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37화
앨범 수록곡 작업이 착착 진행됐다.
그야말로 경이로운 속도.
어찌나 빠르게 진행이 되는지, 앨범 작업이 이렇게 수월해도 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대박.”
막내가 입을 떡하니 벌렸다.
“저 진짜 이렇게 누가 막 울지도 않고, 고통 받지도 않고, 저주하지도 않는 앨범 작업은 첨이에여.”
“잠깐만.”
내가 멈칫했다.
“중간에 이상한 게 끼어 있는 것 같은데. 저주라니, 무슨 소리야?”
“넹?”
“…….”
“아닌데에? 형이 잘못 들은 거 같은데여어?”
어색하게 딴청을 피우는 막내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그 말은 사실이긴 했다.
“진짜 이렇게 수월한 작업은 처음이네요.”
“그래?”
“네, 피디님이랑 작업해서 그런가 봐요.”
지적인 인상의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나도 모르게 선배님에서 피디님으로 호칭이 저절로 옮겨 갔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감탄이 나온다고 할까.
‘이 부분은 조금 짙은 파란색이 둥둥 퍼지는 느낌이 드는데, 저는 이게 좀 하얀 편이면 좋겠어요.’
‘화음이 마음에 안 든다는 소리구나.’
음악에 대해서 내 식대로 표현을 해도 어찌나 찰떡같이 알아듣는지 정말 신기했다.
정확하게 어떤 것을 하면 된다고 대안을 제시해 주는데 정말 신세계였다.
나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고인다고 해야 되나.
“정말 와 주셔서 감사해요.”
“우니?”
“우는 건 아니고요. 가슴이 벅차서요.”
음악의 동반자를 발견한 것처럼 기뻤다.
눈앞에 있는 상대에게 호감도를 매긴다면 최대치를 훌쩍 넘긴 기분이라고 할까.
설레는 가슴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제가 이론이 약한 편이어서 여태까지 다른 분들에게 설명할 때마다 너무 힘들었거든요.”
“진짜 힘들었죠.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혼자 색깔 이야기만 하니까.”
“…….”
리혁이를 시작으로 동생들이 내 표정을 흉내 내며 말했다.
중현이가 손가락을 딱딱 튕겼다.
“너는 이 리듬이 묘하게 어긋나는 게 느껴지지 않아? 중현아. 젤리 그만 먹고 집중해. 헤이, 뽀커스.”
“암튼 마음에 안 드니까 다시 할 거야. 내가 왜 마음에 안 드는지 너희는 내 마음 몰라?”
“뭐가 이상한데? 정확히 말해 보란 말야.”
묘하게 리얼한 연기에 하승주가 큰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
“보통 그룹들 보면 멤버들이 작곡 담당을 제일 무서워하고 그러는데 너희도 비슷하구나.”
“넹. 저희 모두 우주 형의 꼭두각시처럼 살고 있어여.”
“지호야. 꼭두각시라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곤 몇 마디 말을 보태려고 하는 동생들에게 손을 슥 내저어서 말을 멈추게 했다.
하승주가 ‘진짜 꼭두각시구나’ 하며 감탄했다.
“앗.”
하승주가 즐겁다는 듯 웃었다.
“농담이야. 농담. 너희 팀 분위기가 너무 편하고 좋아서 한 말이야.”
“다행이네요.”
“이런 분위기가 되게 오랜만이라 좋았거든.”
과거 음악 활동을 했던 추억이라도 떠오르는 것인지 한껏 기분이 들떠 보이는 프로듀서였다.
그때 비주가 웃으며 말했다.
“진짜 신기하긴 해요. 저희는 우주 형이랑 2년을 같이 살았는데도 아직 음악에 대해선 전부 다 통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건 그랬다.
서로가 좋아하는 음악이나 성향, 스타일 등에 적응한 것이지. 100퍼센트 원활하게 소통이 되는 건 아니라서.
“근데 피디님은 꼭 오래 작업하던 사이처럼…….”
“아. 그거.”
그가 나를 보며 웃더니 턱을 긁적였다.
“예전에 명주 형, 그러니까 우주 아버님이랑 음반 작업을 한 적이 있거든.”
“아아.”
“공식 작업이 아니더라도 불려간 적도 많고. 아니면 집에 찾아오기도 하고…. 새벽에 전화를 하기도 하고… 밥 사 준다고 해서 갔더니 피아노가 놓인 호텔 레스토랑이고…….”
“앗, 아아…….”
“그래도 추억이긴 했지.”
눈이 축축해지는 상대의 모습에 우리가 눈을 깜빡거렸다.
그가 부드럽게 웃었다.
“아무튼 작업 스타일이 지금 우주랑 비슷했어.”
“신기하네요.”
엄청 어렸을 때였나.
아빠가 피아노를 치면서 어린이 동요집을 불러준 걸 빼면 딱히 음악에 대해 배운 건 없었으니까.
그런데도 작업 스타일이 비슷하다고 하니 신기함을 느꼈다.
음악도 유전의 일종인가 싶기도 하고.
궁금한 점이 떠올랐지만, 의문을 해결해 줄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쯤에서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수록곡은 여기까지고요.”
마우스를 휘휘 움직여 따로 마련되어 있는 타이틀곡 폴더에 들어갔다.
“타이틀곡으로 준비한 곡을 들려드리려고요.”
“이제 나오는구나.”
“네. 예전에 저랑 리혁이가 ‘밤바다’라는 노래를 만든 적이 있거든요.”
“들어봤어. 멜로디가 예뻤지.”
밤바다.
어렸을 적 할머니 무릎을 벤 채 잠이 들었던 기억을 베이스로 삼았던 듀엣곡.
그때의 기억을 노래하며 고마움과 그리움을 담았던 곡이었다.
“당시 밤바다를 만들 때 파생된 멜로디 중 하나인데, 주제 의식에 맞지 않아서 못 썼거든요.”
파일 위에 커서를 올리고는 리혁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윽고 다음 앨범의 주인공을 맡을 메인보컬이 하승주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저희가 이번에 목표로 하는 앨범 테마가 ‘여행’이예요. 겨울철에 다녀오는 여행.”
우리가 정한 이미지는 겨울철의 기차 여행이었다.
눈이 잔뜩 내린 철도.
열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듯한 분위기로.
처음에 시작하는 타이틀 곡은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작은 마을을 방문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런 곳에서 이제는 지나가거나 잃어버린 것들을 회상하는 분위기로 가고 싶어요.”
“아. 무슨 느낌인지 이해했어.”
“예를 들어 댐을 짓느라 물에 잠겨서 이제는 갈 수 없는 고향이라든가. 사라져서 없는 추억의 장소라든가.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어느 시점이라든가.”
잔잔하게 주제를 노래하다가 후렴구에서 빵 터뜨리는 노래가 목표였다.
리혁이의 설명을 듣던 하승주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주제가 마음에 드네.”
“이거 사실, 리혁이 형이 자기 이제 10대 끝났다고 울컥해서 수필 쓰다가 떠올린 거예여.”
“……피디님한테 비하인드까지 알려드리지 믈르그.”
리혁이가 종잇장 같은 다리로 막내의 발을 잘근잘근 밟는 동안 상대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말을 꺼냈다.
“앨범 수록곡까지 고려하면 구성이 꽤 좋네. 잔잔하게 시작해서 축제 같은 분위기로 끝나는.”
“네. 여행지에서 사람을 만나서 일행이 늘어나듯이, 점차적으로 유쾌한 분위기로 가려고요.”
처음에는 혼자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 났다가 돌아올 때는 일행과 함께 기차에서 흥겹게 떠드는 분위기로.
혹은 크리스마스 분위기 가득한 도시에 울려 퍼질 만한 즐거운 노래로.
그렇게 앨범 수록곡의 마지막에는 크리스마스 캐럴 분위기의 곡이 들어갈 예정이었다.
눈앞에 있는 타이틀곡과 함께 지금 가장 공을 들이는 노래였다.
“일단 들려 드릴게요.”
“제목이 피랄룰쿠 송? 우쿨렐레처럼 어디 악기 이름이니?”
“아. 임시로 붙인 이름이예요.”
리혁이의 뺨에 살짝 홍조가 떠오른 가운데, ‘Piraruku Song_ver 6.3-52’을 재생했다.
“…….”
프로듀서가 눈을 지그시 감고 귀를 기울였다.
피아노 연주로 시작되는 노래.
음이 하나하나 잔향을 남기며 사라진다.
캄캄한 밤하늘에서 하얀 눈이 토옥, 토옥 떨어지는 소리처럼.
나도 아련한 추억에 잠겼다.
또야
또 제설 작업이야
내 목소리가 아련하게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눈매와 입매를 일순간 꿈틀거리는 하승주에게 내가 말했다.
“가사는 음절 수만 맞춘 거라 신경을 안 쓰셔도 돼요.”
“그, 그래.”
하승주가 다시 집중했다.
행보관님
왜 저를 보시나요
눈 내리던 날의 과거를 되새기며 썼던 가사였다.
그 동안 노래가 이어졌다.
눈이 내리는 마을.
저녁이 되면서 곳곳에 있는 가로등과 집안의 불빛이 하나씩 밝아 오르는 듯한 음악으로.
그런 장소를 배경으로 눈밭에 ‘너’의 발자국이 남는다.
얼마 안 가 발자국은 눈에 뒤덮여서 사라진다.
그것을 반영하듯이 가사가 이어질 때마다 멜로디가 하나씩 흐릿한 잔상을 남기며 스러졌다.
그리고 후렴구.
“…….”
‘너’의 이름을 부르고.
뒤돌아 선 ‘너’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포근히 감싸주는 내용의 멜로디가 이어졌다.
리혁이의 어마어마한 성량이 감정을 담아 후렴구를 크게 터뜨렸다.
일일이 일일이이-
일일일 일일일일일-
가사를 정하지 않았지만 일일일 하는 높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그렇게 노래가 끝난 후.
“어떠세요?”
우리의 질문에 프로듀서가 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손가락으로 리듬을 느끼듯이 손가락으로 톡톡 테이블을 두드리고 있을 뿐이었다.
상대가 입을 열었다.
“……없어.”
“네?”
그가 웃으며 우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피드백을 하려고 했는데 할 게 없는데. 완벽해.”
“정말요?”
“응. 하나도 없다. 이게 6.3-52면 몇 번째 버전이야? 완벽한데.”
“중간에 이것저것 빠진 것도 있는데, 아마 거의 200번째 버전이요.”
상대가 수긍했다.
“……완벽할 만했구나.”
하승주가 큰 만족감을 드러냈다.
“정말 몇 가지 짚을 만한 점을 빼면 완벽해. 이대로 당장 출시해도 될 만큼, 듣기에도 좋고.”
“허어…….”
“대신에 가사는 빠른 시일 내로 바꾸자.”
너희 뮤직 카페에서 즉흥 작곡할 때부터 가사 못 쓰는 거 알아봤다며 웃는 상대였다.
우리도 웃으며 적극 동의했다.
지금까지의 다른 곡들과 다르게 간략한 몇 가지 사항 정도만 필기가 된 메모를 보며 하승주가 말했다.
“딱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만한 점이라면…….”
안경 너머 날카로운 눈빛이 빛났다.
“중간에 셰이커 소리가 츳츳, 하듯이 작게 들어가잖아.”
“네. 맞아요.”
“소리가 조금 별로 같은데. 약간 안에가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우리가 숨을 삼켰다.
“허어…….”
“왜 그래?”
“아뇨. 너무 정확해서요.”
작업실 책상 서랍에서 셰이커를 꺼냈다.
쌀이 들어 있는 페트병.
작곡을 할 때 소리를 넣으려고 써먹는 물건을 들어 보이며 내가 설명했다.
“셰이커는 가장 최근 버전에만 넣어 본 거거든요. 그래서 아직 수정을 못했는데.”
“아하.”
“여기 현저하게 적은 쌀의 양으로 보아 아시겠지만…….”
턱없이 부족한 쌀의 양.
내 시선을 회피하는 누군가를 흘깃하고는 말했다.
“중현이가 먹었어요.”
“설마 생쌀을 먹을 줄은 몰랐죠.”
프로듀서로부터 완벽하다는 평을 받은 노래의 딱 한 가지 단점이 생긴 이유였다.
그리고 우리의 진지한 설명에 상대가 웃음을 터뜨렸다.
* * *
본격적으로 시작한 앨범 프로젝트는 순조로게 진행됐다.
A&R팀과 프로듀싱팀 모두가 놀랄 만큼 빠른 속도였는데 결과물도 몹시 좋았다.
우리 회사 사람들이 프로듀서를 바라보는 눈에 꿀이 뚝뚝 떨어지는 게 보인다고 할까.
하지만 프로듀서는 어디까지나 큰 틀을 짜 주는 입장이라, 디테일은 내가 맡고 있었다.
“아이고오…….”
작업실 의자에 앉아 눈이 퀭해진 백상교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힘드시죠? 저희가 어깨 주물러 드릴게요.”
“됐다! 뭔 어깨를… 아이고오. 극락이네. 천국이네.”
“선생님 덕분에 저희가 정말 이번 앨범 대박 날 거 같아요. 존경합니다.”
“허허허…….”
수록곡 작업에 참여하러 온 선생님들이 체력 때문에 힘들어 하실 때마다 안마 기술로 다독였다.
아무래도 고령층인 분들이 꽤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힘에 부칠 뿐, 음악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셔서 여러모로 큰 도움을 받았다.
오랜 연륜과 경험, 축적된 지식이 대단하다고 할까.
내가 생각지도 못한 지점을 콕 집어서 말씀해 주실 때마다 저절로 감탄이 흘러 나왔다.
“선생님, 저희 어머니가 보낸 사과즙이에요.”
“오.”
“사과 깎아왔는데 드셔 보실래요?”
“오오…….”
“너무 과일만 드린 것 같아서 과자를 사 와 봤어요. 선생님. 애플파이에요.”
“……쿨럭!”
선생님 한 분이 사과를 먹다가 그만 체해서 일찍 귀가한 에피소드를 빼면 평온한 나날이었다.
회사 각 부서가 유기적으로 합이 착착 맞아 돌아가고.
이대로면 12월 말이나 1월 초에 발매도 가능할 것 같다는 관측이 우세할 만큼 순조로웠다.
-TNT, 뉴블랙 홍콩行 확정.. ‘2015 KMA’ 1차 라인업 발표
-2015年, ‘신흥 대세’ 떠오른 뉴블랙, KMA도 대상 수상할까?
-TNT, NYX 등 TJ 엔터 소속 그룹 올해 KMA 총출동한다.. ‘극적 합의’
가요계에서는 내달 초에 열리는 홍콩의 K-Net 뮤직 어워드가 여러모로 화제였다.
라인업을 공개한 이후에 누가 어떤 상을 받을지 예측하는 기사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어떤 상을 받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KMA에서도 대상 중에 ‘노래상’을 수상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물론, 수상 여부에 상관없이 1, 2, 3부로 나뉘어진 어워드에서 2부의 엔딩을 맡은 터라 연습에 박차를 가했다.
“I hate 춤.”
“Go practice. 삐라루꾸.”
“I hate you.”
“비주야. 끌고 가라.”
격한 춤으로 가득한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까닭에 연습실에 누군가의 비명이 쉴 새 없이 울려퍼졌다.
한편, 연습에 매진하는 동안 수플레들을 위한 이벤트도 준비했다.
올해 11월 29일.
작년에 수플레라는 이름이 탄생한 이후로 딱 500번째 되는 날이었다.
“짜잔.”
“여러분. 올해, 두 번째 수플레 위크가 오고 있습니다. 뒤에 달걀귀신이 오고 있다고요? 리혁이네요.”
Y앱으로 라이브 방송을 할 때마다 수플레 위크에 대해서 홍보를 했다.
작년에는 팬미팅과 함께 팬송인 별빛을 공개하고, 그 주간에 이런저런 이벤트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여러모로, 시기상으로도 큰 이벤트를 진행하기 어렵기에.
우리가 기획한 이런저런 소소한 이벤트를 Y앱 같은 라이브 방송을 이용해서 진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수플레 위크를 하기 전에, 저희가 여러분을 위해 준비한 게 있으니까요!”
“기대해 주세요!”
수플레 위크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가 전부터 꼭 하고 싶었던 일이 하나 있었다.
라이브 방송을 하면서 우리가 팬들에게 예고장을 날렸다.
“궁금하시다면 3일 뒤에 주요 지하철역을 확인해 주세요.”
* * *
뉴블랙이 약속한 당일.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가는 누군가의 발걸음이 경쾌했다.
‘과연 애들이 뭘 준비했다는 걸까.’
팬카페나 SNS에서도 이런저런 추측이 돌았지만, 대부분 아마도 광고가 아니겠냐는 말을 했다.
‘애들이 준비한 광고……!’
팬들에게 향한 메시지가 담겨 있지 않을까 싶었다.
두근두근.
어디에 있을지 지하철역을 두리번거리던 어느 수플레가 카드를 찍고 개찰구를 통과했다.
‘위에는 없는 것 같으니까.’
스크린 도어가 늘어선 지하철역을 돌아다닐 때였다.
“푸흡.”
“뭐야. 이게.”
‘뭐야, 이게’ 라는 말을 듣자마자 우리 애들이구나 하는 직감에 따라 움직이는 수플레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떤 광고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수플레가 이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 사이로 광고를 볼 때.
“…….”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수플레, 500일 함께 해 줘서 고마워
밑에 ‘앞으로도 영원히’ 라는 감동적인 문구가 적혀 있었지만, 문제는 이미지였다.
꼬꼬마 요리사 같은 복장을 입고 있는 뉴블랙.
그들이 찬양을 하듯이 양손을 위로 쭉 뻗은 가운데.
“저거 뭐야? …빵이야?”
“빵인가 보네.”
주변의 수군거림대로 뉴블랙이 손을 뻗은 허공에 오색찬란한 빛을 내뿜는 빵이 있었다.
수플레를 귀엽게 이모티콘처럼 만든 빵이었다.
‘이것이 바로 나님이니라’ 하듯이 인자한 표정과 양팔을 벌리고 하늘에 둥둥 뜬 수플레.
‘따로따로 보면 괜찮은데…….’
하나로 합치니 묘하게 웃긴 포스터가 탄생해 있었다.
지하철을 기다리며 광고 앞에서 웃고 있는 사람들 사이를 왔다리 갔다리 하며 팬이 아닌 척하던 것도 잠시.
사람들이 떠난 후에야 비로소 사진 앞에서 웃으며 인증샷을 찍는 이였다.
‘역시 우리 애들이 평범한 광고를 할 리가 없지.’
아니나 다를까.
각지에서 다양한 포즈로 ‘수플레!’ 하고 있는 뉴블랙의 광고가 팔로우한 SNS 계정들에서 올라왔다.
그것을 보면서 키득거릴 때.
‘아. 빵 냄새 좋네.’
어디서 향긋한 빵 냄새가 밀려왔지만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이따가 뉴블랙이 예고한 라이브 방송을 보려면 얼른 집으로 가야 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핸드폰에 얼굴을 묻은 수플레가 지하철 빵집 앞을 빠르게 지나갔다.
* * *
지하철역 빵집.
출근 시간대도 지나고 어느덧 한산해진 지하철역이었다.
“후후.”
“후후후후…….”
우리는 마스크를 쓴 채 몸을 들썩이며 웃는 중이었다.
“결전의 날이다. 졸개들아.”
“예스예스.”
“수플레들에게 빵의 참맛을…….”
우리를 뒤에서 지켜보던 명세진 파티시에가 말했다.
“이리 오세요.”
“네에!”
“다시 한번 점검 사항 되새길게요.”
그녀도 마찬가지로 마스크를 쓴 터였다.
우리와 대만에서 함께 일일 디저트 카페를 했던 ‘파티시에 코리아’의 우승자 명세진.
이곳은 그녀가 운영하는 베이커리 지점 중 하나였다.
“오늘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 요즘 파티코 아무도 기억 못하는 상황인데, 뉴블랙 덕도 보고 좋죠.”
“저희가 큰 덕을 보게 해 드릴게요.”
우리의 말에 상대가 웃었다.
“그럼 장사 개시할까요?”
오늘 우리가 수플레 위크를 맞이하여 준비한 특별한 이벤트.
바로 ‘수플레빵’을 만들어서 파는 일이었다.
팬들에게 무엇을 해줄까 고민을 하다가, 베이킹에 취미가 있는 우리 둘째가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수플레들을 위해 특별한 빵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그리하여 비주가 만든 레시피에 프로 파티시에의 도움을 받아 탄생한 ‘수플레 빵’이었다.
수플레는 아닌데 수플레 모양이니 수플레 빵이었다.
간단한 기기만 있으면 만들기 쉬운 빵.
“자, 어서 우리를 알아보아라.”
“알아봐 주세여.”
처음에는 평범하게 장사를 하다가 이내 지하철역에서 두리번거리던 팬이 ‘뉴블랙이 지하철에서 일일 알바한다’ 하며 퍼뜨리는 것을 노리고 있었다.
평일 오전.
파티시에 님에게 듣기로 이 지점이 제일 한산한 편이라 이벤트를 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어유. 냄새가 좋네.”
아주머니 한 분이 오시더니 우리를 바라보았다.
“이거 빵 냄새 때문에 발걸음이 멈추드라고.”
“아, 네.”
“하나 좀 사 가도 돼요?”
“네. 그럼요.”
이따 오후까지 만들어도 될 만큼 재료 양이 풍족한 터였다.
아주머니 한 분이 수플레 빵을 담아가더니 룰루랄라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5분 후.
“냄새가 어후, 무슨 델리만쥬인 줄 알았네. 이거 얼마예요?”
“500원이요.”
“500원밖에 안 해요? 우와.”
외근을 나온 것으로 보이는 직장인 한 분이 수플레 빵을 집어갔다.
우리를 알아보는 걸 기대했는데, 빵 냄새에 홀렸는지 빵에만 눈이 팔린 분이었다.
또 2분 후.
“이거 사무실 사람들이 맛있다고 더 사오라고 하던데요.”
“아. 네.”
그때부터였다.
“이거 빵 얼마예요?”
“수플레빵? 맛있겠네.”
“알바생이 엄청 키도 크고 멋있구만. 빵 5개만 줘 보이소.”
오라는 팬들은 안 오고 손님들이 오고 있었다.
“아니…….”
동생들과 잠시 뒤로 모여서 속닥거렸다.
“……대체 왜 장사가 잘되는 건데?”
“뭐야. 이게 뭐예요.”
“형. 이럴 때가 아니에요. 저기 아주머니가 빵 더 없냐고 하시잖아요. 우리 빵 더 만들어야 돼요.”
동생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이랬다가는 팬들과 이벤트를 못할 것 같아 정체를 공개하기로 했다.
손님들에게 다가가 마스크를 슥 내렸다.
“안녕하세요.”
빵을 집던 손님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머머.”
“어? 특공대 아들? 아들이래. 거기 그거 맞죠?”
“네. 맞아요.”
미소를 지으면서 뭐라고 말을 더 하려고 할 때였다.
“아!”
빵을 집던 아주머니가 그제야 모든 게 이해가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그거였구만!”
“예?”
“이번에 빵 출시한다고 지하철에 광고를 엄청 낸 거였네!”
“예?”
“맞네. 맞네. 뭔 광고인가 했어.”
“……예?”
옆에 있던 대학생까지 ‘아’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동생들과 내가 당황했다.
아닌데요. 그거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