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58)화 (358/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58화

아이돌 커뮤니티.

베스트 게시판에 뉴블랙에 대한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었다.

-오늘 소극장(?) 투어 시작한 뉴블랙

-Y앱 중계 보면서 눈을 의심한 뉴블랙 투어 경품

-오늘 미모 레전드 찍은 것 같은 늅 리혁.jpg

Y앱 생중계 덕분인지 실시간으로 움짤을 만들어 올리거나, 캡처샷에 자막을 단 영업글들이 올라왔다.

현장에서 있었던 웃긴 상황들과 멤버들의 퇴근길 사진까지.

-뉴블 애들은 얼굴 보면 ㄹㅇ 덕질할맛 나겠다 싶음

-울 리혁이 슬리데린 미인상이다ㅠㅠㅠ존예

-난 거울 보면 볼드모트인데

-ㅋㅋㅋㅋㅋ와 인파 무슨일이야 진짜ㅋㅋㅋ 내한가수 공연한 줄

-저기 앞마당 까만거 저게 다 사람이야??

-소극장이라고 하면 보통 이삼백 들어가는데 아냐??ㅋㅋㅋㅋ

-뉴블랙 사전 소극장(1000석)

-아마두 경기권이라서 크게 잡은듯?? 다른 권역은 광역시 빼면 그정도로 안 큼ㅇㅇ

-공연 내용도 알차고 괜춘한 듯

남다른 규모에 대한 감탄이 흘러나올 때.

다른 아이돌 팬들이 보면서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건 바로 이벤트의 경품이었다.

-냉장고ㅋㅋㅋㅋㅋ 세탁기까지 가전제품 뭔데

-자전거가 ㄹㅇ 볼때마다 킬포임ㅋㅋㅋ 신문 구독이냐

-당연히 뉴블랙이니까 협찬인줄 알았는데 레몬 사비라고 해서 깜놀ㅋㅋㅋ

-심지어 저가형도 아님

-팬들 : 경품?! 굿즈인가?? (웅성웅성)

뉴블랙 : 냉장고

-짤에 나온 대학원팬 부럽다ㅠㅠㅠ

-난 저기 부모님들이나 가족들 반응이 궁금해ㅋㅋㅋㅋ

-엄마 : 아이고 이것아 아이돌 뒤꽁무니 백날 따라다녀봐야 뭐가 남냐 돈이 남냐? 시간이 남냐?

딸 : 냉장고

엄마 :

딸 : 냉장고

-돈이 되는 덕질ㅋㅋㅋㅋ 왤케 웃기냐구

한편, 모두가 신기해하고 있는 동안 궁금증을 품은 이들도 나왔다.

-와 그런데 저렇게 전국 돌때마다 경품 저런거 걸면 거덜나는거아님?? 규호가 용케 ok했네

-굿즈 판매도 없던데.. 대체 뉴블랙으로 돈을 얼마나 번 거지..?

-소극장 투어 이거 관람료도 무료고 굿즈도 안팔면 남는거 1도 없을 텐데? 팬서비스로 하는 건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기획에 대한 의문이 나오고, 몇몇이 그에 대한 추측을 하기 시작했다.

-대중픽 아이돌 굳히기 들어간 거라고 보면 됨. 내 고향이랑 콜라보한거부터가 딱 그런 의도일걸. 지역뉴스랑 미튜브 컨텐츠로 지역 명물 탐방하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그거임

-이거다ㅇㅇ 나 용인사는데 회사 사람들이 뉴블랙 왔다 어쩌구 얘기하는거 보고 실감함;

-머글 커뮤에도 경품 얘기 나오는거 보면 말 다했지

-손해가 아니고 다 투자야ㅋㅋ 이런식으로 전국 돌면서 화제성+인지도 쭉 챙기다 보면 끝날때쯤엔 머글들한테는 요즘아이돌=뉴블랙으로 이미지 굳어질걸

-다들 ㅋㄷㅋㄷ 하고 있어서 그렇지 이거 무서운거임,, 나중되면 걸그룹도 대중성으로 뉴블랙한테 못 비비게 될거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사실이었다.

대중성 강화 전략을 위해서 뉴블랙과 레몬 엔터가 <지금 내 고향은>과 콜라보를 택한 것은 맞지만.

소극장 투어나 이벤트 경품은 기획보다는 멤버들에 의해 즉흥적으로 정해진 팬서비스였기 때문이었다.

‘조 이사님이 경품 예산은 무제한으로 써도 된다고 문자 보내셨어. 비싼 거 맘껏 해도 된대.’

‘아. 진짜여? 그럼 뭐 하져?’

뉴블랙 멤버들이 숙소에서 뒹굴거리고 있을 때.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확성기를 시끄럽게 튼 중고가전 트럭이 아파트 근처를 스치듯이 지나간 후.

‘……저거다!’

‘저거로 하면 되겠네여!’

그것이 바로 경품이 가전제품 등으로 선정된 진짜 이유였지만.

인터넷에선 그 사실을 모른 채 진지한 추측이 오가고 있었다.

‘규호 씨 무서운 사람이었네’ 같은 드립이나 ‘규호 천재설’을 진지하게 제기하는 댓글이 나올 뿐.

……다행히도 진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

첫 번째 공연을 마친 후.

주말부터 월요일까지 우리는 서울과 경기 권역을 중심으로 열심히 돌아다녔다.

“의정부에선 뭘 먹어야 한다?

“부대찌개를 먹어야 한다!”

그중에서 가장 행복한 것은 맛집 탐방이었다.

“의정부 최고의 맛집을 추천해 주신 수플레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는 시간 가지겠습니다.”

“사랑해요! 아흔살인생 님!”

보글보글 끓는 부대찌개를 보며 연신 행복함을 느꼈다.

인생의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었다.

매콤한 부대찌개 국물을 한 모금에 소시지와 햄을 얹은 밥을 스윽 먹고 나면.

“흐아아아아…….”

기쁨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중현이와 나를 비롯해 동생들이 휴지로 눈가를 콕콕 찍어 감동의 눈물을 닦을 때.

하얀 얼굴이 뚱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맛있는 건 알겠는데. 서울에서 먹는 거랑 별 차이가 없지 않아요?”

“전혀 다르다.”

우리가 단호하게 답했다.

“의정부에서 먹는 부대찌개는 깊이가 다르다구.”

“그건 무슨 논리래요.”

“맞아여. 석굴암을 사진으로 보는 거랑 직접 가서 보는 거랑은 다르듯이.”

“잘했다. 우리 막내.”

지호와 내가 하이파이브를 했다.

리혁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부대찌개를 바라보는 동안, 비주가 국물을 떠주며 물었다.

“지호는 공부 잘 되가?”

“네, 저 이번엔 진짜로 1급 각이에여.”

밥을 먹는 도중에도 리혁이가 만들어준 한국사 요약집을 열심히 훑어보는 막내였다.

다음 주 토요일에 시험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간만에 열심히 공부하는 듯하다고 할까.

중현이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크게 속삭였다.

“지호가 공부 열심히 하는 거 처음 보네요.”

“아, 혀어엉.”

우리가 웃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막내가 말했다.

“사실 이번에 공부 너무 안 해서 걍 포기하고 있었는데, 어젯밤에 우주 형이 꼬드기는 말에 넘어갔어여.”

“우주 형이 뭐라고 했는데?”

“이거 따고 나중에 사극 촬영하면 역사의식 투철한 아이돌로 홍보할 수 있다고 했거든여.”

“흐하핫!”

너무나 불순한 동기에 동생들이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뜨렸고, 내가 머쓱하게 웃었다.

뭐. 동기 부여가 잘 됐다니 다행이다.

눈을 빛내며 요약집을 샅샅이 훑는 지호의 모습이 기특하다.

“서비스에요.”

그 동안 이것저것 접시에 담아 가져다 주시는 사장님에게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우리가 매운탕을 먹었던 횟집이 인터넷에 뜨면서 손님이 확 늘어났다는 이야기 때문인지.

수플레의 추천 맛집을 찾아갈 때마다 주변 음식점 사장님들이 스윽 나와서 컴온 베이비 하시는 느낌이었다.

주로 바닷가 근처 횟집에서 보던 호객행위와 비슷하다고 할까.

“잘 먹었습니다~!”

기념사진과 함께 사인도 슥슥 그리고.

누룽지사탕까지 쏙 챙겨서 음식점을 떠날 때, 매니저 형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준비됐어요?”

원석이 형과 민기 형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움직였다.

끄덕.

우리도 답례로 끄덕끄덕한 후에 셀카봉에 단 핸드폰을 들고 움직였다.

“자, 가자! 냉면 먹으러!”

의정부의 명물, 부대찌개를 먹었으니 이제는 평양냉면을 먹으러 가야할 시간이었다.

그거 먹고 나면 제일시장의 통닭도 조금 먹고.

또 시간이 되면 유명한 곱창집도 한 번 가 보고…….

“근데 시간이 될까요. 형?”

“그러게.”

“리혁이가 지금 시간 계산하는데 내 고향 녹화 시간까지 다 못 먹을 거 같대요.”

지도 스샷을 찍은 핸드폰에 빨간색으로 동선을 슥슥 하는 리혁이를 보고는 고민했다.

“흐음.”

“흐으음…….”

동생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는 곧바로 결정했다.

“뛰자.”

“네.”

운동화 끈을 묶고 숨이 벅찰 때까지 열심히 달리다가.

“그냥 택시 잡자.”

“네.”

우리의 다리 힘이 얼마나 미천한지 깨닫고는 택시를 타고 움직이기로 했다.

*   *   *

수플레들의 추천을 받은 지역의 숨은 맛집을 탐방하는 한편.

천여 석 규모의 공연장을 빌려 진행한 소극장 투어와 함께 주말에도 <지금 내 고향은> 녹화는 계속됐다.

토요일에는 양평군 양서면에 있는 마을을 방문해서 겨울철 농가 일손을 돕기도 하고.

일요일에는 인천 연안부두에 있는 어시장을 방문했다.

첫 녹화와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카메라 감독님이 전보다 두어 명 정도가 더 늘어 있었다.

“흐하하핫!”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발랄하게 뛰어다니는 우리를 보며 멍한 표정을 짓는다는 것 정도.

리포터 분도 얼떨떨해했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녹화 시간이 지날수록 조연출과 작가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오르는 걸 보면, 분량은 꾸준히 잘 나오고 있나 보다 싶긴 했다.

일요일에 함께 했던 오대기 리포터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에고, 오늘 녹화 참 좋네. 이런 프로는 오디오가 비면 절대 안 되거든! 그것 땜에 평소에는 하도 떠들어대느라 목이 쉬었는데 오늘은 녹화 시간이 꿀처럼 흘러가네.”

“저희 잘하죠?”

“그렇긴 한데… 오디오가 지금 이거보단 비어도 돼. 조금은.”

“아앗….”

오디오가 너무 꽉 찬다는 이야기에 우리가 민망한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처음과 다르게 하면 할수록 적응이 되는 것 같았다.

생활정보 프로그램은 처음이라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감이 안 왔는데, 점점 노하우가 생기는 듯했다.

“안녕하세요!”

“와, 우리 코너에 슈퍼스타가 왔네.”

인적이 드문 골목.

스탭들이 촬영 준비를 하는 가운데 안경을 쓴 서글서글한 인상의 30대 리포터가 우리와 악수를 했다.

“정영준이에요.”

“뉴블랙입니다~!”

“다른 코너에서 다 50분짜리 분량 만들었다면서요? 오늘 우리 코너도 잘 부탁해요.”

화기애애하게 잡담을 나누고는 촬영을 시작했다.

오늘은 월요일.

지금 내 고향에서 금요일에 방송되는 이 코너의 제목은 바로 ‘동네 한 바퀴’였다.

카메라가 돌아가는 가운데 리포터가 활기차게 외쳤다.

“드디어 ‘동네 한 바퀴’에 최고의 아이돌 뉴블랙이 떴습니다!”

“와아아아아!”

“안녕하세여! 시청자 여러분~! 금요일 하면 떠오르는 아이돌, 뉴블랙이 왔습니다!”

코너별로 다르게 준비한 오프닝송을 부르며 춤추는 우리 모습에 제작진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리포터 분도 센스 있게 들어와 합을 맞췄다.

“그럼 뉴블랙과 함께 하는 오늘의 동네 한 바퀴!”

“떠나~ 보실까요!”

카메라 감독님이 우리를 찍고 있는 카메라를 스윽 들어서 파란 하늘을 눈에 담았다.

이 코너 특유의 오프닝 기법인데 리포터를 지나 하늘로 스윽 올라가서 담는 걸로 시작하곤 했다.

우리 연기 지망생이 무슨 SF 영화에서 나오는 뼈다귀 기법(?)이랑 비슷하다고 했는데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다.

“어, 까치예요!”

골목길에 돌아다니는 까치를 발견한 비주가 환하게 웃자 우리가 노래를 불렀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리포터님과 함께 흥겹게 노래를 부르며 주변을 돌아다녔다.

이곳은 서울 강서구.

동네 한 바퀴는 도시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다루는 코너였다.

그런 까닭에 동네별로 방문하는 곳들이 정해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머님들!”

“어머나!”

리포터의 살가운 인사에 할머니들이 어설프게 놀라셨다.

이미 작가님이 방문해서 촬영 등에 대해 언급한 터라 놀라는 게 굉장히 어설프셨다.

그러다가 우리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어이구야…!”

진짜로 놀란 반응에 우리의 웃음이 터졌다.

리포터를 볼 때만 해도 눈을 끔뻑끔뻑하고 있었는데 우리 얼굴을 보고는 눈을 부릅뜨신다고 할까.

리포터가 방송용 마이크를 내밀며 말했다.

“아니, 어머님들. 저를 보실 땐 시큰둥하시다가 뉴블랙을 보시니까 눈이 막…….”

“아! 잘생겼으니까 그러지!”

할머님들이 깔깔 웃고 리포터가 울상이 된 가운데, 우리가 스윽 나서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뉴블랙이에요!”

“알지. 어유 오랜만이네!”

“…어? 저희랑 만난 적이 있으세요?”

“명곡단에서 봤지.”

시크한 대답에 다시금 웃음이 흘러 나왔다.

할머님들을 위해서 ‘덕순아’의 스페셜 편곡 버전을 짧게 불러준 후.

노인정으로 이동했다.

“아, 뜨뜻하다…….”

장판에서부터 따스한 온기가 올라오는 가운데, 사랑방처럼 꾸며진 곳에 카메라가 자리 잡았다.

할머님들이 마저 하던 일을 했다.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여?”

“돈 벌고 있지.”

노리개에 장식을 붙이는 걸 하고 계셨다.

“이게 돈벌이는 적어도 하다 보면 재미도 보고, 소일거리도 되고.”

“돈 벌어서 고스톱 쳐야지.”

시끌벅적한 웃음이 감도는 가운데, 할머니들 고향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우리가 안마도 해 드리고.

훈훈한 분위기였다.

우리와 함께 수다를 떨던 할머님들이 신이 나서 고스톱을 같이 치자고 하기 전만 해도.

“…….”

30분 후.

숨 막힐 듯한 공기가 감돌았다.

“…….”

화투패를 든 할머님들이 긴장한 얼굴로 목울대를 울렁이고 있고.

카메라 감독님들이 손에 땀을 쥐었다.

막내와 리혁이가 구경을 하고, 화투패를 든 나와 비주의 동공이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는 동안.

“아싸~”

구수한 추임새와 함께 이마 정중앙에 화투를 붙인 중현이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타악!

녀석이 화투 패를 리듬감 있게 튕기고 또 하나를 뒤집어 타악 던지자 할머님들이 눈으로 욕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김덕순 여사 언어로 해석하면 ‘저 옘병…’ 같은 뉘앙스라고 할까.

“우와아.”

지호가 감탄했다.

“대박이다. 중현이 형 고스톱 학과 나왔어여?”

“아! 게임하는데 조용히 혀!”

할머님들이 흥분한 목소리로 외치자 지호가 쭈글쭈글하게 들어갔고, 비주가 토닥여 주었다.

그 동안 할머님들이 눈빛을 교환했다.

뭔가 우리가 모르는 신호가 오간 후 꽃무늬 버선을 신은 할머님이 패를 탁 튕겼다.

그리고 그 순간.

중현이가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아싸.”

할머님들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아싸~’ 하며 화음을 맞추자 중현이가 ‘고도리~’ 했다.

감독님들이 오오 하며 감탄할 때.

“…….”

싸늘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이 동네의 고스톱 넘버 원, 넘버 쓰리라고 자칭하던 할머님들의 눈가가 가늘어지고.

중현이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재미 있으셨어요?”

그에 대한 대답으로 5분 후.

“……쫓겨났네.”

다 같이 사이좋게 쫓겨났다.

어여 가! 하면서 문을 쾅 닫으시는데.

안에서 ‘아, 할매는 생각이 없어? 거기서 누가 그걸 내!’, ‘넌 아는 것도 많아서 좋겄다!’ 하면서 외치는 훈훈한 대화가 들려왔다.

정영준 리포터가 눈을 끔뻑이며 말했다.

“이거 뭔가 장르가 바뀐 거 같은데…….”

“그러게요.”

시작할 때만 해도 내 고향 특유의 따스한 분위기였는데.

어째 고스톱을 칠 때는 느와르물이 됐다가 지금은 가정파괴 스토리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리포터님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동안 방송은 다시 진행됐다.

“여! 인생!”

“맞습니다! 인생!”

행인들의 인사에 밝게 답하기도 하고, 동네의 한가로운 정취를 즐기면서 녹화했다.

동네 운동기구를 이용하며 분량을 뽑기도 하고.

송화시장을 방문하기도 하고.

원래대로의 장르를 되찾아 행복해하는 리포터 님과 한창 녹화를 진행하고 있을 때.

“어……?”

골목을 지나던 리혁이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왜 그래?”

“저거 맞춤법이 신경 쓰여서요. 저거 틀린 건데.”

“어디?”

“저기요.”

우리가 고개를 돌아본 곳에 ‘도서대여점 만홧가게’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그냥 지나갑시다. 우리 리혁 씨.”

“……그래도 알려드리고 싶은데.”

“리혁 씨가 이런 걸 되게 못 견디나 보네요?”

리포터의 물음에 우리가 답했다.

“네, 길 가다가 뭐 틀린 거 보이면 되게 불안해하는 친구예요.”

“이거 폰에 저장한 사진인데. ‘외않됀대’ 이게 저 형을 퇴치하는 마법의 짤이에여.”

이내 리혁이가 ‘잠시만요’ 하면서 대여점을 향해 뛰어갔다.

딸랑.

그리고 그로부터 20초 후.

문이 벌컥- 열리고 시뻘건 것이 등장했다.

“으아아앗…!”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버린 리혁이가 우리 쪽을 향해 미친 듯이 뽈뽈뽈 달려오기 시작했다.

“왜 그래?”

“국립국어원에서 만홧가게가 표준어라고 했대요! 아으, 창피해!”

“흐하하핫!”

“웃지 마요!”

제작진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동안, 새빨간 토마토가 뛰어오는 풍경에 우리가 박장대소 했다.

“아무래도 이거 장르가 이상한 거 같은데…….”

리포터만 계속해서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었다.

*   *   *

저녁 6시.

간단한 리허설을 마친 우리가 대기실에서 메이크업을 받으며 쉬고 있을 때.

“오.”

대기실 TV 앞으로 우리와 매니저 형들과 스탭들이 모여들었다.

“한다. 한다.”

경쾌한 시그널송과 함께 소들과 물고기 인형들이 뛰노는 오프닝이 지나가며 로고가 떠올랐다.

지금 내 고향은.

구수한 글씨체의 자막이 나오는 가운데 회차 정보가 떴다.

“5987회…?”

“저게 가능한 회차였어여?”

어르신들에게 사랑 받는 장수 프로그램답게 그 동안 쌓여있는 회차 수가 어마어마했다.

그렇게 혀를 내두르고 있을 때 방송이 시작됐다.

방송이 시작하고 나서 30분 정도 지났을 때.

생방송 스튜디오에 앉아 있는 남녀 아나운서가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새해가 찾아오고 경사스러운 일이 있었죠? 저희 내 고향에 아주 귀한 손님들이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과연 어떤 손님인지 한 번 소식 들어볼까요. 민효진 리포터?

카메라가 진행자석 좌측에 앉아 있는 리포터에게 돌아갔다.

-네, 겨울철 군고구마보다 더 핫한 아이돌, 뉴블랙이 ‘지금 내 고향은’을 찾아왔습니다!

-정말 기대가 되네요. 어떻게 녹화는 잘 하셨나요?

-네, 정말 좋고 신기하더라고요.

-사실 저희도 신기하거든요. 아이돌 가수가 내 고향에 나온다고 해서, 여러모로 궁금한 것 같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우리 민효진 리포터가 이런 말을 할 때는 다 이유가 있더라고요.

아나운서들과 리포터가 넉살맞게 대화를 나눈 후.

‘그럼 만나 보실까요!’ 하는 외침과 함께 방송이 시작됐다.

“우와아…….”

우리가 생각해도 이걸 어떻게 압축해야 할지 감이 안 왔는데 역시 프로는 달랐다.

편집을 기가 막히게 했다고 할까.

어르신들한테는 조금 과할 수 있는 부분은 덜어내고, 정말 딱딱 필요한 장면들이 흘러나왔다.

“푸하하하!”

스타일리스트들과 회사 직원들이 병맛스러운 장면들이 나올 때마다 박수를 치며 웃었다.

“나온다!”

“어, 나온다!”

중현이가 소들 앞에 섰다.

오보에와 플루트 소리가 담긴 평화로운 클래식 BGM이 흘러나오는 것과 함께.

-음머어어어어

원본을 초월해서 특수효과까지 가미된 음머어어 하는 소리에 중현이가 흐뭇하게 웃고.

우리가 박수를 치며 꺄르륵거렸다.

주변에서 우리 스탭들이 엎어져서 흐느끼듯이 웃는 모습에 만족감이 느껴졌다.

“수고했다. 얘들아.”

“형도 이상한 거 하느라 고생 많았어요.”

자화자찬을 하고 있는 동안 그날 녹화했던 분량이 순조롭게 흘러나왔다.

마지막에 ‘비하인드가 궁금하다면 미튜브로 오셈’ 하는 자막과 함께 끝이 났을 때.

-오우, 네에…….

-잘 봤습니다. 뉴블랙과 함께 한 코너.

여기다 어떤 멘트를 쳐야 되지 하고 고민하는 얼굴의 아나운서들이 화면에 나타났다.

스튜디오 배경화면으로 나온 중현이가 근엄하게 소 울음소리를 내고 있는 썸네일.

남자 아나운서가 고심 끝에 운을 뗐다.

-예에… 울음이 참 우렁찬 것 같네요.

-흐흡.

여자 아나운서가 고개를 살짝 숙이고 흥킷캿 비슷한 소리를 내고, 남자 아나운서도 뺨을 씰룩이기 시작했다.

스타일리스트들이 공감한다는 얼굴로 말했다.

“저건 못 참지.”

프로답게 멘트를 수습하는 아나운서들에 대한 감탄이 흘러나오는 동안 우리는 인터넷을 확인했다.

“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시청한 모양인지 반응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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