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62)화 (362/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62화

쾌속정 글로리5호.

우리는 창가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어머! 어머!”

“맞습니다. 어머님, 저희 뉴블랙입니다!”

“어머….”

등산복을 입은 어머님들이 눈을 크게 떴다.

다른 승객들이 ‘뉴블랙이야?’, ‘쟤네 뉴블랙이잖아.’ 하는 소리들이 들렸다.

한 초등학생은 홱 돌아보더니 거의 비명을 지를 듯한 기세로 부모님에게 ‘뉴블랙!’ 하고 소곤거렸다.

뭔가 기분이 좋았다.

“흠흠…….”

선글라스를 끼고 머리를 슥슥 넘기…….

“야. 한 명만 해야지. 다 같이 머리를 쓸어 넘기면 이상해 보이잖아.”

“뭐 어때요.”

리혁이가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우리 이상한 애들로 알고 있는데 무슨 상관이에요.”

“오. 일리 있음.”

“맞아여. 그리고 빠질 거면 형이 빠져여. 평소에도 관심 엄청나게 받으면서.”

작게 속삭이며 옥신각신하다가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다.

“얘들아!”

“형!”

“우리 사이 너무 좋다아~!”

“그러게여~”

짐짓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다가 갑자기 우리끼리 그냥 웃음이 터졌다.

잔뜩 수다를 떨면서 유리창 너머 바깥을 바라보았다.

아침의 동해 바다.

찰랑이는 물결이 햇볕에 반사되는 가운데, 멀찍이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이 보였다.

“경치 진짜 좋다.”

내 말에 비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 진짜 잘 잡은 거 같아요, 형. 이제 출발하면 바다 구경도 하고.”

“파도도 보고!”

“진짜 저 크루즈나 요트 말고 이런 배는 처음 타 봐여. 대박 신기하다.”

그런 이야기를 하며 유리창에 코를 박고 구경하는 동안 리혁이가 귀 밑의 멀미약을 확인하며 말했다.

“웃을 수 있을 때 마지막으로 웃어 둬요.”

“……?”

“어제 혹시 몰라서 검색을 해봤는데 울릉도까지 가는데 배 멀미가 장난이 아니래요.”

모닝 초콜릿을 베어 먹던 지호가 말했다.

“그래서 멀미약 먹었잖아여.”

“……그걸로 해결이 되는 수준이 아닌 것 같던데.”

“하긴 형은 좀 예민한 편이니까 조금 위험할 수도 있겠네여.”

리혁이가 입이 아깝다는 시늉을 하고 있을 때, 비주가 싱글벙글 웃으며 놀렸다.

“존예보스~ 존예보스~”

“너 그거 알아?”

“네. 친구가 이거 요즘 흥하는 신조어라고 해줬어요. 존예보스~”

비주가 눈을 깜빡이며 ‘존예보스~ 존예보스~’ 하며 리혁이에게 말하고, 리혁이가 좋아할 때.

중현이가 물었다.

“너 존예 뜻은 제대로 암?”

“틴스피릿 선배님들이 종종 쓰시는 어근에다가 예민하다 더한 거 아니야?”

“노노. 예쁘다임.”

“예민하다가 아니고?”

“이응이응.”

“아.”

정확한 뜻을 알게 되자마자 존예보스라고 하던 말을 단호하게 멈추는 비주였다.

“뭐야. 예민하다는 뜻으로 한 거였어요?”

“어어…? 비닐봉지가 어디 있더라? 리혁아. 너 비닐봉지 필요하지?”

가방을 뒤적이며 모른 척하는 비주의 모습에 우리가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뜨릴 때.

근처 창가에 서 있던 어머님들이 다가왔다.

“저기.”

“아, 네. 사진 같이 찍을까요?”

“우리 좀 찍어달라고.”

“예에…….”

이윽고 중현이가 핸드폰을 받아 어머님들을 찍어 주었다.

‘아이고, 연예인이 사진 찍어 줬네!’ 하며 깔깔 웃던 어머님들이 이내 우리에게도 사진을 청했다.

“어, 저희도……!”

“저희도 혹시 사진 찍어도 돼요?”

그게 시작이었는지 주변에 있는 다른 승객들도 하나둘 다가오기 시작했다.

“말 좀 걸어보고 싶었는데, 너무 다섯이서 재미있게 떠들고 있어서 끼어들 틈이 없더라고.”

“스탭분들한테 그런 이야기 많이 듣긴 해요. 저희가 오디오가 진짜 안 빈다고.”

“방송에서 보는 거랑 진짜 똑같아서 깜짝 놀랐어요. 내 고향 찍으러 가는 거예요?”

“네. 울릉도 방문 특집이에요.”

3주의 콜라보 기간 중에서 어느덧 마지막 주차에 이른 <지금 내 고향>.

그 외에도 어제 강릉의 유명한 꼬막집을 방문하거나 카페에 방문했던 미튜브 영상들 같이 생활 밀착형 행보 덕분인지 사람들의 관심이 확연히 더 늘어난 게 느껴졌다.

좋은 쪽의 관심이라고 할까.

전에는 조금 거리감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TV에서 만나는 친근한 동네 이웃 취급이었다.

멀찍이 앉아 있던 일가족 여행객 사이에서 할아버지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물었다.

“거, 다들 멀미약은 먹었나?”

“네! 어르신은 드셨어요?”

“꼭 먹어야 돼. 동해는 파고가 엄청 높아서 멀미를 엄청 하니까.”

“명심할게요!”

손자처럼 바라보는 할아버지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멀미약이 필요하면 매점에서 사 주겠다고 하셨는데 옆에서 할머님이 주책 좀 그만 떨라고 하는 말에 잠잠해지셨다.

그 동안 주변에서 귤이라든가, 간식거리를 주는 통에 가방이 부풀어 올랐다.

물론 우리도 그에 대해 답례를 했다.

“자, 다 같이!”

무대 노하우를 살려 동생들과 함께 관광객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 안고~”

“연락선을 타고 가면 울릉도라~”

지금 내 고향 오프닝에서 쓸 용도로 연습한 울릉도 트위스트에 승객들이 손뼉을 치며 떼창을 해 주었다.

“와아아아-!”

출발 전의 공연을 마친 후.

안전에 대한 유의사항과 함께 선장님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멀미가 있으신 승객은…….

중현이가 말했다.

“멀미하시는 분이 많은가 봐요.”

“그러게. 되게 강조 많이 한다. 멀미가 약한 사람들이 꽤 많은가…?”

“근데 우린 멀미약 먹었잖아여.”

“혹시 모르니까 비닐봉지 하나씩 받아요.”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수군거리고 리혁이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고 있던 바로 그때.

부아아아앙-

쾌속정이 출발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우리는 쾌속정에서 쾌속(快速)이 어떤 의미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를 뚫고 가는 시속 60km의 배.

파파파팟-!

하얀 포말이 창문을 미친 듯이 때리는 가운데 배가 위아래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배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때마다 바이킹이 내려갈 때 다리가 후우욱! 하면서 간담이 서늘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10분도 지나지 않아…….

“우욱! 우우욱!”

단체로 비닐봉지를 부여잡고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매니저 형들부터 스타일리스트들까지 소리 없이 헛구역질을 하며 눈을 감을 때.

유일하게 평온한 건 지금 내 고향의 제작진이었다.

“오늘은 파도가 괜찮네.”

“그러게요.”

“저번에 강릉 오징어잡이 따라갔을 때가 진짜 심했죠.”

리포터님과 조연출, 작가님 등이 한가로운 소풍이 나온 사람들처럼 화사한 미소를 짓는 게 너무나 부러웠다.

다만, 우리 중에서 유일하게 평온한 인물이 있었으니.

“눈을 감습니다.”

파도와 물아일체가 되어 부처님 미소를 짓는 우리 애였다.

렘수면을 자극하는 중저음의 잔잔한 내레이션.

“자, 이제 눈을 감고 파도와 한 몸이 되는 걸 느낍니다. 인생사 새옹지마. 오르락내리락.”

우리가 눈을 부라렸다.

“야!”

“ASMR하지 말라고! 김중현!”

“중현이 형, 지금부터 입 열면 리혁이 형이라고 부를 거예여!”

“그래. 지금부터 입 열면 리혁이야!”

우리의 강렬한 반발에 중현이가 흥 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느으읍! 느으으읍!”

괜히 봉변당한 리혁이만 읍 소리로 욕할 뿐.

*   *   *

울릉도.

대략 9,000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동해의 섬.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우웁…!”

“우욱!”

달달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배에서 내렸다.

“유, 육지다!”

“육지야아아!”

세상에 땅이 이렇게 반가울 줄은 몰랐다.

쾌속정으로 3시간 동안 파파팟 달려온 까닭일까. 땅에 발이 닿으니 눈물이 핑 도는 기분이었다.

매니저 형들과 다른 스탭들도 심호흡을 했다.

“아이고오…….”

“우리 홍콩에서 무대 했던 때만큼 어질어질한 거 같아여.”

지금 내 고향 제작진이 푸근한 미소를 짓는 동안, 미식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진정시켰다.

특히나 리혁이는 얼굴이 아예 창백하게 질린 채 거의 실신 직전이었다.

승객들이 등을 툭툭 쳐주며 지나갔다.

“아이고, 가뜩이나 반쪽 같은 얼굴이 반반쪽이 됐네.”

“괜찮어? 약이라도 뭐 필요한 거 있음 줄까?”

괜찮다고 답하며 즐거운 여행되시라고 인사를 했다.

그렇게 10분 정도 속을 다스리고는 컨디션을 회복했다. 식은땀을 닦는 동생들에게 물었다.

“극복?”

“극복.”

끄덕끄덕하는 고개들이 돌아왔다.

제작진이 녹화 준비를 세팅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저동항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와아…….”

날이 맑아서 그런지 경치가 엄청 좋았다.

뒤에는 구릉진 산들과 민박, 횟집, 민가들이 쭈욱 늘어서 있고.

앞으로는 새파란 하늘 아래 마찬가지로 파아란 파도가 포말을 일으키며 물결치고 있었다.

바닷가 특유의 소금기 가득한 공기가 찬바람에 실려 날아왔다.

“좋다.”

경기도 용인을 시작으로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지나 마지막에 찾아온 강원도의 강릉까지.

음악방송을 대신해 3주일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진행한 소극장 투어는 어제 공연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가장 마지막.

번외편인 울릉도 방문이라고 할까.

“…….”

이제 여기서 떠나면 서울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시원하면서도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동생들과 함께 항구에 모여서 겨울 바다 풍경을 눈에 담고는, 다 같이 사진도 찍었다.

“근데 우리 울릉도 수플레 말이에여. 이따가 우리가 따앗! 하고 등장하면 엄청 놀라겠져?”

“엄청 좋아할 거 같아요.”

“글쎄요. 사연 신청인원이 한 명이잖아요. 나 같으면 엄청 부담될 거 같은데…….”

“그래도.”

내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왔는지는 모르고 있을걸.”

“뭐, 그건 그렇네요.”

그런 이야기를 하며 내 고향 제작진들에게 받은 미니 깃발을 저마다 손에 쥘 때.

웅성웅성.

어디선가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리니 거의 백여 명이 넘는 주민들이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

오징어 손질을 하다 온 것처럼 보이는 분도 있고, 어선에서 내려와 구경하는 분도 있고.

‘뉴블랙’ 하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펄럭-

인파 사이에서 걸어 나오는 중년 남자와 함께 현수막이 돌돌돌 펼쳐지고 있었다.

[★인기가수 뉴블랙의 울릉도 방문을 환영합니다★]

지금 내 고향 제작진이 ‘아’ 하며 말했다.

“군수님이 나오셨네.”

“……?”

“촬영 협조 관련해서 어제 공문을 보내 놨거든요. 그것 때문에 나오신 거 같은데.”

“원래 이렇게 군수님이 나오고 그러나요?”

조연출이 흠칫하며 말했다.

“아뇨. 마을 이장님들이 나타나는 건 봤어도 이런 건 처음 보는 경우라서요.”

그때, 우리의 생각이 다른 곳에 미쳤다.

“혹시 여기 주민분들도 그러면 저희가 오는 걸 다 알고 있었을까요?”

“그, 글쎄요…….”

제작진이 ‘몰라… 우리도 몰라…’ 하며 당황하고 있는 동안 울릉군의 군수님이 껄껄 웃으며 다가왔다.

“아이고오! 뉴블래애액!”

“안녕하세요!”

“아이고오, 인물이 다들 훤칠하시고! 이렇게 오늘 울릉군의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낯부끄러운 칭찬에 모두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했다.

저희가요?

팬을 만나러 온 건데, 뭔가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등장한 구원투수가 되어 버렸다.

주변에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우리가 공연 멘트로 ‘지역경제?’ 하고 마이크를 내밀면 ‘와아아아!’ 하고 호응해 줄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뉴블랙처럼 초인기 가수가…….”

“아으, 예에…….”

초인기, 초일류 가수 같은 말씀을 하실 때마다 내 손이 티라노의 앞발처럼 오그라들고.

리혁이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아무튼! 오늘 잘 부탁합니다!”

“자! 사진 한 방 찍습니다아!”

이유는 모르겠지만 주민 분들이랑 기념사진도 찍고.

제작진까지 같이 껴서 얼떨결에 ‘울릉도! 화이팅!’ 하며 주먹을 꼭 쥐는 포즈를 취했다.

그렇게 열렬한 환영 인사가 끝나자마자 제작진과 함께 부리나케 렌트카를 나눠 타고 도망쳤다.

“어우, 민망해.”

우리가 으아으 하면서 추위와 부끄러움에 오그라든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아니, 인기 있는 가수라고 하는 건 틀린 말은 아닌데.

우리 대부분이 은은한 관심을 좋아하는 관종이라 이런 류의 관심에는 내성이 없는 편이었다.

차를 운전하던 민기 형이 말했다.

“그만큼 너희가 지금 인지도가 확 늘어나서 그런 거지. 다른 아이돌이었으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걸.”

“그래요?”

“내 고향 첫 출연했을 때랑 또 지금의 대중 호감도나 인지도를 체크하면 차이가 엄청 나긴 할 거야. 이삼십 대야 너희 모르면 간첩이고, 중노년 세대한테는 지금 내 고향이 주세한 급이니까.”

“……원했던 대로 되기는 했는데 민망하네요.”

젊은 세대에게는 미튜브, 중노년 세대는 ‘지금 내 고향은’ 방송이나 지역 모닝 뉴스로 찾아가고.

겨울 소극장 투어.

팬들과 만나는 김에 대중적 인지도도 더 챙기자고 기획한 이번 전국 투어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를 한 듯했다.

아이돌에 대해 아주 잘 모르던 일반인들도 ‘뉴블랙! 엄청 유명한가 보네!’ 하는 반응이 나오기도 하고.

다만…….

사람들한테 우리 이름을 더욱 더 널리 알려야지 하는 홍익인간의 마음으로 시작하긴 했지만.

“……생각한 것보다 관심을 더 받아 버린 거 같아요.”

이 정도로 반응이 좋을 거라곤 회사 사람을 비롯해서 우리도 전혀 예상을 못했는데.

최초에 반응을 폭발적으로 만든 특이점 때문이었다.

“이게 다 중현이가 음머를 해서 그런 거야.”

“제가요?”

“맞아여. 중현이 형이 음머어~ 한 순간부터 이렇게 인지도가 과하게 생긴 거라구여.”

“그럼 좋은 거 아냐?”

“비가 내리면 농사에 좋은 거지만, 홍수가 내리면 농사가 슬퍼지잖아여.”

“아하.”

최초로 적절하게 비유한 막내의 대사에 우리가 공감했다.

나름 폭우 정도까지의 반응을 기대했는데 갑자기 홍수가 내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후우, 후우…….”

“나는 관종이다. 나는 적응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대한 부담을 떨쳐내는 가운데, 다음 촬영지를 찾아가는 동안.

어느 마을에 걸린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경★인기 5인조 뉴블랙 울릉도 방문★축]

그걸 보는 순간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래도 우리 수플레가 사는 동네에는 저 현수막이 안 걸렸을 수도 있어.”

“맞아요.”

“여기가 큰 마을이니까 걸렸겠죠.”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안내 방송이 귀에 들려왔다.

아아- 주민 여러분-

오늘 인기 가수- 뉴블랙이 울릉도를 방문해서 피비에쓰 내 고향도 찍고, 팬에게 노래도 들려주는 팬싸비스도 한다고 합니다-

많은 협조 부탁 드리겠습니다아-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차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

동시에 긴장하고 있을 수플레의 모습이 그려졌다.

울릉도에서 사연을 접수한 팬은 딱 한 명.

내 가수가 섬에서 한 명밖에 없는 팬인 나를 만나기 위해 왕복 6시간의 바다를 넘어와 찾아온다고 생각하면.

“……얼른 찾아가야겠네.”

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닉네임 ‘오징어 공주’는 침대에 앉아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올해 17살.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떨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침착…….’

꺄하핫 하는 뉴블랙의 얼굴이 천장에서 아른거렸다.

“으아아!”

침착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오전에 뉴블랙이 온다고 방송으로 계속 떠들어댔을 때만 해도 애써 웃으며 넘겼다.

‘나 말고 다른 팬들이 또 있겠지.’

…싶었을 때, 레몬 엔터에서 문자가 왔다.

멤버들이 저녁 무렵 방문할 거라는 소식과 함께.

울릉군 유일의 당첨자인 ‘오징어 공주’님의 자택 주소를 써 달라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으아아아…….”

이럴 줄 알았으면 닉네임을 이딴 식으로 짓는 게 아니었는데.

‘아니.’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냐고.

당첨이 되었어도 강릉이라든가 하는 곳에서 단체 관람을 할 줄로 예상하고 있었지.

강릉으로부터 180km 가까운 거리를 3시간 동안 배 타고 올 줄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

부담감 100배였다.

행복하긴 한데 다섯 멤버와 한 자리에서 단독으로 대면할 것을 상상하니 괴로웠다.

“아으으…….”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하지.

오프라인 스케줄 등은 아직 한 번도 참여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완전 다른 사람이면 어떡하지.’

TV 속이나 미튜브 등에서 보던 모습으로만 알고 있던 터라 실제 성격은 어떤지 몰라 떨렸다.

상냥한 미소로 유명한 틴스피릿도 오프라인에서는 험악하고 착하다는 루머가 많았다.

드르륵.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얘, 희원아. 뉴블랙은 언제 온대?”

“응? 뭐… 저녁에 온다는 거 같은데.”

“뭐 먹을 거라도 만들어 놔야겠네. 출출할 수도 있으니까.”

“…….”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서 그냥 대답을 안 했다.

“아으으…….”

그 동안 학교 친구들의 단톡방은 시끌시끌했다.

지금 어디인데 뉴블랙 봤다, 지금 낚시하다가 월척을 낚았다, 산을 축지법처럼 뛰어다니더라.

후기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수플레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도 ‘실시간 울릉도ㅋㅋㅋㅋ’ 하면서 사진이 올라올 때.

점점 뉴블랙이 자신이 살고 있는 곳으로 넘어오는 게 느껴졌다.

점점 소식이 뜸해지기 시작할 때쯤.

트르르륵-

자동차가 자갈을 밟으며 마당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할 때.

딩동- 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현관 쪽으로 달려가 섰다.

뭔가 요란하고 하찮은 웃음소리들과 함께 잘생긴 그림자들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 가수들인지 뭔지 하는 애들이 왔어?”

“응.”

“어이구. 뭔 집까지 찾아온대냐.”

귀찮다는 기색이 역력한 아버지가 문을 달칵 열었을 때.

화아아악.

문을 여는 순간 환한 빛이 들어왔다. 역광으로 보이는 미남들의 실루엣과 함께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중현아. 왕봉이 꺼라.”

“네. 형.”

온세상을 널리 밝히던 불빛이 탁 꺼졌다.

횃불 같은 응원봉을 든 중현 앞에 뉴블랙 멤버들이 뽀얀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짜잔!”

다섯이 동시에 현관에서 ‘서프라이즈’ 하듯 손을 펼쳤다.

마치 우리가 선물이야 하듯 하는 턱받침.

“우리가 왔어요!”

“엇, 어…….”

“우리 오…….”

뉴블랙 멤버들이 닉네임을 부르려다가 멈칫했다.

우주가 어, 하곤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한치 공주님.”

“엇.”

“아버님, 어머님도 처음 뵙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보기만 해도 세상이 밝아지는 수려한 얼굴.

엄마가 ‘어머머’ 하는 동안 아빠는 말없이 바라보고는 ‘들어오게’ 하고 말했다.

이윽고 거실에 세팅된 과일상.

묘하게 어색한 분위기가 감도는 가운데, 뉴블랙 멤버들이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 뭐냐. 우리 딸이 좋아한다고 그러던데.”

“아, 예.”

또렷한 이목구비 위로 떠오른 선한 미소 때문인지, 아빠의 얼굴에 묘한 호감이 깃든다는 생각이 들 때.

우주가 공손하게 말했다.

“저희가 바로 따님의 가수입니다. 아버님.”

“허락하겠네.”

“……예?”

“……에? 아. 어서들 오게.”

무의식적인 말실수 때문인지 거실에 한바탕 웃음이 감돌았다.

분위기가 점점 편해졌다.

그러는 동안 뉴블랙의 멤버들이 이번 소극장 투어의 취지와 더불어 오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강릉까지 오는 것도 쉬운 게 아닌데, 저희가 오라가라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않을까 싶고.”

“울릉도도 꼭 보고 싶어서 왔어여.”

“혹시 몰라서 저희가 선물도 좀 챙겨 왔는데…….”

멤버들이 봉투를 바스락거리며 내밀었다.

“아버님은 저희가 준비한 술을.”

“어이구!”

“어머님은 화장품 세트…….”

“어머!”

빈손으로 오는 게 예의가 아닐 것 같다고 내민 선물에 부모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맨날 ‘테레비에 나오는 쟤네가 뭐가 좋나’ 하던 부모님의 눈에 엄청난 만족이 깃들었다.

“술을 받은 김에 자네들도 먹겠나?”

“저희가 미성년자도 끼어 있기도 하고. 제 주량이 한 방울입니다. 아버님.”

“흐으음. 술도 안 하고, 좋구만.”

아빠가 뉴블랙을 바라보는 표정이 더욱 더 밝아졌다.

‘아니야. 아빠 그거 아냐.’

꼭 사윗감을 보는 듯한 눈에 민망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어서 오징어처럼 흐물거릴 때.

반짝반짝.

그녀를 바라보는 멤버들의 눈이 반짝였다.

“참, 혹시 저희 중에 누구를 제일 좋아해여?”

“엇…….”

“꼭 제가 최애라고 말하라는 건 아니지만, 멘트할 사람을 정해야 돼서여.”

“리혁 오빠요.”

“탁월한 선택이에요.”

뉴블랙의 메인보컬이 싱긋 웃고는 초대장을 내밀었다.

“울릉도 살고 계신 한치 공주님과 가족 분들을, 저희 뉴블랙의 소극장 투어 ‘만남.’”

“울릉도에서 열릴 그 마지막 공연에 여러분을 손님으로 초청합니다!”

주민들도 초청해서 진행할 공연에 주요 손님으로 초청한다는 이야기에 그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혹시 집에서 노래 불러주는 건 아닐까 부담돼서 근심하고 있었는데.

다행이었다.

동시에 그 빈자리를 채우고 행복감이 밀려 들어왔다.

TV 속에서 보던 그 모습 그대로, 오늘 집을 찾아온 뉴블랙이 안 갔으면 좋겠다고 할까.

“…….”

뭉클하게 바라보고 있는 오징어 공주에게 멤버들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럼 가실까요, 한치 공주님?”

기분은 좋지만, 묘하게 자꾸만 배를 잡고 웃는 부모님들 때문에 속상한 수플레였다.

그래도.

‘너무 좋다…….’

엄청 행복했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   *   *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공연장.

펄럭-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꼈다.

[ 울릉도의 사연 당첨자 - 공주님을 위한 스페셜 공연~! ]

‘공주님이 대체 누고?’ 하는 소리들에 벌써부터 차에서 내리기가 싫어졌다.

‘그냥 오징어라고 써 주지!’

저게 더 민망한데!

지나친 배려에 괴로워지기 시작하는 수플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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