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45)화 (345/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45화

우리가 차에서 내리자 함성이 쏟아졌다.

“얘들아아악!”

“야! 야, 뉴블랙 왔어. 저기 봐!”

“오빠! 오빠!”

온갖 소리가 섞여 들어오는 가운데, 인파가 출렁이면서 보안요원들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안녕하세요!”

팬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거나 고개를 꾸벅하면서 지나왔다.

1년간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가수들이 출연하는 음악방송의 연말결산 겸 성탄특집인지라 평소보다 인파가 많았다.

중간중간 ‘우리 틴이들 메리 클스마스!’, ‘고기 여신들 사랑해’ 같은 플래카드가 보였다.

우리도 패딩에 산타 모자를 쓴 중현이가 ‘메리 크리스마스 수플레!’ 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뒤따라왔다.

방송국 입구 앞에서 대기 중인 연예부 기자들이 우릴 불렀다.

“이쪽 봐주세요! 여기!”

“우주 씨! 우주 씨, 꽃 모양 선글라스 좀 벗어 주세요!”

“흐하핫!”

동생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내가 머쓱한 표정으로 선글라스를 벗었다.

옆에 있던 리혁이와 막내가 ‘거 봐요’ 하는 표정을 지었다.

평소보다 촬영 시간이 긴 탓에 다양한 포즈를 취했다.

빨간 망토를 걸친 막내가 혼을 내는 산타 시늉을 하고, 우리가 구박 받는 요정처럼 자세를 취하기도 하고.

비주가 모자 양쪽에 달린 털실을 코에 올려 루돌프처럼 해맑게 웃기도 했다.

“감사합니다!”

기자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PBS 방송국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멀어지는 가운데 내가 동생들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나 이제 벗어도 돼?”

“음, 이제는 보는 눈도 별로 없으니까. 뉴블랙의 패션 담당으로서 요청을 허락할게여.”

“감사합니다. 막내님.”

막내의 허락에 따라 몸에 두르고 있는 초록색 요정 케이프를 슥 벗었다.

“어휴…….”

리혁이의 한숨이 들리는 가운데 로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루돌프 머리띠.

코트 안에 입고 있는 내 스웨터 가운데서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반짝하고 있었다.

트리 전구마다 붙은 인조 보석이었다.

“역시 옷은 화려해야 돼.”

“어딘가 뒤틀린 크리스마스 같은데여. 청색 코트에 빨간 스웨터랑 초록 바지를 입는 사람이 어디 있어여.”

“다 의미가 있단 말야.”

잘 이해를 못하는 막내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파란색은 우리 앨범 색깔을 상징하는데. 안에 빨간 스웨터를 입었잖아. 차가워 보이는 색이어도 그 안에 담긴 노래들은 따스하다는 의미인 거지.”

“그럼 초록색은여.”

“……이건 그냥 입은 거.”

동생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뿌듯한 마음으로 걸어갔다.

그 동안 패셔니스타 막내의 잔소리 때문에 사복도 마음대로 못 입고 있었는데.

이번에 크리스마스를 맞이해서 소원권으로 원하는 대로 입기를 쟁취한 터였다.

의기양양하게 걷는 나를 보며 리혁이가 말했다.

“거적때기만 입고 다녀도 사람들이 박수를 칠 텐데. 어디서 이런 옷들만 가져와서…….”

“그래도 나름 해외 패션쇼 보고 참고한 건데.”

“그건 어디 지구예요? 지구4의 패션쇼 그런 거 아니에요?”

동생들에게 SNS로 유명 패션 디자이너의 패션쇼를 보여 주니 다들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완전 다르잖아요. 이건 멀쩡한데.”

“이게 고기면 지금 형이 입은 건 조악하게 만든 콩고기 수준이에여.”

“색 배합이 완전 다른데요. 형.”

내가 보기엔 그 색이 그 색인데, 미묘하게 톤이 다르다며 비난을 퍼붓는 동생들이었다.

옆에서 행거를 들고 걷던 스타일리스트들도 고개를 저었다.

“누나들은 왜 그래요…?”

“아니야.”

어딘가 촉촉한 눈으로 ‘그래. 너님 멋지구나’ 하며 엄지를 드는 모습에 매니저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반응은 대동소이했다.

뭔가 슬펐다. 아침에 할머니한테 사진 보냈을 때는 나 보고 예쁘다고 해 줬는데.

“그냥 제가 골라주고 사 주는대로 입어여.”

“…….”

“형이 원하는 대로 사복 입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져?”

“알아. 안다구.”

어느 수플레가 찍은 사진이 떠올랐다.

명곡단 출근길이었나. 얼굴을 제외한 내 옷차림 전부를 굉장히 뿌옇게 블러 처리한 풀샷이었다.

내 사진을 줄곧 저장하던 비주도 그 사진만큼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던지 얼굴만 잘라내기를 해서 저장했다.

동생들이 큰바위얼굴 짤이라고 놀리던 사진이었다.

“…….”

이내 픽 웃으며 멤버들과 복도를 걸어갈 때.

맞은편에 서 있던 보이그룹 아이리스의 멤버들이 환하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하세요.”

“우와. 오늘 크리스마스 컨셉으로 입으셨네요. 다들 너무 잘 어울…….”

그런 말을 하던 리더 레드의 시선이 내게 머물렀다.

“오우.”

무의식적인 대사에 나와 동생들이 박수를 치며 깔깔거릴 때, 상대가 임기응변을 발휘했다.

“오우웃을 너무 잘 입으세요!”

“그런 임기응변으로 치유하기에는 이미 큰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것 같네요.”

“어엇….”

“농담이에요. 잘 지냈어요?”

활짝 웃으며 상대와 안부를 나누었다.

아이리스 외에도 방송국에서 만난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MCA나 KMA 등 어워드에 참석하지 않아 못 만났던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모두가 나를 반긴 건 아니었다.

“은성아.”

“…….”

“은성아?”

화장실을 가다가 마주친 군 후임이 못 본 척하며 걸음을 옮겼다.

미친 사람 앞을 지나가며 눈을 내리까는 소시민을 보는 듯하다고 할까.

“은성아?”

“…….”

“은성아. 어디 가니?”

“누구세요. 저, 저는 케빈이에요!”

명언을 남기며 도망치는 녀석의 모습에 왠지 모를 흡족한 기분을 느꼈다.

*   *   *

아침부터 진행한 리허설을 마친 후.

“중현이 형. 중현이 형.”

“응?”

“그거 해 주세여. 속 시원해지는 짤방.”

“잠시만.”

중현이가 근엄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내 쪽을 향해 속이 청량해진다는 듯 푸근한 웃음을 지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비주가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이제 무대 의상으로 갈아입으니까 이제 조금…….”

“조금?”

“조, 조금 있으면 올라가야겠죠? 원석이 형. 저희 언제 올라가야 돼요?”

매니저 형들이 곧 올라가면 될 거라고 말을 해 주었다.

목을 풀면서 연습을 하다가 대기실을 바라보며 신기함을 느꼈다.

오늘은 연말결산답게 연차 높은 선배 가수도 많고, 출연 라인업이 화려해서 독방은 못 쓸 줄 알았는데.

“인터뷰 녹화하게 나와 주세요!”

“네!”

문을 빼꼼 열고 외친 FD의 말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터뷰 룸에 도착하자 남녀 MC와 제작진 측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평소처럼 불만 가득한 얼굴로 대기 타던 틴스피릿도 까딱하며 인사를 해 왔다.

“안냐세요.”

“안녕하세요.”

출연진 라인업이 빠방한 터라 단독 인터뷰 대신 진행하는 합동 인터뷰였다.

양쪽 모두 산타나 루돌프, 요정을 연상시키는 색의 복장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성탄절 느낌이 확 살았다.

MC들도 술이 달린 빨간 모자를 쓰고 있었다.

“녹화 시작할게요.”

하품을 하던 틴스피릿의 연후가 ‘녹화’란 말에 눈을 쫘악 크게 뜨더니 함박웃음을 지었다.

동시에 깔깔 웃던 우리도 방송용 표정을 지었다.

두 그룹의 얼굴이 평균을 찾아가는 동안, 양갈래 머리를 한 라로즈의 전유빈이 활짝 웃으며 마이크를 들었다.

“네! 오늘 크리스마스 특집을 맞이해 찾아와 주신 특별한 손님을 모셔볼 텐데요!”

“바로바로~ 초대박 비주얼로 유명한 분들인데요~!”

뒤에 서 있던 우리와 틴스피릿이 환호했다.

“와아아아!”

‘우와아아’ 하며 양손을 반짝반짝하듯 들어 기운을 전송하자, 틴스피릿이 ‘우와아’ 하며 손을 흔들며 맞받아쳐 줬다.

좋은 호흡에 양쪽이 만족스런 시선을 교환했다.

“그럼 인사 부탁드리겠습니다!”

“둘 셋!”

“메리 크리스마스! 뉴블랙입니다!”

이어서 틴스피릿도 ‘팬님들, 우리가 왔긔’ 하듯 상냥한 미소로 인사했다.

남자 MC인 와일드의 우산이 큐카드를 읽었다.

“두 그룹 모두 믿기지 않는 천사 같은 비주얼의 소유자로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예이!”

“저희 뮤직 온이 출연 가수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자체 투표에서 두 그룹이 남자그룹 미모 공동 1위를 차지했는데요.”

“1등! 1등!”

음방 특유의 낯부끄러운 칭찬에 우리가 적나라하게 좋아할 때.

MC 전유빈이 물었다.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여러분들이 생각하시기에 이 중에서도 가장 비주얼이라고 생각하는 멤버가 있으신가요?”

“있다면 한 번 지목해 주세요.”

“오. 전부 다 우주 씨를 지목해 주셨네요!”

내가 지호를 지목하려고 하기도 전에 손가락들이 나를 가리켰다.

틴스피릿 멤버들과 다르게 내 동생들은 뭔가 손가락질을 하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장난스럽게 내 뺨을 꾸욱꾸욱 찌르는 동생들의 모습에 사람들이 웃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우주 씨?”

“정말 영광이네요. 제게 표를 주신 유권자 분들에게 정말 감사드리고요. 여러분의 1표가 아깝지 않도록, 초심 잃지 않고 관리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학급 선거에 당선된 반장처럼 대답하는 내 모습에 MC들과 틴스피릿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밖에도 크리스마스에 대한 질의응답을 하며 인터뷰를 진행한 후.

“오늘 뉴블랙 분들은 특별한 무대를 준비하셨죠?”

“네. 맞습니다!”

“저희가 너어무~ 궁금해서 그러는데 혹시 미리 보기 가능할까요? 딱 10초만!”

“10초 가겠습니다.”

내가 손가락을 리듬 있게 튕기며 타이밍을 잡아주자, 동생들이 캐럴의 후렴구를 불렀다.

“와! 너무 좋네요.”

“감사합니다.”

우리가 환히 웃으며 홍보를 했다.

“저희 뉴블랙이 이번에 겨울을 주제로 하는 스페셜 앨범으로 곧 돌아오는데요!”

“오늘은 그런 겨울 분위기를 물씬 느끼게 할 크리스마스 캐럴을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MC들이 눈을 크게 뜨며 리액션을 했다.

“올 한해 음원강자로 불렸던 뉴블랙의 캐럴 무대! 정말 큰 기대가 되는데요.”

“감사합니다.”

내가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이번 겨울 노래들을 통해 앞으로 군고구마, 군밤과 함께 겨울 하면 떠오르는 3가지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멋진 포부네요! 꼭 이루… 푸흡… 시길 바라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전유빈이 입술을 꿈틀대는 가운데 우리가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군밤, 군고구마. 두 선배님 곁에 나란히 설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채널~ 고정은 센스! 알죠?”

우리가 윙크를 하며 마무리를 하는 동안 이번에는 마이크가 틴스피릿에게 넘어갔다.

천사처럼 웃던 틴스피릿이 수줍게 말했다.

“저희도 타이틀곡 무대 준비했으니까요. 많은 기대해 주세요!”

“사랑해요! 소울!”

소심하게 하트하트 하는 모습에 우리가 감탄의 의미를 담아 박수를 짝짝 쳤다.

볼 때마다 대단했다.

아카데미상에 한국 지부가 생기면 이 선배님들을 꼭 추천해야지.

틴스피릿과 우리가 함께 ‘채널 고정!’ 하며 외친 후, 카메라가 꺼졌다.

“고생하셨슴다!”

인사성 좋은 불량청소년처럼 MC들과 스탭들에게 꾸벅 인사한 틴스피릿이 변신을 시작했다.

다소곳한 자세가 삽시간에 짝다리가 되고, 천사 같은 표정이 사춘기 소년처럼 눈썹이 매서워졌다.

스탭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동안 리더인 휘연이 우리에게 다가와 추파춥스를 권했다.

“고생하셨슴다.”

“아이고. 아닙니다. 선배님들이 고생하셨죠.”

“껍질 까드릴까요?”

“저희가 하면 돼요.”

막대사탕을 까는 부스럭 소리와 함께 잠시 프로 아이돌 간의 고단함을 공유하는 대화가 이어졌다.

“정신이 1도 없어요. 요즘에 스케줄 하다가 뒤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니까요.”

“남일 같지가 않네요. 저희도 컴백 준비 중이라…….”

“그 스케줄에 컴백이요? 와, 시발…….”

틴스피릿 멤버들이 ‘너넨 존나 리스펙한다’ 하는 표정으로 우리에게 엄지를 들어 보였다.

잠시 공감대 넘치는 대화를 나눈 후.

인터뷰 룸을 나서려는데 틴스피릿 멤버 하나가 궁금한 게 있다는 듯 질문을 했다.

“맞다.”

“네?”

“아까 캐럴 무대 공개한다고 했잖아요. 그거 10초 부른 거.”

뚱한 표정의 멤버가 말했다.

“좋아서 다운 받으려고 하는데 원곡이 뭐예요?”

“예?”

“스페셜 무대라면서요. 원곡 커버하는 거 아니에요?”

“원곡이라니요?”

“어? 그게 아니에요? 되게 옛날에 듣던 캐럴 느낌이라 추억 돋아서 좋았는데…….”

이런 참신한 오해를 받을 줄은 몰랐는데.

내가 웃으며 ‘제가 작곡한 노래예요’ 하자 틴스피릿 멤버들이 입을 떡 벌렸다.

“에헴.”

지호가 헛기침을 하고 나머지 졸개들이 뿌듯해 하는 가운데, 나를 바라보는 상대들의 눈에 탐욕이 어렸다.

진지한 표정을 짓던 휘연이 내 어깨에 추파춥스를 든 손을 올렸다.

“저기, 형.”

“네.”

“형은 페이가 어떻게 되세요?”

결제는 카드로 할까요, 현금으로 할까요 하는 듯한 말투에 웃음을 터뜨렸다.

*   *   *

성탄절 특집 사전 녹화.

음악방송 스테이지 위로 뉴블랙이 올라오자, 객석에 앉아 있던 수플레들이 환호했다.

“와아아아아아!”

-안녕하세요! 수플레! 오늘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특집답게 빨간색과 하얀색 계통이 섞인 복장으로 올라온 뉴블랙이었다.

‘진짜 예뻐…….’

의상 때문인지 오늘따라 뽀얗고 하얀 피부에 붉은 입술이 도드라져 보였다.

챙이 있는 빨간 모자를 쓴 리혁은 특히 그중에서 새하얘서 새침한 눈사람처럼 보였다.

아이스크림 광고 모델처럼 붉은 케이프를 두른 우주가 환히 웃으며 마이크를 들었다.

-오늘 저희 선공개곡 무대 하는 거, 알고 계시죠?

“네!”

-여러분이랑 재미있게 놀고 싶어서 만든 곡이니까, 호응 꼭 부탁드릴게요!

오늘 뉴블랙의 무대는 두 가지.

첫 번째로 시작된 곡은 올해 나온 곡 중에서 꾸준히 가장 큰 인기를 얻었던 ‘바람꽃’이었다.

의자에 앉은 멤버들이 서로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화음을 맞추거나 팬들을 향해 웃으며 노래를 불렀다.

‘좋다…….’

평소와 같은 바람꽃이었지만, 복장 때문인지 왠지 모르게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흘렀다.

이윽고 다음 곡 녹화를 앞둘 때.

‘레몬에서 돈 좀 썼구만.’

스탭들이 미는 바퀴 달린 이동식 세트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커다란 빨간 상자들을 비롯해 트리 세트까지, 삽시간에 무대 위가 크리스마스로 변신했다.

다시 무대로 올라온 뉴블랙 멤버들이 의자에 앉고는 수플레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여러분! 메리 크리스마스!

막내의 애교 섞인 외침 후에 녹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썰매가 달리는 듯한 작은 종소리들.

물방울 요정들이 장난스럽게 톡톡 튀는 듯한 리듬과 신이 나는 멜로디가 이어진 후.

청아한 목소리가 산뜻한 노래를 불렀다.

메리 크리스마스

이 날만 기다리며

달력을 넘겨왔죠

마이크를 든 메인보컬의 얼굴 위로 온기 가득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 동안 무릎에 손을 둔 멤버들이 고개를 부드럽게 양옆으로 움직이며 웃거나 고개를 끄덕였다.

루돌프 머리띠를 쓴 리드보컬이 눈웃음과 함께 마이크를 잡았다.

이토록 기쁜 건

소복소복 내리는 눈도

거리에 울리는 캐럴도

아닌

우리 두 손을 잡아서겠죠

끝부분에 화음을 더한 리혁과 함께 우주가 마이크를 내려놓자, 중현이 마이크를 들었다.

따스한 미소와 함께 허공에 주먹을 콩콩 하는 래퍼였다.

무엇을 할까요

눈싸움도 좋고

썰매도 좋고

따스한 커피 한잔하며

얘기도 나눠 볼까요

서브보컬과 메인댄서가 서로를 바라보며 노래를 주고받았다.

이번 크리스마스엔

우리 더 알아가 봐요

내리는 흰 눈이

이 길을 뒤덮을 때까지

메인보컬이 마이크를 쥐는 가운데, 뉴블랙 멤버들이 앉아 있던 의자에서 스윽 일어났다.

세상 모든 계절이

우리의 시간이었으면 한다는 말

보아요

눈 아래 우리의 계절이 담겨 있어요

팬송인 별빛을 떠올리는 이들이 미소를 지었다.

함께 있어줘서 고맙다는 가사와 함께 즐겁게 놀자는 가사가 이어졌다.

후렴구로 ‘썰매를 타- 타타- 타타’ 하며 서로를 바라보며 합창을 하거나 카메라를 향해 웃는 가수들.

너무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어서 보고 있는 사람마저 기분이 업 되는 듯했다.

처음 들었는데도 따라 부르게 되는 멜로디에 수플레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과연 Made in 우주.’

‘캐럴 무대 진짜 좋다…….’

‘진짜 노래 깎는 노인이야. 선우주.’

무대가 끝날 때까지 신이 나는 캐럴을 부른 멤버들에게 환호와 응원을 보낼 때.

녹화장을 빠져나온 수플레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와. 대박.”

“이번에 선공개한 이거, 팬송으로 만든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퀄리티 대박.”

“옛날에 듣던 캐럴 느낌 낭낭하지 않아요?”

묘하게 트렌디하면서도, 계속해서 귓가에 맴도는 고전적인 멜로디에 수플레들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얼른 음원이 출시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눌 때.

“썰매를 타- 타타 타타-”

“타 타타 타타-”

다음 녹화 큐시트를 뒤적거리던 카메라 감독들이 흥얼거리던 입을 멈췄다.

그러곤 서로를 바라보며 눈매를 좁혔다.

“……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노래가 입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   *   *

비슷한 시각.

복도 TV로 송출되는 뉴블랙의 사전 녹화를 감상하던 이들이 입을 멍하니 벌렸다.

칸막이 대기실에서 잠시 공기를 쐬러 나온 신인들이었다.

“와. 미쳤다.”

“중간에 화음 쌓는 거 봤어? 엄두도 안 난다. 진짜.”

“중현 선배님, 개멋있지 않냐. 친해지고 싶다.”

뉴블랙의 비주얼과 라이브를 보며 감탄사를 흘릴 때.

“캐럴 진짜 좋은데. 저거 원곡 뭐야?”

“미국 거 아냐? 팬송 같기는 한데, 아마 가사를 팬들 대상으로 고친 거 같은데.”

“우리도 저거 할 걸.”

오늘 크리스마스 특집 무대로 ‘White Christmas’ 등의 유명 곡 커버를 준비한 신인들이었다.

‘저렇게 좋은 곡이 있었구나.’

숨은 명곡을 하나 알았다며, 이따가 본 무대에 자막까지 덧입혀져서 올라오면 제목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할 때.

대기실에서 TV로 사전녹화를 보던 다른 가수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잘한다…….”

“매니저 형, 쟤들 몇 살이라고 했지? 흐에에. 고등학생도 있어? 나 이제 늙다리야?”

“곡이 진짜 좋은데, 저거 누구 거래?”

팬들을 위해 만든 팬송인데 정작 다른 모두가 ‘원곡을 잘 편곡했구만’ 하며 따스한 미소를 보일 때.

“……어이구.”

유일하게 우주의 자작곡이라는 걸 알아보는 이들이 있었다.

오늘 음악방송에서 가장 널찍한 대기실을 독차지한 8인조가 훈훈한 표정을 지었다.

“엄청 갈아댔겠구만.”

“월말평가 노래 편곡할 때, 진짜 이가 갈렸지. 그거 음 하나 이상하다고 하루 종일…….”

“쟤 작업물은 들으면 안다니까. 비명이 막 서라운드로 들려.”

막내인 석지훈이 말했다.

“같이 작업하면 엄청 힘들걸.”

“힘든 정도겠냐. 죽지.”

“어우, 나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야.”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가운데, 동료들의 눈치를 살피던 TNT 멤버들의 손가락이 핸드폰 위에서 꾸물꾸물 거렸다.

그리고 1분 후.

지이잉.

진동 소리와 함께 ‘어, 형’ 하며 전화를 받던 한태현이 눈을 깜빡거렸다.

“스피커폰? 왜?”

이내 스피커폰으로 바뀐 핸드폰을 내밀자, 그곳에서 선우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기요. 선배님들.

“응?”

-이렇게 개별로 곡 달라고 할 거면 차라리 단톡을 파. 아주 단체로…….

한숨 가득한 목소리에 그들이 민망한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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