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36화
“오디션이요?”
-응.
스마트폰 반대편에서 홍 대리님의 웃음이 들렸다.
-이번에 남자 연습생들 새로 뽑는 오디션을 진행 중이거든.
“아아.”
-그래서, 다 같이 도망친 거야?
“도망이라니요.”
열심히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상대는 못 믿겠다는 투로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통화를 종료하고 동생들과 민망한 표정을 교환했다.
“오디션이었구나.”
“……오디션이었네요.”
괜히 도망쳤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상황이라면 누구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막내가 오뎅 국물을 호로록 하며 말했다.
“아니, 모르는 남자애들이 오와아앙 하면서 다다다 달려오면 누구든 무서울 수밖에 없어여.”
“그니까. 무서운 게 당연한 거지.”
우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곤 토스트를 부치고 있는 사장님에게 코를 훌쩍이며 물었다.
“저희 오뎅 국물 더 먹어도 돼요?”
“더 먹어요.”
“감사합니다아-”
조그마한 천막이 쳐진 길거리 토스트집.
떡볶이와 튀김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종이컵에 담긴 오뎅 국물을 마시며 ‘크으’ 하자 사장님이 웃음을 흘렸다.
“근데 되게 기분 좋기는 하네여.”
막내가 쪼글쪼글해진 종이컵을 만지작댔다.
“이제 우리도 회사에 후배 생기는 거잖아여. 아니다. 데뷔하기 전에는 후배 후보자인가?”
“그럼 지금 기다리는 사람들은 후배 후보자의 후보?”
“후배의 후보의 후…….”
손가락으로 허공을 짚어가며 개념을 생각하던 우리가 눈을 깜빡거렸다.
실시간으로 단어가 붕괴했다.
“뭐, 어쨌거나 일단은 후배님들이지.”
“근데 지호 말마따나 좋은 것 같아요. 우리한테 연습생 후배들이 생긴다니.”
각자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춤 가르쳐 줄 생각하니까 벌써 설레요.”
“야식 사 주고 에헴 하고 싶다.”
“작곡 관심 있는 애 없으려나? 숫자가 꽤 되면 작곡 클래스라도 운영하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잘해줄지 상기된 얼굴로 주고받는 모습에 리혁이가 고개를 젓고 오뎅 국물을 들이켰다.
그러더니 냉랭한 얼굴로 말했다.
“일단 어묵, 아니 김칫국 들이키기 전에 그것부터 생각을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어묵국이 아니고 김칫국이라는 거?”
“…….”
내 놀림에 귀를 붉힌 녀석이 물었다.
“지금 회사에 어떻게 들어갈 건데요?”
“…….”
방금 전에 ‘흐아악!’ 하면서 연습생 지원자들 앞에서 뒷걸음질 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다시 지나가기엔 망한 것 같고.
어떻게 해야 최대한 자연스럽게 회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토스트를 우물거리며 열심히 고민했다.
“아!”
이윽고 좋은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이렇게 하면 되겠다.”
* * *
레몬 엔터 앞.
시간이 지나면서 줄이 점점 더 길어지기 시작했다.
“후우…….”
숨을 쉴 때마다 뿌연 입김이 나오는 날씨.
지원자들은 발을 동동 구르거나 손바닥을 비벼 가며 코를 훌쩍거렸다.
레몬 엔터 사옥이 위치한 곳이 골목이라 그런지, 같은 겨울바람도 여기선 더 매섭게 느껴졌다.
“…….”
긴장감 가득한 분위기.
바로 오늘이 3차 심사였기 때문이었다.
1차인 인터넷 동영상 심사를 통과한 이들이 2차 오디션까지 본 후.
오늘은 한 번의 오디션과 함께 더 나아가 카메라 테스트까지 마치고 본격적으로 합격자가 갈리는 날이었다.
‘춥다.’
각자 면접 시간대도 다르고, 아직 시작까지 한참이나 남아 있었지만.
대부분의 지원자들은 혹시 모를 변수라도 있을까 두려워 어디 가지도 못하고 회사 앞에 모여 있었다.
날짜가 맞는지 문자를 강박적으로 확인하는 지원자도 한둘이 아니었다.
‘꼭 붙고 싶은데.’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상관없으니까 제발, 붙게 해 주세요.’
‘뉴블랙까지는 꿈도 안 꾸고, 그 발톱에 낀 때만큼이라도 성공하고 싶다.’
파란 하늘에 간절하게 소원을 비는 지원자들.
4대 기획사의 오디션에 탈락해서 오디션 공고를 수소문하다가 찾아온 이들도 있고.
보컬 학원 등에서 ‘레몬 엔터가 그렇게 좋다더라’ 하는 소문을 듣고 온 지원자도 있고.
다른 회사에서 방출되어 온 연습생도 있었다.
각자 다양한 사연을 품고 있었지만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동일했다.
‘뉴블랙.’
레몬 엔터에 뉴블랙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런저런 계산을 하고 온 이들도 꽤 있지만, 대부분은 간단한 몹시 간단한 이유였다.
‘존나 멋있어.’
오디션에서 보여 줄 곡을 준비하는 이들의 스마트폰에 뉴블랙의 공연 영상들이 떠올랐다.
10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다들 비슷한 표정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열망이 그들을 오디션 장소까지 불러 모았다.
“에취!”
물론 지금으로선 아무 생각이 안 들긴 했다.
‘빨리 줄 좀 줄어라.’
‘아, 개춥다. 지난번에 2차 볼 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 추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수능 끝나니까 귀신같이 추워지네.’
추워도 너무 추웠다.
꿈이고 뭐고 일단 실내에서 따끈한 국물이라도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
지원자들이 서 있는 줄의 뒤편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우와……!”
“허어!”
‘와아아’ 하는 소란에 어깨를 움츠리고 겨드랑이에 손을 껴 넣고 있던 지원자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똑같이 반응했다.
‘뉴블랙이다!’
눈앞에 뽀얀 필터가 깔리는 것만 같았다.
칙칙한 골목길의 분위기를 환하게 만들어주는 듯한 분위기의 인물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패딩 광고의 모델처럼 근사한 핏을 자랑하는 다섯 청년이었다.
“안녕하세요.”
뉴블랙의 환한 인사에 지원자들이 저도 모르게 꾸벅 하고 인사했다.
아직 합격한 것도 아닌데 두 손이 절로 모였다.
백여 명의 시선이 향하는 동안 우주의 눈이 생긋 휘어졌다.
“오늘 날씨 너무 춥죠?”
“네…!”
“아까 여기 지나가려다가 다들 너무 추워 보이더라고요. 옛날에 오디션 볼 때 생각도 나고.”
지원자들이 얼어붙은 이를 딱딱 맞부딪히며 고개를 열심히 끄덕일 때.
무표정한 얼굴로 종이 박스를 들고 서 있던 중현에게 멤버들이 다가가 봉지를 내밀었다.
곧바로 봉지에 담기는 캔 음료들.
“우와아……!”
지원자들 사이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캔 음료랑 핫팩을 하나씩 준비했는데.”
집에 든 도둑을 트랩으로 때려잡는 어린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털실로 짠 모자를 쓴 멤버가 말했다.
상냥한 목소리와 딱 어울리는 온화한 미소였다.
“…저희가 편의점 여기저기서 사 온 거라서, 재고가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거든요.”
“우와아아.”
어쩐지 새하얀 얼굴들의 코끝이 루돌프처럼 조금씩 벌게져 있었다.
각자 편의점을 돌면서 즉석에서 따뜻한 캔 음료들을 모아왔다는 이야기에 기분이 몽글몽글했다.
골목길이 잠시 따스해진 듯하다고 할까.
비주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랜덤인데, 재고가 좀 부족해서 어떤 분은 헛개나무 음료를 받게 될 수도 있어요.”
“쌍화탕도.”
“홍삼 꿀차도 있고.”
랜덤 뽑기로 걸릴 수 있다는 말에 지원자들은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이내 멤버들이 지원자들이 선 줄로 다가갔다.
“오디션 잘 보세여~”
벙어리장갑을 낀 손으로 음료를 내민 막내가 양손을 반짝반짝 하며 응원을 해 주기도 하고.
“바로 다 들이켜지 말고. 조금씩 나눠 마셔요. 날씨 추우니까 목 푼다고 무리하지 말고.”
날이 추운지 옷깃을 들어 입가를 가려가며 오디션에 관한 조언을 해 주는 메인 보컬도 있었다.
“자, 두근두근 추첨시간.”
그리고 자신의 박스에 손을 뒤적뒤적하며 웅장한 표정을 짓는 래퍼도 있었다.
앞뒤로 선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지원자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제발……!”
“뚠뚠, 뚠뚠뚠, 뚠뚜루루루둔. 둔. 두운. 두우운.”
인형뽑기를 하듯이 휘적이던 손이 스윽 멈추고, 깊숙이 들어간 손이 병 음료를 꺼냈다.
중현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당첨. 홍삼 꿀차.”
“안 돼애애!”
“환불은 불가하니 교환은 앞뒤 사람과 가위바위보를 통해 진행해 주세요.”
친절한 고객 응대를 하며 이동하는 중현의 모습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흘러내렸다.
이내 메인댄서의 스산한 시선에 갑자기 친절한 미소로 바뀌어서 ‘맛있게 드세요’ 하며 엄지를 드는 중현이었다.
그리고.
“홍차 좋아하죠?”
“네? 그걸 어떻게.”
“왠지 그럴 것 같았어요.”
딱히 취향을 말해 준 것도 아닌데 귀신같이 마시고 싶은 음료를 건네주는 리더가 있었다.
놀랍고 신비했다.
상대가 들고 있는 음료 봉지를 흘깃했을 뿐인데, 그때마다 눈을 마주치고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오디션 잘 봐요.”
음료를 빠르게 분배한 우주가 빈 봉지를 리혁에게 건네주자, 빠른 속도로 봉지가 예쁘게 접어졌다.
치익-
골목길 곳곳에서 핫팩 흔드는 소리와 함께 캔 음료를 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와…….”
음료를 한 모금 마시자 기분이 몽글몽글해졌다.
긴장이 다 풀어진 것은 아니지만 골목길의 온도가 최소 몇 도는 올라간 듯한 느낌이었다.
딱딱했던 분위기가 포근포근해져 있고.
이러한 배려로 자신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 뉴블랙에게 절로 감탄이 나왔다.
‘이래서 연예인인가.’
친근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아우라가 진하게 느껴졌다.
그런 부분에는 외모의 영향이 컸다.
‘다들 진짜 인형 같으시다.’
맑고 투명할 정도로 깨끗한 피부와 선명한 눈, 그리고 생기가 도는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장인들이 조심스럽게 조형한 마네킹들이 살아 움직이는 느낌.
“으하하핫!”
……왠지 모르게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가 잘못 설치된 느낌이 들지만 착각이려니 했다.
“감사합니다!”
누군가의 인사에 다들 따라서 ‘감사합니다!’ 하는 소리가 골목길을 따뜻하게 울릴 때.
우주가 대표로 말했다.
“그럼 다들 목 관리 잘하시고, 오디션도 잘 보세요. 다음에는 회사 안에서 만났으면 좋겠네요.”
“다들 잘 보세여!”
“잘 봐요.”
뉴블랙 멤버들이 손을 흔들고는 회사 안으로 사라졌다.
걸음걸이도 어쩌면 모델 같은지, 우아하게 다리를 뻗는 리더의 뒷모습 뒤로 다른 멤버들도 비슷하게 걸었다.
이내 그들이 보안 카드를 대고 열린 문 사이로 사라질 때.
“…….”
잠깐의 정적이 감돈 후 여기저기서 지금까지 자제하고 있었던 탄성이 흘러나왔다.
“우와, 대박.”
“음료수 괜히 뜯었나?”
“……이거 합격 통보 난 후에 SNS에 올려야겠죠? 최종 합격 고려할 때 SNS도 검색한다던데.”
부드러워진 분위기 덕분인지 다른 지원자와도 제법 편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가 이루어졌다.
정겨운 이웃 같은 분위기가 감도는 한편.
‘꼭 붙어야지.’
방금 있었던 일로 인해 더더욱 합격에 대한 의욕을 불태우는 지원자들이었다.
여기에 꼭 붙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드르륵!
닫혔던 문이 다시 열렸다.
우다다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안에서 뛰쳐나온 5인조 그룹에 지원자들이 허둥지둥 당황했다.
“엇, 안녕…하…….”
“안녕하세요!”
환하게 웃으며 인사한 우주를 필두로 나머지 넷이 오합지졸처럼 빠르게 도망, 아니 달려갔다.
시끌벅적한 대화 소리.
귀가 좋은 이들에게 대화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빙수?’
‘A 뭐라고 하는 거 같은데.’
지원자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동안, 빠르게 달려나가는 뉴블랙의 실제 대화는 다음과 같았다.
“그새 우리 오는 거 듣고 튀었네!”
“지금 A&R팀 피신한 데가 어디라고 했어? 빙수?”
“넹. 빙수집 아주머니가 거기 숨어 있다고 톡 해 줬어여. 스파이 하는 거 너무 재밌다구 사진도 보내 줬어여.”
“허억. 허억. 넌 대체 친구가 몇 명이냐, 왕지호…?”
“그나저나 우리가 빙수 집에 있으면 못 찾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네요.”
“무슨 소리야. 겨울에는 빙수지!”
영차영차 하듯 빙수빙수 하며 달려가는 그들의 뒷모습에 지원자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돌림픽도 아무나 우승하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 * *
A&R팀 검거는 순조롭게 이어졌다.
“아, 아니. 여기를 어떻게!”
“후후후. 어딜 도망가려고요. 팀장님.”
눈을 희번덕거리자 A&R팀 직원들이 몸을 떨었다.
내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여러분은 저, 둘리의 손바닥 위에 들어온 고길동이에요.”
“난 희동이 하고 싶은데.”
서필근 대리의 중얼거림에 다른 A&R팀 직원들이 눈치 없냐며 눈을 부라렸다.
비주가 사근사근한 미소로 둥그런 테이블에 둘러앉은 몇몇을 일러바쳤다.
“형. 프로듀싱 팀 분들도 저기 계셔요.”
그들이 앞다투어 답했다.
“아니, 우리는 A&R팀 분들이 숨은 맛집이 있다고 해서…….”
“그게 무슨 소리예요? 프로듀싱팀이 먼저 어디 숨을 장소 없냐고 물어봤잖아요.”
“아닌데. 숨은 맛집이라고 했어요.”
금세 자기들끼리 내분이 일어나는 모습에 우리가 웃음을 흘렸다.
그러곤 자리에 앉아 A&R팀과 프로듀싱팀이 시켜 준 빙수를 먹으며 기분을 풀었다.
북미와 남미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들려준 후.
“아아, 오디션?”
회사 사람들로부터 상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원래 내년도에 일정을 잡으려고 했는데, 너희가 너무 잘 큰 덕분에 빠르게 하게 됐어.”
“신인개발팀도 다시 생겨났고.”
본래는 2016년도 즈음에나 신규 연습생 오디션을 할 예정이었는데, 우리가 가져온 막대한 현금 흐름 덕에 일정이 앞당겨진 모양이었다.
앞으로는 매년 한두 번씩 진행할 거라나.
“요즘 그래서 인력 확충하느라 정신이 없지. 연습생들 가르칠 트레이너도 또 계약해야 되고.”
“아. 그러네요.”
“월말평가도 앞으로 진행해야 하니까.”
“으아아…….”
듣기만 해도 트라우마가 오는 그 이름, 월말평가에 우리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인절미 빙수를 퍼먹으며 물었다.
“그러면 이번에 들어오는 연습생들은 언제 데뷔하는 거예요?”
“글쎄다. 아무리 빨라야…….”
A&R 팀장님이 허공을 보며 손가락으로 하나씩 꼽더니 말했다.
“2019년이지.”
“흐에엑.”
4년 정도면 그래도 합리적인 수준이긴 하지만, 연습생을 했던 입장에서는 그게 얼마나 긴지 알고 있었다.
“참.”
본론으로 돌아갔다.
“저희 앨범 기획안은 어떻게 됐어요?”
“거의 다 준비됐는데. 일단 너희가 노래 작업하는 걸 보고 거기에 맞춰서 진행을 해 보려고.”
“기획이 한두 개가 아닌가 보네요.”
“이번에 스페셜 앨범이잖아.”
양쪽 팀 직원들이 말했다.
“독특한 기획이 이것저것 많아. 그런데 일단 앨범 곡 작업 내용물을 들어보고 그거에 맞춰 보려고.”
“물론 다 준비된 게 아니기도 하고. 일단 너희 어워드가 하나 더 있으니까.”
우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음 달 초에 홍콩에서 열리는 KMA 무대 준비 때문에 한창 바쁘기도 했으니까.
본격적인 앨범 프로모션 기획에 대해선 그 뒤에 들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곡 작업이 먼저겠네요.”
우리가 물었다.
“프로듀서분이랑 작업 참여해 줄 선생님들은 언제 오신대요?”
“백상교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연말 디너쇼를 준비하시는 중이기도 하고. 다른 분들도 연말이라 스케줄이 많은 편이어서. 중간중간 짧게 이뤄질 거 같아.”
“아하.”
“그리고 프로듀서를 맡을 하승주 씨는 뮤직카페 녹화 일정 제외하면.”
A&R 팀장님이 뭔가 기대하는 얼굴로 음흉하게 웃었다.
“시간을 비워 놨으니까 언제든지 불러만 주면 바로 오겠대.”
* * *
2층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코트 차림새의 인물에게 우리가 ‘와아아’ 하며 박수를 치고 반겼다.
“어서 오세요! 선배님!”
“안녕.”
“……사복으로 뵈니까 되게 어색하네요.”
“그러게.”
뮤직 카페에서 늘 신사처럼 차려 입었던 모습만 봤는데, 이렇게 편안한 코트 차림으로 오니 낯설었다.
그리고 그런 낯설음은 상대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우, 우주도 사복이 독특하구나.”
“이 옷 예쁘죠?”
“그, 그렇구나.”
꽃들에 둘러싸인 티라노사우루스가 뾰롱뾰로롱하는 듯한 내 검은 후드 티였다.
그리고 핑크색 손목시계까지.
나를 보고 문화 충격을 느끼는 인물에게 웃으며 말했다.
“저희 앨범 프로듀서를 맡아 주셔서 감사해요.”
“내가 고맙지. 그때 즉흥작곡할 때 어찌나 손이 근질거리던지 너희랑 작업 한 번 해 보고 싶더라.”
“그래도 이렇게 프로듀서까지 맡아 주실 줄은 몰랐어요.”
“그 동안 아이돌 앨범 작업을 일부러 안 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돼서. 너희가 처음이긴 하다.”
가수들과 협업하며 여러 가지 명반을 제작한 프로듀서이긴 하지만 아이돌 앨범에 참여한 적은 없다고 했다.
“어쩌다가 저희 앨범에…….”
우리에게 음악적인 무언가를 본 건가 해서 고민할 때, 뿔테 안경 너머로 명료한 눈빛이 보였다.
“규환이가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
“어마어마한 돈이었지.”
“…….”
명료한 게 아니라 자본주의의 환희에 젖어든 눈빛이었다.
우리가 눈을 깜빡이고 있을 때, 상대가 말했다.
“농담이야.”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반쯤 진담이 섞였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승주.
국내 음반 프로듀서 중에서도 몸값이 어마어마하게 높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차우현 선배가 가장 대박을 쳤던 앨범도 이 사람 작품이고.
프로젝트를 자주 도맡는 편은 아니지만, 한 번 참여했다 하면 대부분 그 결과물을 엄청나게 잘 뽑아내는 인물이었다.
“A&R팀한테 대강의 방향성은 들었는데. 겨울을 주제로 하는 스페셜 앨범이라고?”
“네.”
“그럼 기존에 작업한 곡들부터 한 번 들어 보자.”
그가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내가 최근에 작업했던 곡을 하나 들려주자 고개를 까딱까딱하며 집중해서 들었다.
“다 좋은데?”
“정말요?”
“몇 가지를 고치긴 했는데 아직 많이 손을 대지는 않았구나.”
“네, 아무래도 프로듀서님이나 다른 분들의 의견도 중요할 것 같아서요.”
그러곤 피드백을 얻기 위해 마우스에 손을 올렸다.
“일단 이 부분부터 여쭤보고 싶은데요.”
“세 번째 곡?”
“네. 여기에 후렴구에 눈이 소복소복 쌓이는 느낌을 표현하고 싶은데, 이게 다른 부분은 그런 날씨가 아닌 느낌이거든요.”
“호환이 안 된다는 거지?”
“중간이 조금 튀는 느낌이라서 이걸 제가 조금씩 수정을 해 볼 테니까.”
동생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게 느껴졌다.
뭐가 튄다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A&R팀 분들에게 그러하듯이 들어보고 판단을 해달라고 하려고 하는데, 상대가 손을 저었다.
“오히려 전주를 수정하는 방식이 나을 거 같아. 중심까지 가는 과정이 더 잘 살도록.”
“엇.”
“왜?”
“저도 같은 생각이었거든요. 너무 과감한 게 아닌가 싶어서 보류하기는 했는데.”
내 말에 상대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 부분을 조금 손대 볼게요.”
“그래. 그럼 그 동안 나도 내 노트북으로 한번 만져볼 테니까, 한번 비교를 해 보자.”
“네!”
동생들이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리는 나와 프로듀서를 향해 눈을 깜빡거렸다.
눈에서 당혹스러운 감정들이 읽혔다.
‘빠르네.’
‘왜 빠르지?’
그런 눈빛에 나도 공감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번 앨범 작업이 몹시 수월할 듯한 예감이 들었다.
* * *
2층 작업실 앞.
왠지 모르게 설렌 얼굴로 유리 너머를 힐끔거리던 A&R팀 직원들이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아닌데.”
“예상한 반응이 아닌데. 이건.”
“뭐야. 왜 저렇게 빠르고 순조롭지?”
분명 우주가 ‘이거 개미 손톱만큼 고쳤으니까 어떤 게 나은지 비교해 봐!’ 할 타이밍인데.
우주와 하승주를 시작으로 멤버들까지 의견 교환을 스윽 한 후에.
딸깍딸깍 하며 슥슥 스쳐가는 식이었다.
“그런데 하승주 씨 말이에요.”
“응?”
“우주를 되게 잘 다루는 것 같지 않아요? 이건 우주랑 성향이 맞는다기보다는 저런 스타일에 최적화된 업무 방식 같은데.”
“……그러네.”
모두가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 뭔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혹시 하는 건데. 저 분, 예전에 우주네 아버님이랑 재즈 음반 작업하셨다고 하지 않았어요?”
“……어?”
“그래서 그런 거 아닐까요.”
멈칫하던 A&R팀 직원들이 유리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우주가 뭐라고 말을 할 때마다 필기를 하며 빠르게 대안을 찾아내는 하승주의 모습.
대단하다는 감탄이 나오기도 했지만.
“…….”
저 사람이 저렇게 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을지 왠지 모르게 짠한 기분이 드는 A&R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