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67화
“무조건 미안하다고 해야 돼.”
공항으로 향하는 차에서 내가 말했다.
“입이 백 개여도 할 말이 없다. 미안하다. 우리가 사람이 아니다. 나쁜 놈들이다. 이래야 돼.”
“맞아여. 비주 형을 절대 화나게 하면 안 돼여.”
예로부터 밥 차려 주는 사람 기분은 건드리는 게 아니라는 지호의 말에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막내로부터 최대한 미안한 표정을 짓는 연습을 받은 후.
중현이가 말했다.
“차라리 아예 들어갈 때부터 엎드려서 들어갈까요. 그러면.”
“일본 공항에서 절하는 한국 아이돌로 소문나고 싶으면 해도 돼요. 형.”
“하지 말라는 뜻인 거지?”
“네.”
그런 이야기를 속닥속닥하면서 간사이 공항 미아보호소 문 앞에 섰다.
막내가 지휘자처럼 손짓했다.
‘레디.’
큐 사인에 맞춰 우리가 숨을 헐떡이며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비주야!”
“비주 형! 괜찮아요?”
“잃어버리자마자 알았는데, 공항 나가는 길이 일방통행이라서 오는데 좀 걸렸어여.”
숨을 헐떡이며 없는 땀을 훔치는 우리 모습에 비주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곤 입을 열었다.
“가짜 숨소리 내지 마요. 다들.”
“…….”
“헐떡이는 소리만 들어도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 알 수 있으니까.”
눈을 흘기는 비주에게 우리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보호소 직원들이 헤에에? 하면서 우릴 바라보고 신기해하는 동안, 비주가 팔짱을 꼈다.
“아니.”
우리가 두 손을 모으고 앞에 서자 비주가 서운함을 가득 담은 얼굴로 말했다.
“나는 차에 타자마자 다들 제대로 탔는지 확인하고 그러는데, 정말 다들…….”
“미안해여. 형.”
막내가 헷 웃으며 말했다.
“이게 다 형의 존재감이 너무 커서 그래여. 막 자고 있을 때도 옆에서 ‘지호야. 그 춤으로 잠이 와~?’ 막 이러는 거 같구.”
“흐하핫!”
“미안해여. 형~”
웃음장벽 낮은 우리 둘째가 밝게 웃음을 터뜨리다가 곧바로 헛기침을 하며 표정관리를 했다.
하지만 눈가가 부드럽게 풀린 걸 보면 누그러진 것 같다.
“다음에도 또 이러면 진짜 그때는…….”
“그때는?”
“……뭐, 뭔가 할 거예요.”
여태까지 보복을 잘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걸까.
적당한 보복 수단이 생각나지 않는지 얼버무리는 둘째의 모습에 우리가 웃었다.
그러곤 사과했다.
“미안해. 비주야.”
“괜찮아요. 형.”
“차가 하필이면 큰 버스여서, 우리가 또 여기저기 빈 자리에 나눠서 탔거든.”
지호가 고개를 돌렸다.
“엥? 우리 다 모여 앉았잖아여?”
“중현아.”
“으아아악!”
막내를 처리하고 나서 비주에게 사정이 그렇게 된 연유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팬들이 너무 많이 몰려서 쫓기듯이 차에 타기도 했고.
회사 직원들과 차를 나눠서 탔기에 더욱 더 정신이 없었다.
다행히 비주가 부드럽게 웃으며 넘어가 주었다.
“아무튼 저 진짜 서운했어요. 형.”
“미안해.”
“팬분들이 더 놀랐어요. 제가 남겨지니까 대신 다다다 뛰어가서 ‘비주! 비주!’ 이랬는데…….”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어쩐지 일본 팬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선 ‘삐- 삐-’ 해서 이상하게 생각했던 터였다.
매니저 형들도 자기들끼리 해프닝을 이야기하고 웃을 때.
미아보호소 맞은편 벤치에서 우리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
핑크색 풍선을 들고 있는 네다섯 살짜리 여자아이가 우릴 바라보고 입을 멍하니 벌리고 있었다.
비주가 일본어로 말했다.
「여긴 미오에요. 다섯 살. 엄마가 지금 오시는 중이래요.」
「안녕.」
우릴 빤히 바라보던 미오라는 아이가 비주에게 말했다.
「용서해 줘도 될 거 같아.」
「그래?」
「잘생겼어. 이 오빠들.」
멤버들이 오기 전에 용서해 줄까, 말까 하고 꼬마 아이와 토론을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우리가 웃음을 터뜨릴 때 눈치로 ‘웃긴 상황인가?’ 하던 막내가 아하핫 하며 같이 웃었다.
내가 몸을 쪼그려서 눈높이를 맞췄다.
「여기 길치 오빠 심심하지 않게 놀아 줘서 고마워.」
나와 눈이 마주친 아이가 풍선으로 제 얼굴을 가렸다.
진짜 귀엽다.
「혹시 달콤한 거 좋아하니?」
「응.」
「그럼 선물로 이거 줄게.」
에코백에서 수플레 빵 하나를 꺼내서 건네주었다.
조심스럽게 빵을 받아든 꼬마가 봉지를 까는 동안 우리가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다섯이서 꼬마 아이 앞에 몸을 쪼그렸다.
「미오야. 미오야. 스티커, 스티커 좀 보자.」
「이거?」
「옳지. 그거.」
안타깝게도 흔하디흔한 Lv.7 흑염소 라이더였다.
Lv.10 이상이면 우리 거랑 교환하려고 했는데 아쉬웠다.
이내 수플레 빵을 먹은 아이가 ‘완전 맛있어!’ 하면서 기뻐하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미오는 엄마 만나면 우리 얘기 잘 해드리고.」
「조금 더 나이가 들면 미튜브에 들어가서 뉴블랙TV 구독과 좋아요를 누르도록 하렴.」
「빵 받았으니까 이제 너도 수플레야.」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알아듣는 것 같진 않았지만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꼬마였다.
슬슬 떠나려고 다섯이서 몸을 일으킬 때.
「저, 저희 사진 좀!」
보호소 직원들과도 사진을 찍고 사인도 해 주었다.
매니저 형들과 다시 공항을 떠나려고 할 때.
“참, 비주야.”
“네?”
“우리 기다리는 동안 별일 없었지?”
비주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네!’ 하며 활짝 웃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먹구름이 낀 하늘처럼 침침해지기 시작했다.
“왜 그래?”
“되게 사소한 거긴 한데요. 팬분들한테 말할 때 단어를 좀 헷갈려서요.”
“단어?”
“코와이랑 카와이랑 좀 헷갈려서. 카와이가 귀여운 거죠? 코와이가 무서운 거고.”
리혁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코와이는 무섭다, 카와이는 귀엽다.”
“아, 어쩐지…….”
어쩐지?
비주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어어 소리를 내는 모습에 우리가 왜 그러냐고 물었다.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면서 난 쓰레기야, 하며 괴로워하는데 도무지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 * *
1시간 전.
간사이 공항 입국장 바깥.
“어어어어?!”
뉴블랙을 따라 정신없이 달리던 일본의 팬들은 당황하고 말았다.
뒤에 메인댄서를 남겨둔 채 뉴블랙이 탄 버스가 냅다 출발하고 있었다.
“비주! 비주!”
“비주우우!”
“비주 지금 두고 가고 있어요! 비주 남겨져요!”
애타게 차량을 향해 손을 흔들며 외쳤지만 순식간에 액셀을 밟고 사라지는 버스였다.
“…….”
수플레들은 당황했다.
‘아니. 이게 아닌데.’
‘멤버를 두고 어디 가는 거야?’
‘어떡하지?’
그러곤 뒤에서 열심히 총총 뛰어나오는 갈색 머리카락의 멤버에게 시선이 갔다.
팬들에게 환하게 웃던 비주와 그 옆에서 경호하던 매니저가 당황했다.
“형, 차가 사라졌어요!”
“……차가? 진짜네. 아니, 이 사람들이.”
둘이 한국어로 뭐라고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팬들이 슬금슬금 거리를 벌려 주었다.
막상 뉴블랙이 ‘잘 있어요!’ 하고 사라질 때만 해도 쫓아가고 그랬는데.
멤버가 버려진 돌발 상황이 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어……!”
모두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멀어져 가는 버스를 향해 탄식했다.
그러곤 허망해하는 비주를 보고 어쩔 줄 몰랐다.
‘어떡하지.’
처음에는 멍하다가 이내 숨길 수 없는 서운함이 비주의 눈동자에 가득 들이차는 게 보였다.
“어떡해. 어떡해.”
“그, 그래도 전화가 오겠지?’
뉴블랙의 멤버와 매니저가 열심히 전화 통화를 하고 있지만 받는 사람이 없어 보였다.
비주가 애써 환한 얼굴로 말했다.
「다들 안 받아요…….」
웃긴 하는데 어찌나 속상하고 서운해 보이는지 너무나 안타까웠다.
주섬주섬.
팬들이 먹을거리라든가, 혹은 공항에서 쉴 곳의 약도를 건네주자 비주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러곤 팬들에게 꼭 무언가 따스한 말을 해 줘야겠다는 듯, 결연한 눈빛을 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을 바라보던 비주가 최대한 좋은 일본어 단어를 생각하다가 안 떠올랐는지 운동화 앞코를 톡톡 두드렸다.
그러곤 ‘아!’ 하며 환하게 웃었다.
「여러분은 정말 무서워요.」
‘코와이…’ 하며 환하게 웃는 모습에 일본 팬들이 눈을 깜빡깜빡했다.
‘우리가 너무 무섭게 했나?’
‘어엇.’
‘무섭다니…….’
혹시 잘못 들은 건가 해서 누군가 애써 웃으며 물었다.
「귀엽다고 말한 건가요!」
「네? 귀엽다고요?」
비주가 무슨 말이냐는 듯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절대 아니에요!」
팬들의 마음에 비수가 꽂히는 듯했다.
이어서 확인사살을 하듯 뉴블랙의 메인댄서가 머리를 쓸어넘기곤 팬들을 가리켰다.
범인을 확신한 코난 같은 자신 있는 어조로 어딘가 귀여운 일본어가 이어졌다.
「여러분은 무서운 사람들이에요!」
수플레들의 마음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 * *
뉴블랙의 SNS 계정에 ‘으아아 죄송해요ㅠㅠㅠ’ 하는 비주의 사과문이 올라올 무렵.
해당 영상은 한국의 아이돌 커뮤니티에 퍼지고 있었다.
[일본 팬들에게 ‘무섭다’고 디스한 아이돌]
(일본 팬들이 촬영한, 환하게 웃으며 ‘너희 무서워!’ 하는 비주의 영상)
는 늅 메댄 비주.
코와이랑 카와이랑 헷갈렸다고 함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왤케 귀엽냐구
-악의라고는 1도 없어서 더 웃겨ㅋㅋㅋㅋㅋㅋ
-헷갈릴만하네ㅋㅋㅋㅋㅋㅋ
-나도 일본에서 저것 땜에 헷갈린적 있음,, 야사시 카와이 하는데 무섭다고 하는 줄
-우리나라로 치면 할리우드 배우가 공항에서 만난 팬들한테 너희들 존예! 이래야 되는데 존무! 이런 건가
-존무 ㅅㅂㅋㅋㅋㅋㅋㅋㅋ
-표정 진짜 ㄱㅇㅇ ㅋㅋㅋ ٩(๑•̀o•́๑)و 여러분은 존나 무서워요!
-팬들이 탈룰라 기회 주는데 해맑게 걷어차기ㅋㅋㅋㅋ
-당황해서 어떻게든 좋은 단어 떠올리다가 카와이 떠올린 회로가 더 웃겨ㅋㅋㅋㅋㅋ
-Y앱 라방으로 비주가 비하인드 썰 풀었는데 일본 인터뷰에서 ‘리혁군 혼또 카와이!’ 이런 거 하려고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대ㅋㅋㅋ
-덧. 옆에서 리혁이 좋아서 아하학 웃다가 정신 차리고 정색함
-시트콤이 뇌를 지배하는 아이돌ㅋㅋㅋㅋㅋ
-근데 저거 무슨 상황이야?
이내 비주를 공항에서 버려두고 간 에피소드가 퍼지면서 ‘과연 뉴블랙이다’ 하는 반응이 나올 때.
-‘대세 아이돌’ 뉴블랙, 日 입국부터 빵 터졌다
-“아니, 나도 잃었어”로 유명한 에티켓 요정 비주, ‘컨셉이 아니라 진짜 길치’
-[아이돌 탐구생활⑦] ‘입덕하면 헤어나오지 못해’-‘근데 우리 애도 같이 헤매네’, “직캠 장인” 뉴블랙 메인댄서 비주의 매력
한국의 연예부 기자들이 해당 소식을 다루고 있을 때.
일본의 정보 프로그램들도 해당 소식을 자료 화면과 함께 발 빠르게 다루었다.
-전격! ‘한국의 대인기 아이돌’ 뉴블랙 입국!
-‘뉴블랙 신드롬’ 일으킨 한국 아이돌 멤버, 공항에서 길 잃어버린 것의 사연은?
-간사이 공항 마비, 뉴블랙의 입국 현장을 찾아가 보았다
뉴블랙이 입국했다는 소식 하나만으로 코너 하나를 메울 만큼 많은 관심이었다.
[한국에서 초인기 몰이 중! 뉴블랙의 입국에 마비된 간사이 공항!]
굵은 자막과 함께 간사이 공항을 빼곡히 메운 팬들의 광경을 카메라가 비추고 있었다.
허나 좋은 쪽의 포커스가 아니었다.
수플레들이 환호하거나 우는 모습을 일부러 우스꽝스럽게 내보내는 식이었다.
뉴블랙에 열광하는 팬들은 비이성적이다, 하는 뉘앙스로 내비치도록.
하단 분할된 화면에서 패널들이 헛웃음을 보였다.
-참 열성적인 팬들이라고 할까요~
-이야. 소녀들의 열기 좋네.
-잠깐만, 잠깐, 어이! 아저씨 거기서 뭐하는 거냐고.
방청객들의 웃음소리.
뉴블랙과 손을 맞잡고 오열하는 남자 팬의 모습을 보며 웃어대는 패널들이었다.
프로들의 논조들은 비슷했다.
-아무리 아이돌이 좋다고 해도 말이죠. 저 시간대에 공항을 나가는 건 일이 없기 때문이라거나….
-확실히, 정상적이라 보긴 힘드네요.
-모두가 이용하는 공항에서 저렇게 과도하게 소리를 치는 건 아무래도 민폐가 아닌가 싶네요.
-뭐 어떤가. 반일이든 아니든 가수도 좋아하고 팬들도 좋아하니 다 좋은 거 아닌가~
양손을 머리 뒤로 한 채 귀찮다는 듯 대꾸하는 중년 남자 패널까지.
부정적으로 흘러가는 반응은 온라인 뉴스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뉴블랙의 입국 소식에 악플이 쏟아지는 가운데.
당연하게도 그런 반응은 한국으로 번역되어 역수출됐다.
아이돌 커뮤니티에서도 분노를 터뜨리고 있었지만, 일반인들이 모인 커뮤니티의 반응이 더 거셌다.
-ㅅㅂ 뉴블랙 건들지마 개새끼들아
-아 개빡치네ㅋㅋㅋㅋㅋㅋㅋ
-딴 건 모르겠고 뉴블랙 건드리지마라
-hbs ㅈㄹ할때도 빡쳤는데
-패널 새기들 팬 외모 가지고 드립하는 거 제정신인가?? 화분대가리 같이 생긴 것들이
-뉴블랙을 농담이나 드립으로 놀리는 건 ok인데 누가 뉴블랙 욕하면 개빡치는 거 같음 이유는 잘 모르지만
-팬은 아닌데 개빡침22222
-뭔 느낌인지 알 거 같네ㅋㅋㅋㅋㅋ
-약간 내 안에 스며들어 있어
-ㅇㅇ 노래 빼곤 딱히 관심 없는데 누가 욕하거나 건드리면 개빡침
-저 새기들 역사 탐험대 땜에 저 지랄인듯; 독립운동 특집 있었자나
그간 미튜브와 TV 예능 등을 통해서 조용히 스며들었던 뉴블랙의 대중적 호감도 덕분일까.
있는 대로 열이 뻗었던 수플레들이 댓글 반응을 보고 ‘어…?’ 하면서 저도 모르게 화가 사그라들 만큼.
‘저, 진정해요. 진정…….’
여기저기서 연장이나 농기구를 막 드는 듯한 분위기.
수플레들이 당황할 정도로 온갖 기상천외한 욕을 퍼붓고 있는 일반인들이었다.
* * *
공항이나 팬사인회 같은 오프라인 반응과 함께.
언론이나 TV 프로그램 같은 일본 미디어가 우리를 다루고 있는 논조를 모니터링한 후.
“모르는 사이에 많이 미움 받고 있었네요.”
내 말에 동생들과 스탭들이 웃었다.
오사카의 호텔 방.
널찍한 테이블에 뉴블랙 TF팀과 둘러 앉아 오늘 스케줄 등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확실히 일본에서 팬분들이 엄청 많은 것 같긴 해요. 팬사인회에서 반응도 그렇고.”
“엄청 뜨겁긴 하더라.”
TF팀의 홍보 담당을 맡은 홍서영 과장님이 볼펜을 두드리며 말했다.
“일본 측 에이전트가 아무 프로모션 없이, 첫 콘서트부터 이 규모로 하는 건 기적이라고 강조하더라고.”
일주일간 이어지는 우리 콘서트의 동원 인원은 6만 명에서 7만 명 규모.
작년 핸드볼 경기장에서 3일 동안 동원했던 15,000명의 4~5배였다.
대개 일본 콘서트의 경우에는 한국에서보다 5~10배 정도 많은 인원을 동원하는 편이라고 하던데.
틴스피릿은 작년에 35만을 동원했다고 들었다.
어쨌거나 별다른 프로모션 없이 첫 콘서트부터 이 정도 규모를 동원하는 건 전례 없는 일이라고 들었다.
“뉴블랙의 포지션이 ‘아주 유명한 외국 가수’로 설정이 되어 있어서 그래요.”
홍 과장님이 말했다.
“별도 프로모션 없이 할리우드 가수가 일본 공연을 하는 것처럼 인식이 되는 거죠.”
“좋은 건가요, 대리, 아니 과장님?”
“일장일단이 있지. 어느 정도 기본 동원력은 확보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일본에서 팬덤 확보가 좀 어렵고. 여긴 자국 아이돌처럼 성장하는 걸 선호하잖아.”
한국에서 유명 미국 가수가 내한 공연을 할 때.
네임 밸류와 인지도 덕에 관객들이 모이지만 그 팬덤이 크게 성장하기는 어려운 것과 비슷했다.
홍 과장님이 미간을 모으며 말했다.
“일단 여기서 우리 애들, 아니 너희가 어떻게든 활동을 해야 팬덤을 더 키울 수가 있는 건데…….”
TV 예능을 비롯해서 사소한 행사까지 일본 팬들을 끌어모을 길이 다 막혀 있었다.
민기 형이 말했다.
“꼭 담합이라도 한 것처럼 어떻게든 배제하려고 하더라고요. 저번에 섭외하고 싶다고 한 프로그램도 갑자기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말을 바꾸고.”
“대부분 비슷비슷해요. 어떻게든 안 끼워 주려고 하고.”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여기 방송가 입장에선 무서울 만하죠. 우리로 따지면 일본 열도를 장악했다! 그런 아이돌 그룹이 한국에 와서 뭘 하겠다고 하는 거니까.”
“너희가 미튜브로 외국인들에게 한국사 알리는 것도 톡톡히 해냈잖아. 그것 때문에 더 경계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다다미방에 온돌 깔러 오는 사람 취급이네요.”
내 말에 다들 웃었다.
“그런데 저희가 아직 한국에서 국민 아이돌이라고 불릴 정도는 아닌데. 경계가 과한 거 아닌가요?”
“여기 사람들이 너희를 한국의 국민 아이돌이라고 믿어서 그래.”
우리가 대중적 인지도를 얻은 건 맞지만 아직 ‘국민’ 수식어가 붙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워낙 아이돌 중에 이런 케이스가 없다 보니.
일본 미디어 쪽에서 ‘뭐지? 저건 대체 뭐지?’ 하면서 주목하다가 수플레 빵부터 지금 내 고향까지 우리의 행보를 과장해서 다룬 모양이었다.
웃픈 건 그 과정 속에서 자신들도 그런 과장된 사실을 믿게 된 것 같고.
리혁이가 말했다.
“저는 아직도 우리가 방송, 그것도 지상파 TV 프로에서 400번 넘게 나왔다는 게 안 믿겨요.”
“우리도 마찬가지야.”
“저는 그거 생각나여. 트루먼쇼. 그냥 한국 활동하는데 알고 보니 모르는 사람들 수백만 명이 지켜보고 있었던 거예여.”
지호의 말에 다들 웃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다들 텅 비어 있는 스케줄표를 보며 막막한 표정을 지었다.
“전반적으로 더 커지는 건 용납하지 않겠다는 분위기인데…….”
물론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우리 TF팀장님이 물을 홀짝이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속된 말로 꿀이긴 하지. 우리가 해야 할 프로모션을 이 나라 미디어가 해 주고 있으니까.”
미디어가 하도 다루다 보니 일본 팬들이 ‘쟤넨 누구지? 노래가 어떨까?’ 하고 호기심을 가지게 되고.
그게 이 정도 규모의 수플레로 이어지게 된 거니까.
다른 가수라면 바닥부터 시작해서 몇 달을 살면서 일본 연예계를 뚫어야 얻을 수 있는 성과였다.
솔직히 말해선 우리가 절이라도 해줘야 할 상황이다.
다만 단순한 TV 노출로는 유입될 만한 팬들이 다 유입된 터라 더 커지기 어렵다는 것이고.
그런 까닭에 본래 일본 투어의 목표였던 더 많은 수플레를 모으기를 달성하기가 어려웠다.
“일본에서 저희 인기 원인이 뭐라고 했죠?”
“TV에 계속 나와서 대중이 호기심을 가진 거랑 일본어로 자막이 지원되는 미튜브 영상들. 이 두 개가 양대 축이야.”
“아, 저희 데뷔 해에 하셨죠. 자막 프로젝트.”
홍 과장님이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뉴블랙 초창기에 추진한 기획이 성과를 거두어서 그런지 굉장히 만족하는 것 같았다.
내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어차피 TV에서 우릴 안 불러준다면, 우리가 미튜브를 통해 TV를 만드는 건 어떨까요?”
“미튜브로?”
“네, 저번에 말씀해 주셨던 기획을 조금 변경해서…….”
이어지는 내 아이디어에 다들 흥미로워 했다.
직원 분들이 준비한 기획을 뉴블랙식으로 버무린 아이디어.
신이 난 비주와 리혁이도 한 마디씩 보태고, 중현이와 지호가 열심히 간식을 세팅할 때.
“참, 이번에 일본 프로모션 겸해서 또 준비하신 게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맞아. 뭐, 특별한 건 아니고…….”
홍보팀 사람들이 ‘해외 수플레 모으기!’의 일환으로 준비한 프로젝트가 있다고 들었는데.
홍 과장님이 노트북을 돌려서 화면을 보여 주셨다.
“짜잔!”
홈페이지 화면 속 판타스틱한 로고에 우리가 당황했다.
제목이 이상했다.
“뉴블랙 아카데미에서 살아남기…?”
“이게 뭐예여?”
우리가 눈을 멀뚱멀뚱 떴다.
* * *
일본 팬들은 뉴블랙의 공식 SNS에 달린 링크를 클릭했다.
‘게임을 선착순으로 클리어한 사람들에게 상품을 준다고?’
간단한 미니 게임이라도 만든 건가?
흥분되는 마음으로 홈페이지에 들어간 그들은 Language 창을 쭈르륵 내리다가 日本語 칸을 눌렀다.
그러곤 START 버튼을 눌렀다.
[짹짹-]
환한 햇살이 드리운 어느 명문고의 모습.
일러스트 형식으로 되어 있는 스토리 진행에 선택지를 고르는 게임인 듯했다.
『어이— 어이—』
이윽고 화면에 미남이 등장했다.
교복을 입은 뉴블랙의 막내가 귀여운 일러스트가 되어 주인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긴 오직 나만 누울 수 있는 자리라고. 지금 그 잔디밭에서 뭐 하는 거야, 대체?』
▷ 그냥.. 쉬고 있었어.
▷ 널 지켜보고 있었어.
수플레들이 키득거렸다.
‘2번째 거 해 볼까.’
이걸 누르면 ‘뭐야. 나도 내가 잘생긴 건 안다구~!’ 하며 흥쳇쳇 하는 게 나오겠지 싶을 때.
[철컹-]
……철컹?
철창이 눈앞에 드리워졌다.
[언행을 신중히 해 주십시오.]
[당신을 스토커로 판단한 ‘왕지호’가 스토킹 혐의로 당신을 고소했습니다.]
[Hint: ‘흑막’이 숨겨둔 가짜 증거로 인해 당신은 유죄가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의문의 약물을 주입 받은 당신은 뉴블랙 아카데미의 ‘흑염소’로 변신하게 되었습니다.]
뭐야. 갑자기 왜 변신하는 건데?
[CHAPTER II : 염소의 삶이란..]
『음메에에—』
염소 울음과 함께 흑염소가 된 주인공의 뷰에 플레이어들이 당황하다 못해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이건 대체 무슨 게임이야?’
참으로 뉴블랙다운 게임이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입소문을 타고 ‘뉴블랙 게임’이 한국과 일본 트위터의 실시간 트렌드에 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