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76화
39장. 겨울의 끝, 봄의 시작
차창에 얼굴을 묻고 바깥을 바라보았다.
보이는 것이라곤 바짝 붙은 건물 외벽뿐.
“보여?”
“아뇨.”
동생들이 고개를 저었다.
차창에 손을 댄 채로 고개를 비틀어 보았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빠르게 창문을 열고 하나둘 고개를 쏙쏙 내밀었다.
그리고…….
“와.”
높은 담장 위로 고급스러워 보이는 건물의 외관이 보였다.
8층짜리 빌라였다.
동생들과 ‘와’, ‘와’ 하는 소리를 교환하다가 이내 손을 맞잡고 환호성을 터뜨렸다.
“우와아아아아—!”
“얘들아, 새 집! 새 집이야!”
곧바로 서로 정색하긴 했지만 나도 모르게 리혁이와 환희의 포옹을 할 만큼 기뻤다.
다 같이 얼싸안으며 기쁨을 나누고는 잔뜩 상기된 뺨에 손을 올렸다.
“와. 대박이다. 진짜.”
“실장님. 여기가 진짜 저희 새 숙소예요?”
비주의 물음에 석환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에 계약을 마쳤어. 여기가 이제 너희 새 집이야.”
“와. 진짜구나.”
“대표님이 통 크게 쓰셨지. 매년 이사하는 것보다 차라리 한 번에 완전 좋은 곳으로 옮겨 주는 게 어떠냐고.”
“대표님!”
차창 너머 빛나는 태양을 향해 ‘갓규호’를 연호했다.
석환 형이 덧붙였다.
“회사에서도 가뜩이나 집에서 안 나가는 애들인데, 숙소가 좋아야 하지 않겠냐고들 하더라.”
“……우와아!”
무시하고 기쁨을 만끽하는 동안 우리 팀장님이 새로운 숙소에 대해 설명했다.
“청담동이라 회사랑도 가깝고. 특히 보안이 잘 되어 있기로 유명한데, 그게 가장 큰 메리트야.”
“진짜, 너무 좋다. 정말로.”
보안이 잘 되어 있다는 말이 귀에 쏙 들어왔다.
첫 번째 숙소에서 살 때, 새해 첫날부터 2인조 사생이 침입하려고 했던 기억은 아직도 우리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물론 두 번째 숙소도 엄청 안전한 편은 아니었다.
복도식이라고 해도 아파트 특성상 외부인이 침입하기도 쉬운 구조니까.
사실 TNT나 틴스피릿에 비하면 사생 문제가 거의 없는 수준이긴 하지만 우리라고 피해가 없는 건 아니었다.
여러 사건사고 때문에 매니저 형들이 늘 상주해야 했다고 할까.
문 앞에 놓인 택배 박스가 다 뜯어져 있고, 송장은 갈기갈기 찢어져 있다거나.
야식 배달하는 기사 뒤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집에 들어오려고 해서 경찰이 온 적도 있고.
1층에 분리수거하러 갔는데 갑자기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기도 하고.
가장 최근에는…….
‘내가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는데 말야.’
숙소 맞은편 1104호 주인 아주머니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 같어.’
‘예?’
‘부동산에서 그러는데, 웬 외국인 여자가 시세의 다섯 배를 줄 테니까 이 집을 팔라고 하더라고.’
주인아주머니께서 거절했다고 말씀해 주시긴 했지만 그런 위험요소들이 산재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더 좋은 집으로 간다는 사실도 좋았지만, 더 안전한 곳으로 간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진짜 잘됐네요.”
리혁이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안 그래도 요즘 들어서 사생 빈도가 좀 느는 것 같았거든요. 특히 연말 이후로.”
“맞아여. 요새 어디 가도 막 쳐다보는 느낌 들기도 하고.”
매니저들도 우리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는 지금 숙소 계약기간 때문에 조금 더 늦게 갈 예정이었는데, 그런 문제들 때문에 앞당긴 거야.”
“참, 그럼 원래 숙소는?”
“로드 매니저들 숙소로 쓰려고.”
민기 형이 끼어들며 손가락 하트를 그렸다.
“고맙다, 얘들아. 덕분에 집 생겼다.”
잔망스러운 하트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새로운 숙소에 대한 위치 및 제반사항에 대한 안내가 끝난 후.
“그럼 직접 견학을 가 볼까?”
“네에!”
차량이 빌라 부지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신원 확인이라든가. 주변의 CCTV 등을 보아하니 정말 보안이 잘 되어 있다는 게 느껴졌다.
자동차 박람회에 온 것처럼 고급 차량들이 주차장에 즐비했다.
민기 형의 운전이 급격하게 신중해지는 것을 느끼며 건물 현관 앞에 도착했다.
“후우…….”
2월 마지막 날.
점심 무렵의 서늘한 겨울 공기를 느끼며 주변을 둘러보면서 동생들과 미소를 교환했다.
삐빅-
키카드를 찍고 들어간 로비.
“우와아아—!”
분수대는 없지만, 꼭 분수대가 설치된 호텔 로비 같다.
대리석으로 된 로비.
“어떻게 오셨… 아?”
데스크에 앉아 있던 경비원이 우리를 바라보고 눈을 살짝 치뜨고는 ‘오?’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안녕하세요! 이제 이사 오는 뉴블랙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확실히 연예인들도 꽤 많이 산다고 하는 곳답게 우리를 보고도 그닥 놀라지 않는 눈치였다.
상대가 웃으며 핸드폰을 들어 보였다.
“노래 잘 듣고 있습니다. 겨울잠.”
“감사합니다!”
리혁이가 팬서비스로 짧은 후렴구를 불러 주니 경비원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일지에 뭔가 작성하는 게 보였다.
정말 보안이 잘 되어 있구나, 하는 느낌이 온다고 할까.
비주가 내게 고개를 기울이며 속삭였다.
“되게 백화점에 온 거 같아요. 형.”
“그니까. 여기 2층 가고 그러면 할머니 옷 파는 매장 나오고 그럴 거 같아.”
“맞아요. 지하 가면 장 보는 곳 나오고.”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동생들과 열심히 1층 로비에서 셀카를 찍고, 지호가 슬금슬금 물러날 때.
리혁이가 올라감 버튼을 톡톡거렸다.
“뭐야. 이거 왜 이렇게 안 내려와요?”
“그러게.”
오른쪽은 점검 중이고.
왼쪽 엘리베이터는 지금 6층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내가 중현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중현아. 한 번 들어봐라.”
“잠시만요.”
중현이가 엘리베이터 문에다 뺨을 가져다 댔다.
그렇게 도청을 시작하는 동안 리혁이가 중현이의 옷자락을 꼭 붙잡았다.
“넌 왜 그러고 있어?”
“이러다 갑자기 문 열려서 떨어지면 어떡해요.”
“너도 같이 떨어질걸.”
“혼자는 안 갈 거니까 걱정 마요. 내가 떨어져도 꼭 당신 옷은 붙들고 떨어질 거야.”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며 다 같이 중현이의 옷자락을 잡아 주었다.
그 동안 중현이가 ‘음?’ 하며 말했다.
“싸우고 있는데요.”
“싸워?”
“네, 뭐 빨리 오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거 같은데.”
우리가 엘리베이터 문에 대고 귀를 기울였다.
우왕쾅쾅, 쾅쾅우왕 하는 듯한 고함이 6층에서 오가는 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려왔다.
“아이고. 싸움 났나 보네.”
매니저들도 관심을 보일 때.
5인조가 엘리베이터 벽에 찰싹 붙어 있는 요상한 광경에 경비원이 출동했다.
“무슨 일 있습니까?”
“6층에서 엘리베이터가 안 내려와서…….”
“아. 6층이요.”
경비원이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곧 내려올 겁니다.”
“……?”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을 때, 마침내 우우웅- 하며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꾸와아아아아악!
-구와아악!
…하는 느낌의 싸우는 소리가 잔뜩 이어질 때.
띵.
[1층입니다] 하는 안내음과 함께 싸우는 소리가 싹 사라지고, 고요하게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순간.
“……?”
우리는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6인조 아이돌과 눈이 마주쳤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상냥한 미소를 짓고 있는 미소년들이 나타났다.
틴스피릿의 리더, 휘연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옴마?”
우리가 웃음이 터졌다.
“왜 그래?”
옆에서 바닥으로 눈을 깔고 있었던 연후가 고개를 들고는 화들짝 놀랐다.
“아 시발! 어우… 아니. 욕해서 죄송합니다. 형.”
“괜찮아요. 간만에 들으니 정겹고 좋네요.”
“여긴 뭐 어쩐 일이세요?”
만면에 잔뜩 띄우고 있던 상냥한 미소가 사라지고 본래 표정이 나왔다.
틴스피릿 멤버들이 우리와 매니저들에게 ‘안냐세요’ 하며 꾸벅하며 내린 후.
마지막으로 어딘가 해탈한 스님 같은 인상의 틴스피릿 매니저가 따라 내렸다.
휘연이 물었다.
“와, 근데 진짜 오랜만이다. 행님들. 잘 지내셨어요?”
“저희 일본 투어 막 끝내고 귀국했어요.”
“아! 그러네. 저희 얼마 전에 그거 봤어요. 행님 꽐라된 거.”
“…….”
동생들과 틴스피릿 멤버들이 박수를 치며 깔깔거렸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 만취라는 좋은 말이 있어요. 선배님.”
“아. 그르네요. 제가 워낙 입이 시발이라….”
휘연이 ‘아이고’ 하며 도톰한 입술을 팡팡 치는 동안 연후가 말을 꺼냈다.
“방정이겠지. 빙시야. 진짜 리더 자리 고스톱으로 땄나.”
“야. 형한테 존댓말 쓰랬지.”
“아이고. 몰라요~ 나는 위아래가 없어요~”
“또 싸워? 아이고, 또 지랄들이네. 또 지랄들이야.”
동네 욕쟁이 할머니들의 잔치가 펼쳐진 것처럼 혼돈과 파괴의 현장이 이어지고 있었다.
늘 보던 훈훈한 풍경에 우리가 미소를 지었다.
뭔가 그리웠던 한국 연예계에 돌아온 이 느낌. 나쁘지 않았다.
“아무튼 그래서 이 새, 아니 연후 형이 보조 배터리 두고 와서 가져와야 된다고…….”
“말은 바로 해라. 팬들이 준 보조 배터리다.”
“그니까. 보조 배터리잖아. 두고 오면 뭐 어떤데. 빌리면 되지.”
“팬들이 선물로 준 거라니까!”
“아니! 그니까 보조 배터리잖아!”
내가 양손을 들어서 틴스피릿 멤버들 사이에 가림막처럼 올리자 말이 멈췄다.
그러곤 리혁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정리해라.”
“아무래도 입장 차이가 있는 것 같네요. 소중한 보조 배터리로 정리하는 건 어떨까요. 소중하지만 보조 배터리인 거죠.”
“……아! 그러네!”
틴스피릿 멤버들이 아아! 하는 소리를 내더니 ‘존나 명쾌해!’ 하며 감탄했다.
역시 배운 사람은 다르다는 감탄과 함께 연후가 말했다.
“형들이 좀 가방끈이 길잖아요. 저희가 좀 그런 거에 대한 동경이 있어요.”
“맞아. 맞아.”
나 검정고시인데…….
“근데 얘기가 왜 여기까지 왔더라?”
우리도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이내 포기했다.
어쨌거나.
“반가워요. 형들!”
“우리도요!”
와아아, 하며 서로 손뼉을 마주치며 기뻐했다.
잠시 나이대가 비슷한 멤버들끼리 서로의 근황에 대한 토크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연말 무대를 거치면서 서로 선후배보다는 동급이라고 인식하게 된 느낌이다.
꽤 편하기도 하고.
지호가 막 깔깔거리며 틴스피릿 멤버들과 수다를 떠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 리더 휘연이 속삭였다.
“절대 동생들한테 말 까라고 하지 마세요. 행님. 이건 정말 새겨들으셔야 돼요.”
“…….”
“지옥이 펼쳐집니다. 레알루.”
마에다 선생님의 ‘이혼당합니다! 반드시!’ 처럼 ‘지옥이 펼쳐집니다! 반드시!’ 같은 느낌이었다.
아수라장이 된 틴스피릿의 서열을 보고는 조용히 휘연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이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와. 그럼 이제 이웃이네요. 잘 지내봐요, 행님들.”
“네. 저희 701호.”
“가끔 놀러 갈 테니까, 이상한 새끼들이 초인종 누른다고 피하고 그러시면 안 돼요.”
“걱정 마세요. 편하게 놀러 오세요.”
그런 말을 할 때, 틴스피릿 멤버들이 멈칫하고는 물었다.
“저… 우주 행님.”
“예?”
“혹시 집에서 작곡하시고 그런 건 아니죠?”
“아. 하죠. 엄청 하죠.”
“……!”
놀러 오겠다는 말을 하려던 틴스피릿 멤버들이 말을 흐리기 시작했다.
대체 내가 가요계에 어떤 식으로 소문이 난 걸까.
동생들이 입을 가린 채 키득거리고 틴스피릿이 시선을 피할 때.
“얘들아. 이제 출발해야겠다.”
“예에! 저희 갑니다, 행님들!”
언제 친구까지 먹었는지 지호가 손을 흔들며 틴스피릿의 동생라인에게 손을 흔들었다.
“잘 가여! 우리 칭구들!”
“칭구칭긔!”
그렇게 대답하며 주먹을 드는 저쪽 동생라인의 모습에 웃었다.
틴스피릿이 경비원에게 ‘수고 많으심다!’ 하고 배꼽인사를 하며 사라진 후.
“……오우.”
민기 형이 눈을 끔뻑끔뻑하며 고개를 떨쳤다.
“뭐가 지나간 거지.”
“틴스피릿이요.”
“이렇게 들으니까 태풍 이름 같다.”
아아, 7호 태풍 틴스피릿이 북상하고 있으니… 하는 목소리를 상상하며 우리가 웃었다.
그러곤 엘리베이터에 타고 물었다.
“어때요? 형? 한 번쯤은 저희 말고 다른 아이돌을 체험하고 싶은 생각 들고 그러진 않나요?”
“아냐. 전혀. 난 너희가 너무 좋아.”
“저희도 형이 좋아요.”
그런 대화를 나누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 * *
701호의 문 앞에 섰다.
사생 문제가 가장 심각하기로 유명한 틴스피릿이 거주한다는 사실 때문일까.
보안에 대한 신뢰가 무럭무럭 샘솟는 가운데.
삐빅-
띠로링 하며 부드럽게 전자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생들과 두 손 모으고 러브하우스의 BGM을 합창했다.
“따라라라라~ 따라라라란~”
자체로 뽀얀 필터를 씌우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 순간.
이미 와 본 석환 형을 뺀 나머지 모두가 비명을 질렀다.
“우와아아아아아아!”
“미쳤다! 여기 미쳤어요!”
“야. 너희 숙소 대궐이다.”
엄청 높은 천장.
전면 유리창으로 된 거실 창으로 환한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커다란 TV와 소파가 설치된 거실.
“와아아아아아!”
중현이가 다다다 소파로 뛰어 들어가 다이빙을 하듯 드러눕고, 우리가 그 위로 샌드위치를 쌓았다.
“대박! 대박사건!”
막내가 흥분해서 고함을 질러대고, 우리도 시끄럽게 소리 지르기 바빴다.
그리고 그때.
“어……?”
맨 아래 깔려 있던 중현이가 하하핫 웃다가 눈을 끔뻑거렸다.
우리가 물었다.
“왜? 왜? 왜 그래?”
“저기 봐요. 우리 2층인가 봐요.”
“……!”
고개를 홱 돌렸을 때, 높다란 천장과 함께 복층 난간이 나타났다.
그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대박…….”
그제야 나선형처럼 되어 있는 계단이 눈에 들어온다고 할까.
너무 놀라면 말이 안 나온다는 말답게 잠시 집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작년 초에 조규환 이사님 집에 갔을 때 느낀 기분.
동생들과 샌드위치가 된 상태로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와- 하는 소리만 낼 뿐이었다.
석환 형이 말했다.
“그러다 다치겠네. 그만하고 일어나서 따라와. 안에 소개 좀 해 줄 테니까.”
“네에-!”
그때부터 TF팀 팀장님을 따라 집 투어를 시작했다.
“일단 여기는 부엌.”
“부엌!”
“숙소에 있는 조리 기구들은 다 낡아서, 대부분 새로 샀어. 간단한 요깃거리도 넣어 놨고.”
이내 냉장고에 든 이런저런 재료와 찬장에 가득한 라면 봉지에 우리가 환호성을 터뜨렸다.
이따 꼭 끓여먹어야지.
“부산에서 대표님이랑 식사했을 때 비주 네가 요즘 베이킹에 관심 있다고 했다면서?”
“네. 맞아요.”
“대표님이 말씀해 주셔서 산 장비야.”
“우와아…….”
비주가 부엌에 가득한 오븐 등을 보며 눈을 글썽였다.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표정이라 우리가 토닥토닥했다.
이내 대성통곡할 기세로 부침 뒤집개를 기념품으로 챙긴 비주가 투어 마지막 행렬에 따라왔다.
“부엌 안쪽으로 들어오면 여긴… 아, 일단 이 집은 욕실이 3개야.”
“오오……!”
“거기는 따로 보도록 하고. 일단 1층에 방 하나는 중현이가 그토록 원하던.”
중현이가 간만에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텃밭인가요……!”
“헬스장이야.”
“아. 네.”
같이 축 늘어지는 우리 모습에 석환 형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너희는 왜 같이 실망하는데. 상식적으로 여기 텃밭을 넣을 수가 없잖아.”
“아니. 뭐…. 비싼 집은 그런 거 될 줄 알았지.”
“아무튼 여긴 중현이 말고도 너희 다 같이 쓸 수 있는 실내 짐.”
방음 매트가 잔뜩 깔린 넓은 방에 운동기구가 가득했다.
바벨과 원판 등을 만지작거리던 중현이가 ‘정말 좋아요’ 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여기는 창고 겸 비품 넣어 두는데, 청소 도구…….”
“오! 오! 오!”
“그래. 리혁이 좀 구경하라고 내버려 두고. 우린 가자.”
누군가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1층에 있는 두 방을 보았다.
노랑노랑한 파스텔 톤의 인테리어.
어머님들이 좋아할 것 같은 방이었다.
“여기가 비주 방이고. 반대편이 중현이 방.”
“오. 삭막하구만.”
특별한 가구 배치 없이 널찍널찍한 방에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1층 투어를 마치고 2층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지호가 석환 형에게 착 붙었다.
“근데 방 배치랑 인테리어까지 다 해버리신 거예여?”
“응.”
“혹시 저희가 바꾸고 싶으면 어떡해여?”
“보고 나면 안 바꾸고 싶을걸.”
“……?”
“각자 쓰고 싶은 방을 골라 봐.”
이윽고 나와 리혁이, 지호가 세 개의 개인 방을 둘러보고는 바로 자기 방을 골랐다.
위치도 내가 원하는 곳이고.
디자인도 정말 내가 딱 원하는 깔끔한 인테리어였다.
“아니, 어떻게 알았지?”
우리가 그 비결을 궁금해할 때, 석환 형이 미스터리를 설명해 주었다.
“조 이사님이 정해 주셨어.”
“……?”
“작년에 너희랑 같이 살아보고 학을… 아니, 경험을 하셨으니까.”
“아아.”
조규환 이사님 특유의 예리한 점쟁이 촉과 함께 작년에 우리와 살았던 경험 때문에 배치가 쉬우셨던 듯했다.
석환 형이 물었다.
“좋지?”
“대박이에여! 아니, 컴퓨터까지 있다니까여. 게이밍 노트북으로 힘들었던 거 이제 다 할 수 있어여!”
“게임은 적당히 하고.”
“넹. 괜히 말했당….”
“그리고 2층에 저쪽 방은 우주 작업실 겸 리혁이 보컬 연습실로 쓸 거고.”
“오오!”
방음벽 설치가 완전히 끝낸 미니 작업실이 있었다.
각종 작곡용 설비를 비롯해 보컬 연습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장비들을 둘러보다가 내가 물었다.
“그런데 이거 설치는 누가 했대? 엄청 잘해놨네.”
“A&R팀이랑 프로듀싱 팀이 와서 했어. 주말에.”
“……필사적으로 하셨겠네.”
“주말까지 회사에 나오는 것도 꼭 좋은 건 아니라고. 가끔은 재택근무도 하는 게 어떻냐고 꼭 전해 달래.”
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새 집 투어를 마치고 각자의 방을 살피며 좋아 죽을 때.
석환 형이 물었다.
“참, 이사는 어떻게 할래?”
“이사?”
“가구나 빌트인으로 하는 건 다 해 놨지만 너희 옷가지나 서랍 물건이 남아서. 개인적인 짐 챙기고 싶을 거 아니야. 직접 챙기고 싶은 짐이 있으면…….”
“아냐. 없어.”
다섯이서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수학귀신이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너희 이전 숙소 가기 싫어서 그렇지?”
“…….”
“살고 싶으면 지금부터 살아. 상관없으니까.”
“그, 그래도 되나?”
“뭐. 상관없지만은… 얼른 숙소로 가자. 아무리 좋은 집이 있어도 우리 아파트만은 못하다. 집이 그립다. 그 집의 냄새가 있다. 라고 재촉하지 않았나?”
“죄송합니다. 새 집이 짱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석환 형이 웃으며 너희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이따가 오후에 방문해서 중요한 개인 짐만 따로 챙기자고 결정한 후.
“라면 끓여먹자! 라며어언!”
“라면! 라면!”
인덕션이 설치된 주방으로 뛰어 들어가 비주와 함께 라면 제조를 서둘렀다.
매니저 형들이 잠깐 1층에 다녀온다고 나간 후.
라면 스프 봉지를 파닥파닥 하며 엄청 널찍한 거실을 둘러보았다.
“좋다.”
“좋네요.”
어렸을 때, 할머니 따라서 가끔씩 모델하우스 가고 그러면 꼭 그런 집에 살아 보고 싶었는데.
비록 할머니와 같이 사는 집은 아니지만.
이렇게 안전하고 좋은 집에,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참, 아까 틴스피릿 분들이 와이파이 비번 뭐라고 알려 줬져?”
“잠시만.”
핸드폰에 들어가 [니가 이걸 왜 쓰세요]라고 되어 있는 틴스피릿 숙소 와이파이를 찾았다.
뭐였지 하다가 금세 떠올랐다.
“JONNA.”
사이좋게 비번을 입력하며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