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60)화 (360/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60화

펄럭.

지호가 내민 시험지가 바람에 휘날렸다.

“짜잔!”

한옥 마을 배경에다가 한복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뭔가 서당에서 돌아온 도련님 같았다.

막냇동생이 내미는 시험지를 따라 쭉 내려가던 우리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흐어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비주가 시험지를 받아들고는 마른침을 삼켰다.

“89점 맞았어?”

“뭐야. 이게 말이 돼? 아니, 왕지호가 70점 넘은 성적표 가져온 건 내가 태어나서 처음 봐요.”

“아무리 쉬워도 75점을 넘는 애가 아닌데.”

여태까지 없었던 이례적인 사건에 형들이 수군수군하고, 왠지 모르게 주변에서 웃음을 터뜨릴 때.

지호가 ‘잉?’ 하는 소리를 내며 물었다.

“89점이여?”

“응?”

“형들 지금 거꾸로 들고 있어여.”

“아……!”

89이라는 숫자에 어찌나 놀랐는지 시험지를 거꾸로 들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그냥 89을 보는 순간.

마치 운명의 상대가 나타난 드라마처럼 촤라락 클로즈업 됐다고 할까.

최근에 우리 초동이 22만 장이 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큼이나 놀랐기 때문이었다.

“잠깐만.”

비주의 손에 들린 시험지를 가져가서 거꾸로 들었다.

“…….”

빨간색으로 밑줄까지 쭉쭉 그어져 있는 자신만만한 ‘68’을 보며 우리가 눈을 멀뚱멀뚱 떴다.

“68점?”

리혁이가 ‘이게 사람 새낀가?’ 하듯 눈을 부라렸다.

사람들이 멀찍이서 보고 있어서 그렇지, 막 욕이 목구멍 위까지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게 보였다.

적색경보처럼 붉어지는 귀.

“아니 근데 진짜…….”

한국인이 열 받았을 때 나오는 특유의 세 마디에 지호가 움찔했다.

리혁이가 파르르 눈을 떨었다.

“내가 시험 잘 보라고 밤을 새서…! 날밤을 새서 요약집을 만들었는데… 너는 진짜…….”

“어? 1시간 만에 대충 만든 거라면서여?”

“아, 그, 그렇지. 밤을 새서 만든 건 다른 거고. 이건 1시간이나 시간을 들여서 만든 건데.”

리혁이가 말을 얼버무리는 동안 우리가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밤 샜네.’

‘밤에 뭐 하나 했더니 저거였네.’

오다 주웠다 하듯이 내민 요약집의 퀄리티가 왜 그리 좋았는지 비밀이 밝혀지던 순간이었다.

그 동안 헤헤헷 웃는 막내를 바라보며 우리가 눈을 가늘게 들 때.

“일단 형들, 막 한심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눈으로 바라보지 말구여. 이게 스토리가 있어여.”

“무슨 스토리?”

“제가 68점이지만 68점이 아니거든여.”

고래가 붙었지만 고래가 아닌 고래상어 같은 걸까.

괴상한 소리를 하는 막내는 뭔가 엄청나게 기쁜 일이 있는 사람처럼 해맑게 웃었다.

“그니까여 처음에는 68점이 나와서 막 엄청 울면서 왔거든여.”

“안 울었어.”

원석이 형의 말에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막내가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아무튼! 이제 또 형들이 68점이라고 놀리겠구나, 하면서 엄청 우울하게 있었거든여.”

“친구들이랑 ‘나 또 68점이야~!’ 하고 신나게 전화 통화했어.”

“……그러다가 인터넷에 시험 난이도 어떤지 검색하려다가.”

“한국사 뉴블랙 지호 실물 후기 검색했지.”

막내가 거짓된 행적을 말할 때마다 진실을 말해 주는 매니저에게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거기까지 상황이 이르니 궁금해지긴 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

“시험 커뮤니티에 들어가 봤는데, 거기서 21번 문항이 논란이 있는 거예여. 복수 정답이라고 이의 신청 넣는다는데, 한국사 강사들도 그렇고 100퍼 복수 정답이래여.”

“…….”

“그런데 마침맞게 제가 잘못 찍었던 문제가 바로!”

우리가 한심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는 가운데, 막내가 21번 문항을 착! 보여 주었다.

틀렸다고 호쾌하게 그렸던 작대기가 세모로 변해 있었다.

“이게 3점짜리라서!”

“…….”

“저는 복수정답이 인정되어서 이제 71점이 된 거예여!”

한복을 입은 막내가 시험지를 ‘장원급제요!’ 하듯 들며 주먹을 쥐었다.

“…….”

자랑이다. 아주 자랑이야.

애기처럼 뽀얀 뺨 위로 홍조가 아주 잔뜩 떠올라 있었는데 귀엽긴 했지만 한심함을 금할 수 없었다.

“왜들 그래여? 축하할 일이잖아여. 1급!”

“아니, 이게 1급이긴 한데…….”

“에이~”

막내가 손사래를 치며 수줍게 웃었다.

“인생은 원래 이렇게 운빨로 사는 거예여.”

“공부를 해. 공부를…….”

결과적으로 1급이긴 한데 뭔가 이 개운하지 않은 느낌은 뭘까.

중현이도 하하 웃다가 다시 ‘흐음?’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걸 반복했다.

비주도 양손을 쥔 상태 그대로 ‘이걸 축하…?’ 하며 고민하고 있을 때.

“뭐, 그래도 잘했다. 시험 보느라 고생했어.”

내가 어깨를 두드려 주자 지호가 헤헷 웃었다.

뭔가 개운하지 않긴 하지만 일단 좋은 일이긴 했다.

또 60점대면 어떻게 위로를 해 줘야 하지 고민하고 있었으니까.

다른 멤버들도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는지 ‘고생했다’ 하며 어깨와 등을 두드려 주었다.

“흐하핫!”

비주가 건네준 간식을 받아먹으며 지호가 행복한 웃음을 보일 때.

“…….”

유달리 다섯 중에서 조용한 이에게 시선이 돌아갔다.

리혁이가 복수정답이 인용된 21번 문항을 유심히 바라보며 손을.

…바들바들?

“……리혁아. 왜 그래?”

마치 유생들이 보낸 ‘님 통치 개 못하네요’ 상소문을 든 왕 같은 자태라고 할까.

리혁이가 심호흡을 하며 갓끈을 풀었다.

“아니.”

눈이 희번덕거리는 리혁이의 모습에 막내가 움찔했다.

리혁이가 우리에게 말했다.

“얘가 틀린 다른 3점짜리가 경신대기근 문제인데.”

“얼마 전에 네가 말해준 거?”

“매운탕 집에서 장장 10분을 들여서 설명을 해 줬는데, 이거 봐요. 그대로 틀렸다니까.”

“오. 그때 잘 들었으면 71점이었네.”

중현이의 말에 지호가 눈을 피했다.

그러곤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는 우리에게 먹히지도 않을 잔망을 부리며 말했다.

“아, 사실 그때여.”

막내가 생긋 웃었다.

“귀찮아서 그냥 안 들었어여.”

“야!”

“으아아아! 한국사 요괴다!”

“너 거기 딱 서!”

갓을 우리에게 맡긴 선비가 도망치는 서당 도령을 미친 듯이 추격하기 시작했다.

*   *   *

전북을 중심으로 하는 소극장 투어도 성황리에 마쳤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라면 근처를 지나가면서도 우리 김덕순 여사를 못 만난다는 것 정도.

“보고 싶어. 할머니…….”

“저희도 보고 싶어요. 할머니……!”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김덕순 여사가 주름진 얼굴로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옘병들 하고 있네.

걸쭉한 욕설에 가슴이 푸근해졌다.

-꼭 얼마 안 가 죽을 노인네처럼 바라보냐. 중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전화 통화로 맨날 얼굴 보는데.

“보고 싶어서 그러지.”

“맞아! 맞아!”

-나는 니들이 지겨워 죽겄어. 티비만 틀면 요기 나왔다가 딴 데 틀면 또 거기 나왔다가 낄끼빠빠가 없어.

우리가 눈을 크게 뜨고 진한 웃음을 교환했다.

“이야아~ 우리 할머니 낄끼빠빠~!”

-흠흠.

할머니가 새초롬하게 웃으며 물었다.

-어뜨냐? 이러니까 젊어 보이지?

“네! 50년은 더 젊어 보여요. 할머님.”

-역시 비주여. 우리 비주가 이중에서 귀에 발린 말을 제일 잘혀. 제일 마음에 들어.

내가 얼굴을 쏙 들이밀었다.

“나는?”

-어휴.

많은 것이 함축된 한 마디에 동생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동안, 우리와 한창 수다를 떨던 할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전국 도느라 힘들지?

“응.”

“엄청 힘들어여!”

-……그.

“흐하핫!”

-사람 환장하게 만드는데 도사가 됐네. 이 옘병할 것들…….

‘안 힘들다고 해도 힘들 것이여’ 하는 말을 준비하고 있던 할머니의 대사가 꼬였다.

-아무튼 힘들어도 정신 똑디 차리고! 눈에 힘 뽝 주고.

“보고 싶어. 할머니.”

-그려. 나도 보고 싶다.

“다음 달에 일본 투어까지만 끝내고 나면 바로 군산으로 갈게. 그때 우리 재미있게 놀자.”

-그려. 몸조리 잘하고.

“이제 겨울이니까 모피 코트~?”

김덕순 여사가 화면 속에서 새초롬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OK’를 그려 보았다.

동생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통화를 종료했다.

그 동안 표지판이 스윽 지나갔다.

광주광역시라는 문구를 보고 있는 동안 군산이 있는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쉽긴 하네.

원래는 소극장 투어를 하면서 잠깐 ‘할머니~!’ 하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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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앨범의 호평과 ‘지금 내 고향은’의 화제성 덕분인지 행보 하나하나가 화제가 되고 있었다.

경기 권역을 돌 때만 해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내 고향이 방송을 탄 이후부터 갑자기 어디 지역을 가면 이장님이나 군수님이 막 나와서 같이 사진 찍자고 하시기도 하고.

지역 명물을 맛보거나 구경하러 갈 때마다 뒤에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따라다녔다.

아마 지역 탐방 미튜브 컨텐츠가 흥한 덕분인 듯했다.

대전의 유명 빵집을 방문한 후기라든가, 천안에서 먹는 호두과자는 어떤지라든가.

유명한 장소 외에도 숨은 명소들도 많이 방문했는데 그런 곳을 찾아갈 때마다 관계자들이 몹시 반겼다.

‘살았다!’

…까지 말했던 분도 계셨는데.

최근에 우리가 미튜브로 올렸던 숨은 명소가 갑자기 젊은 관광객들로 찾는 명소로 탈바꿈했다는 소식이 올라온 것 때문인 듯 했다.

겨울철에 자유 여행을 가려는 대학생들에게 우리 컨텐츠가 여러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고 할까.

지호가 나름의 원인을 분석했다.

“솔직히 이건 중현이 형이 너무 맛있게 먹어서 그런 거예여.”

“인정.”

“저번에 제가 한 말 인용해서 누가 댓글로 그러던데, 중현이 형이 숨 쉬면 공기까지 맛있어 보인데여.”

“흐하핫!”

아마도 숨은 명소를 찾을 때마다 그곳의 음식을 먹으며 행복하게 웃는 중현이 덕분도 확실히 있었다.

그때 지호가 창에 찰싹 손을 붙이고 말했다.

“우와아아아! 방금 비석 같은 거 지나갔어여!”

“전봇대야.”

“아. 전봇대구나.”

먹방 외에도 뭘 보든 ‘우와아아’ 하며 놀라는 막내 이하 우리의 리액션 덕도 있고.

감탄이 나오는 광경 때문이기도 했지만, 워낙 연습실이나 회사에 틀어박혀 있다 보니 바깥에서 뭘 보든 좋기 때문인 듯했다.

어쨌거나.

이러한 이유로 보는 눈이 너무 늘어난 탓에 안타깝게도 군산은 가지도 못했다.

“그래도 우리 팔자가 최고다.”

“그니까여. 수플레들도 보고, 맛난 것도 먹고.”

“저는 음방 돌 때마다 이랬으면 좋겠어요.”

오히려 음방 도는 시즌보다는 덜 힘든 것 같다.

새벽 2시에 잤다가 5시에 일어나서 ‘으어어’ 하며 좀비처럼 기어다니던 걸 생각하면 천국이었다.

리혁이가 말했다.

“우리가 왜 지금 편한지 알아요?”

“안무가 없어서?”

“…어, 어떻게 알았어요?”

“지금 그 얘기 거의 오백 번째 하는 중이야. 리혁아.”

리혁이가 흥 하며 유리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말마따나 안무가 없기에 이런 행복한 스케줄이 가능한 거긴 했다.

안무 있었으면 매일 전국을 돌면서 1시간씩 토크를 곁들인 공연이 절대 불가능하니까.

그리고 안무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광주에서 호텔 체크인 하고 나서 비주 방으로 모이자. 안무 동선도 같이 협의하고.”

“네에.”

2월 중순부터 2주일 동안 일본에서 6, 7회 정도 콘서트를 할 예정이라 연습도 게을리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 보라색 앨범 준비도 슬슬 하고.

올해 진행할 공연 스케줄이나 예능 스케줄까지 매니지먼트 팀이랑 협의를 하고.

면세점 광고 준비도 하고.

아. 맞다. 스페셜 앨범도 매년 정례적으로 해 보는 게 어떠냐는 얘기도 있었지.

“일이 참 많구만.”

“많네여.”

스스로 벌려놓은 스케줄 파티를 바라보며 동생들과 온화한 미소를 교환했다.

솔직히 중압감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런 중압감도 있어야 인생이 아닌가 싶었다.

‘인생?’

‘힘들죠. 인생…….’

‘아니, 인생이냐고.’

인생이란 키워드에 반응했는지 갑자기 ‘관련 흑역사 컨텐츠를 재생합니다’ 하듯 뇌가 기억을 재생했다.

외면하며 동생들에게 미소를 지었다.

“일단 한 번에 하나씩 합시다.”

“내일 공연 멘트부터 챙겨요, 우리.”

“아. 맞다. 그게 중요하지.”

광주광역시 북구에서 진행하는 방송 프로그램 녹화에 오프닝 공연자로 출연할 예정이었다.

굉장히 중요한 프로그램.

중현이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언젠가 꼭 출연해야지, 하는 프로그램인 터라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우리가 거기 나온다니…….”

“그니까여. 저도 아직도 안 믿겨여.”

내일 녹화를 상상하며 우리끼리 행복한 웃음을 흘렸다.

*   *   *

다음 날.

수플레들은 미튜브에 접속하자마자 추천 동영상으로 뜨는 뉴블랙의 직캠을 발견했다.

광주광역시 북구라는 지역명과 함께.

‘어? 어디 녹화라도 나갔나?’

그런 생각을 하며 썸네일에서 화려한 비주얼을 자랑하는 뉴블랙의 얼굴을 누를 때.

♪딩동댕-

익숙한 실로폰 소리와 함께.

-전구우우우욱!

빰빠바밤바 바밤~ 빠라밤밤~ 하는 흥겹고도 익숙한 BGM에 수플레들이 끄덕끄덕했다.

선캡을 쓴 채 야외 광장 객석에서 응원도구를 흔드는 사람들.

MC가 멘트를 하는 구간을 스킵한 수플레들은 뉴블랙의 무대를 틀었다.

-첫 번째 순서는 초대 가수입니다! 아주 멋진 얼굴도 얼굴이지만, 보물 같은 삶의 활력소! 아주 똘똘 뭉친 5인조입니다! 바로 누구냐~ 지금 나오겠습니다~ 뉴블랙!

사람들이 ‘와아아-!’ 하는 가운데 뉴블랙이 모습을 드러냈다.

본래 트로트였던 곡을 겨울 느낌이 나는 분위기로 탈바꿈한 ‘동행(同行)’이었다.

스페셜 앨범 트랙 중에서도 신이 나면서도, 어딘가 따스한 인상을 주는 곡이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뉴블랙의 활기찬 인사에 관객들이 호응하는 소리가 들렸다.

함께 등장한 트로트 가수 백상교도 흥겹게 뉴블랙이 리메이크한 자신의 노래를 불렀다.

‘그 와중에 엄청 잘하네.’

능숙하게 관객 호응을 유도하는 모습에 감탄이 나올 때.

-아아아~

보통 옆에서 악보를 펼쳐든 코러스 가수들이 불러야 할 파트에서 자신들이 ‘아아아~’ 하며 덧붙이는 뉴블랙의 화음에 미소를 지었다.

‘좋네.’

생기 있게 노래를 부르는 아이돌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으아앗.”

자동재생으로 나오는 외발자전거에 다급하게 창을 꺼 버리는 수플레였다.

*   *   *

부산광역시.

충남과 전북, 전남을 한 바퀴 쭉 돌고 온 뉴블랙이 마침내 부산에서 공연을 하는 날이었다.

남구에 있는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부산과 울산을 비롯해 주변 지역의 수플레들이 1,400여 석의 자리를 꽉 메우고 있을 때.

‘진짜 재미있겠다…….’

재미있는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처럼 수플레들의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내 가수가 내가 살고 있는 곳에 온 게 너무나 좋다고 할까.

뭔가 더 친해진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같은 것을 공유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리고.

‘경품도 됐으면 좋겠다.’

조금 욕심일 수도 있지만 경품에 대한 욕심도 났다.

냉장고나 세탁기를 얻어간 다른 팬의 인증글을 떠올리며 너 나 할 것 없이 당첨되었으면 하는 분위기였다.

가수가 내 사연을 읽어 주고, 노래를 불러 주고. 또 경품까지 얻어 가는.

친구끼리 온 이들이 수군거렸다.

“아, 나 너무 떨려.”

“나도.”

“1400대 5인가? 그럼 300대 1이네.”

기왕이면 맨 앞에 당첨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들이 수플레 사이에서 오갔다.

처음 불려지는 사연의 경우에는 가장 먼저 경품을 추첨할 수 있었으니까.

내 사연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졸이고 있을 때.

“어? 근데 저 사람은 뭐야?”

“그러게.”

구석진 좌석에서 모자를 쓰고 있는 한 중년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굉장히 수상해 보였다.

마스크까지 쓰고 있는 채 입장권을 손에 들고 있었다.

보이그룹에 있어 산삼보다 드문 것이 남자 팬이라고 하긴 하지만, 거의 천년삼 격인 중년 남성 팬은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뭐지.’

수상한 행동거지에 주변 관객들이 어딘가 찜찜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타앗.

공연장을 점검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모두의 시선이 무대로 향했다.

“와아아아아아아……!”

정체불명의 남자에 대한 관심도 잠시뿐.

무대 위로 올라온 뉴블랙의 모습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너무 좋아. 진짜.’

환하게 빛나는 멤버들의 모습에 수플레들이 든 응원봉에 실린 힘이 강해졌다.

이윽고 이어진 노래.

Y앱에서 계속해서 보아 왔던 순서 그대로 인트로부터 다시 흘러나왔지만 그럼에도 좋았다.

‘이번 앨범 진짜 대박이야.’

정말 뭐 하나 빼먹을 수 있는 곡이 없었다.

대개 인트로나 아웃트로 같은 곡은 스킵하기 마련인데, 수록곡 하나하나 퀄리티가 대단했다.

괜히 지금도 차트 상위권에서 여러 곡이 버티는 게 아니었다.

“…흐읍.”

겨울잠이 끝난 후.

감동적이었는지 누군가 훌쩍이는 소리에 근처 수플레들이 눈을 깜빡였다.

‘감수성이 예민한 아저씨인가…?’

노래가 감동적이었는지 손수건으로 눈을 콕콕 찍는 중년 사내의 모습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그 동안 무대에서 뉴블랙 멤버들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반가워요. 수플레.

“와아아아아—!”

-저희의 소극장 투어 ‘만남’에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우주가 마이크를 들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가 388km인가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아주 먼 거리인데요. 가끔 팬사인회에서도 부산에서 오셨다고 하는 팬분들이 계셨는데, 얼마나 멀리서 오셨는지 이제야 실감하는 거 같아요.

그러곤 미소를 지었다.

-저희를 TV나 핸드폰으로 보셨든, 직접 찾아와서 봐 주셨든 상관없이. 늘 저희를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연 타이틀이 ‘만남’이죠? 만남은 한쪽만 오는 게 아니라 서로가 와야 성사되는 단어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왔어요.

뒷문장을 말하지 않았지만 귓가에 그런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만나서 정말 반가워요. 수플레들.

차례대로 멤버들이 미소를 지으며 멘트를 마친 후.

-그럼 오늘 재미있게 같이 노래 부르고 갈까요?

“네에에에!”

겨울잠에서 잔잔해졌던 분위기가 이어진 스페셜 앨범의 다른 곡으로 넘어가면서 점점 흥겨워졌다.

그러는 동안.

-자, 모두가 기다렸던 순서입니다.

수플레들이 침을 꿀꺽이고 있을 때.

무대에 냉장고나 에어컨 등의 판넬이 올라온 가운데, 첫 번째 사연 추첨이 이루어졌다.

-닉네임이 눈에 띄어서 골랐던 사연인데요. ‘은서아빠 님’이 보내 주신 사연입니다.

-뉴블랙 덕분에 요즘 제 인생이 너무 행복합니다. 매일 일어날 때마다 힘에 부치고, 아침이면 출근하기 싫었는데, 덕분에 출근길도 엄청 행복해졌고요.

수플레들이 공감한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뉴블랙 덕에 얼마나 요즘 행복해졌는지 하는 사연이 흘러나온 후, 멤버들이 환히 웃으며 물었다.

-은서 아버님~? 혹시 계시나요?

-어! 저기 계신다!

그들의 눈이 뉴블랙의 시선을 따라 움직였다.

‘어…?’

저 사람 아까 그 사람이네, 하는 동안 모자를 쓴 남자가 덜덜 떨리는 손을 들었다.

몹시 당황한 눈치였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희가 얼굴을…….

이내 고민의 빛이 스치는 듯하더니 중년 남자가 조심스럽게 모자와 마스크를 벗었다.

그리고 그 순간.

“……!”

-허어……!

뉴블랙과 수플레 모두 모습이 드러난 중년인을 보고 식겁했다.

조명에 반짝반짝 빛나는 머리 아래로 드러난 인자한 얼굴.

-조명 비춰 주세여! 저희의 차, 창, 창조주예여!

대표님이라는 말이 안 나왔는지 어버버 하는 지호의 말에 관객들이 웃음이 터졌다.

박규호 대표가 굉장히 머쓱해 하는 얼굴로 마이크를 잡을 때.

우주를 비롯해 뉴블랙 멤버들이 멍한 표정을 짓는 게 보였다.

주변 객석에서 무의식적으로 ‘규, 규호…!’ 한 어느 수플레가 자기 입을 때리듯 가리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대표님?

-대표님이 왜 거기 계세요?

박규호 대표가 어색하게 뺨을 매만졌다.

-그게, 사연이 당첨되어 버려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수플레들의 머릿속에서 ‘이건 무슨 상황이지?’ 하는 질문이 오갈 때.

‘경품인가?’

‘경품이구나.’

‘경품이네.’

모두의 머릿속에서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같은 생각이 흘러나올 때.

눈을 깜빡이던 멤버들 속에서 지호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마이크를 들었다.

-근데, 진짜 출근하기 싫으셨어여?

-아니, 그…….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질문에 공연장에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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