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77화
이사는 빠르게 진행됐다.
기타나 전자제품 등을 제외하면 특별히 챙겨야 할 물건이 별로 없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이삿짐의 99퍼센트가 옷과 신발이기도 하고.
“리혁이 형, 이 박스 어디다 둬여?”
“그건 안쪽 방으로!”
“리혁아. 여기 행거 배치 어떻게 할까?”
“잠시만요! 여기 욕실 용품 좀 체크하고!”
청소 덕후인 우리 애의 진두지휘 덕분에 빠르게 이삿짐을 정리할 수 있었다.
나머지 넷이서 했으면 하루 종일 걸렸을 텐데.
빼곡히 메모가 적힌 방 배치도를 감독처럼 들고 다니던 녀석이 얄밉게 웃었다.
“나 없었으면 진짜 어쩔 뻔했어. 넷이서 바보처럼 끙끙댔을 텐데.”
“야. 우리가 그 정도로 바보는…….”
이라는 말을 할 때.
“영차!”
“여엉! 으앙! 차!”
눈앞에서 무거운 원판이 낀 헬스장 봉을 들고 가는 2인조의 모습이 보였다.
중현이가 콧노래를 하고, 지호가 얼굴이 벌게져서 죽으려고 했다.
내 앞을 지나가는 중현이에게 물었다.
“중현아.”
“네, 형.”
“그걸 왜… 무거운 걸 끼워서 들고 가는 거니.”
“아.”
중현이가 너무 명쾌하지 않냐는 표정으로 답했다.
“이렇게 가면 한 번에 갈 수 있잖아요. 여러 번 왔다갔다 할 필요 없이.”
“…….”
“리혁아. 어때. 나 효율적이지?”
리혁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짐짓 박수를 쳤다.
“정말, 감탄을 금할 수가 없네요.”
“하핫.”
중현이가 와하핫 웃으며 지호와 함께 원판을 매단 봉을 양쪽에서 붙잡고 걸어가다가…….
쿵!
지호가 엉덩이를 벽에 부딪혔다.
“아얏!”
봉 길이 때문에 가다가 여기저기 부딪히는 우리 막내였다.
“…엇. 지호야? 아파? 그게 아파?”
중현이가 당황해서 허둥대는 모습까지.
할 말을 잃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리혁이가 나한테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바보가 아니라고요?’ 하는 눈빛으로.
“미안하다.”
솔직하게 사과하기로 했다.
“내가 쟤네를 너무 과대평가했어.”
“지금이라도 알았으면 됐어요. 자, 이제 스스로의 무능함을 깨달았다면 이 박스를 들고 욕실에 가도록 해요.”
“네.”
“5분 뒤에 가서 검사할 거니까 제대로 해요. 할머님한테 일하는 모습 셀카 찍어서 보내지 말고.”
“네에….”
군말 없이 시키는 대로 했다.
인정하긴 싫지만 리혁이가 시키는 대로 정리하면 순식간에 일이 끝이 나곤 했으니까.
대학에 청소학과가 있다면 거기 수석 입학할 녀석이었다.
집안을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는 메인보컬 덕분에 첫날에 이삿짐 정리를 바로 끝내 버린 후.
촛불을 꽂은 케이크와 함께 입소식을 진행했다.
“이사 축하합니다~! 이사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수플레~!”
“우리~ 이사 왔어요~!”
콘서트 굿즈로 나온 대왕 수플레 쿠션에 산타 모자를 씌워서 함께 축하송을 불렀다.
대표님께 전화 드려서 감사 인사도 전하고.
“대표님,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 앞으로 이 집에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겠습니다.”
-그래. 앞으로 험난한 일들이 많겠지만, 부부는 일심… 아니, 이게 아닌데.
“죄송합니다. 대표님. 저희가 오해할 만한 발언을 했네요.”
자연스럽게 주례 멘트를 하시다가 당황한 대표님과 함께 웃기도 하고.
각자 가족들에게 새롭게 이사 온 숙소를 영상 통화로 구경시켜 주기도 했다.
다들 엄청 좋아하셨다.
특히 행복하게 손을 흔들어 주는 비주네 가족에게 나도 같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곤 통화를 끝낸 비주에게 물었다.
“예전이랑 집이 다른 거 같은데. 얼마 전에 이사했어?”
“네. 누나 오피스텔도 계약해 주고. 본가는….”
비주가 사진을 보여 주었다.
“민준이 학교 때문에 먼 곳으로는 못 가고 근처에 있는 집을 마련했는데요. 되게 좋아요.”
“집 옮겨드린다고 할 때, 뭐라고 하셨어?”
“아빠가 엄청 울었어요.”
원래 연구원을 하다가 사업을 시작했는데, 안 좋은 시기와 맞물려 실패하셨다고 했던가.
얼마 안 가 민준이도 아프고.
같은 집에서 30년 가까이 살았다고 들은 것 같은데, 잘 풀려서 정말 다행이었다.
비주가 물었다.
“형은 어떻게 할머님 집…….”
“이사 안 가신디야.”
“어? 왜요?”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이사 가면 딸한테 너무 미안할 것 같다고.”
“아아….”
“그리고 이사 가서 못 찾아오면 어떡하냐고 그러더라고.”
설득을 여러 번 해 봤는데 통하지 않았다.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비주가 굉장히 조심스러운 어투로 물었다.
“근데요. 형.”
“응?”
“그게… 이사 가면 못 찾아오시고 그러는 거예요?”
너무 진지하게 묻는 표정에 그만 웃음이 나와 버렸다.
“나도 몰라. 그렇다는데 그러려니 해야지.”
“순간 긴장했어요.”
“뭐, 거기도 시스템이 있겠지.”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이사 첫날을 마무리했다.
아무래도 정이 들었던 이전 숙소에서 벗어나면 당분간 적응이 힘들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처음부터 우리 집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적응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널찍한 소파에 널브러져서 천장을 바라보는 게 일과였다.
“아. 집에서 안 나가고 싶다.”
“저두여…….”
“그러게. 너무 좋다. 우리 여기서 평생 살까요?”
“…….”
“다들 왜 갑자기 눈을 감는 거야…?”
어쨌거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소극장 투어부터 최근 일본 콘서트까지 누적된 피로를 푸는 시간.
가족들과 함께할 휴가가 남긴 했지만, 일단 피로를 풀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중현이가 말했다.
“그래도 출근해야 되는 거 아닐까요. 우리.”
“회사에서 우리 출입카드를 정지시켜 놨대잖아.”
“악독하네요. 일도 못하게 하고.”
“……잠깐만. 지금 나만 이 대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회사 연습실에 나가서 가만히 앉아 있기라도 하고 싶었는데, 출입카드까지 정지했다.
2, 3일 정도는 반드시 쉬라고.
그런 까닭에 일 없이 완벽하게 쉬면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시간을 지금까지 연락하지 못했던 지인들과 소통하는 데 사용하기로 했다.
-Hi.
노트북 화면에 떠오른 갈색머리의 남자.
현대 시대로 타임슬립한 바이킹처럼 건장한 외국인이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오랜만이구만.」
「오랜만이에요. 존, 감독상 수상 진심으로 축하해요.」
「드디어 해냈지. 이 바닥에 들어오고 나서 23년 만에.」
뿌듯해 하는 ‘노스탤지어’의 감독, 존 에드워즈를 보고 웃었다.
그럴 만도 하지.
며칠 전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노스탤지어’는 전체 17개 부문에서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는 성과를 얻었다.
감독상, 촬영상, 여우조연상, 시각효과상 등을 포함해서 6개 분야에서 수상하고.
메인 OST인 ‘Falling Stars’가 주제가상에 선정되었다고 들었다.
루퍼트 딘이 메신저로 시상식 퍼포먼스 영상을 링크로 보내 줬던 터였다.
「루퍼트랑도 연락했나?」
「네, 축하 인사했어요. 노미네이트 됐다고, 엄청 신이 났더라고요.」
대충 신변잡기를 이어간 후.
「그래서 시간은 언제쯤 빌 것 같나? 뉴욕에서 한 번 보고 싶은데.」
「이번 달 내로 가능할 것 같아요.」
「환상적이군. 좋아. 그러면 내 에이전트에게 일정을 전달해 줘. 시간을 만들어 볼 테니.」
「네, 그럴게요.」
저번에 LA에서 만나지 못했던 바로 그 용건 때문이었다.
소개시켜 주기로 한 사람이 그날 갑작스러운 일정 때문에 못 온다고 했지.
어떤 용건인지는 알고 있었다.
휴가 끝나고 조 이사님 대동해서 미국을 한 번 방문해야겠다고 결심하며 메모를 적었다.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연락을 했다.
“야. 나 이사했다.”
-오? 이아? 어이? (이사? 어디?)
“물 좀 뱉고 말해라.”
-퉤.
양치 거품을 뱉는 한태현에게 위치를 말해 주자, 상대가 ‘이열’ 하는 소리를 냈다.
-성공하셨네. 드디어 성공하셨어. 이 동생 정말 눈물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요.
손뼉을 짝짝 치더니 ‘아’ 하며 말한다.
-참. 거기 틴스피릿 애기들 사는데 아닌가? 보안 겁나 좋아서 자기 집도 못 들어갈 때 있다던데.
“아랫집이야. 안 그래도 아침에 난초 주고 갔어.”
-푸핫!
“어제 준 이사 떡이 존맛탱이어서 고마웠대.”
영상통화 화면을 돌려 ‘경축★이사/운수대통하세요..!’ 라는 리본이 적힌 난초를 보여주었다.
뒤에서 난 영양제를 꽂고 있던 밀짚모자 중현이가 푸근한 미소를 짓자, 녀석이 흐느끼듯이 웃었다.
곧 TNT가 리패키지 앨범으로 컴백한다고 했던가.
저 얕은 웃음 장벽을 보고 있자니 어지간히 힘든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 좋네.
양치를 하던 녀석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물었다.
-근데 그 집에는 분수 없어?
“분수?”
-좋은 집이면 분수 정도는 있어야 된다는 게 국룰인데. 아니, 님 설마 그것도 몰랐던 거임?
“내가 좋은 집을 살아봤어야 알지.”
TNT 멤버들은 내가 알기로 다 독립해서 따로 산다고 들었는데.
얼마나 대궐 같은 집에 혼자 살기에 분수가 있다는 건지 궁금해질 때.
-내가 보여 줄게. 우리 집 분수.
“분수? 어디?”
-여기.
그러면서 물이 쫄쫄쫄 뿜어져 나오는 워터 픽을 들고 웃음을 터뜨리는 한 모 씨였다.
한심해하는 내 표정에 왜 더 웃는 건지 모르겠다.
“끊는다.”
-아니, 이제 서론인데…….
뚝, 통화를 종료하고 나서는 난을 다듬는 중현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중현아.”
“네. 형.”
“왜 내 주변에는 이상한 사람들밖에 없는 걸까.”
그 말에 중현이가 난을 다듬다가 멈칫했다.
그러곤 신중한 표정으로 알쏭달쏭한 말을 꺼냈다.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요. 형.”
“응?”
“갈릴레오가 그랬어요.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고.”
“무슨 뜻이야?”
“그렇다는 얘기예요.”
더 물어보려고 했지만, 중현이가 핸드폰을 들어 난에게 잔잔한 클래식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고민하다가 잘 모르겠어서 어깨를 으쓱였다.
“참, 중현아.”
“네.”
“그거 인공 난초야.”
“알아요. 형. 미리 연습하는 거예요.”
“그렇구나.”
“네.”
“그래. 각자 할 일 하자.”
중현이가 인공 난초와 소통을 하고 있는 동안, 나는 하고 있던 작곡을 마저 이어갔다.
참으로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 * *
대망의 회사 출입금지가 풀리는 날.
삐빅-
경쾌한 해제음을 들으며 회사에 입성했다.
“막내야. 브금.”
“넹.”
스타워즈에서 악당들이 나올 때 쓰는 BGM을 틀면서 회사 복도를 위풍당당하게 걸었다.
선글라스를 낀 채 근엄하게 걷는 우리 모습에 지나가던 직원들이 큰 웃음을 터뜨렸다.
“안녕하세요!”
“안녕. 일본 잘 다녀왔어?”
“네! 이거 받으세요.”
수레에 담긴 선물 봉투를 건넸다.
자잘한 기념품 선물과 포스트잇이 담긴 작은 봉투에 상대가 고맙다며 인사했다.
그걸 시작으로 부서마다 찾아갔다.
“안녕하세여! 여러분! 저희가 돌아왔습니당!”
“복귀 With 선물.”
“저기, 형. 제 앞에서 With 소리 좀 그만 내줘요.”
선물 봉투를 전해 줄 때마다 직원들 사이에서 웃음꽃이 피었다.
“소극장 끝나고 바로 일본 가야 돼서 힘들었을 텐데. 다들 고생 많았어.”
“어머, 이거 은근 탐났는데. 고마워.”
“간식 잘 먹을게!”
홍보팀, 경영지원팀, 배우 매니지먼트 팀 등을 돌면서 선물 봉투를 건넸다.
그리고 A&R팀과 프로듀싱팀…….
“사무실이 텅 비어 있는데여.”
“그러게.”
그런 말을 하며 열린 문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왁!”
“흐아아아악!”
화들짝 놀라서 자기들끼리 도망치다 엎어지는 양 팀 직원들에게 선물 꾸러미를 건네주었다.
“어, 어떻게 안 거야? 사람이 있는지.”
“저기 커피 잔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오잖아요.”
다음부터는 숨지 말라는 이야기와 함께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회사 투어를 마무리한 후.
우리를 전담하는 뉴블랙 TF팀과 함께 대회의실에 둘러앉았다.
선물 꾸러미를 받아들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드디어 회사에 복귀했네요. 일단 축하를 위해 다 같이 박수 세 번 할까요?”
짝짝짝.
소극장 투어부터 이번 2주 동안 일본 투어까지 함께 해준 회사 스탭들과 자축의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그래도 쉬고 있었는데, 다들 엄청 열심히 일했는지 얼굴이 홀쭉하다.
끝나고 소고기라도 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상석 부근에 앉은 두 인물에게도 인사를 전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피디님, 이사님.”
“아니야. 나도 덕분에 재미있었는걸. 빵도 팔아 보고.”
뿔테 안경을 쓴 중년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스페셜 앨범 프로모션 이후로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하승주였다.
저번 스페셜 앨범에는 프로듀서였지만, 이번에는 다음 앨범의 자문 역할을 맡아 주었다.
그때 맞은편에 있던 조규환 이사님도 커피를 홀짝이며 웃었다.
“고생 많았다. 해외에서 활동하느라 엄청 힘들었지?”
“네에.”
“안 힘들다고 해도… 아, 힘들었다고. 그래. 힘들지.”
잠시 고길동 같은 표정이 스쳐가는 우리 이사님이었다.
그렇게 서로 네가 짱이다, 맞다 내가 짱이다 하는 공치사를 주고받으며 회포를 푼 후.
TF팀장인 석환 형이 회의를 주관했다.
“그럼 회의 시작하겠습니다.”
회사 직원들이 노트북을 펼친 가운데 우리도 다이어리를 꺼내 메모 준비를 시작했다.
석환 형이 말했다.
“우선 일본에서의 성과 보고인데요.”
2주 동안 일본에서 거두었던 성과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고베에서 4일간 3만 6천여 명, 요코하마에서 2일간 3만 명을 포함해 총 6만 6천여 명을 동원한 콘서트.
그에 대한 수치가 막 나오는데 다시 한번 봐도 안 믿길 만큼 얼떨떨했다.
그 외에 팝업스토어 매출이라든가, 오프라인에서 일반인 반응 등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다만, 굉장히 좋은 성적과 별개로 본격적인 일본 활동은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홍보 담당인 홍서영 과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지 방송이 엄청 적대적이에요. 뭐만 하면 악의적으로 편집을 하는데, 솔직히 이게 일반인들에게 영향이 없진 않거든요. 얼마 전에도 하나 또 있고.”
“또 있어요?”
최근 방송 주제로 ‘뉴블랙, 일본에서 활동하다 갑자기 귀국한 이유는?’ 하는 걸 내보냈다나.
3.1절 때문에 정부와 교감이 있었던 게 아니냐고.
다들 혀 차는 소리가 회의실에 울렸다.
홍서영 과장님이 말했다..
“아무튼 지금 편집 중인 미튜브 TV컨셉 컨텐츠로 어느 정도 이미지 쇄신은 하겠지만, 저 나라에서 활동할수록 더 악의적으로 편집 될 게 늘 거예요.”
“다른 아이돌처럼 일본에서 활동하기는 어렵다는 거네여.”
“그렇지.”
일본 번안곡을 내거나 일본 정식 데뷔를 하는 루트를 타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의견이었다.
직원들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중국 쪽을 노리기도 힘든 게, 요즘 자국 컨텐츠 보호한다고 문을 닫고 있거든요.”
“게다가 TNT가 꽉 잡고 있지. 거기 중국인 멤버 누구지. 장한별이 한 번 뜬다 하면 1억 명이 들썩인다며.”
“그리고 일본 방송 때문에 뉴블랙이 한국 대중문화의 선봉장처럼 소문이 나서 엄청 까다로울 거예요.”
한국 대중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돌이 자국에 진입하는 걸 원치 않는다는 듯했다.
K팝에 있어서 가장 큰 두 개의 시장에 진입 자체가 힘든 상황.
그렇다면 선택지는 하나였다.
“그럼 앞으로 해외 프로모션을 할 때는 중국과 일본 외 지역을 좀 더 노려보는 식으로 가야겠네요.”
석환 형이 답했다.
“맞아. 우리도 그쪽으로 계획을 잡고 있어. 그래서 K-Net 쪽이랑 긍정적으로 얘기 중이기도 하고.”
“케이넷이여?”
막내의 물음에 우리 팀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올해 유럽이나 북미에서 K팝 콘서트를 투어처럼 연다고 하더라고. 메인 퍼포머로 요청을 받아서.”
“아아.”
“자체 조사하니까 너희가 굉장히 인기 있다고 하더라고. ‘Nine’이 크긴 컸나 봐.”
‘오오’ 하며 나를 바라보는 동생들에게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서 해외 활동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무튼 기왕 이렇게 된 거, 동남아권이랑 기타 지역을 노려보자는 게 우리 의견인데.”
직원들이 우리에게 물었다.
“너희는 어때?”
“저희도 같은 생각이에요. 방법이 그것밖에 없기도 하고.”
정확한 의견 일치였다.
한국에서 얻은 대중적인 인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중국과 일본 시장에 진입하기가 엄청 어려워진 상황.
제3의 길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그쯤에서 해외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한 후.
“다음은 가장 중요한…….”
회의 분위기가 더 진지해졌다.
“다음 앨범에 대한 이야기인데, A&R팀이랑 프로듀싱 팀에서 곡을 열심히 모으고 있어.”
“네, 저도 작업 중인 곡들이 있어요.”
“일단 너희가 원하는 컨셉에 맞춰서 곡을 공모 중인데 곧 마무리 될 거 같아.”
다음 앨범의 퍼스널 컬러는 보라색.
‘Five Colors’라는 틀 안에 있는 다섯 개의 연작 앨범 중에서 마지막.
바로 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앨범이었다.
스페셜 앨범이 끝나고 바로 동생들과 얘기도 나누고, 회사와 회의를 거쳐서 컨셉도 확정했는데.
우리가 소극장 투어를 하고 일본에 가 있는 동안 곡 공모를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A&R팀 대표로 참석한 서필근 대리에게 말했다.
“일단 들어온 곡 좀 보내 주실 수 있나요? 저희가 틈틈이 들어볼게요.”
“끝나고 USB 줄게. 근데 아마 다 들으려면 며칠은 걸릴 거야.”
“네?”
“뉴블랙 다음 앨범이라고 하니까 엄청 들어왔거든. 다들 이번에 정규 앨범이라고 생각한 것도 있고.”
나름 추렸다고 하는 곡들인데도 개수를 듣고 식겁할 뻔했다.
조규환 이사가 물었다.
“근데 시기상으로 데뷔 2년쯤 됐으면 정규 앨범을 한 번 내는 것도 좋을 듯한데.”
“지금은 아닌 것 같고. 다음 앨범을 정규로 하고 싶어요.”
“형평성 차원에서?”
“네.”
흔히 앨범은 그 안에 담긴 곡의 개수에 따라서 정규, 미니, 싱글 등으로 분류한다.
정확한 분류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곡이 10개 이상이다 하면 정규 앨범인데, 그런 만큼 보통 미니 앨범보다 더 공을 들이는 편이다.
조 이사님 말대로 시기가 되긴 했지만…….
“여태까지 멤버들 앨범을 다 미니로 하다가 제가 주인공이라고 갑자기 정규 앨범을 하는 건 좀…….”
“하긴. 그것도 그렇지.”
“이번 연작이 다 끝나고 다음 앨범을 정규로 하고 싶어요.”
프로듀싱을 담당하는 멤버로서의 단점이라고 할까.
내 파트가 늘어나거나 다른 멤버들보다 더 돋보이면 안 좋게 비춰질 수도 있어서.
꽤나 민감한 주제였기에 논란이 나올 구석은 아예 피하고 싶었다.
다른 직원들도 내 이야기가 맞다고 고개를 끄덕일 때, 자문을 맡은 하승주가 내게 물었다.
“참, 우주야. 이번 곡 작업은 잘 돼 가?”
“음. 네.”
“막히지는 않고?”
“해결해야 할 게 몇 가지 있긴 한데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하승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분에 문제가 좀 있긴 하지만, 이 자리에서 말을 하기에는 애매했다.
맞은편에 앉은 조 이사님이 눈을 가늘게 뜨며 웃고, 동생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가운데.
석환 형이 말했다.
“앨범은 그럼 차후 회의하도록 하고. 이제 다음 컴백이랑 연계해서 말인데.”
새로운 화제에 우리의 시선이 집중됐다.
“새 콘서트를 계획 중이야.”
바로 두 번째 콘서트에 대한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