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63화
울릉 한마음회관.
뉴블랙이 공연을 한다는 소식에 모여든 500여 명의 관객이 웅성거렸다.
“마! 저 공주는 대체 누고?”
“…공주님?”
“공주님이 누구야?”
무대 위에 걸려 있는 현수막.
[공주님을 위한 스페셜 공연~]에 공연을 앞두고 이런저런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었다.
과연 공주의 정체가 무엇인지.
“지금 내 고향에서 겨울 음식의 왕은 굴이다 하는 그런 거 아냐?”
“그럼 울릉도 공주님이면 오징어인가?”
“오징어가 뭔 공주야. 그런 공주가 세상에 어디 있어?”
놀랍도록 진실에 근접한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동안, 맨 앞에 앉아 있는 ‘오징어 공주’는 미칠 지경이었다.
“야!”
“오희원, 너도 보러 왔냐?”
“언니, 하이-”
그녀가 얼굴을 알고 있는 고등학교 친구들이나 중학교 후배들이 맨 앞줄에 안내를 받아 앉았다.
뉴블랙 리더의 세심한 배려에 부모님이 감탄했다.
“어머, 어쩜 이렇게 친구들까지 다 챙겨놨대.”
“사람이 참 꼼꼼하네.”
아빠의 중얼거림에 그녀가 동의했다.
흑역사를 설계하는데 있어서 거의 세계적인 건축가 급의 실력을 지닌 우주였다.
어쨌거나 오징어 공주는 울고 싶어졌다.
‘오빠들…….’
오빠들이 나를 수치사로 죽이려고 작정을 한 게 분명했다.
공연 도중에 부끄러워서 죽으면 다잉 메시지로 ‘뉴블랙’을 꼭 써놓을 것이라고 결심했다.
“아빠.”
“응?”
“단톡방에 올리려고 쓰던 거 당장 지워.”
“어흠흠.”
[제 여식이 오늘의 공주입니다]하고 보내려던 아빠에게 눈을 있는대로 흘겨주었다.
부모님이 즐겁다는 듯 웃었다.
그 동안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들 엄청 재미있어 보여.’
너나 할 것 없이 알고 있는 유명인이 왔다는 소식에 주민들의 표정이 들떠 보였다.
평소와 같은 일상에 등장한 새로운 볼거리라고 할까.
들어오면서 받은 책자와 미니 야광봉까지 꼼꼼이 살피면서 떠들썩하게 웃는 사람들이었다.
‘으아아, 공주님…….’
저 사람들이 이제 공주님을 듣고 웃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얼굴이 화끈화끈했다.
가슴이 콩닥콩닥.
하지만 한편으로는 엄청나게 들뜨기도 했다.
자신을 위한 공연.
섬에 살고 있는 단 하나의 팬을 만나러 오기 위해 찾아온 가수에 대한 고마움과 설렘에 가슴이 뛰었다.
두 손을 가슴에 얹은 채 떨림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하는 동안.
타앗-
조명이 암전되면서 주민들이 야광봉을 흔들어 주었다.
이윽고 늘상 TV에서만 보던 가수들이 올라오면서 그 환호가 조금씩 더 커져갔다.
환하게 빛나는 조각상 같은 미모에 근처에 앉아 있던 친구들이 허, 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와…….”
무대 메이크업을 한 덕분인지 완전히 다른 세상의 사람 같았다.
오징어 공주도 꿈틀꿈틀하며 감탄할 때.
관객들의 환호가 멎어들 때까지 생긋 웃고 있던 멤버들이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와아아아—!”
-오늘 저희 뉴블랙의 특별 공연에 와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리더가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갑자기 저희가 공연을 한다고 해서 깜짝 놀라셨을 거예요. 맞나요?
“네에에!”
-거기다가 현수막에 ‘공주님’을 위한 공연을 한다고 해서 더 궁금하셨을 텐데.
-그 공주님이 바로 여기 맨 앞줄에 계세여!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고개를 빼꼼 들었다.
맨 앞줄에서도 자연스럽게 정중앙에 앉아 있는 오징어 공주와 그 가족에게 눈길이 향했다.
아빠, 엄마가 흐뭇하게 웃는 가운데 오징어 공주가 두 눈을 감았다.
소극장 투어와 닉네임 시스템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흘러나온 후에 우주가 웃으며 말했다.
-지금 정중앙에 앉아 계신 오희원 양이 바로 오늘 공연의 주인공이십니다.
-BGM 주세여!
어디 왕국의 대관식에 어울릴 듯한 웅장한 BGM에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동시에 매니저들에게 화환을 건네받은 멤버들.
그들이 무대 아래로 내려와 맨 앞 정중앙에 있는 오징어 공주와 가족들에게 다가왔다.
-축하 드립니다!
-저희 뉴블랙 왕국 울릉도 지점의 제1대 공주에 당첨되셨어요!
부모님에게는 왕관을 씌워주고, 그녀에게는 화관과 꽃다발까지 능청맞게 건네는 모습들에 다들 박장대소 했다.
리혁이 살짝 짓궂은 표정을 띠며 마이크를 내밀었다.
-그럼 공주님의 소감 한 마디 있으시겠습니다.
“후으으…….”
고개를 푹 숙인 채 달달 떨리는 숨소리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특히나 옆에서 구경하던 친구들이 배를 잡고 웃어대면서 오징어 공주가 몸을 꿈틀꿈틀 했다.
“집에 가면 닉네임 바꿀 거예요…….”
귀여운 소감에 모두가 웃었다.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간 뉴블랙 멤버들이 만담을 주고 받듯 말했다.
-그래도 공주님 정도면 무난한 닉네임이죠. 얼마나 닉네임이 예뻐요.
-맞아여.
-저번에 어떤 분은 닉네임이 간장게장 님이셨어요. 회사에서도 계장님이라서 별명이 간장계장이 되셨다고…….
비주의 덧붙이는 말에 사람들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 우주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럼 오늘 공연에 대해 소개를 해볼까요?
-네! 저희 뉴블랙은 관객 맞춤형 가수이기 때문에 오늘 공연 내용을 주민 분들을 위해 조정했어요.
PBS 명곡단에서 불렀던 곡들을 비롯해 다양한 곡의 세트리스트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들어올 때 관객들이 듣고 싶은 곡을 쓴 것 중에서 일부 추첨해서 부를 거라는 이야기와 함께.
-그래서 이렇게 기타도 준비했으니 기대해 주세요.
우주가 의자에 앉으며 어쿠스틱 기타를 들어 보였다.
-자, 그럼 준비 되셨나요?
“네에에에!”
멤버들이 짐짓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와. 환호성을 보니까 오늘 공연 반응에 대한 걱정은 덜어도 되겠네요. 그죠?
-저 지금 콘서트에 온 줄 알았어여.
-저희가 관객 분들이 호응을 많이 해주셔야 힘을 내는 타입이기 때문에 꼭 응원 부탁 드릴게요.
메인보컬의 말에 관객들이 호응을 해 주었다.
이윽고 본 공연이 시작됐다.
앨범 수록곡과 타이틀인 ‘겨울잠’을 비롯한 노래들에 주민들이 ‘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다 어디서 들어봤는데…….’
요즘 들어 TV를 틀거나 하면 예능 등에서 배경음악으로 깔리던 노래들이었다.
겨울 느낌이 물씬 나는 곡들.
가사까지 다 알고 있는 오징어 공주와 젊은 관객들은 노래를 따라 흥얼거렸다.
그리고.
“……!”
최애인 메인보컬이 중간중간 눈을 마주칠 때마다 따스하게 웃어주는 바람에 심장이 멎는 듯했다.
순식간에 얼굴이 화끈거린다고 할까.
눈이 마주칠 때마다 눈이 닫히며 기다란 속눈썹이 사르르 떨리는 게 가까운 거리에서 보였다.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관객들에게 호응을 유도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동안 종종 팬을 바라보며 웃곤 했다.
“와아아아…!”
공연의 반응은 성공적이었다.
어찌나 호소력이 짙은지 뉴블랙이 마이크를 들고 가락을 읊을 때마다 사람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듯했다.
슬플 때는 같이 슬픈 듯하다가도 즐거울 때는 같이 즐거웠다.
특히.
-자, 이제 야광봉에 나눠드린 미니 종을 달아주세요!
무대에 조교처럼 선 중현이 미니 야광봉에 자그마한 종을 어떻게 다는지를 시범으로 보여주었다.
-저희가 짤랑 하고 흔들 때마다 같이 흔들어주시면 돼요.
“네에에-!”
-크리스마스는 이미 지났지만, 지나간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한 번 내어 볼까요?
크리스마스 캐럴인 ‘Merry Christmas’에 이르러서는 즐거운 웃음이 여기저기서 감돌았다.
메리 크리스마스
이 날만 기다리며
달력을 넘겨왔죠 (다 같이!)
리혁이 첫 소절을 마칠 때쯤에 율동처럼 몸을 움직이던 멤버들이 미니 야광봉을 흔들었다.
사람들이 따라 흔들면서 종소리가 짤랑- 했다.
동시에 짧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뭔가 같이 캐럴에 참여하는 듯한 느낌이라 재미가 있었다.
후렴구에서 썰매를 타- 타타타- 할 때마다 관객들이 리듬에 맞춰 미니 종을 짤랑짤랑 흔들었다.
초록색과 빨간색의 알록달록한 조명들.
이미 크리스마스는 지난지 오래지만 공연장에는 그때를 떠올리게 만드는 따스한 공기가 감돌았다.
-자, 그리고 오늘 저희가 추첨한 신청곡들인데요.
들어올 때 관객들이 적었던 신청곡 중에서 뉴블랙이 알고 있는 노래들을 선정한 세트 리스트가 이어졌다.
-‘어부의 노래’를 신청해주신 배종욱 선생님 계시나요?
“저예요!”
-10대셨군요.
뽀얀 얼굴의 중학생이 신청한 올드한 노래에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노래를 신청한 사람들에게 신청한 이유를 물으며 이런저런 토크가 오가기도 했다.
우주가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며 반주를 넣고 노래를 부를 때마다 주민들의 호응이 이어졌다.
그렇게 공연이 막바지로 흘렀을 때.
-이제 마지막 곡을 앞두고 우리 공주님, 오희원 양의 사연 당첨 이벤트를 진행할 텐데요.
“엇…….”
-일단 사전에 공주님의 허락을 받았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사연을 읽고 저희가 노래를 불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징어 공주가 다시금 꿈틀꿈틀하는 가운데, 멤버들이 사연이 적힌 종이를 리혁에게 건넸다.
사람들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이 그녀와 무대를 번갈아 훑는 가운데.
메인보컬의 청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겨울에 얽힌 사연을 보내주셨는데요. ‘매년 12월이 될 때마다 부모님을 바라보곤 해요.’
부모님의 시선이 딸에게 짐짓 흘러갔다.
-‘직업 군인인 저희 오빠가 얼마 전에 결혼을 했거든요. 원래도 타지에서 복무하느라 휴가가 아니면 올 시간이 부족했는데, 최근에는 육아까지 겹쳐서 집으로 올 시간이 거의 없어진 것 같아요.’
그녀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부모님과 동생에게 안부전화를 자주 하는 오빠긴 했지만 이전과 다르게 거의 올 시간이 없어진 터였다.
-‘워낙 오빠가 살갑고 애교 많은 성격인데 저는 반대거든요. 겨울만 되면 적적해 하시는 부모님에게 조금 더 살갑게… 더 잘해드리고 싶은데, 이런 쪽에 자신이 없어서 걱정이에요.’
엄마아빠가 쳐다보는 모습에 왠지 모를 민망함을 느끼던 그녀가 고개를 살짝 숙일 때.
양쪽에서 손이 하나씩 그녀가 팔걸이에 올린 손으로 올라왔다.
부모님이 귀엽다는 듯 바라보고 있는 동안 사연이 이어졌다.
붙임성이 적어서 부모님이 나 때문에 적적해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있다고 하는 사연이 끝난 후.
-영상 편지 같은 사연이었네요. 공감이 많이 가는 사연이었어요.
우주가 마이크를 들었다.
-저도 할머니가 계시는데, 매번 어떻게 해야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을 하거든요.
-…거기서 더 가까이요?
메인보컬의 당황한 물음에 리더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왠지 모르게 다른 멤버들까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동안, 마이크가 오징어 공주의 부모님에게 돌아갔다.
-예, 우리 딸내미가 보낸 사연을 잘 봤고요.
아빠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어느 정도 적적한 건 사실이지만, 뭐 특별하게 우리 딸내미 때문에 더 외롭고 그런 게 말이 되겠습니까.
-아하.
-굳이 딱 하나 불만이라면 가수 팬하는데 시간을 너무 쓰지 말고, 공부를 했으면 좋겠… 앗.
그 가수가 바로 앞에 있다는 것을 순간 망각한 아빠의 말에 관객들이 큰 웃음을 터뜨렸다.
뉴블랙 멤버들이 답했다.
-드디어 밝혀졌네여! 저희가 원흉이었어여!
-그런 거였네!
막내의 발랄한 외침에 2차로 웃음이 터졌다.
리더가 동생들에게 눈짓했다.
-자, 일단.
-죄송합니다~
다섯이서 손을 잡고 공손히 꾸벅하는 모습에 모두가 웃었다.
그러곤 오징어 공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 그리고 우리 희원 양은 공부?
“열심히 할게요…….”
-어머님도 말씀 한 마디 해주실 수 있나요? 따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라든가.
왕관을 쓴 엄마가 딸의 손에 부드럽게 잡고 말했다.
-저도 적적하거나 외로운 건 별로 없고. 지 빨래는 지가 좀 갰으면…….
-따님?
“갤게요…….”
오징어 공주가 몸을 배배 꼬았다.
만약에 전투기처럼 탈출 버튼이 있다면 눌러서 피융- 하고 의자채로 날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사연이 마무리 된 후.
-저희가 어떤 노래를 선정할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가족에 관한 사연에 딱 어울리는 노래가 있어요. 그걸 불러드리고 싶네요.
우주가 바닥에 내려놓았던 기타를 들었다.
-바로 ‘밤바다’라는 노래인데요. 제가 어렸을 때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기억을 모티브로 만든 노래예요.
이윽고 연주자의 손이 기타의 현을 부드럽게 쓸었다.
옛 기억의 향수를 자극하는 부드러운 연주와 함께 노래에 대한 짧은 설명이 이어졌다.
그리고 멤버들의 마이크가 하나씩 하나씩 올라갔다.
다섯이서 동시에 허밍을 하는 동안 관객 모두 밤바다의 잔잔한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좋다…….’
소극장 투어를 하면서 불렀던 걸 영상으로만 보았는데 직접 보니 엄청 좋았다.
모두 앞에서 사연이 공개된 건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나쁘지 않기도 했다.
양쪽으로 하나씩 올라온 부모님의 손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감촉도 그렇고.
직접 듣는 서정적인 가사도 그렇고.
다른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부모님도 뉴블랙이 부르는 ‘밤바다’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있었다.
팬 하는 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몽글몽글한 구름처럼 돌아다니는 동안.
관객들도 잔잔한 노래에 어울리는 박수를 쳤다.
그때 그 밤바다
당신의 향기
그때 그 밤바다
당신의 목소리
밤바다의 후렴구를 들으며 왠지 모르게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연상된다는 인상과 함께.
오늘 공연을 보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뉴블랙의 전국 투어, 그 마지막 무대인 울릉도에서의 공연이 성공적으로 막을 내리고 있었다.
* * *
번외편 격의 무대였던 울릉도 공연은 Y앱 중계로 진행하지 않았지만, 그 소식은 금세 빠르게 퍼져 나갔다.
-뉴블랙, 울릉도에 있는 팬 ‘오징어 공주’ 위한 스페셜 무대 꾸몄다
-울릉도 팬 위한 뉴블랙 깜짝 공연, “우리가 올 줄은 몰랐지?”
-[OH!초점] ‘오징어 공주가 누구?’, 울릉도 명물 오징어는 더 맛있는가?
지금 내 고향과 함께 ‘오징어 공주’에 대한 소식이 인터넷에 퍼지고 있었다.
아이돌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일반 커뮤니티에도 해당 공연에 대한 소식이 널리 퍼지는 중이었다.
주로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닉네임의 중요성.jpg’로 올라오는 중이었다.
-아이고ㅋㅋㅋㅋㅋ 너무 부러워라ㅋㅋㅋㅋㅋㅋ
-이얔ㅋㅋ 진짜 좋겠다 가수가 공연까지 하러 오고
-ㅋㅋㅋ전국적인 유명인사행
-팬을 향한 가수의 흑역사 내리사랑
-(흑역)사랑해
-미친 일화 같아서 뉴블랙이야?? 했는데 찐으로 뉴블랙이네;
-‘울릉도에 있는 팬을 위해 직접 6시간 거리를 찾아가 공연..’ 까지만 들으면 존나 훈훈인데
-어림도 없지 뉴블랙 끼얹기
-저 팬은 행복할까
-행복은 모르겠고 항복한 거 같은 기분일걸
-근데 저렇게 막 한 명 잘해주고 그러면 아이돌 팬들이 막 욕하고 그러지 않나??
SNS에 올라온 인증샷을 보며 누군가 걱정을 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1대 공주에 등극한 우리 오징어 공주님ㅋㅋㅋㅋㅋㅋㅋ
-와 이건 특혜 아닌가요?? 공주님이라니 아 너무 부러워ㅋㅋㅋㅋㅋㅋ
-우리도 디즈니처럼 뉴블랙 프린세스 갑시다
-보기 전에 내가 기대한 것 : 감동일화 / 보고 나서 느낀 것 : 내가 아니라는 안도감
-우리도 닉네임 밝혀지만 지옥갈 사람들 많지..
-우주 오빠 나랑 결혼해 난 9살 이런 거였어봐
-원래 규호정수리영역 0점이었는데 저거 보고 그냥 수리영역0점으로 바꿈ㅋㅋㅋㅋ
-근데 그 팬분 어떡해.. 울릉도에 고등학교 하나라며
그 가수에 그 팬답게 오징어 공주다 에베베 하고 수플레들이 깔깔 웃고 있을 때.
당사자는 몹시 기쁘면서도 괴로워하는 중이었다.
반짝반짝하는 핸드폰.
친구들끼리 모인 톡방이 계속 반짝였다.
김서연 [(말을 탄 왕자님의 사진)]
김서연 [여보시게]
김서연 [여기 우산국 공주가 있다고 들었는데 자네 보았나?]
박성훈 [맞아유!]
박성훈 [지가 두 눈으로 분명히 봤시유!]
정체를 확인하는 신데렐라 구두처럼 오징어를 가져왔다고 드립에 ‘오징어 공주’가 분노했다.
나 [꺼져]
나 [다 꺼져버려]
이제 고등학교 학기가 시작되면 같은 반 애들이 ‘공주님이다 엌ㅋㅋ’ 할 모습이 상상이 갔다.
“으아아아아!”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겨주고 간 뉴블랙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
“아. 개운하다.”
“그러네요. 뭔가 개운하고.”
숙박 시설에서 잠을 자고 난 우리가 산발이 된 머리로 서로를 바라보고는 흐뭇하게 웃었다.
전국 투어에 관한 모든 스케줄이 끝난 덕분인지 개운하고 행복했다.
쏴아아아-
어디선가 들려오는 파도 소리도 귀에 달콤하게 들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확인하는 망고 차트에서도 겨울잠이 여전히 1위에 머물러 있고.
전날의 울릉도 소식이 연예면에도 떠올라 있었다.
“정말 고생 많았어. 얘들아.”
“형도 고생했어요.”
그러곤 멀찍이 창가 너머의 어스름한 새벽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미안해요. 수플레.”
“우리 징어 공주님 화이팅…!”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동생들과 함께 외투를 챙겼다.
새벽 아침.
점심 무렵에 배를 타고 나갈 예정이라 스케줄이 비어있긴 했지만, 아침 일정이 따로 있었다.
“해 뜨는 거 보러 갑시다.”
“고고!”
“중현아, 왕봉이도 챙겨 오고.”
매니저 형들과 함께 나간 동쪽 바다.
대한민국 최동단에 찾아온 김에 해 뜨는 걸 보며 소원을 빌기 위함이었다.
추위에 대비하기 위해 꽁꽁 싸맨 채 바닷가로 이동했다.
해가 뜨기 전이라 어두운 바닷가.
“왕봉이 ON.”
환한 불빛이 주변을 밝혀주었다.
소원을 빌 때 키고 있으면 등대처럼 운치가 있을 것 같아 들고 온 물건이었는데 들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아, 춥다아…….”
차가운 겨울 바다 바람에 몸을 부르르 떨면서 모였다.
펭귄처럼 패딩을 입은 채로 중현이 곁에 옹기종기 모여 붙었다.
“근데 경치는 진짜 좋다.”
“그러게여. 우리 기왕 울릉도 온 김에 독도라도 구경 갈까여?”
“오. 좋다. 한 번 가볼까?”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옆에서 코를 훌쩍이며 듣고 있던 민기 형이 말했다.
“거기도 3시간 동안 배 탄대.”
“…….”
“갈 거야?”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는 동안 동생들과 함께 발을 동동 굴렀다. 10분 정도 기다리면 일출 시간이라고 들었다.
처음에는 공연도 다 끝나고 후련하고 시원했는데.
손에 핫팩이 식어가면서 점점 ‘춥다, 배고프다’ 하는 생각이 머리속에 맴돌 때.
“저기.”
조업을 나가는 것인지 준비 중이던 어민이 다가왔다.
패딩 털모자에 마스크까지 쓰고 있는데 우리를 알아본 건가 싶었을 때.
‘맞습니다. 뉴블랙입니다’ 하며 정체를 드러내려고 결심을 하려던 순간.
“그거 말이야. 라이트.”
“예?”
“손에 든 거. 라이트.”
“이거요?”
“응. 그거.”
상대의 손가락이 향한 곳은 왕봉이였다.
“그 공업용 라이트는 어디서 사나?”
“이거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우리가 눈을 깜빡깜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