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81화
“……아이돌 데뷔 프로젝트요?”
“네.”
제작진이 테이크아웃 커피를 건네주며 답했다.
조심스럽게 냄새를 확인하는 내 모습에 신무록 피디가 미소를 지었다.
“우주 씨는 아이스 초코. 맞죠?”
“어떻게 아셨어요?”
“우리 팀이 다른 건 몰라도 사전조사만큼은 PBS 제일이거든. 커피에 약하다고 인터뷰한 건 진작에 봤지.”
그거 데뷔 초에 인터뷰했던 것 같은데.
우리에 대해 테라바이트급으로 자료를 모았다고 너스레를 떠는 제작진이었다.
신무록 피디가 말했다.
“일단 천천히 음료수 마셔 가면서 내용물을 확인해 봐요.”
코코아를 홀짝이며 기획안을 넘겼다.
아이돌 데뷔 프로젝트.
이번에 <미스터 프로듀서>의 멤버들이 아이돌에 한번 도전해 보겠다, 그런 내용의 특집이었다.
“흐음.”
이런저런 내용이 있었지만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아이돌 멘토로 참가를 하는 방식이었다.
미스터 프로듀서.
TBC의 <주사위로 세계 한 바퀴>와 더불어 양대 예능으로 꼽히는 미프는 2030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국민예능이다.
주세한이 대중들에게 광범위하게 인기가 좋은 프로라면 이쪽은 2030에게 화제성이나 인지도가 엄청 높다고 할까.
예컨대 서예 특집을 하고 나면 서예 학원 간판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그런 식이었다.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프로그램 팬 미팅을 할 만큼 해외 인기도 좋고.
내가 물었다.
“그럼 저희가 이번 특집에 미스터 프로듀서로서 활동하는 건가요?”
“네. 그거예요.”
프로그램의 포맷은 간단하다.
매 특집마다 미스터/미스 프로듀서를 멘토로 섭외하고, 그런 멘토의 도움을 받아 일종의 체험을 하는 것이다.
아나운서를 멘토로 섭외해 아나운서에 도전하기도 하고.
포토그래퍼를 섭외해 사진을 찍는 방법을 배워 최고의 사진을 남기는 프로젝트도 하고.
푸드 트럭 장사도 하고.
그런 식으로 개인전이나 단체전을 해서 1등 하거나 성공을 하면 보상이 주어지고, 꼴등하거나 실패를 하면 상당히 수치스러운 페널티 미션을 수행하는 프로였다.
“이번에 뉴블랙을 특집 프로듀서로 섭외해서, 멤버들을 아이돌로 데뷔시키려고 해요.”
“저희가 멤버 분들을 트레이닝하는 건가요?”
“트레이닝보다는 멘토링이죠.”
신무록 피디가 말했다.
“실무적인 분야에 있어서는 보컬 트레이너나 댄스 트레이너는 따로 섭외를 할 거예요. 곡을 줄 작곡가도 섭외를 할 거고. 뉴블랙은 말 그대로 프로듀서 역할이죠.”
전체적으로 방향을 잡아 주고, 선배 아이돌로서 이런저런 조언을 해 주는 역할인 듯했다.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는데.
내가 입술을 달싹이는 동안 리혁이가 물었다.
“이런 걸 저희가 해도 돼요?”
“네?”
“저희가 방송 활동을 시작한 지, 썸씽부터 따져도 고작 2년인데 누구를 멘토링하기에는 좀…….”
“아…….”
‘아’ 하는 소리를 내는 제작진에게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미프는 TNT에게 잠깐 좀 나와 보셈 해도, TNT가 갈게용 하고 나올 프로였다.
내가 말을 이었다.
“유명한 선배님들도 계신데 저희가 프로듀서로 나서는 것도 좀 그렇고. 그리고…….”
“그리고?”
“아무래도 저희가 어리잖아요.”
미프 멤버 6명 중 4명이 30대인데.
솔직히 멘토링 하면 좋은 소리만 할 수 없는 건데.
우리가 연예계 선배들에게 쓴소리 하는 그림은 대중들에게 안 좋아 보일 수도 있고.
그런 이미지 문제에 대해 경청을 하던 신무록 피디가 잠깐, 하듯이 손을 들었다.
“일단 잠깐 멈춰 봐요.”
시무룩한 눈꼬리 아래로 어수룩한 미소가 떠올랐다.
PC방에서 자주 마주치는데, 게임 못하는 걸로 유명한 동네 형 같은 느낌이었다.
미프 출연자들을 상대로 사기를 칠 때 나오는 그 표정에 우리가 경계를 품었다.
“일단 연차랑 나이가 걱정이라는 거죠?”
“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하나도 없어요. 우리가 다른 프로도 아니고 미프인데, 그런 부분도 조사를 안 했겠어요?”
작가진이 내민 종이에 우리가 고개를 내밀었다.
“네티즌 대상으로 조사를 해봤는데, 뉴블랙의 체감 연차가 굉장히 높은 편이에요.”
“오.”
“아무래도 대중들이 자주 보니까 연차를 실제보다 더 높게 느끼더라고요.”
신무록 피디가 말을 이었다.
“아이돌 중에서도 보면 한참 전에 데뷔했는데 아직도 신인처럼 느껴지는 그룹이 있고, 반대로 1~2년 했는데 베테랑처럼 느껴지는 그룹이 있는데. 뉴블랙은 후자라는 거죠.”
“아하.”
“연차 걱정은 됐죠?”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또 다른 이야기를 꺼내려고 할 때, 신무록 피디가 말을 계속해서 이어 갔다.
“나이에 대한 것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가 누구냐. 천사의 편집으로 유명한 미프잖아요.”
“아. 네.”
“인터뷰 보면 알 거예요. 매번 프로듀서로 나오는 사람들이 ‘실제보다 더 좋게 나왔다’ 그러잖아요.”
그건 사실이었다.
온갖 분야의 전문가들이 기를 쓰고 출연하려는 이유가 바로 그런 편집 때문이니까.
신무록 피디가 우리끼리만 하는 이야기라는 듯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편집 없는 생방송으로도 호감을 주는 우리 뉴블랙이 미프의 편집을 만나면?”
“만나면……?”
신무록 피디가 박수를 짝! 치면서 우리가 화들짝 놀랐다.
“이미지 대상승과 함께 시청률 폭발이 일어나는 거죠.”
“오오.”
“동시에 이미지도 살짝 바꾸는 거죠! 평소에 멋있는 거 좀 많이 하고 싶지 않아요?”
“네. 맞아요.”
비주가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는 가운데 막내가 말했다.
“저희끼리 멋있는 거 좀 해보고 싶다고 늘 말하거든여.”
“그래요. 그거예요. 무대도 좀 보여주고. 선배미를 풀풀 풍기면서 미프 멤버들의 나침반이 되는 거예요.”
동생들이 호오 하고 있을 때.
메인작가가 바톤을 이어받았다.
“이번에 뉴블랙을 섭외한 이유가 세 가지 정도 있어요. 하나는 현재 활동 중인 아이돌 중에서 데일라잇보다 더 대중적인 인지도와 호감도가 좋다는 거고.”
2세대 원탑 걸그룹으로 불리는 데일라잇 선배님보다 화제도가 더 높은 게 첫 번째 이유였다.
서브작가가 말을 이었다.
“또 하나는 이번에 아이돌 특집을 준비하면서 자료 조사를 했는데, 뉴블랙만큼 자체 프로듀싱 비율이 높은 아이돌이 없었어요.”
프로듀싱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아이돌이 드물다는 게 이유였다.
신무록 피디가 마무리를 했다.
“마지막으로는 이번에 뉴블랙만 나올 게 아니거든요.”
“누가 나오나요?”
“다른 아이돌도 종종 나올 텐데 TNT든 틴스피릿이든, 스칼렛이든 다 뉴블랙과 친분이 있더라고요. 누구를 붙여 놓든 그림이 확 살겠다. 이런 확신이 들었다, 이 말이에요.”
마지막으로는 다른 아이돌을 아무나 게스트로 잠시 데려와도 케미가 산다는 이유였다.
내가 물었다.
“TNT나 틴스피릿이 나오기로 된 건가요?”
“그건 아직이지만.”
신무록 피디가 말했다.
“부르면 나올 거예요.”
너무나 당연하지 않느냐는 눈빛에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이야기가 그쯤까지 흘렀을 때, 동생들이 홀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형, 할까요?’
‘해여. 이건 해야 돼여.’
세 명 다 홀려 버린 표정이다.
리혁이는 논리 흐름을 점검하며 고개를 갸웃하고 있고.
하지만 사기꾼은 사기꾼을 알아보는 법이라, 신무록 피디가 웃고 있는 동안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으음…….”
솔직히 미프 정도의 프로에서 하자고 하면 일단 OK 하고 보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리스크가 좀 크다.
1회성 게스트라면 모르지만 한번 특집 하면 오래갈 때는 한 달 넘게 끌을 때도 있는데.
“이 특집이 얼마나 긴가요?”
“온전히 이 특집만으로는 3~4주 정도 될 거고. 미니 코너로 시작한 것부터 치면 5~6주 정도 잡고 있어요.”
역시.
부담스러운 기간이다.
지금 내가 고민을 거듭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기간이었다.
신무록 피디의 말마따나 <미스터 프로듀서>는 출연한 전문가를 호감으로 만들어 주는 편집이 특징이긴 하지만…….
시청자층이 문제다.
미프는 소위 게스트 빨을 많이 타는 프로그램이라서, 잘되든 안 되든 그 관심이 게스트에게 간다.
그런 까닭에 아무리 호감으로 포장해도, 일단 재미가 없거나 조금이라도 늘어지면 있는 욕 없는 욕 다 먹는다고 할까.
TNT나 틴스피릿을 그냥 게스트로 부르면 되지, 하는 기세의 제작진이 이렇게 살살 꼬드기는 이유도 그거였다.
미프에 프로듀서로 출연할 만한 인지도의 그룹 중에서 이런 장기 프로젝트를 하자고 하면 다들 손사래를 칠 테니까.
잘 되면 대박이긴 하지만.
이미 잘되고 있는데 굳이 대중들 앞에 나서서 재미없다고 있는 욕, 없는 욕을 다 먹을 가능성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우주 씨.”
신무록 피디가 나를 불렀다.
동생들이 내 얼굴만 슥 보고 있는 것을 눈치 챘는지, 나를 공략해 보겠다는 느낌으로.
“우주 씨는 어때요?”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고민 끝에 나를 바라보는 제작진에게 물었다.
“미스터 프로듀서에 저희가 나왔을 때.”
“나왔을 때?”
“한두 번이면 모르겠지만, 몇 주 내내 재미를 뽑을 수 있을까요?”
그 말에 제작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큰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뭐 그런 어처구니없는 질문이 있냐는 투의 웃음소리에 동생들과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때.
신무록 피디와 작가들이 웃었다.
“그럼 모두 동의한 걸로 알고.”
매니저와 우리 앞에 종이를 내밀었다.
“지금 바로 출연 동의서 씁시다.”
* * *
기나긴 미팅 끝에 미스터 프로듀서 출연이 확정됐다.
실무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매니저와 제작진이 조율하기로 하고.
우리는 제작진과 함께 특집 구상에 대해 회의했다.
미스터 프로듀서의 멤버들 프로필을 보며 어떤 느낌으로 준비를 하는 게 좋을지 의견도 제시하고.
“그럼 녹화 때 봐요.”
“감사합니다!”
미스터 프로듀서 멤버들과 함께할 녹화 시작은 4월.
매주 1회 촬영이 목표였다.
회의실을 떠나는 우리를 제작진이 홀가분한 표정으로 배웅해 주었다.
아이돌 데뷔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 이미 멤버들이 보컬, 댄스 트레이닝을 받고 있었다는 모양인데.
지금까지 프로듀서 섭외가 난항이었던 듯했다.
내가 고민한 것과 마찬가지의 이유로 거절한 사람들도 많고.
“근데 정말 이거 괜찮을까요.”
중현이가 말했다.
“회의실에 있을 때는 뭔가 홀렸던 것 같은데, 정신 차려 보니까 좀 걱정이 돼서요.”
“그러니까여. 우리 노잼인 거 들통 나서 욕먹으면 어떡해여? 저 그럼 잠 못 자는데.”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뭐 하러 걱정해요.”
“그럼 형은 앞으로 물컵 엎고 나서 닦지 마여.”
“…….”
뭐라고 대꾸하려던 리혁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정 안 되면 해결책이 하나 있어요.”
“뭔데?”
해결책이라는 말에 우리 모두의 시선이 집중될 때.
리혁이가 내게 시선을 돌렸다.
“외발자전거 한 번 더 가죠.”
“안 돼.”
내가 고개를 저었다.
“그거 너무 많이 써먹어서 이제 식상해.”
“외줄타기라도 배워요. 그럼.”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라며 동생들이 맞장구를 쳤다.
매주 외줄타기, 불의 고리 뛰어넘기, 악어 입에 머리 넣기 등을 하며 한 주씩 때우자고 하는 동생들이었다.
……얘네는 대체 날 뭘로 보는 걸까.
“깊게 생각하니 배가 고프네요. 그만 생각해야지.”
중현이가 평온한 어투로 말했다.
“방송 재미는 그때 가서 고민해요. 우리.”
“그래. 중현이 말대로 그때 가서 생각하고. 일단은 부담 가지지 말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PBS 주차장으로 향하는 내 핸드폰에 알림이 뾱 하고 떠올랐다.
한태현 [행님]
한태현 [저 불러 주세요]
뭘 불러 달라는 거지.
나 [태현아]
곧바로 답이 돌아왔다.
한태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이고]
한태현 [그거 말고요 할아부지]
한태현 [미프에 프로듀서로 출연한다면서]
한태현 [무대에서 끼 부리기 파트 강사로 초청 부탁드립니다]
얘는 무슨 뉴스 알림 키워드에 내 이름이라도 들어가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어? 우리 기사 떴어여.”
“어디?”
“포털 메인이여.”
지호의 말에 우리 모두 포털 연예란에 접속했다.
가장 잘 보이는 맨 위 칸에 굵직한 볼드체로 처리된 기사가 있었다.
[뉴블랙, ‘미프’ 아이돌 프로젝트 출연 확정, 신PD “뉴블랙은 최고의 적임자”]
기사 나오는 속도가 거의 광속이었다.
여의도 PBS 본관 너머 구름 위로 푸근하게 손을 흔드는 신무록 피디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기사를 쭉쭉 내려 댓글 내용을 확인했다.
-대박이네ㅋㅋㅋㅋㅋㅋㅋㅋ
-언제부터 하는 거임??
-무록아.. 언플 좀 적당히 하고 방송이나 재미있게 만들어라 요새 개노잼이더라
-노잼은 무슨ㅋㅋㅋ 2030 화제성 지표나 보고 와라
-주틀닦들 또 시작이네;
-매번 게스트 논란 나는데도 찬양하는 미프 빠들 대단해
주세한과 미프의 팬덤이 서로에게 훈훈한 욕을 날려 대는 싸움을 쭉쭉 넘긴 후.
우리에 관한 댓글을 찾아보았다.
-대박ㅋㅋㅋㅋㅋㅋ 이번에 보러 간다
-미프 아이돌 나오면 착한 척하고 사려서 노잼이었는데 기대 중ㅋㅋ
-뉴블랙은 몸을 아끼지 않아서 좋음
-확신의 연예계 썸녀 없는 아이돌ㅋㅋㅋㅋㅋ
-근데 일단 뉴블랙 나온다고 하면 볼 사람 꽤 될 거 같은데
-존잼각ㅋㅋㅋㅋㅋㅋㅋㅋ
-ㅁㅊ 기사 사진부터 단추 터진 짤이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
출연 소식만으로도 벌써 재미있다며 잔뜩 기대하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급격하게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진짜 외줄타기라도 배울까.”
동생들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미스터 프로듀서 제작진과 회의를 마친 후.
마침내 제주도로 떠나는 날이 밝았다.
저마다 캐리어를 하나씩 밀면서 김포공항을 거닐자, 6mm 카메라를 든 제작진이 따라 붙었다.
“정말 설레네요.”
첫 여행 리얼리티 촬영을 앞둔 포부를 밝혔다.
“저희끼리 이렇게 여행을 떠나 보는 게 처음이거든요. 긴장되기도 설레기도 하고.”
“진짜 너무 설레여.”
막내가 크으 하며 말했다.
“여행 리얼리티 하자고 했던 게 작년 여름이었는데, 이제 간다니.”
“특히 제주도는 원래 올해 초에 소극장 투어로 방문하려고 했는데…….”
“폭설이 왔죠.”
1월 달에 큰 폭설로 공항 활주로가 폐쇄됐던 일이 있었다.
그런 까닭에 3박 4일간 방문 일정에서 첫날은 그때의 못했던 소극장 공연을 하고.
둘째 날부터 3일간 여행을 할 예정이었다.
“오! 뉴블랙!”
“안녕하세요!”
지나갈 때마다 반갑게 손을 흔들어주는 사람들에게 우리도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누군가 말을 걸었다.
“어디 가? 엄청 멋들어지게 차려입었네.”
“저희 여행 가요!”
다 같이 처음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설렘 덕분인지, 지나가는 모두가 반갑게 느껴졌다.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게 유일한 아쉬움이긴 했지만.
다행히 제주도라서 비행이 굉장히 짧았다.
비행기 안에서 옆자리에 앉은 비주와 셀프캠을 찍으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면서 불안을 달래기도 하고.
“안녕하세요!”
마침내 도착한 제주공항에서도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와. 날씨 너무 좋다.”
“진짜, 날씨까지 우리를 반기는 느낌이에여.”
이미 몇 차례 방문해서 익숙한 제주공항의 야자수라든가, 주변 풍경을 되새기며 차량에 탄 후.
리얼리티 PD님이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번 여행 리얼리티는 정말 뉴블랙을 위한 일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오오오!”
“멤버 분들이 사전 미팅 때, 하고 싶다고 한 것들을 모두 이뤄 드리려고 계획 중입니다.”
“오오오…….”
갑자기 간담이 서늘했다.
각자 서로를 돌아보며 눈을 가늘게 뜨는 우리였다.
정말이지 각자의 취향을 신뢰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한 면면이었다.
“너 뭐 하고 싶다고 했어?”
“형은여?”
“지금 나만 불길해요?”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피디님이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단 숙소에 들르기 전에 중현 씨의 소원부터 들어 드릴 생각인데요.”
“중현이요…?”
“가 보시면 알 겁니다.”
그 말과 함께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리는 피디님이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불안에 떨고 있었다.
“중현아. 너 대체 뭐 하고 싶다고 했어?”
“비밀이에요.”
“형, 그래도 말해 봐여. 이게 알고 맞는 거랑 모르고 맞는 거랑은 느낌이 틀리잖아여.”
“그래. 김중현. 너 뭐 하고 싶다고 했어?”
중현이가 머뭇머뭇했다.
“근데 미리 말하면 다들 절대 안 된다고 할 거잖아요.”
“그렇지.”
“그러니까 비밀로 할래요.”
우리가 너무나 싫어할 게 뻔하다며 완강하게 거절하는 중현이었다.
대체 뭘까.
“귤 농장인가?”
“해녀 체험 아니에여? 무조건 해녀 체험 각인데.”
“한라산 등반?”
하나 같이 몸을 쓰는 것들이 거론되는 가운데.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음?”
‘렌트’라는 간판과 함께 렌트카 업체였다.
어딘가 이상한 곳에 끌려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너무나 평범한 곳이었다.
겉모습만 렌트카 업체지, 무슨 방 탈출처럼 꾸며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
“중현 씨가 사전 미팅 때 ‘여행 가면 꼭 하고 싶다’고 밝혔던 소원인데요.”
“……?”
“바로 운전입니다.”
“뭬…? 네?”
우리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누가 운전이요?”
“중현 씨요.”
그 말에 중현이가 수줍은 곰처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멀찍이 렌트카 업체 간판을 저승의 입구라도 되는 양 바라보았다.
그러곤 푸근하게 웃는 중현이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
여행 첫날부터 최대 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