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47화
삼성동 코엑스.
옷을 품에 듬뿍 안은 스타일리스트들, 전화기를 든 매니저 형들이 사람들을 헤치고 나아갔다.
“죄송합니다! 지나갈게요!”
우리도 그 뒤를 바쁘게 따라 종종걸음으로 움직이는 중이었다.
커다란 전시장에 칸막이로 나눠놓은 대기실들을 돌아다니다가 ‘뉴블랙’ 팻말이 붙은 대기실을 찾았다.
문 대신 달아놓은 천을 들추고 들어간 민기 형이 눈썹을 찡그렸다.
“뭐야. 왜 이렇게 좁아?”
넉넉하게 가지고 온 짐들이 다 안 들어갈 만큼 공간에 여유가 없었다.
HBS 가요대상 제작진의 처사에 살짝 당혹한 표정을 짓는 스탭들에게 우리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작년보다는 큰데요. 뭐.”
스탭들에게 손을 내밀어 옷비닐에 싸인 의상을 받았다.
공간이 협소한 탓에 우리가 의상을 갈아입는 동안 스타일리스트 등이 잠시 나가 있어야 했다.
재킷에 팔을 넣던 비주가 말했다.
“너무 바빠서 정신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지금도 머릿속이 텅 빈 것만 같고.”
“생방송 무대 하고 와서 그래여.”
머리를 조심스럽게 슥슥 매만지던 막내가 말했다.
“전에 명곡단 촬영할 때는 그래도 녹화라서 괜찮았는데, 오늘은 생방인데 멘트도 많아 가지고.”
“진짜.”
나도 동감했다.
“MC님이 틈만 나면 나한테 마이크 주시더라.”
“그건 형이 대답을 계속 잘하니까 그런 거예여. MC님이 자기 폰에 형 멘트 요정으로 저장했다던데여.”
“좋기는 한데. 너무 과하게 열심히 했나…?”
“우주 형, 형이 저에게 들려준 말이 떠오르네요. 중현쓰, 넌 가만히 있음 중간쓰.”
중현이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의상을 마저 입고는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외쳤다.
“저희 다 입었어요!”
스탭들이 들어와 메이크업을 수정하고 머리를 정돈해 주었다.
진짜 정신없었다.
PBS 방송국이 있는 여의도부터 이곳 삼성동 코엑스까지 정말 바쁘게 이동해 와서 그런 걸까.
더군다나 바로 앞에 했던 방송이 장장 2시간에 달하는 평균 시청률 15%의 명곡단, 그것도 생방송으로 진행한 무대였다.
그러다 보니 긴장감이 장난 아니었다.
연말 특집이라 평소보다 시청률이 훌쩍 더 오를 거라는 소식을 미리 듣기도 했고.
명곡단의 초창기 멤버 중에서도 가장 인지도 있는 그룹으로 성장한 까닭에 카메라 몇 대가 수시로 가수석에 앉은 우리 리액션을 담곤 했다.
사소한 표정 하나로 책잡히기 싫어서 2시간 동안 활짝 웃으며 ‘우와앙’ 하며 손을 흔들었다.
“와. 나 이거 봐요.”
리혁이가 손바닥을 내밀자, 다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흐하핫!”
엄청 열심히 박수를 쳤는지 새하얀 손의 안쪽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비주가 가방을 뒤적거리며 로션을 꺼내 주려고 할 때, 내가 웃으며 타박했다.
“적당히 치지.”
“트집 잡히는 거 싫으니까 그러죠. 요즘은 지나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하는 시기인데.”
“그건 맞는 말이네.”
연말 시즌이라 그런지 새로운 수플레들이 들어와 전체적으로 후우웁 하면서 덩치를 빵빵하게 불리는 중이기도 하고.
올해 뜬 아이돌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관심도가 높은 편이라 연말 시즌의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기사가 되는 편이었다.
기업 송년회 행사에서 다들 와인을 마실 때, 눈을 감고 물 한 모금 마시던 사진까지 ‘난 오늘도 물을 음미한다..☆’ 같은 포토기사로 나올 정도였으니까.
“자, 준비 다 됐으면 리허설 하러 갑시다!”
“고고!”
동생들과 함께 웃으며 칸막이 대기실을 나섰다.
명곡단 생방송이 끝나고 다급하게 온 덕분인지 리허설 현장까지 가는 시간이 여유로웠다.
전시장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며 무대까지 이동한 후.
큐시트를 들고 기다리던 HBS 가요대상 제작진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그럼 바로 뉴블랙 리허설 시작하겠습니다.
방송국과 회사가 현재 사이가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리허설 현장은 평소 음악방송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피디도 별 관심 없는 표정이고.
차이점이라면 분량이 많이 줄었다는 것과 곧 생방송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제작진이 엄청 긴장했다는 것 정도.
-수고했습니다.
아까 했던 명곡단처럼 카메라 구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걸 반영한 리허설을 두어 번 정도 더 할 줄 알았는데.
딱 한 번 만에 끝난 리허설에 아쉬움을 느꼈다.
무대 바닥을 발뒤꿈치로 톡톡 두드리며 재질을 파악하던 비주가 내게 말했다.
“형, 다른 건 다 괜찮은 거 같고. 저희 계단에서 올라올 때 워킹 한 번 더 해 보면 좋을 거 같아요.”
“나도 같은 생각하고 있었어.”
무대 구조가 익숙하지 않아서 한 번 올라오는 것만 다시 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리허설까지의 텀을 살핀 후, 마이크를 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바쁘신데 죄송하지만 저희 올라오는 워킹 한 번 다시 해 봐도 괜찮을까요?”
-네에.
큐시트를 훑던 피디가 건성으로 마이크를 들었다.
그러곤 전체 마이크 전원을 껐는지 뚝- 하는 소리가 앰프에서 흘러 나왔다.
고요해진 무대.
무대로 올라오는 계단을 올라왔다가 워킹을 하고, 다시 내려갔다가 올라오길 반복했다.
“원투 쓰리, 포.”
“둘셋. 짠짠.”
나와 비주가 동생들과 함께 걷는 타이밍을 맞췄다.
그러곤 아까 카메라 위치를 떠올리며 내가 동생들에게 무대의 여러 위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1번 카메라가 저기 있었거든? 각도상으로 중현이 네가 저쪽을 바라보는 게 맞을 거 같아.”
“알았어요. 형.”
“그리고 지호야. 우리 표정 좀 체크해 주라.”
지호의 짤막한 표정 체크까지 마칠 때.
몇 분간 연습하는 우리 모습에 주변 제작진들이 ‘뭘 저렇게까지 하냐’ 하나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냥 2분 하는 거 좀 대충하지 하는 느낌이었는데 공감은 안 갔다.
그게 몇 초가 되어도 우리 무대니까 당연히 열심히 해야 되는 거 아닌가.
“감사합니다!”
활짝 웃으며 인사하고는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매니저 형들이 찍은 핸드폰 영상을 보면서 우리끼리 무대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을 때.
리혁이가 뭔가 살짝 마음에 걸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음향이 좀…….”
“마이크 소리가 너무 작지 않았어여? MR만 우왕빵빵 들리는 거 같던데.”
원석이 형이 말했다.
“내가 제작진한테 말해 봤는데, 음향 세팅이 원래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그랬어.”
“……진짜.”
할 말이 많지만 하지 않았다.
조명부터 시작해서 전반적으로 모든 게 이상했다.
무대 배치도 이상하고, 음향 문제부터 시작해서 대체 뭐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할까.
혹시 우리한테 일부러 그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
“후우…….”
전시장 구석에 쪼그려 앉아서 추파춥스를 담배처럼 물고 있는 미소년들을 발견했다.
어딘가 빡침 가득한 표정들에 내가 동생들에게 속삭였다.
“저기압이시네. 지나가자.”
“자. 우리 눈 깔아여.”
소시민처럼 열심히 지나가려고 할 때,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던 이들이 고개를 슥 들었다.
“…안냐세요.”
울적하고 힘이 없는 목소리에 우리가 웃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들.”
“예예. 뭐.”
“왜 그렇게 힘이 없어요?”
“리허설 끝나고 개빡쳐서 연습하다가… 지금은 지쳐서 쉬는 중이에요.”
“왜여?”
우리 막내의 물음에 비슷한 또래의 멤버들이 한숨을 푹푹 쉬었다.
“음향 존나…….”
“조명도 눈에 직빵으로 쏴서 눈알 존나 아파요. 현미경으로 지지는 줄.”
“돋보기겠지. 어휘력 실화냐.”
“얘 최종학력 피자스쿨임.”
“다 닥쳐 봐. 암튼 음향 관해서 말을 해도, 해도 아오…….”
리허설에 관한 하소연에 우리가 웃으며 경청했다.
그러곤 우리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엉망인 거구나 하는 유익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거친 인상을 자랑하는 막내 우빈이 물었다.
“형들은 리허설 괜찮았어요?”
“저희요?”
우리가 ‘you know’ 하듯이 훈훈하게 미소를 지으며 끄덕이자 상대측이 눈매를 좁혔다.
끄덕?
끄덕덕.
우리가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공기 속에서 정감 가득한 하이파이브가 오갔다.
* * *
12월 27일.
저녁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HBS 가요대상이 막을 올렸다.
“오오오.”
모든 출연진이 칸막이 대기실에 머무르는 탓에 우리는 태블릿 PC로 실시간 생방송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HBS 가요대상을 홍보하는 캠페인처럼 가수들의 홍보 활동이 VCR로 짧게 지나간 후.
-고 스트릿!
-소리 질러어어-!
힙합 복장으로 카메라를 향해 껄렁껄렁하게 걸어오는 불량배들이 나타났다.
오프닝 퍼포먼스.
스트릿 보이즈와 와일드를 필두로 한 다섯 보이그룹의 합동 무대였다.
“우와아!”
다른 멤버의 손을 밟은 채 허공으로 튀어 올라 공중제비를 돌 듯 발차기를 하는 LB의 모습에 물개박수를 쳤다.
“우리 거리소년들 화이팅.”
“다들 연습 겁나 많이 했나 봐여. 어쩐지 계속 기대하라고 톡 보낸다 싶었어여.”
힙합 컨셉으로 구성된 칼군무 속에서 가장 돋보이는 9인조 그룹의 모습에 감탄이 나왔다.
음향 상황 때문에 목소리가 잘 안 들리는 게 아쉬울 뿐.
-와아아아아!
태블릿 PC와 함께 멀리서부터 함성이 아련하게 들려왔다.
씩 웃고 있는 한조를 중심으로 하는 단체샷으로 합동 퍼포먼스가 끝난 후, 남녀 MC가 정장과 드레스 차림으로 등장했다.
-올해 HBS 가요대상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출연진이 시청자 여러분을 위한 무대를 준비했는데요!
-정말 막강한 라인업이죠.
만담을 주고받는 MC들 뒤에서 VCR이 흘러 나왔다.
세레니티의 로고 옆에서 화보, 로고 같은 우리 이미지가 떠오르자 환호성이 크게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
이윽고 한참 동안 스트릿 보이즈를 비롯해서 다른 가수들의 로고가 흘러나온 후.
틴스피릿과 TNT를 마지막으로 소개가 끝이 났다.
-그럼 2015년 HBS 가요대상! 시작해 보실까요?
걸스온탑의 단독무대부터 시작해서 본격적인 무대가 이어졌다.
중간중간 협찬사의 물건으로 진행하는 아이돌들의 이벤트가 있었지만 우리에겐 해당 사항이 없어서 편하게 관전했다.
“진짜 편하구만.”
“최근에 어디 와서 이렇게 편하게 있는 건 처음이에여.”
요즘 들어 어딜 나가든, 방송사 측에서 쉴 틈 없이 뭘 시켰던 것과는 달랐다.
1부에 있을 단독 무대를 제외하면 별다른 이벤트가 없었다.
“자, 시계방향~”
“반대루~!”
여유로운 시간을 이용해 동생들과 어깨를 조물조물하면서 가요대상을 시청했다.
“오, 저거 무대 이펙트 괜찮다.”
“나중에 우리도 콘서트 하면 저거 한 번 써 보는 거 어때요? 팬분들 엄청 좋아할 거 같아요.”
“오오오…….”
몇몇 가수를 제외하면 다들 짤막하게 하고 내려가는 탓에 적은 시간 동안 가장 큰 임팩트를 줄 수 있는 무대들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감탄한 건 우리 회사 선배들이었다.
올해 히트쳤던 발라드 곡들을 짧게 메들리처럼 부르고 간 윤찬혁 선배와 더불어…….
“오.”
스칼렛의 메인댄서 리나가 느닷없이 허공으로 튀어올랐다.
펌핑 리프트.
압축 공기를 써서 리프트 위의 사람을 푸슉 하고 허공으로 쏘아 올리는 장치를 이용한 등장이었다.
길쭉한 다리가 우아하게 무대 위에 착지했다.
-와아아아아!
라이더 장갑을 낀 손으로 재킷을 탁탁 털며 카메라를 노려보는 표정에 함성이 들렸다.
인트로 음악과 함께 무대 위에 모이는 걸그룹 멤버들.
힙합 컨셉의 타이틀곡을 배경으로 나오는 파워 가득한 안무에 우리가 감탄했다.
“안무에 힘 가득한 거 봐. 저래서 고기를 먹어야 돼.”
“맞아요.”
“역시. 그래서 우리가 요즘 안무에 힘이 없었나 봐여. 그런 의미로 숙소에서 소고기 구워 먹을까여?”
옆에 있던 매니저 형들이 ‘너희가 뭐가 힘이 없는데’ 하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봐여.”
지호가 중현이의 팔뚝을 붙잡고 손을 흔들었다.
“팔에 힘이… 형, 손에 힘 빼여.”
“응.”
“이거 봐여! 힘이 없어서 손이 덜렁거리잖아여!”
“덜렁덜렁.”
매니저 형들이 웃었다.
회사 선배 그룹을 핑계로 고기 취식에 대한 허가를 얻은 후, 편안하게 이어지는 다른 무대를 관람할 때.
“뉴블랙! 스탠바이해 주세요!”
“네에!”
기지개를 키고는 동생들과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의에 찬 얼굴로 일어나는 녀석들을 불러 모으며 내가 말했다.
“긴말할 필요 없고.”
2분 30초.
“임팩트 있게 하고 옵시다. 둘 셋!”
“군고구마 군밤 뉴블랙!”
멤버들과 함께 손을 모으며 외쳤다.
* * *
1부 중반부.
뉴블랙의 무대가 나오기 전, 아이돌 커뮤니티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져 있었다.
-다음 뉴블랙 맞아???
-ㅇㅇ 맞는듯
-ㅋㅋㅋㅋㅋ뭐야 큐시트 진짜였냐
-잉??? 얘네가 이 타이밍ㅇㅔ 나온다고?? 왜?
-뭐야 나 얘네 덕아닌데도 황당하네
‘절대 유출 금지’라는 경고문이 적힌 종이 위로 그날 어떤 가수가 어떤 무대를 하는지 순서가 담긴 큐시트.
관계자들이 방송 진행을 하기 위해 만든 것이지만, 연말 시즌이 되면 대개 인터넷에 유출되곤 했다.
[오늘 HBS 가요대상 큐시트.jpg]
문제의 발단이 된 것도 당일 올라온 글이었다.
-걸탑 또 live ar이네 립싱크 작작해라
-가수면 노래 좀 하라고.. 커버도 아니고 자기들 노래 립씽하냐
-에노티?? 얘네 누구야? 뭔데 저렇게 많아?
-틴스는 또 엔딩 못하네ㅋㅋ 올해 엔딩은 인간적으로 틴스 주라
-mop도 분량 논할 입장은 아닌거 같은데.. 틴스야 틴스인데 세레니티도 분량보소
-내 이럴줄 알았다ㅋㅋㅋ 무대 분량 보소 작년엔 KM파티더니 올핸 TJ랑 MOP 잔치네
대형기획사인 TJ 엔터와 MOP 엔터의 가수들이 유독 많은 분량을 차지한 것에 대한 비판이 나왔지만.
가장 이목을 끌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뉴블랙의 분량이었다.
[지금 이상하단 말 나오는 HBS 가요대상 분량]
연말 어워드를 거치면서 뉴블랙이 마지막 즈음 무대를 하고, 그 뒤에 틴스피릿과 TNT 등의 순서로 굳어져 있는 상황.
그런데 1부 엔딩도 아니고 중반에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그것도 단독 무대가 딱 1개 칸에 [‘바람꽃’+‘Nine’ 메들리]라고 표시된 내용으로.
-뭐야?? 이게 뭐야?
-난 얘네 딱히 호감은 아니지만 단독무대 하난 이상하지 않음?
-ㅋㅋㅋㅋㅋㅋㅋ올해 남돌 중에서 대중성은 얘네가 탑 찍지 않았어?? 존나 황당
-뭔 생각으로 짠 거야 ㄹㅇ
-피디 뉴블랙빵 안 사봤나
-이 새기들 작년에는 사전녹화 가지고 장난치더니 나날이 새로운 지랄이네
수플레가 아닌 다른 아이돌 팬들까지 벙 찐 표정을 짓게 만드는 큐시트였다.
황당해서 조작이 아니냐는 말이 잠시 나왔을 만큼.
대부분 ‘뭔가 트러블이 있는 게 아니냐’ 하는 추측을 하고 있을 때.
“…….”
수플레들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참으며 TV를 시청했다.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이라면 HBS의 연말 가요 무대를 보며 황당해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거였다.
-오늘 mr 왜 저럼?
-아니 목소리가 안 들리는디요..
-춤을 추면 그냥 카메라를 잡아! 잡으라고오오오옥!!!! 아오 왜 같이 출렁거리는데
뒤틀린 카메라 워크와 음향까지.
각 아이돌 팬들이 무대를 보며 황당해 하는 가운데, 마침내 뉴블랙이 올라올 시간이 됐다.
그리고…….
“아빠!”
“어?”
“얼른 와 봐! 뉴블랙 지금 나온다!”
“한참 이따가 나온다며?”
큐시트 등을 모른 채 가정에서 TV를 시청 중이던 수플레들이 다급하게 가족을 불렀다.
‘뭐야. 왜 지금 나와?’
그런 생각을 할 때, 옆에 앉은 가족들이 말했다.
“근데 쟤들은 왜 저렇게 일찍 나오냐?”
“뭐, 바쁘게 어디 가야 되나 보지. 아까 명곡단에도 나온 그것도 생방송이라고 하지 않았나?”
“아아. 인기가 많아서 그런 거구만.”
알아서 납득을 하고 있을 때, 인트로와 함께 뉴블랙 멤버들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우와.’
전원 수트를 걸치고 있는 뉴블랙이었다.
정장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더 조그마한 머리와 길쭉한 팔다리 등 비율이 돋보일 때.
모델이 런웨이에서 걷듯이 여유롭게 걸어오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바람꽃’의 가사를 부르는 우주가 우아하게 걷다가 카메라 쪽을 향해 빙긋 미소를 지으며 지나갔다.
‘…우리 애들은 카메라를 잘 잡아주는 건가?’
그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카메라가 전환될 때마다 귀신 같은 타이밍으로 고개를 돌리거나 웃는 멤버들이었다.
이윽고 1분 동안 후렴구까지 끝난 후.
대형 전광판에 그리움 가득한 아련한 미소로 손을 뻗는 리혁이 나오면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악!
현장에 흔들리는 달봉이의 물결과 함께 급격히 전환되는 분위기.
네온사인과 같은 광선이 쏘아지는 가운데, 30명에 가까운 댄서들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정장을 입은 채, 거세게 웨이브를 타는 뉴블랙 멤버들이었다.
“어이구, 잘하네에.”
“거봐. 내가 아이돌 맞다고 했잖아.”
“그런데 원래 저렇게 짧게 하고 끝나냐? 저거 유명한 노래 아냐.”
“이대로 끝나는 건 아닐걸? 아마 처음에 한 건 예고편처럼 보여준 거 같아.”
“아아…….”
그런 설명에 중년층이 납득할 때.
30명의 댄서들과 함께 나인의 안무를 몸이 부서질세라 추는 멤버들이었다.
센터에 선 비주가 스케이트를 타듯 팔을 움직이며 흐름을 주도하고.
양옆에 선 우주와 지호가 그런 흐름을 널리 퍼뜨리듯이 움직였다.
중현이 유달리 평소보다 더 저음의 목소리로 ‘나인 나인’ 하는 중독성 가득한 후렴구를 부르는 동안, 삽시간에 땀에 젖은 멤버들이 조명에 반짝거렸다.
‘우와.’
앞 머리카락이 땀에 적셔진 우주가 고개를 털면서 댄스 브레이크의 중앙에 선 후.
곧이어 리더가 마이크를 든 손을 카메라를 향해 쭉 뻗었다.
뉴블랙의 멤버들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리더가 권총을 쏘듯이 마이크를 탕 하며 눈을 찡긋했다.
-와아아아아아!
그리고 조명이 암전됐다.
“끝?”
전국 각지에서 시청 중이던 사람들이 벙 찐 표정을 지었다.
“뭐야? 저게 끝이여?”
“캐럴 부르는 거 아니었냐? 명곡단에서 한 거랑 비슷한 거 하는 줄 알았는데.”
“요즘에는 예고편처럼 무대를 하는 건가? 하도 오랜만에 봐서 난 뭐가 뭔지 모르겠네.”
하지만 ‘감사합니다!’ ‘행복한 새해 되세요!’ 를 외치며 암전된 무대를 내려가는 모습을 보니 끝이 분명했다.
수플레들이 있는 집에서야 사정을 듣고 ‘악질 같은 놈들이네’하는 말이 나왔지만.
잘 모른 채 TV를 켰던 사람들은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실시간 검색어에 ‘가요대상 뉴블랙’ 등이 올라올 때, 곧바로 그런 논란을 감지한 연예 기사들이 올라왔다.
“이게 갑질이구만.”
PBS 명곡단의 흐름을 타고 연말 무대에 합류한 시청자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TV 시청을 종료했다.
그리고.
“……음?”
갑자기 꺾이는 실시간 시청률 그래프.
HBS 방송국 주조정실에서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던 주조정실의 직원들이 눈을 깜빡거렸다.
‘뭐지?’
3년 만에 역대 1부 최고 시청률이 나왔다고 좋아하던 직원들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1부가 끝난 후, 연예 뉴스란과 HBS의 시청자 게시판이 시끌시끌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