면 우리가 눈에 안 띌 수가 없었다.

아침에 ‘아무도 우릴 모를 것이다. 흐흐흐’ 했던 게 바보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멀찍이 바다를 바라보던 내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그러면 너희 어머니 집도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곳에 있어?”

“엄마 집이요?”

리혁이가 고개를 저었다.

“예전 집은 그렇긴 했는데요. 그런데 지금은 이사했다고, 예인이한테 얘기를 들어서.”

“어딘지 몰라?”

“나도 처음 가 보는 동네예요.”

우리는 지금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리혁이 어머니의 집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집에 와서 밥 한 끼 하자고 하셨는데. 기왕이면 가장 여유로운 시간대에 가고 싶어서 마지막 날로 약속을 잡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근처의 표지판을 살피던 녀석이 말했다.

“그래도 이쪽 방향이면 나름 좋은 동네일 거예요. 아마도.”

“오. 그렇구만.”

“내가 어렸을 때 살던 쪽은 조금 안 좋은 동네였어서…….”

석양을 보며 셀카를 찍고 있던 막내가 물었다.

“형, 그러면 미국에서는 애기 때만 산 거예여?”

“초등학교 저학년 때 잠깐?”

“그래서 원어민 쌤이 처음에 발음은 좋은데 애기들 단어 쓴다고 그런 거였구낭.”

“…….”

멤버 가족을 만나러 간다고 곱게 차려입은 터라 막둥이를 건드리지 못하는 리혁이었다.

부들부들하던 리혁이가 말했다.

“뭐, 아무튼 그때 당시에 살던 곳이 좋은 동네는 아니었어요. 다니던 학교 애들도 그렇고.”

살짝 어두워지는 표정을 보아하니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닌 듯했다.

“엄마도 당시에 일하느라 바빠서 딱히 나를 신경 쓸 여력이 있던 건 아니었고.”

“누가 괴롭혔어?”

“뭐, 조금. 뻔하잖아요. 내가 체구도 작은 편이고.”

그런 이유 때문에 한국으로 온 건가 생각할 때.

“학교에서 엄청 안 좋게 찍혔어요.”

“……?”

“괴롭히는 애들이 있을 때마다 말 몇 마디씩 해 줬거든요. 근데 애들이 멘탈이 약한지, 몇 마디 하기만 해도 막 울면서 뛰쳐나가던데요.”

“아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전개에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욕을 한 것도 아니고. 나쁜 말을 한 것도 아니고. 논리적으로 딱딱 요점을 짚어서 네가 못된 이유를 설명해 줬는데, 학교에서는 엄마 보고 오라고 하고 그러니까.”

“……그랬구나.”

“근데 엄마도 학교에 안 왔어요. 너무 바빠서.”

여차저차 하다 보니 한국으로 흘러 들어오게 되었다는 듯했다.

리혁이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멀찍이 석양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무튼 미국에서도 그런 일들이 생길 때 주로 전화하고 그러니까. 한국에서도 내가 연락하면 힘들어서 그런 줄 알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연락이 뜸해졌어요.”

“왜?”

“예인이도 챙겨야 하고. 미국에서 혼자 돈 버는 것도 힘든 판에, 내가 연락하면 부담스러울 수 있잖아요.”

“으음…….”

나와는 사고방식이 달라서 공감은 안 갔지만 리혁이 나름대로의 배려인 듯싶었다.

어쨌거나 왜 어머니 집 주소를 잘 모르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리긴 했다.

LA에 와서 옛날 생각이 나서 그런지, 우리가 경청해줘서 그런지 리혁이가 계속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진 것 같긴 해요.”

“그래? 다행이다.”

녀석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예인이랑 영상통화 할 때나 메신저로 받은 집 사진 보면, 그래도 훨씬 좋아진 것 같긴 하더라고요.”

“오오…….”

“이번에 사는 집은 얼마 전에 이사했다고 듣긴 했는데. 아마 이전 집이랑 큰 차이는 없…….”

말을 하던 리혁이가 멈칫했다.

그러고는 얼빠진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우리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요?”

“어머님 집이 있는 동네 말이야.”

“네.”

“여기인데?”

“…네?”

“주변에 집을 봐봐. 리혁아.”

어느덧 하늘은 검푸른 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지나가고 있는 동네의 집들은 모두 하나같이 으리으리한 편이었다.

한국으로 따져도 엄청난 부촌이라고 해도 될 만한 동네.

우리 부자 막내가 ‘우와아아’ 하며 감탄하고 있을 정도면 말 다했지.

“…아닌데. 이럴 리가 없는데.”

리혁이가 중얼거리며 바깥을 바라보았다.

그러는 동안 차량은 점점 더 깊숙한 곳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으리으리했던 집들이 지나가고 수영장 하나 딸린 나름 평범한 부잣집이 스쳐 지나갈 때였다.

부르르-

차가 멈춘 곳에서 우리는 눈을 깜빡거렸다.

“야. 리혁아. 여기 대문이 있는데?”

영화에서 마피아 보스가 사는 집처럼 쇠창살의 커다란 문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조수석에서 이어폰을 끼고 졸고 있던 민기 형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우리도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뭐여, 이게 뭐시여.”

“우주 형 당황한 거 봐여. 사투리 나왔다.”

“아니, 집이 무슨…….”

바깥에서는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커다란 담장에 둘러싸인 집.

이내 ‘띠이이-’ 하는 소리와 함께 정문이 천천히 열리고, 우리가 탄 차량이 진입했다.

“우와…….”

은은한 조명이 들어오는 분수.

차량 진입로를 통해서 차가 움직이는 동안 멋지게 가꾼 잔디와 꽃밭이 보였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으리으리한 3층 저택이었다.

“…….”

현관으로 나온 리혁이네 어머님과 발랄하게 손짓하는 동생 예인이가 보였다.

차가 그곳으로 다가가는 동안 내가 물었다.

“어머님이 뭐하신다고 하셨어?”

“옷 장사 시작했다고만…….”

“그런 옷 장사가 아닌 거 같은데?”

“…….”

리혁이가 할 말을 잃고 있는 동안 우리는 그만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게 이럴 리가…….”

그럼 여태까지 나는 뭘 한 건가 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리혁이를 보며 우리가 깔깔거렸다.

그동안 막내가 교훈을 주는 요정님 같은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여러분은 지금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보고 계… 아아악!”

리혁이가 달려들었다.

“이게 진짜! 불난 집에…!”

“불은 형이 냈잖아여! 아아악!”

“맞는 말하지 마아아!”

옆에서 ‘진짜 맞는 말이네’ 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중현이가 비주에게 등짝을 얻어맞았다.

참신한 개판에 내가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   *   *

“안녕하세요, 어머님!”

“안녕.”

내가 밝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부드럽게 악수를 하고는 인사를 마무리했다.

“콘서트 때 뵙고 또 뵙네요. 저희가 어머님 드리려고 선물을 챙겨왔는데…….”

리혁이에게 눈짓을 하자, 녀석이 어색하게 나서서 선물이 담긴 봉투를 내밀었다.

어머님이 봉투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고맙구나.”

“네.”

“…….”

“…….”

세상에서 제일 어색한 대화였다.

우리를 안으로 안내해 주려던 어머님이 고개를 돌렸다.

“매니저님도 들어오세요.”

“아니요. 저는 일정이 따로 있어서요. 이따가 애들 데리러만 돌아오겠습니다.”

부담스러운 자리라서 처음부터 거절 의사를 밝혔던 매니저에게 우리가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곤 어딘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저택을 올려다보던 운전기사와 함께 떠났다.

“들어오렴.”

조곤조곤한 목소리를 따라 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신세계를 보았다.

“우와아아…….”

“호그와트 같아여. 형. 호그와트. 엄청 고… 고 뭐지. 고풍스러운 느낌이에여.”

“너, 이렇게 놀라는 거 처음 본다.”

“우와아. 저거 봤어여?”

벽에 걸린 그림이나 이런저런 항아리 같은 소품을 보며 감탄하는 우리 막둥이였다.

비주와 중현이도 마찬가지였고.

나도 저택 인테리어를 보며 나중에 김덕순 여사한테 집을 지어 주면 어떻게 할지 틈틈이 참고했다.

그렇게 살피던 우리가 리혁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바보 아냐?”

“저것은 바보다.”

“진짜 바보.”

귀가 벌게진 녀석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내 벽에 큼지막하게 걸린 경제 매거진의 표지 사진도 눈에 들어왔다.

정장을 입은 어머님이 우아한 자세로 서 있고, ‘샤론 킴’이라는 이름과 함께 의류 회사의 CEO라는 설명이 나왔다.

-뭐. 옷 장사한다고 듣긴 했는데…….

다시 한 번 리혁이를 바라보며 말을 하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가 식당이에요.”

리혁이의 동생이 ‘짜잔’ 하듯이 식당을 소개했다.

둥글게 모여 앉을 수 있는 가족적인 분위기의 테이블에 우리가 둘러앉았다.

곧바로 애피타이저를 내오는 출장 요리사에게 리혁이네 어머님이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릭.」

「식사 맛있게 하세요.」

우리도 같이 ‘감사합니다!’ 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애피타이저를 깨작이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와, 집이 엄청 근사하네요.”

“그러니? 생각보다 비싸게 산 건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는데.”

“네. 엄청 멋져요.”

식사는 생각보다 편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어머님, 요리가 정말 맛있는 거 같아요. 제가 20년 살면서 먹은 요리 중에 최고예요.”

“너무 맛있어여.”

“저 혹시 여기서 일할 수 있나요?”

중현이가 촉촉한 눈으로 일자리를 구하는 모습에 다 같이 큰 웃음을 터뜨렸다.

어머님은 그리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지만, 우리가 워낙에 수다를 잘 떠는 덕분이었다.

“그럼 의류업을 하시는 거예요?”

“응, 얼마 전에 지점을 엄청 늘렸어. 매출 지표도 좋은 편이고.”

미국에서 오래 살아서 한국어를 많이 잊으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굉장히 잘하셨다.

“이 나라에서 내가 사업 쪽에 진출할 분야가 많지 않거든.”

이름을 들어 보니 미국 곳곳에 지점이 퍼져 있는 의류 업체였다.

조심스레 검색해 보니 사업을 빠른 속도로 크게 일군 어머님에 대한 경제지의 기사도 꽤 많았다.

그리고 그 사정을 우리만큼 몰랐던 인물이 있었으니.

“옷 사고 파는 일 하신다고…….”

“음? 내가 다르게 얘기했니?”

“아뇨.”

어딘가 미묘한 얼굴로 포크를 깨작이는 리혁이었다.

그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던 어머님이 입술을 달싹이다가 우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미국에서 활동은 잘됐니?”

“네.”

“다들 노래를 굉장히 잘 불렀던데.”

“아. 네.”

“물론 영상은 예인이 통해서 봤단다.”

왜 허공을 보고 말씀을 하시는 건지 의문을 품었는데.

내 옆자리에서 어머님과 똑같이 허공을 바라보며 귀를 붉히는 누군가가 보여서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우리도 허공을 보고 답했다.

“감사합니다.”

“그래.”

그러곤 다시 본 요리로 돌아와 식사를 했다.

나이프와 포크가 접시와 함께 만들어내는 소리를 듣고 있을 때, 어머님이 새삼스럽다는 듯 우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는 바빠서 대화할 시간도 없었던 것 같은데.”

“네. 저희도 엄청 아쉬웠어요.”

“이렇게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니… 색다르구나.”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다들 메일을 통해서만 접했던 터라… 내가 상상한 거랑 인상이 조금 다르기도 하고.”

우리의 포크가 우뚝 멈췄다.

“리혁이가 저희 얘기를 메일에 쓰나요?”

“꽤 보냈지.”

“나도 많이 받았어요.”

모녀의 답에 우리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호오, 저희 이야기를 했군요.”

“다들 궁금하지 않아요. 랍스터는 언제 제철인지?”

리혁이가 안절부절못하며 화제를 돌리려고 하는 동안, 무언가 생각하던 어머님이 말했다.

“매번 메일로만 이야기를 들어서 한 번 제대로 얼굴을 마주하고 싶었거든. 특히 우주.”

“저요?”

“누구기에 첫인상부터 그렇게 마음에 들었다는…….”

“푸흡!”

리혁이와 내가 동시에 사레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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