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35화
사레가 들려서 온몸이 흔들렸다.
“콜록! 콜록!”
“괜찮니?”
“괘, 콜록!”
어머님이 냅킨을 찾으시는 동안 리혁이와 내가 정신없이 기침을 해 댔다.
“혀, 형. 이거 마셔라도 마셔여!”
“그거 알콜 들어간 소다야. 지호야. 우주 형은 고ㅈ… 아니, 우주 형은 저거 마시면 아야 해.”
“어디 가야 해?”
귓속으로 대체 무슨 대화인가 싶은 참신한 개판이 흘러들어왔다.
“아니, 물 한 잔 주는 게 그렇게 어…… 딸꾹!”
“히끅!”
사레가 멈춘 다음에 남은 것은 나와 리혁이의 딸꾹질 이중주였다.
돌림노래처럼 하나가 딸꾹질을 하면 나머지 하나가 이어서 딸꾹질을 하는 식이었다.
“따, 따라하지 딸꾹!”
“히끅!”
입술을 꾹 내밀며 요리를 내오던 요리사와 눈이 마주쳐서 너무나 민망했다.
중현이가 ‘호오’ 하며 스마트폰을 들었다.
“이걸로 비트 짜야지.”
“…….”
“안 짜야지….”
우리 둘이 도끼눈을 하고 쳐다보자 핸드폰을 슥 넣고 요리에 집중하는 중현이었다.
괜찮냐고 묻는 비주에게 손사래를 친 후.
바보처럼 딸꾹질 이중주를 하던 나와 리혁이를 보던 어머님과 예인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죄송합니다.”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사레가 잘 들리는 편이어서. 리혁이한테 첫인상이 좋았다고 해서 너무 깜짝 놀랐나 봐요.”
“음? 그게 놀랄 만한 일이었니?”
“처음 만났을 때, 리혁이가 저를 안 좋아하는 줄 알았거든요.”
머쓱하게 딴청을 피우는 리혁이를 흘깃 보며 웃었다.
첫 만남 때 어땠더라.
연습실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는데, 대뜸 포기할 거면 지금이라도 당장 포기하라고.
막 눈에 쌍심지도 돋은 채로, 너를 며느리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하는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다.
그래서 당연히 처음 만났을 때는 되게 싫어했겠거니 했는데.
“의외네요. 제 첫인상이 마음에 들었다고 할 줄은 몰랐는데.”
“엄청 좋았다고 써 있었는데.”
어머님이 냅킨으로 입을 슥슥 닦으며 말했다.
“새로 들어온 형이 진짜 잘생겼는데, 포기 안 했으면 좋겠…….”
“엄마.”
리혁이가 한숨을 쉬며 하는 말에 어머님이 웃으며 말을 멈췄다.
오늘 만나고 나서 처음으로 ‘엄마’라는 단어를 한 것을 되게 좋아하시는 듯했다.
리혁이가 어색하게 말했다.
“저 그러면 너무 창피해요.”
“알았어.”
“그리고 지금 손 든 사람들, 다 손 내리지 못해요? 엄마한테 메일 내용 뭐냐고 질문하지 마요.”
프라이버시라며 눈에서 레이저를 쏘아대는 누군가의 모습에 우리가 키득대며 손을 내렸다.
나도 웃으며 말을 꺼냈다.
“아쉽네요. 첫 인상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는데.”
“저희 첫 인상 이야기도 있나요?”
“다들 있었지.”
살짝 장난기가 동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던 어머님이 이내 아들의 애처로운 눈빛에 웃었다.
“워낙에 다들 좋은 이야기밖에 없어서, 늘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단다.”
그러면서 우리를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비주도, 중현이도 좋은 이야기 많이 들었어. 그리고.”
상냥하게 웃는 비주와 푸근한 미소의 중현이를 지나, 개구쟁이처럼 웃던 막내에게 머물던 어머님의 동공이 흔들렸다.
“……좋은 이야기를 여러모로 많이 들었단다.”
“넹? 저는여?”
“다들 만나서 너무 반갑구나.”
갑작스럽게 화제 전환을 하는 모습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막내가 울상이 된 얼굴을 하다가 이내 시선을 회피하는 리혁이의 발을 콰악-
아프다.
“지호야. 나야…….”
“앗.”
“왼쪽을 밟아야지.”
막둥이의 귀에 소곤거려 주자 이내 발이 밟힌 리혁이가 몸을 움찔했다.
그렇게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디저트까지 저녁 식사를 마무리할 때, 저택의 주인이 물었다.
“식사하고 바로 호텔로 돌아갈 거니?”
“네. 밤도 어둡고.”
“시간도 많이 늦은 것 같은데 여기서 자고 가는 건 어떠니?”
동생들의 표정을 흘깃거렸는데 다들 솔깃한 것 같다.
다만 우리가 여기서 함부로 그러자고 말할 수 없는 문제이기에 말없이 빙그레 웃을 때.
리혁이가 어색하게 말했다.
“시간도 늦었는데 폐를 끼치는 게 아닐까 싶어서.”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오빠. 오기 전부터 이미 손님들 침실까지 싹 다 정리해 놨거든.”
“……뭐, 그러면 자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우리를 흘깃거리는 시선에 답했다.
“저희는 엄청 좋아요.”
“그럼 됐구나.”
순식간에 자고 가는 걸로 확정이 땅땅 난 것 같다.
우리도 민기 형이 다시 픽업하러 돌아오는 걸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서 더 좋았다.
식사를 마칠 무렵, 어머님이 예인이에게 말했다.
“예인아. 오빠 방 좀 먼저 구경시켜 줄래?”
“응.”
“아니, 무슨 방 구경을…….”
리혁이가 자기 방 이야기인가 싶어서 우물쭈물 일어날 때, 예인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청소 도구 방이야.”
“어디야? 당장 가자.”
죽이 잘 맞아서 떠나는 서씨 남매를 보며 웃었다.
그러곤 리혁이네 어머니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들을 먼저 보낸 것을 보면 따로 하실 말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너무 고맙구나.”
상대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메일을 보내기만 하면 멤버들 이야기를 그렇게 길게 써서. 큰애가 말이 많은 아이가 아닌데.”
우리가 조용히 웃었다.
‘면은 원래 장수하려고 먹는 거예요. 그러니까 면을 싹둑 자르는 건 올바르지 못한 방식인 거죠. 아니, 내 냉면을 잘라서 기분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고 유래를 살폈을 때…….’
말… 엄청 많은데요…….
“감정 기복도 잘 없어서.”
우리가 또 한 번 미소를 지었다.
‘먼지 누구야! 당장 자수해요! 내 방 침대에 먼지 한 톨 일부러 올리고 간 거 누구예요! 아. 비주 형이 실수로 그런 거예요? 그럼 괜찮아요.’
감정 기복이 롤러코스터 급인데요…….
아들에 대해서 한 마디씩 할 때마다 놀라울 만큼 완벽하게 빗겨 나가는 어머님의 발언이었다.
“큰애가 누구를 비판하면 비판하지, 좋아하고 그러는 아이가 아닌데. 정말 멤버들에 대해선 좋은 이야기만 들어서.”
우리가 부끄러운 웃음을 흘릴 때, 상대의 감사 인사가 날아들었다.
“고마워.”
“아니에요.”
내가 답했다.
“저희도 리혁이한테 여러모로 큰 도움을 받고 있어서요. 노래도 잘 부르고.”
“청소도 엄청 잘해여.”
“책도 많이 읽어서 아는 것도 많고. 그리고…….”
우리끼리 시선을 교환했다.
‘야. 죽을 맛이네. 이거. 리혁이 장점 빨리 찾아내.’
‘없을 무.’
‘상상 이상으로 보탬이 안 됐네여.’
귓가에 스팀이 뿌우우 나올 만큼 머리를 굴리다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노래를 잘해요.”
“그것도 엄청 잘해요.”
“노래 진짜 잘해요.”
필사적으로 칭찬을 찾아내는 우리의 모습에 어머님이 안 봐도 비디오라는 듯 웃었다.
“리혁이가 좋은 친구들을 만난 거 같네.”
“저희가 리혁이를 잘 만난 거라고 생각해요.”
내 말에 동생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뉴블랙이란 팀 활동에 있어서 메인 보컬인 리혁이에게 의지하는 부분이 굉장히 많으니까.
보컬 디렉팅부터 시작해서 퍼포먼스의 하이라이트까지.
노스탤지어의 OST인 ‘Thousand Dreams’ 역시 우리 힘만으로 부르기엔 어려운 곡이고.
가끔은 없애 버리고 싶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멤버였다.
“그래.”
어머님이 웃으며 말했다.
“참, 리혁이가 요즘에 뭐 관심을 보인다거나 하는 게 있니?”
“요즘 들어 부쩍 고구려 역사에 관심이 는 거 같아요.”
“고구려 역사.”
“고구려 말랭이도 좋아하고요.”
“고구마 말랭이.”
비주가 웃는 걸 보아하니 뭔가 잘못 이야기한 기분이 드는데, 찰떡같이 알아듣는 어머님이었다.
그런 식으로 아들의 요즘 관심사나 취미 등에 대해 알아 가셨다.
“내가 전화를 걸면 부담스럽게 여기는 것 같아서.”
“아아…….”
“그런데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긴 하고.”
우리가 어색하게 웃었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부담스러워 하겠지…’ 하며 연락을 못하는 상황이라는 게 아이러니했다.
비주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리혁이도 어머님 소식을 궁금해하는 것 같긴 해요.”
“그러니?”
“네. 정말로요.”
우리가 만나고 나서부터 표정 중에서 가장 밝은 미소를 보여 주는 상대였다.
‘내가 둘을 이어줬어’ 하며 비주가 스스로 감격해하는 동안, 상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래는 와인이라도 한 잔씩 할까 했는데.”
“그러면 제가 비행기 탈 때까지 못 일어날 거 같아서요.”
“아. 리혁이에게 신조어 들었단다. 알콜고자라고.”
“네. 저예요.”
슬픈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내 모습에 동생들이 키득거렸다.
우리에게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안내해주던 어머님의 발걸음이 사뿐사뿐 가벼워졌다.
새하얀 얼굴에 살짝 홍조가 떠오른 게, 아들과 똑같아 보였다.
콘서트 때 귀는 아버님한테 물려받은 것 같은데 얼굴은 어머님께 물려받은 모양이었다.
‘홍조+홍조=리혁’이라는 조합식을 떠올릴 때.
“안 그래도 새 집을 정할 때, 이렇게 다섯이 올 것 같아서 정했어.”
“네?”
“리혁이가 어렸을 때, 친구를 집에 데려와서 같이 자는 게 소원이었거든.”
엄청 늦게 이룬 소원이지만 그래도 그것을 이뤘다는 사실에 만족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문득 미국에서 산 세월에 비해 어머님의 한국어가 굉장히 유창하고 또박또박하다는 사실도 어쩌면 리혁이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물었다.
“리혁이 소원이었나요?”
“옛날부터 친구들을 데려와서 한 침대에서 같이 자고 싶다고 했는데.”
“아아…….”
“그런데 친구가 있기 힘든 성격이라…….”
어느 부분에서는 묘하게 객관적인 모습이라 우리가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인사하고 계단을 올라갔다.
* * *
어두운 방.
우리가 다 같이 천장의 야광 스티커들을 바라보았다.
“…….”
별과 별이 이어져 그려진 영어 문장.
별 하나에 문장 하나를 읽어 내리듯 내가 아련하게 읊었다.
“나는 천재 과학자가 될 거야.”
“푸하하!”
동생들이 폭소를 하는 동안 리혁이가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조용히 해요.”
“천재 과학자가 되고 싶었구나. 우리 리혁이.”
은은한 스탠드가 비추고 있는 어둡고 엄청나게 넓은 방.
책꽂이에는 어린이를 위한 과학 실험실 같은 류의 책들이 가득했다.
리혁이가 눈가에 손을 올렸다.
“옛날에 살던 집에 있던 내 방 물건을 이렇게 고스란히 가져다 놓을 줄은 몰랐어요.”
“그래도 네 어렸을 때 모습이 그려져서 보기 좋네.”
시간이 거의 10년 전으로 멈춰져 있긴 하지만, 여기저기 있는 소품이 꼬마 리혁이의 물건들이었다.
“되게 기분이 묘하네요.”
“그치.”
“10년 전만 해도 이런 사람들이랑 같이 살게 될 줄 몰랐는데.”
“알았으면 한국에 안 왔지?”
우리의 장난기 어린 물음에 리혁이가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리예요. 알았으면 더 빨리 왔겠죠.”
“……으흥.”
“아. 또 뭔 으흥이야.”
“으흐흠…….”
우리가 어색해서 이불 속으로 꼬물꼬물 파고들 때, 천장을 바라보던 리혁이가 말했다.
“그런데 말이에요.”
“응.”
“나 얘기 하나 해도 돼요?”
“당연하지.”
리혁이가 한숨을 쉬며 물었다.
“대체… 왜 한 침대에 이렇게 드러눕는 건데요.”
“나름의 소원 성취?”
“자리도 없어서 일렬로 눕는 게요?”
“응.”
침대에 세로도 아니고 가로로 일렬로 떡꼬치처럼 누워 있는 우리 모습에 가운데 떡이 한심하단 표정을 지었다.
“이게 무슨 소원인데요.”
“그런 게 있어.”
“아니, 이제 좀 가는 건 어때요? 가뜩이나 다들 피곤해 죽겠는데 뭔 일렬로 누워서 잠을 자요.”
“가고 싶은데.”
중현이가 울적한 얼굴로 답했다.
“우리 못 가.”
“왜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여.”
지호가 아련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감미로운 발라드를 불렀다.
“내 방을 못 가~ 한 번을 못 가~”
“아니. 가라고! 좀!”
“혹시 네가 서운할까 봐~”
“가!”
카악- 하며 이불을 탈탈 터는 누군가의 모습에 우리는 이불 속으로 더욱 꾸물꾸물 파고들었다.
* * *
다음 날 아침.
“재워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 종종 놀러 오렴.”
다음 날 아침에 우리는 어머님에게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또 올게요.”
리혁이는 어머니에게 다가가서 세상에서 제일 어색한 포옹을 하고는 호다닥 우리에게 도망쳤다.
그렇게 우리는 차량을 타고 곧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자, 이제 일합시다! 일!”
“일일일!”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은 아니었다.
미국에서 휴식을 하면서 시차 적응을 한 뒤에 멕시코가 있는 중미와 브라질 등의 남미 일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흐흐흑!」
멕시코와 남미 국가들을 방문할 때도 어김없이 공항에 마중을 나온 수플레들이 있었다.
하나같이 열정이 엄청났다.
“젠민! 여기! 나 존재한다!”
“나의 존재!”
“대상 축하해!”
우리를 위해 준비한 한국어를 하는 팬들을 보며 얼마나 반가웠는지를 모른다.
그중에서도 대성통곡을 하면서 ‘마리엘라 로페스’라고 자기 이름을 사인에 넣어달라고 한 10대 팬이 유독 기억에 남았다.
우주선 안에 졸라맨 그림과 이름을 썼더니 주저앉아서 통곡하는 팬이었다.
‘뉴블랙 사람해’라는 오타가 적힌 팻말을 보면서 웃기도 하고.
“잠깐만. 그거 오타인가?”
“오타가 아닐 가능성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리혁이의 말에 중현이가 흠 하며 말했다.
“어쩌면 가수가 되기 이전에 사람이 먼저 되라는 뜻깊은 가르침은 아니었을까?”
“서프라이즈 톤으로 얘기하지 마라. 김중현.”
“두둥.”
효과음까지 완벽하게 모사한 누군가의 성대모사에 우리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케이블 방송국과도 인터뷰를 짧게 진행했다.
「본인들의 인기 비결을 뭐라고 생각하나요?」
“인기가 있나요?”
전형적인 함정이 담긴 질문들은 빙긋 웃으며 피해갔다.
“인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팬분들은 저희의 무대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노래 가사의 영향도 있는 것 같아여.”
남미에 해외 투어를 오기 전에 석환 형으로부터 K팝의 인기 요인을 들었는데.
‘순한 가사.’
‘음?’
‘나인 가사가 너무 순해서 좋대.’
우리가 영혼까지 끌어 모아서, 틴스피릿 맛으로 만들어 낸 ‘Nine’의 거친 안무와 가사가…….
‘귀엽대.’
남미의 수플레들에게는 굉장히 귀엽게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술과 마약, 19금이 안 들어간 건전 가요라고…….
우리 노래의 거친 정도는 유치원생들의 과자 주스 파티 정도로 보이는 듯하다고 할까.
지호가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리예여. 우린 귀엽지 않아여.”
“여?”
“요!”
“그나저나, 졸업할 때까지만 써야겠다. 그 ‘여’ 자도.”
이제는 거의 나와 키가 맞먹을락 말락 하는 늙은 아가에게 그런 말을 해 주니 묘하게 서글퍼 했다.
“어른 같다는 뜻이야.”
“우와아!”
한편 중남미 국가들에서 노스탤지어의 OST나 K팝 등에 대한 인터뷰 일정을 소화한 후.
콘서트 장소에서 공연을 하기 전마다 우리는 심호흡을 하며 긴장했다.
“후우우…….”
뜨거운 기운이 백스테이지까지 몰려오는 공연장 안.
VCR이 들릴 때마다 관객들의 환호가 아련히 들려오는 동안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피한다.’
‘무대 대형은 나를 따라서 움직이면 돼요.’
‘이번엔 꼭 피한다.’
관객들이 온몸이 쩌렁쩌렁 울릴 만큼 커다란 환호를 토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긴장을 놓지 않았다.
열기에 자꾸 흥분될 뻔했지만 머릿속은 냉철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한국과는 다른 공연 문화의 차이 때문이기도 했다.
-그… 거시기한 건데 말야.
해외 투어에 관해 조언을 얻으려고 태현이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들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그쪽은 관객들이 엄청 흥분하면 쪼오끔 거시기한 것들이 좀 날아오거든…….
처음에는 설마 그렇겠나 싶었는데 진짜였다.
공연의 하이라이트 무렵.
모두가 흥분해서 방방 뛰고, 우리가 Nine의 안무를 하며 허공을 손바닥으로 후려치는 동안.
팬들의 마음이 담긴, 조명을 타고 반짝이는 것들이 무대 위로 휘이익 하고 던져졌다.
그때마다 나도 모르게 내 안의 유교 정신이 깨어났다.
‘흐아아악!’
리혁이의 눈동자가 비명을 질렀고. 우리가 안무를 추는 동안 침을 꿀꺽 삼켰다.
‘나왔다. 플라잉 팬티.’
‘피해!’
‘저건 남자 거라 꽤 큰데!’
열정 넘치게 무대 위로 날아오르는 속옷의 물결을 미사일 떼처럼 바라보는 우리였다.
다행히 투어를 마치는 날까지 아무도 맞지 않았다.
“느아아!”
다시 정정.
다행히 대부분은 피할 수 있었다.
* * *
남미의 콘서트까지 모든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우리는 마침내 한국으로 돌아왔다.
“…….”
모든 것을 잃은 사람처럼 차창을 허망하게 바라보는 누군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씻으면 돼.”
“…….”
“맞아여. 형. 이미 많이 씻으흐흐…었잖아여.”
“…….”
이내 매니저 형들까지 푸흐흡, 하며 웃다가 도끼눈을 뜨는 리혁이의 모습에 눈을 피했다.
운전대를 잡은 원석이 형이 말했다.
“다들 정말 고생 많았어.”
“형들도 진짜 고생 많았어요.”
“그래. 숙소로 안 가고 정말 회사부터 갈 거야?”
“네. 비행기에서 잠도 푹 잤고, A&R팀이랑 프로듀싱팀 직원분들도 얼른 만나고 싶어서요.”
“피곤할 텐데. 내일 만나지.”
내가 웃으며 답했다.
“예고하고 가면 꼭 막내 직원 분들밖에 없더라고요.”
“그, 그건 그렇지.”
저 갑니당! 하고 가면 꼭 팀장님들은 사라져 있고, 주임님이나 대리님 정도의 직원들이 홀로 남겨져 있곤 했다.
“형들도 바로 미팅 가지 않아요?”
“응, TBC 쪽에서 방송국 PD님이랑 잠시 만나기로 했어. 우리가 실장님 서포트도 할 겸.”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말아요.”
“그건 우리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서…….”
쓴웃음을 짓는 매니저들에게 내가 감사의 의미를 담은 시선을 보냈다.
그러곤 말했다.
“약속 시간 빠듯하다면서요. 요 앞에 내려 주세요. 골목부터는 저희가 들어갈게요.”
“그래.”
캐리어나 짐은 차량 안에 두고, 다 같이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횡단보도 앞에 내렸다.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리웠던 서울의 공기가 폐부 가득히 찔러오는 기분.
동생들과 함께 멀찍이 회사로 향하는 신사동의 골목으로 들어서려고 할 때였다.
“엇, 뉴블랙이다.”
“뉴블랙…….”
“뉴블랙 맞는 거 같지?”
평소보다 우리를 향한 수군거림이 더 많이 들린다고 할까.
중현이가 말했다.
“기분 탓일 수도 있는데, 방금 횡단보도 건너온 사람들이요. 우리 뒤 따라오는 거 같지 않아요?”
“그러게.”
“사생…은 아닌 것 같긴 한데. 조심해요.”
우리를 힐끔거리며 따라 오는 듯한 낯선 불청객들에게 경계심을 느끼며 골목으로 들어설 때였다.
“뭐야…?”
다 같이 눈을 깜빡거렸다.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최소 백여 명이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서 레몬 엔터의 사옥까지 늘어서 있었다.
내가 멈칫하고, 동생들도 발걸음을 멈췄을 때.
“어……!”
마지막 줄 부근에 있던 사람이 눈을 크게 뜬 채, 허파에 바람이 들어간 소리만 낼 때.
물결이 퍼지듯이 삽시간에 탄성과 비명이 퍼져 나갔다.
그리고.
“뭐, 뭐야.”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 대한 우리의 첫 번째 반응은.
“어디 가세요?!”
“어, 잠시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선 사람들로부터 뒷걸음질 치는 일이었다.
* * *
레몬 엔터 사옥 앞.
새로운 연습생을 뽑기 위한 오디션을 위해 모여 있던 지원자들이 눈을 크게 떴다.
‘뉴블랙!’
그들이 레몬 엔터에 지원하게 된 이유가 눈앞에 등장해 있었다.
선망하는 눈길로 바라보고 있을 때, 눈을 멀뚱멀뚱 뜨던 뉴블랙이 그들을 보고 식겁했다.
“흐어어!”
스스슷!
정예 바퀴벌레 전사들처럼 재빠르게 후퇴하는 모습에 연습생 지원자들이 눈을 깜빡깜빡였다.
‘뭐지.’
상상 속 이미지는 무척이나 근사했는데.
실제로 마주한 뉴블랙은 어딘가 모르게 개복치가 떠오르는 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