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39화
“빵을 출시한다고요?”
“응.”
“이 빵을요?”
맞은편에 앉아 있는 홍보팀 홍서영 대리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멍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서류가 넘어 왔다.
“여러 업체들이 관심을 보이더라고. 그중에서 조건이 제일 좋은 곳과 계약을 맺을까 생각 중이야.”
동생들과 내가 서류에 코를 묻고, 이런저런 수익 분배 등에 대한 조항을 읽어 내려갔다.
10분 정도가 흐른 후.
“……괜찮은데?”
“진짜 조건이 좋긴 하네여.”
반드시 이 빵을 제대로 출시하겠다는 의지가 서류에서 읽힌다고 할까.
홍 대리님이 말했다.
“저쪽에서도 나쁠 것 없는 조건이거든. 입소문은 입소문대로 타서 성공은 보장되어 있고. 사실상 너희를 광고 모델로 쓰는 거나 다름없는 효과니까.”
계약상 내용으로 보면 수플레 빵의 레시피에 사용료를 내고 판매하는 것에 그치지만.
이미 ‘뉴블랙 빵’으로 잔뜩 알려진 터라 우리를 홍보 모델로 쓰는 거나 다름없는 효과였다.
우리 다섯을 광고 모델로 쓰기 위해 사용하는 비용과 비교하면 저쪽에서도 남는 장사기는 했다.
“저희도 좋은 거 같아요.”
내 말에 동생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이벤트에 못 온 팬분들이 막 아쉬워해서 미안했는데, 이렇게 파는 것도 좋네여.”
“맞아요. 지금도 팬카페에서 맛 궁금하다고 하는 글도 많고.”
팬보다 팬이 아닌 사람들이 더 많았던 이벤트여서 안 그래도 아쉬워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어떻게 추가 이벤트라도 해야 되는 건가 고민하고 있을 때.
적절한 타이밍에 찾아온 제안이라 반가웠다.
“안 그래도 팬분들에게 레시피를 공개할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비주가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근데 입소문이 너무 많이 나서, 공개하면 그걸 나쁘게 이용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고.”
우리끼리 이미 얘기를 한 일이었다.
수플레들에게 레시피를 공개하면 어떨까 했는데.
공개되는 그 순간 전국의 오만 곳에 ‘바로 그 빵’, ‘뉴불백 빵’ 같은 식으로 장사하는 곳이 등장하지 않을까 싶었다.
가격을 엄청나게 비싸게 판다든가. 그런 사람들 때문에 괜히 우리 이미지만 나빠질 수도 있고.
“저도 되게 마음에 들어요.”
‘수플레 빵’의 레시피를 만들어낸 당사자까지 동의하니 그 다음부터는 일이 일사천리였다.
굽는 방법이라든가. 명세진 파티시에로부터 여러 팁을 받긴 했지만, 레시피는 비주 혼자 만들어낸 것이기에 수월했다.
“수플레 빵이 출시된다니…….”
홍보팀 사무실을 나온 우리가 비주에게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이야! 우리 비주 이제 빵 재벌이다.”
“부자 되겠네여. 형! 저 그러면 이제 아빠랑 싸울 때마다 형한테 의탁해도 돼여?”
“친하게 지내자. 김비주야.”
얄밉다는 듯 눈을 새초롬하게 뜨던 비주가 유일하게 말이 없는 리혁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리혁아. 너는…….”
“형.”
“응?”
스마트폰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던 리혁이가 진지하게 말했다.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나 각종 요소를 고려해서 예상 수익을 산출해 봤는데요.”
“…….”
“우리 나중에 프랜차이즈 차릴래요? 이건 되는 사업이에요.”
“리혁아. 너까지…….”
리혁이가 저렇게 초롱초롱한 눈으로 주먹을 꼬옥 쥐는 건 처음 보는 일이라 웃음이 나왔다.
비주가 입을 살짝 비죽이는 동안 막내가 말했다.
“근데 설득력이 있긴 해여. 다섯이서 역할 분담을 하면 딱 되거든여.”
“어떻게?”
우리 물음에 사업가의 아들이 손가락을 들어 하나씩 가리켰다.
“일단 중현이 형은 믿음직하게 생겼으니까 대표로 앉혀두고.”
“오. 좋네.”
당사자도 흡족해했다.
“맞아. 나 꼭두각시 역할 잘해.”
“비주 형은 레시피 개발하고, 리혁이 형은 재무나 잔소리를 담당하는 거예여.”
“잔, 뭐?”
“그리고 팀의 귀염둥이인 저는 영업을 담당.”
귀염둥이라는 말에 잠시 정색했던 우리가 역할 분담에 대해 코멘트를 했다.
“설득력이 있네.”
“되게 좋은 아이디어 같아. 그러면 우리가 늙어 죽을 때까지 함께 있을 수 있고…….”
“잠깐만.”
내가 막내에게 고개를 돌렸다.
“나는 빠져 있잖아. 난 뭐해?”
“형은 얼굴 담당이여.”
“……얼굴?”
“매출 떨어지는 지점이 나온다 싶으면 그 앞에 형을 세워두면 돼여. 예능으로 인지도도 생겼고.”
뭔가 주객이 전도된 거 같은데.
그런 이상한 계획이 어디 있냐고 말하려는데, 동생들이 그럴싸하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중현이가 내게 손바닥을 내밀며 말했다.
“형. 화이팅이에요.”
“야, 나는 아직 한다고 안 했어.”
“걱정 마여. 형은 어차피 우리 손 안에 들어오게 되어 있어여.”
“…….”
같이 빵집을 해 보자며 끈적한 눈길을 보내는 끈끈이주걱 같은 녀석들이었다.
픽 웃으며 조건을 걸었다.
“김덕순빵을 시리즈 별로 출시하면 고민해 본다.”
“김덕순빵…….”
“비주야. 농담이야. 진짜로 메모하지 말고.”
“아니에요. 그냥 적어 보는 거예요.”
스마트폰을 뒤로 감추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둘째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비주야.”
“네.”
“그거 아니야. 진짜 농담이야.”
“네.”
“진짜라니까.”
“네. 알겠어요.”
“…….”
왜 이렇게 못 미덥지.
생긋 웃는 녀석을 보며 왠지 모를 불안함을 느꼈다.
* * *
얼마 안 가 수플레 빵의 출시 예정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12월 초.
특별한 제조 공정이 필요 없는 즉석 빵이기에, 빠르게 출시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엇보다…….
[요즘 핫한 바로 그 빵]
[더 블랙빵]
[숯불빵]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아류작들이 나오고 있는 터라 일정이 앞당겨진 듯했다.
그날 손님 중에서 빵 개발자라도 있는 건지, 놀랍도록 흡사한 모양의 카피작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다만 인터넷에서의 평은 좋지 못했다.
-요즘 동네빵집에서 파는데 그맛이 그맛이 아니여..ㅠㅠ
-ㅇㅇ 독특한 그 맛이 있음
-야 진짜 뭐 하나 유명세 탄다 싶으면 따라하는 거 ㅈㄴ 양심없네ㅋㅋㅋㅋㅋㅋ
-이거 너무한 거 아니냐? 쟤네 팬서비스한다고 좋은 마음으로 판 빵이라며
-업자들 양심 보소
-일단 맛이라도 비슷하면 모르겠는데 아예 맛도 다름 그냥 계피향만 비슷한 수준
할매집 옆에 원조 할매, 진짜 할매, 증조 할매집 등이 등장하는 상황이라 안 좋게 보는 듯하다고 할까.
그중에서 백미는 어느 유명 회사가 뿌린 보도 자료였다.
-JP베이커리, 新제품 출시한다.. ‘시나몬 빵’
모양도 조금 다르고, 설명도 조금씩 다르지만 누가 봐도 비주가 만든 수플레 빵의 카피였다.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본 황당한 기사에 리혁이가 말했다.
“JP 베이커리면 홍 대리님이 말했던 회사 아니에요? 조건 후려치려고 했다가 거절당한 곳이요.”
“맞을걸.”
“자기네가 거의 전부 다 가지는 조건이었다면서요.”
매니저 형들도 그 회사가 맞다며 확인을 해주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소식을 보며 어처구니없어 하기도 전에, 먼저 움직인 사람들이 있었으니.
-JP베이커리, ‘시나몬 빵’ 출시 취소, “유사성 없으나 논란 고려”
갑자기 취소된 배경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기는 했지만, 누가 봐도 수플레들 때문이라는 뉘앙스였다.
팬들이 어떻게 항의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피드백 없기로 유명한 회사에서 ‘유감’이라는 키워드가 나왔다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그런 소식에 우리는 양 뺨을 감싼 채 감탄했다.
“우와…….”
TNT나 틴스피릿 같이 거대한 팬덤들에게서나 볼 법한 일이 우리에게 벌어졌다니.
묘하게 기쁘면서도 어안이 벙벙했다.
한편으로는 수플레들의 화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하게 된 사건이었다.
그런 마음을 담아 수플레 위크를 진행하는 내내 라이브 방송을 보는 팬들에게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여러분. 저희가 잘할게요.”
“저희가 지금까지 뭐 잘못한 거 없져? 엄청나게 많은 것 같긴 한데, 있음 말해 주세여.”
“일단 사랑해요.”
갑작스러운 태세 변환에 댓글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수플레들이 보였다.
빵 출시에 대한 비하인드도 밝혀주고.
쭉쭉 올라가는 라이브 시청자의 숫자에 감탄하면서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올해 수플레 위크는 대부분 작년도와 다른 이벤트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작년과 같은 콘텐츠도 있었다.
“네. 여러분. 게임을 알지 못하는 남자. 겜알못, 저 선우주가 왔습니다.”
“겜알못! 겜알못!”
열심히 박수를 치는 동생들의 말에 호응하듯, 댓글창에서도 ‘겜알못’을 외쳐대고 있었다.
회사 휴게실에 마련된 컴퓨터 장비.
지호가 사비로 구매한 게이밍 마우스와 장비가 가득한 가운데 내가 카메라를 향해 환히 웃었다.
“작년에 제가 수플레 한 분과 스타를 했는데요. 오늘도 그때와 똑같은 컨텐츠를 진행할 거예요.”
“전국 수플레 게임 경진대회 4강까지 올라온 분들. 축하드립니당. 그중에서 우승하신 분이 우주 형을 패배시키러 오시면 돼여.”
리혁이가 투덜거렸다.
“난 아직도 이해가 안 돼요. 이게 무슨 컨텐츠야…….”
“중현이 형. 끌고 가세여.”
“이럴 시간에 토론을! 느아악!”
그러는 동안 우리는 4강까지 올라온 수플레들의 게임 경기를 보며 감탄했다.
“다들 엄청 고수 같아요.”
“겜알못 하나 퇴치를 하기 위해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오시는 분들이네여.”
“물 한 모금 마시겠다고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는 분들을 보는 듯합니다.”
동생들의 드립을 들으며 민망한 웃음을 흘렸다.
“네! 말씀드린 이 순간, 우승자가 나왔네여.”
“또 오셨네요. 저분.”
작년에도 나와 함께 스타에서 자웅을 겨룬 바 있는 ‘킬러 수플레’ 님이 또 한 번 올라왔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졌다.
물론 내가 못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에궁.”
내가 마우스를 현란하게 움직일 때마다 뒤에서 가슴을 팡팡 치며 한숨을 쉬는 막내 때문이었다.
“저저……. 에구구.”
“조용히 해.”
“제가 발가락으로 해도 그거보단 잘할 거 같으니까 그러져.”
“…….”
리혁이가 고소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얼마 안 가 나온 게임의 승패에 동생들이 감탄했다.
“3분 만에 연속으로 지는 사람은 처음 봐.”
“…….”
“형, 4드론이 4드론으로 돌격하라는 뜻이 아니에요.”
몰랐다.
“우주 형. 진짜… 못하는 거 같아요.”
비주에게까지 디스를 당해서 그런 걸까.
그렇게 3경기 연속으로 졌다.
패배할 때마다 심호흡을 하며 머리를 쓸어넘기는 내 모습에 동생들과 수플레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스탭들까지 가세해서 놀리는 광경에 내가 채팅을 타타타 쳤다.
DS_Love : 노래 잘하세요?
Killer_SuFulle : 게이머는 게임으로 승부하는 거예요 오빠
Killer_SuFulle : 더 배우고 오세요.
“…….”
곧이어 상대가 방을 나갔다는 메시지가 화면 위로 떠오르면서 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팬들의 사연을 읽어주며, 신청곡을 불러주던 수플레 위크의 마지막 날까지 마무리한 후.
대망의 12월 2일.
우리는 홍콩의 월드 아레나에 도착해 있었다.
“생각보다 크네.”
“TV에서 본 것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거 같아요.”
리허설 무대.
스탭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무대 장비들을 체크하는 동안, 몸을 풀며 공연장을 둘러 보았다.
바닥도 구두코로 퉁퉁 두드려 체크해 보고, 아아- 하면서 목 상태가 어떤지 점검했다.
-네. 뉴블랙, 그러면 리허설 가 보겠습니다.
연출 감독님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인 우리가 ‘바람꽃’과 ‘Nine’의 무대 리허설을 했다.
매니저 형들과 스탭들이 땀을 닦아주거나 물병을 건네줄 때마다 무대에 대해 토론을 거듭했다.
“마지막에 댄브 하기 직전에, 평소보다 조금 더 타이트하게 모여 있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맞아여. 미끄러질 위험도 있고.”
“리프트 타고 올 때 포즈도 조금 바꾸는 게 나을 거 같고요.”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무대를 조금이라도 더 낫게 보여질 방법을 연구했다.
평소보다 다소 긴장감이 감돌았다.
관객 수는 얼마 전에 참석했던 망고 차트 어워드와 큰 차이는 없지만, 이번에 처음 방문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뭔가 스탭 분들도 그렇고. 다 분위기가 낯선 거 같아여.”
“그러네.”
막내의 말에 공감했다.
K넷 뮤직 어워드.
일명 KMA라고 불리는 음악 시상식은 우리가 데뷔하고 처음으로 참석하는 어워드였다.
요즘은 과거형이지만 K-Net이랑 우리 회사가 사이가 안 좋았기도 했고.
작년에는 ‘마스커레이드’가 집계기간에 안 들어가서 신인상 후보에도 들지 못했다.
“여기서도 잘하고 가자.”
내 말에 동생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중요하지 않은 무대가 어디 있겠냐마는 KMA의 경우 어워드 중에서도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 관심도가 높은 편이었다.
처음 와 본 공연장이기도 하고.
대상 후보로서 2부 엔딩이라는 중요한 무대를 맡았기에 여러모로 잘하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무대 위에서 기지개를 키며 리허설을 또 기다릴 때, 카메라를 든 제작진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대본을 든 작가가 말했다.
“저희 어워드 비하인드 캠 찍으러 왔어요.”
“아, 네!”
우리가 환하게 웃으며 양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오늘 어워드에 참석한 소감이 어때요?”
“너무 떨리네요.”
카메라를 향해 차분한 미소를 지었다.
“저희가 KMA는 처음인데, 2부 엔딩 무대까지 맡아 버려서 여러모로 긴장 되는 거 같아요.”
“긴장하셨나요?”
“예. 저희가 사실 긴장을 엄청 잘해요.”
“…놀랍네요.”
우리가 ‘보이죠? 긴장?’ 하고 있는데 카메라맨과 작가님 둘 다 납득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래도 다행히 몸 컨디션도 좋고.”
중현이가 주먹을 불끈 쥐고 들어 보였다.
“목도 잘 풀렸고.”
리혁이가 ‘음흠흠~’ 하며 카나리아처럼 흥얼거리듯 보여주었다.
그러곤 다 같이 뭉쳐서 웃었다.
“연습도 굉장히 많이 해 왔기 때문에 자신 있습니다. 오늘 어워드 끝나고 나면 다들 저희 무대가 기억 나도록 만들 거예요.”
“아…….”
그러면서 ‘이게 긴장…’ 하며 중얼거리는 작가님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참, 이번에 빵도 화제가 됐잖아요.”
“어? 아세요?”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요.”
웃음기가 담긴 목소리가 돌아왔다.
“빵도 나온다고 들었는데, 되게 신기했겠어요.”
“맞아요. 저희도 정말 출시하게 될 줄은 몰라서. 얼떨떨하면서도 좋네요.”
“이건 비하인드에 재미 삼아 담아볼까 하는데. 혹시 빵과 관련해서 즉흥 노래 가능해요?”
“그럼요.”
내가 동생들에게 대충 흥얼거리며 음 높이를 들려준 후, ‘원 투 쓰리’ 하면서 아카펠라처럼 노래했다.
한 명씩 즉석 가사를 붙이면서.
둘이 먹다 죽어도
아무도 몰라
완벽한 알리바이
어딘가 섬뜩한 빵의 가사에 카메라맨이 입꼬리를 씰룩였다.
눈짓을 주고 받은 우리가 화음을 맞췄다.
수플레 빵-
빠앙-
수플레 빵-
아름다운 수플레 빵의 하모니.
즉석으로 만든 노래가 끝났을 무렵, 촬영을 하고 있던 작가님이 허리를 굽히고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도 같이 허리를 굽힌 채 얼굴을 꺾어 눈을 마주치며 노래했다.
지금 바로 주문하세요-
수플레 빵-
작가님이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흐느끼기 시작하면서, 카메라맨도 웃음을 터뜨렸다.
* * *
레드카펫 행사장.
“와아아아아!”
안 그래도 따뜻하게 느껴지는 홍콩 날씨가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함성으로 더 후끈후끈했다.
수천 마리의 나방이 한꺼번에 비산하는 것처럼 카메라가 찰칵대는 소리가 울리고.
눈부신 플래시가 날아드는 가운데 곳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김중현 오빠 사랑해요오옥!”
“쩬밈! 쩬밈!”
곳곳에서 우리를 부르는 수플레들에게 손가락 하트를 하기도 하고, 눈을 마주치고 웃으며 걸어갔다.
함성 소리가 굉장히 컸던 까닭에 주변에 서 있던 경호원들이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포토월에서 능숙하게 촬영을 마친 후.
-현장이 정말 뜨겁네요. 나날이 인기가 늘어가는 뉴블랙입니다.
-함성소리 듣자마자 뉴블랙인 줄 알았어요.
레드카펫의 진행자들과 시상식을 앞두고 가벼운 잡담을 떨었다.
오늘의 패션 컨셉은 무엇인지, 중국어로 현지 팬들에게 간단한 인사가 가능한지 등등.
으레 하던 질문들이었지만 현장 스탭들부터 MC들까지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 듯했다.
“상이 좋긴 좋네요.”
대기실에 도착했을 때, 리혁이가 한 말에 우리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MCA에서 대상을 탄 것 덕분인지 대우가 달라져 있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비공식적으로 ‘얘네 잘나감’, 이런 게 있었는데 대상으로 공식화된 듯하다고 할까.
큐시트 상으로 표시된 분량도 그렇고.
대기실도 엄청 널찍해서 매니저 형들과 스타일리스트들까지 개인 공간이 여유로웠다.
하지만 정작 그런 대기실은 널찍하게 쓰지 못했다.
똑똑-
“누구세요?”
-선배입니다. 후배님. 들어가도 될까요?
바로 요상한 인사와 함께 들어오는 선배님들이었다.
8인조가 쭈뼛쭈뼛한 컨셉으로 서더니 꾸벅 인사를 해 왔다.
“안녕하십니까! 후배님! TNT입니다!”
“……예예.”
짓궂은 얼굴로 인사하는 녀석들을 보며 내가 리혁이에게 눈짓을 했다.
곧바로 몸을 부풀린 리혁이를 필두로 우리가 90도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오오-”
“하지 마! 하지 마! 우리가 미안해!”
고막이 터질 것처럼 큰 인사 소리에 오히려 상대 측이 당황해서 우리를 만류해 왔다.
이내 웃음이 감도는 분위기 속에서 인사를 나눴다.
지호와 석지훈이 뭐라고 반갑게 얘기를 하는 걸 보는 동안.
“아이고야.”
머리를 금빛으로 물들인 태현이가 소파에 털썩 앉아서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우리가 준 시계는?”
“여기.”
“역시, 잘 차고 다닐 줄 알았지.”
제 집을 찾아온 황금 고양이처럼 나른하게 늘어지던 녀석이 이내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다른 멤버들도 비슷하게 주변을 힐끔거리는 모습에 내가 물었다.
“빵 찾지. 다들?”
“……!”
“빵이 먹고 싶으면 단톡으로 말을 해. 다들 갠톡으로 빵 구할 수 없냐고 하지 말고…….”
“아니. 뭐, 그냥 궁금해서 그러지.”
어워드 때, 혹시 빵 남는 거 있으면 먹어도 되냐는 질문을 계속해서 보내던 형들과 동생들이었다.
“비주한테 가서 감사합니다, 하고 받…….”
“비주님!”
말 끝나기 무섭게 다들 비주에게 달려갔다.
우리 둘째한테 가서 사근사근하게 빵을 받아가는 6년차 아이돌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다들 한 입씩 먹고는 감동 받은 표정을 지었다.
“진짜 맛있다.”
“대박. 입소문 날 만하구나. 이거 진짜 집에 몇 개 좀 쟁여놔야겠다.”
“식었는데도 맛있네.”
“비주님. 저희 이거 조금 더 받아가도 돼요? 지금 의상 다시 입으러 가야 해서.”
“네. 담아드릴게요.”
비주가 사근사근한 미소를 지으며 담아주자 TNT가 빵 봉투를 들고 자기네 대기실로 달려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웃던 우리가 다음 타자를 기다렸다.
“이제 거기도 올 때가 됐는데.”
“1분 내로 올 거 같아요. 형. 제 귀에 존나가 들려와요.”
아니나 다를까.
거친 발걸음들이 문 앞에서 우뚝 멈췄다.
조심스러운 노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청량하기 그지 없는 차림새의 미소년들이 들어왔다.
“저희…….”
“여기 있어요.”
“와씨. 어떻게 알았어요? 존나 신기하다.”
공손하게 수플레 빵을 받아든 틴스피릿이었다.
뚱했던 얼굴들이 곧바로 설레는 유치원 어린이들의 표정으로 변해서 빵을 손에 쥐었다.
“맛이 어때요?”
아무래도 우리 팬들의 연령층이 틴스피릿과 겹치는 터라 10대 입맛에도 맞는지 궁금했다.
햇님반 어린이들처럼 빵을 오물거리던 틴스피릿 멤버들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내 그 입술 사이로 퍼지는 달콤한 향기와 함께.
“와, 시발…….”
행복한 표정을 짓는 미소년들.
순도 100퍼센트의 진심이 담긴 적나라한 감탄사에 자리에 있던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