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55화
내가 이럴 줄 알았다.
“흐히힛!”
“흐힉! 흐히힉!”
온갖 요상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차창을 바라보았다.
황량한 논밭과 비닐하우스들이 슝슝 지나갔다.
겨울철 풍경이라 저리도 쓸쓸해 보이는 걸까. 아니면 내 기분 때문에 그런 것일까.
“형들, 이거 봐여. 낯선 아이돌에게서 익숙한 중년의 향기가 느껴진다.”
“흐하핫!”
“좋아요 눌러, 어서.”
일기예보 미튜브 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보며 1분 간격으로 빵 터지는 동생들이었다.
“흐하하하!”
지금도 물개박수를 치며 웃음을 뽑아내는 중이었다.
내가 한숨을 쉬었다.
“일기예보 하나 한 건데 그게 그렇게 재미있어?”
“일기예보는 재미 없져.”
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대가 놀림 당하는 것은 언제나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이랍니다.”
“그거 맞다.”
“예이, 중현이 형 하이파이브!”
자기들끼리 손뼉을 마주치며 좋아하는 동생들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곤 옆자리에서 댓글창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비주의 폰을 보았다.
-40대 아저씨가 우리 꼬꼬마 친구들~ 하하핫 하는 거 같음
-이번 앨범이 겨울이라 그런가? 쌍팔년도 기상예보 같음
-울 아빠 보여주니까 되게 90년대 같다고 좋아했음ㅋㅋㅋㅋ 옛날에 피아노 bgm 나오면서 했던 일기예보가 이런 컨셉이었다고
-처음 봤을 땐 진짜 어려보인다고 생각했는데 보면 볼수록 늙은이인 우리애..☆
-선우주 특) 이제 막 23살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리혁이가 잔뜩 비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말했다.
“그러게 누가 표정 연습을 그렇게 나이 든 분들을 보고 따라 하래요. 남자 캐스터 분들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아니. 요즘 분들도 있긴 한데…….”
내가 헛웃음을 보였다.
“유명한 분들이 다 90년대에 활동한 분들인 걸 어떡해.”
“그래도 요즘 걸 봐야죠.”
“최신 소설이 나온다고 고전 소설이 소용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
“……묘하게 설득력이 있네요.”
기왕이면 더 잘하고 싶어서 유명한 캐스터들만 골랐는데 하필이면 다 옛날 분들이었다.
“여자 캐스터 분들 보고도 연습을 해 보긴 했는데, 거울로 보니까 영 아니어서.”
“어떤데여?”
“봐봐. 내가 안 한 이유가 다 있어.”
궁금해하는 동생들에게 시범을 보여 주었다.
생긋 웃으며.
“오늘의 날씨입니다. 시베리아 고기압의 영향으로…….”
“오……!”
동생들이 감탄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단아하다.”
“곱네. 고와.”
“진짜 우아하네여. 되게 날씨 소개하는 중전 마마 같아여.”
아무래도 내 얼굴에 안 어울려서 포기한 버전인데, 멤버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았다.
차라리 이걸 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 때.
“이걸로 하지 그랬어여.”
“더 나아?”
“아녀. 지금보다 더 놀릴 수 있었을 텐데. 아아악!”
막내를 응징하는 가운데 리혁이가 결론을 내렸다.
“결국엔 그거네요. 적당히 준비했으면 엄청 잘했다고 칭찬 받았을 텐데 괜히 최고가 되겠다고 나서서.”
“야.”
“그렇다.”
그때 뒷좌석에 앉아있던 중현이가 성우 톤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일기 예보로 인해 젊은 청년이 중년으로 순식간에 탈바꿈한 놀라운 사건. 그것은 아마도 그의 과욕이 불러온 비극은 아니었을까.”
“아아아! 서프라이즈 톤으로 말하지 말라고!”
“그럼 이만 뚠뚠.”
푸근하게 웃으며 퇴장하는 중현이의 모습에 동생들이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놀릴 거리 생겼다며 신난 녀석들의 틈바귀에서 그저 나만 환장할 뿐.
* * *
차량을 달려서 도착한 곳은 경기도의 어느 대형 목장이었다.
젖소 두 마리가 ‘Welcome’하며 환영의 춤을 추고 있는 간판을 지나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오, 스멜.”
중현이가 내리자마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좋네요. 이 냄새.”
“으워어억…….”
내리자마자 리혁이가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워낙 예민한 탓인지 계속 헛구역질을 하던 녀석의 눈에 눈물이 찔끔찔끔 고여 있었다.
“괜찮아? 넌 차에서 쉬고 있을래?”
“신경 쓰지 마요. 그냥 빈속이라 그런 거니까.”
“안에 들어가면 냄새 장난 아닐 텐데…….”
“됐어요.”
리혁이가 손사래를 치며 습하습하 하기 시작했다. 축사 냄새에 적응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괜찮은데.
우리가 차량에 내려서 몸을 풀고 있는 동안, 아주 멀리서 사람들이 달려왔다.
“안녕하세요오!”
패딩 점퍼를 걸친 여자가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하하하하하!”
이상한 사람의 등장에 우리가 뒷걸음질을 칠 때, 중현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허어…!”
“왜 그래? 중현아, 저 분이 누구인데?”
“내 고향 리포터님이에요!”
옷차림을 정돈한다며 점퍼의 지퍼를 목 끝까지 올리는 래퍼의 모습에 우리가 웃었다.
얼마 안 가 얼굴이 가까워지면서 우리도 상대를 알아보았다.
핑크색 패딩에 파란 청바지를 입고, 서글서글한 웃음을 만면에 가득 지은 사람이었다.
민효진.
<지금 내 고향은>에서 월요일 코너 ‘알아봐요, 우리 농축산물!’을 담당하는 리포터였다.
“우리 뉴블랙 조카들!”
“안녕하세요! 뉴블랙입…”
“아이! 아이! 예의 안 차려도 돼요. 내가 진짜 너무 보고 싶었어. 팬이야.”
힘차게 악수하며 처음부터 분위기를 확 끌어올리는 리포터였다.
넘치는 에너지에 덩달아 내 기분도 좋아졌다.
민효진 리포터의 손이 중현이에게 향했을 때, 중현이가 바지춤에 손을 슥슥 닦으며 손을 내밀었다.
“저…….”
“응?”
“중학교 때부터 팬이었어요. 리포터님.”
이따가 사인 받아도 되냐는 말에 상대가 ‘?’ 하다가 이내 상황설명을 듣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매니저 형들과 우리가 녹화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했다.
“내가 오히려 부탁한다고 해야지. 분량 뭐 그런 것도 걱정하지 마요! 이미 다 해결된 거니까.”
“네? 왜요?”
“뉴블랙은 얼굴이 분량이야!”
‘이건 틀림없는 진실임’ 하는 리포터의 주장에 우리가 박장대소를 했다.
제작진이 장비를 챙기고 있을 때.
민효진 리포터가 핸디캠을 들고 우리와 자신을 화면에 담았다.
“자, 그럼 오늘 녹화 화이팅 한 번 외쳐봅시다.”
“그럼 저희가 지금 내 고향에 하고, 리포터님이 이어서 뉴블랙이! 하면 다 같이 왔다! 하는 건 어때여?”
“좋네! 자! 그럼!”
“지금 내 고향은?”
“뉴블랙이~”
“왔다아아아아!”
방송용 흥을 끌어올리기 위해 방방 뛰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1월의 겨울 추위에도 몸이 살살 녹는 것을 느끼며 웃을 때, 우리가 핸디캠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것도 방송에 나오나요?”
“아니. 이건 개인 소장용.”
“오호.”
“조카들이 내가 뉴블랙이랑 녹화한다니까, 하도 안 믿어서 이따가 보내 주려고.”
크게 웃는 리포터님의 모습에 비주가 속삭였다.
“저분이랑 우리, 왠지 잘 맞을 거 같아요.”
“같은 생각이야.”
중현이가 팬미팅에 온 팬처럼 어딘가 수줍게 리포터와 대화를 하는 동안 제작진도 나타났다.
단촐한 구성이었다.
구성작가와 카메라맨, 그리고 조연출.
“오늘 녹화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 전에 먼저… 혹시 이따가는 스케줄이 바빠서 못 받을 수도 있으니까. 여기 사인 좀.”
따님이 우리 팬이라며 카메라 감독님이 우리 사인을 받아갔다.
마이크 착용까지 마쳤을 때, 리포터가 활발하게 웃으며 외쳤다.
“그럼 오늘의 슬레이트는 내 고향의 열혈 팬인 김중현 씨가 해 주시겠습니다!”
“와아아아!”
“네. 잠시만요.”
바지춤에 손을 슥슥 문지르던 중현이가 경건한 얼굴로 양손을 들었다.
짝!
녹화 시작을 알리는 소리에 카메라가 돌아갔다.
“네, 안녕하십니까! 전국에 계신 시청자 여러분! 드디어! 우리 <지금 내 고향은>에 산삼보다 귀한 손님이 오셨습니다!”
“둘 셋!”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산삼보다 좋다! 뉴블랙입니다아!”
“어서들 와요! 나인! 나인!”
리포터가 ‘나인’을 입으로 흥얼거리며 춤을 추었고, 우리도 개코원숭이처럼 얼쑤 하며 춤을 추었다.
목장 입구에서 벌어지는 광란의 파티.
조연출과 작가님이 볼펜을 든 상태 그대로 입을 벌리는 동안 우리 매니저들이 ‘원래 그래요’ 하는 입모양을 하는 게 보였다.
“어떤 계기로 나오시게 된 거예요?”
“저희 멤버 중에 중현 씨가 정말 열혈 팬이라서 꼭 나오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번 스페셜 앨범 활동으로 전국 소극장 투어를 계획해서…….”
“아하! 앨범으로 돈을 쓸어 담기 위해 나왔군요!”
“정말 적절한 요약이네요, 감사합니다.”
신곡인 ‘겨울잠’을 부르며 화기애애하게 자기소개까지 한 후.
민효진 리포터가 우리의 옷차림을 가리켰다.
“시작부터 준비가 철저한데요? 점퍼도 그렇고.”
“맞습니다! 오늘 축사 일을 한다고 들어서 신발도 이렇게 편한 걸로 골라왔어요.”
“복장부터 프로다움이 물씬 느껴지네요!”
리포터가 활짝 웃으며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그럼 오늘의 방송 녹화에 들어가기 전에, 내 고향에 임하는 뉴블랙의 포부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춤으로 할까요? 노래로 할까요?”
“뭐든 좋습니다!”
“사실, 왠지 이런 멘트가 나올 것 같아서 저희가 차에서 노래를 만들어 왔어요.”
제작진과 상대가 거리를 벌려준 가운데, 우리가 무대 대형으로 가운데 자세를 잡았다.
“아. 원 투 쓰리 포.”
내가 손가락을 딱 튕기는 것과 함께 동생들이 화음을 맞췄다.
동에 번쩍
중현이가 턱에 양손을 올린 채 해가 두둥실 떠오르는 듯한 안무를 표현했다.
서에 번쩍
지호가 양손가락으로 콕콕 하며 꽃게를 따라했다.
어디든 갈게요
배 타고 겨울바람도 좋고
비닐 하우스도 좋아요
불러만 주신다면 저희 뉴블랙이 갑니다
기억하세요
‘군밤, 군고구마’ 그리고 ‘뉴블랙!’ 하며 우리가 와라락 하며 손을 흔드는 안무에 제작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민효진 리포터가 박수를 쳤다.
“아! 너무 좋다! 너무 좋다!”
“감사합니다.”
“이거 시그널로 써도 되겠는데?”
“정말요? …피디님, 이 노래가 마음에 드신다면 저희 회사로 연락 부탁드릴게요.”
오프닝을 마무리하고는 목장을 향해 걸어갔다.
기왕이면 분량을 뽑을 생각에 내가 웃으며 동요를 선창했다.
“목장길 따라~ 밤길 거닐어~”
“고운 님 함께 집에 오는데~”
리포터와 동생들이 활기찬 표정으로 동참해 주었다.
“스타도라 스타도라 스타도라 품바~ 스타도라 품바 붐붐붐~”
목가적인 풍경에서 미친 듯이 울려 퍼지는 동요에 작가와 조연출이 넋이 나간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효진 씨가 여섯이야…’ 하며 자기들끼리 하는 말이 들렸다.
그렇게 축사가 가까워지자, 리혁이가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우욱……!”
점점 더 커져가는 냄새에 속이 뒤집힌 모양이었다.
다들 시선을 돌리자 리혁이가 싱긋 웃으며 답했다.
“제가 빈속으로 왔더니…….”
센스 있게 상황을 넘기자, 제작진과 리포터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동생들이 목장에 대한 멘트를 하고 있는 동안 내가 대강의 눈짓으로 상황을 물었다.
‘괜찮아? 지금이라도 갈래?’
‘할래요.’
냄새야 참으면 된다는 표정으로 말하기에 내가 미소를 지어 주었다.
내 웃음을 마주한 리혁이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우워어억…….”
“…….”
뭐지. 이 참신한 기분 나쁨은.
목장에 다가서자 50대 남자가 우릴 맞이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옷 안의 깡마른 체구가 드러나는데 엄청 튼튼해 보이는 느낌이다.
“목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 천년 목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상철이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홍보 때문에 그런지 방송용 마이크를 든 축산농가 사장님의 표정이 밝았다.
“자, 들어들 오세요.”
김 사장님이 우릴 안으로 이끌었다.
훅 들어오는 냄새에 리혁이가 눈을 부릅뜰 때, 우리는 축사 안을 둘러보며 놀랐다.
“우와아아!”
검은색과 흰색이 얼룩덜룩한 젖소들.
중앙을 기준으로 울타리가 서로 마주보는 구조로 되어 있고, 그 울타리 사이로 젖소들이 고개를 들이밀어 건초를 씹었다.
“와아.”
정말 딱 익숙한 구조여서 내가 말했다.
“군대 내무반 같네요.”
“……어떻게 그런 감상이 나오는 거예요. 대체?”
“딱 봐요, 내무반이잖아요. 리혁 씨.”
다들 동의해주지 않았다. 조연출과 카메라 감독님만 어딘가 슬픈 눈으로 소들을 바라볼 뿐.
카메라가 축사를 담는 가운데 다 같이 축사 중앙에 섰다.
김 사장님이 말했다.
“오늘 뭐, 일을 도와주신다고 들었는데…….”
“네! 그래서 이렇게 입고 왔습니다!”
“준비가 아주 완벽하네. 정말 철저하게 하고 오셨어.”
“맞아요.”
중현이가 ASMR처럼 소곤소곤 말했다.
“원래 요즘에 저희가 매일 소고기를 먹었는데, 냄새 빼려고 어제부터 소고기를 안 먹었어요.”
“아아. 근데 왜 갑자기 소곤소곤…?”
“소들이 듣고 불쾌할 수도 있잖아요.”
내가 얼떨떨한 얼굴로 물었다.
“황희 정승이야?”
다들 웃음을 터뜨릴 때, 중현이가 고개를 저었다.
“뉘앙스가 있잖아요. 형. 외국 사람이 외국어로 욕해도 뭔가 삘이 오는 것처럼.”
사장님도 턱을 쓰다듬으며 동의했다.
“오호라, 꽤 일리가 있네.”
“그죠?”
“그나저나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신데… 아! 그 화분에 파 키우는 청년이네!”
낙농업 관련 미튜브를 보다 보면 꼭 중현이한테 연결되어서 얼굴을 봤다는 말에 웃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를 알아보는 눈치였다.
한편 황희 정승이 얽힌 이야기에 대한 설명을 하려고 했던 리혁이가 타이밍을 놓치고 시무룩할 때.
민효진 리포터가 생글생글 웃었다.
“사장님! 저희가 이제 어떤 일을 하면 될까요?”
“어려운 거 말고. 여기 빗자루 같은 거 들고 건초를 슥슥 소들 있는 데로 밀어주면 돼요.”
“알겠습니다!”
가운데 모여 있는 건초를 양옆의 젖소들이 있는 쪽으로 쭉쭉 밀어주면 된다는 듯했다.
우리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소들이 엄청 낯을 가리네.”
“그러게요.”
우리가 다가갈 때마다 소들이 건초를 먹다 말고 물러나고는 사람을 유심히 바라보곤 했다.
지호가 물었다.
“여기 보니까 체험 프로그램도 있어여. 그러면 애기들도 자주 오고 하니까 사람을 자주 볼 텐데. 낯을 가리네여.”
“느낌이 다르지 않을까. 우리도 밖에서 모르는 아저씨가 ‘어이!’하면 손 흔들고 그러지만, 그분이 갑자기 집에서 저녁식사 준비해 주면 무섭잖아.”
“역시 일기예보처럼 정확한 설명이네여.”
“…….”
그러는 동안 근처에 서 있던 비주가 건초를 들어서 소심하게 젖소에게 내밀었다.
젖소가 물끄러미 비주를 보더니 고개를 스윽 틀었다.
“……어! 뭐야, 너 왜 나 외면해?”
지호가 그 광경을 요약했다.
“집에 왔더니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된장찌개를 든 숟가락을 들이미는, 그런 상황이네여.”
“그렇지.”
“어때여? 청춘어람이져?”
“글쎄다, 그건 모르겠고 너의 국어 실력이 레전드인 건 알겠구나.”
우리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는 동안 작가님이 고개를 푹 숙이고 몸을 들썩였다.
그 동안 카메라 감독님과 조연출은 극한직업인 듯했다.
“이거 어딜 찍어야 되지? 김 피디. 좀 알려 줘.”
“어어… 잠시만요. 감독님.”
어딜 바라보든 분량이 나오고 있는 탓에 하나라도 놓칠까 싶어서 전전긍긍인 듯했다.
조연출까지 핸디캠을 들고 참여하는 모습에 슬그머니 미소가 나왔다.
지금 녹화를 잘하고 있는 게 확실했…….
“흐아악!”
리혁이가 축축해진 목장갑을 들어 보이며 비명을 질렀다.
“얘, 얘가 나를 하… 할짝했어요! 할짝했다고요!”
“저런.”
“아니, 소 혀가 막 할짝…!”
“좋겠다. 송아지처럼 하얘서 좋아하는 건가.”
“형을 예뻐해 주는 소플레들이에여! 잘해 줘여!”
젖소들에게 묘한 애정 공세를 받는 리혁이를 부러워하고 있을 때.
“옳지.”
카메라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건 바로 우리 셋째였다.
소들이 우리랑 민효진 리포터한테는 낯을 가리는데, 중현이한테는 유독 친근해하는 느낌이었다.
“이거 먹으면 우리 친구인 거야.”
젖소들이 냉큼 중현이가 주는 걸 받아들였다.
지호가 속삭였다.
“모르는 아저씨가 된장찌개를 내밀며 친구하자고 한다.”
“그만해. 이 된장찌개야.”
민효진 리포터와 김 사장님이 오오 하며 말했다.
“소들이 엄청 중현 씨를 친근해하고 있어요!”
“얘들이 낯선 사람을 보면 슬금슬금 물러나기 십상인데… 혹시 자네 소띠인가?”
중현이가 푸근하게 고개를 저었다.
“돼지띠에요.”
“그럴 리가 없는데.”
“제가 태몽에 소가 나왔단 얘기를 듣긴 했어요.”
“어쩐지.”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아무 말 대잔치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일을 마친 리포터와 우리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이윽고 축사 안내가 이어졌다.
“여기가 우유를 짜는 곳인데.”
“오호.”
“손으로 짜는 것도 가능한데, 그러면 시간이 하루 종일 걸려서 착유기를 써야 돼요.”
“손으로 해도 되나여?”
“해 보고 싶어요?”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보고 싶어여.”
리혁이까지 포함해 다들 양손을 꼭 말아 쥔 채 눈을 빛내며 나를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어찌나 씩 웃는지 하얀 이빨들이 반짝반짝하는 듯했다.
“…….”
꿀팁을 전수 받아 최초로 젖소에게서 우유를 짜낸 아이돌이란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내가 하는 모습을 보더니 사장님이 감탄했다.
“잘하네. 사람보다 낫네.”
“그져?”
“……제가 사람이라고요! 사람!”
내 항변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는 동안 장래희망이 농부인 우리 멤버도 합류했는데, 곧장 잘 해내는 모습에 사장님이 만족했다.
“이 그룹은 유망주들 천지네.”
곧이어 기계를 사용하면 어떻게 되는지도 보여 주셨다.
착유기를 꽂으면서 우유가 쭉쭉 빠져나오는 모습에 우리가 역시 현대문물이 짱이라며 감탄했다.
민효진 리포터가 유익한 정보를 위해 질문했다.
“사장님, 그러면 좋은 젖소의 기준은 뭔가요?”
“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마는… 일단은 여기 유방이 있습니다. 이 유방이 클수록 좋고.”
“으음… 예에…….”
“그리고 여기 핏줄 보이죠? 이게 유선인데 이게 도드라지면 좋습니다.”
“아… 예예…….”
뭔가 민망한 느낌이라서 우리가 허공을 보며 대답하자, 민효진 리포터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우유에 대한 설명과 함께 낙농업에 쓰이는 첨단 기술이나 기법에 대한 유익한 정보도 들었다.
축사에서 건초를 씹는 젖소들을 가리키며 사장님이 말했다.
“영국 사람들이 최신 연구를 했는데, 젖소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등을 토닥여 주면.”
“장수하나여?”
“뭐 호르몬이 어찌 돼서 우유가 3.4% 더 나온답니다.”
“아아, 그럼 사장님! 얘는 이름이 뭔가요?”
“걔는 0815.”
이름을 붙여 준다면서 정작 죄수번호 같은 숫자를 붙였다는 얘기에 우리가 빵 터졌다.
리혁이가 오 하며 말했다.
“얘는 광복이라고 하면 되겠네요.”
“다들 그러는데 0815라 해야 지인 줄 알더라고…….”
“아하.”
“외국 출신이라 그런 개념이 없나 보네요.”
중현이의 아무 말 대잔치가 이어진 후 내가 물었다.
“그럼 등도 하루에 한 번씩 토닥여 주시나요?”
“소들이 워낙 많아서 그거까지는…….”
“그럼 이름만 붙였으니까 1.7% 늘은 건가요.”
“……그건 어떻게 알았어요?”
“예?”
나와 사장님이 서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는 모습에 리포터와 멤버들이 웃음이 터졌다.
* * *
한편.
웃음이 터지는 목장에서 제작진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출연자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피디님, 어떡하죠? 코너 메인에 쓸 장면은 아직 찍지도 못했는데.”
“이걸 어떡하지. 1시간 만에 2부까지 나와 버렸어.”
“우린 2부 같은 거 없잖아요? 그리고 다른 코너도 분량을 저 정도로 뽑을 텐데…….”
“꼬였네. 꼬였어.”
전례 없던 사태에 편집부터 시작해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안 올 때.
“우리 그러면 이번엔 축사 청소하는 김에 소들이랑 놀아 봐여! 진짜배기 ‘소 극장’ 투어!”
“오! 진짜네! 소 극장 투어!”
“얼른 가여! 리포터님!”
분량 만들러 간다! 하며 리포터, 목장 주인과 함께 꺄르륵 뛰어가는 뉴블랙의 뒷모습에 스탭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
<지금 내 고향은>에 합류한 이후로 이렇게 기가 빨리는 경험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