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64)화 (364/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64화

“공업용이요?”

“공업용이 아니야?”

“아뇨. 이건…….”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고민하고 있을 때, 중현이가 왕봉이를 들어 보였다.

“이건 응원용 라이트예요.”

“응원용?”

“네. 일할 때 힘 나라고 흔들어 주는 그런 용도예요.”

“아, 공장에서…….”

리혁이가 말을 하려다 말고 숨을 들이켜고 지호가 키득거렸다.

꼭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맞은편 아저씨의 머릿속에서 그릇된 상상이 그려지는 게 보였다.

“요상한 용도구만…….”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공장에서 왕봉이를 붕붕 흔드는 상상을 하시는 듯했다.

손가락으로 이마를 긁적긁적 하시던 어부가 말했다.

“그나저나 지금 보니까 얼굴들이 다 낯이 익는데.”

“네, 저희예요.”

다섯이서 마스크를 쏙 내리고 웃자 상대가 오옹 하는 소리를 냈다.

“아, 뉴블랙이구만.”

“네.”

“지금 오징어도 얼어 디지는 날씨인데, 새벽부터 왜 여기 나와 있어? 춥게.”

“소원 빌려구요.”

“어휴, 그런 건 그냥 집에서 빌어~”

동네 이웃처럼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며 웃었다.

‘지금 내 고향은’과 콜라보를 한 덕분에 생긴 장점이자 단점 한 가지.

이제는 어르신들이 우리를 봐도 놀라는 빈도가 현저히 줄었다고 할까. 동네에서 공동으로 키운 손주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게 응원봉이다?”

왕봉이를 건네받아 만지작거리던 어부에게 지호가 말했다.

“넹, 노래 부를 때 팬분들이 이 자식아 더 힘 내! 하는 목적으로 흔들어주는 봉이에여.”

“오호…….”

“물론 이건 파는 건 아니구여. 저희가 특별 제작한 거.”

우리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비주가 흠칫하며 물었다.

“형, 저 갑자기 응원봉 이름이 헷갈려요. 이거… 월봉이?”

“아니야. 김원봉?”

“그건 독립운동가구요. 이 사람아. 김선… 아냐. 김봉달이 아니고! 달봉이!”

“아. 달봉이.”

원래 이름을 떠올리며 가까스로 봉슈탈트 붕괴 현상을 극복할 수 있었다.

우리가 어민 분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이게 파는 버전이에요.”

“오호라. 뭔 봉이?”

“김달봉이요.”

밝기를 최대 출력으로 하시더니 쓸 만하다며 좋아하셨다.

“이게 라이트랑은 다르게 빛이 퍼지니까 좋구만. 등불 같고.”

“네네.”

“가격도 싸고. 어디서 사면 되나?”

“저희 굿즈샵이라고 있어요. 주소 찍어드릴까요?”

지호가 핸드폰에 주소를 톡톡톡 찍어서 드렸다.

원석이 형이 주변에서 이건 무슨 대화인 건가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어이, 김씨!”

“아 왜 또.”

“얼른 와 봐! 얼른! 여기 아주 신통방통한 게 있어!”

상대가 근처에 있던 다른 어민 분들에게 손짓을 했다.

이윽고 다른 어민 분들도 ‘호오’ 하며 흥미를 보이기에 우리가 궁금증을 담아 물었다.

“그런데 이건 어디에 쓰시게요? 오징어잡이?”

“배 타고는 못 쓰지. 바닷물 버티라고 만든 기계도 맨날 고장 나는 판에.”

“그럼…?”

“섬이라서 밤 되면 밤길이 엄청 무서워.”

험상궂은 외모의 아저씨들이 ‘밤길 너무 무서워여…’ 하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핸드폰 라이트로 비춰도 무서울 때가 많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는 한편.

우리에게 굿즈샵 주소를 받아든 아저씨들이 가장 흥미를 보이고 있는 건 바로.

“허어……!”

“이, 이건 어디서 사나?”

“이야, 이게 불이 막 돌아가네! 노래방이 따로 없어!”

대왕님 같은 자태를 자랑하는 왕봉이었다.

특히나 맨 밑에 자가동력 손잡이가 달린 게 아저씨들의 로망을 자극한 것 같다고 할까.

“오오…!”

성능이나 기능을 하나씩 설명할 때마다 주변에 둘러싼 사람들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왕봉이에겐 사람의 소유욕을 자극하는 뭔가 있는 게 분명했다.

대표님도 두 개 만들어서 하나 가져간 것도 그렇고.

“이건 비매품이에요.”

시무룩해 하는 어부들이 나중에 팔게 되면 꼭 알려달라고 말을 해서 알겠다고 웃었다.

배로 향하면서도 고개를 계속 돌리는 게 왕봉이에 못내 미련이 남는 듯했다.

우리가 ‘고기 많이 잡으세요!’를 외치며 달봉이를 흔들어주었다.

“형. 회사에 돌아가서 왕봉이 얘기 해볼까요?”

중현이가 말했다.

“수플레들도 전부터 엄청 사고 싶어 했잖아요. 쓸모없지만 한 대 정도는 가지고 싶다고.”

“그러게. 진짜 얘기해볼까?”

“단가 때문에 성능은 좀 다운그레이드해서 팔아야 될 걸요.”

전부터 수플레들에게 수요가 있었던 왕봉이의 판매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을 때.

파란 하늘을 날아다니는 갈매기가 보였다.

“이야. 날씨 진짜 좋네.”

“그러니까여.”

그리고 그 순간.

침묵이 감돌았다.

“하늘이 밝아…?”

“밝네여…?”

“…….”

“…….”

왕봉이에 정신이 팔려서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을 때, 이미 해가 두둥실 떠올라 있었다.

매니저 형들은 아까부터 두 손을 모은 채 중얼중얼 하고 있었다.

“와, 이 치사한 사람들.”

민기 형과 원석이 형의 입가가 꿈틀하며 살짝 올라갈 때.

우리도 잽싸게 두 손을 모았다.

“야야! 소원 빌어! 소원!”

이미 두둥실 떠오른 해님을 바라…….

화아아악-

일출 무렵의 해가 아니라서 그런 걸까.

세상의 모든 왕봉이를 합친 듯한 해님의 환한 불빛에 우리가 곁눈질로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다.

각자 가족의 만수무강과 수플레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한 후.

“기왕 소원 비는 거니까 막 크게 질러여.”

다 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모았다.

“앨범이 잘 돼서 천만 장 팔게 해 주세요.”

“해님, 언젠가 저희가 주경기장에서 콘서트를 열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세요.”

“리혁이한테 들었는데 소원은 구체적으로 빌어야 한대요. 10년 내로 뉴블랙 앨범 타이틀곡 전세계 차트 1위 하게 해 주세요. 이렇게.”

중현이의 말에 나와 비주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그러면 소원 비는 주제에 너무 건방진 거 아냐? 소원 맡겨놓은 사람도 아니고.”

“흐음. 그런가?”

해님의 심기를 거슬러도 되느냐 마냐를 두고 토론을 할 때, 나머지 둘도 소원을 빌었다.

“먼 훗날 역사 교과서에 이름이 남게 해주세요. 정 힘들면 이 사람들 빼고 저 혼자라도…….”

“해외 갈 때 개인 비행기 타고 갈 만큼 성공하게 해주세여. 물론 관리비는 공동이지만 소유주는 저인 걸로….”

정말이지 양심이라고는 1g도 없는 소원들이었다.

물론 나머지 소원들도 터무니없기는 마찬가지여서 우리끼리 웃음을 터뜨리고 있을 때.

매니저 형들과 함께 셀카를 찍고는 해님 앞에 섰다.

“슬슬 타이밍이 됐는데.”

보통 우리가 꼭 소원을 빌거나 그러면 하늘에서 ‘양심 좀 챙겨’ 하듯이 무슨 일이 벌어지곤 했다.

저번에 소원을 고이 담아 날렸던 풍등도 화려하게 불타 버리고.

내가 원래 이렇게 미신 같은 걸 믿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 때.

아니나 다를까.

중현이가 손가락으로 먼 하늘을 가리켰다.

“저기 봐요. 해 앞에 먹구름이 지나가요.”

“그러네.”

“어엇! 오징어 모양이에여!”

오징어 모양의 구름이 태양 앞을 지나가는 모습에 우리가 멍하니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건 무슨 징조지.

중간에 눈구멍도 뚫려 있어서 그런지 꼭 오징어 공주가 두 눈을 빛내며 복수 선언을 하는 듯했다.

*   *   *

울릉도에서 돌아온 후.

하루 정도 푹 휴식을 한 우리는 바쁘게 다음 일정을 소화했다.

“아이고, 삭신이야.”

“에궁..”

전국 방방곡곡을 열심히 돌아다녀서 그런지 가만히 있기만 해도 몸이 축축 처졌다.

하지만 그런 피로를 이겨내야 할 만큼 밀린 스케줄이 많았다.

“둘 셋!”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회사 복도에 설치된 카메라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KG 텔레콤에서 온 관계자들이 촬영을 하는 가운데, 내가 손을 모으고 환하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KG 텔레콤 가입자 여러분! 즐거운 설 명절 보내고 계시나요?”

“드디어 2016년! 희망찬 해가 밝았습니다!”

“그럼 저희 뉴블랙과 함께 하는 안전~ 안전~ 안전 운전해! 명절 귀성길 안전 캠페인 송! 한 번 들어보실까요?”

전방주시- 전방주시- 하는 중현이의 랩과 함께 ‘졸음은 No~no~no!’ 하며 율동을 췄다.

관계자들이 만족한 얼굴로 손뼉을 쳤다.

“괜찮으신가요?”

“네. 진짜 마음에 들어요. 이대로 가도 될 것 같은데요? 정말 고생하셨어요.”

“잠시만요.”

찍힌 영상을 동생들과 함께 모니터링 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죄송한데 저희 한 번 더 가 볼게요.”

“넵!”

그렇게 몇 번의 촬영을 마친 후, KG 텔레콤 관계자들이 대만족한 얼굴로 영상을 챙겨갔다.

“자, 다음!”

이번에는 우리가 찍어서 보내는 영상이었다.

“Hello, K-Net!”

“네, 벌써 2016년이 된지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났는데요. 다들 설 명절 잘 보내고 계신가요?”

“설 명절, 체력 충전 타임입니다아!”

“올해 상반기, K-Net에서 정말 기가 막힌 프로그램들이 준비가 되어 있죠?”

프로그램 명단을 설명하고 나서 싱긋 웃었다.

“그리고 저희 뉴블랙의 여행 리얼리티도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

“기억~ 기억~ 오래 기억하기~!”

“그럼 풍성한 설 명절 되시고요.”

이어서 나와 리혁이가 영어로 K-Net 시청자들에게 설 명절을 설명하고 새해 복 받으세요 하고 인사했다.

“Happy new year~!”

어워드 때도 느꼈지만 전 세계인이 보는 K팝 방송 같은 느낌을 꼭 주고 싶어 하는 모양이었다.

“자, 다음! 또 갑시다!”

PBS 신년 인사를 비롯해서 미튜브와 Y앱에 올릴 새해 인사까지.

광고주를 비롯해서 정말 여기저기서 새해 인사를 의뢰한 까닭에 인사 하나 찍는 것만 2시간 걸렸다.

모두에게 휴일이지만 가수에게는 명절 시즌이 대목이라 눈 뜰 새 없이 바빴다.

앨범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나서 프로듀서인 하승주와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식사가 아니라 전화 통화를 할 시간조차 없었다.

-뉴블랙, PBS ‘도전 명곡단’ 설 특집 생방송 패널 출연

-TBC 설 특집 파일럿 ‘넌 누구냐?’, 담당 PD “뉴블랙 스페셜 게스트로 출연예정”

-TBC ‘라디오 타임’, 뉴블랙曰 “내 고향 출연 후 인지도 변화 느낀다”

귀성이나 귀경길이 한창일 때 방송 되는 라디오에도 가서 잔잔한 토크도 진행하고.

대부분 설 특집 파일럿 예능이었다.

파일럿은 대개 TV로 시청자들이 몰리는 설이나 추석 시즌에 1회성으로 내보내는 특집 기획 예능을 말한다.

그러다가 시청자들에게 반응이 좋으면 정규 편성해서 런칭하기도 하고.

주세한이나 미스터 프로듀서 같은 인기 예능과 다르게 이런 프로그램들은 인지도가 없기에 대개 유명한 연예인을 패널로 세워서 화제성을 얻으려고 하는 편이었다.

“오는 길은 괜찮았어요? 어서들 와요, 뉴블랙!”

파일럿 방송 녹화을 위해 찾아간 TBC의 스튜디오마다 피디님들이 거의 버선발로 마중을 나왔다.

“저희가 3주 넘게 스페셜 앨범 프로모션을 하면서 하도 밀다 보니까, 이제는 다들 구호를 아시더라고요.”

“자, 군고구마, 군밤?”

방송국 스튜디오에 모인 일반인 방청객들이 ‘뉴블랙!’ 하면서 외쳐주면서 우리가 인사를 했다.

거의 세뇌하듯이 ‘겨울 = 뉴블랙’을 주입했던 게 성공한 듯했다.

MC가 카메라를 향해 ‘자, 뉴블랙이 여기에 있다’ 하듯이 팔을 쫙 펼치며 말했다.

“이번에 뉴블랙이 겨울 노래로 정말 큰 히트를 쳤어요!”

“네, 정말 많은 분들이 사랑을 해주신 덕분에 잘 된 것 같습니다.”

“겨울잠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한 소절 한 번 들어볼까요?”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가수들이 나와 자웅을 겨루는 프로에서 짤막한 공연을 맡기도 했다.

노래방 예능에 나가기도 하고.

대부분 TBC에서 진행하는 파일럿 예능이었다.

지난 달 중순에 있었던 돌림픽 녹화에 출연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에 대한 일종의 대가라고 할까.

한조한테 저번에 듣기로는 이번에도 부상자가 엄청 많이 나왔다고 하던데.

안 나가서 다행이긴 했다.

보이그룹 멤버들끼리 계주를 하다가 그만 미끄러져서 단체로 추돌이 있었다는 듯했다.

LB [뉴블랙 없으면 스보가 왕이다 이말이야]

LB [나의 응원 투혼으로 얻어낸 이 트로퓌]

렉스 [나무는 나가 있어]

LB [왜?]

렉스 [그냥 나가]

유건 [풋살에서 자책골.. 진짜 사람새기냐]

한조 [너무 멀리는 말고 한 400미터 정도만 나가 있어.]

돌림픽이 방영됐을 때, 우승을 거두었다며 우리에게 트로피를 자랑하는 스트릿 보이즈였다.

처음에는 너무 구박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이내 나무 씨가 수비를 해야 되는데 슈팅을 해서 자책골을 넣는 짤을 보고는 납득했다.

틴스피릿과 함께 이번에 돌림픽에서 비중이 꽤 높았다고 들었는데.

앨범 하나가 잘 되면 딱 터질 듯한 느낌이라고 본인들이 말하는 걸 보면 분위기가 좋은 듯했다.

그렇게 데뷔 동기에 대한 소식과 함께 듣기 싫었던 소식들도 들려왔다.

-에이플비 케빈, TBC ‘사람이 간다’ 고정 게스트 합류

-“미쳐야 뜬다”, 에이플비 케빈, 주말 예능 속 ‘美친 예능감’, 이런 미친 아이돌은 없었다

-QTV ‘신바람 라디오’ 합류한 케빈 과거 화제, 네티즌 ‘선우주 후임이란 말에 납득-’

작년에 데뷔한 내 군 후임에 대한 이야기였다.

확실히 미친 애라서 그런지 예능 PD님들의 사랑을 여기저기서 받고 있는 듯했다.

고정 예능만 3개가 됐다고 하는 소식에 축하 인사를 보내주었다.

나 [역시 예능으로 성공할 줄 알았어]

은친놈 [그러게 말입니다 ㅋ.ㅋ]

은친놈 [나 노래 왜 배웠지?]

나 [노래 잘하고 웃기는 애 > 그냥 웃기는 애]

은친놈 [오? 자기소개 타임인가요]

……놀려 먹을 때가 좋았는데.

예능을 하면서 점점 말솜씨가 쓸데없이 좋아지고 있는 녀석이었다.

자기가 예능계에서 발판을 다진 뒤에 나한테 가시밭길을 깔아줄 거라고 예고하는데 기도 안 찼다.

한편.

2016년의 첫 명절을 스케줄로 보내면서 곧장 다음 주로 다가온 일본 투어 준비에도 여념이 없었다.

“느아아아……!”

“노래만 부를 때가 좋았져?”

“느아. 느아….”

소극장 투어를 하는 중간중간에도 호텔에서 동선을 맞추며 연습하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메인댄서의 지도 아래 콘서트 준비에 들어가니 온몸이 부서지는 듯했다.

“그런데 이번 일본 콘서트 말이에여.”

땀이 범벅이 된 막내가 물을 들이키며 물었다.

“우리 생각보다 규모가 엄청 큰 거 아니에여?”

“그니까.”

비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계속 음? 음? 하는 거 같아.”

“나도요.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잘 되지 않아서. 아저씨는 뭐 아는 거 있어요?”

“아니. 나도 딱히…….”

처음에 공연장 규모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얼떨떨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한 게 없으니까.

일본에서 프로모션이라고 해 봐야 작년에 사이타마 현에서 있었던 K팝 콘서트랑 팬사인회나 앨범 프로모션 정도인데.

공항이나 오프라인에서도 인파가 많아서 놀랐긴 했지만, 그 외에 뭐 딱히 한 게 없었는데.

“…그럼 이건 뭐죠?”

공연장 목록과 실제 사진을 대조해 보며 우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여전히 크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궁금했지만 회사 사람들도 정확히 그 이유를 파악하지는 못한 듯했다.

“일본 가서 확인해 봐야지.”

그런 이야기를 하며 쉬는 시간을 때우고 있을 때.

“음?”

중현이가 우리에게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이거 봤어요. 형?”

“뭔데?”

“우리가 미국 뉴스에 나왔대요.”

“뭐?”

우리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   *   *

미국 내브래스카 주 링컨.

그곳의 어느 식당.

‘와아…….’

올해 21살.

내브래스카 주립 대학의 학생이자 K팝 팬인 애니는 태블릿 PC를 톡톡 두드렸다.

‘오오….’

아침 식사로 나온 오믈렛을 깨작이며 화면 속에서 환히 웃는 뉴블랙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1일 1챌린지를 하듯이 ‘Nine’을 보고는 다른 영상으로 넘어갔다.

본래 다른 아이돌을 두루두루 좋아하다가 이번에 뉴블랙의 팬이 된 그녀였다.

‘진짜 매일매일이 새로워.’

압도적인 미튜브 컨텐츠 양 덕분인지 매일매일 최애의 영상을 보아도 볼 게 또 남아 있었다.

엄청 재미있는 인생 소설을 펼쳐 들었는데, 읽어야 할 페이지가 매일매일 늘어나는 기분이었다.

한 쪽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자막을 english로 세팅하고는 리얼리티 영상을 보았다.

“흐하핫!”

지금 보고 있는 건 어느 K팝 팬이 만든 뉴블랙 영상 모음집이었다.

요즘엔 뉴블랙의 팬이 많아져서 그런지, 어떤 영상이든 영어 자막을 금세 찾아볼 수 있었다.

리혁이 다른 멤버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숨을 참는 장면에 [(Pause)]라는 자막이 깔릴 때.

‘전파하고 싶다.’

식당에 있는 손님들을 붙잡고 여러분 이걸 보세요, 이걸 보면 신세계가 펼쳐져요! 하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

-흐하하핫!

뉴블랙 특유의 하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어폰 밖에서.

“……?”

이어폰을 빼고 고개를 들었다.

식당에 설치되어 있는 TV에서 뉴블랙의 웃음 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손님들의 시선이 향한 곳을 따라 TV를 바라본 그녀는 뉴스 채널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유명 뉴스 채널.

화면이 분할된 가운데 왼편에 앵커가 있고 오른편에는 기자가 있었다.

회색 머리의 앵커가 웃으며 물었다.

-오늘의 재미있는 해외 토픽이 준비되어 있다고 들었는데요.

-네, 최근 미튜브에서 큰 화제가 되었던 영상인데요. 누구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상입니다.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노스탤지어의 OST ‘Thousand Dreams’라는 노래를 부른 K팝 가수의 영상인데요.

진짜 뉴블랙이었다.

애니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뭐야. 이게?’

가슴이 콩닥콩닥했다.

무슨 소식인 거지, 하는 생각이 들 때.

“Nooo…….”

‘노우우우’ 하는 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안 돼. 안 돼.

고개를 저으면서 애니가 TV 채널을 어떻게 돌릴 방법을 찾고 싶어할 때.

PBS 내 고향이라는 한글 문구가 떠오른 영상에서 한 청년이 숨을 흡흡흡 들이키다가.

음머어어어-

소의 울음소리를 내는 장면이었다.

“푸흡!”

“흐하핫!”

식당 안에 유쾌한 웃음소리가 가득해지는 가운데, 앵커와 기자의 토크와 함께 추가 영상이 흘러나왔다.

-이 영상이 인기 영상이 된 후에 챌린지처럼 올라온 영상들인데요. 함께 보시죠.

미국 중부 지역의 농부들이 소들에게 해당 영상을 틀어주는 장면이었다.

저마다 딴 일을 하고 있는 소들.

앰프 스피커에서 한국 어느 가수의 소 소리가 흘러나오자, 소들이 하는 짓을 멈추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웅성웅성하며 ‘음머어어어-’ 하는 젖소와 소들.

TV 속에서 앵커와 기자가 웃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식당 안에도 떠들썩한 웃음이 감돌았다.

“…….”

애니가 숨을 삼키고 있을 때, 커피 주전자를 든 주인이 물었다.

“커피 더 줄까?”

“아뇨!”

“그나저나 아까부터 보고 있는 영상은 뭐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보고 있던 뉴블랙의 영상을 숨기기 위해 다급하게 태블릿 PC를 닫는 애니였다.

주변에서 방금 그 영상에 대한 소식이 흘러나오는 한편.

TV에서는 본래 코너대로 해당 영상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설명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한국에서 유명한 K팝 가수로 알려진 ‘뉴블랙’이란 그룹인데요.

노스탤지어 OST를 비롯해 짤막한 설명이 흘러나오는 동안 손님들의 시선이 TV에 머무르고 있었다.

곧 관심을 끄긴 했지만 식당 손님 몇몇이 방금 영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할 때.

‘뭔가 좋기는 한데, 이 찝찝한 기분…….’

내 가수가 이름을 알리는데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지는 외국의 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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