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43)화 (343/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43화

37장. 스페셜 앨범

세상에는 두 가지의 겨울이 있다.

하나는 겨울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강원도의 겨울이었다.

“에취이이!”

“흥헷 흐헷…!”

“아! 내 귀에다 대고 이상한 재채기 시동 걸지 말라고. 왕지호!”

“추… 추운 걸 어떡해여!”

바닷가 근처 주차장.

동생들이 옥신각신하는 가운데 나와 비주가 오들오들 떨면서 중현이가 펼친 패딩 안으로 들어갔다.

계속해서 콧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아, 왜 이렇게 춥냐. 진짜.”

“저는 오늘, 겨울의 신세계를 맛보는 거 같아요. 형.”

코끝이 벌게진 비주를 보며 웃다가 허리를 굽힌 상태 그대로 중현이를 올려다보았다.

“중현아.”

“네. 형.”

“너는 안 춥니?”

“제가 추위에 좀 강해서요.”

겨울바람에 휘륄릴리 머리카락을 날리던 중현이가 푸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다행이네.”

안심하고는 쪼그려 앉기로 했다.

비주와 내가 쪼그려서 매니저 형들이 건넨 핫팩을 만지작거리는 가운데, 중현이가 패딩을 펼친 채로 우리를 덮어 줬다.

근처에서 부르르 떨던 원석이 형이 오 하더니 말했다.

“다들 이거 보세요. 중현이가 우주랑 비주를 품어 주고 있어요.”

“푸하하!”

“아, 원석이 형…….”

장비를 나르고 있던 스탭들이 우리가 달달 떨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입술을 비죽이던 우리는 이내 매니저가 찍어서 보여 준 사진을 보고는 그만 웃고 말았다.

거대한 오골계가 하얀 두 달걀을 품어 주는 것처럼 나온 사진이었다.

“오. 배경 사진 겟.”

누군가 흡족해하며 바탕화면을 저장하는 가운데, 나와 비주가 표정을 관리하고는 매니저를 바라보았다.

“다시 찍어 주세요.”

“맞아요, 이번에는 좀 더 계란 같은 얼굴을 만들어 볼게요.”

비주와 내가 중현이 패딩 속으로 들어가 머리카락을 감추고는 얼굴만 쏘옥 드러냈다.

그러곤 계란 같은 인자한 미소를 지을 때.

“뭐예여. 대표님 따라 해여?”

천연덕스러운 막내의 한 마디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 이런 거에 웃으면 안 되는데.

그 동안 무슨 영문인지 몰라 갸웃하던 막내가 우리에게 말했다.

“거기 진짜 따뜻해 보인다. 저도 들어갈게여.”

“아. 오지 마.”

내가 엉덩이를 들이미는 막내를 밀어내는 동안, 리혁이도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걸어왔다.

“비주 형. 저, 형 옆으로 갈 거니까 조금 자리 만들어 주세요.”

“응. 들어 와.”

막내가 고개를 휙 돌렸다.

“우주 형도 비주 형의 저런 마인드를 좀 배우도록 해여. 나이도 들 만큼 든 사… 아앗!”

약간의 소동이 있었지만 신규 세입자들의 입주는 성공적이었다.

우리끼리 중현이의 거대한 롱패딩 안에 쪼그려 숨어 있는 동안, 민기 형이 물었다.

“차라리 차 안에 더 들어가 있든지 해. 그러고 있으니까 더 춥지.”

“아니에요. 스탭분들 일하고 있는데 안에서 히터 쬐고 있는 것도 좀 그렇고…….”

이번 뮤직 비디오 로케이션 중에서 꽤 많은 수가 우리가 선정한 곳이었다.

강원도에서도 바다가 예쁘기로 소문난 이곳도 그렇고.

‘우리 여기서 찍어요!’ 해 놓고, 정작 스탭들이 덜덜 떠는 동안 차 안에서 하하호호 하는 게 미안했다.

“추우신데 다들 정말 감사합니다!”

“감독님 러뷰.”

“감사해여! 저희가 끝나고 뜨끈뜨끈한 매운탕 사 드릴게여!”

하얀 입김을 뿜어내며 덜덜 떨던 스탭들이 마지막 말에 잠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엄지를 들었다.

얼굴이 얼어붙어서 웃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그렇게 옹기종기 모여 감사 인사를 보내는 한편, 매니저 형들에게 현장 상황을 확인했다.

“핫팩은 다 지급해 드린 거죠?”

“응.”

“형들도 배에 붙이는 핫팩…….”

“우리는 너희가 준 거 이미 붙이고 있으니까 걱정 말고. 차 안에 들어가서 몸이나 좀 녹이고 있어.”

민기 형이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스탭들 챙겨 놓고, 정작 너희가 아프면 말짱 도루묵인 거 알지?”

“걱정 말아요, 형. 앨범 준비 기간에는 어지간하면 병이 안 걸려서.”

리혁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진짜로 앨범 준비할 때는 무리해도 탈이 잘 안 나더라고요. 긴장을 계속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맞아여. 음방 끝나고 나서야 좀 아픈가 싶던데.”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동생들이 하는 말 그대로였다.

컴백이 슬슬 다가오는 시기에는 있던 지병도 훨훨 날아간다고 할까.

극도의 긴장 상태에 빠지기 때문인지, 감기 같은 잔병도 ‘미친 인간이네’ 하며 피하는 것 같았다.

“잠시만.”

그런 우리를 짠하고 불쌍하게 바라보던 원석이 형이 차 쪽으로 성큼성큼 움직였다.

“따뜻한 음료 있는지 찾아볼게.”

“고마워요, 형.”

우리가 환히 웃고 있는 동안, 처음에는 짠하다는 듯 바라보던 민기 형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곤 자리에서 포근한 미소를 짓고 있는 우리에게 다가왔다.

“왜요?”

“뭔가 이상해서. 너희가 그렇게 호의를 거절하는 애들이 아닌데. 차 마시러 오라고 하면 밥을 먹고 가는 애들이…….”

뜨끔.

“잠깐 그 안에 손 좀 넣어 볼래.”

“안 돼요!”

이내 중현이의 패딩 장막 안에 손을 쑥 집어넣은 상대가 기가 차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바깥으로 나온 손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야! 안에다 핫팩 몇 개를 넣은 거야?”

“에이, 분위기 되게 아련하고 좋았는데…….”

못 말린다는 듯 웃던 상대가 자연스럽게 손을 패딩 장막 안으로 넣었다. 그러곤 사르르 녹는 표정을 지었다.

“아아…….”

“따뜻하죠?”

“천국이 먼 데 있는 게 아니었네. 여기가 천국이었어.”

우리가 훈훈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캔 음료를 들고 온 원석이 형이 눈을 멀뚱멀뚱 떴다.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민기 형이 하는 걸 보고 따라한 원석이 형이 가슴 깊이 우러나오는 탄식을 흘렸다.

“와우…….”

“따뜻하지?”

“손이 아이스크림이 된 기분이에요.”

우리가 그럼, 그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섯 아이돌과 두 매니저가 요상하게 엉켜 붙어 행복한 미소를 짓는 풍경에 현장 스탭들이 미묘한 얼굴로 지나갔다.

*   *   *

“자, 슛 들어가겠습니다! 레디! 액션!”

감독님의 호쾌한 목소리와 함께 촬영이 시작됐다.

쏴아아아-

파도가 밀려오는 겨울 바닷가.

코트에 목도리를 둘러맨 채, 모래사장에 발자국을 하나하나 남기며 걸음을 옮겼다.

그 동안 카메라 감독님이 나와 같은 보폭으로 움직였다.

“후우…….”

하얀 입김을 뿜어내며 바다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지문 상으로 ‘쓸쓸한 연기’라고 명시된 부분을 상기하면서 눈썹 부근을 부드럽게 이완시켰다.

지저귀는 새 한 마리도, 나뭇잎도 하나 없이 가지만 앙상한 나무를 떠올리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휘이이이이잉—

때마침 미친 듯이 불어오는 바람에 목도리가 훌렁 올라가 내 얼굴에 파바밧 달라붙었다.

“…….”

꼭 얼굴에 휴지를 붙여 둔 채 강풍이 나오는 에어컨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다시 바람이 멈추고 목도리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푸하하!”

연기를 더 이어 가려고 했지만, 주변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 바람에 나도 그만 웃고 말았다.

배를 잡고 웃는 동생들 옆에서, 모니터를 보던 감독님이 웃었다.

“누가 우주 씨 목도리 좀 고정시켜 줘! 저거 저대로 두면 계속 날아가겠다!”

“예! 갑니다!”

의상팀에서 곧바로 목도리를 별도로 고정시켜 두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며 생긋 웃었다.

방금 상황이 재미있었는지 현장 스탭들도 너털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좋은 분위기였다.

무엇보다 일단 우리가 계속해서 웃고 있으니, 현장 분위기가 더 좋아진다고 할까.

“……행보관님이 이런 기분이었나.”

멀찍이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하하핫 웃는 행보관님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동안 감독님이 다가와 말했다.

“방금 표정이 아주 좋았어!”

“감사합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요대로만. 딱 요대로 연기해서 똑같이 같은 씬 가자고. 오케이?”

“네. 알겠습니다.”

곧바로 같은 씬을 한 큐에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다음 씬을 찍기 위해 준비가 이뤄지는 동안, 동생들도 잘했다는 듯 엄지를 들어 보였다.

작게 한숨을 쉬고 있는 막내만 빼고.

“지호야. 왜 그래? 방금 별로였어?”

“형.”

“응?”

“연기는 제 거예여. 리혁이 형 노래나 비주 형 춤을 뺏는 것도 모자라서…….”

“중현아. 끌고 가라.”

빠르게 제거되는 불순분자의 모습에 춤과 노래란 키워드로 말을 하려던 둘이 멈칫했다.

비주가 웃으며 말했다.

“연기 실력이 더 늘은 거 같아요. 형.”

“진짜로? 감독님께서 다독여 주려고 한 말인 줄 알았는데.”

“아니에요. 엄청 늘었어요. 마법학교 CF 찍을 때보다 훨씬 더 잘하는 거 같아요.”

자기 일처럼 눈을 크게 뜬 채 좋아하는 비주였다.

리혁이에게도 시선을 돌리자, 녀석이 집게손가락으로 요만큼 늘어났다는 듯 표현했다.

내가 환하게 웃으니 그 틈이 계속 좁아졌다.

“진짜 늘었구나.”

다양한 예능이나 방송을 겪으면서 카메라에 대해 어떤 각도로 비춰야 잘 나오는지 익힌 덕도 있고.

자투리 시간에 표정 연기도 연습했던 게 효과가 있던 모양이었다.

나 스스로도 촬영을 시작하고 나서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던 사실이긴 하지만 진짜로 연기가 늘어 있었다.

다만…….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몰랐어.”

“그렇긴 하죠.”

그 말을 하며 리혁이도 주변을 바라보았다.

“현장 분위기가 좀…….”

명곡단과 사간 방영 이후, 앨범까지 잘 되면서 점점 현장 대우가 좋아지긴 했지만 이번만큼 후한 대우는 처음이었다.

드라마에서 보던 톱스타가 된 기분이라고 할까.

군 시절 행보관님의 표정 하나하나에 나와 은성이가 숨소리의 데시벨을 결정했듯이, 이 촬영장의 분위기를 우리가 손에 꽈악 쥐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동생들과 내가 눈빛을 교환했다.

“좋다…….”

“이제 이걸 이용해서 환상의 분위기를 만들자. 졸개들아.”

“예스 예스.”

감독님들이나 피디님의 한마디에 분위기가 싸해지던 시절은 이제 안녕이었다.

우리가 결정하는 분위기.

예전부터 뜨고 나면 현장 분위기를 엄청 좋게 만들어서 다들 즐겁게 일했으면 했는데.

소원을 이루게 되어서 흐뭇했다.

“흐하핫!”

우리가 모여서 해변에 나뭇가지로 ‘행복’을 쓰며 좋아하자 주변에서도 웃었다.

이어서 뉴블랙, 수플레를 써서 이름 궁합점을 보다가 결과가 12%밖에 안 나와서 슥슥 지웠다.

이따 SNS에 올릴 ‘뉴블랙+수플레=☆’ 글귀를 촬영하고 있을 때.

“풍등이다!”

막내의 들뜬 한마디에 고개를 돌리니 촬영용으로 준비한 풍등 몇 개가 있었다.

타이틀곡 뮤비의 마지막에 들어갈 장면 중 하나였다.

다섯이 함께 소원을 빌고, 바다 멀리 풍등을 날리는.

풍등을 올려다보는 우리의 뒷모습으로 뮤직 비디오가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우와…….”

“이따가 풍등 남는 거 있으면 받아다가 소원 빌어서 내여. 우리.”

“그래, 그러자.”

이윽고 풍등을 날리는 씬까지 마무리한 후.

스탭들이 철수를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풍등에 소원을 여러 가지 적어 내렸다.

“다음 앨범 대박. 그거 적자.”

가장 중요한 소원을 적고 날리려고 했을 때, 중현이가 멈칫하고는 말했다.

“그런데 나중에 이거 용왕님이 보고 ‘아, 이건 좀’ 하며 소원을 들어주기 어려울 수도 있잖아요.”

“그러네. 용왕님이 연예계 쪽으론 능력이 안 되실 수도 있겠네.”

“여러 개 적으면 그중에 하나는 들어주지 않을까요.”

좋은 아이디어라고 공감했다.

“김덕순 여사가 기네스북에 세계 최고령 노인으로 등극했으면 좋겠습니다.”

“멤버들과 가족 모두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먹어도 살 안 찌고 싶어요.”

“내가 사는 동안 우주의 비밀이 많이 밝혀지기를… 선우주 말고 진짜 우주요.”

“부모님한테는 더 좋은 아들, 울 누나들한테는 더 좋은 동생이 되도록 만들어 주세여.”

“……?”

마지막 소원에 멈칫했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야. 그건 네가 노력해야지.”

“몰라여. 날로 먹고 싶단 말이에여.”

저마다 적은 소원들을 보며 미소를 짓는 가운데 매니저 형들의 요청에 따라 직장인들의 숙원인 로또 당첨도 추가해 주었다.

“자. 날리자.”

불을 붙이자마자 훅 뜨거운 공기가 느껴지는 가운데 풍등이 두둥실 날아올랐다.

우리끼리 박수를 치며 좋아할 때.

화르르르륵!

불을 너무 잘 붙인 것인지 풍등이 하늘에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스탭이 ‘잘 타네’ 하며 감탄했다.

“그럼 그렇지.”

“날린 건 풍등인데 돌아오는 건 불화살이구나.”

“이 정도는 이제 예상하고 있었잖아요?”

리혁이의 말에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다 같이 추락하는 풍등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   *   *

뉴블랙이 곳곳을 돌며 뮤비 촬영을 할 때.

“…….”

허리둘레를 매만지던 수플레들은 체중계에 표시되는 숫자에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곳곳에서 눈물이 폭발했다.

-살이.. 살이..ㅠㅠㅠㅠㅠㅠㅠ

-수플레 빵 출시되고 벌써 4kg 쪘어..

-(애니메이션에서 돼지가 된 부모가 음식을 먹는 짤.gif)

-스티커만 모아야 하는데 왜 빵이 맛있냐고ㅠㅠㅠ

-우린 빠순이가 아니라 빵순이었던 건가

-울 손녀 너무 말라서 어떡하냐고 그러던 우리 할머니가 어제 날 흘긋 보더니 내 밥 한 주걱 덜어냄ㅋㅋㅋㅋㅋㅋㅋㅋ

저마다 살이 쪘다며 하소연하는 가운데.

‘오늘은 어디 편의점을 갔는데 거기에도 없더라.’ 하는 경험담이 올라오고 있었다.

언론에서 일명 ‘뉴블랙빵 대란’으로 부르는 상황이었다.

몇몇 곳은 1인 1빵 구매로 제한하는데도 물량이 부족할 만큼 대단한 인기였다.

지상파 9시 뉴스에서도 ‘K팝 산업, 이젠 먹거리 진출까지’라는 헤드라인으로 그 인기를 다루기도 했다.

인기 아이돌 뉴블랙의 자료 화면으로 ‘흐아악!’ 하며 레펠을 내려가는 우주나 흑염소에게 쫓기는 중현의 모습이 나오며 캐릭터 씰과 비교하는 장면이 나오기까지.

[이렇게 아이돌 캐릭터를 이용한 산업 확장은, K팝 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기자의 웅장한 마무리 멘트에 수플레들은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그거 아닌데…….’

팬서비스로 시작한 빵이 우연한 입소문으로 출시된 것이, 뉴스에서는 체계적으로 준비한 프로젝트처럼 소개되어 있었다.

“저 빵이 그렇게 맛있나?”

“나중에 마트 가서 있으면 하나 집어 와 보지 뭐. 쟤네가 모델 했으면 엄청 맛있으니까 했겠지.”

“저번에 테레비에서 삼계탕 먹는 것도 복스럽게 먹더만.”

집에서 뉴스를 시청하는 가족들의 호의적인 반응에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오늘도 다이내믹한 덕질이구나.’

그러면서 인터넷을 둘러보며 차분한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대상을 타기 전까지만 해도 종종 보였던 악플이 요즘은 굉장히 드문드문한 느낌이고.

외출을 할 때마다 뉴블랙의 노래가 들리고.

노스탤지어의 OST ‘Thousand Dreams’도 여전히 빌보드 핫100 안에 머물러 있었다.

‘얼른 컴백 했으면 좋겠다.’

뮤직 카페의 MC인 하승주가 앨범 작업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앨범에 대해선 감감 무소식이었다.

스페셜 앨범이라고 들었는데.

Y앱 라이브나 미튜브 컨텐츠는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지만, 앨범에 대한 다른 소식이 궁금할 때였다.

“음……?”

레몬 엔터가 새롭게 띄운 공지가 눈에 들어왔다.

『 뉴블랙이 여러분에게 쓰는 편지 : 특별한 공연이 있어요! 』

멤버들이 쓴 파스텔 톤의 손 편지가 스캔되어 있는 가운데, 그 밑으로 같은 내용이 이어졌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물음과 함께 조만간 특별한 공연을 열 계획이라는 가슴을 콩닥거리게 만드는 말이었다.

공지에 쓰여 있는 요청사항은 간단했다.

-저희에게 답장해주실 겸, 혹시 겨울에 얽힌 사연이 있다면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뭐든지 다 좋아요! :ㅇ

사연을 추첨해서 티켓을 보내준다는 TV 프로그램 방청과 비슷한 구성이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티켓을 받을 거주지의 주소를 정확히 써 달라는 것.

‘뭐지?’

궁금증이 샘솟았지만 일단은 당첨이 되는 게 중요했다.

초등학생 때, 문화상품권이 걸린 백일장에 임했던 마음으로 경건하게 키보드를 두드린 후.

현실적인 문제들을 떠올리자 골치가 아파왔다.

‘이거 당첨 돼도 서울까지 가야 되는 거 아냐?’

콘서트 때 고속버스를 힘겹게 왔다 갔다 했던 기억이 머릿속에서 새록새록 했다.

“…근데 거주 지역은 왜 표시해 달라는 거지?”

어느 생활권에 있는지 명시를 해 달라는 회사 측의 별도 요청사항에 의문이 깊어져 갔다.

뭔가 촉이 왔다.

‘혹시 광역시 같은 데서 공연하나?’

아니면 내가 살고 있는 지역까지 오는 건가?

뉴블랙이 지역의 유명한 음식을 먹으며 ‘우리 왔어요!’ 하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생각만 해도 행복한 상상이 이어졌지만 얼마 안 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웃었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었기 때문이었다.

*   *   *

스페셜 앨범의 뮤직비디오 촬영이 끝났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그래픽이나 편집 작업을 제외한 모든 작업이 마무리 상태였다.

사진 촬영도 끝냈고, 마스터링까지 마친 곡들을 비롯해 앨범 디자인도 잘 뽑혔다.

이번 앨범의 제목은 Blue Winter.

타이틀곡인 ‘겨울잠’을 비롯해 총 9곡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뭔가 많아 보이지만, 백상교 선생님의 곡을 리메이크한 한 곡과 인트로/아웃트로를 빼면 사실상 6곡이긴 했다.

적은 곡은 아니었지만 무대 연습을 하면서 이만큼 수월했던 것도 오랜만이었다.

“왜 그런 줄 알아요?”

리혁이가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외쳤다.

“춤이 없잖아요! 춤이!”

“진정해. 피라루쿠.”

“봐요. 얼마나 좋아. 춤 연습할 시간에 노래를 더 연습하게 되니까, 공연 퀄리티도 높아지고, 쓰러지는 사람도 없고…….”

다음 앨범 되면 도로 빡센 군무를 하게 될 텐데.

입이 근질근질한지 뺨만 조물조물하는 막내에게 고개를 저으며 속삭였다.

“행복하게 둬.”

“그치만 저 형이 고통 받아야 제가 행복하단 말이에여.”

“…….”

어쨌거나 댄스가 없는 스페셜 앨범의 특징 덕에 전반적으로 연말 스케줄이 편하긴 했다.

“안녕하세요! ‘겨울’ 하면 군밤, 군고구마와 함께 떠오르는 이름이 되고 싶은 뉴블랙입니다!”

라디오 연말 특집에 출연해서 스페셜 앨범에 대한 프로모션을 열심히 하기도 하고.

“캐릭터 씰 위에 사인해 드릴까요? 아. 절대 안 된다고요. 그러네요.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수플레빵의 정식 출시를 기념하기 위해 쇼핑몰에서 미니 팬미팅 겸 사인회도 진행했다.

그밖에 기업 송년회에서도 노래도 부르고.

눈썹 휘날리게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며 12월을 보내는 동안, 크리스마스를 얼마 앞두고 뒤늦은 소식이 날아왔다.

“HBS 가요대상 측에서 기본 무대 두 개만 준비하라고 했잖아. 바람꽃이랑 나인.”

“응.”

“시간이 애매할 것 같다고 둘 중에 하나만 하란다.”

“……뭐?”

다소 당황스러운 이야기였다.

석환 형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보이는 가운데 우리에게 온 큐시트를 바라보았다.

“2분 30초?”

한 곡도 제대로 보여 주기 힘든 분량에 우리가 눈을 깜빡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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