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56)화 (356/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56화

시설 견학을 마치고 돌아온 축사.

김 사장님이 외투 소매를 걷으며 목장갑을 꼈다.

“이제 여기 치우는 것만 좀 도와줘요.”

“네에!”

“겨울철 되면 꼬마 친구들이 자꾸 미끄러지고 그래서, 이렇게 미리미리 좀 치워 놔야 돼.”

바닥에 떨어진 건초 부스러기라든가, 잡다한 것들을 도구를 써서 슥슥 밀어냈다.

곧 있으면 목장에 가족 체험을 하러 손님들이 오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리포터와 함께 체험 현장을 취재하면서 그날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뽑을 예정이었다.

‘정말 아이들이 예쁘게 웃고 있죠? 행복한 목장 체험~ 랄랄랄라!’

녹화 내용이 딱딱 정해져 있었다.

생활정보 프로에서 맛집을 소개할 때, 맨 처음에는 가게에 줄을 선 손님들을 보여 주고.

그 뒤에 굉장히 작위적인 표정의 손님들이 ‘캬아! 아주 그냥 죽여줍니다~!’ 하며 엄지를 드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것과 같다고 할까.

민효진 리포터님이 진행하는 월요일의 이 코너도 ‘낯선 곳을 방문한다 - 친환경 농법 등을 배운다 - 체험 코너 일손 돕기’ 등으로 내용이 딱 정해져 있었다.

그중 마지막 순서를 앞두고 축사를 열심히 청소했다.

“가까이 오지 마! 내가 오지 말라고 했어!”

고개를 돌려 보니 리혁이가 양손바닥을 펼친 채, 젖소에게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진짜 하찮았다.

소가 보기에도 웃을 지경이었는지 멀뚱멀뚱 보기만 할 뿐.

“……후우.”

협박이 먹히지 않자 리혁이가 한숨을 쉬고 포기했다.

그러곤 목장갑을 낀 손으로 축사 울타리 아래에 있는 이물질을 빼려고 할 때.

소가 분홍빛 혀로 할짝하려고 시도했다.

“히익!”

리혁이가 온몸의 털이 솟아오른다는 얼굴로 뒤로 물러섰다.

심호흡을 하며 얼굴의 땀을 닦는 모습.

마치 최종보스와 검을 맞댄 후에 숨을 헐떡이는 용사처럼 쓸데없이 비장했다.

“아으이! 저거! 저거 빼야 하는데!”

그러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이물질을 손으로 빼내고 싶어서 몸은 근질근질하는데, 젖소가 핥을까봐 무섭고.

지호가 내 곁에 서서 물었다.

“저 형은 뭐 해여?”

“리혁이 지금 젖소한테 졌소.”

“…….”

“어디 가?”

“그런 개그 치는데 옆에 있다가는 같이 편집될 거 같아서여.”

“야.”

“호~”

윙크를 하고는 마대 자루를 들고 도망치는 막내였다.

다시 리혁이에게 시선을 돌렸을 때, 젖소를 바라보던 리혁이가 뭔가 결심을 한 듯했다.

젖소가 핥는 것보다 더 싫은 것을 각오하는 얼굴로.

“아저씨.”

“…….”

“나 이것 좀 도와줘요.”

나한테 도움을 요청하는 거였구나.

“젖소가 핥는 게 그렇게 무서워?”

“당연히 핥는 건 하나도 안 무섭죠! 그냥 쟤가 나를 언제 핥을지 모르는 게 싫은 거예요.”

“리혁이 성격 참 좋아.”

“……얼른 저거나 빼 줘요.”

내가 다가서자 젖소가 흥 하는 듯한 느낌으로 뒤로 물러섰다.

너한텐 관심 없어, 하는데 왠지 모르게 약이 올랐다.

그 모습에 지호가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마대 자루를 밀고 있던 사장님에게 외쳤다.

“사장님! 저거! 보세여! 저 형이 닭띠라서 그런가 봐여!”

“역시.”

“어머어머! 정말 닭띠라서 그런지 소가 닭 보듯 하네요!”

민효진 리포터님까지 껴서 세 명이 띠별 소 궁합설에 대한 드립을 치기 시작했다.

“느으으…….”

혈액형이나 별자리 성격설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우리 애가 몸을 부르르 떨기에 참으라고 했다.

그 동안 청소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다들 처음에는 깔깔거리며 하다가 막상 일이 길어지니 집중을 하게 된 탓이었다.

슥삭슥삭.

눈을 부릅뜨며 솔로 바닥을 문질문질할 때.

“아이~ 청소만 하니까 너무 조용한데.”

민효진 리포터님이 운을 뗐다.

“노동요 같은 거라도 좀 부르면서 해 볼까요~? 응? 우리 가수도 바로 여기 있는데.”

“좋져! 좋져!”

“사장님! 좋아하는 노래 있으세요?”

김 사장님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평소에 노래를 별로 안 들어서.”

“그럼 지금부터라도 들어보시는 건 어떤가여? 저희 별명이 인간 주크박스예여.”

“좋지.”

“제가 이번에 내 고향 나온다고 트로트 엄청 연습했거든여. 신청곡을 저한테 말씀해 주세여~!”

사장님이 오호 하며 솔을 박박 문질렀다.

“근데 다른 사람한테 신청해도 되나?”

“……에잉.”

살짝 토라진 얼굴로 쪼그려 앉아 바닥을 닦는 막내의 모습에 다 같이 깔깔대며 웃었다.

비주가 물었다.

“그럼 누구한테 신청하고 싶으세요?”

“파 키우는 청년. 나는 굵직한 목소리가 취향이야.”

“예이.”

중현이가 걸레를 든 손을 들어 흔들었다.

파파팟.

힘이 어찌나 좋은지 헬리콥터 날개처럼 걸레가 사방으로 물방울을 퍼뜨렸다.

“야! 야!”

“어푸푸! 걸레물 누가 튕기라고 했어요!”

중현이가 푸근하게 웃으며 걸레를 내려놓고는 사장님에게 물었다.

“어떤 노래를 듣고 싶으세요?”

“나는 말고.”

사장님이 멀뚱멀뚱 인간들을 구경하는 젖소들을 가리켰다.

“얘들한테 불러줄 만한 노래로.”

“소한테요?”

“영국 사람들이 또 조사를 했는데, 클래식이나 음악을 들려주면 소들이 우유를 더 많이 생산한다고 그러더라고.”

“영국 사람들은 참 조사를 많이 하네요.”

우리가 웃을 때, 뒤통수를 긁적이던 중현이가 소들을 바라보았다.

“소들이 무슨 노래를 좋아할지 몰라서, 일단 원래 제가 하던 대로 랩을 해 보겠습니다.”

“오오오오! 중현 씨의 랩!”

리포터가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시청자 여러분! 내 고향 사상 최초로 소에게 랩을 해주는 아이돌이에요!”

“와아아아!”

우리가 손뼉을 치며 환호하고 있을 때, 중현이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형. 비트박스 좀 해 주세요.”

“오케이.”

동생들이 물개박수를 치고,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비되면 신호를 달라고 눈짓을 하는데 중현이가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뭐해?”

“일단 관객들이 집중을 해야 될 거 같아서요.”

“……?”

카메라 감독님이 중현이 단독샷을 잡아주고 있을 때.

우리 래퍼가 계속해서 헙, 헙 숨을 들이키고 있었다.

젖소들은 한가롭게 자기 일을 하고, 인간들만 뭐지 하는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허업, 허업.”

중현이가 램프의 요정처럼 입으로 공기를 빨아들였다.

옆에 있던 지호가 ‘공기를 진짜 맛있게 먹네여’ 하는 소리에 리포터님이 웃음이 터졌다.

비주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저거 초등학생 때 애들이 많이 하던 거 아니에요?”

“…어?”

“그거 있잖아요. 트림 같은 거 장난치려고 할 때.”

“……중현아!”

너 또 뭐 하려는 거야,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을 때.

중현이가 양손을 촤악 펼쳤다.

“……?”

그러곤 천상의 아리아를 부르는 근엄한 가수 같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음머어어어-

트림이 아닌 건 다행이지만.

정말이지 날 것 그대로의 소 울음소리와 똑같아서 그만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중현이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었다.

음머어어어어-

그리고 그 순간.

지금까지 딴 짓을 하고 있던 젖소들이 멈칫하고는 중현이를 향해서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웅성웅성.

이걸 젖소식으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꼬리를 탁탁 흔드는 모습들이 보였다.

울타리 근처로 소들이 우르르 모이기 시작할 때.

“이, 이게 무슨 일이고.”

사장님이 놀란 얼굴로 엉덩방아를 찧고, 민효진 리포터도 정신이 아득해진 듯한 표정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다 같이 멍한 얼굴로 젖소 관객들에게 공손하게 인사하는 중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

3초 정도 정적이 흐른 후.

미친 듯이 터져 나온 웃음소리에 잠시 촬영이 중단됐다.

*   *   *

웃음이 폭풍처럼 축사를 쓸고 간 후.

“푸흡… 푸흐흡…….”

카메라 감독님이 중현이를 담자마자 웃음이 터지셨다.

ENG 카메라를 어깨에 짊어진 채 몸을 웅크리는데, 패딩 줄무늬 때문인지 콩벌레 같았다.

민효진 리포터님이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감독님, 그냥 웃어요!”

“푸하하핫!”

그러곤 흐느끼듯이 ‘소, 소…’ 하면서 뭐라고 몸을 들썩였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어찌나 웃었는지 축사 안에서 느꼈던 약간의 추위마저 완전히 싸악 달아나 있었다.

“아, 아아… 형, 저 배가 너무 아파요.”

어지간한 연습으로도 끄떡없던 우리 메인댄서가 복근이 아프다는 얼굴로 말했다.

방금 전의 사태 때문에 아직도 5분 가까이 꺼이꺼이 우는 중이었다.

리혁이랑 지호도 서로의 몸을 팡팡 치며 눈물을 뽑듯이 우는 중이었고, 나도 쪼그린 채로 웃다가 뒤로 넘어졌다.

멀쩡한 것은 왜들 그러지 하는 눈으로 보는 중현이뿐.

“이게 그렇게 웃겼어요?”

“넌 하면서 안 웃겼었어?”

“아뇨. 딱히…….”

중현이가 눈을 꿈뻑꿈뻑하며 물었다.

“그런데 저 잘하죠. 형.”

“엄청 잘한다.”

“제가 이걸로 초등학교 때 창작 연극 대회에서 소 왕자 배역을 따냈어요.”

“소 왕자?”

“애들이랑 대본 짠 건데 불행한 왕자가 행복한 소가 되어서 음악을 하러 떠나는 이야기에요.”

소 탈을 쓰고 마침내 자유의 음머어어를 했을 때, 관객들이 환호를 해 줬다는 믿기 싫은 이야기였다.

고개를 홱 돌려서 카메라를 확인하고는 안심했다.

잠시 녹화 중단 상황이었다.

“자자, 웃음 좀 참고. 다시 녹화 들어갑시다!”

리포터님이 손뼉을 치며 주의를 환기한 후에 우리가 다시 축사 중앙에 섰다.

여전히 젖소들이 중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주가 물었다.

“소들이 되게 신기해하네요.”

“사람으로 따지면 갑자기 키우던 강아지나 고양이가 ‘홍합!’ ‘홍합!’ 이러면서 인간 말을 하는 거잖아여.”

“난 진심으로 저게 소들한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을지가 궁금해요.”

저녁으로 홍합탕이나 먹을까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내가 중현이 곁으로 가서 섰다.

“중현아, 너 이상한 거 준비한 건 아니지?”

“즉흥 랩은 안 떠올라서, 얼마 전에 리혁이가 읽던 책에서 따온 문장을 인용하려고요.”

“아하. 오키오키.”

레퍼런스가 있다는 이야기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곤 환하게 웃었다.

“자, 뉴블랙의 첫 번째 ‘소극장’ 투어! 천년목장의 젖소 분들과 함께 하는 공연입니다!”

“저 사람은 진짜 창피한 거 싫다면서 제일 열심히 해요.”

내가 웃으며 외쳤다.

“오늘의 안무는 호시탐탐 메인댄서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리혁 씨가 함께 해 주시겠습니다.”

“와아아아아!”

“서리혁! 서리혁!”

사장님까지 서리혁! 하고 외치는 가운데 리혁이가 벌게진 귀를 자랑하며 등장했다.

리혁이가 나타나자 소들이 급격히 더 관심을 보였다.

그러는 동안 중현이의 신호에 맞추어 내가 입을 열고 푸취푸취 비트를 넣어주었다.

중현이가 소들을 향해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A~ What’s up Cows

에브리바디 댄싱 투나잇 같은 느낌의 랩 인트로를 능숙하게 깔면서 다들 손뼉을 칠 때.

중현이가 주먹을 쥔 손을 들었다.

Listen

만국의 젖소들이여 단결하라

뭔가 젖소들의 반란을 획책하는 듯한 느낌의 랩이었다.

‘이거?’

‘그거예요. 그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레퍼런스에 나와 리혁이의 표정이 다급해지면서 눈빛이 오갔다.

“야! 야!”

“이 형이 미쳤어! 진짜!”

피디님과 작가님이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나와 리혁이가 중현이의 입을 막았다.

이내 내가 손으로 커트, 커트 하며 말했다.

“이건 편집 부탁드릴게요!”

“뭔데여. 이게?”

나와 리혁이가 다른 사람들에게 원문의 내용을 알려 주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지호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뭐야. 그럼 리혁이 형이 보던 책에서 따온 거네여?”

“그거 아니라고! 아니에요!”

우리가 몰아가자 리혁이가 얼굴이 벌게지더니 흥분해서 목소리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소련 공산당 역사에서 나오는 사료라고요!”

“요즘엔 책에 사료도 나와여?”

“아니이…….”

리혁이의 얼굴이 토마토로 변신했다.

“그 사료 말고! 역사 사(史), 헤아릴 료(料)! 바보야! 사료도 모르니까 한국사가 69점이지!”

“…….”

마치 메아리가 울려 퍼지듯, 그러니까 69점이지, 69점이지 하는 게 막내의 얼굴에서 울리는 듯했다.

그 순간 큽 하며 우리의 웃음보가 터졌다.

“아, 형들 웃지 마여!”

“흐하핫!”

“두고 봐여! 저 이번 달에 보는 시험 꼭 1급 딸 테니까!”

지호가 눈을 흘기는 가운데 우리가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뭔데요? 뭔데?”

이내 상황을 모르고 있던 민효진 리포터도 우리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웃음에 동참했다.

*   *   *

축사 청소를 마친 후.

우리는 1시간가량 이어지는 체험 프로그램에 도우미로 함께 했다.

“우와아아아아!”

가족들과 함께 온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들이 축사 안에서 방방 뛰며 우리를 가리켰다.

“뉴블랙! 뉴블랙!”

“우리 어린이들, 형들 말고 젖소를 보고 놀라야죠. 저기 젖소 보이죠?”

“우와아아!”

“아니, 젖소 옆에 있는 키 큰 형 말고 젖소요.”

“우아아아!”

“…….”

아니. 젖소를 보고 놀라야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유명 키즈 유튜버를 본 것처럼 흥분한 꼬꼬마들이었다.

부모님들이 웃으며 말했다.

“가끔 뉴블랙 관련 영상 나오면 재미있다고 보거든요.”

“저희 거를요?”

동생들과 눈빛을 교환했다.

‘애기들한테는 유해매체 아닌가?’

‘많이 해로울 텐데.’

6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 하나가 나를 가리켰다.

“한발 자전거!”

“……자! 우리 젖소들을 만나러 가 볼까요?”

어린이들이 우리 뒤를 총총 뒤따라오며 우아아 하며 올려다보았다.

너무 귀여웠다.

그런 아이들 때문인지 부모님들도 이따가 끝나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이따가 끝나고 사진도 좀.”

“당연하죠. 아이들이랑 같이…….”

“아뇨. 저희랑요.”

조심스럽게 ‘단독샷이요’ 하며 번갈아 슬금슬금 말을 거는 부모님들 덕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체험을 온 가족들과 함께 축사 투어를 마친 후.

목장 안에 지어진 식당에서 우유를 비롯해서 치즈, 버터 등으로 요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와아…….”

“치즈를 뿌릴 때는 이렇게 넓게 쇽쇽쇽 뿌리는 거예요.”

비주가 피자 만드는 시범을 보여 주자, 애기들이 감탄하고 부모님들이 핸드폰 메모장을 켰다.

민효진 리포터가 카메라 앞에서 흥을 돋웠다.

“우와아아! 지금 이 완성된 피자가 보이시나요? 정말 맛있어 보이는데요.”

“와아아아!”

“그럼 다들 시식하는 표정을 보실까요?”

비주가 만든 피자들을 잘게 슬라이스해서 가족들이 먹고는 ‘오오’ 하며 엄지를 들었다.

어머니 중 한 분이 눈을 크게 뜨고 맛있을 때 나오는 진실의 입모양을 그렸다.

요리 만화의 BGM이 나와야 할 듯한 얼굴이라고 할까.

애기들이 감탄했다.

“우와. 엄마가 방금 한 건 이 맛 아니었는데!”

“수연이는 조용히 해.”

“맛있어요! 시켜 먹는 거 같아요!”

애기들의 진심 가득한 평에 비주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많이 먹어’ 할 때.

민 리포터님이 우리에게도 말했다.

“뉴블랙 멤버들도 한 번 시식을 해 보고, 그 느낌을 한 번 표현해 볼까요?”

“좋죠!”

이윽고 비주가 만든 피자를 들었다.

목장 홍보를 돕기 위해 내가 치즈 가득한 부분을 베어 물고 쭉쭉 늘렸다.

“으음~”

그러곤 동생들이 사사삭 흩어져서 없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리포터가 고개를 갸웃할 때.

“보셨죠?”

“……?”

“어찌나 맛이 좋은지 다섯이 먹다 넷이 사라져도 모를 맛이네요.”

사장님과 리포터가 대만족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그렇게 체험 활동을 마무리하는 동안, 후식으로 나온 우유를 마시며 리포터님과 이벤트를 진행했다.

“자, 우리 어린이들! 뉴블랙과 내 고향이 함께 주최하는 제1회 우유 맛 표현 대회!”

“우유를 맛보고 그 맛을 가장 잘 표현한 사람에게 상품이 주어집니다. 이곳 목장에서 만든 치즈와.”

“바로 빨아먹을 수 있는 보석 반지!”

애기들이 우아아 하며 중현이의 다섯 손가락에 끼워진 보석 반지에 탐을 낼 때.

한 모금씩 우유를 마신 아이들이 ‘얍!’ 하며 표현했다.

이윽고 우리 중에서도 출격한 막내가 우유를 한 모금 마시고는 ‘우~’ 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곤 CF 광고의 마지막 멘트처럼 말했다.

“유~”

사장님과 부모님들이 오오 하며 손뼉을 치는 가운데, 내가 웃으며 말했다.

“안타깝게도 반지 하나는 저희가 가져가야겠네요.”

“이건 우리 거~”

그리고 그 순간.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아닌데…….”

마무리로 갈수록 혼란과 파괴의 현장으로 가득한 녹화 분위기에 제작진이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   *   *

여의도 PBS 방송국.

<지금 내 고향은>의 연출을 맡은 메인 피디를 비롯해 조연출과 작가들이 회의실에 심각한 표정으로 모여 있었다.

“다시 한번 틀어 봐.”

“네.”

뉴블랙과 함께 한 녹화 분량이 흘러나왔다.

보는 사람이 웃음이 터질 만한 내용으로 가득한 분량이었지만, 제작진들은 난감할 뿐이었다.

“아니…….”

누군가 말했다.

“뭘 어떻게 해야 편집 끝나고 40분이 나오나 했더니 이건…….”

“아니, 뭐 이런 경우가 있대.”

“다른 피디들한테 말로만 들었지. 진짜 생활 정보 프로를 주말 예능으로 바꿔놨네…….”

처음에만 해도 담당 조연출이 ‘일단 자막 없이 가편집본이요’ 하고 소심하게 들고 온 것을 시사하고 당황했다.

하지만 다 보고 나자 뭘 잘라야 할지 모르겠다는 조연출의 말이 이해됐다.

15분에 압축하기가 진짜 아깝다고 할까.

조연출 한 명이 진지하게 말했다.

“돼지고기 시켰는데 갑자기 소고기 특수부위 모듬이 나온 느낌이네요.”

“굳이 비유하자면 그것도 특수부위를 잘 익혀 놨는데 절반 정도 버려야 하는 거지.”

“아이고. 아까워라.”

<지금 내 고향은> 제작진 특유의 목가적인 대화가 오가는 가운데 메인 피디가 말했다.

“일단… 뉴블랙이 나오는 코너는 15분에서 20분으로 연장하도록 하고.”

“네.”

그가 짠하다는 눈으로 담당 피디를 바라보았다.

“고생 많았다. 카메라 한 대라서 힘들었지?”

“네… 그날 카감님이 이 친구들은 절대 카메라 한 대로 담을 수가 없다고 하셨어요.”

“다음부터 뉴블랙이랑 녹화하는 담당자들은 카메라 두 대에서 세 대 정도로 가는 걸로 하고.”

고심 끝에 메인 피디가 결론을 내렸다.

“일단 어르신들이 메인 시청자니까, 엄청 시끌벅적한 건 좀 덜어내자.”

“맞아요. 오디오가 너무 요란해서 어르신들 보다가 경기 일으키실 수도 있어요.”

“나머지… 이… 이거는 한 번 레몬 엔터 측이랑 얘기를 해볼게. 거기가 이런 데 노하우도 있고.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이 많아서 본방보다는 비하인드가 어울릴 거 같으니까.”

“진짜 덕분에 별걸 다 해 보네요.”

전례 없는 분량 요정들의 등장에 고향 프로그램의 제작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일이 늘긴 했지만, 간만에 찾아온 변화라서 그런지 신기하고 흥미롭긴 했다.

이게 어떤 식으로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어낼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쪽이라는 건 분명했다.

그때 피디가 조연출에게 물었다.

“참, 뉴블랙은 촬영 끝나고 어디 갔어? 뭐 한대?”

“밥 먹으러 간다는 것 같았는데… 작별 인사할 때만해도  리포터님이랑 노래 부르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밥 어쩌구 하더니 시무룩해져서 못 물어봤어요.”

“아이고. 힘들었나 보네.”

힘을 그렇게 뺐으니 힘들지, 하는 말과 함께 제작진들이 작게 웃었다.

*   *   *

하지만 <지금 내 고향은>의 제작진들이 했던 추측과 달리 뉴블랙이 시무룩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

경기도 용인시.

아침부터 수원의 뉴스, 점심에는 화성의 한 목장에서 녹화를 하고 찾아온 용인의 한 먹자골목.

수플레들이 자기 지역의 유명한 식당들이라며 적어준 목록을 훑는 멤버들이었다.

“원조 소고기 주물럭집…….”

음식점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할 때마다 젖소의 눈망울이 눈에 아른거렸다.

“저기가 용인에서 제일 유명한 소불고기 집…….”

젖소가 머릿속에서 음머어어 하고 울었다.

세상에서 제일 슬픈 얼굴로 멤버들이 리스트에 선을 찍찍 그었다.

“저기는 소고기 육회가 유명하대요. 저긴 한라산 갈비라고 하는데 저 집도 유명하고.”

“아님 설렁탕이라도 먹을까여…?”

“탕은 괜찮…….”

다시금 젖소가 우어엉 울었다.

“으아아!”

“목장 체험 괜히 했어!”

“으아아, 왜 구름까지 소처럼 보이는 건데!”

하늘에 있는 구름들마저 왠지 아련한 미소를 짓는 젖소들처럼 보이는 듯했다.

“으아아아…!”

먹자골목에서 머리를 감싸쥐고 괴로워하는 멤버들의 모습에 매니저들이 웃음을 꾹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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