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49)화 (349/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49화

“허억. 허억.”

“고생했다.”

대기실로 돌아온 리혁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해 주자, 상대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진짜 나 완전 불태우고 왔… 허억…….”

차우현 선배와 듀엣을 했던 게 너무 힘들었는지, 비주에게 생수를 받아 벌컥벌컥 들이키는 메인보컬이었다.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잘 타긴 하더라.”

“장작인 줄.”

“완전 성대가 활활 타는 게 보이던데여. 차우현 선배님한테 안 밀리려고 막 기 쓰고.”

리혁이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진짜 한 번 올라가 봐요. 다들. 치타랑 100미터 달리기 하는 기분이었다니까.”

“안 해 봐도 알아.”

“끝나고 나서도 너랑 노래 부르니까 편하다, 그러면서 담담하게 고개를 까딱하시는데…….”

발라드 가수의 엄숙한 표정이 상상이 가서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리혁이를 토닥여주었다.

“잘하고 왔어. 엄청 잘하더라.”

“…그래요? 빈말 아니고?”

“우주 형 말 그대로에여. 엄청 잘해서 우리가 대기실에서 보면서 우와아, 했다니까여. 수플레들도 엄청 반응 좋구.”

“흠흠.”

나와 막내가 양옆에 붙어 살랑살랑하자 금세 눈매가 기분 좋게 올라가는 리혁이었다.

비주가 옆에서 눈을 가늘게 떴다.

‘둘 다 핸드폰 했잖아요.’

헛기침을 하고는 뺨에 홍조가 살짝 떠오른 리혁이에게 대단하다! 하며 손을 반짝거렸다.

그러곤 대기실 TV로 시선을 돌렸다.

조유리 밴드와 걸그룹 NYX의 메인보컬이 함께 락 베이스 음악을 부르는 중이었다.

-와아아아아!

인기 밴드에 대한 호응도 대단하지만, NYX의 메인보컬인 뮤리가 비칠 때마다 환호가 나왔다.

중현이가 거대 팝콘 봉지에 손을 넣으며 말했다.

“NYX 분들도 반응 되게 좋네.”

“좋을 걸요. 명곡단 2기에서 무대 잘해서 화제 됐잖아요.”

“오오, 잘됐네.”

1기 파이널 녹화 때였나.

우리보다 1년 먼저 데뷔했는데도 엄청 위축되어서 인사하러 왔던 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없지만 한때 TJ 엔터 연습생으로서 왔다갔다하며 얼굴을 봐서 그런지 잘 풀렸다는 이야기가 반가웠다.

“근데.”

막내가 말했다.

“올해는 걸그룹 분들 무대가 많이 없긴 하네여. 작년에는 엄청 많았던 것 같은데.”

“요즘 그런 시기인 거 같아.”

2015년을 마무리하면서 나오는 기사들을 볼 때마다 ‘올해는 보이그룹의 해’라고 언급하는 식이었다.

작년까지 왕성하게 활동했던 2세대 원탑 걸그룹인 데일라잇도 사실상 활동을 멈춘 상태고.

11년도에 데뷔한 걸스온탑도 서서히 활동이 뜸해지는 상황이었다.

스칼렛을 제외하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걸그룹들 대부분 솔로나 연기 활동에 주력하는 중이니.

우리와 같은 해에 데뷔했던 세레니티와 블링크, 그리고 NYX 등이 뜨고 있었지만 아직까진 아이돌 팬이나 대중들에게는 떠오르는 걸그룹 정도로 인식되는 듯했다.

일종의 세대 교체기라고 할까.

각 소속사들이 빈자리들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다투는 형국이었다.

올해 TNT, 틴스피릿과 함께 우리가 보이그룹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게 되면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과는 다른 상황이었다.

“와아아아.”

조유리 밴드와 뮤리에게 박수를 치면서 이어지는 무대들도 감상했다.

“너를 이 chain에 묶어~ 묶어… 뭐야. 뭐야. 저 선배님들 진짜 묶고 계세여.”

“코알라 아포칼립스. 아포칼립스~”

“유칼립투스에요. 중현이 형.”

병맛 노래로 유명한 3인조 포크 그룹 ‘이지훈과 졸개들’의 공연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유는 모르지만 캥거루 모자를 쓴 이지훈이 ‘유칼립투우~스~’ 하면서 손뼉을 짝짝짝 짝짝 쳤다.

그런 진기한 무대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중간중간 스페셜 무대가 끼어 있었다.

햄스터처럼 수플레 빵을 우물거리던 비주가 말했다.

“올해는 다들 70년대나 80년대 노래를 현대적으로 바꾸는 게 유행인가 봐요.”

“그니까요. 저게 유행인가 봐요.”

“이거 때문에 스페셜 무대가 엄청 많은 거잖아요. 다른 아이돌 선배들도 옛날 노래 부르고.”

우리가 오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유가 바로 올해 찾아온 복고풍 유행이었다.

“누가 저런 유행을 만들었는지…….”

이것 때문에 우리 무대가 많은 거 아니냐며 탄식할 때.

옆에서 캔커피를 홀짝이던 민기 형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우릴 바라보았다.

“야.”

“왜여?”

“너희가 만들었잖아. 이 유행.”

“……?”

우리가 눈을 깜빡이다가 ‘아!’ 하며 납득하자, 스타일리스트들이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뭐예여. 이번에도 우리가 셀프 발등 찍은 거예여?”

“그런가 봐.”

“어쩐지 아까 TNT 선배님들이 이 아저씨를 괜히 원망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간 게 아니었네요.”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스페셜 무대 많더라, 화이팅!’ 했더니 되게 얄밉다는 듯 쳐다보고 가서 왜 그런가 했는데.

“우리가 원흉이었구먼…….”

우리 발등뿐만 아니라 남들 발등까지 열심히 찍어댔다는 사실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TV 속에서 한태현이 와하핫 하며 트로트를 부르는 동안.

리혁이가 태블릿 PC를 뒤적이며 말했다.

“그래도 덕분에 어른들 반응이 좋은가 봐요.”

“그래?”

“집에 있는 부모님들이 엄청 좋아하고 있대요. 수플레 말고 다른 그룹 팬들도.”

“……?”

*   *   *

12월 30일.

집에서 PBS 가요제전을 보고 있는 아이돌 팬들은 특이한 일을 겪고 있었다.

“……?”

보통 연말 시즌이 되면 TV 리모컨의 주도권을 두고 눈치 싸움이 벌어지기 마련인데.

‘어휴, 뭔 이런 재미없는 걸 보냐’ 하며 낚시나 드라마로 채널을 돌리던 부모님이 무대 구경을 하고 있었다.

“역시 그래도 원곡은 못 따라가네.”

“저거 엄청 오래 된 노래인데, 요즘 애들이 저 노래를 알긴 아나?”

옛날 노래를 새롭게 어레인지한 곡을 불러대는 통에 약간 지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의 순기능이 있었다.

‘뭐지.’

추억 여행에 젖어들어 있는 부모님을 보며 눈을 깜빡일 때.

“예전에는 테레비에서 이런 거 하면 쭉 봤던 거 같은데, 요즘에는 참 재미가 없다니까…….”

아니나 다를까.

TV 리모컨에 슬금슬금 손을 뻗은 아빠가 버튼을 톡톡 눌렀다.

‘DMB로 봐야 하… 볼륨이었네.’

볼륨이 두 단계 올라갔다.

원곡이 더 좋았네, 편곡이 별로네 투덜거리면서도 TV를 계속해서 바라보는 가족이었다.

그리고…….

“쟤는 누구냐? 노래 잘하네.”

스페셜 무대에 참여한 아이돌 그룹의 팬들에게는 은근슬쩍 이름을 알릴 기회였다.

“검색해 보니까 틴스피릿에 연후라는 애래. 아이돌 중에서도 노래 잘하는 애인가 봐.”

“애가 참 순둥순둥하게 생겼네.”

“뉴스 검색해 보니까, 옛날에 아역으로 어디 사극에 잠깐 나왔었나 봐.”

“그래?”

은은하게 이름을 주입하며 만족감을 느낄 때.

어느덧 2부 후반부에 이른 PBS 가요제전이 새로운 무대를 소개하는 VCR을 재생했다.

“저기는 뉴…….”

“뉴블랙이네.”

“…….”

부모님들이 먼저 이야기를 두런두런 하고 있었다.

“그건 어떻게 됐대? 갑질 당했다고 인터넷에서 얘기 나온다면서.”

“방송국 것들이 뭐 사과하는 거 본 적이 있나. 하여간 어른들이 애들한테 몹쓸 짓들 한다니까.”

“어유. 못된 것들.”

‘쟤넨 뉴블랙이고…’ 라고 말을 하려던 사람들은 눈을 깜빡거리며 입을 다물었다.

왠지 부모님이 더 잘 아는 듯한 느낌이었다.

“엄마랑 아빠는 쟤네 잘 아나 보네.”

“알기는.”

엄마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미튜브로 요리 같은 거 검색하다가 그냥 본 거지.”

“미튜브?”

“모르는 양식 만들려고 할 때 편하더라. 비주라는 애가 살림도 그렇고, 요리를 참 야무지게 해.”

핸드폰을 꺼내 검색하니 ‘비주의 요리 레시피 - 함박 스테이크!’라는 영상이 있었다.

유명 셰프 박재우가 감탄하는 가운데, 비주가 제자리에서 회전을 하며 소금을 뿌리고 있었다.

‘……둘 다 되게 좋아하네.’

아빠는 아빠대로 플레이 리스트에 가득한 노래들 때문인지 좋아하는 것 같고.

엄마도 호감으로 보는 시선이었다.

다섯 멤버가 노스탤지어의 ‘Thousand Dreams’를 부르며 객석에 손을 흔드는 동안.

집마다 그런 반응을 두고 인터넷에 글들이 올라왔다.

-뉴블랙 나왔는데 울 엄빠 좋아한다ㅋㅋㅋㅋ

-나보다 뉴블랙 더 잘아는거 같은데?? 중년 세대에게 통하는 페로몬이라도 뿌리고 다니는 건가

-난 중년층에게 통하는 비결이 궁금해

-울 엄마왈: 잘생긴 애들이 귀여워서 좋다

-우리 엄마도 얼굴이라고 하던데

-나 궁금한데 얘네 팬층이 좀 연령대가 되나..? 혹시 내가 지금까지 잘못 알았나 해서

-초딩들한테 인기 많은 줄 알았는데 골고루인듯

이윽고 다른 아이돌 팬들이 댓글을 적기 시작했다.

-숯불 이모들,, 그동안 무례해서 미안했어요

-이모..

-오프에서 다들 동안으로 보이셔서 비슷한 나이라고 생각했어요. 죄송합니다

-아니 이모라고 하지 말라고ㅠㅠㅠㅠ 우리 젊어 애기야

-다 알아요..

-아니 아니라구ㅠㅠ

때 아닌 오해를 받는 가운데, 얼마 안 가  ‘그래. 아줌마 덕질 잘하지..?’ 하며 받아주는 수플레들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는…….

‘어우. 순간 뜨끔했네.’

요즘 어린 애들은 정말 예리하다며 숨을 죽이는 수플레들이 있었다.

*   *   *

다음 날.

우리가 출연했던 PBS의 가요제전이 최근 6년 중에서 최고 시청률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PBS 가요제전 시청률 대박 ‘13.8%’, 작년보다 ‘4%’ 올랐다

-09년 이후 최고 시청률, PBS 가요제전

-연말 가요제 성적표, HBS는 울고 PBS는 웃었다

기사들을 보면 명곡단의 흥행과 더불어 옛날 노래를 부르는 스페셜 무대로 그간 아이돌 잔치가 되어왔던 연말가요제에 새로운 시청자 층이 유입된 덕이라고 했다.

“그리고 올해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올해의 아이돌 1위로 꼽힌 ‘뉴블랙’의 영향도 있다.”

“흐힛.”

“으하핫!”

리혁이가 읽어 주는 기사에 우리가 꺄르륵 하며 좋아했다.

“빈말이어도 좋긴 하네.”

“그니까여.”

실제로는 우리 영향이 그 정도로 크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민기 형이 말했다.

“영향이 꽤 있을걸.”

“네?”

“실장님이 오늘 PBS에서 온 전화를 받았는데, 실제로 너희가 시청률에 영향이 있었다더라고.”

“…진짜요?”

상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 나왔을 때 소폭으로 증가하기도 했는데, 끝나고 시청률이 꽤 내려갔다더라.”

“어? 왜요?”

TNT나 틴스피릿이 뒤에 한참 무대가 있었는데 왜들 그랬지.

설마 우리 보려고 가요제전을 튼 건가 생각을 할 때.

“몇몇 사람들이 너희 무대를 끝이라고 생각했나 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그만 웃고 말았다.

TNT나 틴스피릿 등에 잘 모르는 연배의 시청자들이 ‘뉴블랙이네’ 하며 껐다는 이야기인 듯했다.

“뭔가 웃프네여.”

사람들이 요즘 아이돌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긴 웃지 못할 해프닝 같았다.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막내의 말에 동조했다.

“어쨌거나 그 덕분에 우리가 좋은 대접을 받는 거긴 하네.”

“맞아요. 14년 TBC 연말가요제에서 우리 진짜 짧게 하고 내려갔잖아요.”

“맞아.”

PBS가 시청률 대박을 터뜨린 덕분인지 TBC도 큐시트의 순서를 살짝 바꾸었다.

원래는 그보다 좀 앞이었는데, 2016년이 되는 새해 자정에 우리 무대가 나오도록.

분량도 약간 늘어난 것 같고.

다 좋았는데…….

“또 왔구나.”

“그리웠어여. 저 빨간 문과 파랑 요괴 동상들.”

예전에 주세한 오프닝을 촬영한 바 있는 상암동 TBC 앞의 전경이 차창 밖으로 나타났다.

아직까지 눈발이 흩날리는 바깥 날씨.

시베리아의 쓴맛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날에…….

“행복하다. 우린 행복하다.”

“야외무대 춥지 않다. 춥지 않다.”

상암동 TBC 사옥 앞에 특설된 야외무대에 다시 한 번 당첨이 됐다.

상암동 야외무대와 일산에 있는 실내무대로 나눠서 진행하는 TBC 연말가요제.

올해는 성공했으니 따스한 실내 무대로 불러주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짜잔! 축하합니다! 야외무대의 메인 퍼포머 당첨!’

……이런 느낌으로 연락이 왔다.

한곳에서만 주요 가수들을 몰아넣을 수 없기에 야외무대에도 그날의 핵심이 필요한데 그게 바로 우리였다.

바깥에 눈이 내리는 날씨를 보며 한탄하는 동안 우리의 핸드폰이 계속해서 반짝거렸다.

나무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무 [일산 개꿀]

한조 [(한조 님이 기프티콘을 보냈습니다)]

한조 [커피 한잔씩들 해]

유건 [들린다 들려.. 분해하는 소리가 들려]

“으아아아!”

일산 사옥에 당첨되었다며 놀리는 스트릿 보이즈의 톡에 분개할 따름이었다.

분노의 답장을 보낼 때, 내 핸드폰에는 추가 톡이 왔다.

한태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태현 [작년에 보냈던 걸 또 복사해서 보내게 될 줄은 몰랐는데]

한태현 [님 야외? ㅋㅋㅋㅋㅋㅋ]

살포시 차단을 누르고는, 메신저 상태 메시지를 ‘야외 언급시 차단’으로 적었다.

‘외야는 되나요’ 하는 은성이도 차단을 눌렀다.

여기저기서 놀리려고 안달이 난 사람들을 무시하며 바깥을 바라보았다.

“중현아, 창문 좀 열어 봐라.”

“네.”

휘이이이이잉-

어디 설원이 나오는 영화에 들릴 법한 소리와 함께 눈발이 파파팟 날아들어왔다.

“어푸푸!”

지나가던 젊은 커플이 우리를 보고 ‘어!’ 하는 모습에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지호가 환히 웃었다.

“목격한 썰 올려 주세여~!”

“네에에!”

훈훈한 대답을 들으며 다시 창문을 닫았다.

이윽고 오들오들 떠는 모습에 매니저 형들이 물었다.

“많이 추워? 야외무대를 그 정도로 싫어할 줄은 몰랐는데……. 히터라도 준비해 놓을까?”

“아뇨. 그것 때문은 아니고 팬분들 때문에.”

“아.”

“올해는 좀 따뜻한 데서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부분이 조금 아쉬웠다.

야외 특설무대 근처에 도착한 우리는 눈이 그칠 때까지 대기실 안에서 몸을 녹였다.

“어우, 춥다.”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올 만큼 추웠다.

리허설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을 때도, 패딩 밖으로 빠져나온 손과 얼굴, 귀가 꽁꽁 얼어붙는 듯했다.

달달달.

카메라 리허설을 시작하기 전에 중현이를 중심으로 펭귄들처럼 뭉쳤다.

-뉴블랙, 리허설 시작하겠습니다.

“네에!”

-중현 씨, 잠시 숨 좀 작게 쉴게요.

“예.”

포그 머신처럼 콧김을 후우우 뿜어내던 중현이가 작게 내쉬자 우리가 웃었다.

각을 착 맞춘 리허설을 마친 후.

구경하던 팬들에게 손을 흔든 우리는 대기실로 돌아갔다.

지금부터 자정에 있을 무대까지는 별다른 일이 없으면 개인 시간이기에 저마다 가방을 열었다.

“손 좀 풀고.”

따스한 손난로를 이리저리 굴려가며 손을 풀고는 프린트를 한 움큼씩 꺼내들었다.

1월에 컴백하고 나서 음악방송 출연 대신에 진행할 각 지역의 소극장 투어.

그 공연의 티켓 추첨에 당첨된 사연들이었다.

물론 당첨자들은 아직 소극장 투어에 대한 사실을 모르지만 알면 기뻐하지 않을까 싶다.

“와. 저는 이렇게 다 서울까지 거리가 먼지 몰랐어여.”

“그러니까 이번엔 찾아가는 서비스로 우리가 가는 거지.”

예를 들어 전북은 전주라든가, 군산이라든가.

각 지역에 있는 여러 도시들을 찾아가 그곳과 근처에 있는 수플레들과 만날 예정이었다.

낮에는 유명한 먹거리들을 먹고, 밤에는 팬들을 만나고. 그야말로 완벽한 일정이었다.

중현이가 사연을 읽었다.

“오빠들을 만나고 제 겨울이 달라졌어요.”

“오.”

“수플레 빵을 먹고 살이 3kg이 쪘거든요. 저의 복부에 찾아온 지방 친구들 덕에 올 겨울은 따스하게 보낼 거 같아요.”

“……이건 우리가 잘못했네.”

비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공연할 때, 이벤트로 몇몇 사연은 골라서 읽어 줘야겠어요.”

“그래야겠어. 이분도 좀 만나서 사과드리고.”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동생들과 함께 이번 공연 이벤트에 쓰일 사연들을 선정하기 시작했다.

2015년의 마지막.

한 해가 끝나고 있는 동안 우리의 컴백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오후 11시 55분.

새해를 앞둔 뜨거운 열기가 관객석을 감돈 가운데, 우리가 무대 위에 올랐다.

-네, 드디어 2016! 병신년 새해가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임진각에서 열릴 새해 타종을 함께 해 주기 위해 이 자리에 많은 스타들을 모셨는데요!

MC들이 허연 입김을 뿜어내는 가운데, 그 뒤에 서 있는 가수들이 오들오들 떨었다.

‘어우. 추워.’

근처에서 푸근한 미소를 짓고 있는 스칼렛 멤버들의 털코트 의상이 탐났다.

아까 지호가 도플라밍고인가 하는 캐릭터 같다며 놀렸다고 한 대 맞았는데, 진짜 똑같긴 했다.

반면에 정장 류의 의상을 입고 있는 우리는 오들오들 떨릴 뿐이었다.

-잠깐 인터뷰를 나눠볼까요?

걸그룹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던 데이드림의 준이 우리에게 성큼성큼 걸어와 마이크를 내밀었다.

-와우!

“예. 와우!”

-뉴블랙!

“예. 뉴블랙!”

공손하게 인사한 우리가 ‘와우!’ 하고 답하면서 웃음이 번졌다.

야외 현장에 모인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는 가운데, 우리가 카메라에다 브이를 하거나 손을 흔들었다.

-올해 정말 바쁘셨잖아요. 정말 예능부터 광고까지, 뉴블랙이 접수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어요.

올해 소감이 어떠냐는 질문에 내가 마이크를 잡았다.

“정말 2015년은 저희가 많은 사랑을 받았던 해인 것 같습니다. 믿기지 않는 일들도 많았고.”

“맞슴미다.”

“저희에게 행복한 일만 가득한 한 해였던 것 같아요.”

“맞슴미다.”

코맹맹이가 된 동생들이 내 신도들처럼 두 손을 모은 채 ‘맞슴미다’ 하는 모습에 주변 가수들이 웃었다.

막내가 끼어들어 마이크에 외쳤다.

“수플레에에!”

-와아아아아!

“올 한 해 함께여서 더할 나위 없었어요! 해피 뉴 이어!”

지호의 인사에 우리도 같이 손을 흔들었다.

아까부터 ‘더할 나위, 더할 나위’ 하면서 입에 익도록 반복한 막내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원숭이 띠인 92년생 가수들에 대한 인터뷰가 지난 후.

-네! 59분 50초! 10초 카운트다운 하겠습니다!

-10!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 위로 새해에 대한 설렘이 가득 떠올랐다.

가슴이 콩닥거렸다.

“5!”

동생들과 함께 카운트다운에 동참하는 가운데, 중계 화면으로 임진각의 화면이 나왔다.

비주가 ‘우리 소원 빌어요. 소원’ 하면서 속삭였다.

“2!”

“1!”

대앵-

묵직한 종소리가 연거푸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미리 설치된 불꽃놀이가 하늘에 팡! 팡! 소리를 내며 퍼지는 가운데 동생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웃었다.

-드디어 201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MC가 흥분한 목소리로 멘트를 하는 가운데, 중얼중얼하던 중현이가 물었다.

“형은 소원 빌었어요?”

“아니.”

올해는 소원을 빌지 않았다.

“지금까지 원했던 소원들을 다 이루었으니까.”

“뻥 치지 말아요. 타이밍 놓쳤죠?”

“응…….”

불꽃이 터지는 밤하늘을 아련하게 바라보는 내 모습에 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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