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85)화 (385/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85화

그토록 어색하게 누군가와 눈이 마주친 적은 처음이었다.

“……엇.”

“…어어…….”

뜀박질을 멈추자마자 둘이 동시에 손을 놓았다.

진짜 뻘쭘하다.

쭈뼛쭈뼛 하는 달걀귀신 분에게 내가 꾸벅 하고 인사했다.

“어,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저 진짜 뉴블랙 팬… 앗! 이럼 안 되는데. 이히히히히!”

양팔을 들어올리고 ‘겁 먹어라앗!’ 하는 여자 분의 모습에 내가 웃으며 말했다.

“저기.”

“네?”

“여기 주변에 카메라가 없어요.”

“아아…….”

“저기 하나 있긴 한데, 여기는 지금 시야각에서 벗어나 있는 곳이에요.”

“우와. 어떻게 아세요?”

“어디 가든 카메라 위치부터 확인하는 게 습관이라…….”

카메라 위치를 알려 주며 설명해 주니 달걀귀신 가면 너머 신기해하는 눈이 보였다.

내가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저희 팬이세요?”

“엇, 네…….”

“목소리 되게 좋으시네요. 이히히 하시는데 진짜 귀에 쏙쏙 들어왔어요.”

“헛, 정말요? 제가 연극하다 여기 흘러들어 왔거든요.”

가면 안쪽에서 나오는 저음의 목소리가 ‘우우웃!’ 하며 기뻐했다.

어두운 수풀이 무서운 것은 저쪽도 마찬가지인 터라 실없는 대화를 나누며 오들오들 떤 후.

대화를 하는 동안 손으로 지도를 가리키며 물었다.

‘귀신 위치 좀 알려주실 수 있나요?’

가면 너머 고민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내가 입모양으로 다시 말했다.

‘동생을 찾으려고 그래요.’

이내 귀신님이 꼼지락거리던 손가락으로 몇 군데를 찍어 주었다.

내가 웃으며 꾸벅 인사했다.

그렇게 헤어진 후, 한적한 공터로 이동해서 라이트를 들어 약도를 비췄다.

“비주가 어디 있으려나.”

가장 먼저 찾아야 될 사람이 비주와 리혁이었다.

머릿속으로 귀신들이 있는 곳과 동생들의 이동 루트를 상상하며 약도를 살폈다.

비주는 어느 길을 택하든 항상 최악의 루트를 택하기 때문에, 대강 어느 지점일지 상상이 갔다.

제작진이 설치한 카메라 근처에서 말했다.

“비주는 아마 이쪽에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리혁이는 보통 지그재그로 얍삽하게 도망치는 편이라…….”

빠르긴 해도 체력이 불량 배터리 수준이라 1분 이내로 방전됐을 거다.

성격상 잔뜩 얼어붙어서 그 자리에서 ‘중현이 형… 비주 형? 왕지호?’ 이러고 있겠지.

얘도 대충 어디 있을지 짐작이 갔다.

“리혁이는 요쯤 있겠네요. 되게 겁이 많은 친구들이라서 제가 얼른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이동하려고 할 때, 허리춤에서 치익 하는 소리가 났다.

“아…!”

이게 있었지.

제작진이 소통을 위해 쓰라고 건네준 무전기가 진동하더니 처량한 목소리가 들렸다.

-우주 혀엉.

“응. 비주야.”

-저 길 잃어버린 거 같아요…….

내가 웃으며 물었다.

“금방 갈게. 거기 위치를 좀 설명해 볼래?”

-어, 하늘에는 달이 떠 있는데 구름이 가리고 있고, 주변에 나무랑 풀이 가득해요.

“…….”

-아! 그리고 주변에서 벌레가 울어요! 귀뚜라미인가?

몽타주 그리게 외모를 묘사해 달라고 하면 눈코입이 있다고 말할 애였다.

무어라 말을 하려다 말고 약도를 살폈다.

“어렴풋하게 숙소 불빛 보이는 데가 어디야? 동서남북 중에서.”

-북쪽이에요.

남쪽이네.

무전기를 누르고 답했다.

“알았어. 금방 갈 테니까 겁먹지 말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

-네.

발걸음을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무전기가 또 울렸다.

-형.

“어, 지호야.”

-……저두 구하러 와 주세여. 여기가 어딘지 하나도 모르겠어여. 막 귀신 으아악!

찾으러 가야 할 사람이 하나 더 늘었다.

“공포영화 잘 본다며.”

-저 울 것 같으니까 놀리지 마여. 진짜 무서워여.

울먹울먹하는 목소리라서 다독여 주고는 바로 찾으러 가겠다고 답했다.

그렇게 발걸음을 바삐 옮길 때.

망설임이 느껴지는 듯한 무전기의 진동과 함께 오들오들 떠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한테 아무나 좀 와요.

-리혁아. 그럼 형이 갈까?

“비주야. 부탁이니 제발 가만히 있어.”

-네…….

-근데 중현이 형 목소리는 왜 안 들려여? 아까부터 혼자만 말이 없는 것 같은데.

-나 듣고 있었어.

-오, 형 어디 있어여?

-나도 모름. 그냥 일단 길 따라서 가 보고 있는데. 오, 방금 내 앞으로 뱀 한 마리 지나감.

-모형이에요?

-진짜인가 봐. 톡 건드려 보니까 죽은 척하려고 하네.

무전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 뱀이 있어여?! 아으으윽! 엄마아아아! 누나아!

-아이이으아! 그런 얘기 좀 하지 마요! 아으으으! 난 뱀가죽 무늬 핸드백만 봐도 무섭다구요!

-얘는 새끼 뱀이야. 안 무서워.

-그건 형 생각이라구요!

무전기 볼륨을 줄이며 비주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나저나.

“……뭐지?”

느낌이 좀 쎄하다.

아까부터 꼭 누가 따라다니면서 지켜보는 것 같다고 할까.

사생들이 바라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의 쎄함이라 어딘가 모르게 살짝 불안했다.

대각선 뒤에서 누가 쳐다보는 듯한 느낌.

“누구세요?”

고개를 홱 돌렸지만 그 자리에 있는 건, 나무에 걸린 촬영용 카메라뿐이었다.

“기분 탓인가…….”

방송용 분량을 위해 시작한 혼잣말이었지만, 점점 불안해져서 혼잣말을 늘렸다.

그 동안 수다를 떨면서 두려움을 회복했는지, 무전기가 웅웅 울렸다.

-지굴 돌아보면~

-온통 네모난 것들뿐인데~

이 와중에 릴레이 송 부르지 마. 얘들아…….

제작진 분들이 모니터링하며 얼마나 웃어댈지 머릿속에 장면이 절로 그려졌다.

*   *   *

같은 시각.

중현은 어둠을 헤치며 걸어가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척 봐도 수상한 가짜 거미줄이 깔려 있는 곳을 통과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가짜 안개.

‘특수 효과 대박이다.’

CG로만 보던 멋진 장면이 정말 눈앞에 펼쳐지는 건가 싶어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키아아아악-

거대 거미가 지르는 듯한 괴성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콩닥콩닥.

제발 큰 거미였으면, 거대 거미가 딴! 하는 거였으면 하고 안개를 뚫고 들어갈 때.

“으아아아악!”

누군가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왔다.

에일리언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거미가 얼굴을 뒤덮고 있는 인간 피해자였다.

중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

그를 향해 달려오던 연기자가 당황하더니, 이내 중현을 스쳐서 우아악! 하고는 멀리 뛰어갔다.

중현이 아차 하고 실수를 깨달았다.

이쯤에서 놀라야 하는데.

“허어억…….”

하며 왼손을 입가에 올리고는 오른손을 가슴에 올렸다.

“아우. 깜.짝.이.야.”

자기가 생각해도 그럴싸한 리액션이었다.

중현이 뿌듯하게 웃으며 안개를 통과했다. 그렇게 거미에게 당한 인간이 뛰쳐나온 곳으로 가니.

“오.”

보물찾기처럼 열쇠 모양의 카드가 나무 그루터기 위에 놓여 있었다.

앞에 설치된 카메라.

중현이 카드를 품에 넣고는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피디님, 작가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저 정말 이렇게 재미있던 적은 처음이에요. 혹시 제 말 들리시나요?”

카메라가 대답하듯 위 아래로 지이잉 지잉 움직였다.

중현이 활짝 웃었다.

“이런 경험 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름의 손가락 하트를 보여주고는 룰루랄라 발걸음을 옮기는 중현이었다.

그렇게 몇 개의 카드를 수집한 후.

‘다들 잘 만났나 보네.’

무전기에서 우주 형이 멤버들을 하나씩 수집하는 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찾으러 가야 하나……?’

이따가 김비주가 카메라 꺼지고 나면 넌 친구도 안 챙기냐며 엄청 잔소리할 게 분명했다.

그건 싫은데.

잠시 어깨를 추욱 늘어뜨렸다가 이내 기력을 되찾았다.

‘이따가 보물 카드 다 주면 좀 풀리겠지.’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며 걸을 때.

어딘가 환한 공터가 나왔다.

“아. 여기구나.”

제작진이 말한 대로 엄청 긴 산책로의 정중앙에 우물이 하나 있었다.

가방 안에 넣어 놨던 호리병을 꺼낸 중현이 우물 쪽으로 걸어갔다.

안에 물이 있기는 한지 찰랑찰랑이는 물소리가 들렸고, 두레박도 놓여 있었다.

“이따 만나면 채워야겠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무전기에다 도착했다고 알렸다.

그러는 동안 주변에서 순찰을 하듯 돌아다니는 사람이 하나 눈에 띄었다.

경비원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였다.

“안녕하세요.”

“…….”

스윽 자리를 옮기는 이를 보며 중현이 어깨를 으쓱였다.

‘못 들으셨나 보네.’

그러곤 구름 가득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   *   *

나무 뒤에 숨은 왕지호가 오들오들 떨었다.

-비주랑 만났어.

-리혁이랑 만났어. 금방 갈게. 지호야.

-우리가 갈게. 지호야~

리혁이 형까지 만났다는 소식이 무전기를 통해 들려온 게 어언 5분.

시간상으로 그리 길지 않았지만 천년만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초조하게 발을 동동거렸다.

‘추워…….’

3월 중순.

입김이 나올 정도는 아니었지만, 밤이라 그런지 바람이 쌀쌀하게 느껴졌다.

입고 있는 바람막이 안으로 냉기가 스며드는 느낌.

우후후후후-

주기적으로 앰프에서 나오는 귀곡성에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으아아…….”

다리에 힘이 풀려 나뭇등걸에 기댄 채 스르륵 미끄러졌다.

쪼그리듯 몸을 웅크리며 최대한 온기를 보전하는 한편, 주변의 사물을 라이트로 정신없이 비췄다.

분명 아무것도 없는데 자꾸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흐악!”

비췄지만 없고.

다급하게 손전등을 돌렸지만 거기도 없고.

긴장했다가 힘을 풀기를 반복하다 보니 급격히 피곤해졌다.

춥고 배고프고.

울음이 나올 것 같아 얼굴을 바람막이 안으로 쏙 파묻었다.

‘괜히 하자고 했어.’

평소에 워낙 공포영화를 웃어넘길 정도로 즐기는 편이라 하나도 안 무서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언제 어디서 귀신이나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니 무섭다고 할까.

가짜라는 것을 알지만 진짜 온몸이 얼어붙었다.

“흐이이!”

뭔가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에 놀랐다.

중현이 형이 아까 뱀 한 마리 봤다고 하던데 그런 건 아니겠지?

다리에 힘이 없었지만 비척비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울고 싶다. 진짜…….’

춥고 배고프고 무섭다.

주변에 카메라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는 양손으로 눈가를 덮었다.

눈물이 찔끔 배어 나온 눈가를 덮으며 코를 훌쩍였다. 꾹 참으니 눈가가 진동하는 게 느껴졌다.

‘엄마. 누나. 아빠.’

누구한테 안겨서 무서웠다고 말하고 울어 버리고 싶었지만…….

아니야.

울면 안 된다.

이 타이밍에 울다가 들키면 형들이 천년만년 놀릴 게 틀림없었다. 고개를 흔들며 침을 삼켰다.

‘울지 말자. 왕지호.’

머릿속에서 서리혁이 ‘꺄하하핫! 왕지호! 울었대요!’ 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각오를 되새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다리에 힘이 풀렸다.

“형들 보고 싶다…….”

고작해야 40분 정도 지났을 텐데 왜 이렇게 형들이 보고 싶은지 모르겠다.

멤버들을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나왔다.

비주 형과 우주 형이 ‘우리 왔어’ 하고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만 같고.

“아, 왜 안 와여, 근데…….”

나뭇등걸에 몸을 기댄 채 텅 빈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

부스럭-

그의 귀가 쫑긋거렸다.

‘소리?’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에 신경이 곤두섰다.

처음에는 형들인가 싶어서 설렜는데, 그럴 리가 없었다.

형들이면 요란하게 수다 떨며 걸어올 터였다.

“뭐야! 누구세…요!”

하며 손전등을 비췄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없네.

그렇게 주변을 비추는 동안 그는 점점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왜 벌레가 안 울지?’

신나게 울던 풀벌레들 소리가 확 잠잠해졌다.

침을 꿀꺽 삼켰다.

금방이라도 뭔가가 확 뛰쳐나와 그를 놀라게 할 것만 같았다.

숨을 죽이고 어깨를 움츠리며 주변에 손전등을 비추고 있을 때.

“……!”

멀찍이서 어렴풋하게 보이는 뭔가에 놀라서 손전등을 떨어뜨렸다.

뭔진 몰랐지만 눈이 마주쳤다.

손이 달달 떨리며 손전등을 몇 번이나 주웠다 떨어뜨리기를 반복한 후, 손전등을 무기 삼듯 양손으로 들었다.

“누구세요? 누구……!”

사방을 향해 손전등을 비추고 있을 때.

덥석.

“으아아악!”

어깨를 잡는 손길에 그가 놀라서 펄쩍 뛰었다.

징그러운 벌레가 앉기라도 한 것처럼 떨쳐낸 왕지호가 당황해서 몸을 틀다 엎어졌을 때.

두 개의 손이 내밀어져 나왔다.

“얘 엄청 놀랐나 보네. 괜찮아?”

“……?”

“지호야. 우리 왔어.”

우주 형과 비주 형이 자상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고 있었다.

멍하니 올려다보는 그의 모습에 서리혁이 한숨을 쉬며 옆에 쪼그려 앉았다.

“몇 살인데 이렇게 칠칠맞냐. 일어나 봐. 털어 줄 테니까.”

“…….”

“야. 왕지호 너, 음……?”

그리고 그 순간.

긴장이 탁 풀리며 울음이 터져 나왔다.

*   *   *

이 정도로 누가 서럽게 우는 건 오랜만이었다.

“왜 울어?”

“…….”

우리 셋한테 착 달라붙어 안긴 막내가 계속해서 흐느끼듯이 울었다.

뭐가 이렇게 서러운 걸까.

눈물 콧물을 훔치면서도 눈을 감은 채 우리 어깨에 눈물을 뚝뚝 흘려대고 있었다.

“야. 너 왜 이렇게 애기처럼 우냐.”

“리혁아.”

비주의 말에 리혁이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곤 막내의 등을 어색하게 토닥여 주었다. 말은 그랬지만 리혁이도 눈빛이 심란해 보였다.

내가 등을 토닥여 주며 물었다.

“그렇게 무서웠어? 이게?”

“아녀. 하, 하나도 안 무서웠는데여…흐흐흑.”

딸꾹질을 하듯 답하는 모습에 우리는 그만 웃고 말았다.

코를 훌쩍이며 몇 번이고, 울먹이는 막내였다.

저 앞으론 리더 같은 거 안 할 거라고, 꼭 막내할 거라고 말하는데 무슨 말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그저 울음이 진정될 때까지 셋이서 토닥토닥해 주었다.

그렇게 5분쯤 지났을까.

“아.”

좀 진정이 됐는지 그제야 퉁퉁 부은 눈을 비비는 막내였다.

붕어눈으로 웃으니 진짜 바보 같다.

“저 울었던 거 티 나요?”

“엄청.”

우리 셋이 동시에 대답하자 안색이 침침해졌다.

“그래도 카메라는 없어서…….”

“저기 있는데.”

“있어여?!”

“저기 있잖아. 네가 기대던 나무 바로 위에.”

“……아아아악!”

막내가 티라노처럼 손발을 오므리며 방방 뛰었다.

“어떡해, 수플레들이 절 보고 무슨 생각을 하겠어여?”

“귀엽구나?”

“비주 형, 형만 저를 귀여워해 주는 거예여. 저는 비주얼이라 멋진 이미지잖아여.”

“얘 헛소리 하는 거 보니 괜찮아졌나 봐요.”

나도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단 중현이가 있다는 우물 쪽으로 이동하자.”

“네.”

“맞다. 지호야. 너 초콜릿 먹을래?”

“좋아여!”

초콜릿바 하나를 손에 쥐어 주니 금세 희희낙락해지는 우리 막내였다.

그렇게 넷이서 귀신들이 기다리고 있는 길목 몇 개를 무사히 지난 후.

마침내 우물가에 이르렀다.

“중현아! 우리 왔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푸근하게 웃으며 답하던 중현이가 붕어눈이 된 지호를 보고는 눈을 끔뻑였다.

“어, 지호…….”

막내가 필사적으로 ‘말하지 마여’ 하며 눈짓을 보내자, 중현이가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더 밝게 웃으며 수신거부했다.

“지호 울었네!”

“…….”

“왜 울었어? 거기 갈매기 같은 게 또 있었어?”

그런 물음을 던지며 동생들끼리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멀찍이 어렴풋하게 뭔가 보였다.

뭐지.

“저건 누구야?”

멀어서 잘 안 보이긴 하지만 경비원처럼 보이는 남자가 수풀 사이를 돌아다니는 듯했다.

중현이가 답했다.

“경비원 아저씨 같아요.”

“아아.”

“복장이 경비원 같은데요.”

리혁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지호가 끼어들었다.

“뭐가 있어여?”

“저기… 어, 가셨네.”

혹시나 사생이 난입하거나 할까 봐, 방지하는 차원에서 순찰을 도시는 모양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한편.

중현이가 비주에게 뭔가를 주는 게 보였다.

“너 주려고 모은 거야.”

“아, 진짜?”

“이거 보물인 거 같은데 너 다 가져.”

열쇠 모양이 그려진 카드를 받는 비주가 좋아했다.

뿌듯해하는 중현이를 보며 웃었다. 저거 안 혼 날라고 수 쓰는구만.

그러는 한편 동생들을 불러 모아 카메라 앞에 섰다.

“네! 저희 뉴블랙이 1시간 동안 이 험난한 길을 뚫고……!”

우리 바로 옆에 있는 표지판에 써 있는 ‘걸어서 5분’이 흔들흔들거렸다.

다 같이 움직여서 표지판을 가렸다.

“마침내 미션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호리병에 물을 담는 거였져? 저희 팀의 호러 에이스인 김중현 래퍼님이 물을 뜨겠습니다.”

“와아아아아!”

중현이가 두레박으로 물을 힘차게 퍼 올린 후, 호리병에 물을 졸졸 흘려보낼 때.

“우와!”

마법처럼 그 위에 검은 글씨가 떠오르다가.

[뉴블랙 차기 앨범 대박…]

에서 끊겼다.

졸졸졸-

구멍이 뚫려 있는 곳에서 물이 졸졸 흘러내렸다.

이게 바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까.

대박 나라고 써 있는 곳에서 물이 줄줄 새고 있자니 뭔가 황당하고 웃음이 나왔다.

“중현아.”

“아, 이거 왜 뚫렸지.”

“네 손가락 크기잖아. 이거.”

“…….”

지호가 말했다.

“그럼 형이 손가락으로 막아여. 콩쥐팥쥐에 나온 두꺼비처럼.”

“오키.”

중현이가 호리병의 구멍을 막고는 다시 물을 채웠다.

그렇게 ‘대박 기원’까지 보며 환호한 후.

“고생하셨습니다!”

1시간 넘게 이어진 담력 체험을 마치고 마침내 숙소 앞으로 이동했다.

팡!

“와아아아!”

빵집 폭죽을 터뜨리며 우릴 반겨 주는 제작진이었다.

“고생했어! 얘들아!”

“많이 무서웠지? 지호야. 우리가 미안해.”

“이리 와.”

제작진이 우릴 토닥토닥해 주었다.

힘이 쭉 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재미있긴 했던 터라 제작진에게 웃으며 말했다.

“이거 준비하시느라 정말 고생하셨어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근데 진짜 무섭긴 했어여. 막 너무 실감나게 피를 철철 흘리면서 뛰쳐나오고 그러시… 흐아악!”

막내와 리혁이가 화들짝 놀라 나와 중현이 뒤로 숨었다.

“으엇!”

비주가 한 박자 뒤늦게 놀라 맨 뒤로 갔다.

숙소 앞 공터로 터덜터덜 걸어오는 연기자들 때문이었다.

머리에 붕대를 감은 사람과 거미 인간, 그리고 달걀귀신을 비롯해 각종 귀신 분들이 열댓 명은 되어 보였다.

피디님이 웃으며 소개했다.

“오늘 뉴블랙의 여행일기, 그 담력체험을 도와주신 연기자 분들입니다. 박수 부탁드려요!”

“밤늦게 고생 많으셨습니다!”

귀신 분장을 하신 분들과 인사를 나누며 기념사진 등을 찍었다.

SNS에 올릴 사진들을 찍고 있을 때, 잊고 있었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아, 맞다.”

우리가 피디님에게 물었다.

“피디님. 여기 순찰 도시는 경비원 분이요.”

“응?”

“감사 인사 드리고 싶은데 어디 계시는지 아시나요? 되게 무서웠는데 멀찍이서 순찰 돌아주신 덕에 덜 무서웠거든요.”

그 말에 피디님이 이상하단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야? 경비원 분은 아까 퇴근하셨는데.”

“네?”

“거기에 너희랑 연기자 분들 빼고는 아무도 없었는데? 뭐 누가 돌아다니고 그랬어?”

“네……?”

리혁이가 휘둥그레 변한 눈으로 우리를 돌아보았다.

“뭐야. 그럼 그 사람은 누구인 거예요?”

“…….”

우리 모두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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