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54화
갑작스러운 사간 피디님의 영상에 숙소가 술렁였다.
“큰일났다.”
“이거 어떻게 해야 돼여? 형들? 저분 진짜 지구 끝까지 쫓아오는 분이잖아여.”
“처음에는 우주 형을 데려가더니 이젠 우리까지…….”
내가 간다고 했을 때는 꺄르륵 하던 녀석들이 자기 일이 되니 근심 투성이었다.
중현이가 바닥에 쪼그려 앉아 USB를 살폈다.
“중현아. 뭐 하니?”
“안에 뭐가 없는지 살펴보고 있어요. 혹시 영상을 재생하면 신호가 가는 장치라든가.”
“이게 무슨 007도 아니고. 그런…….”
바로 그 순간, 내 핸드폰 화면이 환하게 밝아 올랐다.
메신저 알림창이었다.
「친구로 등록되지 않은 사용자입니다.」
도준기 [우주 씨]
도준기 [영상 보셨죠]
……진짜였나?
내가 얼어붙어서 어버버 하자 동생들이 내 핸드폰 화면으로 시선을 모았다.
그러곤 식겁했다.
“지, 진짜로 알고 있어여!”
“으아아! 나 이 피디님 너무 싫어!”
“뭐야. 중현이 형 말이 진짜였어요?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거였나?”
동생들이 난리법석을 피우는 가운데 쪼그려 앉아 USB를 들고 있는 중현이가 멈칫했다.
그러곤 눈을 크게 뜨더니 USB와 내 핸드폰을 번갈아 보았다.
“오오!”
중현이가 USB를 첨단 장비라도 되는 양 손에 고이 쥐는 가운데 동생들이 내 뒤로 숨었다.
“어휴, 이 바보들.”
내 말에 동생들이 항의했다.
“저 바보 아니에요. 형.”
“제가 바보면 형은 바보 형이게여.”
“다른 건 모르겠는데 왕지호랑 나랑 퉁 쳐서 묶지만 마요. 얘는 진짜 바보고 난 아니니까.”
못난이들의 아우성을 물리치며 내가 핸드폰을 들어 보였다.
“상식적으로 도 피디님이 저기다가 스파이웨어 같은 걸 숨겨놨을 리가 없잖아.”
“그럼요?”
“당연히 한국가요대상 끝나는 시간이랑 차 막히는 거, 우리 숙소까지 도착할 시간을 계산해서, 이때쯤 봤겠구나 하고 보내신 거지.”
“아니, 그게 더 무서운 거잖아요?!”
리혁이가 황당해하는 동안, 아니나 다를까.
도 피디님이 ‘이 시간이면 도착했을 거 같은데’ 라고 추가로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봤지?”
“……와. 진짜 보기만 해도 엮이기 싫어여.”
지호가 몸서리를 칠 때, 비주가 날 올려다보며 물었다.
“형. 이제 우리 어떻게 해야 돼요?”
“글쎄.”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경험자로서 말하자면… 우리는 당분간 안 나가게 될 거야.”
“정말요?”
“응. 아마 입질이 살살 들어오기 시작하다가, 우리가 팔짝 뛰면서 절대 안 한다고 하게 될 거고.”
“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전개 같은데?”
그야 당연히 내 경험담이니까.
14년 봄부터 ‘사나이가 간다’의 피디님이 이리 온, 이리 온 하며 손짓을 보내고 있었지.
내가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다가 쇼케이스 같은 데서 축하 화환을 계속 보내게 될 거고. 팬들이 오오 하고. 주변에서도 어울린다~ 나가 봐! 이러기 시작할 거고. 마침내는 상관없는 촬영장까지 찾아와서 구애를……!”
“진정해요. 입에서 피 토하겠네.”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아니. 진짜.”
리혁이가 내 어깨를 토닥이듯 팍팍 쳤지만 화가 울컥 치밀었다.
“내가 그때만 생각하면 화가 막… 내가 울화통이 증말!”
“형, 이웃분들 주무시고 계실 시간이에요.”
비주의 조곤조곤한 한 마디에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작년 하반기에 나의 인지도를 미친 듯이 끌어올린 방송이라 서로에게 윈윈이긴 했지만, 그때의 섭외 과정은 지금 생각해도 슬픔과 괴로움 그 자체였다.
머리를 쓸어 넘기며 결론을 말했다.
“어쨌거나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 그거지.”
“예상했던 대로 결론이 이상한 데로 튀네요.”
“이건 운명이야. 내가 겪어 봐서 알아. 언젠가는 나가게 될 테니까 미리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 둬야지.”
“으이이, 그럼 오늘부터 새우잡이 미튜브 봐야겠네여…….”
솔직히 우리가 힘들 뿐이지, 매번 시청률 하나는 기깔나게 뽑는 걸로 유명한 연출자기도 하고.
당시 사간도 다른 연예인들이 인지도를 얻으려고 나가고 싶어서 안달이 난 방송이기도 했다.
이번에 개편하는 프로그램도 엄청 잘 뽑으시겠지.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대중성 강화 노선에 큰 도움이 될 터였다. 물론 엄청나게 힘들겠지만…….
비주가 촉촉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형, 그럼 우리 출연 계약서 쓰러 가야 돼요?”
“아니.”
내가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피할 수 있을 때까지 피해 봐야지.”
“어떻게요?”
“답장을 최대한 늦게.”
“늦게요?”
“응. 이대로 읽씹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니까. 답장을 내일 하는 거야.”
리혁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그건 그냥 답장을 늦게 하는 거잖아요?”
“아니지. 오늘 하루 동안은 우리가 이긴 거지.”
“그건 정신승리고요.”
“……그럼 네가 답장해 보든가. 네가 우리의 리더라고 생각하고 답장을 해 봐.”
리혁이가 피식하며 내게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대범한 척하고 있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건네줄 때 느껴지는 상대의 잔떨림을.
우리가 침을 꿀꺽 삼키고 바라볼 때.
“……이게 뭐가 어렵다고.”
리혁이가 손을 달달 떨며 자판을 두드렸다.
정중하게 ‘잘 보았고 감사드리고, 시간이 되면 나가겠다’ 하는 정석적인 돌려 말하기 거절이었다.
곧바로 답장이 돌아왔다.
도준기 [그럼 시간 될 때 바로 미팅 들어갈까요?]
도준기 [내가 분량 엄청 뽑아 줄게]
도준기 [12월까지 되는 시간 말해 봐요]
리혁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는 가운데 지호가 감탄했다.
“와. 진짜 이분 인간 그린라이트네여. 머릿속에 빨간불이 없으신 거 같아여.”
“진짜 직진남이시네. 좌회전이나 우회전도 안 하실 듯.”
“근데 이건 리혁이가 새침하게 거절해서 그런 거 아닐까?”
“그러네여. 누가 거절하는데 저렇게 여운 가득한 이모티콘을 남겨여?”
멤버들의 철저한 분석에 리혁이가 발을 동동 굴렀다.
“다들 농담 좀 그만하고 도와 줘요! 이거 어떻게 해요? 지금 이걸…….”
“줘 봐.”
내가 핸드폰을 가져가서 자판을 톡톡 두드렸다.
몇 번의 우아한 대화 끝에 도 피디님이 ‘크윽, 오늘은 물러나지’ 하는 악당처럼 사라지셨다.
“대박…….”
동생들이 감탄하는 분위기 속에서 여전히 으으, 하며 질색하는 리혁이에게 물었다.
“다음에 또 답장해 볼래?”
“아뇨! 절대 안 할 거예요!”
이어서 그냥 네가 평생 리더 해먹으라는 리혁이의 말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 * *
마침내 금요일.
우리의 소극장 투어 ‘만남’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어서들 와요.”
담당 피디님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경기도 수원.
새벽부터 차를 달려서 도착한 곳은 바로 경기인천 지역을 전담하는 PBS의 경인지국이었다.
“우와-”
뉴스를 진행하는 스튜디오를 보면서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스탠바이까지 시간이 한참 남은 덕분인지 아직 스튜디오 내부의 공기는 느슨한 편이었다.
우리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지역 뉴스를 하는 거네요.”
“네.”
“우와아…….”
뉴스 하는 곳은 처음 와 본다는 우리의 말에 담당 피디님이 웃으며 스튜디오 내부를 잠깐 안내해 주었다.
살짝 긴장한 기색이 보였는지 상대가 말했다.
“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래도 뉴스인데…….”
“5분 정도 짤막하게 인터뷰 하고 가실 거라서, 갑자기 큰 말실수만 안 한다면 아무 문제 없을 거예요.”
말실수라는 말에 우리가 중현이를 바라보았다.
‘그대 입.’
‘오키.’
녀석이 OK 사인을 보내며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하자, 피디님이 호기심을 보였다.
“중현 씨는 왜…?”
“이 친구가 래퍼인데 말을 잘 못해요.”
커피를 홀짝이던 뉴스 피디님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우리를 빈 방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지역 뉴스 맡은 이후로 이렇게 게스트가 오는 건 처음이네요. 아직도 신기해요.”
“사실 저희도 출연이 성사돼서 너무 신기했어요.”
회사에서 이벤트성으로 ‘지역 뉴스도 한 번 나가보는 건 어때?’ 하며 준비한 기획인데, 정말 OK가 떨어질 줄은 몰랐다.
물론 오후 9시같이 웅장한 뉴스 타임은 아니고.
오전 6시부터 8시까지 생활 밀착형 뉴스로 시청자와 만나는 PBS의 ‘모닝 투데이’였다.
여의도에 PBS 본사에서 전국으로 중계되는 뉴스를 내보낸 후 지역 뉴스가 나오는데 우리가 나올 곳이 바로 그러한 지역 뉴스 타임이었다.
“시간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기 때문에 간단한 질문 한두 가지만 하고 끝날 거예요.”
“네, 준비해 왔어요.”
“그리고… 아, 저기 오고 계시네.”
간단한 인터뷰 스크립트를 훑어보고 있을 때, 다른 인물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활기차게 인사한 상대는 바로 경인지역의 기상정보를 담당하고 있는 기상 캐스터였다.
이내 비하인드 캠을 향해서도 손을 흔들어 주는 상대에게 말했다.
“안 그래도 업무 때문에 바쁘실 텐데,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저도 미튜브 잘 보고 있어요.”
“우와. 저희 팬이신가요?”
“아뇨. 구독자예요.”
팬은 아니고 구독자라는 말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수플레들을 위한 비하인드 캠을 찍고 있는 핸디캠을 향해 우와아 하며 말했다.
“네, 저희 뉴블랙이 오늘 PBS 모닝 투데이, 경인지역 뉴스에 초대석 인터뷰를 하러 나왔는데요.”
“오늘 일일 기상 캐스터에 도전해 보려고 해여.”
이윽고 상대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하자, 기상 캐스터가 웃으며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안녕하세요. 기상 캐스터 정원영입니다.”
“먼저 오늘 시간 내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캐스터님.”
“아유, 아닙니다.”
“자, 그러면 군밤, 군고구마?”
“뉴블랙.”
“와아아아아!”
환영인사를 마친 후.
사무실에 가서 잠깐 직업 체험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게 기상청에서 오는 예보문이라는 거예요. 오전 5시에 나오게 되는 건데.”
“오오.”
“이걸 가지고 제가 원고를 쓰고, 그래픽을 첨부…….”
“우와아!”
뭘 하든 신기하다며 난리법석인 우리의 리액션 덕분인지 상대가 민망해하며 웃었다.
대략적인 날씨 예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배운 후.
“이게 크로마키라는 건데요.”
“이거, 저희도 알아여!”
우리 막내가 ‘뮤비에서 써 봤어여!’ 하는 말에 우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크로마키.
대개 파란색 판으로 CG를 합성할 때 쓰는 건데, 뮤비 촬영을 하는 동안 종종 써 본 적이 있었다.
캐스터가 시범을 보이며 말했다.
“다들 보셔서 아시겠지만 여기 이렇게 서서, 손으로 짚어 가면서 방송을 진행하시면 되세요.”
“아하.”
“다섯 중에서 누가 한다고 했죠?”
내가 손을 들기도 전에 동생들이 나를 가리켰다.
“뭐든지 처음 하는데 막 30년차처럼 보여여. 노 젓는 걸 할 때도 은퇴한 뱃사공처럼 젓고.”
“되게 잘해요.”
“예능에서 빵 만들 때도, 거기 파티시에 님이 유럽의 70대 마에스트로처럼 보인다고 했어요.”
자랑인지 욕인지 모를 말을 하는 동생들 때문에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웃음이 터졌다.
멀찍이 선 피디님도 나를 흘깃 보더니 매니저 형에게 뭐라고 묻고.
리허설을 위해 대기해 있던 카메라 감독님도 호기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정원영 캐스터가 날 불렀다.
“그럼 우주 씨, 이리로 오세요.”
“네.”
“대충 간격을… 네. 거기요. 어머. 딱 적절하게 잡으셨다.”
“무대할 때 습관이 되어서요.”
매일 카메라에 나오는 안무 간격을 맞추는 게 일이다 보니 딱 적절하게 거리를 벌렸다.
그러곤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일단 자세를 잡아 볼까요?”
“네.”
어제 미리 연습해 왔던 대로, 허리를 부드럽게 펴고 시청자들에게 신뢰감을 줄 법한 미소를 지었다.
“……?”
나를 코칭해 주려던 캐스터님이 눈을 멀뚱멀뚱 떴다.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물었다.
“어떤가요?”
“그, 진짜 완벽하네요. 거기서 딱 움직이지 말고. 일단 원고의 지문부터 한 번 읊어 볼게요.”
“네.”
카메라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날씨가 서서히 풀리고 있는 이번 주말, 안타깝게도 미세먼지 소식 전해드려야겠는데요. 내일은 중부 지역의 먼지 수준이….”
내게 일임된 분량을 하고 나서 자연스럽게 손짓을 하자, 캐스터가 바로 다음 지문을 이어받았다.
스탭들이 ‘잘하네’ 하는 주고받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
“날씨였습니다.”
마무리를 하고 감독님이 OK 사인을 보내자 동생들이 물개박수를 치며 우와아 했다.
핸드폰 카메라로 찍고 있던 비주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캐스터가 놀란 눈으로 말했다.
“처음 하는 거 맞아요? 진짜 잘하시네요.”
“감사합니다.”
두어 번 정도 연습하고 나서 곧바로 떨어진 합격 통보에 내가 웃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연습을 하면 할수록 동생들은 물론이고 스탭들도 오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캐스터도 뭔가 입가를 꿈틀하고 있고.
“왜 그러세요?”
“아니에요. 뭔가…….”
“……?”
“아니에요. 아무것도.”
다들 묘한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뭐지?
의문이 들어서 주변 스탭들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다들 ‘어…’ 하다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뭐지?”
여전히 의문을 품은 가운데.
뉴스 스튜디오가 지역 뉴스 타임을 앞두고 분주하게 바빠지기 시작했다.
* * *
오전 7시 30분.
PBS의 아침 뉴스 ‘모닝 투데이’가 지역 뉴스 시간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아이고.”
경기도 양평군.
새벽부터 일어나 닭장에 있는 닭들에게 모이를 주고 온 노인이 허리를 두드리며 앉았다.
‘오늘은 뭐가 있나.’
평소처럼 뉴스를 보고 있는데, 테레비에서 평소와는 다른 코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진행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때로는 예기치 않은 손님이 방문해서 큰 즐거움을 주기도 하는데요.
생뚱맞은 멘트에 노인이 눈을 깜빡였다.
-오늘 PBS 모닝 투데이 경인에서는 특별한 손님을 모셔 보려고 합니다. 요즘 장안의 화제라는 인기 그룹, 뉴블랙입니다!
스튜디오 전체로 화면이 넓어지면서 단정한 인상의 아이돌 멤버들이 손뼉을 치고 있었다.
공영방송 특유의 잔잔한 분위기를 의식한 것인지 어딘가 얌전해 보이는 이들이었다.
‘이건 누구인 건지…….’
어디서 이름을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얼굴도 낯이 익었다.
목소리가 익숙한 것 같기도 한데, 도통 테레비를 보지 않으며 사는 편이라 누군지 몰랐다.
그저 아가들이 귀엽게 생겼다는 생각만 들 뿐.
-안녕하세요. 뉴블랙의 리더 우주라고 합니다.
하나씩 소개가 이어지는 가운데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영감탱이 젊었을 적이랑 닮았네.’
최상의 칭찬이 나오는 외모에 눈길을 빼앗긴 것도 잠시.
‘쟤들은 대체 누구여’ 하는 의문으로 바라보고 있던 그녀에게 낯익은 게 들려왔다.
-정말 세대를 아우르는 노래를 불렀다고 할 수 있겠네요. 젊은 세대의 유행곡부터 명곡단까지. 괜찮으시다면 덕순아, 한 소절 들려주시겠어요?
-네. 당연하죠~!
이내 흥겹게 ‘덕순아’의 멜로디를 부르는 다섯 멤버들의 목소리에 그녀가 아 했다.
‘걔네구만.’
마을회관에서 종종 들었던 노래라서 알고 있었다.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지만.
걔네가 얘네구나 하는 시선으로 신기함을 느낄 때, 5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는 끝을 향해 달려갔다.
-한 가지 더 하실 말씀이 있다고요?
-네, 지금까지 들으셨던 저희의 겨울 앨범 이야기와 함께 전해드릴 특별한 소식이 하나 더 있는데요.
-저희 뉴블랙이 바로바로, PBS1에서 방영되는 <지금 내 고향은>에 다음 주부터 출연하니까요.
‘많이 많이 사랑해 주세요!’ 하는 말과 함께 5분가량 이어졌던 인터뷰가 끝을 맺었다.
‘유명한 애들인가 보네.’
뉴스에도 나오고, <지금 내 고향은>에 나온다는 소식에 유명한 가수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 다음은 날씨인데요. 뉴블랙의 우주 씨가 오늘의 일일 캐스터로 함께 해 주셨습니다.
곧바로 딩디리딩 하는 청량한 BGM이 흘러나오며 ‘오늘의 날씨’라는 로고가 지나갔다.
일주일 날씨가 표시된 화면 앞에 남녀가 서 있다.
하나는 기상 캐스터고, 하나는 방금까지 인터뷰를 진행했던 밤색 코트 차림의 남자였다.
마치 베테랑 기상 캐스터처럼 자연스럽게 방송을 하는 모습에 멈칫했다.
“……옷은 같은데.”
뭔가 느낌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는 것도 그렇고.
그런 느낌을 받으며 ‘사람이 또 달라 보이네’ 하고 있을 때, 뉴블랙이 출연했던 뉴스는 끝을 맺고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시간 후.
“할머니, 나 일어났어요.”
“일어났냐.”
2층 계단에서 손녀가 목에 수건을 감은 채 내려오고 있었다.
“왜 이렇게 일찍 씻었냐.”
“오늘 구경하러 갈 곳도 있고 해서, 맞다. 나 저녁에 잠깐 공연 보러 갔다 온다고 했나?”
“했어.”
그런 대화가 이어질 때, 방금 전에 TV에서 봤던 청년들을 떠올린 할머니가 말을 꺼냈다.
“참, 너 뉴블랙인지 뭔지 하는 애들 아냐?”
“……어?”
“테레비 뉴스에 나왔는데 유명한 애들인가 보더라. 내 고향에도 나온다고 그러고. 뭐 전국 방방 곳곳에서 노래 부른다고.”
“……?”
“이쁘게들 생겼더라. 근데 일기 예보하는 애는 좀…….”
이어지는 말을 듣던 맞은편의 손녀.
정체를 숨기고 있던 수플레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뉴스? 일기 예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에 인터넷을 켜 봤다.
‘뉴스에 애들이 나왔다고?’
팬들이 모인 커뮤니티에는 이미 ‘뉴블랙_PBS 모닝 투데이 Cut’이라는 편집본 링크도 있고.
뭔지는 모르겠지만 우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실시간 검색어에도 ‘뉴블랙 뉴스’라고 떠 있고.
“……?”
가슴이 콩닥거렸다.
대개 내 가수가 지상파 뉴스에 나왔다고 하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게 팬이라지만 경우가 달랐다.
‘뭐지. 내가 뭘 놓친 거지?’
재미있는 것을 놓쳤다는 생각에 손가락을 톡톡 움직였다.
보아하니 경기도, 인천 지역에 방영되는 PBS의 아침 뉴스에 뉴블랙이 잠깐 나왔다는 모양이었다.
간단하게 노래도 잠시 부르고. 새해 인사도 하고.
그리고 팬들 사이에서 가장 관심을 받고 있는 영상이 미튜브에 올라와 있었다.
일기 예보.
호기심 넘치는 마음으로 누르자 곧이어 화면에 우주와 기상 캐스터가 나타났다.
“푸핫!”
처음에는 진지하게 바라보다가 이내 뉴블랙의 리더 때문에 자꾸만 웃음이 흘러나왔다.
‘뭐야. 왜 이렇게 갑자기 늙었어?’
아무도 알지 못하는 사실이었지만, 리더가 자료조사를 할 때 유명 남자 기상 캐스터들을 따라한 탓이었다.
대부분 90년대 뉴스에서 활약했던 중년 캐스터들.
기상 캐스터가 뭐라고 할 때마다 옆에 선 우주는 자상한 중년 남자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금까지.
-날씨였습니다.
푸근한 중년 신사의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는 우주의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손녀가 할머니에게 폰을 보여 주며 물었다.
“할머니. 아까 얘 말하는 거지?”
“응.”
“얘가 어땠는데?”
“막 보다가, 갑자기 저 얼굴 위로 느이 할아버지가 보이더라고.”
그래서 그런지 특별하게 정감이 간다는 할머니의 대답에 손녀가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