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44)화 (344/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44화

2분 30초.

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다.

“아니.”

리혁이가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2분 30초면 한 곡 제대로 하기도 애매한데. 원곡에서 1분 넘게 커팅을 해야 되잖아요.”

“편곡이야 다시 하면 돼. 뭐, 우리만 2분 30초도 아니고.”

내가 웃으며 귀가 벌게진 녀석을 다독였다.

2분 30초.

사실 4대 기획사 출신이 아닌 아이돌들이 연말 가요제에서 2분 남짓한 단독 무대 시간을 받는 건 흔한 일이었다.

당장 스칼렛만 해도 합동 무대를 제외하면 늘 2분에서 3분하고 내려왔으니까.

다만…….

“조금 심하지 않나 싶은데. 다른 방송국이랑 너무 차이 나잖아.”

“그러니까여.”

다른 지상파 방송국인 PBS와 TBC의 경우만 해도 우리 단독 분량이 최소 7분씩은 됐으니까.

유독 한 곳에서만 3분의 1 토막이 났다는 게 이상했다.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텐데, 당장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건 한 가지였다.

“그거 때문 아닐까요?”

비주가 말했다.

“지난번에 역사 탐험대 시즌 2 하자고 했는데, 우리가 안 한다고 거절했잖아요.”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역사 탐험대가 미튜브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후, HBS 측에서 바로 시즌 2를 제작하자고 제안했었지.

그쪽에서 일방적으로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바람에 우리가 거절했지만.

“그런데 그 문제는 잘 해결됐다고 하지 않았어? 미튜브 담당하는 부서만 잠깐 뿔이 났다고.”

“그건 맞는데. 이번에 여러 문제가 겹쳤어.”

석환 형이 혀를 쯧 차며 말했다.

“역사 탐험대 건이야 잘 해결되긴 했는데, 그 이후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거든.”

“그래?”

“너희 선까지는 얘기가 안 흘러갔지만 예능 출연이라든가, 성사되지 않은 비즈니스 건들이 있어.”

처음 듣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니까, 너희가 PBS에서는 명곡단으로 시청률 히트를 쳤잖아. 15%도 훌쩍 넘고.”

“그랬지.”

“TBC에서는 우주가 신토끼에 나가서 화제가 되기도 했고. ‘사나이가 간다’는 시청률 대박이 났고.”

막내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근데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이에여?”

“저쪽에서 너희를 무슨 시청률 보증 수표처럼 생각했는지, 자꾸 자기네 예능에 출연시키려고 하더라고.”

“오호.”

“우리가 다 거절했지만.”

지상파 예능은 기왕이면 나가는 게 좋은데, 왜 거절했다는 것인지 의문을 품을 때.

석환 형이 예능 기획안들을 건넸다.

“한 번 봐봐. 내 선에서 커트한 이유가 있으니까.”

“내 멋대로 퀴즈?”

동생들과 기획안을 살펴보다가 기겁했다.

‘퀴즈에 실패할 시 의자가 하늘로 날아가 수영장으로 처박힙니다! 핫하!’ 하는 내용이었다.

2000년대 초반의 구수한 향기가 느껴지는 듯하다고 할까.

“요즘 기획안 맞아? 나 초등학교 때나 보던 예능 같은데…?”

“와. 그럼 전 안 태어났을 때겠네여.”

“출연자를 너무 심하게 괴롭히는 포맷 같아요.”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짓는 비주에게 우리가 공감을 표했다.

석환 형이 훈훈한 미소로 답했다.

“그래서 망했어.”

“아앗….”

“5회까지 겨우 버티다가, 시청자 게시판이 욕으로 도배돼서 종영했다더라.”

묘하게 납득이 가는 결말이었다.

‘내 멋대로 퀴즈’를 시작으로 해서 석환 형이 보여준 HBS 예능국의 기획안들은 대부분 비슷했다.

내가 매니저라도 ‘이건 좀…’ 하면서 거절할 법한 것들.

“올해 HBS가 예능에서 많이 밀렸잖아. 그래서 이것저것 야심차게 추진한 모양인데 결과물이 영…….”

“진짜 영 아니긴 하네.”

“그런데도 거기선 너희만 게스트로 불러 놓으면 해결이 될 거라고 착각하는 모양이더라고. 치트키라도 되는 것처럼.”

예능 치트키라는 말에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지. 우리가 나온다고 무조건 뜨는 것도 아닌데.”

“맞아여. 우리 노잼인데.”

“솔직히 우리가 저기 출연했다고 해도 별다른…….”

리혁이가 말을 멈췄고 우리도 동시에 멈칫했다.

“…….”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발사되는 의자.

그 위에 탄 중현이가 슈웅 하고 날아가고는, 의자에 탄 채로 공중제비를 빙글빙글 돌고는 퐁! 하고 추락하는 장면이었다.

아니면 허공에서 엉덩이로 ‘김’을 쓰다가 중간에 ‘긱’ 즈음에서 떨어진다든가.

“어……?”

“되나…?”

내가 중현이를 바라보며 흠칫하는 동안, 다른 동생들은 무슨 상상을 하는지 날 쳐다보고 있었다.

“…….”

화기애애한 팀 분위기를 위해 각자의 상상이 무엇인지는 안 물어보기로 했다.

우리가 서로 머쓱한 표정을 짓는 동안 매니저의 말이 이어졌다.

“그 외에 메이저 한 예능도 어쩌다 보니 불발돼서. 어쨌거나 예능국에서 섭외 문제로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모양이야. 다른 회사 매니저들한테 듣기론 그렇다더라고.”

“…….”

“그리고 너희 미튜브 ‘뉴블랙 TV’가 지금 어마어마하게 잘나가는 것도 배 아파하는 것 같고.”

대충 무슨 이유로 미움을 받는지는 알 것 같았다.

다만…….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하지는 못하겠어서 입만 달싹거릴 때 막내가 말했다.

“어른들이 진짜 옹졸하네여.”

그 말에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한편으로는 ‘저보다 더 어린 거 같아여’ 하는 막내의 말에 속이 시원해지기도 하고.

내가 웃으며 말했다.

“일단 궁금한 건 풀렸네.”

“그러게요.”

우리가 그런 말을 할 때, 석환 형이 안경을 고쳐 쓰며 물었다.

“괜찮아?”

“팬분들 속상해할 거 생각하면 신경 쓰이기는 하는데, 그 부분을 제외하면 그다지…….”

PBS와 TBC 연말 가요제에서만 바람꽃, 나인, 노스탤지어 OST의 단독 무대가 있고.

HBS 가요대상이 있는 일요일 낮에는 ‘명곡단’ 연말 특집 생방송 무대가 예정되어 있다.

여기에 컴백 준비까지 합치면 과해도 과한 연습량이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준비해야 하는 무대가 하나 줄었다는 데서 안도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공연 2개를 준비하라고 해놓고 갑자기 1개만 하라고 통보한 건 어처구니없긴 했지만.

“내 입으로 이런 말하니 민망하긴 한데.”

리혁이가 귀를 매만지며 말했다.

“내가 방송국이면 솔직히 우리가 많이 나오는 걸 좋아할걸요.”

“몹시 민망하지만, 같은 생각이야.”

올해 타이틀곡 두 곡 모두 대중적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고.

그중에서 대상을 탄 바람꽃은 올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스트리밍 된 곡으로 꼽히고 있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미국의 라디오나 해외 TV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노스탤지어의 OST도 있고.

여기에 명곡단에서 편곡해서 공연한 무대까지.

프로듀서인 하승주에게 듣기로는 올해 가요계를 이야기할 때 우리를 빼놓고 말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PBS나 TBC 연말 무대 제작진이 우리가 예뻐서 분량을 많이 주는 게 아니었다.

빼먹을 수 없는 노래를 3개나 가지고 있으니 그런 거지.

“…….”

그런 입장에서 HBS의 처사는 이해가 안 가긴 했다.

‘하하하! 뉴블랙! 매운맛 좀 봐라!’ 하면서 회초리를 들고 자전거를 몰던 초등학생이 바퀴살에 회초리를 끼워 넣는 느낌이라고 할까.

사실 보통의 경우에는 무서운 조치긴 했다.

당장 작년에만 해도 방송국이 이런 식으로 나왔다면 엄청 무시무시하게 다가왔을 듯하지만…….

“그러려니 하고 무시해야지. 조금 아쉽기는 하다만…….”

석환 형이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이래서 대중성이 좋다는 거야. 작년에만 해도 연말 무대 하나가 줄면 벌벌 떨었을 텐데. 이제는 일반인들까지 모두가 너희를 알고 있는 상황이라 아쉬울 게 없잖아.”

그 말에 우리도 공감했다.

연말 무대의 의의 중에서는 아이돌 팬이 아닌 일반인들도 본다는 데 의미가 있는데.

며칠 전에 행사 차 쇼핑몰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50대 남자분이 나를 붙잡고 물으셨으니까.

-인생?

-어렵죠. 인생…….

-아니. ‘인생’이냐고. 거 명곡당.

-…예! 맞아요! 그대~ 왜 흔들리나요~

당시 주변에서 울려 퍼졌던 커다란 웃음소리들을 떨쳐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동생들도 저마다 개인적인 기억을 떠올리는지 눈가가 촉촉했다.

막내가 말했다.

“데뷔하고 뜨면 학교에서 다들 부러워서 우와앙 해줄 줄 알았는데. 단톡방에서 쓰는 개그 짤의 주인공이 될 줄은 몰랐어여.”

“푸하하!”

“그중에 90프로가 형들이에여.”

“…….”

“못 간다고 전해라, 그 선생님이랑 거의 같은 빈도로 나오던데여.”

참으로 알고 싶지 않았던 요즘 10대들의 트렌드에 대한 이야기에 헛기침을 하며 무시했다.

그때 석환 형이 물었다.

“참, 연말 무대 관해서 별도로 들어온 요청이 있는데.”

“뭔데?”

“PBS랑 TBC에서 아이돌들을 섭외해서 연말 가요제를 홍보하려고 하는 모양이야.”

“호오…….”

우리가 급격히 관심을 보였다.

“무슨 홍보인데여?”

“방청객들한테 티켓 전달해 주고 그런 거야. 짤막하게 홍보용 VCR을 찍는 것도 있고.”

“언제 하면 돼? 지금 당장이라도 할까?”

이야기가 다 끝나기도 전에 의욕 가득한 눈을 활활 불태우는 우리 모습에 매니저가 웃었다.

*   *   *

“안녕하세요! 감독님! 작가님!”

“안녕하세요오옷!”

눈에서 불길이 화르륵 타오르는 우리의 모습에 작가님과 카메라맨들이 흠칫했다.

PBS <가요제전>의 작가님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따라 에너지가 넘치네요.”

“저희가 열심히 일하고 갈게요-!”

‘갈게요’에 화음을 넣어서 답하자 상대가 웃었다.

“워낙 잘하니까. 평소처럼만 해 줘요.”

늦은 밤.

인천의 어느 아파트 단지에 내린 우리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109동을 찾아 걸어가는 동안 조명 스탭들과 카메라가 우리에게 따라붙었다.

“네, 저희 뉴블랙이 PBS 가요제전의 방청권을 전달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와아아아!”

“저희 팬분이 이곳에 계신다고 하는데 이번에 깜짝! 놀래켜 드리려고요.”

VCR에 쓸 만한 멘트를 던지며 동생들과 109동으로 이동하는 동안 작가님에게 물었다.

“저희 팬분 말고, 다른 가족분들은 알고 있는 거죠?”

“네. 미리 연락 드렸어요. 아마 다들 옷 입고 준비 중이실 거예요.”

동생들과 설레는 눈빛을 교환했다.

저 위에 있는 수플레는 지금 부모님에게 ‘뭐야. 누가 온다는데 옷 입으라는 거야?’ 하며 투덜대고 있겠지.

거기서 우리가 짜잔 하며 등장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콩닥거렸다.

“자, 일단 중현아. 쓰자.”

“네, 형.”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중현이와 내가 미리 봉투에서 준비한 물건을 얼굴에 썼다.

같이 탄 작가님이 소리 없이 웃기 시작했다.

띵.

9층입니다, 하는 알림과 함께 내린 우리가 아파트 문 앞에 섰다.

입가에 검지를 올리고 다들 숨죽이는 가운데, 내가 막내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내 마스크를 쓴 막내가 배달원에 빙의한 듯한 메소드 연기로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

“치킨 왔습니다.”

-치킨? 엄마 우리 치킨 시켰어?!

흥분한 목소리와 함께 문이 발칵 열렸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이 문을 연 그대로 굳어졌다.

“둘 셋!”

치킨 무 인형 모자를 쓴 나와 닭다리 모자를 쓴 중현이가 짜잔 하는 동안, 다 같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치킨은 아니지만 뉴블랙입니다!”

“허어…….”

숨넘어가듯이 기겁하던 상대가 입에 양손을 올리더니 뒷걸음질을 쳤다.

“미친…….”

카메라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틴스피릿의 전매특허 용어들이 들렸을 법한 말투였다.

초등학생 나이대로 보이는 남동생도 뒤에서 ‘허어어!’ 하며 입에 똑같이 손을 올렸다.

우리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던 부모님도 입가에 손을 올린 채 ‘허어어!’ 하고 있었다.

어딘가 귀여운 가족의 모습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들어가도 될까요?”

“드, 들어오세요! 오세요! 엄마! 방석! 방석 어디 있어?”

한 차례의 소란 끝에 거실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남매가 인형 모자를 벗는 우리를 보며 ‘대박’을 연발하고 있는 동안 어머님이 웃으며 물었다.

“뭐 먹을 거라도 드릴까요?”

“어우, 아니에요. 괜찮아요. 지금 앨범 준비 중이라 뭐를 먹으면 안 돼서…….”

“과일은 괜찮을 텐데. 조금 드릴까?”

“과일….”

“과일은 먹어도 되지 않아요?”

“잠시만요. 매니저 형도 같이 올라왔는지 한 번 보고요.”

우리가 두리번거리다가 활짝 웃으며 ‘먹을게요!’ 하자 가족들이 웃었다.

과도를 드는 아버님에게 비주가 손을 내밀었다.

“제가 깎아도 될까요? 과일 깎는 걸 좋아해서요.”

“맞아.”

수플레가 고개를 열심히 주억거리며 부모님에게 말했다.

“이 오빠가 잘 깎아.”

우리가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과도를 든 비주가 배를 깎았다.

“오오……!”

단아한 자태로 배를 술술 깎는 모습에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곧바로 저마다 입에 배를 우물우물거린 채 대화를 나누었다.

“저는 김단아, 얘는 김다훈이에요.”

“두 분 다 저희 팬인 건가요?”

“얘는 얼마 전에 입덕 했어요. 저는 파워w수플레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다가…….”

고1과 초6. 네 살 터울의 남매가 둘 다 수플레라는 이야기에 우리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맞은편에서도 우릴 보며 연신 키득거렸다.

아마도 배를 사각사각 먹다가 누군가 말을 할 때마다 그 상태로 입을 꾹 다무는 우리 때문인 듯했다.

아버님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먹으려면 그냥 먹지. 왜 계속 먹다가 말다가를 반복해요?”

“아. 이게 다른 사람 오디오에 잡힐 거 같아서요.”

“베란다에 제주도에서 보내준 귤이 있는데, 귤 좀 가져올게요.”

“감사합니다!”

아버님이 가져온 한 무더기의 귤에 우리가 행복한 표정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와. 제주도의 공기와 햇빛이 혀 위에서 살아 숨 쉬는 느낌이에여.”

“요즘에 저희가 닭가슴살 먹으면서 바나나 아니면 방울토마토만 먹었거든요.”

“맛있다. 너무 맛있다.”

눈가가 촉촉한 우리 모습에 아버님이 호탕하게 웃었다.

“왕창 먹고 가요. 저게 다섯 박스나 있어 가지고.”

“더 먹어도 돼요?”

조금 많이 먹는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이따 돌아가서 새벽까지 연습하면 되겠지.

귤을 먹는 동안에 수플레들과 대화를 나눴다.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 취미는 무엇인지.

“혹시 뭐 보고 싶은 거 있어요?”

“엇, 그 KMA에서 마지막에 모여서 댄브할 때 가운데서…….”

“아. 그거요?”

아랫집 분의 고막을 위해 점프 동작은 빼고 우리가 모여서 웨이브를 탔다.

수플레가 뺨에 손을 올리는 동안, 왠지 모르게 어머님이 제일 흡족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렇게 티켓 전달 미션을 수행하는 동안 우리는 이 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을 공략했다.

“아버님이랑 어머님도… 혹시 저희를 아시나요?”

“아유. 당연히 알지.”

“왜 몰라요. 티비에서 매일 나오는데. 군대 가서 개 키우는 것도 봤고.”

노래방에서 ‘덕순아’를 자주 부른다는 말에 우리가 웃었다. 그러곤 티켓 봉투를 꺼냈다.

“이번에 방청 이벤트에 당첨되어서 이게 가족 티켓이거든여. 부모님들도 저희 보러 오셔야 돼여.”

“요번에 명곡단 선배님들이랑 트로트도 부르거든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티켓을 받아드는 이들에게 내가 웃으며 물었다.

“혹시 두 분께서 좋아하시는 노래 있으신가요?”

“사랑의 꽃 배달? 한창 연애할 때 듣던 노래인데.”

“저 그러면 잠시 핸드폰 좀…….”

아버님의 핸드폰을 빌려서 중현이에게 건네주었다.

동영상 모드로 바뀐 가운데 다 같이 나오도록 각도를 잡고는, 다 같이 음을 맞추고 시작했다.

아아-

이렇게 멋진 수플레들을 낳아 주신

두 수플레가 창피하다는 듯 얼굴을 가렸다.

우리가 오래된 옛날 영화의 연사처럼 내레이션을 깔았다.

김용훈과 성유미 두 분

들숨에 재력 날숨에 건강 얻으시고

자식 농사 대박 기원하며 개봉박두

사랑의 꽃 배다알-

수플레들이 아예 소파에 얼굴을 파묻고, 부모님들이 웃는 동안 사랑의 꽃 배달을 불렀다.

노래가 다 끝나고 저장된 동영상을 드리자 두 분이 엄청 좋아했다.

“다 같이 꼭 와 주세요.”

“네. 갈게요.”

흔쾌히 승낙하며 좋아하는 부모님들의 모습에 동생들이 미소를 지을 때.

딩동.

벨소리에 고개를 갸웃하던 어머님이 일어나서는 밖에 나가시더니 얼떨떨한 얼굴로 치킨을 받아오셨다.

“치킨이 왔는데…?”

“아. 제가 주문했어여. 치킨 분장을 해서 왔는데 치킨이 없으면 서운할 거 같아서.”

닭이 따봉을 들고 있는 따끈한 호호 치킨 두 마리에 일가족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들이 치킨에 눈이 팔려 있는 동안 내가 동생들에게 손짓을 하고는 뭐라고 속삭였다.

그쯤에서 VCR 촬영을 종료하기로 결정한 후.

PBS의 스탭들이 철수하는 동안 배웅을 나오는 가족들이 물었다.

“먹고 가시지.”

“아니에요. 이건 진짜 먹으면 안 되는 거라…….”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다른 가족들이 돌아가는 가운데 티켓팅의 주인공인 김단아 양을 잠시 현관 쪽으로 불렀다.

양 뺨에 홍조가 떠오를 만큼 상기된 얼굴을 보며 내가 웃었다.

“오랜만에 보네요.”

“네?”

“거의 1년도 넘은 것 같은데. 첫 번째 팬사인회 할 때 와서 얘기 나눴잖아요. 우리.”

“……!”

상대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VCR을 찍을 때는 언급하기가 어려웠지만, 처음 얼굴을 볼 때부터 딱 알아보고 있었다.

“그때, 제가 4살 때 월드컵 봤냐고 말실수했잖아요. 그것 때문에 진짜 부끄러웠는데.”

“그걸 어떻게….”

“누가 말을 하면 이렇게 귀로 쏙 들어와서, 잘 안 나가는 편이어서요.”

우리가 웃으며 마지막에 주려고 준비했던 선물 봉투를 건넸다.

“그때부터 계속 좋아해 줘서 고마워여.”

“오랜만에 봐서 너무 반가웠어요. 정말.”

“…….”

“왜 그래요?”

비가 와서 강물이 불어나듯이 실시간으로 눈금 위로 눈물이 치솟는 걸 보는 듯했다.

털썩!

봉투를 떨어뜨린 그녀가 대성통곡을 하며 울기 시작했고 우리는 당황했다.

“아니, 그거 떨어뜨리면…….”

“어. 터졌다.”

케이크 박스에서 흘러나온 생크림이 현관에 묻은 가운데.

쥥쥥쥥.

“야! 대길아! 어디 가?”

그 안에 들어있던 로봇의 전원이 켜졌는지, 눈에 빨간 불이 들어온 흑염소가 둠칫둠칫 움직였다.

“뭐야. 무슨 일이야?”

놀라서 다가온 가족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대성통곡을 하는 수플레와 당황한 우리.

그리고 그 속에서 생크림 발자국을 묻혀 가며 흑염소 로봇이 쥥쥥쥥 걷고 있었다.

“아니. 이게 저희가…….”

밖에서 철수하던 스탭들과 가족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우리가 손사래를 치며 외쳤다.

“저희 아무것도 안 했어요.”

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   *   *

얼마 안 가 미튜브에 영상이 올라왔다.

[2015 PBS 가요제전 - ‘뉴블랙의 티켓 전달 미션!’ (feat. 귤)]

썸네일에서 ‘귤 40개 먹고 온 썰?!’ 하는 초록색 문구와 함께 귤을 와그작 먹는 우리 모습이 나와 있었다.

40개나 먹었구나. 우리.

부끄럽긴 했지만 조회수가 높다는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TBC <연말 가요제> 측과 진행한 영상도 추이가 비슷했는데, 양쪽 담당자 분들이 잇몸웃음을 지을 만한 조회수였다.

“어쩐지 요새 미튜브에서 영상 어그로 끈다고 우리 이름 많이 붙인다 싶었어요.”

“그러게. 믿보흑 같은 건가.”

설마 그 정도로 신경을 쓸까 싶었지만, HBS 측에서 보고 나서 배가 아플 만큼 조회수가 높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뉴블랙 ‘TBC 연말 가요제’ 미튜브 홍보, ‘한국 가요 50년사 메들리’

-PBS 가요제전, “명곡단 콜라보 무대 보러 오세요”.. 이색홍보 눈길

-‘600만 구독자’ 미튜브 인기 스타 뉴블랙, 지상파 방송국과 연말 무대 홍보 나서

TJ 엔터 채널의 500만 구독자보다 더 많은 구독자들 덕분인지 홍보가 잘 되는 듯했다.

그렇게 웹서핑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움직이고 있던 차량이 서서히 멈춰 섰다.

“도착했다. 얘들아!”

“네!”

포토라인이 세워진 여의도 PBS 방송국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12월 25일.

음악방송 ‘뮤직On’의 크리스마스 특집이자 선공개곡인 캐럴 무대가 있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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