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84)화 (384/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84화

피디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러곤 작가님들과 룰을 협의하고 돌아왔다.

“100점이 될 때마다 더 많은 용돈을 추가 지급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아!”

우리가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그 동안 제작진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100점 이야기를 꺼냈는데 정말 100점이 나올지 궁금해하는 시선이었다.

팔짱을 끼고 지켜보는 감독님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거 할 수 있나?”

“갈매기도 잡았는데 노래방 100점은 쉽지 않을까요? 갈매기 잡이는 부업이고 가수는 본업이잖아요.”

“일리 있네.”

다들 게임의 성패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어차피 힐링 리얼리티라는 컨셉답게 우리에게 반드시 용돈을 주기 위해 고안된 미션이었다.

단 한 명만 90점 이상 맞아도 된다는 것도 그렇고.

조금만 생각해 보면 제작진의 의도가 보였다.

애초에 게임 두 개를 준비했다는 것부터가 상식 퀴즈로 용돈을 주고, 그 다음 노래방 게임으로 ‘여러분! 추가 용돈 어때요?’ 하며 재미를 만들려고 했던 듯한데.

제작진도 설마 우리 막내가 그 정도일 줄은 몰랐겠지.

“들었어여, 형? 100점 맞으면 추가 용돈이래여! 대박.”

“…….”

“감독님들! 그거 아시나여? 사실 상식 퀴즈에서 패배한 건 저의 계략이었습니다!”

막내의 턱도 없는 소리에 제작진의 웃음이 쏟아졌다.

리혁이와 내가 입술을 깨물었다.

“애초에 네가 상식 몇 개만 맞췄어도 여기까지 올 일이 없었잖아. 이 멍충아…….”

“계략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넌 계란 하나도 안 사 줄 줄 알아.”

“힝…….”

서글픈 얼굴로 소파에 앉아 있는 중현이에게 돌아가는 막내였다.

아니. 지금 누구 때문에 없던 추가 게임까지 내가 먼저 제안한 건데…….

“일단 그래두 화이팅!”

“화이팅팅.”

거대한 뚱냥이 무리처럼 앉은 두 뚠뚠이가 보내는 ‘화이팅!’에 잠시 웃음이 나왔다.

비주와 리혁이에게 귀를 대라고 손짓하자, 비주는 귀를 쏙 가져다 댔지만, 리혁이는 경계했다.

“또 왜.”

“귀에다 바람 불 거 아니죠…?”

“그런 얘기하면 더 불고 싶어지는 거 몰라? 시간 없으니까 얼른 대.”

이윽고 메인댄서와 메인보컬의 귀에다 손을 모으고 속닥속닥했다.

마이크에도 안 잡힐 만큼 작은 목소리로.

피디님과 작가님, 감독님들이 헤드폰을 낀 오디오 감독님 앞에 옹기종기 모여 도청을 시도했다.

“뭐라고 하는 거예요. 우주가?”

“안 들리는데……. 기계 어쩌구만 들려.”

다행히 다들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내가 물러나며 말했다.

“알았지?”

“네, 그대로 해 볼게요.”

“뭐, 어렵지 않겠네요.”

팁을 숙지하는 동생들을 돌아보고는 제작진이 건네준 마이크를 받았다.

-아아, 쎄쎄쎄.

90년대식 마이크 테스트에 감독님들이 동질감을 느끼는 표정으로 흐뭇하게 웃었다.

카메라를 바라보며 마이크를 들었다.

-아아, 일단 금일 신장개업한 저희 뉴블랙 노래방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와아아아!”

-여러분! 즐거우신가요?

“네에에에!”

행사 멘트를 던지며 감독님들과 스탭들의 흥을 돋웠다.

다들 손을 흔들며 화답해 주는 가운데, 동생들이 곁에 서서 달봉이를 흔들었다.

-자, 제주도에 왔으니 이 노래 꼭 하고 가야겠죠? 제주도를 주제로 하는 곡 중에서 최고의 히트곡입니다.

“와아아아!”

-제주도의 푸른 밤!

노래방 조명이 반짝반짝 돌면서 전주가 흘러나왔다.

*   *   *

‘여행일기’의 스탭들이 손을 느릿하게 흔들었다.

‘진짜 좋다…….’

찬찬히 노래를 부르는 뉴블랙의 리드보컬이었다.

한 소절씩 부를 때마다 잔향이 거실 구석구석으로 쭉쭉 퍼져나갔다.

이제는 더 얽매이긴 우리 싫어요

신문에 티비에 월급봉투에

듣다 보면 정말로 훌훌 털어내고 떠나고 싶어지는 노래였다.

기교 없는 순수한 노래였지만 안에 담긴 감성의 호소력이 짙다고 할까.

조명감독이 다른 스탭에게 말했다.

“야. 잘 부르네. 이래서 가수는 가수라고 하나 봐. 표정이 싹 바뀌네.”

“명곡단에서 1등 먹은 애들이잖아요.”

웃음기 쫙 빼고 본업을 제대로 보여주는 모습에 감탄이 나왔다.

소리가 시원하게 쭉쭉 퍼져나가는 발성에 뒤통수가 움찔움찔하다고 할까.

마이크를 내리며 ‘우우우-’ 하는 부드러운 허밍으로 끝난 후.

노래의 감성에서 빠져나온 우주가 기대감 가득한 표정으로 기기 화면을 바라보았다.

‘아, 점수.’

제작진도 정신을 차리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잘 부르긴 했는데 100점이 쉽게 나올 수가 있나?’

아무래도 기계가 채점하기에 정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사람과는 기준이 다른…….

빰빠바바밤!

화면에서 팡파레가 터졌다.

[100점!]

[와우! 퍼펙트! 정말 가수 하셔도 되겠는데요~?]

세리머니를 하듯 우주가 마이크를 허공에 회전시키고는 붙잡고 ‘짜잔’ 하듯 브이를 했다.

“와아아아아아!”

멤버들이 좋아 죽겠다는 듯 리더에게 달려들어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맑게 울리는 웃음소리.

추가 용돈에 기쁨의 도가니탕이 벌어지는 동안, 피디를 포함한 제작진은 눈을 깜빡거렸다.

‘뭐지.’

추가 용돈을 주기 위해 기획한 게임이긴 했지만, 이렇게 100점 나오기가 쉬운 걸까?

조명 감독이 노래방 기기를 톡톡 치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떻게 한 거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바라볼 때.

어린이 동요를 선택한 비주가 마이크를 잡고 멤버들이 율동을 췄다.

어딘가 앙증맞은 모습에 귀엽다는 웃음이 나온 것도 잠시.

빰빠바바밤!

또 다시 100점이 나와 버렸다.

“……?”

“와아아아아아!”

‘김비주! 김비주!’ 하는 연호와 함께 멤버들이 비주를 둘러싸고 환호했다.

웃음으로 떠들썩할 때.

노래방 기기를 살피던 피디와 작가들이 황당한 웃음을 머금었다.

“너희 여기다 뭐 한 거 아니지?”

“그럴 리가요.”

멤버들이 단호하게 답했다.

“저희에겐 그렇게까지 할 머리가 없습니다!”

“아앗…….”

너무나 설득력 넘치는 대답이었다.

용돈 봉투에 돈을 더 넣으며 피디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도 뭔가 이상한데.’

연예인들의 힐링 리얼리티를 찍으며 몇 번 정도 노래방 점수 내기 미션을 해본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꾼(?)들처럼 점수를 따 가는 연예인은 처음이었다.

빰바바바밤!

그래도 메인보컬인 리혁이 100점을 땄을 때는 납득이 가긴 했다.

스탭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기계라도 100점 줘야지.”

“100점 안 주면 수리 들어가는 거야. 바로.”

“리혁이가 다른 것만 다 못하지, 노래 하나는 진짜 기깔나게 부르는구만.”

‘노래의 신’ 같은 자막이라도 깔아 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준이었다.

차우현의 발라드 곡을 부르며 거실을 콘서트장으로 만들어 버린 메인보컬이었다.

갑자기 잘생겨 보였다.

하루 종일 물티슈를 뽑아 여기저기 닦으며 ‘흐이익’ 하거나 ‘가, 갔어요?!’ 하며 갈매기에게 겁을 먹었던 장면들이 노래 한 곡에 바로 휩쓸려 사라졌다.

스탭들이 혀를 내두르는 한편.

뉴블랙 멤버들이 환호하며 메인보컬에게 헹가래를 해 주고 있었다.

“서리혁! 예쁘다!”

“아, 이런 것 좀 하지 마요오……!”

말끝을 흐리며 좋아하는 리혁의 모습에 다들 웃을 때.

용돈 계산을 끝낸 피디가 뉴블랙 멤버들을 불렀다.

“여러분. 용돈이 준비됐습니다.”

“와아아!”

헹가래를 하던 멤버들이 메인보컬을 소파에 내팽개쳤다.

“흐아아악!”

소파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리혁의 모습을 찍으며 감독들이 웃음을 참았다.

“여기 용돈입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하게 용돈을 받아가는 리더에게 제작진이 물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한 거예요? 방금?”

*   *   *

K-net 방영 예정, 「뉴블랙의 여행일기 시즌1」 중 2화 편집본.

# 어두운 인터뷰룸 (D)

용돈을 받아 가는 리더의 모습에서 인터뷰룸으로 컷이 넘어간다.

의자에 앉아 있는 우주가 미소를 짓는다.

[Q. 어떻게 하신 건가요?]

-어, 그 특별한 건 아니고요. 이게 기기별로 특징이 다 있거든요.

[특징이요?]

-구형 기계는 큰소리로 길게 부르면 고득점이 나오고요. 신형 기계는 박자가 특히 중요한데…….

여러 가지 팁을 늘어놓는 모습에 제작진이 감탄하며 듣다가 말한다.

[지호가 그러던데. 우주 형이 진짜 꾼(?)이라고.]

-아니. 걔는 정말… 그렇게 말하면 수플레들이 오해하잖아요.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강조하는 우주.

때마침 ‘자료화면 : MeTube 뉴블랙TV’라는 글씨 위로 증거들이 빠르게 스쳐간다.

세상에서 제일 자상한 얼굴로 동생들을 바라보는 우주였다.

-가위바위보가 뭐야? 랜덤 게임이야. 얘들아. 과학이라는 거지. 응? 리혁아. 아. 과학이 아니라고.

-맞아. 룰렛도 과학이지.

-학교에서 주사위 확률이 어떻다고 배웠어. 지호야? 무작위로 6분의…. 아. 안 배웠어? 그래.

이윽고 계속해서 당하는 동생들의 모습이 나온 후.

인터뷰룸의 우주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굳이 말을 하자면, 멤버별로 목소리에 맞는 디렉팅을 해 준 것? 정도겠네요. 저는 사기꾼이 아니라…….

[아니라?]

-프로듀서입니다.

뻔뻔한 미소에 제작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자기가 생각해도 웃겼는지 당사자도 키득거리고.

우주가 이내 포기한 얼굴로 ‘공개수배 브금 틀어 주세요’ 하며 농담을 할 때.

[그런데 어쩜 이렇게 잘 아시나요?]

-아. 연습생 시절에 친구들이랑 노래방을 자주 갔거든요. 점수 내기를 많이 했는데, 거기서 이기려고 연구를 많이 했어요.

[무슨 내기였나요?]

-그게…….

우주가 조금 난처한 얼굴로 뒷목을 긁적인다.

-노래방에서 그 공짜로 퍼 가는 종이컵 아이스크림 있잖아요. 바닐라맛, 초코맛. 딸기맛.

[아.]

-그거 퍼 오기가 싫어서…….

출중한 연구 능력과 전혀 매치되지 않는 하찮은 동기에 제작진이 웃음을 터뜨린다.

그 동안 우주가 ‘감동 BGM 깔아 주세요’ 하더니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그 친구들이 모니터링을 많이 해 주는 친구들이라 아마 볼 것 같은데요.

[아아.]

-분명히 이걸 보게 될 텐데, 일단 미안합니다. 제가 나중에 아이스크림 꼭 사 줄게요.

훈훈한 마무리를 끝으로 우주가 ‘미안’ 하며 손을 흔들고.

화면은 야시장으로 떠난 뉴블랙 멤버들로 넘어갔다.

*   *   *

서귀포의 야시장은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6mm 카메라에 둘러싸인 우리가 걸어갈 때마다 시장 상인 분들이 두 팔 벌려 환영해 주었다.

“어이구, 이게 누구야! 우리 아들들!”

“어머니이임!”

전혀 모르는 분과 찐한 애정의 포옹을 나눈 후.

서로 비즈니스 웃음으로 돌아갔다.

“온 김에 떡 좀 보고 가아아-! 떡!”

“네! 당연히 사야죠. 아. 그런데 저희가 예산이 적어서요. 다른 곳보다 조금 비싸 보이는 것 같은데…….”

“아, 깎아 줘야지. 깎아 줄게.”

먹을거리를 사러 돌아다닐 때마다 비주가 상냥한 미소로 흥정을 담당했다.

어찌나 야무진지 사근사근 웃으면서도 절대 손해를 안 보는 우리 애에게 엄지를 들었다.

상인들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한 비주가 설렌 표정으로 속삭였다.

“형, 형! 저 이것도 제 값에 샀어요!”

“잘했다. 우리 둘째.”

“그럼 다음 거 사러 가요! 다음 거!”

흥정을 잘한 것보다 우리가 칭찬해서 더 좋아하는 비주였다.

갑자기 ‘뉴블랙이다!’ ‘뉴블랙?’ 하며 따라붙은 구경꾼들 때문에 야시장 나들이가 예정보다 단축되긴 했지만.

이런저런 소득이 많았다.

“형, 이거 할머님이 좋아하실 거 같아여? 여기 꽃이 이따만 하게 그려져 있어여.”

“엄청 좋아할 걸. 비주야. 민준이가 이거 초콜릿 좋아할까?”

“네. 완전.”

서로의 가족들에게 골라 줄 기념품 선물을 사기도 하고.

주변에 있는 피디님과 작가님들, 카메라 감독님들에게도 물었다.

“감독님, 어제 따님한테 감귤 초콜릿 사 주고 싶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제가 여기서 사 드릴게요.”

“그럼 요걸로…….”

더위와 카메라 때문에 땀을 줄줄 흘리는 감독님의 얼굴 위로 미소가 떠올랐다.

“작가님은요? 옷 하나 보실래요?”

“어… 그래도 괜찮나?”

“저희가 하나 사 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부담스러워 하는 이에게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대신에 자막으로 ‘우리 애들 너무 상냥해..’ 이런 거 넣어 달라고 하니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기념품을 야무지게 챙기는 한편.

“아이고! 오랜만이네!”

지나가던 상인 한 분이 우리를 불러 세웠다.

“안녕하세요!”

“뉴블랙이네. 뉴블랙. 아이고오……. 우중이.”

“우주입니다.”

“우중이. 알지. 선우중이.”

우리와 악수를 하며 애틋하게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할머님이었다.

‘지금 내 고향’에 나왔을 때 너무 잘 봤다는 이야기와 함께 카메라를 향해 물었다.

“이것도 지금 내 고향인지요?”

“아, 그건 아니고 저희 여행 프로 촬영 중이에요.”

“아…….”

엄청 아쉬운 표정을 짓더니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아이고, 맞다! 그러고 보니 내가 뉴블랙한테 엄청 서운한 게 있어!”

“네? 갑자기요?”

엄청 서운해하시는 표정에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떠올리며 경청할 때.

“지금 내 고향에 나오다가 왜 안 나와? 아니, 한창 정 붙이고 보려고 하던 때에 막…….”

“저희가 안 나왔죠…?”

“그니까. 내가 엄청 서운해~ 이게 사람이 없으면 몰라도, 있다가 없어지면 얼마나 허전한지.”

잔뜩 정을 붙이고 ‘아이구…’ 하면서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빠이~’ 하고 떠났다는 모양이었다.

내가 할머님의 손을 붙잡고 웃었다.

“저희가 죄송해요.”

“아이, 그게 아니구…….”

“저희가 지금 내 고향은 출연이 끝나긴 했는데, 방법이 있는지 한번 알아볼게요.”

그런 이야기를 하며 사인도 해드리고 사진도 같이 찍었다.

“누구 옆에 서고 싶으세요?”

“중현이.”

“오. 이리 오세요.”

새초롬하게 브이를 그리는 모습에 우리가 웃었다.

그렇게 야식으로 먹을 것도 챙기고, 간식거리를 먹으며 신나게 돌아다닌 후.

“재미있다. 야시장.”

“그니까요. 대만에 갔을 때보다 더 재미있었던 거 같아요.”

확실히 야시장 특유의 시끌벅적함을 겪고 나니 업 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아까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시끌벅적하게 귀가할 때.

꺄아아아아아-

어딘가 소름 끼치는 귀곡성과 함께 차량이 우뚝 멈췄다.

우리가 얼어붙어 있을 때.

조수석에 있던 피디님이 자기 얼굴에 파란 손전등을 비춘 채 고개를 홱 돌렸다.

“여러분!”

“흐아아아악!”

“……으으.”

피디님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만약 자막이 있다면 ‘오디오 감독의 고막이 파멸하는 날..’ 이런 게 달리지 않을까.

나한테 안긴 리혁이를 중현이에게 넘긴 후.

“와, 진짜 깜짝 놀랐어요.”

“저희 겁 엄청 많아요! 피디님!”

피디님이 헛기침을 하고는 멘트를 이어 나갔다.

“자, 이제 숙소 근처인데요.”

“네.”

“여러분은 여기서부터 숙소까지 정해진 길을 따라 가셔야 합니다.”

“네……?”

우리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정말 캄캄하다.

서울에서 살 때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어둠이라고 할까.

멀찍이 숙소 불빛과 함께 어둠 속에 수풀이 흔들리는 모습만 어렴풋하게 보인다.

리혁이가 혼절할 것 같은 얼굴로 물었다.

“끄게,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여기서부터 걸어가라고요?”

“아. 안전에 대해선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숙소로 쓰는 연수원 부지 안에 이미 들어와 있어서 외부인이 들어올 수 없고요. 가는 길 중간 중간 저희 안전요원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고…….”

“곳곳에 여러분을 찍기 위한 적외선 카메라도 깔려 있습니다.”

우리 모두 당황했다.

이제 좀 야식 먹으며 수다 떨다가 침대 위에서 ‘오늘의 여행일기’ 하며 힐링 브이로그로 끝낼 줄 알았는데.

“아니,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요?”

“뉴블랙의 여행일기, 대망의 두 번째 소원 성취! 바로 담력 체험입니다.”

“누구…….”

라고 물을 때, 시선을 슥 피하는 막내가 눈에 들어왔다.

피디님이 노트북을 내밀었다.

막내가 회의실에서 꺄르륵 하면서 작가님들과 절친이 되어 있는 인터뷰였다.

-그런 거 가끔 형들이랑 해 보고 싶어여.

-뭐?

-약간 방 탈출이나 공포 체험? 제가 공포 영화 보자고 할 때마다 형들이 싫어했거든여.

-그래?

-특히 리혁이 형은 완전 싫어해여. 얘기 꺼내는 순간 푹신한 베개가 날아오고. 중현이 형 빼면 나머지도 뭐… 흐핫!

“지호야?”

“더 들어봐여. 형들…….”

-제가 항상 집에서도 막내고, 그룹에서도 막내구 해서. 든든한 맏형(?) 그런 거에 대한 환상이 있거든여.

-그치. 막내들이 보통 그런 게 있지.

-그래서 이런 걸 하다가 형들이 저에게 의지하는 거져… 하하핫! 생각만 해도 너무 좋아! 대박!

화면 속에서 꺄꺄 하는 모습에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지호야.”

“넹…….”

“맏형이 되고 싶으면 다른 걸 하면 되잖아. 야자 타임이라든가. 일일 리더라든가. 형은 자존심이 없어서 바로 굽혀 줄 수 있어.”

“나도 진짜 동감이에요. 너 진짜…….”

“으아, 이런 거 너무 무서운데.”

“꿀잼 예상.”

계속 구박하면 막내가 서운해서 울먹울먹할 것 같아 체념으로 선회했다.

이걸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으이구.”

“헤헷.”

막내의 등을 토닥이며 이어지는 설명을 들었다.

“여기가 연수원 부지에 산책로인데. 숙소까지 가는 길 중간에 우물이 하나 있습니다.”

“으으으으으!”

“소원을 들어주는 우물이라고 하는데요. 그 우물에 가서 지금 드리는 호리병에 물을 채우면 됩니다.”

“아아아아…….”

이 어둠 속에서 우물이라니.

자꾸만 뭔가 기어 올라오는 상상이 들어서 괴로웠다.

초췌한 얼굴로 차에서 엉금엉금 내릴 때.

“피디님. 저 안에 혹시 귀신으로 분장하고 그런 연기자 분들 있는 건 아니죠?”

“그건 가 보시면 압니다.”

“……어쩐지 아까부터 밖에서 천막 치고 무슨 공사를 하나 했어요.”

그런 이야기를 하며 피디님에게 각자 소통할 무전기와 함께 연수원 약도, 손전등을 받았다.

차라리 달봉이는 어떠냐고 보여드렸는데 발광력을 보더니 바로 압수하셨다.

차량이 부우웅- 하며 멀어진 후.

“…….”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에서 나오는 빨간 불이 꼭 귀신 눈처럼 보여서 무서웠다.

우후후후후후-

어디선가 앰프로 트는 귀신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으아아아악!”

나를 기둥 삼아 착 붙는 동생들에게 말했다.

“일단 기왕 이렇게 된 거, 최대한 빠르게 돌파하자.”

“좋은 생각이에요.”

“그럼 손전등을 키고…….”

그렇게 수풀을 향해 라이트를 킨 바로 그 순간.

사사삭-

뭔가 사람의 형체인데 네 발로 걷는 그림자가 빠르게 라이트 앞을 지나갔다.

기괴한 자세로.

“…….”

비명도 안 나올 만큼 눈이 휘둥그레져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방금 뭐야? 봤어?”

“사람…이었어요? 그거?”

곰곰이 기억을 돌이켜 보니 동작을 따라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렵긴 하지만.

“연기자 분인가 봐.”

“아니. 왜 이런 여행 리얼리티에서 저렇게 최선을 다하시는 거예여?”

“내 말이. 내 말이! 아으으!”

그때 불현듯 사전 미팅을 할 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뉴블랙 리얼리티라 그런지 예산이 많네.’

‘오오오!’

‘기왕 이렇게 된 거, 뭘 하든 제대로 해 보려고.’

……정말 제대로 해 놓으셨다.

이 정도로 판을 깔아 주셨으니 정말 제대로 리액션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할까.

동생들도 비슷한 생각인지 결연한 얼굴로 손전등을 든 채 손을 모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흩어지지 말고.”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죽는 거예여!”

“같은 생각이에요. 이 손 절대 놓지 말아요. 우리.”

“맞아. 뉴블랙은 하나야!”

그렇게 ‘화이팅’을 외친 후.

동생들과 다 같이 손을 잡고 수풀 안으로 들어가던 그때.

“이히히히히히히!”

저고리를 입은 달걀귀신이 뛰쳐나왔다.

그리고.

“흐아아아악!”

약속이라도 한 것마냥 서로를 버리고 다른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나 역시 비주의 손을 붙잡고 냅다 달렸…….

“……?”

어? 근데 손의 감촉이 왜 이러지.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을 때.

“…….”

나와 손을 맞잡고 달리던 달걀귀신 분과 어색하게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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