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86화
등골이 오싹했다.
“분명히 우물에서 그 사람 봤는데…….”
“중현이 형이 그분 두 번이나 봤다고 하지 않았어여?”
“응.”
중현이가 손가락을 꼽았다.
“우물가에 도착해서 한 번, 너희 도착하고 또 한 번. 이렇게.”
“둘 다 같은 사람 맞아요? 다른 사람 아니야?”
“아냐. 경비원 복장에 약간 나이 드신 인상이었는데.”
곰곰이 생각하던 중현이가 ‘아’ 하며 말했다.
“이상한 게 하나 있긴 했어. 내가 안녕하세요, 하고 손을 흔드는데도 대답 없이 스윽….”
“스윽?”
“스윽 사라지시더라고.”
“…….”
하나둘 이상한 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지호가 눈을 부릅떴다.
“맞아! 저두 이상한 거 하나 있었어여.”
“넌 그분 못 봤잖아.”
“아녀. 그게 아니고 저 혼자 있을 때, 갑자기 벌레들이 막 울다가 뚝 하고 멈췄는데여. 쎄해서 멀리 손전등을 비춰 보다가 뭔가 사람 형상이랑 눈이 마주친…….”
“으아아아!”
“으아아! 저도 생각하니까 무서워여! 이거 왠지 같은 사람 같져?”
오싹함에 동생들이 호들갑을 떨고 있을 때.
나도 이상한 점을 하나 깨달았다.
대개 누군가를 보고 나면 그 사람이 움직이는 동작이 눈에 들어오고, 따라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게 안 됐다.
“사람이 아닌가?”
“으아아아! 왜 갑자기 이상한 얘기 하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듣고 있던 피디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니까 너희 말은, 여기 있는 연기자들이나 스탭들 말고 다른 사람이 있었다는 거지?”
“네…….”
“사생이나 스토커 같은 느낌은 아니고?”
“사생은 저희가 얼굴 다 알아요.”
“잠시만.”
스탭들과 매니저들의 분위기가 사뭇 심각해졌다.
숙소 부지에 외부인이 침입한 거라면 일이 심각해지는 거니까.
무언가 훔치거나 해코지하러 온 사람일 수도 있고.
어딘가 찝찝한 감각을 느끼고 있을 때, 피디님이 카메라 감독님들과 함께 달려왔다.
“확인 좀 하자. 어느 지점이라고?”
“약도 상으로 우물가에서… 여기. 이쪽 부근이었어요.”
“감독님, 녹화 테잎 좀 돌려 주세요.”
모니터 앞에 앉은 모두가 긴장하는 가운데, 문제의 그 지점으로 넘어갔다.
“어… 여기! 네! 여기요.”
이윽고 우물가에 모인 5인조의 모습이 초록색 화면으로 나타났다.
살짝 흐릿하지만 주변 지형지물이나 사람의 형체는 또렷하게 나오는 화질.
우리가 웅성이며 멀찍이 어딘가를 가리키는 장면이 나왔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데?”
“네?”
“저기 말이야. 너희가 가리키고 있는 곳. 아무도 안 지나가고 있잖아.”
“……어?”
처음에는 거리가 멀어서 안 보이는 건가 싶었는데, 카메라에 안 잡힐 만큼 먼 거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화면에는 아무도 잡히지 않았다.
텅 빈 허공에 수풀이 흔들리고 있을 뿐.
“……이거 좀 이상한데.”
뒷짐 지고 있던 카메라 감독님이 본인의 의견을 밝혔다.
“여기 풀 위치 좀 봐봐. 바람은 왼쪽으로 부는데 풀들이 오른쪽으로 움직이잖아.”
“…….”
“일단 다른 카메라도 확인해 봐야 알겠지만.”
카메라 감독님 말대로 뭔가 이상했다.
분위기가 오싹해지는 가운데, 제작진도 어딘가 홀린 표정으로 다른 테이프들을 꺼냈다.
중현이와 지호가 찍힌 분량이었다.
“……여기도 안 나오네.”
우물가에 선 중현이가 멀찍이 손을 흔드는데, 텅 빈 허공을 향해 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호가 놀라서 손전등을 떨어뜨릴 때도, 주변 카메라에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가 말은 안 하고 있었지만 어딘가 기이한 느낌을 받고 있을 때.
“잠깐, 잠깐.”
카메라 감독님이 다시 한 번 손을 들었다.
“저기 두 부분 다 멈춰 봐봐.”
“여기요?”
“어, 거기……. 아이고.”
아이고?
“이게 좀 이상하게 들릴 건 아는데, 중현이가 손을 흔들고 지호가 엎어지던 시간 말이야.”
“네.”
“같은 시간이야. 10시 39분.”
싸아아아-
숙소 앞 공터에 싸늘한 적막이 감도는 가운데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수풀이 흔들렸다.
곁에 선 작가님들이 숨을 삼키고 있을 때.
“우리 그럼 귀신 본 거예여?”
“…….”
“그거 말고는 설명이 안 되는데.”
지호의 말에 모두가 침묵을 지키는 동안, 리혁이가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오늘 잠 다 잤네요.”
* * *
약간의 소란이 끝난 후.
야시장에서 사 왔던 야식거리를 먹으며 브이로그를 찍은 우리는 숙소에서 휴식을 취했다.
아늑한 조명이 감도는 거실.
츄리닝으로 갈아입은 중현이가 램프에 손을 뻗었다.
“슬슬 잘 시간인데 불 끌까요?”
“아니!”
모두가 동시에 대답했다.
“오늘은 그냥 불 키고 자여. 우리.”
“나도 같은 생각이에요.”
“맞아. 불 끄면 진짜 못 잘 거 같아. 오늘은.”
밖에서 들리는 휘이잉 하는 바람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는 우리였다.
어찌나 놀랐는지.
기껏 열심히 게임까지 해서 정한 방을 포기하고 거실에 이불을 펴고 누워 있었다.
내 오른편에 누워 있는 비주가 물었다.
“형.”
“응?”
“저 혹시…….”
망설이던 목소리가 물었다.
“저 새벽에 화장실 가고 싶으면 형 깨워도 돼요?”
“깨워도 돼.”
“저두 끼어도 돼여? 화장실 갈 때 형들 깨워도 됨?”
복잡한 외교 조약을 맺듯 여기저기서 화장실 팟이 결성됐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제주도 괴담’을 검색하고 있던 중현이가 물었다.
“근데 그거 진짜 뭐였을까? 귀신인가?”
“으아아! 귀신의 귀 자도 꺼내지 마요, 형! 그리고 왜 자꾸 옆자리에서 귀신 미튜브 보는 건데요!”
“제주도 귀신 검색하는 중인데 안 나오네.”
“느아아아!”
“나는 네 비명이 더 무서워. 리혁아.”
“시끄러워요! 내 비명이 뭐 어때서.”
우리가 봤던 수수께끼의 남자는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다.
제작진이 다른 녹화 테이프도 샅샅이 훑었지만, 연기자와 우리 빼곤 아무도 없었다.
장소를 대여해 준 측에도 전화해서 경비원들 인상착의를 물어봤지만 40대 이상은 없었다.
혹시나 해서 매니저 형들이 숙소 2층에서 잠을 자는 중이긴 하지만…….
“살다 살다 별 이상한 경험도 다 해 보네.”
“그러니까여. 이거 어디 방송 나가서도 얘기 못한다니까여. 이걸 누가 믿겠어여.”
“아, 저 피곤한데 잠이 안 와요…….”
“나도요.”
잠을 자려고 해도 눈이 말똥말똥 떠졌다.
다섯이서 천장의 샹들리에를 바라보며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을 뿐이었다.
가운데 누워 있던 리혁이가 내게 몸을 돌렸다.
“아저씨. 나 자리 좀 바꿔 줘요.”
“왜.”
“저거 샹들리에 떨어질까 봐 자꾸 신경 쓰여요. 떨어지면 바로 죽을 거 아니에요.”
“싫어. 바꿔 주면 내가 죽잖아.”
“난 무서운데, 아저씨는 안 무서워하니까 괜찮잖아요.”
주절주절 늘어놓는 궤변을 무시하며 하품을 했다.
“참, 중현아.”
“네. 형.”
“아까 비주한테 준 열쇠 카드는 뭐야?”
“아, 그거요. 작가님한테 여쭤 보니까 원래 그걸로 용돈을 주려고 했대요.”
1개당 얼마씩, 이런 식으로 하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근데 30개 중에 저희가 5장만 챙겼다고.”
“흐하핫!”
“최소 10개는 가져올 줄 알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저희가 얼마나 겁쟁이인지 모르셨나 봐요.”
그래서 없던 일이 된 모양이었다.
하기사 제작진도 당황한 것 같긴 했다.
30분이면 끝날 코스로 만들어놨는데 거기서 90분 가까이 헤매고 울고 그러니까.
생각이 거기에 미쳤는지 막내가 뒤척이며 물었다.
“저 편집은 어렵겠져?”
“어렵지.”
“에휴…….”
“뭘 그런 걸로 에휴야. 우리는 염소랑 뒹굴고도 잘 살고 있어.”
“형들은 학교 안 다니잖아여. 저 길채경이랑 같은 보컬과란 말이에여. 단톡방으로 또….”
“걔는 잘 지내?”
“남의 집 막내 안부 묻지 마여. 형들은 저만 보라구여.”
논리의 흐름이 이상했지만 넘어가주기로 했다.
그런 식으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비주가 뭔가를 생각하더니 말했다.
“제가 예전에 꿈 해몽책 산 적 있거든요. 형.”
“아. 그거? 꿈 해몽백과?”
“네, 형이 돼지 꿈 꿀 때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서 막 읽어보고 그랬는데…….”
비주가 말했다.
“이건 그거랑은 다른 거긴 하지만, 보통 귀신 보고 그러면 대박 날 징조라고 하지 않아요?”
“아……!”
“TNT 선배님들도 에피소드 중에 그런 거 있지 않았어요? 녹음실에서 귀신 보고 나서 대박 났다고.”
“진짜?”
신기해서 한태현에게 톡을 보내니 답장이 바로 왔다.
한태현 [구라임ㅇㅇ]
한태현 [녹음이 너무 순탄해서 회사에서 예능용 에피소드로 만들어준거]
비주의 동심을 지켜 주기 위해 조용히 폰을 내렸다.
그 동안 동생들도 다른 선배 가수들의 귀신 에피소드를 신이 나서 이야기했다.
녹음에 이상한 목소리가 들어가 있었는데 그 노래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더라, 그런 거.
어두웠던 우리의 안색이 확 밝아졌다.
“오오…….”
“그렇게 생각하니까 좋은 귀신이네여.”
“맞아.”
중현이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 할아버지한테 들은 건데, 가수랑 무속인이랑은 팔자가 비슷하다고 그랬어요. 굿이나 노래로 귀신을 끌어 모은다고…….”
“으아아아!”
“그래서 가수들이 귀신을 잘 보는 거래요.”
중현이가 푸는 기이한 괴담에 우리가 이불 속에 숨어 몸을 달달 떨고 있을 때.
서늘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근데 사실, 그것보다는 다른 가능성이 더 커요.”
“응……?”
“보통 앨범 준비하고 그러면 심리적으로도, 체력적으로 제일 힘든 시기잖아요. 매일 잠을 한두 시간 자고 녹음실에서 19시간 가까이 버티고 그럴 때도 있고.”
“…….”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으니 헛것을 보게 되는 거죠. 논리적으로 이게 맞아요.”
“…….”
“…….”
싸늘한 공기를 눈치 챈 리혁이가 소라게처럼 이불 속으로 얼굴을 쏘옥 숨겼다.
막내가 한숨을 쉬며 요즘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대사를 읊었다.
“너 때문에 흥이 다 깨져 버렸으니까 책임져.”
“양심 있으면 자장가라도 불러라. 리혁아.”
이내 우리의 구박을 견디지 못한 리혁이가 잔잔한 허밍으로 겨울잠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 동안 우리 모두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 * *
다음 날 아침.
초췌한 얼굴을 비비크림으로 슥슥 가린 후, 후드 차림으로 숙소 거실에 섰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카메라들이 설치된 거실.
“푹 주무셨나요?”
“네!”
활짝 웃으며 ‘꿀잠~’을 연호했다.
카메라 뒤에 서 있던 스탭들이 웃었다.
다들 눈이 퀭한 걸 보아하니 잠을 설친 건 우리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뉴블랙의 여행일기 2일차. 오늘은 리혁 씨의 소원을 성취하는 날입니다.”
“와아아아!”
“웬일로 불안해하시지를 않네요?”
“리혁이 형이 뭘 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거든여. 무서운 거나 위험한 건 절대 못하구.”
우리가 답했다.
“제주도의 용암 해안과 주상절리의 형성과정을 알아보는 탐구 활동 예상하고 있습니다.”
“제주도 말 공부라든가.”
“대몽항쟁 당시 삼별초의 제주도 항쟁, 그런 거 아닐까요.”
리혁이가 뜨끔해하고 있을 때, 피디님이 노트북을 내밀었다.
“금일의 테마는 소풍입니다.”
“소풍이요?”
“자세한 건 영상을 보시죠.”
화면 속에서 도도하게 커피를 홀짝이고 있는 리혁이가 나왔다.
-멤버들이랑 봄 소풍을… 해 보고 싶어요.
-소풍?
-네, 제가 초등학교를 미국에서 다니다 왔는데, 주변에서 초등학교나 유치원 때 봄 소풍 얘기하면 조금 부러웠거든요.
-아, 알겠다. 그래서 수능날에도 김밥 싸 갔다고 했지?
-…….
수치스러운 기억에 시선을 회피하는 리혁이었다.
그와 함께 멤버들과 하루 정도 소풍을 떠나보고 싶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래서 드리는 오늘의 첫 번째 미션. 바로 점심 식사로 먹을 김밥 만들기입니다!”
“와아아아!”
저마다 자기가 먹을 김밥을 싸는 미션이었다.
제작진이 마련해 준 재료들 중에 우리가 원하는 식재료를 넣어 만드는 커스터마이징 김밥.
부엌의 아일랜드 테이블에 모인 우리는 김밥을 손수 만들었다.
“비주 형. 이거 김밥 싸는 김 어디가 위아래에요?”
“흐핫! 형! 김에 위아래가 어디 있어여?”
“매끈한 게 바깥으로 가고, 꺼끌꺼끌한 면에 밥을 퍼서 넓게 펴면 돼.”
“…….”
리혁이가 비웃는 가운데.
막내가 감독님에게 애교를 부려 재촬영을 하게 해 달라고 하고는 ‘꺼끌꺼끌한 면이여~’ 하고 상황극을 했다.
피디님 표정을 보아하니 그대로 나갈 거 같다.
그렇게 신나게 김밥 만들기를 하고 있을 때, 모두의 관심을 독차지한 김밥이 있었으니…….
“이야. 저거 어떻게 싸냐?”
스탭들이 혀를 내두를 만큼 고기와 햄을 왕창 넣는 우리 셋째였다.
비주와 내가 물었다.
“중현아.”
“넵.”
“그거… 쌀 수는 있어?”
“네.”
“절대 못 쌀 거 같은데.”
중현이가 무슨 소리냐는 듯 김밥을 돌돌 말기 시작했다.
꽈아아악.
“…….”
압착기에 눌린 것처럼 김밥이 완성됐다.
그것도 온전한 모양으로.
“역시 저희의 근력이 미천한 거였군요.”
“몸이 안 좋으면 머리가 고생한다는 말이 이거구나…….”
“이것도 재능이에요. 진짜.”
우리가 감탄하는 모습에 제작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동안 나머지 셋은 비주의 요리 강의에 맞춰 김밥을 쌌다.
“밥은 이 정도 크기가 적당하고요.”
“네에.”
“두께는 일정하게. 우리 마커 때 입었던 시스루 의상 기억나요? 그것처럼 김이 어렴풋하게 보이도록 펴 주면 돼요.”
“뭐든 중현이 형이랑 반대로 하면 되네여.”
그 외에 재료 궁합에 대해서도 강의가 이어졌는데.
작가님들과 스탭 분들이 핸드폰 메모장을 켜서 열심히 비주의 말을 따라 적었다.
그렇게 하나씩 검사를 받는 동안.
“와, 우주 형. 진짜 잘 말았어요! 감독님, 여기 우주 형 김밥 인서트 따 주세요.”
“오, 진짜.”
“뭐야. 김밥도 미튜브 봤어여?”
눈을 크게 뜬 동생들에게 내가 뿌듯하게 웃으며 브이를 했다.
“타고난 거죠. 제가 바로 백반집 손자 아닙니까?”
“오오.”
“어지간한 요리는 다 잘합니다. 하핫.”
“어? 근데요. 형.”
비주가 고개를 갸웃하고는 물었다.
“저번에 김밥 쌀 줄 아냐고 물어보니까 모른다고 하지 않았어요?”
“…….”
“김밥에는 재능이 없다고…….”
“…….”
카메라가 꺼지고 나서 비주와 잠시 면담 시간을 가져야 했다.
* * *
우도행 선박을 타기 위해 항구로 향할 때.
흔들리는 버스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우리에게 피디님이 고개를 돌렸다.
“소속사 분들로부터 지금 희소식을 전달받았는데요. 뉴블랙에게 축하할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축하할 소식?
피디님이 태블릿 PC를 보며 말했다.
“어제 새벽 3시 45분 기준으로.”
“……?”
“작년 8월 말에 발표했던 여러분의 댄스곡 ‘Nine’의 미튜브 뮤직비디오 조회수가…….”
집중해서 듣는 우리에게 피디님이 씩 웃었다.
“1억 뷰를 돌파했답니다!”
“네?”
“여기 봐봐. 너희 뮤비 조회수가 1억 450만이야.”
“……!”
다들 다급하게 핸드폰을 꺼냈다.
‘The New Black - Nine’ 이라고 되어 있는 제목 아래로 표기된 조회수.
The New Black - ‘Nine(나인)’ Official MV
[조회수 104,507,003회 · 6개월 전]
……언제 1억 뷰가 됐지?
가슴이 덕순덕순 뛰는 소리가 고막에 울려퍼졌다.
놀라서 고개를 홱 돌리니 토끼눈이 된 동생들과 눈이 마주쳤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와아아아아악!”
거의 누가 누군지 모를 정도로 얼싸안고 5분 가까이 소리를 질렀다.
“와… 와…….”
“캡쳐 없어? 1억 뷰 됐을 때 캡쳐한 거 있으면 좋을 텐데.”
“어, 여기 있어여. 수플레 한 분이 1억 뷰 딱 됐을 때 스크린샷 찍어 놨대여.”
막내가 단톡방에 공유한 사진을 다 같이 저장한 후.
세차게 뛰는 심장을 가라앉히며 포털 메인에 뜬 ‘뉴블랙’을 검색해 보았다.
-뉴블랙 ‘나인’ MV, 미튜브 조회수 1억 뷰 돌파
-‘199일’ 만에 1억 뷰 돌파, 뉴블랙 ‘Nine’ MV 열풍
-뉴블랙의 ‘Nine’, 역대 최단기간 미튜브 1억 뷰 돌파
회사에서 보도 자료를 돌렸는지 비슷한 내용을 복사한 기사들이 우후죽순으로 올라와 있었다.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뮤비로는 10번째고 K팝 그룹으로 따지면 5번째.
보이그룹으로 치면 식스티 세컨즈와 TNT에 이어 우리가 세 번째라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포인트는 바로 기간이었다.
“미쳤다. 와, 이게 가능한 거였어여?”
“대박이다. 진짜…….”
“이거 봤어요?”
지금까지 최단 기간은 데일라잇의 1년 6개월.
카메라가 있기에 타 아이돌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6개월 만의 1억 뷰는 역대 최단 기간 기록이었다.
……화면에 나온 숫자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있는데도 얼떨떨하다.
“대박.”
갑작스러운 경사에 동생들과 계속해서 ‘대박’만 주고받았다.
이따가 숙소에 돌아가면 Y앱 켜서 수플레들이랑 길게 얘기 나눠 봐야지.
“어으으…….”
심장 떨려. 진짜.
스마트폰을 든 손이 긴장과 흥분으로 달달 떨릴 만큼 경황이 하나도 없었다.
1억 뷰 축하를 위해 SNS에 작성할 글을 홍서영 과장님에게 전달한 후.
지인들 중에서 가장 먼저 통화해야 할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몹시 밝은 목소리.
바로 Nine의 뮤비를 담당했던 감독님이었다.
“감독님!”
-어! 얘들아! 너희도 소식 봤구나?
“네, 진짜 감사해요.”
-나 진짜 새벽까지 기다리느라 잠 하나도 못 잤잖아. 덕분에 인생 커리어 찍었다. 정말.
본인의 커리어에 남을 대기록이라 그런지, 목소리가 엄청 밝았다.
서로 네가 잘해서 그래, 아냐 너희 덕분이지 하면서 공치사를 나눌 때.
“감독님~”
-어. 그래.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저희 타이틀곡 뮤직 비디오도 함께 해 보시는 거 어떤가요?”
숨이 턱 막히는 소리가 들렸다.
“왜 그러세요?”
-……그 힘들어.
“뭐가요?”
-솔직히 너희랑 일을 같이 한다는 게…….
너무나 솔직한 대답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상대에게 말했다.
“지금 방송 촬영 중이에요. 감독님.”
-……여러모로 많이 힘들다는 이야기지. 과연 나 따위가. 감히 내가.
우리가 물개박수를 치며 웃었다.
-나 따위가 찍은 엉망진창 퀄리티로 수플레님들의 마음에 들 수가 있을까 매일 밤 고민을 하게 되니까.
“상황 대처 능력이 와… 정말 존경해요. 감독님.”
-야. 촬영 중이면 말을 해 줬어야지. 진짜 말 잘못했으면 1억 개의 돌을 맞을 뻔했네.
그걸로도 불안했던지 ‘이 세상 최고의 팬덤, 수플레!’ 하는 감독님이었다.
“감독님. 그래서 저희랑 작품 함께 하시는 건 어떤가요?”
-하아…….
“수백만의 수플레들이 이 장면을 보게 될 거예요.”
-할게요. 예, 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아!”
뮤비 감독을 섭외하는데 성공했다.
나인 이후 주가가 확 올라가서 스케줄 잡기가 어려운 감독님이었는데, 우리가 생각해도 아주 좋은 타이밍이었다.
그럼 나중에 봬요 하며 통화를 종료한 후.
“진짜 너무 좋네여. 이렇게 여행도 오고, 뮤비도 잘 되고, 노… 감독님도 섭외하구.”
“그러니까. 오늘 뭘 해도 되는 날인가 보다.”
그런 말을 하며 동생들과 멀찍이 숙소 방향을 향해 인사를 했다.
‘고마워요. 귀신님!’
‘귀신님 땡큐!’
어제 숙소 주변을 배회하던 귀신이 나타난 것은 아마 우리 앨범 잘 되라고 축복해 준 게 아니었을까.
우리끼리 서프라이즈 식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을 때.
리혁이가 톡을 보냈다.
감동파괴자 [근데 회사에서 최소 9개월은 잡아야 한다고 그랬잖아요]
감동파괴자 [예정보다 석 달이나 단축이 됐어요]
나인의 조회수 추이가 미쳤다고 말을 듣긴 했지만, 1억이 되려면 최소 9개월 정도는 봐야 한다고 들었는데.
북미 쪽의 급격한 조회수 증가가 기간이 단축된 원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과연 무슨 변수가 해외 팬들을 나인의 뮤비로 더 이끈 걸까.
“……음?”
내가 들고 있는 태블릿 PC에서 ‘Nine’의 뮤비가 끝나고 다음 영상이 자동 재생됐다.
소 울음 성대모사를 들으며 미국 뉴스 채널의 앵커들이 폭소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어떻게 1억 뷰에 도달하기까지 기간이 석 달이나 단축됐는지 깨달아 버렸다.
[Funniest K-pop Singers (a.k.a The New Black)]
‘세상에서 가장 웃긴 K팝 가수들’이라고 되어 있는 모음집 류의 영상에 다급하게 홈 버튼을 눌렀다.
“…….”
모두가 민망함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때, 우리팀 래퍼가 푸근한 미소로 엄지를 척 들었다.